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5    업데이트: 25-04-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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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일보 문향만리 / 정숙「휴화산(休火山)이라예」– 처용 아내 2[벼랑 끝의 꽃] / 김동원 시인·평론가
아트코리아 | 조회 18


휴화산(休火山)이라예

– 처용 아내 2[벼랑 끝의 꽃]

 

정숙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가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 서답;월경. 시상에;세상에. 카는;하는. 카믄;하면                                                                                                       

 출전 :  시집 『 신처용가 』(2000, 포엠토피아)

 

〈작품 해설〉그녀의 시는 현대 여성의 억압된 성(性) 해방을 꿈꾸며, “남성 중심사회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통해 그 모순과 폭력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김재홍). ‘처용’은  『삼국유사 』 속 신라 49대 헌강왕 조에 수록된 설화이다. 그 후 고려 「처용가」, 조선의 「처용무」, 서정주의 「처용훈」, 김춘수 「처용단장」까지 숱한 시적 변용으로 재등장한다. 때로는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복을 주는 ‘처용 부적’으로, 때론 시대와 역사적 부침(浮沈)에 따라 각양각색의 인물로 수용된다. 처용이 역사 속에 희생된 개인의 상징이라면, 역신은 거대한 폭력과 힘의 상징인 국가를 뜻하기도 한다. 정숙(1948~, 경북 경산 출생)의「휴화산(休火山)이라예」는, 처용의 아내를 통해 남성 위주 행태를 묘하게 뒤틀어놓았다. 물론 밤 깊도록 기집 끼고 노닥거리느라 마누라를 돌보지 않은 것은 토죄되어야 마땅하나, 바람은 여편네가 피워 놓고 어리숭한 처용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운 것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예나 지금이나 안팎의 맞바람은 골칫거리다. 옛 투의 경상도 사투리로 읊은 이 시는, 봄밤에 동동주 홀짝홀짝 혼자 비우다 취해버린 화자의 신세 한탄이 싫지 않다. 어쩌면 넋두리 같고 어쩌면 여인의 한(恨)같아 가슴이 저민다. 외로움에 사무친 독백이야말로 패러독스의 극한을 보인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펄펄 끓는 가슴 속 용암을 안고 살아가는, 이 땅의 무수한 여인의 마음고생을 ‘처용 아내’를 통해 멋지게 카타르시스하였다.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에?”의 자조 섞인 시구 속에서도 느끼듯, 님의 사랑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애틋하다. 나는 다음 시행이 너무 좋아 저녁 답 거실에 혼자 서서 읊고 또 읊조려 보았다.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떨어지고 있지예. 혼자 지샐라 카이/너무 적막강산이라예./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애상이 있는가 하면 여자의 애심(愛心)이 있고, 한(恨)이 있는가 하면 비가(悲歌)의 슬픔이 고였다. 이런 탄식과 한탄은, 정숙 사투리 시의 전범(典範)이 된다.(김동원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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