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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7

❘이태수 칼럼❘ 가는 해를 돌아보며 경북신문 2024. 12. 13
아트코리아 | 조회 100
❘이태수 칼럼❘
가는 해를 돌아보며
경북신문 2024. 12. 13

 
국내외적으로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갑진년도 끝자락이다. 벌써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온다. 차가운 날씨지만 서설(瑞雪)이 내려 겨울 들판의 포근한 이불이 되어 주기도 할 것이다. 이 무렵에는 누구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다가올 새해, 새날들에 대한 꿈과 기대감에 불을 지피게 마련이다.

시간은 언제나 어김없이 같은 걸음으로 되돌릴 수 없이 앞으로만 간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세월의 뒤안길에 묻혀버리겠지만 일말의 아쉬움을 안겨 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묵은 것은 떠나보내고 새것을 맞이하고 싶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말을 반추하게 되지 않을까.

이 세상은 모든 것은 한결같을 수 없으며 시시각각 달라진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불교의 핵심 개념인 삼법인의 하나로 간단히 '무상'이라고도 한다. 이 깨달음의 근원이 되는 말은 ‘어차피 다 부질없다’는 허무주의라기보다는 ‘맹목적이고 극단적이지 말라’는 중도를 지향하고, 고정관념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하는 의미에 무게가 실린다.

불교에서는 번뇌가 집착과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좋은 때도 흘러가 버리니 교만하지 말고 나쁜 때도 흘러가 버리니 절망하지 말라는 뜻처럼, 제행무상도 무엇이든 영원한 건 없다는 진리를 떠올린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己心)’이라는 대목은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그 깊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집착해서 해를 입지 말고, 얻어서 기쁘다면 잃어버릴 것임에도 얻은 기쁨을 크게 갖고, 잃어버려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얻지 못했다면 언젠가는 잃어버릴 것이고, 지금 얻지 못해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 크게 상심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가을도 지나가고//또 한해가 지나간다./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떠나간다. 나뭇잎들이 나무를 떠나고/물고기들이 물을 떠난다./사람들이 사람을 떠나고/강물이 강을 떠난다. 미련들이 미련을 떠나고//구름들이 하늘을 떠난다./너도 기어이 나를 떠나고/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허공 깊숙이, 아득히, 죄다 떠나간다.//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다./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 마침내 환하다./적막 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자작시 ‘지나가고 떠나가고’
 
이 시는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음의 미덕을 받들어 쓴 ‘제행무상’이 기본 화두(話頭)다. ‘낮은 감사의 기도’라는 구절이 암시하듯이, 마지막 부분에 ‘감사’하는 마음을 거기에다 은밀하게 포개어 놓았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음으로써 새롭게 차오르게 되고, 그 차오름은 적막 속의 따뜻힌 불꽃으로 타오르면서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리라는 염원과 믿음을 겸허한 마음으로 그려 보았다.

사실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 한 해를 되돌아보아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는 길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한다. ‘오늘’은 ‘오늘뿐’이며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오늘뿐인 오늘도 마음에 날개를 단다//처음이듯 마지막이듯//마음에 날개를 달아주는 꿈을 꾼다//꿈이 곧 날개이므로//오늘도 처음이자 마지막인 꿈을 꾼다 —자작시 ‘날개 3’
 
시 쓰기는 더 나은 삶과 그런 세계를 향한 꿈꾸기다. 늘 그런 생각으로 시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떠나가므로 그런 와중에 꿈이 없다면 삶은 허무의 도가니일 수밖에 없다. 꿈은 그런 무상감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더 나은 삶과 그런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추동력이 되어 준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 길이 시작되겠지만, 또 한 해가 저무는 지금 이 순간도 처음이자 마지막이듯 꿈꾸는 마음에 날개를 달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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