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초월한 온라인 전시관

대구 石 鏡 李 元 東
2024/03/05 | 아트코리아 | 조회 13873 | 댓글 0

2024년 석경 이원동 전
2024년 36일(화) ~ 310일(일)


대구문화예술회관 11전시실


 

202427

202422

202401

202402

202403

202404

202405

202406

202407

202408

청맹과니가 그림을 웅얼거리다
 
 
‘과연 난蘭이 이럴 수 있는가!’ 신문사 초년 기자 시절, 퇴근 후 늘 바둑두러 들르는 찻집이 있었다. 선화禪畵를 그리는 찻집 주인과는 바둑 실력이 어금버금하여 어설픈 수담手談이지만 둘은 꽤나 열심이었다. 늦여름 해거름 찻집을 찾았는데, 주인도, 손님도 없는 찻집에는 아르바이트 학생만 무 료히 앉아 있었다.
바둑판이 놓인 대청마루로 오르는데, 처음 보는 화판畵板 하나가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대학노트 만한 일 본제 화판에는 난초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눈길을 준 순간 정수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오싹한 기분이었다. 난초 화분은 윗부분 만 드러내놓고, 거기다가 딱 석 장의 잎만 그려 놓은 그림. 담묵淡墨으로 친 매우 짧은 세 가닥 난초는 서로 휘감거나 꺾이지 않고 오히려 꼿꼿한 가운데 끝만 살짝 휘어있었다. 강건한 우리 춘란의 내뻗침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그림에는 어떠한 화제畵題도 낙관도 없었다. 짧은 식견이지만,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일품逸品으로 대번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여태 묵향이 배어나는 듯하기에 아르바이트생한테 이게 웬 건가 물 었다. 조금 전 어떤 손님이 와서 주인을 기다리다가 사람은 못 만나고 그림만 그려 놓고 갔다고 했다. 뒤늦게 나타난 찻집 주인은 그림을 그 린 사람이 ‘석경 이원동’이라고 일러줬다. 그때까지 석경은 널리 알려 진 이름이 아니어서, 내심 그림을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몇 번이나 그림을 내게 넘겨달라고 졸랐지만 그럴 적마다 찻집 주인 은 못 들은 척 해버렸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석경으로부터 ‘찻집 난초’ 이야기를 들을 기회 가 있었다. 그날 주인을 만나러 갔는데, 대청마루 구석에 화판과 몽당 붓이 놓였고, 벼루에는 먹물이 말라붙어 있더란다. 무료히 앉았다가, 찻물을 벼루에 부어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 갰단다. 그리고는 옆에 있 던 화장지를 뽑아, 물에 적셔 끝을 훑어버린 후, 먹물을 찍어 그린 것 이라고 했다.
그 이후 ‘찻집 난초’에 대한 생각은 깊어만 갔고, 그럴수록 석경의 화격을 더욱 귀히 여기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1998년, 석경은 문인 화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는 다. 그러면서도 2002년 졸저 「도자기와의 만남」을 낼 때 표지그림을 부탁하자 흔쾌히 그려주던 그 마음 씀씀이를 나는 오늘날까지 잊지 못한다. 그런 인연으로 가끔 <석경서실>에 들러 차를 얻어 마시고, 전시회가 있을 때면 찾아가 눈을 밝힌다. 틈틈이 서실을 맴돌고, 더러 화랑가를 기웃거리지만, 실은 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청맹과니나 다름없다. 다만, 묵향을 좋아하기에 오 로지 내 마음가는 것에 따라 즐길 뿐이다. 그 즐김에 있어 내 나름대로 눈여겨 보는 것은 단 세 가지. 서화가 품은 사의寫意, 화격에 있어 고졸미古拙美, 그리고 운필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이 그것이다.
 

202409

202410

202411

202412

202413

202414

202415

202416

202417

202418

202419

202420

202421

202422

202423

202424

202425

202426

202427

 
 
그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그렇다. 첫째, 사의는 ‘시는 형체 없는 그림이요, 그림은 형체 있는 시다詩是無形畵 畵是有形詩’라고 말한 옛사람의 말에 근거하여, 그림에 든 시의 뜻이 얼마나 깊이가 있는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둘째, 화격의 고졸미는 ‘대교약졸 大巧若拙’을 염두에 두고, 추사 글씨 ‘판전板殿’이나 장욱진 화백의 선화가 보여주는 졸박한 맛을 잣대로 삼는다. 셋째, 골격의 기운생 동은, 한해께 재미 조각가 한용진 선생과 울릉도를 여행할 때, 그가 거북바위가 내뿜는 ‘에너지’를 보고 예술의 요체는 ‘힘’이라면 서, 자신의 한평생 조각이 무의미하다고 통탄하던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가 말한 ‘힘’이란 것을 과연 저울로 삼을 만하다고 생 각했다. 그 이외 복잡한 화론 따위야 내가 알 바 아니다.
2월 어느 날, 석경이 전시회를 준비하는데 작품 배접이 끝났으니 구경 한번 나오라고 했다. 비록 눈은 어둡지만, 그 흔치 않은 초 대가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서실을 들어서면서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매난국죽 사군자 넉 점에 압도당 하고 말았다. 석경은 이번 전시회는 문인화 본연을 새롭게 가다듬는다는 의미에서 채색을 지양하고 묵화 위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탁자 위에 넘기면서 본 풍죽風竹과 하엽荷葉, 삼우三友, 추국秋菊은 가히 내가 말할 바가 못 되었다. 한 점 한 점 활달한 필치 와 어우러진 농담, 뻗침과 구름(轉)의 조화로 볼만한 경지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한향寒香」이라는 고매高梅 한 점이 눈 앞 에 펼쳐지는 순간 나는 이마의 신경절이 찌르르하며 근육이 쪼그라드는 참으로 기이한 희열을 맛봤다.
석경 화업畵題 50년을 맞아 하나의 큰 마디를 이루는 이번 전시회, 많은 사람들이 이마에 소름이 돋는 그런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석경을 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더 욕심을 낸다면 그렇다. 한·중·일 동양 3국에서 유독 한국의 묵화 가 폄하되는 이 마당에 ‘석경 한 사람으로 하여 3국이 나란하다’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년의 석경, 무애자재無碍自在 경지에서 노닐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묵향과 함께한 인고의 50년 위업에 축하를 보탠다.
청맹과니가 그림을 두고 웅얼거리니 우습다.
전 충 진 (논픽션 작가, 전 매일신문 독도상주기자)
 

202428

202429

202430

202431

202432

202433

202434

202435

202436

202437

202438

202439

202440

202441

202442

202443

202444

202445

202446

202447

202448

202449

202450

202451

202452

202453


방명록 남기기
작성자 :     비밀번호 : 자동등록방지(숫자)
댓글목록 0개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십시오
답글쓰기
작성자 :     비밀번호 : 자동등록방지(숫자)
작품판매
僧舞
강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