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처용님
여자가 하필 왜 시를 쓰느냐고요? 글쎄요. 저도 처음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비싼 밥 먹고 왜 하느냐고 빈정대기도 했었지요. 그 죄 값으로 짙푸른 파도 출렁이는 동해 물빛 같은 시간 다 보내고 늦깎이 시인이 되었지만요. 잃어버린 그 금싸라기들을 다시 되돌려 찾기 위해 두 눈 혈안이 되었다고 할까요? 고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 숨어 절 기다리고 있더군요. 옛날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 그 본 모습을 드러내며 조곤조곤 온갖 얘기 꾸러미들을 풀어놓으니 어쩌겠어요. 도리 없이 받아 적어야지요. 그것들은 누렇게 찌든 낙엽, 탱자나무 가시, 오동 꽃과 돌멩이 속에도 깊은 바다가 파도치고 있다며 저를 꼬집고 다그치기도 하면서 무조건 발가벗고 헤엄을 치라고 꼬드기더군요. 전 거름지고 장에 따라가듯이 그냥 따라갔을 뿐이지요.
그런데 산 넘어 산이고 강 건너 가시밭이고 같은 게들이 서로의 발 물고 늘어지듯이 잡아당기기도 하고 말씀으로 생살에 빗금을 긋기도 하면서 온갖 훼방을 놓긴 했지만 시는 제 밥이고 집이고 애인이었기에 또한 많은 위안을 주기도 했어요.
늦바람은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압력을 넣어 가슴 속 깊이 내재된 용암을 폭발시키고 말았어요. 전 그저 받아 적었을 뿐, 그런데 끝도 없이 밀고 나오더군요. 그것들을 새끼처럼 꼬아서 밧줄을 만들어 우물 속에 빠져 허우적이는 제 모습을 건져 올렸어요. 그것은 썩은 밧줄이 아니었던지 제 생명을 구했지요. 거듭 태어날 용기와 힘을 준 것이지요. 이젠 신기가 들었는지 눈도 귀도 말문도 열려 귀뚜라미들 웃는 소리도 들린다니까요.
사실 전 눈과 귀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잠자면서도 기다렸어요. 혹시 언제 찾아오실지 모르지만 그 님이 찾아오실 때 옷자락이라도 붙잡아 그 향기나 흔적 남기려고.
시에서 겸손을 찾다 보면 긴장이 흩어지거나 내숭을 떠는 것처럼 보인다는 핑계로[사실 시는 행간에 많은 보석을 감추며 내숭떠는 일인데] 너무 시건방을 떨지나 않았는지 걱정이군요. 전나무가 키만 뻣뻣이 키워 거드름 피우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몸 어느 곳 약간만 눌러도 곧 눈물을 쏟아낸다는 얘기 들으셨나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더 긴장해야만 하는 뼈아픔도 우리 서로 다 아는 일 아닌가요?
처용님, 당신이 아무리 말려도 전 오월의 장미 꽃잎이 하르르 지는 이유와 쓰라림을 그림으로 그릴 겁니다. 그리고 눈을 뜨고자, 말문을 열고자 하는 이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고 깊이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는 일이지요. 길에서 장미 가시에 찔린 바람이, 바람에 뺨맞은 가랑잎이 훌쩍이는 소리 들리는데 의리에 사는 토종 경상도 처용아내가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요. 말도 안 되지예. 그나저나 곧 벚꽃이 바람기 화들짝 피워내는 봄밤일 텐데 우야지예. 예? 서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