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63    업데이트: 24-10-14 11:53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66>동쪽 울 아래 국화를 따다 멀리 남쪽 산을 바라보네
아트코리아 | 조회 10
미술사 연구자


정선(1676-1759), '동리채국(東籬採菊)', 종이에 담채, 21.9×5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 뿐 아니라 그림으로 보는 위인전인 고사인물화도 많이 그렸다. 도연명도만 해도 여러 점이다. 도연명의 위인다움은 무엇일까?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삶의 태도일 것 같다. 도연명은 번듯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시골농부로 살며 자신의 일상을 글로 남겼다.

가난과 노동 속에서 무명(無名)을 견디며 살았던 그의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아 도연명은 불후의 은자가 됐다. 피세은신(避世隱身)한 도연명의 귀향, 귀촌의 삶과 시문은 그런 결단을 꿈꾸거나 또는 실행한 지식인들에게 정신적 위안이 됐고 그의 생애와 문학은 그림으로 기념됐다.

'동리채국'은 도연명의 시구에서 착안했다. 울타리 앞 소나무 아래 앉은 도연명이 멀리 여백 속에 떠 있는 앞산을 바라본다. 주위에 노랗고 붉은 꽃들이 피었고 바로 앞에도 꽃가지가 있다. "동쪽 울에서 국화를 딴다"라고 써놓았듯 이 꽃은 국화다. 청색과 녹색을 활발하게 사용하며 꽃과 옷, 술그릇 등을 청신한 색감으로 오밀조밀하게 칠했다.

이 그림은 도연명이 술에 취해서 쓴 시를 모아놓은 '음주(飮酒)' 20수 중 5번째 시의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에서 나왔다. 너무도 유명한 시다.

결려재인경(結廬在人境) 오두막을 짓고 사람들 속에 살아도

이무거마훤(而無車馬喧) 수레와 말 다니는 시끄러운 소리 없네

문군하능이(問君何能爾)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대에게 물으니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 마음이 멀면 사는 곳이 절로 외지다하네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동쪽 울 아래 국화를 따다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멀리 남쪽 산을 바라보네

산기일석가(山氣日夕佳) 산기(山氣)는 해 저녁에 아름답고

비조상여환(飛鳥相與還) 나는 새는 서로 더불어 돌아오네

차중유진의(此中有眞意) 이 가운데 참뜻이 있으나

욕변이망언(欲辨已忘言) 말하려 해도 이미 말을 잊었네

도연명의 시인 도시(陶詩)에 운(韻)을 맞춰 화도시(和陶詩)를 짓는 일은 도연명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화도시를 많이 지었다. 도시를 읽고 재창작하는 과정을 통해 그의 삶과 문학에 감정을 이입하는 일과 마찬가지인 행위가 도연명을 주인공으로 한 고사인물화 감상이다.

정선이 도연명도를 여러 점 남긴 것은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도연명이 실천한 직장 그만두기, 시골로 떠나기는 조선시대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실행하거나 꿈꾸는 삶의 한 방식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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