글 수: 16    업데이트: 26-04-15 09:16

칼럼-8

❘이태수 칼럼❘ 짧은 두 서정시의 매력
아트코리아 | 조회 109
❘이태수 칼럼❘
짧은 두 서정시의 매력
경북신문 2026. 4. 15
 

서정시가 왜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걸까. 아마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기표현에 무게가 실리며, 독자들도 그 표현에 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주관적인 경험(내포), 내적 세계의 표현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암시성이 그 본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세계의 자아화’, ‘대상의 주관화’라고 하는 이 서정시의 특성은 서정적 자아가 세계를 내부로 끌어들여 내적 인격화(동화)를 이루게 하거나 감정이입으로 자아와 세계가 일체감을 이루도록(투사) 의식적으로 동일성을 끌어내게 마련이다. 서정시 두 편을 읽어보자.

“가도 가도 이어지는 물길에/가창오리들이 그리는 물의 흔적이/품은 정적 하나/비탈진 물풀숲 가로질러/상자 안의 상자 속으로/갇힌다/바람이 조금씩 나의 등을 민다” —윤희수의 ‘가창오리’ 전문
 
이 짧은 시는 우리나라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가창오리를 모티브로 서정적 자아가 대상(세계)을 주관화(자아화)하면서 주관적 경험과 내면세계를 떠올리는가 하면, 주관과 객관, 감정과 이성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이 순수 서정시는 가창오리를 내면으로 끌어들여 기실은 화자의 심상 풍경을 떠올리면서 감정이입으로 세계와 자아가 일체감을 이루도록 추동하는 동화와 투사의 기법을 복합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가창오리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배제하고 물에서 먹이를 구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동작을 그리는데 무게를 실으면서 가창오리 떼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미지들을 자의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오리들이 지나간 흔적이 품고 있는 ‘정적’에 천착한다. 그 정적도 상자 안의 상자 속으로 갇히는 정지태로 비탈진 물풀숲을 가로질러 닿게 되는 동작을 전제한다. 이 때문에 가창오리를 모티브로 시인이 마음눈으로 깊이 들여다본 바의 ‘극대화된 하나의 정적’의 세계(심상 풍경)를 떠올리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바람이 조금씩 나의 등을 민다”는 마지막 구절이다. 시인의 내면세계는 ‘정적’이고, 그 정적이 ‘바람’으로 상징되는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깨어질 수 있는 동시에 그 반대로 내면의 정적을 깨트리게 한다는 역설로도 읽히게 하며, 극도로 절제된 언어 구사가 ‘말 없는 말’의 공간을 넓히고 한결 강화된 암시성을 끌어낸다.
 
“그대가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는/한 포기 여자였으나/그대가 돌아갈 때는/한 그루의 사랑이구나/마치/봄날에 꽃 한 송이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는/초라한 눈물이었다가/날 저물어 돌아갈 무렵에는 기어코/별인 것처럼” —이희춘의 ‘그대가 나를 찾아왔을 때’ 전문
 
이 시는 외부 세계를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세계로 변형시키거나 내면세계를 외부 세계로 전이시키면서 세계와 자아가 동일성을 이루도록 하는 능동적인 의미를 빚어 보인다. 자아와 세계, 인간과 사물 사이의 간격이 없어지고 자아와 세계가 동화돼 사물이 인간화되고 인간이 사물화되는가 하면, 사물이 관념화되고 관념이 다시 사물화되는 주객일체의 동일성으로 승화된 환상적 세계로 변주되고 있다.
여자와의 처음 만남을 한 포기의 풀에 비유하지만, 헤어질 때의 사랑은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되며, 구체적인 대상인 ‘여자’가 돌아갈 때는 ‘사랑’으로 관념화되면서 풀에서 나무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꽃’과의 처음 만남은 초라한 ‘눈물’이었다가 떠날 무렵에는 ‘별’로 확대되고 승화되는 사물의 관념화, 다시 관념의 사물화를 통해 복합적인 이미지를 빚어 보인다.
‘그대가 나를 찾아왔을 때’가 발산하는 묘미와 매력은 ‘여자(그대)⟶사랑’, ‘꽃⟶눈물⟶별’이라는 변용과 ‘여자=꽃’, ‘사랑=별’이라는 등식을 떠올리는 데서 증폭된다. 시인은 ‘그대’로 지칭되는 ‘여자’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질서(순리)에 대입시켜 인간 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이라는 덕목을 구체적인 사물인 ‘별’로 전이시키고 승화시켜 어둠 속에서 우러러 바라보는 존재로 떠받들고 있어 서정시의 매력을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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