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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봉성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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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열어갈 새로운 가능성을 위하여
작성자 아트코리아 | 작성일 2014/02/12 12:50 | 조회 109







 

Korean Image, Mixed Media, 135cm×305cm 1997


Korean Image, Mixed Media,50.8cm×40.6cm 1998


Korean Image, Mixed Media,50.8cm×40.6cm 1999


Korean Image, Mixed Media,79cm×55cm 1998


Korean Image, Mixed Media,135cm×305cm,1996


Korean Image, Mixed Media,142cm×262cm 1997


Korean Image, Mixed Media, 40.6cm×25.5cm 1999


Korean Image, Mixed Media, 130cm×162cm 1999

 

21세기를 열어갈 새로운 가능성을 위하여

 

어린 시절 성당의 착색된 유리창 Stained glass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아름다움에 매혹외어 빛에 대한 환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빛=색채>라는 병제로 작품에 몰두해 왔다. 화면에 전자회로를 동반한 LED(Light Emitting Diode)를 부착하고 형광안료를 칠하며 추상적 작업에 몰입하여 왔는데 1980년대의 민주화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역사적 사명, 대중과의 소통, 시대적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90년대에 와서 고층빌딩에 갇힌 현대도시인, 그들의 삶과 자유의지, 엘리베이터 안이 답답하지만 뛰어내릴 수 없는 현대적 삶의 속성과 단편을 표현해왔다. 1994년 가을 제자들과 함께 간 야외스케치,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백제문화권의 독특한 조형성을 발견하고 국제적 무대에서 나의 정체성(Identitiy), 한국인으로서의 自我 인식의 계기가 되어 한국적 이미지를 찾아 1995년부터 한국의 이미지를 작품의 주제로 하였다.

 

1983년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연화문과 고대 이집트의 연화문을 비교한 논문을 쓴 기억을 살려 발이 셋 달린 吉馬로 태양을 상징하는 三足烏, 전설의 수미산, 날개를 펼치면 원을 그리는 상상의 새 봉황을 조합하여 300호가 넘는 3미터의 대작 20점과 소품 20녀 점을 준비하였다. 나무들이 없는 캔버스천에 젯소를 여러 번 발라 화면을 다듬고 에어콤퓨레셔로 물감을 뿌리고 흘리며 강렬한 원색으로 작품을 이루며 나간다.

나무틀이 없어 작품 운반이 편리하지만 두께가 없는 그림은 벽과의 싸움에 이겨내기가 어려워 의도적으로 3미터가 넘는 큰 사이즈로 하며 강렬한 우너색을 사용한다, 강한 색상은 삶에 대한 의지와 욕마으 생명력을 의미하며 무지개는 희망과 꿈을 상징하며, 신라, 백제, 고구려의 이미지를 조합하여 21세기를 열어가는 한국적 정체성(Identitiy)을 확립한다.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하며 물감과 물의 혼합작용과 얼룩을 이용하고 락카스프레이, 한자, 색동천을 꼴라지하며 크고 단순하고 화려하게 그려나간다.

대학에 봉직한 지 지금 20년째, 교수 화가로서 작품 활동과 미술사학의 학문영역을 곡예하듯 힘겹게 병행하며 학문과 예술을 양손에 쥐고 번민하여 왔다. 1996년부터 현실정치에 입문하여 교수, 화가, 미술사학자에 새정치국민회의 대구 수성갑지구당위원장까지 맡게 되어 학문과 예술을 병행할 수 있느냐에서 교수가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아직도 그림을 그리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더욱 예술에 집착하며 작업에 임할 때에 스스로 창조가가 되어 자유를 만끽하며 위안과 휴식, 용기를 찾는다.

더욱이 이번 전시는 50년만의 정원교체에 일조하며 학자, 예술가, 교수, 지구당위원장이 강의실과 지구당을 지키며, 두 아들의 엄마로서 生의 伴侶者 鄭鎬宣 國會議員을 내조하며 자신과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기록이다. 때로는 자신을 냉소하고, 때로는 고독한 투쟁, 소리 없는 메아리를 서러워하며 예술의 정치화, 정치의 예술화를 추구하며 주변을 어떻게 설득하여왔는지를 보여주는 고뇌의 역사이다.

이제 20세기의 마지막 해애 본인의 예술 세계를 정리하고 요약하며 21세기의 방향성을 성립하고 향방을 보색하려 한다. 사대부국 4학년때 문화적 수준이 높은 부모님의 배려로 대구상공회의소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어른이 되어서 서울, 대구, 나주, 도쿄, 나가사끼, 베를린에서 전시를 가졌고 이번 개인전은 붓을 꺾지 않는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확인하는 절규요 몸부림이다. 24시간을 쪼개어 강의실과 지역의 행사장, 지역민과의 만남에 할애하지만 교정에 깊은 어둠이 드리울 때, 21세기에 꽃피울 나의 예술세계를 위하여 연구실의 등불을 밝힌다.

이번 개인전은 1995년 말 이후 최근 작품을 모아 정치의 입문이 예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스로 평가해 보려한다. 정치도 문화운동, 여성운동으로 간주하고 문화예술전문인으로서 새로운 정치의 비젼을 제시하는 사명감을 느끼며 몸을 던졌으나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와고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붓을 잡는 자신이 옳은지 판단하며 창조의 은총에 감사드린다. 항상 바쁘게 그린 작품들이라서 부Rm럽지만 평소 걱정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건강한 작품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의 애정에 깊이 감사드리며 화려한 색상과 3비터 높이의 큰 그림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報恩에 대신한다.

 

1999년 5월 朴 南 姬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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