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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7

❘이태수 칼럼❘ 신동집 시인 탄신 100주년 경북신문 2024. 6. 17
아트코리아 | 조회 233
❘이태수 칼럼❘
 
신동집 시인 탄신 100주년
경북신문 2024. 6. 17
 
 
올해는 신동집(1924~2003) 시인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다.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대구에서 활동하면서 한국문단의 거목으로 우뚝했던 그의 문학적 업적과 그 세계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30여 권의 방대한 양의 시집(시전집 포함)을 내는 동안 줄기차게 자신의 삶과 시를 하나로 아우르는 도정을 걸었던 그는 ‘불빛보다는 별빛 같은’ 시세계를 펼쳤던 천부적인 시인이었음에도 지금 문단에서 그에 상응하는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학 재학 시절에 습작 시집 『대낮』을 낸 1948년 동인지 《죽순》을 통해 등단한 그는 1952년 시집 『서정의 유형』으로 각광을 받았다. 6.25 전쟁 와중에는 시 「목숨」을 통해 미증유의 비극적 상황과 참혹한 생존의 지도를 그리며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했으며, 전쟁과 죽음이 맞물리는 생존의 처절한 현장을 그린 시 「얼굴」은 삶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각인했다. 특히 “목숨은 때 묻었나/절반은 흙이 된 빛깔”, “억만광년의 현암을 거쳐/나의 목숨 안에 와 닿은/한 개의 별빛”(「목숨」)과 같은 표현은 압권이다.
그 이후에는 어둠이 우주적인 감정의 품안에서 종말이 아니고 모든 색채를 끌어들이고 다시 토해내는 빛깔로 바뀌고 인간, 존재, 자연, 자유 등을 새로운 명제로 끌어들이면서 형이상학적인 시에서 모더니즘적인 경향으로, 존재론적 관점에서 의미 탐구의 세계로 변모했다. 달관(達觀)의 경지와 동양적인 유현(幽玄)의 세계에 천착, 초기의 강렬한 휴머니즘 옹호와 서구적인 주지시 경향에서 인생론적 존재 탐구로 전환하면서 원숙한 경지를 펼쳤다.
1950년대까지 시집 『대낮』, 『서정의 유형』, 『제2의 서시』를 내면서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고, 1960년대에는 시집 『모순의 물』, 『들끓는 모음』, 『빈 콜라병』 등을 발간했으며, 『모순의 물』 무렵부터 어둠이 모든 색채를 끌어들이며 다시 토해내는 빛깔로 바뀌고, 『들끓는 모음』에서는 홀로서기의 존재를 암시하는 선언적인 시어들이 떠오르는가 하면, 『빈 콜라병』을 통해서는 정지태 속에서 존재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시를 추구해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했다.
1970년대에는 대구로 이주(1960년대)한 김춘수와 함께 대구‧경북 문학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뿌렸으며, 시집 『새벽녘의 사람』, 『귀환』, 『송신』, 『신동집 시선』, 『행인』, 『미완의 밤』, 『해 뜨는 법』, 『세 사람의 바다』, 『장기판』 등을 출간해 폭발적인 저력을 과시했다. 이 무렵의 시는 노자(老子), 장자(莊子) 등의 동양사상에 회귀하는 모습으로 유현한 무에의 도전을 거쳐 우주 편력적인 시편들을 빚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시집 『진혼․반격』, 『암호』를 발간한 뒤 1983년부터 고혈압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시혼에 불을 지펴 『신동집 시전집』, 시집 『송별』, 『여로』, 『누가 묻거든』, 『자전』(장시집) 등을 내놓는 등 거의 초인적인 열정을 보였으며, 『신동집 시전집 2』도 발간됐다. 이 무렵에 출간된 시집들은 그 이전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더욱 심화된 경지를 떠올렸다. 고혈압으로 오래 투병하는 과정에서 황혼의식에 젖는가 하면, 피안(彼岸)보다는 차안(此岸)을 더 가깝게 느끼면서 처연한 달관의 경지에 이른 시편들을 줄기차게 쏟아냈다.
장시 「자전(自傳)」의 마지막 구절은 바람이 눕는 이미지와 시인의 ‘오늘’이 예감을 같이한다. 가야 할 곳에서 부르는 소리가 바람으로 다가오고 어린 시절의 자신(소년)은 지금의 자신을 이끌어 주는 사자(使者)가 되어 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귀울림’의 가능성을 ‘머언’으로 그리기도 했다. 시인은 이같이 이 세상을 떠나는 먼 나들이를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귀환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전국에서 조병화 시인과 함께 최다작, 최다 시집 발간을 기록하기도 한 그는 떠나고 돌아오는 나그네 의식, 추수 의식, 상승 이미지에 접붙이기, 관조와 명상, 자아에의 새로운 눈뜸과 달관, 형이상학적 이상의 추구, 귀로 의식에 닿으면서 원숙한 경지를 펼치는가 하면, 감성과 지성의 튼실한 구축 위에서 동양적 달관과 유현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람하고 독보적인 시의 탑을 쌓았던 시인이다.
서울대 문리대 정치과 출신으로 예술원 회원으로도 활약한 그는 영남대, 계명대 교수, 한국현대시인협회 명예회장 등을 지냈으며, 아시아자유문학상, 경북문화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세계시인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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