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383    업데이트: 13-11-14 15:33

김삼학

나의‘파기장波器匠’에게

 

그 누구처럼 돌들의 도시를 꿈꾸는 낙타와 가고 싶다. 돌아오는 길. 하싼화티와 구루나마을에 들르고 싶다. 80여년쯤 전, 폴란드의 비트키비츠는‘예술은 이미 문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턱하니 자기선언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20년쯤 전에야 들은 저는 담담했습니다.

무엇이 예술이며, 예술아닌 것은 또 무엇인가.

不二法門? 나와 또다른 나는 禪問答을 했을 뿐입니다. 그 폴란드인의 異色宣言을 애써 부정하였습니다. 그후, 많은 사람들이 예술개념의 새로운 논점들을 이야기하고, 예술을 다른 것과 차이나게 하는 예술자체의 특징들을 말했습니다.

 

비합리적이이서는 안된다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야한다 재현하거나 재생해야한다. 형식의 창조다 표현이다 미적경험을 산출해야한다 충격이어야한다. 어지간히들 충실하게 그 이정표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계산하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말에도 공감하고, 의식적으로 제어된 충동이나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말에도 많은 이들은 귀기울였습니다. 

저는 단하나,‘마음과 축적된 이야기가 없다면 화가의 손은 노예적인 복사기일 뿐이다’라는 뜻의 고대 중국의 화가 왕리Wang Li의 말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일반적으로 작가를 구속하는 화풍이나, 양식에 관해서는 전혀 마음쓰지 않았습니다.  

石畵stone painting에서 벽화mural painting로, 더불어 벽자화법璧子畵法으로 20년 세월이 이어지는 동안 저는 돌의 꿈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듣게 되었습니다. 돌은 언제나 새롭고, 애쓰는 자에게만 그의 신화를, 그의 꾸미지 않은 몸을 드러내보여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진토된 白骨까지 말입니다.

 

저는 감히 저의 돌작업이 바람찬 경주 남산에서 맞은 일종의 예술적‘유레카Eureka현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습니다. 태초의 불에 구어져, 또는 자연의 오랜 탄식에 길들여진 흙의 딴 이름들 - 돌

저는 그들은 다시 태토胎土로 돌려, 화폭을 만듭니다. 긴밤을 지새면서, 바가지땀을 흘리면서 제가 하는 이 작업은 어쩌면 옛날에는 그리도 천시했던‘점질’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 돌에게서 제가 배우는 것은 인간의 참 살림살이와 그 삶에 대한 반성입니다.

1996. 10. 30 金三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