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0    업데이트: 24-08-20 09:15

칼럼-7

❘이태수 칼럼❘ 진짜가 가짜를 지배해야 - 경북신문 2024. 7. 18
아트코리아 | 조회 159
❘이태수 칼럼❘
 
진짜가 가짜를 지배해야——————경북신문 2024. 7. 18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은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포연이 가득한 전쟁터에서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 전역에서 승승장구하던 전략전술은 대부분 그가 애독한 로마 시대의 역사서에서 끌어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오래전 우리나라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축구 감독 거스 히딩크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가방에는 언제나 책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새로운 작전과 인터뷰 때마다 사람들을 감동시킨 시적인 수사들이 결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독서는 지식, 표현, 대화의 수단이며, 관용과 문화간 대화를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 독서의 힘은 더구나 개인의 역량을 고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인이 소속된 조직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그 조직과 결속돼 나라의 힘을 높이 끌어올리게 마련이다.
  지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책을 읽을 줄 알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읽지 않는 이른바 ‘기능적 문맹’을 양산하는 데 있지 않을까. 지식정보화 시대에 그 중요성이 증폭되고,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과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건 창의력과 창의성이 경쟁력의 원동력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유네스코가 1995년 4월 23일을 저작권 개념을 포함해 ‘세계 책의 날’로 제정한 데는 몇 가지 까닭이 있다. 영국의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로도 유명한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가 이날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의 카탈루니아 지방에서 해마다 전통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했던 ‘상트 호르디의 날’도 바로 같은 날이다.
  한국인의 독서 시간과 독서량이 해마다 주는 반면, 정보사회에 진입한 선진국에선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이 ‘발달된 책’이라는 관점은 정당성을 잃었음에도 우리 사회가 독서 능력보다는 ‘정보기술 면허증’ 얻기를 우선시하는 데는 분명 문제가 있다. 능동적인 정보 추구, 수용, 인식과 창의적인 정보의 활용을 위한 전제가 바로 독서 능력이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고교생은 평소 신문이나 책을 자주 읽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판단력을 기른 경우였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생생하다. 신문과 책 읽기는 지식과 상식뿐 아니라 종합적 사고력과 판단력, 글 쓰기 능력까지 키우게 돼 결과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경우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과외나 학원 수업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게 효과적이었다고도 한다. 주요 공식과 핵심 위주의 공부보다는 스스로 기본 원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는 능력 키우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같은 사정은 자율을 중시하는 대학 공부에 그대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율적으로 공부한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은 대학의 바뀐 학습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반대인 학생들은 학업 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지방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이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대도시의 학생들보다 대학 생활에 더 잘 적응한다는 점도 새겨볼 문제다.
  우리는 지금 진짜보다는 가짜가 판치는 세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치관 속에서 과시욕과 허영심을 노려 영리와 영달만 추구하는 가짜들의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고 소비자가 찾으니 가짜가 생겨날 수밖에 없고, 살 형편이 안 되는 계층조차 명품을 선호하다 보니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돼버린 게 아닐는지.
  우리의 가치관과 의식의 근저에는 선과 악,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자신의 이익, 편의, 쾌락 등에 둠으로써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규범인 진리를 밀어내거나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는 경향으로 기울고 있는 느낌이다. 눈앞의 이익을 염두에 둔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가 진리를 왜곡하고 오도하고 있어 혼미스럽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가짜가 진짜를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치관의 혼란이 심각하다. 한쪽이 이렇다고 주장하면 다른 한쪽은 그게 아니라고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공방을 벌이는 ‘언어 경연장’을 방불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진짜는 진짜’이고 ‘가짜는 가짜’다. ‘진짜가 가짜를 지배하는 사회’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