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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8

❘이태수 칼럼❘ 아름다운 봄 시에 마음 끌려------경북신문 2025. 3. 17
아트코리아 | 조회 130
❘이태수 칼럼❘ 
아름다운 봄 시에 마음 끌려
------경북신문  2025. 3. 17

  봄은 겨울의 침묵을 깨고 다시 풋풋해지는 생명력, 자연의 생동과 희망의 상징이다. 그래서 봄 시는 예부터 문학의 특별한 자리를 차지해왔는지도 모른다. 봄은 시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기 때문에 봄이 가진 다양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시인만의 언어로 노래해 세월을 초월해 우리의 마음을 울려 주기도 한다.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박목월의 초기 시 ‘청노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신라 고도 경주의 고즈넉한 이른 봄 풍경을 그리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봄의 정서와 자연관을 보여주는 이 시는 겨우내 기다리던 봄의 맑고 투명한 정서를 선명한 이미지로 그리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머언 산 청운사(淸雲寺)/낡은 기와집//산(山)은 자하산(紫霞山)/봄눈 녹으면//느릅나무/속잎 피는 열두 구비를//청노루/맑은 눈에//노는/구름
—박목월의 ‘청노루’ 전문
 
  조지훈, 박두진과의 3인 시집 ‘청록집’에 실려 있는 이 시는 자연 풍경을 수채화처럼 떠올리면서 시인의 빼어난 감수성과 언어 감각을 보여준다. 군더더기를 죄다 떨쳐버린 간결한 문체와 서술어를 생략한 명사형의 묘사, 봄의 느낌을 시각화하는 첨예한 감각은 탁월하다. 특히 “청노루/맑은 눈에//도는/구름”이라는 묘사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청노루의 눈동자에 비친 구름으로 들여다보는 감각은 단연 압권이다.
  차제에 새삼 동서고금을 통해 널리 알려진 봄 시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동양의 전통적인 봄 시들은 섬세한 감각적 표현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 순환하는 시간의 철학적 이해에 주로 무게가 실린다. 중국의 시인 이백(李白)의 '춘야낙성문적(春夜洛城聞笛)'은 "봄밤 낙양성에서 피리 소리 들으니, 매화꽃 향기 바람에 실려오네"라는 봄밤의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그렸으며, 두보(杜甫)의 '춘망(春望)'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봄의 수도를 보며 "나라는 파괴되었으나 산과 강은 남아있고, 봄이 오니 성안의 풀과 나무는 무성하네"라고 자연의 재생과 인간 역사의 비극을 대비하고 있다.
  서양의 경우 셰익스피어는 소네트를 통해 봄을 사랑, 젊음, 생명력의 상징으로 그렸지만, 소네트 98번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동안 보는 봄의 아름다움조차 공허하게 느껴지는 심정을 절실하게 그렸다.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워즈워스와 키츠는 봄 풍경을 통해 자연의 숭고함과 인간 정신의 교감을 노래했던 시인들이다.
  워즈워스는 '수선화'에서 봄의 상징인 수선화 군락을 보고 느낀 감동과 기쁨을 "내 마음은 춤을 추네, 수선화와 함께"라고 노래했으며, 키츠는 '봄에 대하여'를 통해 "봄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새롭다"며 계절의 순환 속에서도 매번 새로운 감동을 주는 봄의 느낌을 찬미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봄 시는 종교적 부활과 연결되며, 낭만주의 시대의 봄 시는 산업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연 회귀를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건 시대의 흐름과 맞불려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20세기에는 전통적인 서정성을 넘어 현대 사회의 복잡한 현실과 내면 심리를 반영하는 다층적 의미를 떠올리는 경우가 적잖다. 세계 대전, 산업화, 환경 문제 등 시대적 맥락 속에서 봄은 더욱 다양하고 때로는 역설적인 상징으로 재해석되기 때문일 것이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봄의 상징을 전복시키고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은 전통적으로 희망과 생명의 상징이었던 봄이 고통과 혼란을 가져오는 시기로 그려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황폐해진 서구 문명의 정신적 위기를 표현하면서, 엘리엇은 죽은 땅에서 피어나는 봄의 생명력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상기시킨다고 역설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의 봄 시는 표면적 의미와 심층적 의미가 공존하는 양상이다. 단순히 봄을 찬미하는 시처럼 보이는 경우도 그 이면에는 사회 비판이나 철학적 질문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봄을 주제로 한국 현대시는 민족의 역사적 경험, 개인의 내밀한 감정,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식민지 경험, 전쟁, 분단, 산업화 등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시인들은 봄을 통해 민족의 아픔과 희망, 실존적 고뇌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어지러운 시대 탓인지 아름다운 봄 시에 더욱 마음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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