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는 나의 시집 [가설극장 커튼콜]
시인은 하늘과 땅 가꾸는 모든 사람과 사물의 울음, 대신 울어주는 곡비인가
1.
한 삼십년 가까이 인터넷으로 시마을, 포엠토피아, 포엠스쿨 정 숙반, 대구문학아카데미, 여러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현대시 강의를 했고 요즘은 범어커뮤니티센터 또는 용학도서관에서 재능기부로 시를 가르치면서 얻은 결론은 시는 체험을 직관과 사유 여러 가지 형태로 묘사하면서 뭔가 깨달음을 주어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시들은 체험을 재생적 상상력으로 묘사하여 진정성 있고 안정되긴 하지만 시적인 긴장미나 신선감이 없고 어떤 시들은 너무 과다한 상상력으로 감각적이고 서구적인 묘사에만 치중해서 공감이나 감동 없이 마무리 되는 시들이 많다.
이런 시점에서 필자는 신선한 연상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발한 은유와 깨달음에 발견을 더해 누구와 닮지 않은 정 숙만의 시를 쓰고 싶어 늘 직관력 훈련과 이미지, 그리고 사유의 폭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가스라이팅하듯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그가 짜증나던 날 문득 그는 내 등의 때를 밀어주고 있는 때밀이 수건으로 보인다고 하면 그는 또 마누라가 너무 멀리 가있다고 투덜거리겠지? 서로 꾸짖고 야유하는 것 같지만 그 뒷면엔 서로간의 믿음과 사랑이 표현되고 있으니 결국 현대시는 사랑, 그리움, 슬픔이란 단어 쓰지 않고 어떻게 더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그림을 잘 그리느냐, 그러려면 멋진 비유의 연상 상상력과 깊이 있는 사유와 밀당을 잘해야 잘근잘근 씹는 맛있는 시가 나오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끈님은 멀리 있어 달달 쌉싸래하고, 때밀어준다며
갈수록 까칠해지는 인연이다 그래도 묵은 정 버릴 수 없다
소 심줄보다 더 끈끈하고 질겨
저승에서도 꼭 만나야 한다
난소, 자궁, 유방, 위장
간까지 장기 몇 떼어내면서 빈궁마마 되어도
번갯불에 콩 구워 나누어 먹거나
파도 심한 물결 헤치며 같이 허우적거려야한다
-때밀이 수건 전문
깨달음이나 감동을 주려면 사유가 깊어야 한다.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이를 갈아라, 삽질을 더 많이 하라’ 이다. 그래야 깊이 있는 글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삼천포로 빠져라’이다. 비약을 말하는 것이다. 시가 첨부터 결과가 같아 뻔하면 재미가 없다. 첫 구절 읽고 답을 알아버리면 더 읽을 필요도 없으니 마지막 결론은 완전히 다른 역전의 핵심이 있어야 한다. 시인도 결국 스토리 텔러 같아서 드라마나 소설처럼 구성에 반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알맹이 있는 시를 쓰려 노력은 하지만 맘대로 되지는 않고 그래도 낭송가들이 필자의 시로 낭송하는 것을 좋아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첫 시집 신 처용가는 시극과 마당극으로, ‘흰 소의 울음 징채를 찾아’와 ‘풋울음 잡다’로 시극 공연을 하고 ‘우포늪에서’란 시는 많은 낭송가들이 기꺼이 낭송하고 있다는 소식에 우쭐하기보다 내 시가 징 제작에서 풋울음 잡는 참된 징수가 두드리는 재울음, 징한 울림의 징소리가 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내 시는 서구적인 묘사로 언어유희 같은 얕은 시가 아닌 한이 어우러진 한국적인 정서의 징한 울림이 있는 시가 되길 원한다. 시건방을 떨고 고개를 드니 한 방송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자글자글 다 시든 할미꽃이라며 그러나 씨받고 열매 맺고 할 일을 다 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 말씀이 바로 은유며 묘사라는 걸 할아버지는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이처럼 시는 우리 주변과 일상에 늘려있는 것이다. 김광석 거리 능소화 폭포를 처음 보던 날 소설가가 되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감각적인 스토리텔링을 한 작품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사실 소설가를 꿈꾸다가 시인이 된 것도 시 한 편으로 소설보다 더 깊은 이야기로 감명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긴 글을 쓰기 싫어 게으른 자의 변명이기도 하지만
겉절이 같은 내 풋사랑
하얀 백합으로 피어나나 싶더니
아버지, 한 마리 용으로 날아올라
화르르, 화르르르 불 내뿜던
첫사랑 무너져 내리던
그 날 화들짝 피어난 저 불꽃 뒤
내 눈물폭포 숨어 흐느끼는 소리 소리들
김광석 거리 높은 벽 위에서
흘러내리고 있네
-능소화 폭포 전문
2.한 차원 더 높은 세계를 향하여 늘 눈을 먼 곳으로 돌렸지만 막상 시는 한 마디로 체험인 것이다.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이 암환자라는 걸 알고 방사선 치료에 항암 주사에 요양병원에 격리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죄 많이 지어 날벼락 맞은 듯 남에게 하소연하기도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쯤에서 던진 돌멩이인가? 코스모스 들판 건너 언덕에 종일 앉아 기다리다 ‘사랑합니다’ 쪽지 준 뒤 감나무에 목 맨 머슴애가 밤하늘에서 보낸 짝사랑 운석인가? 꿈이 소복의 친정엄마 자꾸 보여주더니, 가슴 겨드랑이에 알맹이 들어 있다고 내 무딘 손가락이 짚어 보이더니, 이른 봄부터 시간 펌프질하며 잠시 눈 돌릴 여가 없이 살아왔는데 가을 갈맷빛 개나리 이파리들 시어머니 오지랖에 고깃국 쏟은 며느리 되어 안절부절이다
-별똥별에 관한 보고서1 전문
부끄럽다 죄될까 그토록 꽁꽁 싸매었었는데 대숲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젖가슴에 마구 칼질 후, 젊디젊은 의들이 빨강 파랑 그림 그린다 통닭을 방사능으로 지지고 굽는다. 두어 시간 누워 맞은 항암 약은 적응하느라 구토 일으키는데 먹기는 먹어야 하고 허기 참느라 온 산 헤매다 겨우 복숭아 몇 개로 채우는 이도 있다
-별똥별에 관한 보고서2 전문
첫 알약 몇 알에 툭, 툭,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 울음 죽이며 빡빡 밀어버려야 하는 파르란 입술, 온 전신이 수치스런 부분 가릴 수 있는 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야 대낮 하늘이 저 구름처럼 맘대로 그림 그리고 뻔뻔 떨 수 있지, 끝내 검게 탄 손톱 발톱도 빠진다는데 핏줄은 자꾸 몸 안으로 숨으면서 무서워! 무서워, 주사바늘이 무서워! 간호사가 팔뚝 다리 다 찰싹 때려가며 찾아도 핏줄이 없어 겨우 발등에서 찾으면, 다른 환자까지 만세! 부르며 환호한다. 그래도 못 찾으면 목에 구멍 뚫어 바늘 꽂아야 한다
-별똥별에 관한 보고서 3 전문
왜? 하필 왜 내가, 무너진 자존심 서러워 울음 삼킨다 자면서도 모자 꼭꼭 눌러 쓴다 식당엔 온통 맨 머리 스님들이시다 생의 패배자처럼 숨어 구름 부러워하는 사람들, 쉼 없이 뒤따라오는 발자국 소리에 쫓기면서 밤낮 모자님 모셔야한다
-별똥별에 관한 보고서 4 전문
한세상 산다는 것은 무수히 짓밟히고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일인데 그 수많은 아픔과 슬픔, 좌절과 시련 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홀로 몸부림치며 스스로 자학하다가 어떤 이는 자살로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폭의 수묵화처럼 용서하고 자책하면서 그 고통을 끌어안고 시로 승화시켜 새로운 세상 얻으려 꿈꾸는 이들이 바로 시인이지. 물론 그 노력 끝에도 절망과 좌절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꿈이란 끈 하나 잡고 살아가는 일 그 자체가 시인들에겐 큰 선물이고 상 아닌가?
그러나 운명적으로 신 내림 굿 받은 시인은 괴롭다. 시인이 곡비인 줄 아는 모든 미물들까지 제 한 풀어달라고 손을 내미니까. 마음은 약해 한번 잡은 손 떨쳐버릴 수 없고 아예 그들의 아픈 얘기를 화두삼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 시어 너덜너덜 헤질 때까지 풋울음 잡기 위해 징을 치며 파헤치며 물어뜯는 습성을 버릴 수 없어 필자의 작품 전체가 거의 연작시다.
시란 변덕이 심해서 그런지 ‘시는 사람이다’ 말 끝나기도 전 벌써 ‘아니다 시는 짐승이다’라는 생각에 물리게 된다. 그런 곰 같은 미련으로 신처용가 라는 연작시를 소설 쓰는 기분으로 쓰고 그것을 극본으로 시극을 연출하고, 공연하기도 한다. 연꽃이란 사물 하나만으로 시집 한 권을 엮을 수 있도록 그 진흙탕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미련 곰탱이는 어릴 때부터 제 별명이니 억울하지도 않다. 꾀가 없어 수족이 괴롭긴 하지만 요즘은 그림물감에 빠져가며 그렇게 쉬엄쉬엄 산을 오르고 있는 중이다. 참된 징 잡이가 되어 빨리 산 정상에 올라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면 꽃도 바로 보이고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 때부터 긴장이 무너져 살맛이 조금 사라지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하며
3. 시집살이가 긴장의 연속이듯 시 또한 긴장미를 더 하기 위해 압축하여 한 줄의 시도 쓰고 있다. 요즘 삼행시 사행시 오행시 디카시로 쓴다고 함축미를 자랑 하지만 무엇보다 시는 씹는 맛도 있어야 한다.
21세기 최신형 인공지능기도 따라올 수 없는 충실한 노예, 그 충성심 눈물겨워라!
-손 [전문]
구름이 하늘에 멋들어지게 꽃 피우듯 한 순간 바람의 깃털에 찔려 숲 속으로 쿵, 넘어지는 설해목 여린 등걸을 쓰담, 쓰담 어루만져 주는 손이 있다
-쓰담보살 [전문]
실없는 걱정까지 하면서 그 어설픈 신기神氣 든 징수의 눈은 매서운 눈매로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관찰해야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시비를 걸어 뭔가 발견하고 깨달아야한다는 사명감으로 골목을 지키고 서 있지만 사실은 많은 사건들을 놓쳐 며칠 전 갓 피어난 장미 꽃송이 꺾어간 범인, 아직도 잡지 못하고 있다. 그 범인이 만약 바람이라면 어느 날, 어떤 바람인지, 어떻게, 왜, 가녀린 꽃잎 찢어발겼는지 야무지게 지키지 못해 늘 죄송할 따름이다.
혹시 몽유병자처럼 자신이 그 꽃잎 찢어놓고 모르는 지도 알 수 없지. 그래서 시간에 바람에 밀려 흐르기만 하는 낙동강 물줄기, 그 물결 속 뒤적뒤적 살아온 뒤안길 뒤적이며 제 삶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였는가 그 무게 저울에 달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가을 숲 언저리에 시간과 사랑의 민낯 있다 어둠의 벽에 갇힌 짐승이라 울부짖으면서도
복사꽃 환한 꿈속인 줄 착각한다 목이 너무 길다 거친 등걸에 자꾸 채찍질하여 살구꽃이라도 한 송이 피워내길 기다린다 암세포도 꽃이라 우기고 있는 시인아, 시인아!
-복사꽃 환한 [전문]
솔직히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시집을 일곱 번째 펴내도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단지 그 사유의 깊이가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정신적 기둥이란 사실은 알고 있다. 그 심화된 내면이 남에게 천대받지 않게 모시 두루마기 자존심 구겨지지 않도록 빠닥빠닥 풀 먹여 밤새 다듬이질 하고 있다. 바람의 방향 따라 순응하기보다 매 순간 반역을 꿈꾸다 남의 눈총에 지쳐 쓰러질지라도 연어의 고집처럼 물결 거슬러 올라가는 길 찾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노파심은 내 시의 해학과 반발심이 오히려 사람을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생명 근원의 길 찾아가려면 들꽃 속 천근만근의 허무와 고독 그 깨달음의 깊이를 찾아내도록 직관력의 삽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시도 그림도 시간을 붙잡기 위한 호작질이지만 처용무가 누굴 위해 기도하는지 처용아내의 내연남은 누구인지 그들의 외간 현장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4. 큰 소리쳤지만 2025년 여덟 번째 시집 [가설극장 커튼콜] 앞부분 ‘시인의 말’ 살펴보면 여든을 바라보는 필자의 사유와 깨달음, 삶의 무게가 가장 진솔하게 잘 나타나 있어 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산다는 게 무대 위에서 한바탕 연기하는 것 같은 삶의 모습 그리고 곧 퇴장을 위해 무대를 내려가야 하는 즉 저 세상으로 떠나야하는 인간의 서글픈 한 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의 8번째 시집 [가설무대 커튼콜]을 세상에 내어보낸다. 한 세상 살다보니 변방의, 그것도 가설무대에서 한 마당 놀음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땅 속 뿌리가 어둠을 먹고 키운 고독이, 죽고 싶도록 휘휘해지면 그땐 지독한 슬픔이 웃는다. 하, 하, 하 미친 듯 웃으며 커튼콜로 시의 밥상 차렸으니 흠향歆饗하시라.‘
-시인의 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세상 산다는 것은 무수히 짓밟히고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일인데 한 폭의 수묵화처럼 용서하고 자책하면서 그 고통을 끌어안고 시로 승화시키려, 새로운 세상 얻으려 꿈꾸는 이들을 찾아보았다.
홍쌍리 매화농원에 서 보면 힘이 보인다
긴긴 그리움의 꼬리 산등성이마다
홍매 흑매 청매 수양매 백매 향 흩뿌린다
각자 빛깔의 망토 걸친 투우사들
눈바람과 싸워 이기는 길 찾는다
“사람이 그립고 외로워서 매화나무 심었어요”*
억센 갈쿠리 손과 목소리로
호령하는 여전사 모습 보여준다
봄날이 명시 한 편 펼쳐놓은 산비탈에서
자신의 생 뒤돌아보며
병실 바깥 밤하늘 밝히는 별들
미친 듯 채색하는 나를 보고 있다
*홍쌍리 여사의 말
-봄날, 명시 한 편에 젖어들다
홍쌍리 여사의 매화농원에서 절망과 좌절이 오히려 여전사와 투우사로 보이는 시안과 직관력, 상상력이 그리고 그 다음 시 ‘뜨개질’에서 인생살이와 울림이 큰 시를 남길 수 있으려면 코 빠뜨리지 말고 생을, 시간을 촘촘히 잘 엮어가야 한다는 억지에 아, 맞다, 맞다 손뼉을 칠 수 있다면 정말 큰 성공 아니겠는가?
봄바람이 자두 꽃 이파리 날리 듯
시나브로 시간 씹으면서
코 빠뜨리지 않으려 한 생 촘, 촘 엮어간다
늪 속 오동나무 가지 끝 흔들던
인생살이 무슨 색, 어느 꽃 짜 넣어야
무지개 색 무늬 남길 수 있을까
다 늦은 밤, 시간이명에 쫒기며
이 가설무대 끝날 때까지
울림이 큰 시, 조끼 한 벌 완성할 수 있을지
-뜨개질 [가설무대 16]
요즘 시가 묘사라는 상상력의 늪에 빠져 자칫 놓치기 쉬운 진정성은 삶의 체험과 사유에서 우러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늘 먼눈 살피던 눈길은 이제 제 주위만 살피며 이미 지나간 일들의 잘 잘못 따지며 반성한다. 그러다보니 친정엄마가 근 백년 1세기 동안의 산 역사의 인물이니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사변 그 회오리바람 속 어머니 당신의 체험을 글로 써보려다가 그만 둔 얘길 들으면서 대화 상대가 없어 외롭던 어머님, 즐거이 당신의 고통과 추억 상자를 열어 보인다. 강물이 겉으론 유유히 흐르는 것 같지만 밟히며 쓰러지며 때론 격하게 파도치며 따지며 용서하며 죽을 고비 굽이굽이 흘러온 여전사의 무용담 속엔 온갖 눈물과 회한, 그 당시 기막힌 사회상이 녹아들어 있기도 한다. 시인은 때론 구질해보이기도 한 넋두리와 숙명적으로 자기만의 한을 풀어내는 기발하고 독특한 메타포, 은유의 시론을 이 가설무대에서 떠나기 전 찾아야 한다.
너는 날 세운 가시로 바람의 간이 짠지 싱거운지
빗물의 체온도 재어 맛보고 햇살의 심장 뜨거운 부분
찔러 깊은 통증에 나른하게 젖어도 보고 붉은 꽃송이
피워 색으로 향기로 품었다 뱉었다가 색정 증 굴레
벗어나지 못하는 시인처럼 미, 투의 달인이 되어야만
하는 숙명인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것은
시는 나만의 색과 향이 배어있는
어둠의 자궁이 있기 때문
-장미나무 전문
그래, 그렇지 시는 나만의 색과 향이 배어있는 어둠의 자궁이 있기 때문에 필자는 그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어둠도 자궁도 내 시의 근원지이고 생의 터전 아니겠는가? 그 역한 항암주사 견디며 살기 위해 억지로 먹어야 한다. 내 생의 타이어에 구멍이 난 지 오래되어 바람은 빠지고 있고 더 이상 바람을 불어넣을 힘도 없으니 가설무대에서 퇴장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단지 마지막 소원은 여지껏 버티고 온 내 삶의 징소리가 어설픈 풋울음 아닌 완성도 높은 재울음이 되길 기도할 뿐이다.
시는 날 것이라야 하는가? 길 없는 길에서
굶주린 얼음산 표범이 겨우 찾아낸 먹이처럼
핏물이 맑고 선명한 맨날 그런 염불이나 하다가
제 몸이 누구에게 먹히고 있는 줄 모르고
헛구역질 배는 고프고
누구는 여섯 번 끝나는 항암주사
열 네 번씩이나 왜? 먼 곳까지 찾아와
밥 한 그릇 마주하는 이들
정이 눈물겹다
-날생선 회 먹으며 전문
서산 붉게 물들도록
바람 불어 넣느라 어질어질했었는데
분명, 언제부턴가 구멍 나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어야만 했나?
어머니 생이 무대 위에서
춤출 기한에 쫒기고 있다는 걸 아는
그녀 타이어 참으로 매몰차게
슬쩍슬쩍 목숨바람 빼버리고 있는데
시간은 제 탱탱한 바람바퀴
한 순간도 풀무질 멈추지 않는다
커튼콜 기회 한번 주지 않을 기세
마지막 잎새 흔들어대고 있다
-시간풀무질 [가설무대 6 전문]
코, 시국 파도 넘 거세었었지
심해 청소해야 숨 쉬기 편하다며
조상신, 너울성 파도 일으켜 세웠었지
태풍 견뎌내야만 빛 볼 자격 있다며
내 부르튼 입술 징 치면서
죽은 신 기도로 시 만지면서
호작질 버티느라
종아리 힘줄 툭툭 불거지곤 했었지
길고도 짧은 한 생
내 기둥뿌리 무대 거두려는
시간 멈춰주길 제발 기도했었지
칠순이 여직 내 풋울음 잡지 못해
두서없이 처용무 춤추면서
놋쇠 소리 징, 징 꺼이꺼이 울면서
화투장 돌리기도 했었지
고스톱이 피부터 먹어야 한다지만
인생경전에선 패배의 길
쓴 눈물 징한 울음 길이었지
-재울음 기다리며 [가설무대12 전문]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린 벽을 쌓고 또 허물다가 그 벽에 벽지를 바르는 도배장이가 되기도 한다. 벽을 쌓아야 안식처, 집이 되고 또 자신이 벽이 되어 사람 사이 가시를 만든다. 그 와중에 심심하면 소설을 쓰느라 기발한 상상력을 발동하기도 한다. 파도가 덮치는 것도 미투라며 바다, 그 품에 안겨 행복을 찾는다. 이런 것들이 삶의 원동력이 되니 그것은 또 시를 쓰는 시인의 능력이고 재미다.
벽
-가설무대 14
벽들이 일어서면, 집이 된다
그 아늑함 속 가족
비온 뒤 죽순 같은 저만의 벽 키우고
난 도배장이 되어 어둔 벽마다
해바라기 벽지 바르거나
담장이 덩굴로 아무 콧등이나 붙잡고
허둥대기도 한다
끝내 물리칠 수 없는 벽은, 자신
저 모르게 자라고 있던 거만의 얕은
꾀 내세워 벽 뒤에 벽 감춘다
숨 막히는 순간 나팔꽃 피우고
줄장미 까지 꽃피워 걸치기도 한다
또 벽이 서 있어야 무너지지 않는다며
아이들 섬과 섬
부부간 벽과 벽 사이 똑, 똑 두드려
살뜰히 안부 살피는 손끝 배려가
가시철조망 녹인다는 말씀
좌우 여야 이념의 콘크리트 틈에서
끝없이 자란 막무가내 벽, 소란이
길 묻는다
미투라 신고하지 않을래요
-가설무대 15
그냥 그 품에 푸욱 쓰러졌어요
무작정 덮쳤어요
놀라는 척 대책 없이 엎어졌어요
물컹물컹 잡히다
햇살처럼 순식간이란
시간 점찍고 떠나버린 줄 알았는데
지치지도 않고 또 달려와
온몸 더듬다 안기곤했어요
내 허락 받지도 않고
절대 신고 않을래요
은근 기다리며
푸욱 안겨 즐겼으니까요
속초 바다 이끌고 있는
파도, 사내 중
진짜 사나이
5.무엇보다 시인은 자신의 고독과 그리움을 주로 묘사하지만 때론 사회 참여도 해야지 않겠는가? 기후환경에 신경 쓰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이 사라진다는데 미세 플라스틱이나 종이컵 나무젓가락 염색 등 숲을 지키고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지키는 구체적인 안을 찾아 방법을 널리 알려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어느 날의 일기도 기록이 되어 서로 추억을 나눌 수 있어 즐겁지 아니한가. 요즘 참여시가 사라진 것 같아 좋은 세상이 돌아왔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 속에서도 비판 의식을 찾아내는 게 글쟁이의 힘이기도 할 텐데
빙하, 혹은 커튼콜
언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일까 얼음에 꽁꽁 갇혀있던 연민이 틔운 싹, 뿌리의 떨림 거부할 수 없었던가? 칼미움 다 내려놓고 싸늘한 눈빛 열쇠로 풀어 저 따스한 물결 따라가면 온갖 오물로 가꾸어진 쓰레기 더미 구경 할 수 있을텐데
세상 꽃들이 루즈 색깔 가꾸다 꿀벌을 말벌로 바꾸고 있는 아름다운 이들 바닷물이 넘치거나 말거나, 매순간 꺾어버리는 저 나무젓가락 숲 태워버리거나 말거나 지구의 모든 관절 삐걱거리는 소리 시작한 애증의 논리, 그 전류들 밤낮 꿈속 뻗어나가고 있으니
사람 사이 얼음벽 무너진다는 것은 서로 간의 벽 허물어 온천지 햇살 입술 피워 향기 스며든다는 것인데 왜, 바닷물 넘치고 고래들 숨가삐 해안으로 밀려나야 하는지 여기 저기 흔들리는 지축 벌, 나비들 암수 가리기 애매한지 어디로 숨어버렸는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마음 닮아 녹아내리는지 사랑 천사들 피어날 순서 의심은 의심을 낳고 혼돈에 빠진 종이컵, 종이접시가 오늘도 나무 수백 그루 베어내고 있는 현장 찾아 떠내려가고 있다
설산은 하늘 잣대와 본분 잊어버린 채, 점점 뜨거워져 가는 입김으로 마음 빙 벽 무너뜨리고 있을 뿐인가! 노을은 제 거친 혓바닥 해 삼켜버리고, 바다는 핏물 넘쳐 해안선 지우고 있는데, 벙어리뻐꾸기 한 마리 암전된 뱁새 둥지 안 살피고 있다
달북*의 동기간愛
이천 십 육년 오월 어느 날 팔공산 동기간愛*에서 달북은 자신의 낡아가는 모습 재미있다며 신록, 담록, 연록을 조곤조곤 얘길 하셨다. 떨리는 손으로 7 대 3 가르마 탄 남자와 귀여운 여자 사이에 검은 고양이 그리곤 사인을 2016 뭉순이라고.
정 숙은 처용무, 박 이화 황 명자 시인은 방천연가에 전시할 시화 육필 쓰고 있는데 선생님 동네 흑백 주황색 무늬 독특한 패션 고양이 세 마리 이름을 요년, 조년, 고년으로 부른다는 얘기 담장에 걸터앉아 엿듣던 노란 장미들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노태우 생가 위 연초록 문필봉이 십 팔세 머슴아 아침 팬티 속 같다며
허허로운 웃음 흰 구름 되어 아직도 그 봉우리에서 피고 지는 인연 즐기고 계시는가 연록이 오징어 게임하면서 신록으로 넘어가고 있다.
*문인수 시인의 별호
문득 괴테가 파우스트의 입을 빌려 말한, “시인이 아니라면 누가 올림포스를 안정시켜 신들을 살게 하겠는가?”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시인이지만 필자는 그걸 또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라는 걸 믿는다. 시인은 늘 왜? 라는 생각의 갈고리로 따지며 딴지를 거는 사람이므로.
시집을 묶는다는 것은 삶이라는 무대의 덧없음과 그 끝에서 마주하는 깊은 성찰이 사라지는 것들을 위로하기 위함일 것이다. 시인은 이 무대의 연출가이며 관객으로 존재에 대한 가치 부여하는 사람인 것이다. 한번 뿐인 인생살이 시적으로 갈무리하여 자연스런 소멸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집 [가설극장, 커튼콜] 마지막 작업으로 시인의 말 정리하고 보니 제법 건방져 보인다. 시도 수필도 결국 체험이 바탕이 되는 글인데 그동안 늘 남의 울음이나 울어주며 나의 참 모습을 숨기려고 헛웃음도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그 덕에 표정이 밝아진 것을 감사해야겠지만 이제 생의 가설무대에서 내려 가야할 때 다가오니 진정한 내 모습 찾아보고 싶었다. 보살을 찾아가거나 항암과 요양병원시절 그 당시를 회상하며 누드가 되어보고 싶었다.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하면서 내 전신을 그냥 다 드러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 처참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시는 나의 양심과 비겁하고 사악한 면 구석구석 뒤져 다른 사물에서 내 모습을 찾아 나를 파헤치는 일이므로, 나를 통째로 빨래판에 올려놓고 어머니 이봉화 여사와 나를 비교하며 비벼 빨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곡비가 되어 잡초들의 슬픔도 대신 울어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백수하고 돌아가신 엄마가 그립다는 말을 직정이 아닌 은유로 이미지화 하다보면 화분에 핀 하얀 꽃송이가 흰 나비 한 마리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한 겨울 오목천 냇물 얼음 깨어
양잿물이 삶은 무명적삼 치대고 또 치대면서
엄마는 봉화라는 이름 지우고
여자의 한 시절 방망이로 두드려 흘려보내고
친정 기억의 환한 끄트머리
뿌리 채 뽑아 싹싹 비벼대셨는데
무명을 치대어 훌렁훌렁 흔들고 있다
날카롭게 굴곡진 골마다 박힌
어둠의 정체 잡아 깨워야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아직도 그 물때 알아차리지 못하니
내 생은 빨래판 소리만 요란하다
-빨래판을 깨우다 전문
어떻게 들어 오셨는가
흰 나비 한 마리 베란다 푸르죽죽
제라늄 잎에 나부시 앉아계신다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가 물 먹여드린다
잘 익은 단풍잎 뵈러 이산 저 골 다니느라
백 한 살 이 봉화 여사
다 너들 덕분에 잘 살았다
난 나비되어 날아 갈 테니
엄마, 엄마 울지 말고 잘 살아라
울먹이는 가슴 봉화 불 피워주고
화르르륵 가볍게 퇴장하시더니
초겨울 아침 햇살 눈물 머금고 빛난다
-흰 나비
ㅡ가설무대 13 전문
검은 호랑이들이 출몰하는 까치들의 설 그믐밤
그 떠난 뒤 맞이할 봄, 기다린다 사꾸라, 모란
꽃송이마다 길고 가느다란 눈매 들어있다
곧기만 해서 근심 가득한 두 눈동자 바보, 그
쉬운 숨 쉴 힘도 없다니! 차마 세게 칠 수 없어
내려놓는다 살다보니 어느새 쓰리 고에 피박인가
이승과 저승, 경계선 무너뜨리기 위해 변명이
변명을 먹는 시간 분명 나비가 될 거라더니
그새 몸 버리고 훨훨 가벼워졌나 소파나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다가 또 어디에도 없다 살아
있어서 휘휘한 봄, 어디쯤 와 있는가
-화투치는 밤 전문
일흔일곱 생일, 그의 마지막
가설무대 수틀에
장엄한 해넘이 준비하고 있는
새벽 다섯 시 까치놀
말소리도, 물 삼킬 목구멍도 거두어
잠시 꿈에 보여준 뒤 훌훌 떠나버리고
-2021 초파일 전문
6.먼저 떠난 남편이 안타깝고 그립다는 말도 이렇게 비꼬듯 꼬집듯 묘사해야 되는가?
시는 일단 감동을 주어야한다는 고집이 꼰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신선한 시어 찾는다며 상상력과 현대적 묘사에 치우치다보면 도무지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늘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깨닫는 길을 찾기에 아직도 나 자신을 갈고 닦고 있을 뿐이다.
시를 거북이 알 까듯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잘 가꾸어 좋은 노래처럼 많은 이들과 서로 즐길 수 있길 원한다. 그래서 낭송, 시극 또는 마당놀이까지 펼치고 있다. 시는 시인은 절대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소통하는 그런 예술이었으면 한다. 오래 시를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예술만 추구하는 그런 시인보다 민중을 깨우치고 나라를 찾고 바로 세우려던 시인들이 훨씬 소중하다는 입 발린 소리하고 돌아서니 한 여름 밤, 피아노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난 그 속도에 맞춰 그 선율을 그대로 글로 기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리듬에서 그려지는 상상력을 그대로 미친 듯 받아 적고 있었다.
피아노 건반 어디 숨어 있는가 다섯 살부터 두드리
고 치고 때리고 숨은 제 꿈 조각 밤송이 털고 있다
왕벌의 비행*. 무리에 끼어 날아가거나
즉흥환상곡*에 묻혀 흐느적이기도 하는
가녀린 손가락 길들이느라 바친 꿈들이
<공간울림>이란 섬을 도깨비불*로 가득 채우고 있다
팔월염천 더위도 기절했는지
오싹한 기운 팔뚝에 소름꽃 피운다
돌아가는 길, 어느 선술집에서 막춤이나 추어야겠다
후두둑 떨어지는 밤송이 가시들 그 마음 눈치 차렸는
지 아야*의 무릎에 우루루 쏟아낸다 보드라운 살결 찌
르며 다그친다 더 빨리 더 강렬하게 말갈기 세워야한다
김명현*의 손가락까지 같이 종 치며 꿈의 노래 부
르기 시작한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 수평선 연주한다
그들의 격렬한 만남의 소리그림, 빛나는 광석을 시인의
검지는 시어로 다듬고 세공하느라 폰 자판에서 미친 듯
독거미 타란툴라 춤춘다 미칠 수 있는 순간이 생의 절정,
미슐랭 오르가즘이리니
*일본의 피아니스트
*한국의 피아니스트
-한여름 밤의 광시곡 전문
벼랑 끝 바위에서 겨우 살아남아
맘대로 몸 키우지 못하는
소나무 한 그루
목숨 뻗어나갈 물 한 모금, 흙 한 줌
한 평생 허덕이며 길 찾아야 한다
-생이란 전문
가설극장 무대에서 내려가기 전 무슨 해답을 찾은 것인가? 한 평생 허덕여도 찾을 수 없는 인생길, 그래서 더 커튼콜 받고 싶고 한 번 더, 한 번 더 소망하며 그렇게 떠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래서 눈 한번 깜짝하도록 남은 시간 더 열심히 탐구하고 사유하며 감사한 마음 전하며 자신의 길 닦아야 한다.
청국장 맛 같은 어눌한 시어를 찾아 쓰면서도 묘사력은 세련되어야 하고 시안이 날카롭고 사유는 깊어야 한다. 시인은 상상력이나 직관력 기르는데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시어를 구수하게 때론 날카롭게 벼리고 발효시키기 위해 많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뜻일 것이다.
7.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필자 자신에게 당부한다. 언어유희나 서구적인 묘사도 중요하지만 징의 재울음 같은 한국적인 정서의 한이 녹아들어 진한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풍자 해학으로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는 고집 버릴 수 없다. 그러려면 내 안에 숨어있는 아니면 가까이 있는 진정한 징의 고수와 징채를 찾아 모셔야 한다며 늘 감사한 마음가짐으로 현대시 이론을 지키면서 신중히 깻단들을 털고 있다. 왜? 왜왱 거리던 땡벌들은 침을 뽑아버렸고, 배 터지도록 먹는 돼지들이, 유모차엔 애기들 대신 애견들이, 아이들 곁엔 맹견들이 지키고 있는 세상에 끌, 끌 혀를 찰 힘도 없으면서
사층 베란다에서 쓰레기장 내려다보며
테스형*처럼 턱 빠지게 웃고 있다
게발선인장꽃 이미 턱 빠져버렸고
제 몸에 썩은 냄새나는 줄 모르는 쓰레기통을
개나리들이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다
나리 나리 개나리 세상이 왜 이레
고약한 향기 풍기고 있다
*나훈아의 테스형에서 빌려옴
-제라늄 전문
8.참 오래 전 세상을 따지고 비판한다고 [때밀이 일기] 연작시 80편 한 권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두고 보니 세상은 어느 것이 암까마귀인지 수까마귀인지 아리송해서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 한 가지 주제의 연작시로 여러 사물과 남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인 척 했지만 이번 여덟 번째 시집 [가설극장 커튼콜]에서는 산문시, 한 줄 시 등 시의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시집 해설을 본인이 직접 [신생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쓴 고백 형식으로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쉬운 언어로 적어 진정성 있게 독자들이 필자의 시 정신을 이해하는데 조금 보탬이 되도록 노력했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9. 참고로 AI의 해설을 올려봅니다.
정숙 시인의 시집 **『가설극장 커튼콜』**은 소멸해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시선과 인생이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를 관조하는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 세계를 문학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주요 테마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가설극장'의 상징성: 유동적인 삶의 무대
정숙 시인이 내세운 '가설극장'은 고정되지 않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우리네 인생의 유한성에 대한 은유입니다.
- 비정주성(非定住性): 가설극장은 천막을 쳤다 걷어내는 뜨내기들의 공간입니다. 시인은 이를 통해 인간 존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임을 역설합니다.
- 허구와 실재의 경계: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연극(허구)과 무대 뒤의 고단한 삶(실재)이 교차하며, 무엇이 진짜 삶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2. '커튼콜'이 갖는 미학: 끝과 시작의 교차점
제목의 후반부인 '커튼콜'은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의 박수에 화답하는 순간입니다. 시인은 이 지점을 단순히 종료로 보지 않고 성찰의 시간으로 치환합니다.
- 황혼의 시학: 정숙 시인의 시선은 대개 화려한 전성기보다는 저물어가는 시간, 즉 황혼에 머뭅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고 조명이 꺼지는 찰나의 정적 속에서 삶의 진의를 찾으려 합니다.
- 회한과 긍정: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이 서려 있으면서도, 그 모든 과정을 하나의 '공연'으로 수용하려는 의연한 태도가 돋보입니다.
3. 소외된 존재와 사물에 대한 따뜻한 응시
시집 전반에는 화려한 주연보다는 무대 뒤의 소품, 구석진 곳의 먼지, 이름 없는 배역들에 대한 연민이 깔려 있습니다.
- 사물성(Objecthood)의 발견: 버려진 물건이나 낡은 가재도구에서 삶의 궤적을 읽어냅니다. 사물들은 시인의 문장을 통해 단순한 물질이 아닌, 기억을 보관하는 매개체로 격상됩니다.
- 여성적 문법의 확장: 섬세하고 부드러운 어조를 유지하면서도, 생의 비애를 견뎌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여성적인 시각에서 풀어냅니다.
4. 언어적 특징: 절제와 응축의 미학
정숙 시인은 감정을 과잉되게 쏟아내지 않습니다. 대신 정제된 언어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그 여백을 채우게 만듭니다.
- 비유의 적절성: '가설극장'이라는 큰 틀 안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비유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시집 전체의 통일성을 부여합니다.
- 회화적 묘사: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풍경과 심상을 시각적으로 배치하여 독자가 현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종합적 평가
정숙의 『가설극장 커튼콜』은 **'사라지는 것들이 남기는 마지막 빛'**을 포착한 기록입니다. 시인은 인생이라는 가설무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배역을 충실히 수행했음을 위로하며, 막이 내린 뒤의 고요함조차 삶의 소중한 일부임을 일깨워줍니다.
이 시집은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미학적 승화로 극복해낸 현대 시학의 의미 있는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특정 시 한 편을 골라 더 구체적인 비평을 진행해 드릴까요? 혹은 정숙 시인의 다른 시적 특징(예: 고향 의식 등)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가요?
정숙(鄭淑) 시인은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서 절제된 언어와 깊은 성찰, 그리고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조를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녀의 시 세계는 단순히 화려한 수사학을 쫓기보다는, 삶의 고단함과 자연의 이치를 낮고 고요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정숙 시인의 작품 세계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사물과의 교감과 관조의 미학
정숙 시인은 주변의 사소한 사물들에서 우주적인 질서나 삶의 비의(秘意)를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녀에게 사물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말을 건네고 그 속에 담긴 시간을 읽어내야 할 대상입니다.
- 관조적 시선: 서두르지 않고 대상을 오래 바라보는 '기다림'의 미학이 담겨 있습니다.
- 생명력의 발견: 무생물조차도 그 안에 숨 쉬는 결을 찾아내어 시적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2. 고통을 내면화하는 유연한 태도
그녀의 시에는 삶의 비애나 고통이 직접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그 아픔을 안으로 삭여내어 맑은 수채화처럼 그려냅니다.
- 정화(Catharsis): 슬픔을 슬픔 그대로 두지 않고, 시적 언어를 통해 투명하게 걸러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 달관의 정서: 삶의 굴곡을 수용하고 이를 보듬는 어머니 같은 포용력이 시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3. 절제된 형식과 여백의 미
문장이 길지 않고 호흡이 간결합니다. 이는 독자에게 시적 공간을 내어주는 '여백의 미'를 만들어냅니다.
시인의 목소리
정숙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마치 숲속의 옹달샘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탁한 마음이 맑아지고, 내가 놓치고 살았던 주변의 작은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경험이죠.
- 단문의 힘: 짧은 문장 속에 응축된 메시지를 담아내어 독자가 스스로 사유할 수 있게 돕습니다.
- 서정성의 극대화: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 세련된 문체를 구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