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칼럼❘
아름다운 가을의 시
경북신문 2024. 10. 15
가을은 들판에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풍요의 계절이다. 하지만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감각이 예민한 시인을 ‘잠수함의 토끼’에 비유한 바 있지만, 가을은 시인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각별한 영감을 안겨준다. 마음의 깊이를 탐구하게 하는 매개체로 그리움, 사랑, 고독 등의 감정을 부추기기 때문이겠지만 감각이 열리는 방향은 각양각색이다.
“예부터 가을 되면 적막하고 쓸쓸하다 슬퍼하지만/난 가을이 봄보다 낫다고 말하리/맑은 하늘에 학 한 마리가 구름 뚫고 날아오르니/내 시심도 곁 따라 창공으로 오르네(自古逢秋悲寂廖 我言秋日勝春朝 晴空一鶴排雲上 便引詩情到碧霄)”
류우석의 한시 ‘가을 노래’(秋詞) 2수 중 한 수로 가을을 예찬한 경우다. “동쪽 울 밑에서 국화꽃 따는데, 남산이 그윽하게 눈앞에 펼쳐지네”(도연명)라거나, “서리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구나”(두목)라는 시구들은 특정 장면을 포착한 것일 뿐 대개 가을빛의 소슬함이 주조를 이룬다. 그가 도연명이나 두목이 그렇듯이 ‘예부터 가을 되면 적막하고 쓸쓸하다 슬퍼한다’고 지적한 이유일 것이다.
류우석은 창공을 날아오르는 학의 날갯짓처럼 울연히 시심이 솟기에 가을이 좋고, 봄날처럼 공연히 흥분되지 않아 가을이 좋다고 한다. 봄날과의 대비를 통해 낙관적으로 가을을 예찬하고 있어 눈길을 끄는 시다. 가을에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게 되는 서양 시인들의 시는 프랑스 출신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과 독일계 스위스 시인 헤르만 헤세의 ‘날아가는 낙엽’이 아닐까 한다.
헤세는 ‘날아가는 낙엽’에서 “마른 나뭇잎 하나가/바람에 실려 내 앞을 날아간다/방랑도 젊음도 그리고 사랑도/알맞은 시기와 종말이 있다”고 가을 풍경을 내면으로 끌어들이면서 쓸쓸한 ‘종말’의 정서로 노래한다. 구르몽은 ‘낙엽’에서 그런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상징적인 여성인 ‘시몬’과 낙엽이 쌓인 가을의 오솔길을 함께 걸으며 속삭이고 싶은 마음을 그려 보였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낙엽은 날개 소리 나 여인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니/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의 ‘낙엽’ 부분
한국 시인들의 가을 시 가운데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박재삼의 ’가을하늘을 보며‘ 등이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박재삼은 ’가을하늘을 보며‘에서 “일년 중 제일로/찬란하게 내리는/이 햇빛을 송두리째 받고/지금 곡식이 팽팽하게/여물이 다 든/이 빛나는 경치를 보게/거기다 바람까지/살랑살랑 어느새/찬바람을 거느리고/잎새 둘레에 왔네”라고 가을을 예찬한다.
’서시‘로 유명한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라고 가을을 노래하고 있으며, 김현승은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의 기도’)라고 오직 한 사람과의 사랑을 기구(祈求)한다.
그런가 하면 시인 이해인 수녀는 ’익어가는 가을‘을 통해 가을의 풍요에 감사하면서 “너도 나도/익어서/사랑이 되네”라고 노래하고 있으며, 나태주는 ’가을이 나를 보고‘에서 "가을이 내게 말하네/’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인데/뭘 하느냐고‘/가을은 또 말하네/’누군가 사랑하려면/마냥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무작정 길을 나서서/사랑을 찾아보라고‘“라고 사랑의 메시지를 떠올린다.
저물어가는 이 가을의 쓸쓸한 정조 속에서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줄 ’사랑‘의 덕목을 소중하게 반추하고 깊이 끌어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