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5    업데이트: 25-04-10 13:55

칼럼

[여성칼럼] 풀 예찬
관리자 | 조회 18

풀의 강인한 생명력은 민초들의 삶을 대변해
풀은 지구의 아픈 땅을 치유해 살려내는 힘줄···우리의 삶도 풀 닮아야



추석 전에 벌초를 하러 산소에 가 보았다. 풀이 지천이다. 풀은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며 빠른 속도로 번져나간다. 뽑고 베어내도 풀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질 못하니 농부들은 불청객인 풀과의 전쟁에 진저리를 친다.

예부터 풀의 강인한 생명력은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기에 그림이나 시의 소재가 되었다. 봄만 되면 심은 이 없어도 지천으로 돋아나는 풀을 보고 자연의 섭리를 말하고, 쉬이 자라고 가을 서리에 맥없이 저버리는 것에서 인생의 덧없음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풀 한 포기가 오염된 땅을 치료하고 지구를 들어 올린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빌딩 공사 하느라 마구 파헤쳐놓은 땅에 풀이 돋아 번지고 있다/ 풀이 땅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 지구의 아픈 땅을 살리느라 몸이 전부 검푸른 힘줄로 바뀐 풀/ 사람들은 땅을 시멘트로 덮고 있지만, 그 틈새에서 풀은 지구를 우주궤도에 맞춰 파랗게 들어 올린다/ 우리가 때로 아픈 눈길 풀어 놓는 곳/ 한 포기 우주의 풀인 별이 돋듯/ 풀이 자란다/ 한 포기 지구가 꽃 핀다”고 배한봉 시인은 ‘때로 아픈 우리가’에서 풀을 노래했다.

시인은 땅에서 무수히 돋아나는 풀이 “땅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며, 검푸른 줄기를 뻗어나가는 풀의 생명력이 바로 지구의 아픈 땅을 치유해 살려내는 힘줄이라 한다. 시멘트를 덮고 아스팔트를 깔아도 금간 틈새로 풀들은 돋아난다. 시인은 저 밤하늘에 별이 돋듯 풀 한 포기도 그렇게 돋아난다고 보았으며, 풀 한 포기를 밤하늘의 별과 같은 동급으로 놓고 풀 한 포기에서 지구 한 포기로 시상(詩想)을 넓혀나갔다. 나도 여기저기 돋아난 풀이 지구를 파랗게 들어올리고, 별이 돋듯 풀이 자란다는 시인의 생각을 따라가본다.

풀 한 포기가 지구를 들어 올린다고 하니 판야나무(스펑나무)의 씨앗이 탑이나 지붕에 내려앉아 싹을 틔우고 자라 탑을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단단한 판야나무 뿌리는 사원을 파괴하는 동시에 건축물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판야나무의 씨앗이 탑에 내려 앉아 뿌리내리고, 나무가 자라면서 탑이 판야나무에 기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암으로 된 탑이 무너지는 것을 판야나무가 뿌리로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판야나무가 없었다면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모래로 변해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풀은 생명력이 강해서 가는 실뿌리가 2m나 뻗어나간다. 뿌리가 땅 속을 파고들어 박테리아와 벌레들을 불러 모아 땅을 정화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가는 실뿌리가 저수지의 둑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 시멘트 건물 틈새를 비집고 자라는 풀이 점점 더 틈새를 넓혀가는 것처럼 말이다. 연약해 보이는 풀이지만 벽돌담이나 아스팔트 틈을 뚫고 오른다. 사람들이 지구에 저질러 놓은 수많은 시멘트벽이나 벽돌담 쓰레기를 풀들이 정화시켜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에도 이따금 청하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온다. 그것은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풀처럼 우리의 삶을 꿋꿋하게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들판의 풀도 농부에게는 불청객이지만 지구가 풀로 인해 치유받고 지구가 한 포기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니, 한갓 이름 없는 풀도 소중하다. 꽃이라고 여기고 너를 바라보면 내가 꽃이 되고 네가 풀이라고 여기면 내가 풀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지구상에서 멸종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체가 속출하는 것은 인간도 지구상에서 언젠가는 멸종하게 된다는 증거이리라. 자연의 질서는 인간 세상의 질서 그 이상이다. 지구는 인간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모든 동식물이 지구에서 숨쉬며 살아갈 권리가 있으니 비록 하찮은 잡초일지라도 발 뻗고 머리 둘 곳이 있게 마련이다. 박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