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지리산 천상병문학상을 받은 대구지역의 중진시인 이태수(2)
지난 회에서 이태수 시인은 천주교 전 대구대교구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의 지원으로 『한국가톨릭시인시선집』 등을 대구에서 여러 차례 편집발간한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우리나라 가톨릭 분할도가 경성교구(서을대교구)와 남방교구(대구 대교구)로 나뉘어져 있을 때부터 교회내 신문과 잡지가 양교구 증심으로 발간되었고 따라서 문학도 양교구 신문 잡지를 통해 구현되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겠다. 대구쪽 가톨릭문인들이 이런 바탕을 이해하고 문학적 새로운 기반을 닦아나가는 일은 일견 인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런 뜻에서 선집 속에 있는 이태수의 시 「聖 풍경」이 주목된다.
“비둘기 몇 마리/ 청동지붕 위에 내려앉는다/ 미사 끝난지 한참 지나서일까/ 정적 속에 홀로 난분분 지는 벚꽃들,/ 성전의 창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무반주 그레그리오 성가,//
들릴 듯 말 듯 나지막이/ 누가 기도하듯이 읊조리는 데도/ 그지없이 성스럽고 신비하게 들린다/ 날다 다시 낮게 내리는 비둘기,/지는 꽃잎들도 신비스럽고/ 성스러워 보인다//
따스한 봄 햇살을 되쏘고 있는/ 첨탑 위의 눈부신 십자가,/ 낮게 두 손을 모으며 우러른다”
시에서 청동지붕, 미사, 난분분 지는 벚꽃들, 무반주 그레고리오 성가, 누가 기도하는, 등등의 언어가 대구 전통의 수도회 분위기를 떠올려준다.성바오로수도회, 베네딕도수도회 등등 왜관에까지 이어지는 수도회의 정적과 벚꽃과 무반주 그레고리오 성가와 기도소리에 귀를 한참은 기우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는 첨탑과 십자가를 우러르는 기도, 짧고 긴 기도들이 무반주 그레고리오 음악이 뒷받침해 주는 수도원 뜨락과 쫑쫑쫑 비들기에 초점을 잡는 눈길!
이것이 일단 ‘聖 풍경’으로 요약된다. 이렇게 등장하는 도구들은 시인의 신앙이나 일상에 소리소문없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 터이다. 그래서 시인은 힘들이지 않고 그 분위기를 애쓰지 않고 이끌고 이끌어낸다.
이태수의 시는 ‘내려가기, 올라가기, 옆으로 뻗기’의 3방향의 시다. 공간에서 존재하는 운동성 이미지다.
“물을 마신다/ 아래로 내려가는 물,/ 나는 물과 더불어 흘러간다/ 물은 언제나 멈추기를 싫어한다”(「물 또는 내려가기」)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나는 어둠 속에서 꿈꿉니다/ 밤하늘의 먼 별들을 끌어당기며/ 거기까지 올라가 보려 꿈을 꿉니다”(「별 또는 올라가기」)
“나무들이 허공으로 팔을 뻗는다/ ‘...../그들 틈새에 낀/ 쥐똥나무들도 팔을 뻗는다/ ...../ 스물 이홉에 스스로 목숨을 잃은/ 고월이 역시 그 나이에/ 죽기까지 노래 부르며 버티다/ 세상을 떠나간 배호가/ 왜 이리 선연히 떠오르는 걸까” (「유월 어느날」)
이 세 방향인 이미지는 운동성이며 자연의 기본적인 섭리다. 태초부터 지녀온 자연 속의 흐름이자 섭리는 신이 내재하는 사물적 존재감이 아닐까 한다.
시 속에 나오는 고월은 1920년대 대구 출신 시인 이장희인데 외국 유학을 하지 않고 국내파 시인이지만 1920년대 그 시기에 자생 모더니즘의 유형을 보여주었다.그리고 가수 배호의 생명적 몸부림의 발성으로 노래한 것들, 이런 이미지들이 존재감의 표현이라면 3방향 어디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그냥 시 한 편 골라 마무리를 할까 한다.
“전투기가 떼지어 날아가고/ 숨가쁘게 골목길을 헤치는 구급차/ 시간만 한결같은 걸음이다//나는 창가에 눌러앉아 쉰다/ 구름도 오동나무 가지를 떠나지만/그대로 붙박이듯 앉아 쉰다.”
출처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http://www.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