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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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들판 外 1편/ 박숙이 / 2021-11-19 / 시인뉴스포엠
아트코리아 | 조회 889
겨울들판
 

천둥우레까지
熱戰의 가을까지 다 겪어봤다
무엇이 더 두려우랴
 
다만, 가을을 겪고 나니
요행이 없는 저 들판,
내가 한없이 넓어져 있음을 알겠다

생각해 보면
들판이 왜 들판이겠나
혼자 아닌
바람과 땡볕과 혹한과 함께 판을 벌린다는 말이지

언 땅 속의 보리처럼
주먹은 추위 속에서 불끈 쥐는 것

해보자 까짓,
벌릴 틈만 있다면야
한가락 하는 저 추위도 나는 당찬 의욕으로 달게 받겠네



거름


음식물 찌꺼기를 마당의 텃밭에 묻는다
흙이 표 안내고 다 받아준다
어떠한 불순물도 그럼 그럼하며, 어머니 품처럼 받아 안는다

우여곡절의, 그 진물 질질 흐르던 것들 대문 밖에 내버릴까도 생각했었지만
에라 묻자, 인생선배가 쓰던 달든 무조건 가슴에 묻으라 했던
묻으면 조용해진다던 그, 마지 밥 같은 숭고한 말 잊지 않고
혹한의 눈물조차 깊숙이 묻어 두었을 뿐인데 선배 말대로 아,
이제 막 꽃이 핀다, 生속에 박힌 파편들이 푹푹 썩어 문드러졌나보다

활짝 핀 봄꽃들이 도란도란 거리는 걸 보면
필시, 썩어야만 살아지던 거름의 날들을 떠올리고 있음이야
웃으면서 옛말을, 옛말을 꽃들이 하고 있음이야

사네 못사네 하면서도 씨앗처럼 가슴에 묻어 두었던
소똥 거름 같은 그 지독하고 지독한 희로애락들,
그런데, 내 글의 알맹이가 하필, 저 쿵쿠무리한
묵언의 거름 속에서 배실 배실 삐져나올 줄이야......!

마당가에 무딘 삽 한 자루가, 종부의 마음처럼 아래를 향해 푹, 꽂혀 있다


▲박숙이 시인

1998<매일신춘문예>동시당선

1999년 <시안>시등단

시집-활짝』『하마터면 익을 뻔했네

대구문학상서정주문학상 수상

한국문협한국시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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