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향기/이혜선 시인
떠돌고 헛도는 삶에 한 가닥 불빛
왜 이토록이나 떠돌고 헛돌았지
남은 거라고는 바람과 먼지
저물기 전에 또 어디로 가야 하지
등 떠미는 저 먼지와 바람
차마 못 버려서 지고 있는 이 짐과
허공의 빈 메아리
그래도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
―이태수, 「먼 불빛」
우리들 한 살이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떠돌고 헛도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 날에는 꿈도 크고 야망도 크고, 열심히 살다 보면 내가 저 나이쯤에는 무언가 이루어도 크게 이루리라. 자신감도 자만심도 있었는데……
막상 살아보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비슷해질 때쯤이면, 아니, 힘들게 고갯길 올라와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자각에 이를 때쯤이면, 인생이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로구나, 내가 그 젊은 나이에 왜 그토록 무모했던가 하는 깨달음이 어깨를 툭툭 친다.
그러나 그렇지만, 이제 남은 것이 쓸모 없는 먼지와, 나를 한평생 떠돌게 하는 바람뿐이라 해도 아직도 나를 부여잡고 있는 그 짐을, 그 꿈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잊어버려서는 안 된되리라.
이토록 “떠돌도 헛도는” 한 생애에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허공의 빈 메아리” 같은 꿈 한 조각 있고 “무명(無明) 속”에서도 우리를 밝음(明)으로 인도해주는 “먼 불빛 한 가닥”이 있음이다. 그 불빛을 위안 삼아 다시 또 떠돌고 헛도는 발길이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새롭게 새 길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야 하는 사막의 낙타 같은 우리들의 삶이여.
[출처] 『이혜선의 시가 있는 언덕』(도서출판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