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21 2024. 7. 8
[이 아침의 시]
예초刈草 / 이태수
서대선 | 기사입력 2024/07/08 [06:01]
예초刈草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가끔
제초와 예초의 차이를 떠올려 본다
내가 잔디 같고 그들이 잡초 같은지
반대로 내가 잡초 같은지도 생각해 본다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다 궂은일 벌어지면
잔디를 위하듯이 제초하지는 않는다
벌초하듯이 말끔하게 예초한 뒤에는
내가 잡초가 아닌지도 들여다본다
‘관계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삶이지만, 사회적 관계는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현대사회는 직접적인 만남뿐 아니라, 인터넷이나 SNS처럼 간접적이고 다양한 경로를 통한 관계의 접근성도 커져 때로는 원치 않는 사람들과도 연결되는 불편함도 발생한다. 어떤 관계는 잡초나 넝쿨 식물처럼 삶의 들판을 잠식하거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잡초”처럼 원하지도 않는 관여를 하거나 넝쿨 식물처럼 갈등을 만드는 관계가 부모 형제이거나, 연인이거나 부부, 또는 믿었던 친구 속에 내재 되어 있다면, “잡초”를 제거하듯 “예초”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성장 과정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유아기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격적 기질(temperament)이 감정과 행동 패턴의 유형을 좌우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축적되는 다양한 경험들이 인간관계를 대하는 새로운 스키마(schema)로 자리 잡게 된다.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경험했던 기쁨, 슬픔, 분노, 불안, 공포와 같은 감정들은 우리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 속 편도체(amygdala)에 깊게 저장된다. 행복했던 경험들은 건강한 성장과 자존감 형성에 든든한 바탕이 되지만, 학대나 따돌림처럼 끔찍했던 관계의 상처들은 “잡초”처럼 정신의 갈피마다 뿌리를 박고 있다가 성인이 되어서도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타인을 대하는 순간, 숨겨졌던 상처들이 이파리를 흔들며 되살아나고, ‘재현’ 되는 관계의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투사(projection)라는 방어기제를 쓰면 마음은 편할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이 모두 타인의 탓이라고 뒤집어씌움으로써 자신을 향한 자책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어기제를 자주 쓰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는 타인에게 투사했던 문제가 바로 자신의 문제로 내재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프리 영(Jeffery E, Young)은 인간은 삶에서 겪는 모든 상황.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스키마(schema)라는 필터를 통해 여과된 형태로 마음에 담는다고 보았다. 만약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스키마가 형성되었다면, 특정한 인간관계나 상황에서 공포, 분노,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반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일방적으로 타인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스키마를 통찰해보는 것도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가끔” “내가 잔디 같고 그들이 잡초 같은지/반대로 내가 잡초 같은지도 생각해 본다”고 시인은 전언한다. 인간관계에서 특정한 문제를 느낀다면, 우선 자기 자신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삶에서 특정한 인간관계가 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가? 유독 같은 사람들에게서, 또는 같은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스스로 메타인지를 작동시켜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타인과 불화하고, 관계가 깨지고, 헤어지는데, 일종의 ‘패턴(pattern)’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 상대방에게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쓰기보단 시인의 전언처럼 ‘나’의 관점에서도 초점을 맞추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부정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스키마가 습관처럼 굳어져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왔던 대로 살아간다. 변화를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알아차리(awarness)’는 단계가 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자신의 과거 경험과 관련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현재의 내가 답습하고 있는 관계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의 스키마를 통찰할 수 있게 되면, 유사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깨는(pattern-breaking)’ 훈련이 필요하다. 자신의 뇌 속에 각인된 부정적인 감정의 기억들이 유사한 순간마다 활성화되어 과거의 자신을 불러오기 때문에, 습관처럼 굳어진 스키마의 패턴을 깨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무조건 타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부정적인 스키마를 정신 속에 “잡초”나 넝쿨 식물처럼 방치하기 보다는 “벌초하듯이 말끔하게 예초한 뒤에는/내가 잡초가 아닌지도 들여다”보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반복되는 문제의 ‘패턴’을 깰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