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 시인 6번째 시집 ‘유배시편’
지구별에 홀로 던져져, 고독한 시간과 싸워야 하는 신세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남자와 여자, 학자와 문맹자, 성직자와 범죄자 등 모두가 주어진 시간 앞에서 유배의 시간을 홀로 묵묵하게 견뎌나가야 할 뿐이다. 적어도 정숙 시인의 생각에는 그렇다. 시인 정숙에게 ‘유배’는 오랫동안 천착해온 화두이기도 하다.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 ‘영상시집’ ‘바람다비제’ 등 지금까지 발표한 시집 5권을 모두 유배란 큰 주제에서 묶었던 시인이 또 한 권의 유배시집을 내놓았다. 시인의 6번째 시집인 ‘유배시편’(시학)은 유배를 주제로 70여편의 연작시를 수록했다. 노숙인, 퀵서비스 배달원, 추사 김정희, 뇌성마비 장애인, 매몰 광부, 바람난 주부, 임신 중절로 죽어가는 아이 등 다양한 인물군상을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하고, 유배란 거시적 관점에서 시적으로 형상화했다. ‘저, 늙은 소나무 하나/ 겨우 세 평짜리 안방에서/ 뼈만 앙상한 제 면적조차 과분하다며/ 허옇게 이파리 떨어뜨린다’(‘돛대’ 일부), ‘꽃피는 시절 사랑한다, 미워한다 한마디 말 못하고/ 한 생이 노을 속으로 미끄러져 갔어요/ 어둠의 나이테에 갇혀 막막해서 흐느낄 수도 없으니’(‘딸에게’ 일부), ‘그는 마침내 혼자 떨어져 앉아/ 섬이 된다/ 안방 바다 한가운데 쉼표를 찍는다/ 그동안 삼킨 바람파도 다 끌어안고/ 혼자 울부짖다가 웃으며 중얼거린다’(‘파도 페이지’ 일부) 등 시편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의 고독하고, 허무한 내면풍경을 밀착감있게 표현했다.
시인은 1991년 우리문학, 93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장으로 있으며, 일반인 대상의 시 창작교실인 포엠토피아 포엠스쿨을 8년째 운영하고 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