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비 좋아해
비에서 나는 냄새 좋아
빗소리를 그리워하는 것
어머니 뱃속에서 듣던
익숙한 소리이기 때문인 듯
마른장마라기에 비 좀 왔으면 했더니 연거푸 비를 몰고 와 흠뻑 적시고 갔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어도 종종 대구를 비껴간다. 비구름이 대구를 지나 갈 때면 발걸음이 빨라진다고 한다. 우스갯말로 대구 가까이 오면 구름이 돌아가거나 냅다 도망간다는 것이다. 대구 사람의 기질이 강해서 무서워서 그런다나. 웃자고 해본 말이다.
후드득거리며 바람의 발소리처럼 비가 창을 두드린다. 비가 내리면 시간도 내려앉는 것 같다.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빗소리와 비 냄새에 둔해졌다. 집안에 있으면 비가 오는지 모를 때가 있다. 창 밖을 보고서야 비 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서운한지 모른다. 빗소리를 듣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비 올 때 나는 비의 냄새를 놓쳐버려서이다. 빗방울이 탁하고 흙을 적실 때 나는 냄새는 후각을 자극한다. 그 냄새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리운 것들니 뱃속에서 듣던 익숙한 소리이기 때문인가 보다. 빗소리는 인간 존재의 밑바닥에 근원을 두고 있어서 편안하게 들리나 보다.
보도블록 틈으로 지렁이가 기어 나오거나 개미가 이동하면 비올 기미라고 한다. 또 제비가 땅 가까이 날면 비가 올 징조라 한다. 곤충이 몸을 숨기기 때문에 새는 먹이를 찾기 위해 낮게 난다. 요즈음 사람들은 도시의 매연과 각종 오염된 물질에서 나는 냄새로 후각이 마비되어서 냄새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예전 사람들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비의 냄새를 맡고 비가 올 조짐을 알았다고 한다. 바람에서 신선하고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는 것이다.
비의 냄새를 페트리커 냄새라고 한다. 흙에 섞여있는 각종 물질이 내뿜는 냄새다. 일부 식물은 건기 때 기름을 분비하는데 이 기름은 종자를 보호하면서 건기를 견뎌내는 전략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름이 주변 흙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때 나는 각종 화합물이 공기 중에 떠다니기도 한다. 또한 흙 속에는 박테리아가 만들어 내는 ‘지오스민’ 이라는 혼합물질이 있다. 박테리아가 포자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이런 물질들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 다른 화합물질에 섞여 향긋한 페트리커 냄새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비는 풍요와 축복, 삶의 생동감과 사랑의 운우지정(雲雨之情)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죽음이나 고독으로 빗대어져 시인들이 노래하기도 한다. 비는 적절할 때는 풍요와 생명을 가져다주지만 넘쳐날 때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휩쓸어 버리니 파괴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비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릴 적에 비가 오면 좋아서 “비야 비야 오너라” 흥얼거리며 마당을 맴돌았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비를 맞지 말라고 성화였지만 비 냄새를 맡으며 마당을 뛰어 다녔다. 갑자기 비가 오면 아주까리 커다란 잎을 꺾어 머리에 쓰고 놀았던 기억도 난다. 또 장마가 오래 계속 되면 나가 놀지 못하고, 어머니가 볶아주신 콩을 먹으며 처마 끝에 앉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처마 끝에 제비처럼 앉아 부른 노래가 떠올라 흥얼거려 보았다. 첫 구절만 맴돌아 가사를 찾아보았다.
“비야 비야 비야 오지말아라/우리 언니 시집간단다/비야 비야 비야 오지말아라/장마비야 오지 말아라/꽃가마에 비 뿌리면 다홍치마 얼룩진다/연지곤지 예쁜 얼굴 빗물에 다 젖는다/비야 비야 비야 오지 말아라/우리언니 시집간단다” 아련하니 노랫말에 젖어 본다.
빗소리는 흐르는 소리이고 길 떠나는 소리이고 내 몸속에서도 꾸르륵거리며 강물처럼 흐르는 소리이다. 빗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내 속의 강물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