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칼럼
아쉬운 한가위 풍속
경북신문 2025. 10. 15
올해 한가위 연휴는 비가 내리는 날이 많기는 했지만 유난히 길었다. 열흘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황금연휴와 가을 여행 기간이 맞물리면서 열 명 가운데 네 명이 여행을 다녀왔다는 소문도 들린다. 해외 여행객은 지난해보다 80%나 늘었고, 관광지 숙박료도 두세 배 올랐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지난날과는 너무나 달라진 한가위 풍속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부터 귀성길 시간이 오래 걸려 부모가 지방에서 도시로 올라가는'역귀성'이란 문화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한가위 문화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날은 한가위 때 고향을 방문하고 차례나 성묘를 지냈지만, 그 이후에는 화합과 감사를 상징하는 한가위 풍속에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며 쉽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심지어 ‘안 가는 게 효도’라는 말까지도 나올 정도였다.
십여 년 전만도 전통시장은 대목장을 보려는 인파로 붐비고, 집집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담장을 넘을 정도로 한가위는 시끌벅적한 명절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부모를 찾아뵙기 위한 귀성길도 교통대란을 이루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점차 일가친척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으로 간소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부부나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는 분위기로까지 달라지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가위 연휴 때 고향에 간다는 응답보다는 여행을 간다는 응답이 조금 더 많았으며,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응답도 절반이 넘었다고 한다. MZ세대들이 결혼하면서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합리하거나 불편을 안기는 가족 모임을 위해서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는 베이비붐 세대는 가족 단위의 소모임으로 추석 상차림을 하거나 성묘 후 아예 각자의 시간을 갖는 추세로 달라져 버린 것 같다.
풍속은 변하지만 변할 수 없는 건 한가위의 고유한 본질이지 않을까. 그 본질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미덕이 아쉽기만 하다. 차제에 우리의 미풍양속들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조상을 기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근본을 알게 해주는 족보(族譜)에 대한 생각을 새삼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성(姓)의 사람을 만나서 몇 마디 말만 나누면 어느 할아버지의 자손이고 어디서 갈라졌으며 자기와 몇 촌인지도 알 수 있다. 위조 등 다소의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나 족보는 자기의 혈통과 출신을 돌아보게 하며, 그 돌아봄은 바른길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 못잖게 족보를 잘 정리해 왔다. 오래전 일이지만, 독일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보르노 박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은 지금까지처럼 족보를 잘 지켜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는 국가와 사회, 가정의 질서를 잡아 주고, 개인을 도덕적으로 바른길로 인도하는 족보의 기능을 중하고 높게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먼저 자기의 조상과 후손들을 떠올리곤 했다. 자기 언행이 조상들에게 욕이 되지 않을지, 먼 훗날 후손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지를 염두에 두면서 말 한마디, 발 한 걸음 옮길 때도 신중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런 관념이 없다.
오늘날 범죄자가 증가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건 가정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학교가 책임지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학교 책임은 한계가 있고 사람의 기본은 집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연유로 남을 욕할 때 “누구 자식이지?”라고 말하지“어느 선생 제자이지?”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기가 누구의 후손이며 누구의 자식인지 그 사람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면 사람들은 함부로 처신하지 못한다. 더구나 옛날에는 대부분 동족 마을을 이루어 살았기 때문에 동네 안에서는 문밖에만 나가도 모두 할아버지, 아저씨, 형님, 동생, 조카 관계여서 함부로 살 수 없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훌륭한 조상을 받들어 행적을 새긴 비석을 새우고, 학문이나 덕행이 뛰어난 조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유림과 협력해 서원을 건립해 제사를 지냈다. 이는 조상을 자랑하기보다 교육의 자료로 활용해 후손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데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번 한가위 연휴 때 다시 느낀 바지만, 옛날처럼 조상을 존경하고 높이는 전통이 점차 흐려지는 세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