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51    업데이트: 24-07-15 14:21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54>대장부를 알아본 지혜와 대담한 용기를 지닌 홍불
아트코리아 | 조회 13
미술사 연구자


이재관((1783∼1838?), '여선도(女仙圖)', 종이에 담채, 139.4×66.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말기 소당 이재관의 작품 '여선도'다. 위쪽 여백에 있는 두 편의 제화시는 조희룡과 강진이 지었다. 시를 보면 활시위를 당기며 호쾌하게 말을 달리는 이 아리따운 여성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경장운묘어장풍(輕裝雲渺御長風)/ 가벼운 옷차림으로 아득한 구름처럼 바람을 거느렸는데

검기주광쟁일홍(劍氣珠光爭日紅)/ 칼날의 광채와 구슬 빛이 붉은 해와 다투네

교목녹라숙인재(喬木綠蘿宿因在)/ 교목(喬木)과 녹라(綠蘿)는 숙세의 인연이 있어

아미척안도영웅(娥媚隻眼到英雄)/ 미인의 척안(隻眼)이 영웅에게 이르렀네

약마명현추초중(躍馬鳴弦秋草中)/ 가을 풀 사이로 말달리며 활시위 울리니

가인장속극호웅(佳人裝束極豪雄)/ 미인의 동여맨 옷맵시 영웅의 호기를 다하네

월명심원삼생약(月明深院三生約)/ 달 밝은 밤 깊은 장원에서 삼생을 약속하며

불부당당월국공(不負堂堂越國公)/ 월국공 양소에게 당당히 맞섰네

시에서 노래한 여성은 수나라와 당나라 교체기에 전쟁터를 누볐던 여성 협객 홍불(紅拂)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었던 '태평광기'에 나오는 소설 '규염객(虯髥客)'의 여주인공이다. 홍불은 수나라 고관인 월국공 양소의 가기(家妓)였다. 붉은 불자(拂子)를 들고 있어서 '홍불'로 불렸다. 양소를 찾아온 이정의 비범함을 한 눈에 알아본 홍불은 그날 밤 몰래 이정을 찾아가 자신은 넝쿨(녹라)과 같아 큰 나무(교목)에 의지하려한다며 함께 도망쳤다. 홍불야분(紅拂夜奔), "홍불이 야반도주하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이후 규염객을 만나 부자가 된 홍불과 이정은 훗날 당나라 태종이 되는 이세민의 대업을 돕는다. 홍불은 대장부를 알아보는 척안(隻眼), 곧 두 눈 위의 정수리에 있다고 해 정문안(頂門眼)이라고 한 심안(心眼)의 지혜에 더해 의지할 남성과 야반도주한 담대함을 아울러 지닌 여성이었다.

그림 속 홍불의 비껴 멘 화살 통엔 아직 세 발이 남았고, 무릎 앞에는 화사한 활집이 있다. 풍성한 긴 머리는 꽃장식한 끈으로 묶어 올렸고, 긴 겉옷은 가슴께에서 띠로 묶었다. 넓은 소매와 바짓가랑이 또한 살짝 묶어 활동성을 높였다. 그래서 시에 가벼운 옷차림 '경장(輕裝)', 동여맨 옷맵시 '장속(裝束)'이라고 했다. 모피로 장식한 말안장과 붉은 말갖춤 또한 화려하다. 말은 흰점박이 무늬가 있는 은은한 회색빛이다.

당당한 여협이 주인공인 이재관의 '여선도'는 여사(女史)로 불렸던 시서화에 능한 기생이 회화의 감상자이자 수요자로 등장하며 문화적 발언권을 가졌던 19세기의 사회 환경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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