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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노트

[기고] 20대 청년미술가 0명 / 2016-03-10 /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861


대구미술협회 회원 가입
3년간 20대 한명도 없어
대구미술의 미래가 걱정
청년이 삶·예술 병행토록
교육현장 시스템 바꿔야

대구미술협회 회원 3천695명 가운데 20대가 0명, 30대가 40명, 65세 이상은 563명이니, 미술인의 고령화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연륜과 함께 무르익고 예술에는 정년이 없다손 치더라도 3년째 20대가 한명도 없다고 한다면 대구청년미술의 미래와 기반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을 전공하고 3년 이상 1년에 적어도 3~4회 작품 활동을 하면 미술협회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물론 가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가입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대구 문화예술을 대변하는 화가 이인성과 이쾌대, 시인 이상화, 작곡가 박태준 등을 예로 삼자면 이들 예술가의 20대 활동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화가 이인성은 18세의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고, 1935년 23세에 일본수채화협회전에 출품하여 협회장상을 수상하였다. 이쾌대의 ‘운명’은 평화, 비극, 전쟁에 대한 극도의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여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이쾌대는 26세에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박태준은 1925년 숭실전문학교 재학 중 ‘동무생각’을 발표했는데 그의 나이 25세였다. 시인 이상화는 21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26년 25세에 ‘개벽’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여 식민지시대의 아픔과 민족적 비극을 토로하였다. 이처럼 대구문화예술의 저변에는 20대 청춘의 고뇌와 시대적 아픔이 20대 특유의 감수성과 미의식으로 승화되어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구는 일찍이 영남선비문화의 구심점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신문화, 개화사상의 요람이었고, 6·25때는 전국에서 온 피란민들과 함께하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였다. 대구 청년들의 애국심과 정의감은 2·28을 야기하여 4·19의 도화선이 되었고 한국 민주주의의 터전을 형성하였다. 문화적으로 이인성, 이쾌대, 이상화, 박태준은 민족주의적 선각자, 한국근대 문화예술의 개척자이며 대구문화의 자존심과 저력을 대변한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지역의 청년미술을 살려야 한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5년을 버티지 못하고 청년 미술가들이 붓을 꺾고, 결국 그의 재능을 버린다. 그래도 화랑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거나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용기와 격려를 얻은 경험이 있는 경우는 포기가 적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보면 창조성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에 환멸을 느껴 독실한 기독교 모범청년이 종교와 조국을 버리고 예술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다. 오늘의 예술가들은 매우 현실적이며 인간으로서의 평범한 행복과 삶을 추구한다. 그래서 교육도 현실적으로 예술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편, 삶을 재창조하여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2월 대구 중구 봉산문화거리의 여러 갤러리에서 열린 ‘대구현대미술의 현황, 봉산새내기전’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사람의 한명으로 이 행사를 마치며 화랑과 청년작가들을 연결하는 실습프로그램, 청년작가들이 먹고살고 현실감각을 익히면서 미술가로 성장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 교육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청년미술가들에게 미술가로 살아남으라 하면 너무 가혹한 주문일 수 있다. 대학교육에서 이들이 미술을 지속할 수 있는 저력과 생업을 가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아 한다. 미술계열의 취업률이 낮으니 정원 감축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최소한 아름다운 IT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투 잡 시대를 맞이하는 능력을 교육하여 생업과 예술을 병행하는 노하우를 제시하고 이를 교육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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