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5    업데이트: 25-04-10 13:55

칼럼

[여성칼럼] 이별, 그리고 시작
관리자 | 조회 18
새벽에 본 자동차와
낙엽의 조화 아름다워
생각지 못했던 행복
일상서도 찾을 수 있어
조금만 생각 바꾸면 돼



자다가 밤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추위를 몰고 오는 겨울비입니다. 다시 잠들지 못하고 이리 저리 몸 뒤척이다 일어나 아침 공기를 쐬려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어슴푸레한 가운데 비에 젖은 노란 빛깔의 낙엽이 빨간 자동차 주변에 떨어져있었습니다. 자동차와 낙엽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아침 식사를 하고 새벽에 본 정경이 떠올라 창밖을 보니 이미 빨간 자동차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무심코 바라보던 풍경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모습을 보았던 겁니다. 벌써 12월입니다. 어제 그제와 달리 공기가 싸늘합니다. 달력을 다 넘기고 마지막 장이 펼쳐져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언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쉬움이란 이별의 정한(情恨) 같은 것이고, 아쉬움에는 서운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올해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많았습니다. 온 국민은 큰 사고로 인해 모두 슬퍼하고 아파했습니다. 그 슬픔을 아직도 앓고 있습니다. 한동안 온 국민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지요. 너무나 큰 슬픔 앞에서 각자 개인적인 슬픔은 내놓고 슬퍼할 수도 아파할 수도 울 수도 없었지요. 잘못이 없어도 기존 세대라는 것만으로도 젊은 세대에게 죄인처럼 미안했지요. 그러나 그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예전처럼 울고 웃으며 지냈지요. 세월호, 진도, 팽목항 그런 말들이 우리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잊히고 있지요. 저도 제 일로 분주해 깜박깜박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사건은 우리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슬픔과 고통에 투사된 에너지를 응집시켜 새롭고 창조적인 에너지로 키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로 인해 희생된 자들을 위해 할 일도 많고,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추모비도 세워야 하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사회 전반에 안전점검도 꾸준히 실시해야 합니다. 떠나간 그들이 못다 한 것을 대신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고 그들의 몫까지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슬퍼하고 애통해할 수만은 없지요. 떠나간 이들도 사랑하던 이들이 언제까지나 슬피 울고 있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겁니다. 일상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하길 바랄 것입니다.

애도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그 상실에 대한 심리적 태도와 그것을 소화해내는 과정입니다. 대상에게 가있던 사랑의 감정을 다른 곳으로 돌려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애도의 한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가있던 감정을 쉬 거두어들이지 못해 애도가 길어지면 병리적인 증상인 우울증을 유발하게 됩니다. 온 국민이 우울증에 빠져들게 할 수는 없지요.

첫새벽에 무심코 바라보던 낙엽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느끼지 못했던 것,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한 친구는 낙엽을 주워 책상 위에 수북이 올려두고 부자가 된 것 같다며 흐뭇해 했습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가야 할 길은 먼데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 멀리 가물거리는 불빛에 발걸음을 멈추고 그 빛줄기를 바라봅니다. 여전히 길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불빛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이 해가 가고나면 모든 길이 새롭게 열리고, 모든 어둠 지워내고 환하게 트이기를 빌어봅니다. 새해 떠오르는 해는 더 밝고 환하게 우리의 길을 비춰줄 것입니다.
박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