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5    업데이트: 25-04-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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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원 더 높은 세계를 향하여[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관리자 | 조회 36
한 차원 더 높은 세계를 향하여[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시인 정 숙

 
한세상 산다는 것은 무수히 짓밟히고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일인데 그 수많은 아픔과 슬픔, 좌절과 시련 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홀로 몸부림치며 스스로 자학하다가 어떤 이는 자살로 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폭의 수묵화처럼 용서하고 자책하면서 그 고통을 끌어안고 시로 승화시켜 새로운 세상 얻으려 꿈꾸는 이들이 바로 시인이지요. 물론 그 노력 끝에도 절망과 좌절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꿈이란 끈 하나 잡고 살아가는 일 그 자체가 시인들에겐 큰 선물이고 상이 아닌가요?
 
그러나 운명적으로 신 내림 굿 받은 시인은 괴롭지요. 모든 미물들까지 제 한 풀어달라고 손을 내미니까요. 마음은 약해 한번 잡은 손 떨쳐버릴 수 없고 아예 그들의 아픈 얘기를 화두삼아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그 시어 너덜너덜 헤질 때까지 풋울음 잡기 위해 징을 치며 파헤치며 물어뜯는 습성을 버릴 수 없어 제 작품 전체가 거의 연작시입니다. 시란 변덕이 심해서 그런지 ‘시는 사람이다’ 말 끝나기도 전 벌써 ‘아니다 시는 짐승이다’라는 생각에 물리게 됩니다. 그런 곰 같은 미련으로 신처용가 라는 연작시를 소설 쓰는 기분으로 쓰고 그것을 극본으로 시극을 연출하고, 공연하기도 합니다. 연꽃이란 사물 하나만으로 시집 한 권을 엮을 수 있도록 그 진흙탕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미련 곰탱이는 어릴 때부터 제 별명이니 억울하지도 않습니다. 꾀가 없어 수족이 괴롭긴 하지만 요즘은 그림물감에 빠져가며 그렇게 쉬엄쉬엄 산을 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참된 징 잡이가 되어 빨리 산 정상에 올라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면 꽃도 바로 보이고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 때부터 긴장이 무너져 살맛이 조금 사라지지 않을까요?
 
실없는 걱정까지 하면서 그 어설픈 신기神氣 든 징수의 눈은 매서운 눈매로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관찰해야하며 시비를 걸어 뭔가 발견하고 깨달아야한다는 사명감으로 골목을 지키고 서 있지만 사실은 많은 사건들을 놓쳐 며칠 전 갓 피어난 장미 꽃송이 꺾어간 범인을 아직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범인이 만약 바람이라면 어느 날, 어떤 바람인지, 어떻게, 왜, 가녀린 꽃잎 찢어발겼는지 야무지게 지키지 못해 늘 죄송할 따름입니다. 혹시 제가 아닐까요? 몽유병자처럼 자신이 그 꽃잎 찢어놓고 모르는 지도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시간에 바람에 밀려 흐르기만 하는 낙동강 물줄기, 그 물결 속 뒤적뒤적 살아온 뒤안길 뒤적이며 제 삶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였는가 그 무게 저울에 달아보기도 합니다.
 
요즘 시가 묘사라는 상상력의 늪에 빠져 자칫 놓치기 쉬운 진정성은 삶의 체험과 사유에서 우러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늘 먼눈 살피던 눈길은 이제 제 주위만 살피며 이미 지나간 일들의 잘 잘못을 따지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친정엄마가 근 백년 1세기 동안의 산 역사의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사변 그 회오리바람 속 어머니 당신의 체험을 글로 써보려다가 그만 둔 얘길 들으면서 대화 상대가 없어 외롭던 어머님, 즐거이 당신의 고통과 추억 상자를 열어 보입니다. 강물이 겉으론 유유히 흐르는 것 같지만 밟히며 쓰러지며 때론 격하게 파도치며 따지며 용서하며 죽을 고비 굽이굽이 흘러온 여전사의 무용담 속엔 온갖 눈물과 회한, 그 당시 기막힌 사회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솔직히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시집을 일곱 번째 펴내도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단지 그 사유의 깊이가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정신적 기둥이란 사실은 알고 있지요. 그 심화된 내면이 남에게 천대받지 않게 모시 두루마기 자존심 구겨지지 않도록 빠닥빠닥 풀 먹여 밤새 다듬이질 할 것입니다. 바람의 방향 따라 순응하기보다 매 순간 반역을 꿈꾸다 남의 눈총에 지쳐 쓰러질지라도 물결 거슬러 올라가는 길 찾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노파심은 제 시의 해학과 반발심이 오히려 사람을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생명 근원의 길 찾아가렵니다. 들꽃 속 천근만근의 허무와 고독 그 깨달음의 깊이를 찾아내도록 직관력의 삽질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내 시도 그림도 시간을 붙잡기 위한 호작질이지만 처용무가 누굴 위해 기도하는지 처용아내의 내연남은 누구인지 그들의 외간 현장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얼쑤! 봄밤이라예! 안그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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