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 아련한 그리움
![]() ![]() 2012. 7. 1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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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인가? 참으로 달콤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 말은 그립고도 그리운 한 소녀시절로 청춘시절로 돌아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일까? 그 통로를 더듬어 가다보면 잊혀 진 얼굴들이 여러 가지 색깔의 비눗방울 속에서 동실동실 떠다닌다.
마침 컴퓨터 내 홈에서 존 바에즈의 흘러간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고 있으니 그런데 내 발걸음은 대학 1학년에서 자꾸 머뭇거린다. 66학번 그 당시 경북대학교 입학한다는 것은 서울 유명한 몇 개의 대학과 맞먹는 위치였다. 특히 여학생이 귀한 때 한 과 정원이 15명 그 보다 남녀공학을 간다는 것이 내겐 전쟁터로 나가는 것처럼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참 바보처럼, 절대로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섰으니 사랑이란 말을 믿지 말자고 맹세하고 입학했으니 첫사랑이란 그 연못에 한번 빠져보기는커녕 발을 적셔보기라도 했을까?
그 무덥던 여름 지나고 어느덧 초가을 밤 눈물이 글썽한다. 어구, 왜 이리 감상적이지? 피겨스케이트의 스핀을 발끝으로 빙그르르 돌아본다. 눈 지그시 감고 손끝을 뻗어본다. 손끝 따라 과거를 불러 모은다. 뽀족히 갓 터져 나오고 있는 연둣빛 양버즘나무 잎 사이로 빙긋이 웃는 얼굴 하나 쑥스러워하며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듯하다. 우선 날 세운 양복에 키가 쭈욱 뻗었다. 재수생인지 풋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의예과 1학년이라며 그 당시 1학년은 대학이나 과 구분 없이 교양학과로 두루 섞어 공부했다. 4반 바로 옆 반이라는데 부끄러워 서로 눈길을 주고받지 못했으니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풋풋하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리라. 흐음, 그 풋내가 그립다. 난 바다 빛 투피스 긴 생머리에 푸른 줄무늬 스카프로 머리띠를 하고 화장하지 않은 생 얼굴로 꽃시계 윗머리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저 파트너 좀 해주실래요?”
“예?”
“의예과 가든파티가 며칠 뒤 열리는데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조금 유들유들해 보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를 닮았다. 바람장이면서도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사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신을 차려야지. 조금 쌀쌀하게 속삭이듯
“좀 생각해 보겠어예. 내일 말씀드리면 안될까예?”
지금의 박물관 건물 1층은 음악 감상실이었다. 틈만 나면 자욱한 연기 마시며 국문과 여섯 여학생은 날마다 붙어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여학생이 귀했고 모두 청순해 보이고 차갑고 예뻐서 경북대 캠퍼스의 신화적인 존재들이었다. "해변의 길손' '썅하이드 트위스트'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 에 취해 있을 때 그는 다시 찾아와 부탁을 했고 난 당연히 승낙을 했다. 매년 사월 의과대학 가든파티에 초대되어 간다는 것은 그 당시는 몰랐지만 대부분 여학생들이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행사였던 것이다.
양장점에서 라일락 꽃빛깔의 투피스를 맞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신기하다. 용돈이 넉넉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당장 옷을 준비했을까? 어쨌거나 그 날 밤은 라일락 향이 포크댄스 하는 이들에게 마약처럼 스며들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 후 클럽활동도 같이 하면서 자전거 하이킹, 우리 과수원에 데려다 사과 줍기도 시켰지만 그들의 바람기를 아는지라 늘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번 엎어지고 자빠져 보기도 했어야하는데 그에 대한 설렘을 속으로 꼭꼭 숨기며 태연한 척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거짓말이라고예? 아이라예. 언지예. 참말이라예”
유월 언젠가는 대구에서 자인면 계남동 까막새 과수원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는데 과수원 탱자 울타리를 지나며 서로의 떨림을 감추느라 하늘이 맑다느니 쓸데없는 얘기만 큰소리로 나눴던 것 같다. 그 날 집에 도착해서 거울을 보았다. 볼 전체가 발그레해서 자신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스 신화 속 자아도취에 빠진 나르시스가 되어 거울 연못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 때 그 모습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어서 그 추억의 연못 속 파문이라도 지면 헝클어질까봐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 다음 해 여름 소나기 쏟아지는 밤 동신교를 말없이 걸었는데 비에 젖은 바람은 우산을 획! 나꿔채 가고 그래도 우산을 두 개 따로 쓰고 걸었으니 참 낭만은 어디로 소풍갔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게도 기찻길 따라 철로 위를 걷기도 했었지. 그러다가 여름 방학 비 오는 날 정말 뜨거운 그의 연애편지가 무서워 콩닥콩닥 뒤안에서 성냥불로 편지를 태우기도 했었으니.
그렇게 흐지부지 세월의 책장만 넘겨버리고 그는 멀리 바닷가 병원으로 난 경주 월성중학교 국어 교사로 재임하는 동안 그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젊은 죽음이란 강한 방부제로 영원한 그리움이 되어 내 가슴에 저장이 되었으니 그 뒤 복사꽃 꽃다발 들고 ‘꽃말이 무엇인 줄 아느냐’ 며 찾아온 총각선생님 푸릇누릇 익어가는 보리밭을 그려주던 어느 화가의 애절한 눈빛에도 목석이 되어 무덤덤하게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
난 나 자신을 너무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 그 끝의 허무함을 알기에 속으로만 가슴 두근거리고 그 풋풋한 설렘의 꽃봉오리를 바라보는 것만 즐긴 것은 아닌가? 늘 정도만 지키려는 자신에 가끔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시 한편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첫사랑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그리움엔 유통기한이 없다는 김성덕 시인의 [첫사랑] 시 한 구절 생각하면서 삼국유사 연구반 덕에 기억 속에서 잊혀 진 동신교를 몇 십 년 만에 걸어본 기념으로 쓴 필자의 시 한편 올려본다.
먼 먼 칠석날 눈물 머금고 흘러온 미리내 줄기, 흐르다가 애달븐 연인들의 가슴 소용돌이 풀지 못해 신천 웅덩이에서 맴만 돌고 있다네 땡그랑, 댕그랑, 물결 속 열사흘 달빛기둥 위 은종을 간절하게 치며 기도하면서
그 흐느끼는 소리 듣고 자란 피라미들 뒤엉킨 은하수 전설을 풀어 무지갯빛 천을 짜고, 그 그리움을 내 청춘의 검고 긴 머릿결에 둘러주던 눈 시리도록 아린 첫사랑의 그림자! 너는 뭇 세월 견디느라 날금해진 푸른 동신교 아래서 누굴 기다리는가
그 여름날 천둥 비바람 가려주던 우리들의 청춘, 그 아련한 우산은 세월 따라 멀리 저 하늘 너머 날아가 버리고 없는데 [푸른 동신교 아래서, 전문]
[행복더하기 2012,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