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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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30] 풀잎 하나
문태준 시인
일러스트=이철원
풀잎 하나
깊은 산골짜기 밀림에 깃들면
찰나와 영원이 하나같다
지나간 시간도 다가오는 시간도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만 같다
울창한 나무 그늘에서 흔들리는
나는 조그만 풀잎 하나
꿈꾸다 꿈속에 든 풀잎 하나
-이태수(1947-)
심곡심산(深谷深山)의 산림(山林)을 더러 만나게 되지만 대개는 능선과 높은 산봉우리와 깊은 계곡을 눈으로 살피게 된다.
그런데 시인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산에 들어가서 작은 풀잎에 눈이 간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 속에서 가만가만히 흔들리는 풀잎에 관심을 둔다. 산림은 하나의 생명 세계로서 순간과 영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데 조화돼 한 덩어리를 이루면서 섞여 있는 곳인데, 시인은 거기서 하나의 개체로서의 풀잎을 주목한다.
그리고 시인도 이 풀잎과 다를 바 없는 ‘조그만’ 존재라고 말한다. 이 풀잎은 어떤 의미일까. 제자리에서 뿌리를 내려 돋고 자라되 스스로 산뜻하고, 정갈하고, 영롱하고, 담담하고, 고요하고, 평온한 그런 상태를 잘 유지할 줄 아는 생명 존재가 아닐까. 풀잎처럼 조그만 존재가 되려는 의지는 크고 높은 목소리를 내거나 거만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의 지향일 테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시인은 올해 스물한 번째 시집을 펴냈다. “애써도 여전히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뒤돌아보면 구부러진 길을 걸어왔지만 마음 가는 데까지는 가보려 한다”라고 밝혔는데 이 말씀에도 겸허한 심안(心眼)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