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1    업데이트: 25-02-04 20:31

자유게시판

정 숙의 산문모음 시극극본
관리자 | 조회 1,127
베토벤 챌로 소나타 3번</b>


             ------아름다운 법문 71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햇살이 벚나무에만 앉아있다고 절대
시샘하지 않았는데

그저 바라봤을 뿐
새초롬히 입술 앙다물고 있던 그들이
조롱조롱 달린 입술들 다 내세워
왜 저렇게 수선스러운가
지금, 2005년 삼월
중동의 폭발하는 불꽃에 대해
반전 촛불 시위라도 하는 건가
투덜거리다가 가만 귀대고 한참 들어보니

때를 기다리라고
기다려야 꽃이 핀다고
봄이 온다고
오지랖 넓게 나를 다독이느라 저리 소란스러운 것을











운명교향곡

                                      ------바람 불다 71</b>


바위 속 잠든 부처를 깨트리려고
날마다 돌부리 두드리며 얘기 나누다가
그 바위에 꽃씨를 뿌리기도 해야 한다며

어쩌다 싹이 튼 새싹을 꽃샘바람막이로
따순 입김으로 키워
세상그늘 다스릴 꽃미소를 위해
시인은 죽어서도
제 속에 숨은 꽃뱀의 가시까지 깨워야 한다며

바람비늘부터 비린내의 한숨까지
숨구멍 속 작은 솜털먼지까지도 그리고
휘휘함과 흐놀함*까지도 삼켜
그들 그림자의 부스러진 뼈도 녹여야 한다며

* 그리움








늦기 전에

             ---아름다운 법문 70</B>


이 겨울 속바람에 떨면서도
새빨간 입술연지를 바르고 있는 부겐베리아
입 꾸욱 다물고 바라보고만 있는 내게

더 늦기 전에
꽃잎 떨어지기 전에 ‘고맙다’ ‘예쁘다’
어서 인사하라고 재촉한다 
떠나고 난 뒤 입에 발린 소리로
아이구 그럴 걸 저럴 걸 하는 
내 버릇을 히안하게 잘 아는지

하기사 어머님 살아생전 우울증으로 
원망하고 우느라
자리보존하면서 용서를 빌기 다급하시더니

다시 돌아올 수 없어 더욱 소중한  
가족의 젊음 그 그늘에
날마다 한숨꽃을 소복이 피웠다시며
 











수평선 야상곡</b>

                   -바람 불다 66

지워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너와 나 사이의 저 경계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너울지는 선의 갯바람 지워버릴 수는 없는가

아니, 지워서도 안 된다네
살과 살 그 틈새엔 곡선이지만 線이 있기에
꽃잎과 나비, 불과 물
그로 인해 모두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다며

서로 긴장의 끈 끝내 풀어놓을 수 없는
그것이 또한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며
어젯밤 나를 지워보겠다던 그
야릇한 선, 하나 더 긋고 이울었네

그런 이유 무작정 다 버리고
너와 나 한 마음, 한 몸으로 꽃피울 수 없는가
이미 능소화 꽃 지고 잎은 날아가는데








안녕! 오늘도 또</b> 

            -바람 불다 68

밤마다 안녕! 이란 인사 나누기 안타까워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또 안녕이야?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안녕이란 말 한 마디가 햇살이 되어 
밤 바닷바람에 언 눈동자 잠시 녹이기도 하지만
가늘디가는 침이 폐부 깊이 찌르는 
이별이기도 하다 그런 것보다
또 하루를 별 소득 없이
흘려보내만 하는 시간의 강 ,거부할 수 없는
제 무능이 얄미워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열어 
푸르게 얼어붙은 밤하늘 보며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위해
안녕! 섬광 한 줄기 보내고 잠자리 든다면
꿈자리 이끄는 길목바람 고요해지는 것은 아닌지
이제부터 안녕! 이란 말에 생크림을 얹어
더 달콤느끼하면서 
아삭하게 씹히는 맛으로 속삭여야 겠다











수상소감


  요즘 만해의 깊은 사랑에 점점 빠져드는 것을 어찌 눈치 채셨을까요? 그를 밟고 간 행인을 찾아보고 연꽃에 앉아도 보며 열심히 밭갈이 흉내 내는 걸 언제 보셨을까요? 시집이란 좁은 울타리에서 아웅다웅하다가 세상을 너무 모르는 바보 같은 처용아내를 찾아주시니 심사하시고 결정해주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그 동안 외로이 자신의 시세계를 지켜 오신 김후란 시인님을 축하하는 아랫자리에 작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어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등단한지 거의 이십년이 되어가니 주위에서 왜 그 흔한 상도 하나 못 받느냐 손가락질하는 분도 계셔서 제 시안이 아직 열리지 못한 탓인지라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에게 좀 더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 먹먹했습니다.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참말로 느리게  어릴 때부터 경산 출신인 장덕조 소설가처럼 되길 바라시며 부담을 주시던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곤 아흔 다섯의 어머니 살아계실 때 귀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기쁨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엔 제가 시인이 되도록 무딘 감성을 깨쳐주려고 밤낮 고심하신 시어른과 만약의 경우를 위해 홀로서기를 권유해준 그와 아이들 시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외로운 시간을 준 가족에 감사합니다. 

 특히 네 번째 시집 ‘바람다비제’는 바람불다 연작으로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고비에 쓴 글들입니다. 세상이, 사람이 무서워 죽음까지도 생각할 그 어두운 시간을 더 어려운 처지의 생명과 사람들을 찾아 애기 나누면서 위로를 삼았습니다. 많은 의지가 되었던 시할머니 시어른 두 분 돌아가시고 몸도 마음도 상처 입은 그의 건강 그 와중에서도 아이들 셋 혼사 치르고, 제 울타리에 샛바람이 들지 못하도록 기도하느라 젊은 세월 다 보냈지요. 자칫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그 시간들을 시란 그 기둥서방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눈 뜨고 귀 열리기 위해 허기진 듯 무조건 가르치고 쓰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두터운 껍질 속에 가둔 자신의 속살을 찾아내고 가꾸어 모든 사물을 자신만의 감성과 의지로 재창조하는 그래서 점점 신들린 듯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귀신바람이 나도 단디 난 것이지요. 앞으로 더욱 좋은 시를 쓰라는 사랑의 무서운 채찍으로 알고 처음부터 다시 세상을,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겠습니다. 제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열심히 전달하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이 행복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분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주말에세이]유월, 소리의 터널을 찾아 
  
 
밤꽃 향기에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사람도 새도 나무들도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달입니다. 범어 숲 꿀밤나무들이 제 그늘 넓히느라 서로 허공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손끝마다 불을 켜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경쟁심 부채질하느라 바람은 이 나무 저 나무 쫒아 다니기 바쁩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제 본능과 의무 지키느라 싱싱하고 빛나는 눈빛이 새삼 아름답게 보입니다. 정지용의 '슬픈 汽車 '라는 시의 한 구절에선 '우리들의 汽車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간단다'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유월소는 여름소란 뜻으로 유월이 그만큼 여유 있는 계절이란 뜻이 아닐까요.

사월 보릿고개도 모심기도 대강 끝내고 저 풋풋한 힘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유월항쟁이 일어났으리라 생각하니 이십 년 전 그 당시의 젊음이 그리워집니다. 살아있음의 큰 축복은 무엇보다 소리가 아닐까요. 모든 생물 의사소통의 통로여서 서로의 벽을 없애고 마음이 통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가까운 길일 것입니다.

바다 속에도 소리 터널이 있어 미국이나 뉴질랜드에 있는 암컷고래가 짝이 그립거나 급히 부르짖는 소리가 동해 해안에 있는 수컷고래에 전달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보면 분명 저 숲에도 나무는 나무들끼리 바람은 바람끼리 새들은 저들끼리 주고받는 소리통로가 뚫려 있을 것입니다.

무료한 날 등산길 벤치에 앉아 있으면 소란스런 소리들이 사랑을 찾는 소리인지 다투는 소리인지 햇살이 그 사정 알아보려 기웃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벽 예불의 범종 소리나 징소리처럼 독자를 징하게 울려줄 수 있는 소리를 찾아 길 떠난 구도자가 갖추어야 할 어떤 자세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몸도 마음도 징이고 그 징을 소리 나게 하는 징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뜨겁거나 차가운 수많은 바람의 징채들이 우리 가슴 두드리기도 하지요. 즉 봄눈 이기려는 매화 향기나 눈을 온몸에 이고 선 겨울나무의 목 꺾는 울음소리 또는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가장 가까운 가족 간 주고받는 말이나 욕설이, 슬쩍 혼자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징채가 되어 누군가를 기쁘게 하거나 가슴앓이 하도록 울려줄 수 있지요.

그런 아픔을 내면으로 꾹 참다가 씹고 씹어서 정말 참을 수 없도록 가슴이 미어질 때 그 때 울어야 감동을 주는 울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처럼 유월항쟁이나 4·19 또는 5·18도 개개인의 참았던 그런 소리를 모으고 모아 울린 함성이기에 온 국민의 마음통로를 열고 벽을 허물어뜨려 민주주의의 길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힘센 권력도 무너뜨리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언어로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리듬으로 정치가는 웅변으로 나무들은 바람의 힘을 빌려 온몸으로 춤추며 뭔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울음 대신 슬픔의 표현일 수도 있고 기쁨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통로가 잘 되어 있어도 장벽이 높아 서로 마음의 소리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소리통로는 막혀 버릴 것입니다. 태평양을 건너 그 먼 곳에서도 상대방의 마음 알아들을 수 있는 고래들은 그 뜻을 알아듣기 위해 그만큼 순수하게 온 마음 열어놓고 기다린다는 뜻이겠지요.

유월의 향기로우면서도 따스한 저 바람처럼 가슴 속 박힌 가시들의 말 귀 기울여 듣고 녹여줄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보시이고 사랑의 실천일 것입니다. 알고 보면 별일 아닌 울화들까지 남이 녹여주길 기다리기보다 시각장애인이나 고래들처럼 보이지 않는 구원의 소리 내 스스로 찾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뜻 깊은 일 아닐까요?

우선 자신을 잘 다스려야 이웃의 비명에도 귀 기울일 여유가 있을 것이므로 서로 막힌 말씀의 통로 틔우려면 먼저 마음을 열어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 사이 또 밤꽃 향기 몰려오는군요. 그 향기 징채에 여직 둔탁하기만 한 징일 뿐인 제 마음 맡겨 깊이 취해봅니다.

정 숙(시인)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2007년 06월 23일 - 
 
 
 
 
 
 
*. 매일 신문 매일춘추에 빌표된 칼럼

(1) 바람도 달빛도 아니었다 / 정 숙[시인]

뭐라카노,저 편 강 기슭에서/니 뭐라카노,바람에 불려서/

박목월 시인의‘이별가’ 부분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것 같지만 실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정겨움이 넘치고 있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기에 살갑게 키운 자녀를 출가시킨 부모의 허전함과 더불어 요즘 우울증 남성 환자도 많다고 한다. 필자는 별 이유없이 그런 깊고 어두운 우물에 갇혔을 때 시(詩)라는 줄을 붙잡았지만 다행히 썩은 동아줄은 아니었던 것 같다.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신경림의 ‘갈대’란 시에서 시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꼈었다.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갈대 제 울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내면을 깊이 드려다 봐야 한다. 우울증은 어느날 제 삶을 되돌아보며 남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미워한다. 자살 또는 가족까지 해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결국 절망이나 희망의 동아줄도 다 제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중자애[自重自愛]란 이기심이 아닌 참 자기 사랑이고 또한 사회 사랑이다, 자신을 진정 사랑한다면 남을 해칠 수 없다.그것은 곧 자신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뿐 아니고, 

그릇 깨지는 소리에 세상이 소란스럽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던 깨진 것은/칼이 된다./

오세영의 ‘그릇’이란 시 부분처럼 신용과 믿음,사랑이 깨어져 부모와 자식 사이까지 어렵다. 참을성과 서로 따뜻한 눈인사가 절실한 때에 제 삶을 자주 반성하며 언제라도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할 각오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2) 푸른 기차를 타고 / 정 숙[시인]

뜨락 나뭇잎들이 가을 늦바람이 들어 저마다 붉게 혹은 노랗게 치장하는 동안,한 쪽 귀퉁이에 있는 듯 마는 듯 대나무들이 사색에 잠겨 있다. 대나무는 속을 비우며 곧게 자라다가 죽어서 새로 태어나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
그래서 대나무는 지금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며 영혼을온몸으로 울려줄 피리나 대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얼음 위에 댓닢 자리 보아/님과 나와 얼어죽을 망정/ 정둔 오늘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만전춘]>

고려가요처럼 뜨거운 연인들을 위한 댓닢 자리가 될 것인지를 곰곰 생각하는 중인 것 같다. 무언가 되기 위해서는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룩할 수 없다.
      
<여기서부터, ___멀다./칸칸 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서정춘,竹편 1]
      
꽃이 피기까지 백년이란 긴 시간이 걸리고, 대꽃이 피고 나면 대나무의 한 생애는 끝난다.
정치와 인생의 허무한 말년 등 대숲에서 온갖 상념에 젖다보니 뜨거운 여름 동안 자신이 가랑잎처럼긴장이 풀어졌다는 반성을 해 본다.곧 겨울이 오겠지만 찬바람이 오히려 온 정신과 몸을 긴장시키는 코르셋이 되어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꼭 봄이 오리라 확신한다.
      
<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조정권,산정묘지].>  

역사를 꿋꿋하게 견디며 이겨온 배달의 민족 아닌가? 어려울수록 더욱 뭉치며 헤쳐나가던 신라의 화랑정신을 생각하면 정치나 경제면의 이 겨울이 결코 무섭지 않다.
한 칸씩 속 다 비워낸 뒤 또 한 칸을 딛고 곧게 오르는 대나무가 푸른 기차를 타고, 희망과 인내의 멀고 긴 여행길에 나설 채비를 하는가 보다. 제 속을 비우면서 꿋꿋이 외로움을 견딘 사람만이 죽어서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3) 올빼미도 웃던 날 / 정  숙[시인]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어지겠구나!/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달님도 소리내어 깔깔 거렸네[서정주,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추석 전날의 정겨운 풍경을 노시인의 시 한편이 아주 절실히 잘 묘사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생히 살아나는 것 같아 인용해 보았다. 지금 시절이 하 수상해서 따위는 핑계이고 나이 들면서 명절이란 말에 짜증을 내고 그저 의무적으로 받아 들이는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제사 음식에 송편을 빚고, 가족들 한복까지 손수 지으셨으니 다홍빛 갑사 치마와 노랑 저고리를 박음질하시던 어머니 곁에서 설레던 그 때 그 빛깔과 비단 향기는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걸 지금도 느끼면서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앞만 바라보고 달리며 풍선 터지는 줄 모르고 불어대다가 구조 조정이란 시련 앞에서, 좌절하기 보다 더 어려웠던 그 시절에도 우리 어른들께서는 꿈과 아름다운 추억을 자녀들에게 심어 주셨다는 걸 기억하고 용기를 가져야겠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어귀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귀야
어강도리/아으 다롱디리 [井邑詞,고려가요] 

옛 여인네들의 노래처럼 올 추석 보름달이 높이높이 돋아 멀리멀리 비추어 모든 어려운 이들 가슴 구석구석 희망의 빛 뿌려 주기를 달님께 간절히 기원하리라. 


(4) 오-매,단풍 들겄네 / 정  숙[시인]
                                          
시월의 벼논에는 가을 바람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悲愴’을 연주하면서 벼이삭들이 하얀 알곡을 여물게 하고 있었다 햇살의 손길 고루 닿도록 태풍에 시달린 벼이삭의 등허리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 바람이 땀 흘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벼들은 어깨 맞대어 서로 의지하여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에 도취하면서 점점 고개를 숙일 것이다. 
홍수의 피해 소식이 참담했었는데 바람의 빛깔 무궁무진해서 그나마 누렇게 여물어 가는 들판을 보니 그 동안 애쓰신 농민들께 감사드리고, 죄송스런 마음과 더불어 익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 새삼 느낀다.고통없이 어찌 여물어가겠는가? 익는다는 것은 또 젊음을 잃어간다는 뜻도 되니 쓸쓸한 그 마음 안다는 듯이 건너편 숲이 노을에 물든 어머니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가을 바람이 어느 새 갈참나무 잎에 스며들어 붉게 노랗게 색칠한다.
    
‘오- 매,단풍 들겄네’/장ㅅ광에 골불은 감닢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오-매 단풍 들겄네’/ 추석이 내일인디 기둘니리/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단풍 들겄네’ [김영랑,‘오-매,단풍 들겄네’]
     
초록이 지치도록 기다렸다가 바람이 얼른 초록잎에 몸 섞으면 단풍이 든다. 화려하게 바람든 잎새의 속은 또 얼마나 아플 것인가? 아픔이 곧 성숙이고 아름다움이며 그 끝엔 이별이 분명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사람도 나뭇잎과 같아서 내 마음 마지막 단풍들고 나면 더 이상 잃을 것 없어질테니 이젠 아름다운 이별 연습을 해야겠다. 어디서 툭,툭,다 익은 산열매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진달래꽃]
    
소월의 이별도 아름답지만 우리 한글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과 그것을 갈고 닦으신 선조들께 감사드린다.




<나의 시, 이렇게 쓴다>

                                                                 


       중독은 달콤하다
                                         정 숙

1. 기둥서방을 위해


     이미 태어난 내 시들이 참 대견하다. 조용한 시간 곰곰 읽어보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새삼스럽기도 하고 매일 쓰지 않으면 괴롭기도 한 이것이 아무도 즐겨 읽어주지 않는데 왜 이렇게 매달려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일상이 되어 읽고 쓰고 쓸데없이 남의 글 간섭까지 하면서 한 단어를 넣어야 하나 빼버려야 하나  오물딱 조물딱 만지작거리는 것이 중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도 이처럼 정신 쏟아 부을 애인이 있다는 것이 또 행복 아니겠는가. 이제 숨기지도 않고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정신적 기둥서방이라고 할까? 종일 같이 뒹굴어도 질리지 않는, 물고 늘어지면 질수록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길 떠나야 한다.

2. 흰 소의 울음을 찾아

       그러나 그는 까다롭다. 아무 격식 갖추지 않아도 된다면서 또 어느 양반 댁 자손이라며 체험의 객관화 실감유리 묘사 상상력 등등 법도는 얼마나 찾는지 때론 미워서 버릴 작정도 하지만 죽도록 사랑한다며 울며 매달리기도 해서 모른 척 눈감아 주기도 한다. 아예 관심을 더 쏟아 붓기로 작정하여 가슴에 더욱 뜨겁게 품어 그의 밑바닥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내면 뿌리의 아픔과 슬픔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호~불어주며 다독인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이 보이면서 그의 참 모습을 만나게 된다. 가령 징 전시회를 하고 난 뒤 징을 가만히 두드려 보니 소리를 내는 징도 징을 두드리는 징채도 바로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과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있는 징 울음소리 같은 시 한편 쓰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삶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흰 소의 울음을 찾아
          
                                -바람 불다 65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을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결국 시, 그는 깨달음의 길 찾기 아니겠는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올라갈 득도를 위한 마음 다스림은 멀고도 험한 길일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진실하게 살갑게 드러내기 위해 묘사가 있는 것인데 묘사에만 빠져 허우적대다가 물만 실컷 먹고 쓰러지는 짧은 사유가 안타깝기도 하다. 앉아서 누워서 찔러보다가 입맞춤하다가 욕도 하면서 가까이서 멀리서 바라보면서 끈적끈적 질기게 씹히는 건더기를 찾아 날마다 그의 고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더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꼬집는 말도 비꼬는 소리도 바람의 회초리에 몸을 맡긴다. 가슴 찢어지도록 실컷 두드려 맞아도 본다. 또한 나의 말도 웃음도 눈길도 상대방 가슴에 부딪는 징채가 될 것이므로 시, 짝사랑에 빠진 이들을 위해 기꺼이 징채가 되어 맑은 시안을 갖도록 아프게 두드린다. 그들의 울음소리 누군가의 심금 울리며 은은히 퍼져나갈 날 기다리며


3.다듬이질 


     그런 사유가 또 늘어지거나 곰팡이에 먹힐 수 있어 걱정이다. 요즘 수필 같은 긴장미 떨어진 작품이 유행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좀 더 많은 독자를 위해  코르셋을 풀어버릴까 고민도 해본다. 그러면서도 다듬이질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생명은 긴장미라면서 밤새 당기고 밟고 물을 뿜어 꼽꼽할 때 잠들지 못하도록 다시 두드린다. 한 낮 하얗게 표백이 되어 빨랫줄에서 주름살 하나 없이 헛기침이라도 하며 펄럭일 그를 위해 일주일 아니 한 달도 마다않고 다듬고 또 다시 다듬는다. 다 되었다고 넣어둔 것들 시집으로 묶을 때 제목도 다시 바꿔보고 사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새로운 시어 찾기에도 골몰하며 한 번 더 다독이며 다듬는다. 그래도 결국 후회만 남는다. 가슴이 아파 또 그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시, 그는 영원한 나의 고통의 바다이자 안식처이므로, 성냥 한 개비에 지나지 않는 날 뜨겁게 불 붙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이므로, 그 성냥 한 개비가 산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훨훨 타올라 허전한 누군가의 가슴 불붙일 수 있는 날 기다린다. 결국 나의 더 잘난 기둥서방 그를 위해 날마다 지치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가?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빛, 빛깔의 시인 그 섬세함과 치밀한 상상력을 찾아서



 대구문학 아카데미 대표를 근 20년 지켜 오시면서 150명의 제자들과 60여명의 시인을 배출하시느라 얼마나 고단하셨을까요? 새삼 그 격정의 세월에 대해 짐작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신경림의 ‘갈대’를 낭송하실 때의 그 열정에서 시 한편이 소설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계기가 되어 더욱 인상 깊습니다. 지금 팔순을 넘기느라 가물가물해진 시력 때문에  대구문학아카데미 10주년을 지나면서 16기부터 필자에게 시창작반을 넘겨주셔서 파도 센 바다에서 시의 길 찾느라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전국 60여명의 제자와 인터넷 포엠스쿨 정숙반까지 운영하면서 여러 제자들이 계간지 ‘시안’ ‘시와 시학’ ‘전태일 문학상’ 포엠토피아 신춘문예‘ 등 그 외 여러 문학잡지로 등단하는 많은 성과가 있어 늘 감사드릴 뿐입니다. 감히 스승님의 글을 평하기보다 잊혀져가는  楚民 박주일 시인의 시세계를 재조명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시집[바람아. 문둥아]에서 시에서 상상력의 기능

 시 쓰는 일은 그 자체로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며, 가장 순수한 나로 회귀하는 일이라면서 관습에서의 해방, 자유로운 세계를 위하여 시인은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상상력은 모든 사물의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힘이며,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성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면서 그 일상성을 긍정한다는데 그래서 부정과 긍정의 교차에서 시의 원리가 여러 알레고리로 나타나는 가 봅니다. 
 네 번째 시집[바람아. 문둥아]는 그러한 비실제성의 집약이며, 일상성을 부정함으로써 비로소 해방되는 시적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방이 또 하나의 구속이기에 시인은 외로움의 늪에 다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엔가 우연히
너는 있고 네 그림자가 없는
그림자는 있고 네가 없는
그런 시간에
눈은 있고 눈깔이 없고
잇빨이며 혓바닥이 달아난
그런 시간에......                     -[문둥아.40]에서-

눈은 있고
눈깔은 없다.
눈썹은 바람에 가고
살점은 놀 끝에 묻어있다.               -[문둥아.24]에서-  

시인의 시안에 비친 [눈은 있고 눈깔이 없고/ 잇빨이며 혓바닥이 달아난],[눈썹은 바람에 가고/살점은 놀 끝에 묻어있다.] 문둥이를 통해 버림받거나 소외된 존재에 대한 아픔을 절규로 자학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학으로 자기를 억제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바람’을 역동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습니다. 그 아픔에 순응하지 않고 기계화에 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풍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인의 위기의식을 바람의 빠른 흐름으로 표현하는 젊은 감각이 숨어 있습니다.


2. 죽음에서 삶을 유추하다, “新羅遺物詩抄”


 죽어간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을 밤새/손가락 사이로 기웃거린다/하나의 사람은 살아있지만/살아남은 사람은/ 죽어간 사람의 발치에 깔려/끝내 눈감을 수 없고,  __[動物土偶]
 遺物이라는 소재를 두고 얼른 느껴지는 회고적인 넋두리에서 즉 재생상상력에서 해방되어 있습니다. 즉 신라라는 역사적인 소재의 좁은 세계로부터 독자의 눈을 넓고 구애되지 않는 시야로 이끌어 주고 있는 것은 유물을 유물로 보지 않고 연상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유추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즉 유물과의 사이에 자기 동일시가 이루어지고 있어 시간과 죽음을 노리게 다루듯 하는 어린애처럼 순진해 보이는 시인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십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삶이 생성되는 순환과 흐름의 우주 원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

3. 시집 [잡초기] 연작시에서 본 생명의 끈질김과 긴장미
 
 선생님께서도 가장 아끼는 작품이 연작시  [잡초기]라고 말씀하시는데 잡초는 民草이면서 강한 민중성을 표상하는 쉽게 꺾이거나 좌절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여름날
모질고 모질던 쇠풀의
고 속심을 보라.
불의 땅바닥에 착 배깔고
미련도 아무런 애무도 없이
푸른 몸뚱아리로 사방에 들어선다.
내 핏줄에 잠든 잠을 깨우며
나의 온몸을 덮는다.
나는 조금씩 김이 새는 기분이고
차츰 맥박이 처진다.
깨어나도 쇠풀은 될 수 없고
그냥 이대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갈라진 땅 위에
하루해는 너무 길다.

강인하고 집요하게 생명 활동을 전개하는 쇠풀에 감탄하면서도 그 쇠풀처럼 생명 현상의 무자비한 법칙에 따를 수 없는 자신의 삶의 한계를 물끄러미 방관자로서 바라볼 밖에 없음을 한탄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은 ‘미련도 아무 애증도 없이’자신의 삶을 확장해 나가지만 그럴 수 없기에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 한계를 다음 시에서는 순응하면서 관조하면서 받아들이는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에는 산만큼의
바람과 울음이 있다.
밤이면 산은
소나무와 자작나무들을 데불고
계곡으로 떨어져 내린다.
들판에는 들판의 넓이로
울음과 눈물이 고여 있다가
겨울 들판을 수시로 쓸어 올리고
쉴 새 없이 밀어 붙인다.

그것은 자연과 인생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지요. 예순을 넘긴 시인이 오랜 세월 동안 삶의 각박한 인생살이의 쓰고 떫음을 견디고 마침내 얻어 낼 수 있는 채찍으로 자기 단련의 길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리이겠지요.

  그러면서 세파에 부대끼며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몰고 가는 물]에서, 

내 바람으로 떠날 때/ 그대 갈잎에 기대어/ 흔들리며 날리며 가리라,/ 어쩔 수 없이/ 바람은 바람으로 떠나야 하고/갈잎은 갈잎으로 파도쳐야 한다,/ 후회 없다./

 바람의 흐름과 파도의 출렁임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시인의 정신이 잠시도 멈추어 있지 않음을,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후회 없다.] 한 마디로 끊어 시적 긴장미를 살려주고 있습니다.
  시에서 긴장미란 생명이라고 배웠는데 요즘 이상하게 수필 같은 늘어진 시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독자층을 늘이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그래도 진정한 시인은 고독을 즐겨 끌어안고 사리 한 알로 승화 시킬 줄도 알아야겠지요. 잡초기 연작시 가운데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한편이 있습니다. ‘안윤하’시인의 낭송과 함께 음미해야 맛이 나긴 하지만 수련을 통해 눈길은 늘 바람 부는 쪽으로 돌려져 있어 마음은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떠돌고 있지만 몸은 지친 다릴 묶고 또 걸어가야 하는 시인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숨 가쁘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갈 수 있겠는가/ 뜨거운 숨소릴 밀치고/ 빈 가슴으로 훌쩍/ 떠날 수 있겠는가/ 이글이글 타는 눈 버리고/고독의 벌판을 지나/ 아득한 바람의 늪에서 내/ 눈감을 수 있겠는가/ 너를 버리고/ 젖은 음성 널 버리고/ 깨풀이며 강아지풀이나 죽이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훌훌 한 세월/ 잊을 수 있겠는가/ 살기 위하여/ 잡초같이 살아남기 위하여/ 지친 다릴 함께 묶고/ 초록빛 사이/ 저 시퍼런 하늘 뭉게며/불기의 모래밭 짓밟고/ 박토의 그늘을 마구 자르고/ 억새풀 치를 떠는 그늘을 피의/ 상채기 재우고 재우면서 영원히/영원히 우리는/잠들 수 있겠는가/
-[잡초기 중 -----수련에게 전문]

한줌 뜰귀에서도 짐짓/ 잘려나가는 여름의 그림자,/ 핏줄 또한 안으로 가다듬은/ 풀잎 하나에도/ 벌레 울음은 또한 스민다./ 그 운 오래오래 삭아서/

제스네리아 빛으로,/ 제스네리아 빛으로,/

타고 있는 眉間,/ 때때로 눈 어두워/ 그대 만남이 잔잔한 虛空인/
것을 알리라./

나의 깊은 곳으로/ 아, 풀잎 속살의 제일 아픈/곳으로/다가오는 발자국 소릴/ 이젠 알리라/ 잘린 그림자여./[제스네리아] 전문

       “그는 늘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술맛에 민감하고 안주 맛에 민감하다. 그는 술과 안주를 다루듯 시를 다룰 뿐이다.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시던 김춘수시인의 말씀 속에는 피는 꽃 뿐 아니라 지는 꽃잎에서 낙엽 더미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닌 박주일 선생님의 시세계 특색들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제스네리아’ 라고 하는 사물과는 상관없이 소리의 울림이 빚는 어떤 빛깔이고 정경이겠지요. 한 사물과의 교감과 상응의 세계에서 그 결이 너무도 섬세해서 ‘제스네리아’란 단어를 반복하다가 보면 어느새 아주 낯선 순수감각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시인의 시세계가 모네의 수련 한 폭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김춘수시인처럼 의미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항상 귀를 열어놓고 기다리는 사람이기에 발자국 소리에 민감하지요. 그것은 사물을 그윽이 순수지각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우정을 나누다가 시인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돌담 언저리/ 기웃거리던 하루해도 마지막/ 긴 수염을 자르고 나면/ 풀잎 새 풀잎바람으로 흔들리는/ 저 가녀린 미동을 어쩌나,/

돌밭엔 돌꽃끼리/ 무덤엔 하얀 눈끼리ㅣ 어루만지다가/ 쉬 외로운 빛 거두고 나면/누가 몸으로 울고 있나,/울어선 한량없이/ 어두운 강을 이루고 있나/

[동행]이라는 시의 부분에서는 ‘풀잎 새 풀잎바람’‘돌밭엔 돌꽃 끼리 리듬과 똑같은 비중으로 그 돌꽃과 하얀 눈이 끼리 끼리 편을 갈라 가는 듯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 동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의미가 미묘하게 드러나면서 시의  밀도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들이 모발로 몇 겹이나 엮어놓은 듯이 섬세하면서 질기게 보이는 것은 신선한 상상력과 감각의 섬세함이 문장의 밀도를 통하여 얻게 된 견고성이라고 김춘수 시인이 평하고 있는 이유를 알 듯 합니다. 이미지에만 머무르다 보면 자칫 말장난이나 단어의 나열 밖에 될 수 없는 현대시의 한 형태에서 벗어나려는 그래서 뭔가 진한 감동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보여 더욱 그런 밀도가 느껴지는 것이리라 짐작해 봅니다.

4. 감각의 결 , 그 섬세함 [시집, 피그미 풀꽃]

피그미꽃/ 1밀리의 잎에/ 무성히 여름은 다가온다/ 물론 철은 한철인데/ 무심한 눈들에는 잘 보이지 않는/ 난쟁이 피그미꽃에/ 칠월 햇살은 사정없이 꽂힌다/...중략....
피그미 꽃은 속으로 피 말리지만/ 담배씨만큼의 소망 하나 쯤/ 캄캄하고 아득한 흙에 묻으면/ 살아가는 일이며 밤은/ 여전히 어깨 누른다/ 때론 달빛 한 줄도 무겁다/ 그럴 수밖에 없다./_[칠월, 피그미풀꽃]

 지구상의 가장 왜소한 종족으로 알려져 있는 피그미족에서 차용한 이미지로 피그미풀이란 새로운 단어를 조어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숨은 민족어를 찾아 갈고 닦거나 새로운 시어를 개발하는 그런 사명감이 있어야겠지요. 그 조그마한 사물을 의인화하여 자신을 낮추고 작게 함으로써 생명 사랑의 한 모습을, 그 
속에서 달빛 한 줄도 무거운 자신의 고단한 삶과 그 와중에도 담배씨만한 꿈 하나 쯤 갖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여 아주 구체적이고 때깔 좋은 천을 짜고 있습니다.

5. 시집 [는개 그리고 달빛]에서의 궁합과 관능과 묘사력

 궁합이란 게 있기는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흔히 궁합이 맞다, 안 맞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 세계에서도 그 작품을 이루고 있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이 궁합이 맞는 단어들이 모여 있나, 그렇지 않나에 따라서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는개 그리고 달빛]은 이 낱말 궁합 맞추기에 힘을 써보았다. 궁합이 맞았다면 오래 빛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쉬 시들어질 것이다.___자서 중에서

 어느 봄날 청도 적천사 진달래 꽃길 오르면서 ‘이상번 ’시인이 선생님 ‘는개가 무슨 뜻입니까?’ 하니 선생님은 싱긋이 실눈 미소 지으며
‘는개는 갓 목욕탕에서 나온 여인의 몸을 감싸는 따스운 김이지’
 대답하시던 그 모습 잊혀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5편의 연작시인데 그 중 한편을 예로 들어보면 칠순이 지난 그 연세에도 관능에 가슴 떨며 잠 못 이루는 남성임을 자랑스레 과시하는 예리한 미적 언어의 연금술을 보여줍니다. 그런 정서의 묘사를 위해 동원된 낱말들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동적이면서 궁합이 잘 맞는지 읽으면서 전율이 온 몸으로 물결쳐 오는 느낌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런 자화상을 통해 늘 숨가쁜 가슴으로 사물을 사랑하며 꼭 알맞은 시어 하나로 우주의 원리를 꿰뚫을 수 있는 명사수가 되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정서를 조율하고 계실 것입니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방 하나/ 벌써 방은 는개에 젖어 있었네/ 아무것도 모르는 달빛은/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알몸에 싸늘히 감기고 있었네/ 사방의 벽은 완고하다./ 한강 쪽 유리문 하나가/ 바람의 출입 지키고 있었고/ 시방 한강 물빛이/ 강의 몸둥아리를 끝없이. 이끌어가고 있듯이/ 그대 눈빛이 숨의 방향을/ 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었네/ 눈빛 끝에 타오르는 촛불 가까이/ 사랑은 휘청거렸네/ 잠을 잃은 사랑은 초록빛이다. 밤이 는개에 젖는 동안에/ 내 곁에 네 그림자 있었고/ 그 옆에 숨가쁜 가슴 있었네/-[는개 그리고 달빛 1 전문]

 이 글을 읽다보면 달 밝은 여름밤이 생각납니다. 무논에서는 개구리 울음 소리 요란하고 외진 산길, 옆에 사람은 있지만 소통이 되지 않고 누군가 그리워서 몸 깊은 곳에서 파도치는 그 무엇이, 관능이 걷잡을 수 없는 그런 뜨거운 밤 말입니다. 숨가쁜 가슴이 실제로 옆에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상상력은 시인이 가꿀 수 있는 또 다른 피안의 세계이기도 하지요.


6.시집[물빛, 그 영원]-- 미당 형님과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미당 형님과의 수많은 대화 가운데 지금도 가슴에 선연히 살아있는 게 하나 있다. ‘내 영원은 물빛’이란 말씀이다. 새로 시집을 꾸미면서 시집명으로 [물빛 , 그 영원]이라고 한 것도 미당 형님과의 추억을 더듬는데서 연유한다. 개구리 수영을 익히던 시절은 갔지만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형님의 시의 세계와 인연은 영원할 것이다. -------------[시인의 산문] 중에서

 김은진의 해금 소리 끝없이 풀리고 더러는 내 가슴 속 뚫고 휘돌아 나간다. 지금 네 가버린 소리 더듬거리며 내 귀 따라 나선다. 어쩌면 혼의 세계 돌아오는 그 아슴한 파도 떨리는 파도떼서리 보인다.  -[해금소리와 추억의 귀와]

 절친한 친구 분 중 지휘자였던 이기홍 음대 교수님이 계셨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미샤 마이스키]의 ‘悲歌’ 멜로디에 시를 붙여 제자들께 노래를 시키기도 하셨고 수업 중 [차이코브스키]의 ‘우울한 세레나데’는 가슴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 파는 애절함이 있어 한숨을 쉬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김은진의 해금 연주를 좋아하셔서 취한 듯 흥얼거리면서 강의 시간에 흥을 돋우시던 모습 생생히 살아납니다. 그 소리 떨림에 대한 밝은 시안과 상상력은 또 얼마나 젊은가요? 역동적인 출렁거림이 살아 흐르는 묘사력에 새삼 감탄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시력이나 연세에 만족하거나 머물지 않고  얼마나 외롭게 정진하셨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7.마무리

 시집 [가솔송아 꿈결 같구나] 까지 열 네 권의 시집을 상재하면서 지상에서 차려내는 마지막 모국어의 성찬일지도 모르겠다 셨지만 지금도 원고 정리를 하시다가 잘 풀리지 않는다며 끙끙 앓으시는 모습에 죽어서도 시를 쓰겠다던 각오 아직도 버리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에게 ‘시는 재미가 있든지 감동을 주어야한다’ 던 그 열정 모든 제자들 가슴에 뿌리깊이 심어주시고 신선한 이미지에 깊은 깨달음이 있는 결 고운 시를 살며, 쓰고 또 쓰려고 노력하고 계신 것입니다.

담을 넘어오는 꽃줄
노란빛의
꽃줄이 귀여워보이는데
하루가 더 힘이 있어
안내하는 첫줄이
왕성하다

어서 오시게!
                  --[유도화] 전문-----
 약간 모호하면서도 독자에게 상상력의 길을 열어주는 연상상상력의 이미지 시입니다.  현대시에서는 상상력이 그 시의 수준을 말해 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의 등급이기도 하지요. 상상력이 단지 추억 회상 형식인 재생상상력인가, 아니면 체험을 이미지화한 연상 상상력인가, 거기서 한 단계 더 뛰어 오르려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연상상상이 아닌 아주 낯선 창조적인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상력만으론 일회성에 그치기 쉽습니다. 진한 감동을 주려면 그 속에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생님의 시는 곳곳에 번득이는 기지를 이미지화한 수준 높은 젊은 감각에 촘촘한 견고성과 섬세한 밀도가 있어 새삼 놀라울 뿐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신경림’ 시인이 ‘참여시’도 이제 예술성을 가미한 서정시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시는 만고의 역적이다’  ‘고은’선생님 말씀처럼 그렇게 시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그 얼굴 모습이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자신의 시 한 편을 위해 뼈를 깎는 아픔 견디면서 노력해야 한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자로서 스승의 작품을 알 기회 늦었지만 앞으로 더 세밀히 끌어안고 야무지게 음미해봐야겠습니다. 선생님의 시 가슴속 달큰한 엑기스만 남을 때까지






박명옥님 시집이 출간되었어요.한국문학세상에서 사진과 함께 나왔네요.  축하드립니다.

빨간 립스틱 이 제목입니다. 검은 립스틱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제가 쓴 추천서입니다.



여기 해어화 한 송이 피어나려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눈과 귀 열리도록 수년을 몸 마음 단련 거듭하여 
이제 수줍은 듯 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
달빛으로 뜨개질하며
한 가닥 실바람만 불어도 떨어지는 꿈 서러워 햇살 속 붉은 
피로 피어나기도 하는 넝쿨장미의 시인 박명옥님의
시안은
바람 속 더듬이도 찾아 길 밝힐 수 있으며
냇물 속에서 대낮의 정사까지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모든 지친 사물을 따뜻한 불빛이 켜져 있는 풍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모쪼록 첫 시집 [불이 켜져 있는 풍경] 이 널리 읽히어
그 시심과 상상력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깨우침 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2007년, 팔월 처용아내 정 숙 [시인] 
 
대구 시학회를 찾아서


1. 집 짓는 사람들

    계간 시 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시인들이 이제 백 여 명도 넘는다.  모두 하나같이 인물이나 마음 씀씀이가 미남 미녀라고 한다면 고슴도치 가족이라고 웃겠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 중에서 대구 시학회는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대구 출신으로 모여 있어 문인협회나 시인협회에서 중임을 맡은 분들 그리고 전국 시단에서 뛰어난 시인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상도식 우정 표현인 덤덤하게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있어 벌써 십 여 년도 지났지만 여전히 모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2005년엔 지방 모임에서 처음으로 테마시집 ‘그 집에선 누구나 새가 된다’ [만인사] 동인지를 펴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시를 쓰고 시집으로 묶는 일도 집 한 채 짓는 일이라며 박영호 회장과 그 외 열 명의 회원이 모여 ‘집’이라는 모티프로 다양한 각도에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2.하루에 집을 열두 번도  지었다가 허무는 목수들 

    그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회장 박영호는 외과 의사이며 첫 시집 ‘산길에서 중얼거리다’로 편운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고 지금 총무 박윤배는 고등학교 미술교사이며 198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도 당선된 바 있으며 시집엔 ‘쑥의 비밀’ ‘얼룩’이 있다. 안윤하는 여성이지만 훌륭한 사업가라고 해야 할까? 지금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으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 이승주는 대구 작가회의 이사로 여고 국어교사로 ‘꽃의 마음’나무의 마음‘등 시집이 있다. 이정화는 ‘포도주를 뜨며’란 첫시집이 있으며 이진엽은 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까지 당선된 바 있으며 시집엔‘아직은 불꽃을’ ‘낯선 벌판의 종소리’평론집 ‘존재의 집짓기’가 있다. 현재 효성여고 국어교사이다. 장하빈은 경명여고 국어교사이면서 시집엔 ‘비 혹은 얼룩말’이 있다. 대구 시오리란 동인의 중요 회원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같은 대구 시학회 회원으로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등 별로 볼품없는 집을 지으면서도 대구문학아카데미와 포엠토피아의 포엠스쿨에서 시 강의를하고 있어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현재 대구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조두섭 시인은 매일신춘문예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 어 평론집‘비동일화의 시학’ ‘한국근대시의 이념과 형식’ ‘대구경북문인연구’ 그 외 ‘눈물은 강물보다 깊어 건너지 못하고’ ‘망치로 고요를 펴다’란 시집이 있다. 마지막으로 막내둥이 유인서는 ‘창작과 비평’에서 첫 시집‘그는 늘 오른쪽에 앉는다’를 상재했고 현재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시인인 점들이 마음 든든하게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국어교사이며 ‘시하늘’ 잡지의 편집인이기도한  최동룡 시인의 ‘울릉도’시집이 있다.

3.존재의 집과 영혼의 집 짓기

        모두 장인 정신이 투철해서 집을 짓는 솜씨 역시 야무지다. 주춧돌에서 대들보 사이에 자신의 집의 빛과 소리를 적절히 넣어 아름다운 꽃밭까지 완벽하게 표현하려 적어도 노력하는 시인들이다. 지금부터 ‘집’이란 같은 테마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평론가 이진엽시인의 평을 빌리자면 ‘집’과‘몸’의 유기적 상관성을 통해 삶의 쇄신을 꿈꾼다는 박영호의 ‘낡은 집’을 살펴보기로 한다.
내 몸을 눕힐 집이/너무 낡아 드나들 때마다/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 난다/무너질까 두렵다/내 영혼이 들어가 쉴 몸이/너무 오래 끌고 다녀서/반란을 일으키는지 움직일 때마다/곳곳이 쑤시고 덜거덕거린다/
                                        [부분]
      현대 사회의 병폐를 알레고리를 통해 적절하게 폭로하고 있다는 박윤배의 ‘집, 고슴도치’를 살펴보면 도시는 온통 아스팔트의 벽돌/노숙의 붐비는 절망들이/ 종이상자를 깔고 점령해버려/잠든 한 사내의 튀어나온 발가락/깨물어주고 싶은 분노도 잠시/더 이상 온전한 지하/오래된 나무의 뿌리 아래/집 하나 갖는 꿈이 막연하다/[부분]

    떠남과 미련‘이라는 모순된 심리 상태를 통해 집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안윤하의 ’집‘은 또 다른 감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른/내 눈물의/내 사랑의/감옥/
수인번호; 540721-2691815[부분]

     아름다운 티벳의 자연을 배경으로 집의 종교적 의미를 심도있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이정화의‘ 집’ 부분을 살펴본다.
바람의 손이/ 끊임없이 돌리는/ 저 마니차 경들/

    이진엽의 ‘영혼의 빈집’에서는 언제나 바람이 스치는 곳/ 그 집은 항상 모든 문이 열려있다/튼튼한 자물쇠로 사방을 굳게 잠가도/밤새 바람은 달그락달그락/맑은 열쇠 소리로 잠긴 문을 따버린다/[부분]고 묘사했고

     장하빈의 ‘담배창고에 대한 추억’은 목조계단 밟고 가파른 시간 더듬어 내려가면/ 캉캉캉캉 울리는/ 거미줄에 걸리어 파닥이는 먼지의 기억들/ [부분] 집과 시간을 씨줄 날줄로 하여 삶의 본질적 문제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한다.

      정숙의 ‘폐가‘에서는 시어머님, 팔순 문턱에 서 계신다/ 살아가기 위해/ 가족을 위해 서까래 정렬시키듯 정성스레/ 두레밥상을 차리시던 분/ 이제 무너져 가는 빈집에 갇혀/밤마다 저승길의 어둠, 바라보신다[부분]에서는   팔순에 접어든 시모의 삶과 기울어가는 빈집의 이미지를 병치시키면서 인간의 한 생애에 대한 사색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승주의 ‘바람의 집’ 앵초꽃을 새로 피게 하고/ 목련가지 위에 날아온 어린 새떼들의/ 흰 날개를 펴게 하고는/ 누가 불렀는지/ 순삭간에 사라졌다[부분]에서는 바람과 집이라는 시의 중심화소를 통해 우주 속에 자생자화하는 자연의 이법을 담백한 목소리로 들려준다고 자세하게 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두섭의 ‘둥지’는 상징계의 숲속에 지어진 새집을 바라보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고 세계를 자아 깊숙이 끌어들이는 내면화와 긴장된 상징어로 연쇄되고 있다고 하는 본문을 적어보면 온몸에 퍼지는 울음소리/ 그 벼랑 끝이/ 그들이 가로누운 아늑한 거처이었으니/[부분]

    이상으로 11명의 동인들 가운데서 최동룡 유인서의 작품이 빠지고 존재의 집, 영혼의 집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고 싶어 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4.추녀 끝에 등불을 달고

     대부분의 문화 예술이 중앙으로 집중되어 해바라기 밖에 될 수 없는 현실에서 대구 시학회는 지역의 문화 발전을 위해 감히 등불 높이 내걸어 시의 수준 높은 길을 찾아 닦고  조이며 바람과 햇살을 깔아 소나무 재질의 솔향 가득한 집 한 채 든든하게 짓고 싶은 것이다. 비록 문학기행이나 시낭송회 자주 열어 화려하기보다 조용히 만나 세상과 서로의 체험 나누어 시어를 갈고 닦기에 여념이 없다. 한마디로 시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폼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아와 뭔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자의 자세로 하루하루를 아주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란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물론 대부분 시인들의 사고가 그렇긴 하지만








정 숙(시인)


 

우선 시력도 얼마 되지 않으면서 시에 대해 아는 체한다는 것이 몹시 건방진 듯하여 죄송스럽다. 그러나 그 동안 현장에서 시를 가르치다 보니 나름대로 잣대를 세워두어야 하겠기에 감히 정리 해볼 용기를 가져본다.


시는 내게 생명의 밧줄이다. 옛 설화 가운데 해와 달에 나오는 썩지 않은 그 밧줄인 셈이다. 깊고 어두운 웅덩이에 갇힌 나를 건져 올려준 두레박이기도 하다. 시를 쓰는 유형엔 살다보니 허무하고 뭔가 그립고 고독하다 내숭을 떨며 사치로 쓰는 이들이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 삶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이 미물임을 통감하고 진정 허기져서 쓰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이들의 빛으로 위안으로 무작정 쓰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필자의 경우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가끔 오싹해질 때가 있다.


 

- 우물 속 자신의 모습 바라보다가


 

이처럼 시는 자유, 평등, 자아실현 또는 가난, 좌절, 운명 등을 이기기 위해 또는 나를 반성하고 참회하기 위해 또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것인데 단지 시대 흐름에 따라 그 표현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 좋은 시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은 거의 같으리라고 본다. 즉, 모든 사물을 사유의 깊이와 애정으로 바라보며 서정성과 깨우침으로 사상성의 조화를 이루며 민족어의 승화를 지향하여 숨은 詩語를 찾아내거나 造語로 삶의 모순과 이율배반으로부터 진실을 찾아낸 시라고. 어쨌거나 시는 읽는 이에게 진한 감동을 주든지 아니면 재미라도 있어야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 무당처럼 죽은 것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랑의 표현이 다르듯 현대시는 그 표현방법이 조금 다를 뿐인데 거기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시 공부를 하려는 대다수가 19세기 낭만주의 시를 좋아하거나 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 어렵다거나 이해하기 힘들다 하는 것은 直情 즉, 정서의 직접적 표출이 아닌 비유로 다른 사물로 변용 또는 치환하여 그 글을 자꾸 곱씹어 감춘 뜻을 찾아내야 하는 內包언어이기 때문일 것이고 또 리듬보다 묘사를 중요시하고 모든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의인화를 해서 더 신선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관찰력과 문장력도 있어야겠지만 사물을 그냥 사물로 보지 않고 그 뒤의 보이지 않는 생명력을 찾아내는 視眼. 즉, 직관력도 있어야 하니 사실 시 쓰는 일이 무척 힘든 일이다. 이것은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있어야 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육감을 열어 잠시도 깨어있지 않으면 금새 뾰루퉁 보따리 싸는 애첩의 기질이 있으니 말할 것 있겠는가. 그러다 보면 시인은 무당처럼 죽은 모든 것들의 말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의 두 번째 시집 「위기의 꽃」에 실린 졸시로 성당 어느 결혼예식에서 십자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깨달은 것이다.


 

<참사랑>


 

예수의 거웃 가리려고

바둥바둥

십자가를 진

작은

천 조각, 


 

聖衣!


 

물론 예수가 참사랑이겠지만 그 예수의 치부를 가리고 있는 천 조각 자신이 진정 참사랑이란 걸 보여주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에 무릎을 탁 치며 쓴 글이다. 그런데 이런 시는 애정을 가지고 자꾸 읽어주어야 그 깊은 뜻이 나타나니 그런 독자가 몇 없어 힘없는 무명 시인은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

풍자와 해학으로


 

살다보면 황당한 일도 많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것을 당장 말로 표현하는 이들은 그래도 속이 후련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우리 선조들은 탈춤으로 창으로 해학적인 풍자로 표현하는 지혜를 가졌으니 필자의 첫시집 『신처용가』는 처용설화를 패러디하여 경상도 남정네들의 속성을 흉보고 어루고 달랜 졸시들이다. 그 중 한편을 예로 들어보면,


 

<休火山이라예>

― 처용아내․2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 서답 : 월경 / 시상에 : 세상에 / 카는 : 하는 / 카믄 : 하면


 

솔직히 미친 듯이 연작으로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속이 후련했던지 특히 돌아가실 때까지 편운 선생님께서 많은 격려를 해주시고 박수를 쳐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

중충 묘사와 치열성으로


 

요즘 묘사를 중심으로 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시들도 많이 있지만 뒷끝이 뭔가 섭섭해서 중층 묘사와 치열성으로 묘사를 겸한 철학적 깨달음이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발표된 시 ‘밤을 태우는 힘에 대하여‘ 란 졸시 中 지면상 마지막 부분이다.


 

그 시간만큼은 서로 순대 속처럼 

끈끈한 피로 엉켜 시린 추위를 달래주고 있었다

하찮은 조개 몇 개와 막창들이 그리고 떡볶이까지

아무 힘없어 보이는 것들끼리 어울려

어둠을 몰아내려 불 지피며

세상을 움켜쥐고 끌어당기거나 끌어안는

힘, 그 힘이 부러워 

나는 밤의 깊이도 잊은 채 앉아 있었다


 

특히, 현대시가 언어의 폭력이란 말도 많이 쓰고 있는데 물론 그런 부분을 공감하기도 하지만 젊은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야 하듯이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남이 쓰지 않는 새로운 시어를 개발하기 위한 조금 억지스런 면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할 줄 알아야


 

여기서 더욱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상력이다. 그 시의 성공 여부를 등급으로 메기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수준을 보아야 한다. 단순히 체험을 회상하는 재생상상력의 작품인가 아니면 연상 상상력에서 비유로 이미지화를 잘 했느냐 마지막엔 그 누구도 미쳐 생각해 보지 못한 창조적인 상상력이냐에 따라 작품의 등급이 나누어진다. 거기다 갓 낚아 올린 붕어처럼 펄펄 살아 숨쉬는 신선한 맛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감각적이어야 한다. 요즘 대부분의 신춘문예 시들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작품을 대했을 땐 살이 떨리고 질투심이 불같이 일어나야 적어도 그런 시 가까이 가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죽을 때까지 그런 시 한편 얻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감추는 수밖에 없다.


 

­어린이의 창의력을 위해


 

아무리 떠들어봤자 선배님들이 다 하신 말씀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 좋은 작품일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층에 현대시를 가르치면서 특히 초등학교부터 현대시를 가르치면 문장력이나 치밀한 사고력 뿐 아니라 관찰력과 직관력으로 상상력이 풍부해지니 장래 창의력 있는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예를 들자면 해바라기 꽃에서 엄마의 얼굴을, 또는 꽃핀 개나리를 보고 개나리가 봄을 밀어 올린다고 볼 수 있도록]


 

­아줌마는 시 쓰면 안 돼요!


 

마지막으로 여성이란 입장이 참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아 걱정이다. 어느 문학 강연 에서 아줌마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젊은 남자 시인이 대뜸 ‘아줌마는 시 쓰면 안돼요. 성상납을 해야 돼요.’ 그 말에 납득이 가지 않아 하는 필자에게 남자 시인들은 대부분 당연하다는 듯 무슨 딴 소리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에 새삼 놀란 적이 있다. 물론 그것도 자신의 능력이라고 자랑스러워 할 일이겠지만 몇 사람 때문에 맛은커녕 구경도 못해본 많은 여성 시인들에 대한 시선이 그렇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다른 여성 시인에게도 해명을 좀 하라고 해도 묵묵부답이니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닌 듯하다. 여성들이 같이 손잡고 남성들의 시기심 같은 그런 사고와 시선을 근절시킬 수는 없을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며 빈정거리는 그들을 위해 서로 손잡고 해결하는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월간『우이시』제194호)






 날개가 날아오르는 길을 모르니

1.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는 제게 날개입니다. 그러나 그 날개 아직 어디로 날아 올라야할지 길을 모르니 바람그늘을 빌려 제 그늘 깊이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하면 길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 길을 모르기 때문에 무딘 삽으로 뿌리 속 뿌리에 앉은 옹이의 맺힌 한 들으려 파헤치고 있습니다. 이 복잡한 시기에 왜 달빛에 장미 가시에 시비를 걸고넘어지는지 묻겠지만 시를 버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고개를 넘어 버려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자네 전화 목소리는 언제나 통통 튀며 밝은데 뭔 좋은 일이 맨날 그렇게 있는가?” 
“아이고 선생님, 제가 남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건 이 웃음뿐인데요”
  오래전 어느 유명한 노시인님과의 통화 내용입니다. 그렇지요. 적어도 제겐 마주하는 꽃들이 던져주는 미소가 황감해 눈물이 날 지경이어서 보답하는 뜻으로 늘 환하게 웃었습니다. 삶의 전략으로 항상 찡그리며 우는 해바라기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주변이 어둡고 괴로운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면서 그렇게 자주 울어 동정심도 적당히 얻어가며 꺾어지기도 하며 생을 맛있게 조리할 줄 알아야하는데 그런 기술이 제겐 없습니다.

 삼십년 함께 산 시어머님은 그런 요령을 아셨지요. 시아버님과 할머님 사랑을 받는 육남매 맏며느리의 말꼬리를 잡아 울고불고 하느라 아까운 생을 허비하신 분입니다. 휴전선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늘 긴장이 감도는 어두운 집안 분위기 행여 거실 꽃들이 감지할까봐 그저 허허 웃었습니다.  당뇨 지병을 가지신 어머님을 온가족이 유리그릇처럼 떠받들었습니다. 밸 빼놓은 그 웃음 탓인지 미운 오리새끼는 쇠막대기로 되어 부러질 줄 모른다며 따돌리는 형제간의 시샘 눈빛도 웃음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말재주 없는 탓이겠지만 무슨 말 한 마디 하면 발톱 세운 황조롱이라도 발견한 듯 다른 오리들이 꽥꽥거리기 때문에 반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딸 하나 아들 둘 키워 짝을 찾아주고 어른 세 분 임종까지 지켰습니다. 시누이 시동생 오남매 혼사까지 합쳐 결혼 삼십년 동안 거의 삼년마다 큰일 치렀습니다. 그런 파도 잘 견딘 덕분에 육신 아직 건강하고 말문이 트여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견딘 것도 유산 때문이라느니 터무니없는 그 바람의 징채들이 시인이 되지 않으면 몸이 깨어지도록 두드렸지요. 그런 바람가시들이 제 시의 뿌리로 흘러 거름이 된 것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대소변 받아낸 일이며 어른 잔소리들이 이제 시에서 가지를 뻗어가느라 때론 너무 강한 넋두리가 되어 소음공해가 된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2. 징소리 징하게 한번 울리려고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서답:월경
시상에:세상에
카는:하는
카믄:하면[‘신처용가’ 시집 중에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비바람에 제 몸과 가정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해 저문 뒤에야 뿌리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저런 말씀과 눈빛의 징채들이 징인 제 몸을 울리며 ‘신처용가’ 첫 시집으로 게워내게 했습니다. 시집 속 처용은 제 남편이라며 놀리는 분 계시는데 그는 바람을 못 피우는 사람입니다. 그럴 용기가 없지요. 그 부분만은 확신하는데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그 보다 처용의 고향인 경북 월성군 어일 쪽에 사셨던 친정 일가 중 두 분이 모델입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코도 크고 그야말로 한량이셨지요. 그들을 모티브로 결혼해서 산 십년 동안의 사회상과 가부장적 남성을 점검하고 꼬집어 본 것입니다. 점점 남성의 권위가 사라지고 간 큰 남자 시리즈가 나올 지경이 된 이유를 짚어보면서 감히 영남지방의 내방가사 풍을 이어 볼 작정을 한 것입니다. 처용아내가 꼭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할 수도 없지 않을까요?

 어쩜 처용아내가 열병이 들어 누워 있는데 처용이 소위 풍류남아라 시를 읊은 거지요. 아내가 열이 펄펄 끓으니 역신과 사랑을 나눈다고 노래 부르는 처용이 얼마나 상상력이 뛰어난 시인입니까? 처용아내도 바람을 피워보지만 결국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툭수바리 된장이 가장 맛있다는 소설 같은 연작시입니다. 시집 전체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듯 폭발하는 힘은 다 그런 가정적 이유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징소리 한번 요란하게 울린 거지요.
 신라시대 표준말이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시집 한 권을 엮으려면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시집식구들 눈치 감당하며 넋두리나 원망들이 서로 스트레스였지요. 처용아내의 還鄕女란 누명을 벗겨주려고 시작한 것이 쓰다가 보니 신명이 나서 특히 여러분들이 용기를 주셔서 출간은 했지만 그 뒤로 사실 집안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나중 언젠가 또 얘기할 시간이 있다면 그 땐 밝히겠습니다. 그런데 ‘신처용가’ 가 처용과 처용아내가 끝내 가정으로 돌아가 화합한다는 것이 상투성이 있지만 그런 바가지 깨지는 속에서도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이 땅엔 아직도 한 가정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잠 잘 때도 눈 감지 못하는 투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웃음 또는 울음이란 전투복으로 무장하고

3.우포늪이 늪의 여자에게 말을 걸더군요.
 
 시골 과수원집 셋째 딸로 어릴 때부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가렛미첼’처럼 소설 한 권을 꼭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글 쓰는 여성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으로 포기하고 현모양처가 되려는 꿈을 가졌습니다. 글을 쓰지 않으려 피해 다녔는데 결국 글을 쓰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미친 듯  누군가 총을 들고 따라오는 것처럼 쫒기 듯 게워 내었습니다. 몇 년 전 시인 모임에서 우포늪을 처음 갔습니다. 집을 한번 빠져 나가려면 가느냐 마느냐 갈림길에서 어른들 눈치 보며 그렇게 가 본 겨울 우포늪은 제 손을 잡고 반갑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제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세월들이, 오바사바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위기의 꽃’ 시집에서]
 길을 몰라 허둥대는 제게 늪은 ‘자신을 가두어 늪이 되라고 그래서 꽃 한 송이 피워보라고’ 살아가는 법과 시를 쓰는 태도까지 많은 말을 해주었지요.  강물처럼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흘러갔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시집살이에 병들고 찌들어 화병만 나지 않았을까요? 초기엔 시어머님 잔소리가 무서워 심장이 벌벌 떨리고 손발이 떨려 접시도 깨곤 했지요. 솔직히 전 전화도 쉽게 걸지 못합니다. 갑자기 상대가 고함이라도 지를까봐 걱정이 되어, 끝내 우울증도 겼었습니다. 그런 소심증을 피겨스케이트를 배우면서 고치게 되었습니다. 얼음 위에서 걷거나 날다가 돌아오면 힘이 나고 눈빛이 반짝입니다. 용기가 나서 전화도 걸고 운전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아를 찾기 위해 생각이 깊어지더군요. 그때부터 자신의 생이 누군가에게 도난당하는 줄 알면서도 방관자가 되어 있다는 것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를 무시하고 사는 게 여자의 길인 줄 알았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또 자신보다 가정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타협하고 안주한 것은 아닙니다. 자아실현을 위해 가정을 뛰쳐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면서 여성과 바람의 벽을 무너뜨리려 끊임없이 그 방법을 찾고 연구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입니다. 그 생활체험이 득도를 위한 여정 아니었을까요?


미루나무와 담쟁이


 도난당하고 있었다/ 미루나무는/ 제 삶을 야금야금 훔쳐 먹는 담쟁이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방관자가 되었다/ 솔직히 처음 그들이 슬쩍 발을 걸쳤을 때는
반가웠고,/ 외롭던 참에 당연히 손잡았다/ 얄궂게도 차츰 밟고 오르면서 /
그의 삶을 조금씩 훔쳐가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를 지어, 수만 개의 손으로
그의 얼굴을 지우면서 /머리끝까지 올라가 생긋이 미소 지으며/ 담쟁이는 
더 밟고 올라갈 곳을 찾느라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향해 손 흔들었다/
여름 이파리들이 하마 노랗게 떨어지는데/ 한 발 양보가 백 발 양보라는 것을/ 
나무는 진작 몰랐던 것이다/ 아마도 늦은 밤 불면의 파도에 시달리며 /
지금쯤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겠지/ 소사스레 담쟁이는 인제 옆 나뭇가지를 향해/
애처로이 손 내민다 /살기 위해서 애써 누군가를 /저리도 막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가?/
어린 왕벚나무와 하늘이 대책 없이 방관자인 것이다, 다만 바람이 
가끔 부르르 떨며 나무를 흔들다가 갈 뿐, 그래도/ 미루나무는 덩굴이 떨어질까/ 
제 발등에 심줄 세우며 떠억 버티고 서 있다/

---[‘위기의 꽃’ 시집에서]

 저 늪처럼 미루나무처럼 사는 방법이 어리석어 보이긴 하지만  진주조개가 어쩌다 뛰어 들어온 모래알을 밀어내려고 안간힘 쓰다가 서로 한 덩어리 되어 진주알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런 아픔들이 삶과 시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시는 제게 ‘해와 달’ 전래동화처럼 썩은 밧줄이 아닌 구원의 밧줄이었습니다.

   4. 불붙이는 방법을 찾아서


 십 년 전부터 박주일 시인님이 하시던 대구문학 아카데미 시창작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떨결에 맡아 단지 시집식구들한테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일념에 짧은 지식으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인 줄 아나’하는 오기로 시작한 것이 인터넷 포엠토피아 포엠스쿨까지 맡으면서 그새 십년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제자들이 시 전문 잡지 시안과 시와 시학, 신춘문예 등으로 등단을 했고 등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란 쓰기 전에 먼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를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물의 밑뿌리를 꿰뚫어보는 시안과 직관력으로 이미지화하는 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상상력이 얼마나 신선하냐에 따라 그 시의 수준을 가르기도 합니다. 거기에 묘사에만 그쳐 말재주가 아닌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감동을 독자에게 전달하겠지요. 긴장미를 위해 가지치기로 진정한 엑기스 한 줄로 남도록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합니다. 여기서 그늘이란 슬프다 아프다를 겉으로 울며 징징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슬픔을 아픔을 가장 냉정하게 객관적인 시각과 비의로 묘사해야 하니 그래서 더 하늘이 멀어 보이나 봅니다. 

  다른 시인들이 필자만 보면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른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왜 그리 추웠을까요? 첫 시집 ‘신처용가’ 내용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그 내면에 울분과 슬픔이 내재되어 있듯 처용아내의 모자에 꽂혀있는 꽃 활짝 핀 겉모습과는 달리 새삼 불붙이는 법을 연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은 모두 가슴에 불씨를 간직하고 있어 그 불꽃의 크기와 붓이나 언어의 연마 기술에 따라 훌륭한 화가도 시인도 되겠지요. 성냥 곽 안에 든 성냥개비들이 어떤 것은 불 한번 피워보지도 못하고 잠들어야 하고 어떤 것은 활활 타올라 급기야 영원히 타오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불붙이려면 내가 먼저 불이 붙어야 하고 내가 불이 붙으려면 그 누군가와 좋던 나쁘던 세게 또는 부드럽게 부딪쳐야하지요.  

누가 먼저 불붙이느냐

        ---성냥불  1




밤새워 온 몸 사른다
한 개비 성냥불 입에 문 초는
제 목숨 다 녹아내리는 줄 모르고

얼어붙은 샛강도 녹일 수 있는
불씨, 사람들마다 가슴에 간직하고 있지만

누가 제 몸에 먼저 불붙이느냐

성냥 한 개비의 몸도 마음도
그 누군가와 
온 전신으로 부딪혀야 불꽃이 피어나나니

남의 가슴에 불붙이려면
저 먼저 타올라야 하는 법

이런 모든 사회생활 체험 속에서 살아 펄떡이는 시들이  힘을 얻기도 하는데 이미 유행 다 지난 낡은 습관을 업고 어른을 모신 마지막 세대고 자식한테 대접 못 받는 처음 세대, 마처족이라고, 그늘이 없는 시라야 잘 날아오를 수 있는 세상이라고 억울하다고 징을 두드려봐야 아무도 눈길 돌리지 않습니다. 묵묵히 그늘진 곳에 있는 그늘진 이들의 그늘 뿌리를 찾으며 부드러운 힘을 맛갖게 표현할 수 있도록 살며 사랑하며 쓰며 제 지식 필요한 분께 전수하며 걸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서 부터 늘 혼자인 것은 분명 저도 모르는 제 모습에 뭔가 잘못이 있겠지요. 그 원인을 찾으려고,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우물 안 드려다 보며 뽀글 파마에 몸빼이[?] 입고 비닐슬리퍼신고 발바닥에 굳은 살 박히도록 뛰었습니다. 젊어서 잠시나마 학생들 가르친 말에 책임을 지려고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속 타도록 몸부림치던 파도숲도 바람이 지나가버리면 아무 증거도 없습니다.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게 고백하시더군요. 제 사주팔자가 그냥 가정만 지킬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걸 막으려 미리 선수 친 거라고. 그러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압박이 오히려 시인이 될 수밖에 없도록 그 심연으로 밀어 넣었으니 또 하나의 아이러니지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전 제 잘못이 무엇인지 찾느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이제 바람이 왜 부는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그 이유나 따지며 걸고 넘어져야겠습니다. 그동안 따뜻한 웃음 보내주신 시인님들과 포엠스쿨을 지켜주시는 분들 그리고 대구문학아카데미 회원 여러분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삼십년 무덤 속 순장으로 쏟아 넣은 젊음과 긴 시간이 詩로 녹아 보리수 한 그루 싹틔워주길 기다리는 것이 헛된 욕망일까요. 앞으로도 계속 물웅덩이로 파고드는 햇살 바라보며 웃을 겁니다. 우물 안에 갇혔던 개구리 늦었지만 마음껏 파닥파닥 날갯짓해봐야겠습니다. 옹이에 숨은 바람솜털까지 샅샅이 뒤져 어느 시린 가슴 보듬어 줄 시의 불 지피면서 길을 찾겠습니다. 시도 삶도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정신과 표현]




석학을 찾아서 1


시인은 시에 순정만 바치면 다 되는가? [1]

                                      --모윤숙과 이승만, 이광수와 미당
1.봄밤이라예!




 오월은 계절을 중모리에서 점점 중중모리장단으로 몰아붙이며 솔향 터트립니다. 우포늪은 자운영 꽃무늬 치맛자락 펼치며 ‘봄밤이라예’ ‘참말로 봄밤이라예’ 중얼중얼 뜨거워지는 몸 감당하지 못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겠지요. 해마다 그 파문이 ‘최남선 주요한’ 등 시인들 가슴에 너울져 이어온 지 어언 1세기, 늙은 느티나무 굵은 가지들이 새삼 우러러 보입니다. 세상 제 것인 냥 팔 흔들어대는 잔가지 틈에 가려 그늘져 보이지만 현대 시문학을 지탱해온 대들보들입니다. 그 분들 중에서도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와중에서 소위 그 시대 신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궁금해지는 걸 보면 필자도 마음의 여유 이제 좀 생긴 것인가요? 의문부호가 책장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훌륭한 학자를 찾아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2.문 경현 박사님을 찾아서

 시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짝사랑 이십년이 필자에게 선물한 것은 많은 시인들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보다 더 시를 알고 아끼는 학자 한 분을 최근 봄밤에 만난 일입니다. 지금 경북대 명예교수 문경현 [文暻鉉] 문학박사님, 한국사학계의 태두로 ‘신라사연구, 고려사 연구’등 수많은 저서와 학술활동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에 평생을 헌신한 대석학이라고 이상번 시인이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일흔 넷의 연세에 교통사고로 쌍지팡이를 짚고 계시면서도 경주 신화와 전설 모음집을 엮고 계시는데 우연히 식사를 같이 하게 되어 그 분의 문학 사학 철학 유교 불교 영문학 한문학 등 넓은 지식에 탄복했을 뿐 아니라 그런 예기를 듣는 사람이 흥겨워 ‘얼시구!! 무릎을 칠 정도로 재담가여서 그 분의 말씀을 토대로 잠시 신여성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특히 한시 두추낭 [杜秋娘] 해석은 그야말로 처용아내가 “봄밤이라예, 안그래예”를 내뱉는 느낌이었습니다.
 
杜秋娘

勸君莫惜金縷衣
勸君惜取少年時
花開勘折直須折
莫持無花空折枝

님에게 권하노니/ 금으로 수놓은 비단옷 아끼지 마소서/
님에게 권하노니/ 청춘을 아끼소서/
꽃 피었을 때 꺾고 싶으면/ 지금 바로 꺾어소서/
꽃 지고 빈가지만 꺾게 될/ 때를 기다리지 마소서/


추적추적 초여름 비 내리는 저녁 제 몸에 핀 꽃 떨어져 빈가지 꺾지 말고 빨리 꺾어달라는 그 말에 공감하면서 이야기는 월북시인 이용악의 시집 ‘오랑캐꽃’으로 넘어갑니다.
그의 ‘소원’이란 시 한편 읊으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나라여 어서 서라/ 우리 큰 놈이 보고픈 아저씨/ 柳呈이도 나와서/ 토장국 마시게 /나라여 어서 서라 /꿈치가 드러난 채 /휘정휘정 다니다가도 /밤마다 잠자리발 /가없는 가난한 시인 山雲이도 맘놓고 좋은 글 쓸 수 있게 /나라여 어서 서라 /그리운 이들 너무 많구나 /옥이랑 껴안고 /한번이나 울어도 보게 /좋은 나라여 어서 서라./”그를 진정한 민족 시인이라며 자연스레  이광수로 넘어갑니다. 친일을 하고 반성 없이 자기합리화 시킨 작가라며 ‘일제 강점기 젊은이들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부추기자 주위에서 못마땅해 하니까 ’어허 이 사람들 이렇게 시국관이 없어 어쩌나?‘ 한 그의 말이 유명하다며 그의 사생활을 소상히 얘기해 주십니다. 

3.“모윤숙처럼 잘 난 여자는 처음 봤어”

 “ 소설가 이광수가 동경유학 시절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던 중 본 부인 백혜순을 두고 나중 의사가 된 제 2부인 허영숙을 만났고 신채호 밑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로 돌아섰지. 휴양 차 간 금강산 장안사  ‘산방약수’에서 모윤숙을 만나 嶺雲이란 호도 지어주었고 안호상 박사를 소개해 아이까지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지. 나중 그 아이 계모[모윤숙]가 구박한다는 얘기도 한다고 했지. 나중 이혼을 했지만. 납북 후 이광수에 대한 사랑을 쓴 일기체의 감상적인 장편 산문시집 《렌의 애가》(1937)가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 되었지, 한국 문단 최초로 시집 '렌의 애가'가(1959) 유네스코 추천작품으로 선정도기도 했지 .사십대의 모윤숙을 직접 만났었는데 태어나고 그렇게 인물 좋은 여자는 처음이었어. 정 숙 시인처럼 한 송이 모란꽃이라 할까? 대단한 미인이었지. 그러나 1950년 후반 청구대학에서 문학의 밤 이어령, 모윤숙, 이무영[농민소설가]가 참여해서 모윤숙이  ‘나보기가 역겨워’ 소월 시 낭송 해설을 할 때 70대 모습에서 많이 실망했어. 품위 있게 늙어가는 사람도 많은데 뚱뚱하기도 하지만 세월에 풍화된 모습이 아주 추하게 느껴졌어. 

4.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가?

 “함경남도 원산 출생에 개성의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와 서울의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피로 색인 당신의 얼골을〉(1931)을 《동광》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뒤 교사, 기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했어. 그런데 아쉬운 것은 태평양 전쟁 중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하여 강연 및 저술 활동으로 전쟁에 협력한 일이지. 조선문인협회에 간사로 가담해 친일 강연을 했고 임전대책협의회(1941), 조선교화단체연합회(1941), 조선임전보국단(1942), 국민의용대(1945)에 가담하여 《매일신보》등에 친일 논설을 기고했다는 사실이지.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권 논리를 형상화한 〈동방의 여인들〉(1942)을 친일 잡지 《신시대》에 기고하고 《매일신보》에는 〈호산나 소남도〉(1942)라는 전쟁 찬양시를 발표하였으며,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시 〈어린 날개 - 히로오카(廣岡) 소년 학도병에게〉(1943), 〈아가야 너는 - 해군 기념일을 맞아〉(1943), 〈내 어머니 한 말씀에〉(1943) 등을 연달아 발표하는 등 강요에 의한 것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했다는 점이지. 따라서 그는 이 시기에 비슷한 주제의 시들을 창작한 노천명과 함께 여류 문인 중 가장 노골적인 친일파로 분류되고 있어 안타까워요. ”

 5.  조선민족의 딸'이기보다 '동방의 딸'이기를 강조

“특히 '조선민족의 딸'이기보다 '동방의 딸'이기를 강조한 친일파였지만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한 몫을 단단히 했어요. 이혼 후 모윤숙은 이승만의 비서로 일하면서 건국 일등공신이 되었어. 이승만이 그녀에게 인도대표인 메놈박사가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도록 잘 녹여보라 부탁하자 그녀는 영문학에 도통한 춘원과 함께 영시 짓기도 하면서 결국 메놈이 사랑하는 미쓰 모를 위해 그렇게 하겠다는 허락을 얻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 '
 “친일한 그녀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비롯한 수많은 전선시를 써내며 한국전쟁을 '숭고한 반공전쟁'으로 미화하는데 크게 공헌했다는 건 아이러니지. 죽음의 공포에 떨며 죽어갔던 어린 병사에게 울림 있는 시로 '조국의 품'을 부여한 것도 그녀였으니. 하지만 정작 그 병사가 목숨 바쳤던 조국을 불명예스럽게 했던 장본인들이 모윤숙을 비롯한 '친일파'들이었다는 사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묻혀 졌으니 정의감에 불타는 어린 병사가 살아남았다면 모윤숙의 헌정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그 변명을 또 무시할 수 없어 혼란스럽기도 하니 쯧쯧... 그 때 죽은 어린 국군들이 늦게 그 사실을 알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겠는가? 그 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유엔대사로 임명받을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프란체스카 여사가 질투할 정도였다는 얘기가 있어요. 또한 이광수와 모윤숙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했던지 친일로 잡혀간 춘원을 위해 반민특위까지 해체 시켰다고 하니 사랑의 힘이라고 해야 할지 권력의 힘이 막강했다고 해야 할지...“

6.예술가는 생애가 빛나야 한다.

 대구시내 파동 약간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교수님의 정원 4백년 묵은 향나무들이 꼿꼿이 고개를 들고 서 있는데 비에 젖어 더욱 짙은 초록빛입니다. 백 여 년 된 백모란이 져버린 꽃잎을 아쉬워하고 있는지 깊은 침묵입니다. 박사님은 반백의 머리카락 슬어 넘기며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세 한 번 흐트러짐 없습니다. 그 시대 친일에 대해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는 필자의 말에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모윤숙이나 노천명 등 몇 명은 시대를 잘 못타고 난 죄이니 그래도 용서한다고 하더라도
이광수와 최린 미당은 절대 용서할 수 없지. 예술가는 생애가 빛나야 한다 는 말이 있는데 그들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기 합리화만 했어. 특히 미당은 각 정권마다 아부해 일신의 영달을 꾀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지... 물론 우리 민족어를 갈고 닦아 주권을 세운 건 인정하지 그러나 그런 것도 정지용이 이미 닦아 놓은 길 아닌가“   ”맞습니다.“ 덩달아 대구 작가회의 이사인 이상번 시인도 맞장구를 칩니다.

7.마무리

 기억력이 어찌 저렇게 좋을 수 있는지 최린과 나혜석 노천명 이미륵과 전혜린 이야기까지 한시와 괴테의 시 한편 원어로 줄줄 읊으시니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제서야 배가 고프다며 밤 8시 넘어 갈치 정식 집으로 나섰습니다. 나중 나혜석과 최린 노천명과 양주동 박사의 얘기도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신 사학자 문경현 박사님께 감사드리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이상번 시인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표 2008,6,7월호]





석학을 찾아서 2

목이 길어야 관이 향기로운가 [노천명과 김광진 ]
---정 숙 [처용아내]

1. 비슬산[包山]가는 길엔 일연스님이 처용가를 옮겨 집필하시고

“박사님, 자귀나무 연분홍 깃털꽃송이들이 물 없는 계곡을 지키고 있군요.”
“예, 많이 가물었어요. 그래도 저 숲은 싱싱하군요.” 
 현풍 비슬산 대견산 정상엔 신라시대 절터가 남아있고 그 때의 삼층석탑이 아직도 먼 발 아래 낙동강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뒷들판엔 봄마다 참꽃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공룡시대부터 긴 역사를 간직한 비슬산이 핏빛으로 물드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흘러가다가 낙동강에 닿지 못하고 서성이는 암괴류  때문에 온 산천이 핏빛 울음바다 아닐까요? ” 필자의 엉뚱한 생각에 모처럼 크게 웃었습니다.
“ 경주의 전설과 신화 그리고 삼국유사 번역 잘못된 곳 박사님의 수정 작업은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는지요?”
“예, 언젠가 처용아내한테는 그 부분도 얘기해드리도록 하지요.”
“정 숙시인, 자신을 처용아내라고 하면 남자들이 오해할 텐데... 아참, 정 시인의 첫 시집 ‘신처용가’가 시극으로 공연되었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신다.
“네 덕분에 호응이 좋았습니다. 풍자와 해학이라 볼거리와 아픔이 있다고...”
 비슬산 오르는 길목 유가사 절에 지난 오월 일연보각국사님과 조오현 선사님의 시비를 세운 이상번 시인이 박재희 시인과 한문학자 이 정 화 박사와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시고 사학자이신 문경현 박사님을 모시고 산봉우리 이름이 잘못 표기된 부분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길입니다. 문 박사님은 쌍지팡이로 삼층석탑이 자리한 산 정상까지 그 더위 무릅쓰고 올라가시면서 조오현 스님의 ‘비슬산 가는 길’과 직접 번역하신 일연스님의 포산 관기觀機와 도성道成 두 도인을 칭송하는 한시를 맛깔스레 낭송하십니다.

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萬)첩첩 두루 적막(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 琵瑟山(비슬산)가는 길,무산 (霧山) 조오현]
                       ,
2. 허난설헌은 巖塊流에 앉아 울고 있고 

 세계 최고로 길이가 길다는 비슬산 [옛날엔 포산이라고 했음] 암괴류, 흘러가는 너럭바위에 앉아 요절한 허난설헌의 남편을 기다리는 시 奇夫江舍讀書  칠언절귀 한 수 외시며 사대부 집안에 갇혀 꼼짝달싹할 수 없었던 여인네의 답답함을 암괴류에 비유해 주십니다. 
 “몇 억년 한 자리에 머물러 있던 저 바위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흘러 내려갈 작정을 했겠어요.  저 바위에 귀를 대 보세요.  물 흐르는 철썩철썩 소리 들리지요.”
燕掠斜첨兩兩飛     제비는 쌍쌍이 처마 끝에 나는데 
落花요亂撲羅衣     떨어지는 꽃잎은 요란하게 비단옷을 때리는데
洞房極目傷春意     동방에서 기다리는 가슴 찢어지는데        
草綠江南人未歸     꽃 피고 잎 피는 호시절 님은 돌아오지 않네 --[-奇夫江舍讀書 ]

 “그 외로움이 주옥같은 한시를 남기게 했으니 역시 시인은 예술가는 고독이 약이지요. 그러나 허난설헌의 한시들이 허균이 옮긴 것들이 대부분인데 표절논란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어서 관이 향기로운 시인을 만나고 싶다는 필자의 재촉에 이 상번 시인이 노천명의 ‘사슴’을 읊어주면서 한숨을 쉽니다. 
 ‘목이 길긴 길었는데 세상을 잘못만나 끝까지 친일파였지요.’ ‘평생 연인을 기다리며 홀로 지낸 시인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관(冠)이 향기로운 너는/무척 높은 족속(族屬)이었다 보다./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鄕愁)에 /슬픈 모가질 하고/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 , 사슴 전문-


3. 그녀의 사랑은 목이 길 수밖에 없었는가

“그렇지요. 남빛 치마와 흰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는 노천명 시인은 한국시사에서 시적 대상을 시적 화자와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동일성 시학을 선보인 최초의 여성 시인이었지요. 황해도 장연 출생으로 1934년 이화여전 졸업. 재학중(1932) 신동아에 "밤의 찬미"를 발표하며 등단. 모윤숙과 함께 당시로서는 몇 안 되는 여류 시인의 한 사람이었고 점차 명 시인으로 부각 받게 되었어요. 첫째, 자기중심적인 정서 특히 고독에 대한 심도 있는 표현. 둘째, 시인 자신의 농촌 생활로부터 그려낸 향토적인 정경의 객관적 묘사. 셋째, 역사적 국가적 인식의 반영이 바로 그것인데”
“노천명과 김광진의 사이는 불륜이었군요?”
 “ 일제 강점기에 보성전문학교 교수인 경제학자 김광진과 연인 사이였지요. 부인 있는 남자와 사귀었지만 나중 이혼을 했으니 불륜은 아니지요. 결혼 날을 두 번이나 잡았는데 그러고 그 사랑 끝까지 지켰으니 그녀의 사랑 숭고하다고 해야겠지요. 노천명과 절친한 작가 최정희가 시인 김동환과 사귄 것과 함께 문단의 화제 중 하나였고, 두 사람의 사랑을 유진오가 소설화하여 묘사한 바 있지요. 김광진은 광복 후 가수 왕수복과 함께 월북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가족을 만나러갔지요. 고향이 평양이었고 돌아와 결혼하려고 했는데 공습이 있어 그 후 김일성에 잡혀 돌아오지 못했다고  알고 있어요. 노천명은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평생 혼자 살았으니 ‘사슴’이란 바로 자신의 고독을 표현한 내용이지요. 시를 쓰려니 남들이 이미 좋은 말 다해버려서 못 쓴다던 양주동박사가 노천명시인에 반해 프로포즈를 몇 번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양주동의 선구자란 시 대단하지요.“
“김광진과 만난 뒤인가요?” 
“아니요, 그 전이지요. 양주동은 영문학자에 국문학자 시인으로 국보라고 했지요.”

4. 철저한 친일 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태평양 전쟁 중에 쓴 작품 중에는 〈군신송〉등 전쟁을 찬양하고 전사자들을 칭송하는 선동적이고 정치적인 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학병〉 〈창공에 빛나는〉 〈흰비둘기를 날려라〉친일 시들이 있습니다. 노천명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25일 시집 〈창변〉을 출판하고 성대한 출판기념회까지 열었는데 이 시집의 말미에는 9편의 친일시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출판한 지 얼마 안 되어 해방이 되자 노천명은 이 시집에서 친일 시 부분만을 뜯어내고 그대로 계속 시판하였지요. ” 사학자이며 한학자 식물과 동물까지 박학하신 문경현 박사님은 다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친일시를 낭송하십니다.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노천명]

5. 노천명이 모윤숙의 위치를 염탐하다
 “그녀는 이화여전 동문이며 기자 출신으로서 같은 친일 시인인 모윤숙과는 달리 광복 후에도 우익 정치 운동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1950년 북조선의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피신하지 않고 임화 등 월북한 좌익 작가들이 주도하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문화인 총궐기대회 등의 행사에 참가했다가,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조경희와 함께 부역 죄로 체포, 투옥되었지요. 모윤숙 등 우익 계열 문인들의 위치를 염탐하여 인민군에 알려주고 대중 집회에서 의용군으로 지원할 것을 부추기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징역 20년형을 언도 받아 복역했으며, 몇 개월 후에 모윤숙이 연판장을 돌려 사면을 받아 풀려났어요. ” 
 “아무리 기자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 얼른 이상번 시인이 “ 다음 이 시도 대단한 친일이지요. 들어보세요” 하며 시 한편 읊는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군복을 지으러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이여/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노천명의 친일 시 [부인 근로대]시낭송에 눈 지그시 감은 문경현 박사님 혀를 차며 다음 말씀을 이어 가신다.

6. 진정한 여성 선각자는 나혜석 화가

“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이끌어가야 하는 문인으로서 노천명의 국가관엔 애국심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안타깝습니다. 나약한 여성으로 시대를 잘 못 타고 났다고 동정은 하지만 그보다 정말 관이 향기로운 신여성은 나혜석 화가지요. 정월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 여성화가, 선각자, 시대를 앞서간 여성 운동가, 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최린과 이광수의 야비함과 그 당시 동경 유학 간 신여성과의 관계 그리고 그녀에 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요.”

7. 삶을 아끼려면
 말을 아끼면 생각을 아끼는 것이고 생각을 아끼는 것은 삶을 아끼는 것이라고 또 그 삶을 아끼는 이가 시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현대시 백주년을 맞아 험난한 시대의 불꽃이었던 신여성들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상을 더듬으면서 시인으로서의 책임감과 빛나는 생애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정 삶을 아끼는 시인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넘어가는 해 아쉬워하며 비슬산계곡에 앉아 하루의 노동을 위로합니다. 유가사 주지스님이 마련하신 저녁상 위 서로 부딪치는 참소주 잔속에 불콰하게 익은 노을이 슬며시 들어와 앉습니다. 참고로 삼국유사에 등장한 포산[비슬산]이 미당의 시엔 소슬산으로 나옵니다. 일연선사의 한시에서 칭송했던 관기와 도성 두 도인의 우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道人 觀機는 소슬山의 남쪽 봉우리 아래 草幕을 엮어 살고, 道人 道成이는 소슬山의 北녘 모롱 밑 洞窟 속에 계시면서, 서로 친한 친구인지라, 十里쯤 되는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지냈읍니다만, 그 만나는 時間 約束은 某年 某月 某日 某時와 같은 우리들이 쓰는 그런 딱딱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멋들어진 딴 標準을 썼읍니다. 

  즉-너무 거세지도 無力하지도 않은 이뿐 바람이 北에서 南으로 불어 山골 나뭇가지의 나뭇잎들이 두루 南을 향해 기울며 나부낄 때면, 北嶺의 道成이는 그걸 따라 南嶺의 觀機를 찾아 나섰고, 그 바람을 맞이해서 觀機는 또 마중을 나왔어요. 

  적당히 좋은 바람이 그와 또 반대로 南에서 北으로 불어 山의 나뭇가지의 나뭇잎들을 모조리 北을 향해 굽히고 있을 때는, 南嶺의 觀機가 北嶺의 道成이를 찾아 나서고, 道成이는 또 그 바람 보고 마중을 나오고……. 어허허허허허허!……. [소슬山 두 道人의 相逢時間,서정주 ]



석학을 찾아서 3
             ---정 숙 [처용아내]

 1.팔공산 자락 경북 칠곡군 송림사에서[나혜석과 최린]

 어젯밤에 누가 해를 먹어버렸나? 팔월 한 낮이 캄캄하고 무덥더니 금세 소나기 쏟아집니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아담한 절 마당이 물바다입니다. 시 낭송 도중 벼락이 쳐서 새카맣게 타 버릴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두어 시간 행사 내내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말짱합니다.
 팔공산 자락 경북 칠곡군 송림사에서 성덕스님 공덕비를 세우는 날입니다. 역시 사학자 문경현 박사님이 비문을 지으시고 이 상번 시인이 추진위원이 되어 행사를 하는 날입니다.
송림사는 신라시대 5층 전탑塼塔과 사리기舍利器로 저명하며 17세기 조성된 대표적인 수작 불상들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특히 1657년 경 나무로 조각된 목 삼존불상이 조선조 조각사에 큰 의의를 차지하고 있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이라고 문 경현 박사님이 친절히 설명해 주십니다. 
 “전탑이란 벽돌로 쌓은 탑으로 현존하는 다섯 전탑 중 하나이며 그 속에서 금제 전각형 사리기와 유리사리병 등 많은 보물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종암 시인 김은령 시인 곽홍란 시조시인[ 사회자] 박재희 시인들과 간단한 저녁 식사 후 잠시 쉴 여가도 드리지 않고 바로 질문 공세로 들어갔습니다.
 ‘나혜석이 근대 최초의 여성서양화가라고만 알았는데 시와 소설을 썼다니 정말 뜻밖입니다. 박사님“
“그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처용아내를 위해 어제 쌍지팡이 짚은 몸으로 급히 경북대 도서관에 가서 찾은 자료입니다. 보세요.”
“ 송구합니다. 제가 버릇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으면 차로 모셔다 드렸어야 하는데”

2.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면서 시인, 소설가

“ 廢墟폐허 제 2호 37쪽에 羅晶月 나정월이란 호로 발표된 시 내물[냇물]이 吳相淳오상순의 종교와 예술 [평론] 卞榮魯변영로의 메털링크와 예잇스[예이츠]의 신비사상[평론] 岸曙안서의 베르렌詩抄 [譯詩] 金億김억의 프로베르론  廉尙燮염상섭의 月評등 그리운 그 당시 시인들의 시와 함께 게제 되어 있지요.“

내물

졸졸 흐르는 저 냇물/흐린 날은 푸르죽죽/
맑은 날은 반짝반짝/캄캄한 밤 흑색가치/
달밤엔 백색가치/비오면 방울방울/
눈 오면 녹여 주고/ 바람 불면 무늬지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
춥든지 더웁든지/ 실튼지 좃흔지/
언제든지 쉬임없이/ 외롭게 흐르는 냇물/
냇물! 냇물! /저러케 흘러서/ 
湖되고 江되고 海되면/ 흐리던 물 맑아지고/
맑던 물 퍼래지고/  퍼렇던 물 짜지고[華虹門樓上화홍문루상에서] 
“정말이군요. 제가 무지해서 죄송합니다. 전 그냥 비운의 화가인 줄만 알았습니다.”
“화홍문루상華虹門樓上에서란 수원성의 문 이름이지요.”

3. 독립 운동가이면서 진정한 자유 연애론자?

“ 그녀는 서울에서 최초의 유화 개인전을 개최하고 작품을 매매 하는 전업화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지요. 비록 나혜석의 유화작품이 30~40점 밖에 되지 않아 연구하기에 어려움은 있지만, 보통 풍경화의 인상주의적 표현에서 그녀의 특징을 찾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섣달 대목>, <무희>, <파리풍경> 등이 있다. 한편, <매일신보>에 실은 그녀의 만평은 평소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여성의 과중한 가사노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
“그야말로 여성 운동가이기도 하군요. 대단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인 것은 나혜석의 자유로운 연애와 파격적인 글쓰기와 마지막 행려병자가 된 사연이겠지요?”
“예 유부남 최승구와의 일본 유학 시절 연애를 했지만 그와 곧 사별하게 된  혜석은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하지요. 그녀는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예술 활동을 보장해주고 시집살이를 하지 않겠다’는 결혼 약속을 받아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후 그녀의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결혼 생활을 보내며, 남편과 함께 과감하게 유럽 여행을 떠난 나혜석. 그녀는 유럽에서 새로운 예술 세계에 대한 눈을 뜨는데, 남편보다 더 예술을 잘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고국에 돌아온 나혜석은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

4. 남자의 말 한마디는 중천금인가?

“프랑스에 도착하여 야수파 화풍을 공부하였어요. 파리에서 최린에게 길 안내하다가 사랑보다 어쩔 수 없이 불륜이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문제는 그것을 최린이 고국 술자리에서 자랑삼아 얘기한 것이 빌미가 되어 파리 한인 사회에 화제가 되어 1930년 이혼당하는 빌미가 되었지요.”
“ 최린은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1918년부터 손병희와 오세창, 권동진 등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독립 운동의 방안을 논의하다가 1919년 3·1 운동을 구상했고 불교계의 한용운, 기독교계의 이승훈을 통해 두 종교 대표들을 참가시키고 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최남선을 추천하는 등 기획 과정을 주도했으며, 독립선언서 낭독 모임 이후 곧바로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친일파로 민족반역자로 돌아선 사람이지요.” 
이상번 시인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열을 올립니다.
“ 그녀가 행려병자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 이광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이광수도 최린도 야비한 사람 아닌가요?”
 “이광수는 그 당시 일본 유학 간 신여성들과 대부분 관계를 맺었다는데 . 김일엽 스님도 이광수를 사랑했나요?”
“김일엽은  일본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 후 끝까지 정신적 사랑을 한 사람이 이광수가 아니라 백성우[소르본느대 출신] 그 당시 동국대 총장이었지요.”

  5.노동자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나혜석(羅蕙錫, 1896년 ~ 1948년 12월 10일)은 한국의 화가로 아호는 정월(晶月). 일제 강점기의 아버지 나기정은 군수였지요. 그 당시 군수라면 종 4품의 아주 높은 벼슬이었어요.‘1913년 경성부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유학을 하고 있던 오빠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 도쿄여자미술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1918년 귀국하여 교사로 근무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매년 수상을 거듭했고, 1931년에는 일본의 제국미술원전람회에도 입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기도 하였는데. 나혜석은 3·1 운동에 가담하고 노동자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는 설정으로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판화 〈조조(早朝)〉를 제작하는 등 사회 참여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 사회 운동을 한 오빠 나경석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1921년 조선미술사에서는 최초의 여성 유화개인전람회를 열었으며, 그해 9월 일본 외무성 안동현(현재 단둥)부영사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만주로 이사하였지요. 당시 나혜석은 여성들을 위해서 야학을 열었고, 1923년 황옥 경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관련자들을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6.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


“나혜석은 이혼을 당한 이후에도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와 제12회 제국 미술원 전람회에서 특선과 입선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어요. 하지만, 미술학원을 차려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김우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3남 1녀와도 남편의 방해로 만나지 못하면서 차츰 폐인이 되어 불행한 생활을 하였어요. 서울 인왕산의 청운양로원에서 행방불명된 1948년 12월 10일 서울의 시립자제원에서 사망하여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된 것이 뒤늦게 알려졌고 그가 태어난 집도 현재는 집터만 남아 있으며, 남아 있는 작품들도 십 여 편에 불과합니다.”
신여성, 여성 최초로 서양화를 공부한 유학생, 독립운동가 정월晶月 나혜석 선생님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 여성화가, 선각자, 시대를 앞서간 여성, 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정월 나혜석 선생님은 “여자도 학교를 다녀야 할 필요가 있나”“여자가 무슨 유학이냐”“여자는 아들이나 잘 낳고 밥만 잘 하면 된다.”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신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충청도 수덕여관에서 잠시 기거하며 스님이 되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는데요.”
“ 예 만공스님이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또 연하의 고암 이응노 화백이 무명시절 같이 기거하면서 그림을 배웠다는 얘기도 있지요. 실제로 수덕여관에 이응노 화백의 그림이 새겨진 바위가 있지요.‘
“일설엔 자유 연애론자이고 실험결혼을 주장하면서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라고 동생에게 말한 그녀이니 두 남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하기도 했겠군요.”

“18세의 어린 나이에 “여자도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은 최초의 여성해방평론인 <이상적 부인(이상적 여성)>을 발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자도 사람이다.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인류의 여성이다.”라고 단편소설 <경희> 속 주인공을 통해 주장했던 23세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신여성이었습니다. 단편소설 <경희(1918)>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나혜석 선생님이 화가로서 세상에 자신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9년 24세의 나이에 <매일신보>에 9컷의 만평을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결혼 이후 1년 9개월 동안의 세계일주, 조선미술전람회 출품 등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여성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면서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화가로서의 사명감을 불태웠습니다.“

7.우리나라 최초의 위자료 청구 소송

 그러나 이혼고백서 발표,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 등의 사건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사건이었던 만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지탄을 한 몸에 받았고, 그럼으로써 여성으로서의 나혜석 선생님의 삶은 불행으로 치닫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편견과 세상으로부터 잊혀져가는 순간 속에서도 평생을 화가로서 살아가고자 외롭게 또 끊임없이 노력했던 화가 나혜석 선생님의 삶은 많은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박사님, 칠순이 지나셨지만 아직도 미남이시면서 그 남성적인 목소리로 나혜석의 [모래]라는 시 한편 더 읽어 주시겠습니까?‘

野原야원 가온대 깔려있어 갑업는/ 모래가되고보면 줍난사람도업시/
바람불면 몬지되고 비오면 진흙되고/ 人馬인마에게 밟히면서도/
실타고도 못하고 이 세상에 잇셔/ 이따금 저 川邊천변에/
浦公英포공영  野菊花 야국화 메꽃 꽃다지꽃/ 피엿다가 슬어지면 흔적도 업시/
뉘라셔 차져오랴/ 뉘라서 밟아주랴/ 모래가 되면 갑도 업시/[沙, 나정월]

8. 진정한 연꽃 한 송이 피우다.
 
나혜석 기념 사업회 운영이사인 경원대 미술학과 윤범모 교수는 “‘최초’와 ‘여성’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이제는 한국 유화를 정착시킨 최초의 전업 유화가로서 나혜석을 평가해야 한다” 며 지금 여러 나혜석을 재조명하는 연구 서적출판과 많은 사업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신여성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라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인데도
남들보다 빨리 눈을 떴다는 또는 시대를 잘못 만난 이유로 온갖 진흙 밭에서 굴러야했지요.“
 일본 징용 시절 히로시마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중 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가까운 바다로 뛰어들어 원폭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필자의 시아버님이 맏며느리에게 남보다 앞서 가지 말라는 당부를 노래하듯이 하신 말씀이 새삼 이해가 됩니다. 나혜석도 결국 남보다 너무 앞서간 탓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도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여러 사람에게 깨우쳐주려고 한 것은 바로 불가에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한 용기이고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진흙탕에 핀 연꽃송이로 보입니다. 처음 노천명 시인 때문에 신여성시인을 찾다가 정말 관이 향기로운 여성 선각자 한 분을 찾았다는 뿌듯함에 눈의 피로도 싹 가시는 듯해 필자의 [연꽃]이란 시 한편을 중얼거리며 시인의 갈 길을 곰곰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 당시 신여성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라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인데도
남들보다 빨리 눈을 떴다는 또는 시대를 잘못 만난 이유로 온갖 진흙 밭에서 굴러야했지요. "
 일본 징용 시절 히로시마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중 차가 늦어지는 바람에 가까운 바다로 뛰어들어 원폭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필자의 시아버님이 맏며느리에게 남보다 앞서 가지 말라는 당부를 노래하듯이 하신 말씀이 새삼 이해가 됩니다. 나혜석도 결국 남보다 너무 앞서간 탓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도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여러 사람에게 깨우쳐주려고 한 것은 바로 불가에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한 용기이고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진흙탕에 핀 연꽃송이로 보입니다. 처음 노천명 시인 때문에 신여성시인을 찾다가 정말 관이 향기로운 여성 선각자 한 분을 찾았다는 뿌듯함에 눈의 피로도 싹 가시는 듯해 필자의 [연꽃]이란 시 한편을 중얼거리며 시인의 갈 길을 곰곰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바람에 쉴 새 없이 몸 흔들리면서도/ 시린 발 견디며 진흙을 밟고 서서
곧 사라질/ 목숨,/ 이슬방울을/잠시라도 햇살에 한 번 더 빛나도록/
소중히 떠받들고 있다/[정 숙의 연꽃]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의 지혜를 구하고 닦는 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는 일









석학을 찾아서 4



봉이 김선달과 시의 보금자리  [현대시 박물관과 황금찬시인]
                                  -정 숙


1. ‘해파리의 노래’ 에 안식처를 제공하다

 2008년 11월 1일 시의 날 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뜻 깊은 행사로 서울 명륜동 계간시전문지 시학사에서 개관식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 대동 강물을 팔아먹을 줄 알았던 봉이 김선달이 환생한 건 아닐까요? 하여튼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척척 잘도 잘 해내는 김재홍 평론가님이십니다. 미당이 그를 “시인보다 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명륜동 그 좁은 이층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현대시의 모든 자료들이 모여 같이 백년이란 시간을 숨 쉬고 추억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선 감나무 집으로 알려있기도 한데 아직도 뭔 욕심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제 자식 떠나보내기 아쉬워서 인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김남조 고은 시인의 축사를 이어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박목월의 붓글씨, 윤동주의 유고시집 등 제가 평생 모은 흥미로운 시 관련 자료들을 모두 공개합니다. 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모처럼 다시 불붙고 있는 시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평생 시 연구를 하며 수집한 각종 희귀자료를 모아 시 전문 박물관을 개관한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만해학술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10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전시되는 전시품들 중에는 현대시사의 첫 시집으로 기록된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를 비롯해 윤동주의 사후에 동생 윤일주가 보관하던 그의 시 30편에 정지용의 서문을 더해 낸 ‘윤동주 유고시집’[1948], 8.15와 6,25에 대해 당시 시인들이 쓴 작품들을 묶은 ‘해방 기념시집’[1946]과 ‘전시 문학 독본’[1950]등 문학과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희귀본 300여종이 포함돼 있습니다. 개관 기념으로 한국의 대표시인 100명을 골라 윤문영화백이 그린 초상화와 시인들의 대표작을 묶은 ‘한국 현대시 100인 초상 시화 대표작’ 전시도 열었습니다. 유안진 신달자 시인의 젊고 앳된 모습이나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이성선 시인 생전의 모습 그대로 잘 표현되어 있어 반갑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성선 시인의 미 발표작 “이사”라는 시 친필이 좁은 마루에서 손을 내밀고 있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사

겨울이 지나자 새들은 짐을 싸고
다시 하늘로 떴다
사람 없는 곳으로 더 추운 쪽으로

엄마는 앞에 아빠는 위에
새끼는 가운데

하늘에 뿌려진 악보들

저녁놀이 그 앞에 길을 쓸어준다

 아울러 이성선시인 돌아가시기 전 해 토지 박물관 여름행사에서 이성선 시인과 ‘빤쓰 벗고 그 짓하러 들어간다’ ‘일식[이성선 작품 현대시학 발표]’이란 시를 읋으며 함께 깔깔 웃었던 모습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필자의 첫 시집 ‘신처용가’를 박수 치며 응원해주시던 조병화 시인님, ‘휴화산이라예’ 낭송을 시학 행사에서 한 다음 날 아침이면 일찍 전화해주시며 ‘정 숙시인, 계속 사투리로 시를 쓰세요.’ 하며 응원해주시던 전화음성이, 대구문학아카데미 10주년 행사 원고 청탁으로 박두진 시인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음성이 그 좁은 방 안에서 잔잔히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1993년 시와시학으로 시인 등단한 필자를 축하해 주는 박재삼 시인의 친필이 복도 가장 어두운 곳을 지키고 있어 더욱 친근감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2.만해의 입지立志가 손바닥으로 전달되다

 1981년 한용운 문학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재홍 평론가는 자신이 쓴 ‘만해평전’이 국어교과서에 실릴 만큼 만해 전문가로 인정받아왔습니다. 만해 학술원장을 맡아 해마다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는 만해 축전에도 적극적으로 간여해 왔습니다. 1990년 그가 창간한 ‘시와시학’은 최장수 시 전문 계간지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계간지 운영비를 대기 위해 고향의 전답을 팔아 올리곤 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는 말로 시를 향한 열정을 드러내면서 이번 전시 작품 중 유달리 육필이 많은 것은 계간지에 싣기 위해 받은 원고들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었기 때문인데 컴퓨터가 보편화된 뒤로는 문예지 편집실에서조차 육필을 접하기 어려워진 것이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박물관은 주 3일[화 목 토]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문을 엽니다. 오전 11시와 오후 2.4시에는 해설을 곁들인 관람도 가능합니다. 조정래 소설가의 아버지 즉 김초혜 [사랑굿]시인의 시아버지가 만해의 수제자로 법화종 대처승 조종현님이었다고 합니다. 시조시인이기도 하다는데 김재홍 평론가님이 조정래 소설가의 안내로 만났을 때 교수님 손바닥에 입지立志라는 단어를 써주며 ‘뜻을 세워 일해라’ 는 뜻으로 만해가 그 스님의 손바닥에 그 글자를 써주었다고 말씀하셨다. 고 즉 입지立志라는 단어가 만해는 조종현님의 손바닥에 조종현님은 김재홍님의 손바닥으로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더 만해 연구에 힘을 쏟아 부을 수 있었다고 회상하듯 한 말씀하십니다.

 이 날 행사에 현대시 백년이란 시간의 고리를 연결해 주는 황금찬 시인이 초대되어 더욱 뜻 깊었습니다. 그의 [고향의 소나무] 36번째 시집 출판기념도 겸했습니다. 문화예술 위원회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선생님은 거목처럼 웅크리고 앉아 조용한 음성으로 백년 긴 역사의 연줄을 조율하고 계셨습니다.

3. 현대시 백년을 조율하다

“ 제 나이가 만으로 90이거든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 1등을 했어요. 라디오가 없어 동네 부잣집에서 수십 만 명이 모여 만세 부르며, 울며 ,일본 아나운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 때 내 나이 18세였지요. 만권은 읽어야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있다던 강 인산 스승을 존경했는데 
‘저 올림픽을 한번 보고 죽어야할 텐데’ 하며 한숨을 쉬니 
 ‘왜, 우리나라에서 해야지’
‘ 나라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요?’  
‘그러니까 나라를 찾아야지. 나라를 찾을 때까지 시를 쓰게’
그 땐 꿈같은 얘기였는데 1988년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어요. 그 땐 이미 선생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올림픽 전날 시청에서 축시를 낭독하라는데 참, 시를 쓰면 이렇게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혼자 감탄했어요.
비는 내려 수첩이 젖어 글을 읽는데 혼이 났지만 시는 꿈을 갖게 하고 이루어 주는 수단이고 방법이었어요. 올림픽 끝나는 날 피나래 시까지 읽었어요.
 
  1988년 9월 7일 러시아에서 루프생코 시인을 만나 
‘내가 듣기로 당신은 시를 많이 왼다고 들었는데 몇 편이나 외느냐?’ 
‘ 나는 내 시 120편은 왼다. 러시아엔 시 낭독 직업이 있다. 아주 고상한 직업으로 대우가 좋다.’ 
그 당시 어느 미국시인에게 한국에 자주 오는 이유를 물으니 한국 여인이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온다 는 얘길 했는데 지금 그녀들은 너무 요란하고 시끄럽습니다. 
 한 평생 시 외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시인은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평생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인도에는 22개의 국어가 아프리카엔 무려 60여개의 인사말이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단일어에 단일민족이니 얼마나 복 받은 일이고 행복한 일인지요. 인도는 타지마할이 좋았는데 죽은 왕비를 위해 그 아름다운 궁전을 짓고 난 뒤 비밀을 위해 목수들을 대부분 손을 자르든지 죽임을 당했는데 가장 중심이었던 도목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완전하게 짓지 않고 계속 수리하도록 꾀를 썼기 때문입니다.  어느 세계시인대회에서 미국여성시인이 불문곡직하고 포옹을 하며 
‘ 황시인의 시를 읽고 밤새 울었습니다. ’고 했습니다.  
공납금 달라고 우는 놈 매를 쳐 학교 보내는 가난한 아버지는 종이호랑이 라는 내용의 시였지요. ”

 선생님의 기억력이 대단하십니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외고 계십니다. 그 연세에 저렇게 건강한 몸을 유지해 주신 것이 참 고맙습니다. 그것은 늘 긍정적인 사고로 희망을 노래했기 때문이라며 
 “시는 감동의 예술이 아닙니까? 평생 가난했으므로 가난한 얘기를 썼습니다.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오르간 한 대가 12원이어서 돈이 들어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죽는 날까지 시만 쓸 것입니다.어느 해 내 시집이 안 나오거든 죽은 줄 아세요. 오늘 이 시간을 이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구나! 그것만 기억해 주세요. ” 

 ‘시인은 늙고 병들고 유행이 날아간 언어는 쓰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긴 시인 황금찬시인의 시 한편 이제희 시인이 낭독합니다.

행복을 파는 가게 

                                       황금찬 

사랑받기를 원하는가 

사람아,
받고 싶은 사랑보다
한 3배쯤
남을 사랑하라.
사람아,

세상에는
행복을 파는 가게가 없다네
또 하나의 하늘을
창조하고
꿈의 성문을 열면
열대의 님프가 피워 올리는
이름 없는 꽃 한 송이

보이는 것은
모두 순간적인데
그러나 보이지 않은 것은
영원한 강물

신앙의 배를 띄우고
나 한 마리 백조

등을 밝히고
잃어버린 구를 한 방울
그 속에 눈 뜨는
청자에 그런 새 한 마리. 

4. 갯바위들은 아직 잠 못들고

 한 점으로 웅크린 거목의 모습이 마치 거친 파도 속에 앉아 꿈쩍하지 않는 갯바위처럼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새삼 시의 집에 갇힌 시인들이 또 시를 위해 헌신을 하고 계신 김재홍 평론가님이 모두 갯바위가 되어 한 차원 높은 삶의 질을 위해 시의 경계선을 지키느라 파도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다는/ 산을 갉아먹으려 쉼 없이 몸부림이고/
산은/ 그 바다 밀어내느라 잠 한숨 못 들고/

그 틈새 작은 / 돌부처 하나 가부좌 틀고 앉아 /
산은 산으로서/ 바다는 바다로서/
서로의/ 경계線, 지켜야한다며/

*미세기의 시달림으로/
제 온 몸 찢기고 부서지는 줄 모르고/
세월없이 목탁 두드리며/ *경전파도 뒤적이면서/

*밀물 썰물  * 경전 같은 파도라는 조어

--‘갯바위’ 전문 [정 숙]

이윽고 뒤풀이 시간입니다. 유랑극단이라며 유자효 시인이 이브 몽땅의 ‘고엽’을 불어로 부르면 김재홍 교수님이 다시 국어와 독어로 부드럽게 부르며 넘어갑니다. 뒤이어 이가림 주간님이 배르렌느의 시를 불어로 읊습니다. 이시영시인과 다른 분들의 뽕짝도 겸해서 마지막엔 김종철 시인의 하바나낄라가 흥을 돋웁니다. 발바닥 장단까지 곁들여 감나무 가지가 집시의 춤을 춥니다. 박미옥 토우 작가는 삼천포에서 시인만세! 를 외치는 작품, 소년을 업고 도착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시인들의 육필이 쿵, 쿵 나쁜 귀신을 쫒는 지신을 밟습니다. 현대시의 백년 이백년 길이 환히 밝아옵니다. 최남선의 바다가 물길을 열고 깃발을 흔들며 달려옵니다.

석학을 찾아서 5

그의 압록강은 영원히 흐른다 [이미륵 박사와 석굴암]

 -정 숙 [처용아내]

1.천년의 시간을 찾아가는 길

벌써 2009년 1월 5일
 사학자 문경현 박사님과 신라사 연구와 금석비문의 대가인 경북대 이영호 교수님과 시인 이상번님과 대구대 한문학자인 이정화교수님 이 네 분과 합석하여 경주로 떠나는 날입니다. 일부러 고속도로 아닌 국도를 달립니다. 경산을 지나고 필자의 친정이 있는 자인 쪽을 지나 하양으로 들어서면서 문박사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하양은 하양 허씨가 유명하지요. 세종 때 허주 대감의 본거지기도 하고”
“저기 은혜사는 이지현이라고도 했는데 옛날 銀鑛은광으로 유명합니다. 소설가 현진건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野菜 야채라는 말이 나오자 
“야채는 일본어입니다. 한글로는 채소가 맞지요.”
말 한마디라도 아주 엄격해서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선덕여왕의 초상이라 하니 
“임금의 초상화는 御眞어진이지요. ” 무지가 폭로될 때마다 부끄러운데 이미 습관이 되어 어쩔 수 없으니 죄송합니다. 다 늙은 남편을 신랑이라 한다고 또 몇 번을 면박 주신다. 
“에고 이래저래 시집살이는 팔자로다”
그럭저럭 영천으로 들어서면서
 “옛날엔 영천을 골벌국이라 했는데 이곳은 인재가 많지요.”
 필자의 조상 포은 정몽주의 임고서원이 있고 선조 때 박인로선생, 소설가 백신해 , 지금 복지부 장관 전재희, 경기지사 김문수, 서강대 박홍총장, 문경현박사님 본인, 김법린 옛 문교부장관, 이호[전 내무 법무부 장관], 조선역사를 쓴 김성칠[역사 앞에서]  이 중 김성칠, 이호, 김법린, 문경현박사 네 분을 영천 4재라고 한다며 짓궂게 씨익 웃으십니다. 

 영천은 임문석 황보집등의 [민성일보]라는 신문발행으로 좌익이 강했다고 그래서 철저한 좌익이고 반일이었던 백신해 소설가가 존재했나 봅니다. 지금 영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중기 시인과 모윤숙 보다 훨씬 미인이었다던 이하석 시인의 말을 떠올리는데 이영호 박사 묵묵히 운전하다가 한 말씀 보탭니다. 길목에 파장이 되어 검게 너불대는 겨울연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정화교수 “저 연잎에도 농약을 뿌린다는군요.” 혀를 차다보니 경주로 들어선다. 무열왕[김춘추]릉에 내리면서 왕릉 건너편 김유신 묘를 김인문[무열왕의 2째 아들]의 묘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무열왕릉 들어가서 입구엔 거대한 거북이 발 없는 용 여섯 마리를 업고 있습니다. 그 비가 그 당시 당나라 형이지만  거북 발가락이 다섯인데 뒷발가락은 넷이라며 그것은 걸어갈 때 발가락 하나는 힘을 주느라 접혀져 보이지 않는다고 그 만큼 생동하는 거북으로 최고의 걸작이라 칭찬하십니다.
이 상번“ 무열왕의 첫째 아들이 문무왕이지요?”
이 영호“ 그렇지요. 그 둘째가 김인문입니다.”
문경현“ 김인문은 대학자요 명필입니다. 저 비문을 쓴 분이지요.”
이 정화“ 박사님 옛날 이태백이나 두보 같은 시인들은 인기가 대단했다는데 어느 정도였나           요?”
문경현“ 아 대단했지요. 두목은 두잠이라고 했고 이태백은 이백이라고도 불렀는데 두목이            타고 가는 수레에 여자들이 귤을 던져 수레가 가득차기도 했답니다. 허난설헌이            그 두목을 그리워하는 시를 짓기도 했지요.”
정 숙 “ 그 당시 명문가의 맏며느리로 남편 김성집을 두고 누군가 그리워하는 시를 쓰고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한 걸 보면 허난설헌의 성격이 자유로웠기 때문 아닐까요?”
문경현“ 맞습니다. 허균의 반골사상은 어느 서자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었고       서자를 자녀의 스승으로 모신다는 건 그 당시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개방적인      환경에서 자란 탓이기도 합니다.”
정 숙“이상번 시인님 첫 시집[스탑 더 워]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등단 연도는 아주 빠른데
       시집을 함부로 내지 않으시려는 그 정신 높이 사야겠지요.”

 이윽고 신라문화유산조사단에서 손오익 단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문경현 박사님 [사학자, 문화재 위원] 을 환대하며 궁중요리 수준의 점심을 대접 받았습니다. 다과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이미륵에 대한 얘기 주머닐 풀기 시작합니다.


2.독일 교과서에 실린 한국인의 소설

 “1930년 독일 뮌헨 체류 시절의 이미륵 박사 자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1946)로 전후 독일 문단을 뒤흔들었던 재독 교포 작가 이미륵(李彌勒·1899~1950) 박사의 독립운동 활동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며 이 선생의 종손(從孫)으로 유족 대표인 이영래(李榮來·삼화제작소 대표이사)씨는 최근 국가보훈처에 이 박사에 대한 독립유공자 추서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새로 드러난 행적은 1920년 상하이 임시정부 산하 대한적십자회에서 활동한 사실로, 최근 김종욱 세종대 교수가 논문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을 통해 밝힌 것입니다. 임정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의 1919년 11월 27일자와 일본 경찰이 작성한 ‘고등경찰요사’ 등은 이의경(李儀景·이미륵의 본명)이 ‘대한적십자회 십자대(十字隊) 회원’ ‘청년단 편집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대한적십자회는 1919년 7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립한 보건후생단체였습니다.

3·1운동에 참가한 이미륵 박사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 뒤 상하이를 거쳐 유럽으로 간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상하이에서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요. 이 박사는 유럽으로 간 뒤에도 일본측이 작성한 ‘요시찰 조선인 학생 33명 명단’에 올라 있었으며, 1927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회의’에 김법린·이극로·허헌 등과 함께 참가해 일제의 식민 정책으로 신음하는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려 했습니다.

본명은 이의경  황해도 이감찰 댁 외동아들로 아버지가 한학자였고 서울 의학 전문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11살에 6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해서 딸이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처음 동물학을 하다가 동양학을 강의하였습니다. 거의 매일 고향으로 편지를 부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날 누님 어진이가 보낸 편지를 읽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미륵 박사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 뒤 중국으로 가면서 마지막 본 압록강을 회상하면서 쓴 독일어로 쓰여진 소설로 독일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였다니 대단한 일 아닙니까? 3부까지 구성이 되었는데 2, 3부는 공습으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1부는 자전적인 내용으로 고국 특히 고향 해주에 대한 향수가 가슴 쓰리게 했었다고  2부와 3부는 주로 독일 생활과 느낌을 쓴 글인데 소실되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전시된 사진을 봤는데 이 미륵씨 참 잘났어요. 독일 여성들한테도 그렇게 인기가 있었고 존경을 받았답니다.  51세의 위암으로 타계하기 까지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임종엔 게일러 교수 부인 지그문트와 이미륵의 지도로 동양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에파양 무릎을 베고 러브송을 부르며 돌아가셨어요. 러브송이란 바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말하지요. 특히 그의 불멸의 연인 애파양은 미쓰 민셴으로 뽑힐 정도로 예뻤답니다. 사진으로도 봤어요. 이미륵 박사가 타계하자 에파양은 그 당시 연합군에 의해 봉쇄된 베를린 수녀원으로 지그문트는 지방 교육감으로 숨어버려 그 당시 순애보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훌륭한 신사였고 천재였다는 거지요. 나중 지그문트가 “나는 그렇게 돌봐 드리지 못했어요. 애바양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간호했는지요”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세계 여러나라어로 번역될 만큼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것을 독일에서 공부한 전혜린이 번역을 했지요. 미숙한 부분도 많지만 그 당시 추억의 인물이 또 그녀이지요. 다음엔 전혜린에 대한 얘길 나눠보도록 합시다.”

어느새 짓궂게 웃으시며 작자미상의 시조 한 수 풀어냅니다.
兩脚[양각] 새에 牧丹[모란]이 半開[반개]하여 내 힘줄방망이로
進進[진진]코 退退[퇴퇴]하니  其味[기미]가 如嬨[여자]라 
 
嬨[자]는 사탕이라는 뜻으로 그 맛이 사탕처럼 맛있더라는 뜻이라며 아주 노골적으로 性적인 표현을 하다가도 금세 옷깃을 여밉니다. 시인은 언제라도 그 시대의 선봉이었다며

 “하이네는 감성적인 공산주의자였고 피카소도 철저한 공산주의여서 혁명가 프랑코를 지지했지요. 피카소의 ‘게르니카’란 그림은 스페인 국민학살 내용이고 한국전쟁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바이런은 영국백작이면서 그리스 독립운동을 했던 시인이었습니다. 
4,5십년대는 하이네와 바이런시집을 60년대는 햇세의 데미안과 전혜린 이어령의 수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으야만 지성인라고 할 정도였지요. 이어령의 수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문일평의 글과 일본 야나기 무네요시의 글 많은 부분이 짜깁기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민셴은  뮌헨을 말하는데 그것이 바른 표기지요. 언제 서울 이미륵 기념관에 한번 들러보세요.”

3.불국사에서


 하루 동안 일정이 바빠 모두 서둘러 일어납니다. 신라문화유산 연구원인 조수진 박사의 안내로 불국사로 향합니다. 문박사님의 불편한 다리 때문에 전 전국 불교 청년회 회장이었던 이상번 시인이 주지스님과 통화하시더니 경내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불국사 주지 스님은 성타 스님으로 ‘마음 멈춘 곳에 행복이라’ 생활 명상집을 낸 스님입니다. 최인호 소설 ‘길 없는 길’에 나오는 만공스님 다음 그 다음 제자라고 합니다. 환경운동가이며 ‘금오집’ 등 여러 저서가 있습니다. 다과를 대접해주시며 극락전 복돼지 얘길 해주십니다. 조선 영조 26년[1750]에 조성된 극락전인데 극락전 현판 바로 위에 다산과 민족번영을 기원하여 멧돼지 한 마리 조각해 올려둔 것을 이제까지 몰랐다고 합니다. 황금돼지 해인 2007년에 겨우 알았다는 얘기며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 중 한 분인 [신라 어느 왕의 아들] 김교각 스님이 중국 구화산에서 앉아서 등신불이 된 얘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1300년 뒤 신라로 돌아가겠다는 말씀에 따라 지난 1997년 중국인들이 그 분의 동상을 보내주어 무설전에 모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도 신라를 향해 앉아 고국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4. 석굴암에서

 해질 무렵 산골짜기 잔설을 지나 석굴암으로 향합니다. 원래 목적지는 석굴암이었기에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얼음 산길로 들어섭니다. 특별한 배려로 석실 안까지 들어가 부처님을 뵙습니다. 실내는 푸근했고 입구 금강역사님 두 분이 자성의 시간을 갖도록 강요합니다. 참!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불과 제자들 그리고 십 일면 관음보살님의 그 관능적인 몸매가 살아 움직입니다. 아니 서로 움직이다가 사람 소리에 멈춰 선 느낌입니다.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져 특히 입술이 불그레하게 칠해져 있어 뜨거운 피 흐르는 소리 들리는 듯합니다. 제자들 중 원숭이 같은 분이 있어 물으니 젊고 예쁜 조수진 박사가 유마힐 거사님이라고 대답합니다.

5. 빈바구니

‘삶은 고독과 갈등의 경전이다’ 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우리는 이 세상의 몸을 받을 때부터 첫 울음 울 때부터 고독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고독이 있어 진정으로 참회와 기도를 하게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예술품이 태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린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어 모든 것을 버리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엔 모두 침묵에 잠겨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지 운전하는 이영호 박사님 만 눈빛 초롱합니다. 하루 동안 천년의 역사를 밟았기에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남지나 않을까 은근히 두렵습니다. 참 긴 하루입니다. 자기 성찰의 시간에 시 한편 적어 봅니다.

빈 바구니


아침 산책길에서
높은 벚나무 가지에 앉아 활짝 웃고 계신다
꽃부처님을 뵙느라 엉거주춤 서 있는데
왠지 발밑이 소란스러워 내려다보니
고 작은 냉이꽃들이 소복이 모여
주먹질을 하다가 흐느끼다가 
그 힘의 열기가 내 등산화 밑바닥을 울렸던 모양이다
살아오면서 저도 모르게
이름 없이 숨 쉬는 풀꽃들을 얼마나 많이 밟았을까? 
짓밟히는 자신을 늘 애달아하면서...
경주 남산 마애불들을 왜 바위가 바짝 붙잡고 있는지
왜 땅을 밟지 못하게 엉거주춤 서 있거나 앉아있는지
오늘에사 짐작이 간다
발밑에 밟히는 풀과 개미들의 신음소리가
차마 산을 밟지 못하게 했던 것이지
겨우 눈뜨는 노랑제비꽃잎을 거침없이 짓밟으며 
저만의 발복을 비는 모습 돌아본다
소복소복 채워보겠다고 나선
내 욕망의 빈 바구니 내려놓는다




석학을 찾아서 6

      
     정  숙 처용아내 [시인]

빛깔 입힌 언어와 무덤 마디를 남기고 떠나시다[박주일시인과 부인사]

1.봄밤은 소문만 무성하고

 삼월 초순경, 봄은 자신이 곧 나타나리라는 소문만 무성히 퍼뜨려놓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음지에 선 동백나무 꽃봉오리들은 겨울부터 추위 견디며 기다렸지만 봄을 믿을 수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있는지 입술 꼬옥 깨물어 견디고 있다. 
 “문박사님,  쌍지팡이 짚고 서 계시는 모습이 지난해 보다 훨씬 좋아 보입니다. 건강하시지요? ‘慶州의 神話傳說集成경주의 신화전설집성’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사학자이시고 경북 문화재 위원으로 큰일 하셨어요.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신화 전설 뿐 아니라 민간설화가 들어 아주 노골적으로 성적인 얘기들이 들어 재미있었습니다. 차차 제 글에 소개 좀 해도 괜찮을까요?”
“예, 저보다 제 딸년이 걱정입니다. 아직 미혼인데 혼자된 애비 수발들어주는 녀석인데 고혈압에 당뇨에 지금 감기에 걸려 ‘아빠 나 죽으면 누가 아빠 심부름하지요?’ 자꾸 죽음에 대한 얘길 해서 걱정입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도 계시지 않아 딱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주 찾아뵙거나 도움이 되지 못해서 자원봉사해주는 분이라도 계셔야 할 텐데”
“아이구! 그런 말 마세요. 장성한 삼남매 아직 아무도 혼사를 정하지 못해 걱정입니다.
착한 며느리가 들어와 집안 정리 좀 해주면 고맙겠지만 요즘 누가 그런 일 하겠습니까?”
“변명 같지만 전 아흔 다섯에도 혼자 생활을 즐기는 친정엄마께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나쁜 딸이지요. 젊었을 땐 시어른 섬긴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습관이 지금도 바쁘다는 이유를 대며 서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박사님 또 죄송한 일이 있습니다. 저번 호 석학을 찾아서 5에서 시인 두목인데 두보라고 잘못 표기 되었고 영천 출신 인재로 박인로인데 박인호라고 되어 제 무식이 폭로되었습니다. 교수님 명예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두목의 자가 목지라고도 했다지요?”
“예, 두목은 당나라 말 최고의 미남 시인이어서 지금의 꽃미남이었지요. 그래서 허난설헌이 그리워했고 그가 탄 수레가 지나가면 여성들이 귤을 던져서 귤이 수레 가득 넘쳤다고 했어요.”


2.징잡이 초민 박주일 시인과 미당

  오늘은 봉황의 자태인 팔공산 몸체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인사에 얼마 전 세운 비석의 비문을 자랑하시고 송림사 주지스님의 점심 대접을 받기 위해 거의 동쪽 끝인 파동에서 북쪽의 팔공산으로 행차하시는 날이다.

“박사님, 며칠 전 박주일 시인님이 타계하셨습니다.”
“그래요? 연세가 벌써 여든은 훨씬 넘겼지요?”
“대구문학아카데미 대표이사님이셨고 시를 쓰다 보면 모든 사물이 스승입니다만 특히 박주일 시인은 제겐 시를 쓰고 미치게 한 분이시지요. 평생 교사로 시 지도로 징을 치신 징잡이시지요.”
“대구문학 아카데미 대표를 근 20년 지켜 오시면서 150명의 제자들과 60여명의 시인을 배출하셨지요. 그 중 전국적으로 유명한 여류 시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경림의 ‘갈대’를 낭송하실 때의 그 열정에서 시 한편이 소설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게 하셨지요. 칠순을 넘기느라 가물가물해진 시력 때문에  대구문학아카데미 10주년을 지나면서 16기부터 필자에게 시창작반을 넘겨주셔서 파도 센 바다에서 시의 길 찾느라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전국 60여명의 제자와 인터넷 포엠토피아에서 포엠스쿨 정숙반까지 운영하면서 여러 제자들이 계간지 ‘시안’ ‘시와 시학’ ‘전태일 문학상’ 포엠토피아 신춘문예‘ 등 그 외 여러 문학잡지로 등단하는 많은 성과가 있어 늘 감사드릴 뿐이지요. ”
“박주일 시인은 67년도에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지요?”
“네 시집으로『노적(鷺荻)』(공저),『미간(眉間)』『모양성(牟陽城)』『신라유물시초(新羅遺物詩抄)』『는개 그리고 달빛』[물빛 그 영원][가솔송아, 꿈결 같구나]등이 있습니다.”
“미당선생님과 호형 호재 할 정도로 가까웠다지요?”
“ 예, 선생님의 시집 ”물빛 그 영원“ 속 [시인의 산문] 중에서
‘미당 형님과의 수많은 대화 가운데 지금도 가슴에 선연히 살아있는 게 하나 있다. ‘내 영원은 물빛’이란 말씀이다. 새로 시집을 꾸미면서 시집명으로 [물빛 , 그 영원]이라고 한 것도 미당 형님과의 추억을 더듬는데서 연유한다. 개구리 수영을 익히던 시절은 갔지만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형님의 시 세계와 인연은 영원할 것이다. ’ 라는 산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고 특히 그 댁에서 자주 주무시기도 했다는데 미당선생님의 모자 또는 친필들이 선생님 댁 벽에 몇 편이나 걸려있었지요.”
“처녀 시절 경주 월성중학교 교편 잡고 있을 때 석굴암에서 경주 문인들과 내려오면서 미당선생님 팔을 부축해드린 기억이 납니다. 그 땐 시도 쓰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50대 젊으셨는데 왜 혼자 내려오지 못하셨을까 궁금한 적이 종종 있습니다. 시인들은 엄살이 심한 것인가? 그러고 보니 김춘수 시인님도 그 당시 머리도 손도 떨었지요. 강의 때 몹시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3. 김춘수시인과 비밀무덤

“듣기론 연세도 비슷해서 김춘수시인과도 친했다더군요.”
“예, 한 살 후배라고 들었습니다. 같이 계시는 걸 저도 자주 뵈었지요. 특히 김춘수시인님은 제 경북대학교 국문과 시절 스승님이기도 해서 늘 반가웠지만 대접해드릴 줄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하지요. 지난해 박주일 선생님께 진지하게 미당과 김춘수 시인의 여인들에 대한 얘길 듣고 싶어 하니까 그런 건 많이 알지만 절대 말해줄 수 없다며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가야한다고 하시더군요.”
“허허, 그런 비화는 그 분도 상당히 많다는 소문이던데요.”
“사모님은 몇 년 전 수필로 신라문학 대상을 받은 박 지평님입니다. 남편 뒷바라지에 그 동안 고생도 많이 한 늦깎이지만 글이 아주 신선합니다.”
“박주일시인의 대부분의 시들도 모발로 몇 겹이나 엮어놓은 듯이 섬세하면서 질기게 보이는 것은 신선한 상상력과 감각의 섬세함이 문장의 밀도를 통하여 얻게 된 견고성이라고 김춘수 시인이 [잡초기] 시집 해설에서 말씀하셨지요.”

한줌 뜰귀에서도 짐짓/ 잘려나가는 여름의 그림자,/ 핏줄 또한 안으로 가다듬은/ 풀잎 하나에도/ 벌레 울음은 또한 스민다./ 그 운 오래오래 삭아서/

제스네리아 빛으로,/ 제스네리아 빛으로,/

타고 있는 眉間,/ 때때로 눈 어두워/ 그대 만남이 잔잔한 虛空인/
것을 알리라./

나의 깊은 곳으로/ 아, 풀잎 속살의 제일 아픈/곳으로/다가오는 발자국 소릴/ 이젠 알리라/ 잘린 그림자여./[제스네리아] 전문

       “그는 늘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술맛에 민감하고 안주 맛에 민감하다. 그는 술과 안주를 다루듯 시를 다룰 뿐이다. 라는 김춘수시인의 말씀처럼 시어 선택에도 아주 신중하셨지요.” 
“또한 선생님의 말씀 중엔 ‘궁합이란 게 있기는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흔히 궁합이 맞다, 안 맞다 말을 쓰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 세계에서도 그 작품을 이루고 있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이 궁합이 맞는 단어들이 모여 있나, 그렇지 않나에 따라서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시며 시는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자들에게 강조하셨지요”
“죄송합니더. 오늘은 제가 말이 많아져서 돌아가신 선생님을 욕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처용아내님, 그런 걱정 마시고 명복이나 빌어드립시다.”
" 지난 해 대구 작가회의 특집으로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그 많은 제자 중에서 왜 하필 정 숙에게 시 창작반을 맡꼈느냐 고 제가 여쭤보니 씨익 웃으시며 ‘정 숙은 발이 이뿌지 난 여자 얼굴은 안 봐 손발이 이뻐야 해’ 해서 무안했던 적이 있었지예. 죽으면 썩어질 몸이라고 아끼진 않았는데예. 마구 부려 먹었는데예. 진짜라예. ”
“사실은 늘 가까이서 자가용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며 잘 받들어 모신 여성 시인이 있었지요. 정진규시인과도 친하셔서 하늘이 푸른 날에도 전화로 ‘눈이 펄펄 옵니다’ 하면 두 분만이 아는 어떤 암호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곤 하시더군요. 그러나 시집살이로 늘 바빴던 제겐 아주 무서운 회초리였지요. 우쨌기나 처용아내인 절 믿어주셔서 고맙지예. 박주일 시인님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마디라는 것은 ’입니다.”

4. 산다는 건 마디 만드는 일

마디라는 것은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
쉬었다 간 자리다
혹은 그 흔적이다
달리는 열차의 마디는 역이다
나의 집은 나의 마디다

무덤은 
인간이 남기고 가는 
마지막 마디다

“ 예, 작품 좋습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시집들도 마디가 될 것이고 산다는 것이 마디 만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가르치느라 평생 징을 치시다가 결국 무덤이란 마디를 남기고 떠나셨군요.”
“참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젊은 사모님께서 지극정성으로 모셔서 건강하셨고 그렇게 원하시던 대구문학아카데미 20주년 행사를 1월에 [아르정 탱]에 참석하셔서 ‘제자들을 옛날엔 향기만 맡고도 알았는데 이젠 선생님 누굽니다 라고 해도 잘 못 알아본다’고 하셔서 모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85세를 일기로 돌아가시는 날 아침엔 식사 잘 하시고 ‘봄날은 간다’ 노래까지 정확하게 부르시고 운명하셨다는군요. 선생님을 위해 제가 평생 처음 쓴 조시입니다. 한번 들어 봐 주시렵니까? 교수님 부끄럽습니다.”

弔詩-楚民 박주일 선생님을 애도하며
                                
“갈수 있겠는가
갈수 있겠는가
뜨거운 숨소리 밀치고
뜨거운 가슴으로 훌쩍 떠날 수 있겠는가 ”*

수련이나 겨자씨 보다 작은 피그미 꽃 술 속에서
우주를 찾아내시던
꼿꼿하신 시성(詩聖) 한 분이 뒷짐 진 채
이승을 아주 떠나시려 하나니

잠든 들풀들과 나무들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란 걸 깨우치기 위해 
평생 징을 치시더니
징도 징채도 내려놓으시어
가벼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혼자 길 떠나시려 하나니

남은 이들 신 새벽 벼랑 끝자락에 서서
슬픔 나누며, 안경 너머 형형(炯炯)하신
선생님의 눈빛 그리워합니다

저 정월의 하늘 위로 
흩어지는 푸른 징 소리!
평생 징잡이셨던 초민 박주일 선생님을  
이승에서 종천(終天)코져 하옵니다

선생님 부디 잘 가소서, 열린 하늘 
무지개를 타시고 고이 가소서, 가셔서 
우주 속 징소리의 떨림을 담고 다시 오소서

오셔서, 수성 들판 어디쯤 들꽃으로 오소서
선덕여왕과 지귀(志鬼)가 지나쳤을 
반월성 둔덕 설유화 꽃그늘로 
돌 틈 사이 노루귀 한 쌍으로 오셔서 
어리석은 나무들에게 그 징소리 다시 울려 주소서
*박주일의 수련에게에서


 송림사 도착이 12시 전인데 미리 정갈한 점심상이 차려져 있어 모처럼 사찰 음식으로 공양하고 다과상에 우전차를 주지 스님이 직접 끓여주신다. 송림사 비문에 대한 의논을 하시고 이상번 시인과 함께 곧 부인사로 향한다.

5.선덕여왕과 부인사 초조대장경(初彫大臧徑)
 
 부인사는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해인사 소장 팔만대장경보다 무려 200년 앞서 각조된 초조대장경(初彫大臧徑)이 봉안되었던 절이라는 사실 외, 그래서 팔만대장경을 再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는 말씀과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47)의 원당이 있는 사찰이고 한때는 2,000여 명의 스님과 39동의 당우를 갖춘 대가람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승시(절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를 열었다는 유서가 깊은 절이라고 말씀하신다. 앞으로 2012년이 되면 초조대장경 조판 천년이 되는 해라고 운흥사 법상스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하지요.”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지 못하지만 예로부터 사당인 선덕묘(善德廟)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로 짐작할 뿐입니다. 판각은 몽골의 침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도 일본 교토[京都] 난젠사[南禪寺]에 보관되어 있어요. 몽골 칩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인 승가시가 섰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1930년대 중건된 선덕묘에서는 음력 3월 보름에 선덕제를 지내는데 덕과 미모를 갖춘 여인들을 뽑아 선덕여왕의 어진을 모신 숭모전(崇慕殿)에서 선덕대왕 숭모제를 매년 지내고 있습니다.”
숭모전 문을 삼월 그 행사 때만 공개한다고 묵묵히 닫혀 있다.
“선덕여왕 어진을 유황 화가님이 그리셨다는데 ”
“예, 제 친구이기도 하고 한국화 화가이고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였지요“
“유황교수님이 시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제 졸시 ‘학은 함부로 울지 않는다’ 시화를 그려주신 고마운 분이라 저도 뵌 적이 있습니다.”
“ 선덕여왕은 삼국유사에도 기록이 되어 있지만 예지력이 뛰어나 모란꽃이 향기가 없다는 걸 또는 여근곡에 백제군이 침입한 것도 미리 알았다고 전해 오지요.”
“여왕으로 아주 현명하고 기개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와 백제 연합군에 대항해 羅唐연합군을 결성해 그 침략군을 방어했고 첨성대와 황룡사9층탑을 세우기도 했다지요?”
“예, 천문을 관측하고 호국의 성지를 세우고 여왕을 짝사랑한 지귀 이야기도 전해내려 오지요,”
“10년 전 부부 모임에서 여기를 지나 수태골로 등산을 자주 했었는데 그 새 대웅전이 새로 잘 지어졌군요.”
“많이 소실되기도 했지만 문화재로는 신라시대의 당간지주, 쌍탑(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석등(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석등대석(石燈臺石), 마애여래좌상, 배례석(拜禮石) 등이 있고 이 밖에도 주춧돌, 화려한 문양의 장대석(長臺石)을 볼 수 있습니다. ”
“경주에서 문인들과 달밤에 선덕묘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무덤에 가락지를 묻어주는 의식을 행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추억인데 그 당시 서영수 이근식 시인님들이 같이 동행하기도 했지요.”
 법당에서 박주일 시인님의 명복을 빌고 나오는데 주지 스님이 환히 웃으시며 맞이하신다.
“ 이상번 시인님, 여기 주지 스님이 비구니시군요. 대청소를 하나 봅니다.”
“예, 몸집도 자그마한 분이 큰일을 도맡아 아주 당차면서도 싹싹하십니다. 종교를 떠나 이런 역사적인 곳들이 잘 보존 되어야지요. 그 발자취를 현장을 우리가 밟고 있다는 것이 행복 아닌가요. 후손들에 잘 보존해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새삼 엄숙한 마음으로 옷깃을 바로 잡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작별을 고하고 있다.
짧은 꿈 한 자락일 뿐인 이 세상 얼마나 더 부지런히 살아야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겠는가?

6. 마무리
 이 글을 정리하는 삼월 마지막 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셨다는 나태주 시인님은 저승 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더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고 병원에 입원하셨다던 송명진 주간님 전화 목소리도 밝으니 창 밖 벚꽃들이 환히 피어난다. 봄밤이라예. 참말로 봄밤이라예!
그 놈의 봄밤 시도 때도 없다며 처용님 도끼 들고 쫓아나간다. 벚나무 가지들 바들바들 떤다. 벚꽃 꽃이파리 나풀나풀 떨어지며 한숨짓는다. 휴! 그래도 봄밤은 봄밤인 기라예.



석학을 찾아서 7

다들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혜린田惠麟과 운흥사]

 -정 숙 [처용아내]


1.처용아내보다 더 허기진 활화산 검은 머풀러

 불꽃처럼 짧게 살고 갔으나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 속에 뿌려 놓은 언어와 고독과 사랑의 씨를 뿌린 활화산, 전혜린 
 ‘다들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말 죠르쥬 상드의 말대로 그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생이란 취하게 하는 것, 좋은 것이다. 죽고 싶을 만큼 그렇게 귀중한 것이다.’
 전혜린이 사랑하는 동생 채린에게 보낸 서한 중 일부입니다.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노래와 모닥불 가에서 춤과 사랑과 점치는 일로 보내는 짧은 생활, 짧은 생, 내 혈관 속에서는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있을지도 모른다 고 혼자 공상해보고 웃기도 한다.’   
 그처럼 생을 사랑하면서 불꽃같이 살다가 32세를 일기로 1965년 1월 11일 자살했다고 하는 활화산 그녀가 새삼 왜 이리 그리운가요. 어른 말처럼 그녀 사주엔 역마살이 끼어서인가요? 바하만의 말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던 우리들 청춘시절의 우상이었던 검은 머풀러의 전혜린이 정말 자살했을까요? 자살은 죄악이라고 비겁한 짓이라고 교육을 받았는데 요즘 젊은이들 특히 연예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화랑유적지의 조사연구’ ‘경주의 신화전설집성’을 얼마 전에 발표하신 석학 문경현 박사님과 여러 선생님들을 괴롭혀보기로 작정합니다.

2.아스팔트 킨트

 봄비는 추적추적 님 발자국 소리 내는 봄밤, 청도 가는 길목 가창 봉평 메밀 막국수 집에서 매콤새콤한 국물 다 마시기도 전에 물고 늘어집니다.
“박사님 약속대로 전혜린에 대한 얘기 해주셔야지요.”
“처용아내는 성질도 급하시네. 허허 신라시대 처용아내는 아무나 하고 잠도 잘 잤다는데 손한 번 잡아볼 수 없으니 허허 사람이 이렇게 순진하게 보여 누구에게 사기 당할까 밤낮 걱정이라”
자주 진한 농담을 하시는 지라 슬쩍 웃으며 구렁이 담 넘어 갑니다. 
  “3·1운동에 참가한 이미륵 박사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 뒤 상하이를 거쳐 유럽으로 간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상하이에서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요. 이 박사는 유럽으로 간 뒤에도 일본 측이 작성한 ‘요시찰 조선인 학생 33명 명단’에 올라 있었으며, 1927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회의’에 김법린·이극로·허헌 등과함께 참가해 일제의 식민 정책으로 신음하는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려 했습니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세계 여러 나라어로 번역될 만큼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것을 전혜린이 번역을 했지요. 미숙한 부분도 많지만 그 당시 추억의 인물이 또 그녀이지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번역한 전혜린 아버지 전봉덕은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졸업으로 김구 저격의 배후인물로 친일파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에서 헌병사령관을 했고 김두희를 저격한 안두희가 투옥 되었을 때 찾아가 양주등 사식을 들였다고 전해집니다. 나중 31세로 또는 32세로 자살했다는 소문 듣고 참 안타까웠어요. ” 

 “서울대 법학부에 입학했다가 독일로 유학을 한 뒤 F. 사강의 <어떤 미소>(1956) ,E.슈나벨의 <한 소녀의 걸어간 길>(1958),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1959), E. 캐스트너의 <화비안>(1960), 구드리치, 하케드 공저의 <안테 프랑크의 일기>(1960)(같은해 4월에 {신협}에서 공연) ,L.린저의 <생의 한가운데>(1961), W.게스턴의 <에밀리에>(1963), H.막시모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1964), H.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4), H.노바크의 <태양병>(1965) 등의 번역집이 있고 저서로는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유 작 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가 있습니다.”
“박사님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으로 이화여대 강사 성균관대학 교수로 그 당시 여성으로선 대단한 사회적 지위였군요. ”
“그러나 그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과 대학마다 독문학과가 별로 없었던 때라 강사 자리 얻기도 힘들었을 때고 또  이 대학 저 대학 시간강사를 한다는 건 참 힘들었을 겁니다.” 
“경기여중 고등학교 졸업하고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재학중 독일 유학한 최고의 엘리트였군요. 가정이 아주 부유했던 모양입니다.” 
“그 당시론 아주 대단한 집안이지요. 그녀의 글에서 보면 아버지가 아주 공주처럼 키웠다고”
“자신이 아스팔트 킨트라고 했는데 그것은 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시의 고향 없는 아이들이란 뜻이지요. 초등학교 일학년을 수료하고 서울에서 신의주로 갔다는데 깨끗한 그 곳보다 중국인 촌과 압록강을 더 좋아한다고 했지요.” 
“아버진 맏딸인 그녀를 직접 가르치고 책을 읽혀 책상 버러지와 독서광으로 키워지고 무조건 커트라인 높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난 뒤부터 몹시 혼란하고 흥분된 상태였다고 자전적 글에서 피력하고 있지요.”
“그녀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세이집에서 보면 뮌헨은 한마디로 제복을 입고 장갑을 끼지 않은 도시 와이셔츠 단추를 푼 분위기로 비 인습적이고 사람을 권태롭게 하지 않는 도시라며 뮌헨을 무척 사랑한 것 같습니다. 특히 슈바빙이란 도시를”

3.데미안과 싱클레어,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싯귀절을 떠올리며 그 당시 갑자기 지평선이 무한대로까지 넓어진 느낌이었다는 글을 음미해보면 맏딸로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늘 양친에만 매달려온 자신이 혼자 뭔가 할 수 있다는데 아주 흥미와 생동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슈바빙 구역은 가장 정신이 자유로운 곳이라며 독일 생활을 아주 즐긴 것 같군요.”
“예 목적을 가진 생활, 그 일 때문이라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살아가는 생활, 무엇보다 온갖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생활을 더 사랑한 것 같습니다.”
“60년대 헷세의 ‘데미안’을 번역하여 그 당시 대학생들이 그 책을 멋으로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도 했지요.”
“참 대단한 붐을 일으켰지요. 전혜린이 그 책에 아주 심취했나 봅니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싸스다.’
“ 싱클레어의 자아를 찾아 고뇌하는 과정에서 결국 데미안이 자신의 분신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뜻도 모르면서 열광했던 그 시절 청춘의 뜨거움이 그리워집니다.”
“고독하게 모색하고 지치도록 갈망하고는 죽음에 의해서 자기의 운명을 성취하는 모습이라는 전혜린의 독후감 정리에서 봐도 늘 죽음을 삶의 소중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녀가 번역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의 주인공, 자유를 정신의 자유를 희구하는 본능적인 충동에 지배되어 있는 성격의 니나와 닮으려는 성향이 강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4.전혜린과 손금[이가림 신달자 시인의 말씀과 김남조 시인의 조시 ]

 인하대 불문학과 교수님이시고 지금 시학사 시 계간전문지 주간이신 이가림 시인은 처용아내의 진지한 질문에 푸근한 미소로 한 말씀해주십니다.
 “대학생시절 직접 강의를 들었어요. 수줍음이 많아 강의도 학생들 멋대로 떠들어도 상관없이 혼자 강의하니 학생이 ‘왜 선생님 혼자서 하세요?’ 항의하듯 물으니 ‘저는 여자인데요. 좀 봐 주세요. ' 하며 애교스럽게 말했어요.” 
 “전혜린하면 검은 머풀러가 떠오르는데 그 당시 머풀러 쓰는 게 유행이었어요. 제 대학시절 사진도 머풀러 쓴 게 많아요.”
 “시간강사로 그 당시만 해도 독문과가 별로 없어서 전임강사 자리를 얻지 못했고 강의 때도 검은 머플러를 쓰고 했습니다”
“최불암의 어머니가 경영한 ‘은성’이란 대포 막걸리 집에 문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김수영 시인이 다혈질이어서 늘 고함을 질렀어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가 유행하니 왜 저 노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럴 때도 전혜린이 검은 머플러를 쓰고 나타나곤 했어요.“

 몇 해 전 강진 영랑 문학제에 처음 참가하게 되었는데 행사 뒤 천둥번개가 치는 밤 김남조 선생님 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시인들은 노래방으로 가고 이가림 시인, 김재홍 평론가  오현 스님 외 김용직 교수님 유자효 시인 그리고 대구의 정하해, 장혜승 시인, 이병금 이경 시인 외 여러분이 모여 앉았는데 그 해 영랑 문학상을 수상한 신달자 시인이 
“대학시절 전혜린을 찾아갔는데 손금을 봐주겠다고 하더니 같이 간 친구한테는 곧 자살을 하거나 죽는다고 얘기했고 내게는 아주 고통스런 사랑을 하겠다고 예언을 했어요. 물론 그 친구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을 했고 난 기막힌 사랑에 빠졌고”
 한참 얘기하시는데 번갯불이 번쩍 하면서 천둥이 칩니다. 전깃불이 잠시 천둥을 만나고 오는지 암흑만 남가고 사라집니다.  그 뒤 오현 스님의 너무 웃기는 민담과 ‘언제까지나’ 노래에 얽힌 사연을 이가림 신달자 시인이 번갈아 가며 얘기 하시니 김용직 선생님께서 기록해서 다른 이에게 들려줘야 한다며 자꾸 물으며 되풀이 외고 계십니다. 

그 때의 그 신비스런 분위기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봄밤 어느 날 전화로 김남조 선생님께 문의하니 쾌히 몇 말씀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특이한 재능이 있었지요. 총명해서 마녀라고 부를 정도로 강렬했고 헤르만 헤세의 생일이나 싯귀의 페이지를 외거나 무척 총명했는데 언제 그런 문인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떠나기 일주일 전 신세계백화점 동화방송에서 물건 값을 알아맞히면 선물을 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는데 손에 멍이 들어 있어 물었더니 외출하려면 옷을 찾아 입어야하는데 딸이 케비넷을 잠궈서 그 문을 두드리다가 멍이 들었다고 그래서 참 이상하다 생각했을 정도로 광끼가 있었어요. 그것이 마지막이었어요. 언젠가 충무로 길에서 만났는데 딸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가는데 그 영화는 6세의 딸이 골랐다고 하여튼 상식적이 아니고 이해하기 곤란할 정도로 특이했습니다. 집중력이 좋고 고혹적인 사람인데 손금을 봐주기도 했어요.
임신해서 배부른 자신의 몸을 거울에서 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고
남편과 불화가 있어 별거했는데 그의 하숙집에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서 넘어져 멍이 들기도 했다는 얘길 들었고. 잠이 안와서 늘 독한 수면제를 먹곤 했는데 그녀는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자살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은 아니고 수면제 과다복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안타까워하시는 음성 전하며 김남조 시인의 조시를 음미해봅니다. 살다보면 갑자기 조시를 써야 할 가슴 아픈 일도 많더군요.“ 

흰 눈발 더 희게 희게
-전혜린씨 영전에

그대 꽃다운 나이에/하마 생명의 잔을 비우고 떠나는/허적한 모습이여

간간이 흰 눈발 뿌리고/ 그대 탄생월의

보석 자홍 자류석에도/ 눈물이 괴었어라

총명하여 총명하여/ 불구슬처럼/ 빛나고 아프던 눈망울이여/그대 눈망울이여

아침 날빛에/ 저녁 으스름에 되살아나는/ 영 못잊을 눈망울이여/ 새삼 사람의 무상을/그대로 해 알겠거늘/고단한 어족 떼처럼 지쳐/ 흰 목덜미 더욱 외롭던 이여/ 허지만/ 유한이야 없으리

그대가 받은 시간과/사랑/ 남김없이 다 쓰고/ 첫 새벽 흰 원고지 위에/ 한 자루 촛불 타듯/ 눈 감은 이여

흰 눈발/ 더 희게 나부낄 저승길을/너그러운 마음씨로/ 부디 모든 일 다 잊고 가라.

5.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지고 있는데 [운흥사에서]

 저절로 한숨을 푸욱 내뿜는데 문경현 박사님도 한숨 쉬듯 한 말씀하신다.
 “어쨌거나 자살은 죄악인데 독립운동가가 기밀을 지키거나 동료를 위해 자진한 것도 아니고 요즘 사회적인 추세로 봐도 자살을 미화 시킬 수 없는 일이고 각자 미루어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녀의 일기나 편지에서 보면 딸을 너무 사랑하고 주위 모든 사람과 사물을 자유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로 금방 전달되어 불붙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생을 사랑하면서도 늘 죽음을 그리워한 아까운 인재지요”
 묵묵히 막국수 가락 숫자를 헤아리던 이상번 시인
“젊은 날 아련한 그리움이지만 요즘 참을성을 모르는 것이 걱정이지요. 그런데 아까 들렀던 운흥사 주지 스님이 큰일을 하셨더군요.”
 참, 가창댐 길을 따라 청도 각북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 꼬부랑 길 끝에 운흥사란 절이 있지요. 벚꽃이 피었나 어쩐지 보려고 들렀던 절 운흥사 법상 주지 스님의 얘기입니다. 꽃피는 시기가 늦기 때문에 대구 현대불교 시인협회 봄 소풍 날 꽃이 피지 않을까 걱정했던 이상번 회장입니다. 다행히 벚꽃 봉오리들이 한창 긴장한 채로 조금씩 마음 문을 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반가이 맞이하시면서 커다란 찹쌀 빵과 홍시를 내어놓으시며 그동안 일본에 간 ‘조선왕조실록 의궤’를 환수한 과정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스님들이 그런 큰일을 하셨다는 얘기는 참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이 땅 어디서 숨은 일꾼들이 많다는 안도감이기도 하겠지요.

6.한국 도벌꾼이 일본인이 훔쳐간 초조대장경을 다시 훔쳐오다

“스님 몇이 모여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왕조실록’과 그것을 담은 ‘의궤’를 환수하는 일을 오래도록 했었지요. 우리 민족혼과 정신을 도로 찾고 싶었어요. 결국 책은 서울대 도서관에 기증했어요. 그 일 협상상태로 일본에 가 있을 때 팔만대장경 보다 200년 앞선 [저 번 봄호에서 부인사를 다루었음] 고려시대 만든 대장경을 선덕여왕이 창건한 부인사 호국사찰에서 보관했었던 그  ‘초조대장경’이 일본에 가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것을 어느 한국 도벌꾼이 훔쳐왔다는군요. 두루마리로 된 것인데 어쨌든 장물이라 아직 문화재로 지정 못하고 수년 뒤 지정할 예정입니다.”
“초조대장경이란 팔만대장경 만들기 전의 고려시대 처음 만든 대장경을 말하는데 그 도벌꾼도 애국자로군요.”
이상번 시인 말에 같이 웃으시며 문 박사님
“우리나라 위대한 임금은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였지요. 세종대왕 영조 정조” 등 손가락을 꼽으시는데 법상 스님
“‘조선왕조실록’은 오대산 본으로 옛날엔 여러 권을 한 권으로 묶었는데 27묶음을 한 권으로 즉 27책이 한 권입니다. 1913년 오대산 주문진에서 의궤와 함께 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지요. 사적지에서 발견했는데 150짐을 지워 강탈해 가서 일본 동경대학 도서관에 보관했던 것을 결국 우리가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서울대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섭섭한 것은 그 환수 운동은 스님들이 했는데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바로 서울대 도서관으로 갔다는 점입니다.”
“그 일을 하면서 얻은 교훈은 일본엔 합리적이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이어서 앞으로 다른 문화재도 여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인데 한국은 무조건 땡깡을 부려야 하니... 그리고 동경대학은 국립에서 벗어나 있어서 국가에 허락을 받지 않고 가져올 수 있어서 한층 수월했어요,”
“그것도 동경지진 때 소실되었는 줄 알았는데 마침 대출해 갔던 이가 되돌려줌으로 27책이 돌아왔습니다. 한참 뒤 46책이 또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지요. 일본인들이 선진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법을 철저히 지키려는 그런 고지식한 사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북한 ‘조선 신도 연맹’에도 협조를 요청하니 ‘일본은 철천지 원수’라며 흔쾌히 밀어주겠다고 했는데 ‘일본엔 합리적이어야 한다’ 며 충고를 해주어 고마웠어요. 그러나 한국 외교관은 높은 사람만 상대하지 일반인 특히 중한텐 눈도 깜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일본은 스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는데”  
“3차 이후 변호사를 구하는데 일본 거류민단은 거절해서 조총련계 변호사를 찾았어요. 그들 국적은 북한이 아니고 난민으로 조선이란 국적을 가지고 있어 민족성이 강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서울대에 기증한다는 명목인데 기증은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인데 내 것을 도로 받으면서 감지덕지해야하는 상황이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 얘기 다 기록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어쨌거나 아무 것도 모르고 편히 앉아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숨은 진정한 애국자들을 찾아 조명하고 감사하는 분위기 조성이 서로 핏대 올리며 들떠있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7. 마무리[나비들이 호위하는 흰 수레]

 운흥사는 처용이 개운포에 나타난 신라 헌강왕 때 지어진 절이라는데 저 산 위에 옛 절터가 남아있고 무엇보다 운흥사 대웅전 앞마당 탑 대신 심어진 벚나무 두 그루가 유명해서 대구 문인수 시인을 비롯하여 전국 유명시인들의 시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벚꽃이 질 때 가면 꽃잎을 휘몰아 어디론가 가는 시간을 볼 수 있는 곳 입니다. 그 보다 서투르지만 필자의 시 한편 올려보렵니다. 많이 꾸짖어 주세요. 공양시간이 늦어진 것 같아 서둘러 나오는데 개들이 하필  필자의 구두를 물고 가 어디 숨겼는지 스님들이 개를 혼내면서 찾느라 법석입니다. 그래도 개 두 마리 꼬리만 살랑거리고 있는 걸 보면 그들도 처용아내의 향이 좋은 가 봅니다.착각은 자유니까요.

운흥사

봄이면 법당 앞마당엔
나풀나풀 하얀 나비들이 수없이 호위하는
흰 소 두 마리의 수레가 기다리고 있는데
대웅전 석가모니불이 
도솔천 드나들 때 타고 다니신다
그 때는 회오리바람이 살분홍 눈발 휘날린다는데
난 그 눈발에 갇히거나
몰래 그 수레 한 귀퉁이 잡고 따라가 보려고
절 담장 모퉁이에 숨어 며칠 날밤을 지샌다
뜨고 있어도 소경인 내 눈이 
나비의 하얀 날갯짓만 보긴 했는데
정말 어느새 다녀오시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고
단지 꽃바람 속에 갇혀 눈이 부시도록 
절정을 맛보기는 한다
어쨌든 그 법당 마당에 선 중생들이 
저리 남녀교접의 신음 내지르는 걸 보면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는 믿음이 든다



석학을 찾아서 8

“순이야, 울지 말고 일어서라'[육신사와 백신애]

 -정 숙 [처용아내]


1.혜자[惠慈師] 스님의 보지[宝池]타령에 유월 햇살은 구름 속으로 숨고

“처용아내님 이번 정표 7,8호에서 또 실수를 했군요. 초조대장경이란 팔만대장경 만들기 전의 고려 시대 대장경 [선덕여왕이 창건한  호국사찰 부인사에서 보관] 을 말하는데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 아구, 교수님 죄송합니다. 또 무식이 보초를 섰군요.”
“제가 실수를 했으니 오늘 저녁 막국수라도 사 드려야겠어요. 이상번 시인과 연락해서 만날 시간을 내어주시렵니까?”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시고 사학자 문학박사이신 문경현 박사님 심기를 또 건드렸군요.
그러나 항상 웃으며 너그럽게 받아주시며 흔쾌히 시간을 약속하십니다. 유월 오후 청도쪽 봉평 막국수집으로 가면서 문경현 교수님과 최재영 공저인 ‘경주의 신화 전설 집성 [慶州의 神話 傳說 集成] 중 한 부분을 얘기해 주십니다.

 옛날 남산골 정토사[淨土寺]에 사는 젊은 중 혜자가 열선당[說禪當]에서 열심히 불경을 염송했지요. 그는 그저 열심히 아미타불을 독송했습니다.
“願往生 願往生 願生 極樂見彌陀 獲蒙摩頂受記別”
[원왕생 원왕생 원생극락현미타 획몽마정수기별]
원하옵나다. 극락왕생을 원하옵니다. 극락세계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뵈옵고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사 기별을 받게 되길 원하옵니다. 

願生華臧蓮華界 彌陀九品度衆生 極樂世界宝池中 九品蓮華如車侖
[원생화장연화계 미타구품도중생 극락세계보지중 구품연화여거륜]
“원하옵니다. 화장연화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옵니다.
아미타불 구품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극락세계 보배로운 못 속에 구픔 연꽃이 수레바퀴 같이 크도다.”
하는 대목의 [극락세계보지중]이란 대목을 염송할 때마다 흥분하여 욕정이 끓어올랐다. 중이 염불보다 잿밥에 더 마음이 있었다.
“아! 극락세계에 보지[宝池]가 있어 그 보지 속에 연꽃이 피어난다니 옳아! 요놈의 요상한 보지가 극락세계지. 그 보지 속에 빨간 연꽃이 피어있다지.”
 “중이라 계집도 못 거느리니 그 놈의 보지를 오매불망 앉으나 서나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극락세계 보지 중에 구품연화여거륜[九品蓮華如車侖]을 무수히 독송하며 스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스님 중에서도 보지[宝誌]대사가 제일이지 량[梁] 무제[武弟]가 보지[宝誌]를 늦게 만난 것을 탄식하며 엄청 존경했지. 원효대사도 보지[宝誌]를 시흉냈다지.”
 그때 산 아랫마을 박보지화보살[朴宝池華菩薩]이 땀을 씻으며 올라왔다. 혜자의 얼굴을 보고
“스님 얼굴이 왜 그렇게 달아올라 붉지요? 오늘 명심보감에 있는
爲善者天報之福 爲惡者天報之禍[위선자는 천보지복하고 위악자는 천보지화하느니라. [착한 일 하는 이는 하늘이 복으로 보답하고 모진 짓을 하는 이는 하늘이 화로 보답한다]는 글을 써 왔습니다. 신자들에게 가르치려고요.”
그러나 보지에 기갈 든 젊은 중엔 그 뜻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중이 화가 치밀었다.
“뭐라고? 착한 놈은 천[千]보지의 복을 주고 모진 놈엔 화를 준다고? 내사 화든 복이든 천보지만 주면 좋겠네.” 하니
“스님, 그렇게도 보지[宝池]가 좋은교? 그렇게 기러운 기요?”
“하머! 하머! 암 그렇고말고.”
“어쩐지 스님 독경 속에 그 보지가 수도 없이 나오더라 카이.”
“하머! 하머! 그렇지.”
“그 큼 그럼 수도에 지장이 크지 안 그런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지가 普施하지요. 무슨 보시해도 육[肉]보시가 제일이라 하지 않는 가베! 극락세계 박보지화 속에서 연꽃 한 번 꺾어보소. 염화미소[拈華微少]라 하지 않던가요?” 
이상은 ‘경주의 신화 전설 집성 [慶州의 神話 傳說 集成] 중 ’혜자[惠慈師] 스님의 보지[宝池]타령‘ 중 일부분인데

박보지화[朴宝池華];극락세계의 보배로운 꽃이란 법호
염화미소[拈華微少]:부처님이 영상회상에서 한가지 연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이 그 뜻을 알고                     히죽 웃었다는 고사입니다.
“이 고상한 뜻을 음탕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배불시대 척불유생들 사이에 전해진 민담이지요.”
조껍떼기 술 한 잔 서로 나누며 입담 걸쭉하게 돌아가자 이상번 시인 한 마디 하십니다.
“허허 아까 그 얘기는 한자가 없으면 정말로 거시기 하게 들리겠습니다. 교수님”

“교수님 밤 더 깊어지기 전 백신애 소설가 얘기 해주셔야지요.”
“하이고, 다그치지 마시고 운흥사 절 올라가면서 얘기 나눕시다.”

2.'조선일보' 최초 여성 '신춘문예' 당선

“백신애는 김윤식의 백신애연구를 기점으로 생애와 작품에 새로운 조명이 되고 있습니다.
(1908-1939)년 창구동 68번지에서 태어난 31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여류 소설가이자 
항일 여성 운동가이고 대표작으로 ‘꺼래이,’ ‘적빈,’ ‘나의 어머니’ 등이 있습니다.
그녀는 1929년 1월 민족지 '조선일보'최초 여성 '신춘문예'에 응모한 ‘나의 어머니’ 가 소설부 1등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했지요. 그 다음 해 백석이「그 母와 아들」로 소설이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당선당시는 박계화란 필명으로 발표)
미완성 장편 1편, 중편 2편, 단편 16편 등 도합 22편의 소설과 수필 30여 편을 남겼습니다.”
“그녀는1908년 영천군 영천면 창구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시절 한문을 공부하다가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자인공립보통학교 교사를 했습니다. 
“어머나, 제 모교인데요. 자인은 제 친정으로 제가 태어난 곳이지요.”
“그래요?  워낙 문학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삶을 갈구하였기에 그는 여성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이로 인해 학교에서 권고 사직당합니다. 특히 1934년 개벽지에 발표한 적빈(赤貧)은 당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지요. 결혼 후 이혼하고 1939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합니다. 그녀는 22편의 소설과 기행문과 수필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
“영천이라면 아버지가 똥통지고 라이방 끼고 논둑에서 넘어지는 시를 쓴 이 중기 시인이 떠오르는군요.  ‘백신애기념사업회"의 중심인물인데 전화했더니 현대문학에서 백신애 선집을 발표했으니 참고하라고 전해줍니다.”
“ 예 그런 분의 협조를 구해 참고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녀의 문학작품은 일제하의 소작농과 노동자등 식민지 민중의 삶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성한 창작과 더불어 여성운동을 전개하고 사회주의 활동도 했습니다. 이런 백신애의 문학성과 슬프고 애절한 삶을 영천시민들은 잊지 않았지요. 최근 지방 문학 기념사업으로는 큰 할성화를 보이고 있는 ‘백신애기념사업회" 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영천시 시민들로부터 성금 5천만원을 모아 최근에 ‘백신애문학비’를 세웠답니다. 자칫 일반인들에게 잊혀 질지도 모르는 여류 소설가를 당당하게 선양하는 영천시민들의 문학 사랑이 돋보입니다. 제가 또 영천 출신 아닙니까?”

3. 경북 영천은 포은 정몽주의 고향

 호탕하게 웃으며 포은 정몽주의 고향이기도 하다며 정몽주 선생이 명나라 사신 길에 지은 시 '제성역야우(諸城驛夜雨)'를 읊어주십니다. 

今夜諸城驛          오늘밤 제성역에 머무르면서
胡爲思舊居          조용히 고향을 생각하노라
遠遊春盡後          멀리 타향에 살다가 봄이 다 지난 뒤에 와서
獨臥雨來初           홀로 누워 있노라니 밖에는 비 내리네

永野田宜稻          영천 앞들에는 벼농사 풍년 들고
烏川食有魚          오천 바닷가에 물고기 잡히는데
我能兼二者          내 어찌 이 둘을 다 가지고서도
但未賦歸歟          어찌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 하는고

“참, 정효구 교수의 글에서 ‘갈대들이 거문고 소리를 내는 듯 정몽주의 조양각 옆에는 황성옛터의 작사자인 왕평 이응호 선생의 노래비가 나그네의 심기를 슬프게 만든다. 영천 출신 이응호 작사를 전수린에 의해 작곡되고 서울 단성사에서 가수인 이 애리수를 통해 발표 되었다‘는 글이 있더군요. 그 정효구 교수의 글 속에서도 백신애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 영천엔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 전 전 호에서 이미 발표되어 있지만”

4.작가로서의 개성과 여성운동가로서의 확고한 신념

“백신애의 생애에서 주목되는 것은 가정환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작가로서의 개성과 여성운동가로서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동경 유학생 출신의 사나이를 매도하는 독기서린 남성저주와 남성규탄의 탄원문과 같은 소설을 발표하였습니다. 동경 유학생 출신으로 무슨 운동을 핑계로 여자만 탐하고 다니는 남성을 고발하는 작품을 쓰기도 했지요. 

 아내가 낳은 두 아이를 생후 49일 안에 때려죽이고, 한 아이는 밖으로 나오기 전에 뱃속에 있을 때 발길로 차 죽이고, 품팔이 배추밭에서 낳은 아이를 눌러 죽이는 포악 잔인한 [食困]은 남성에 대한 거부이고 저항이며 끈질긴 피해망상의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곤은 나중 개작되어 [호도]라는 제목이 되었다고 이 중기 시인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親日巨商을 아버지로 가졌으면서도 항일민족운동을 하였고 그 아버지의 많은 설득과 위압 속에서도 그 오빠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끝내 거역하였습니다. 여성운동도 하고, 시베리아와 상해, 일본도 돌아보고, 러시아행에서는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혹독한 취조도 받으면서도 민족주의적이고, 여권해방과 인간회복의 평등주의 소설을 발표하여 당대 문단의 어느 특정인의 배경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당당한 작품 활동을 한 보기 드문 여류작가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성의 사회적 참여는 남녀간의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여성도 남성중심제 질서에 
공동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부인의 해방'을 규약과 강령에 내걸고 한국운동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운동단체로 평가되고 있는 조선여성동우회(1924년 5월 발족)는 새 사회 건설과 여성해방을 그 강령으로 하였습니다.

5.백신애 소설의 주제

“문득 이가림 시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뜬금없는 제 질문에 대해 백신애는 여성의 삶을 남성에게 의존·종속시키기 위하여 남성지배의 사회는 여성을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시켰습니다. 가정은 여성의 영역이며 사회는 남성의 영역'이라는 양분체계는 전통사회의 기본 골격이었는데 이러한 골격에 대한 행동적인 거부권을 행사한 백신애는 1920년대의 제 1기 여류문인인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등이 주장한 여성 해방적 이론을 보다 심화 확대시키면서 그 여성해방적 차원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였습니다. 

 제 1기의 여류문인들이 남녀불평 등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가지고 가부장적 여성억압에 대하여 '법 앞의 평등'과 '기회균등의 원리'라는 원론적인 명제에 머물렀다면 제 2기인 강경
애, 박화성, 백신애에 있어서는 기준체제의 피해자로서 보상을 요구하고 고발하는 차원을 넘어선 작가들이었다 며 친절히 대답해 주시더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백신애 소설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다섯 단계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1. 여권의식과 여성문제
2. 빈궁의 문제와 약자의 고뇌
3. 女性性의 추구와 낭만주의
4. 지식인의 허상과 법률의 허구성
5. 자전적 회고록
특히 그녀의 소설 적빈[赤貧]과 꺼래이(高麗人)를 대표작으로 들어보면

 소설 첫머리의 박진감 넘치는 묘사의 기법은 꺼래이(高麗人)의 고난을 예고합니다. "고국에는 바늘 한 개 꽂을 만한 자기들 소유의 토지라고도 없는 신세라 공으로 넓은 땅을 떼어 농사 하라고 준다"는 그 나라로 찾아온 것이 이유였던 유랑하는 한국인의 참상은 대체로 비극적인 것으로 끝나고 있는 백신애 소설과는 달리 [꺼래이]는 "천군만마 같이 시베리아 넓은 벌판을 제 맘대로 달려온 바람결이 솨 싸리 숲을 흔들며, '순이야, 울지 말고 일어서라'고 명령하듯 소리쳤다.."는 고난 극복의 신념이 결말 부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조국없는 슬픔, 가난이란 이유 때문에 이국에서 인간 이하의 수모를 당하는 진정한 인권, 조국에 대한 사랑, 동포애의 뜨거움이 작가가 의도한 민족문학으로서의 면모인 것입니다. 

 [赤貧]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알몸둥이 그대로의 가난한 매촌댁 일가의 궁핍한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와 같은 비참한 생활상을 통하여 작가는 참혹한 가난을 극복해 나가는 한국적인 위기극복의 자애로운 어머니상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운명을 자기의 분수로 수용하되 인내와 순종의 미덕, 그리고 온갖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서도 인권유린적인 조롱을 참아 나갑니다. 이와 같은 인내와 고통의 극복은 전통적인 한국 어머니의 像입니다. 그러나 가난과 무지, 그리고 사랑이 不在속에서도 아이를 낳고 궁핍 가운데서도 노력하지 않는 무능한 두 아들을 대비시킴으로써 생활력 없는 남성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게으르고 능력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젊은 두 아들과 나이 많은 노파의 고달픈 품삯생활을 비교함으로써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과 아들들의 공허한 삶이 적나라하게 고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고생과 아내의 고통이 부각됨으로써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탄생케 만든 남성들이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지요. 그러나 그 삶에 도전하는 어머니의 삶은 뜨겁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웃으며 곯아 배틀어진 우엉뿌리 같은 그 얼굴에 누비질한 것같이 잘게 깊게 잡힌 주름살이 
피어지며 온 얼굴이 흰 줄로 밭 골진 것'같은 매촌댁 늙은이의 모습은 수치감을 모르는 비
굴한 얼굴이다. "히에-"하고 웃어 보일 수밖에 없는 매촌댁은 멍텅이 큰 아들, 도야지와 노
름 밑천으로 알뜰히 모은 돈을 한꺼번에 날려버려 알탕 노름꾼으로 전락한 작은 아들, 매촌
은 현실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냥 살아가는 인물로 그린 그 묘사력이 상당히 현대적이면서 실감나는 표현력이 뛰어납니다.

 이와 같은 치밀한 묘사와 정확한 장면구성, 세밀한 부분의 예리한 감각 등은 여성작가이며, 자신이 농촌의 노동현장에 자주 접할 수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
“ 박사님 그렇게 치밀하게 연구하시고 기억하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인지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며칠 전 찾아간 육신사에 대해 얘기해 드릴까요?

6.육신사와 묘골 마을

 유월 어느 날 대구문학아카데미 시창작반 강의가 있는 수요일, 사육신의 충절을 깊이 되새기게 하는 육신사에서 야외수업을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대구 근교에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모르는 자신이 한심합니다. 기 미숙 회원은 가까이 있어 혼자 자주 들르는 곳이라며 안내를 합니다. 아이스박스에 수박부터 김밥 복분자 술까지 준비했습니다. 소란님은 포도주에 멜론 온 덩이를 지고 효문님은 또 다른 과일을 준비해 들뜬 기분으로 도착했습니다. 형범님 승현님 재순님과 더불어 모두 미남 미녀들이어서 자랑스러운지 더욱 처용아내의 어깨가 들썩거립니다. 미인 문화해설사가 친절히 설명합니다.

 “여기는 단종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죽임을 당한 여섯 분 중에서 유일하게 혈손(血孫)을 보전한 박팽년(1417~1456)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입니다. 박팽년 선생과 함께 사육신 모두를 모시는 육신사입니다.

 삼족을 멸하는 대역죄로 다스려진 선생이 혈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가  대구 감영의 관비(官婢)로 내려와 아이를 낳을 때, 때 마침 여종이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아 박순의 아내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임을 당하여 박씨 가문의 대가 끊어질 것을 염려한 여종이 다른 사람 몰래 자신이 낳은 딸과 바꾸어 길러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종이라는 뜻으로 비(婢)로 이름이 지어진 그는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자라 17세 때 그의 이모부 이극균(李克均)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처가에 들렀다가 성장한 그를 보고 자수를 권했습니다. 성종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이름을 일산(一珊)으로 바꾸고 아버지의 고향 충청도 회덕에서 이곳으로 정착하니 이른바 순천 박씨의 대구 묘골 입향조가 되었습니다.

 후손들이 절의묘(節義廟)라는 사당을 짓고, 박팽년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의 현손 계창(繼昌)이 어느 날 고조부의 제삿날 꿈에 여섯분의 선생들이 사당 밖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다섯 분의 제물을 차리고 다시 제사를 지냈으며 그 후 오늘 날까지 계속 여섯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사육신은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浮) 등입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의 충신, 효자, 위인들의 유적을 정비할 때에 이곳도 오늘날과 같이 말끔히 정비되었습니다. 입구 현판이 박정희 전 대통의 글씨지요. 이 현판의 특징이라면 앞 뒤 순서가 보통 한문과 다르게 쓰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박팽년 선생의 11세손 이조참판 박성수가 영조 45년(1769)에 지은 아름다운 정자(중요민소자료 104호)  하엽정이 있습니다. 박일산이 지은 집 태고정은 보물554호이기도 합니다. 전 국회의장이기도 한 박준규의 집터에 우물터만 남아 있습니다.

金生麗水(금생여수)라 한들 물마다 金(금)이 나며
玉出崑崗(옥출곤강)이라 한들 뫼마다 玉(옥)이 날쏜야
암으리 思郞(사랑)이 重(중)타 한들 님님마다 좃츨야.

아름다운 물에서 금이 난다고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곤강(옥이 나는 산)에서 옥이난다 
한들 산마다 옥이 나겠는가? 아무리 사랑이 중하다고 한들 임마다 따르랴.

 박팽년이 임금을 섬기되 분별없이 여러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 표현 기교로 노래했고 수양 대군에 의해 쫓겨난 어린 단종에 대한 애끓는 충정을 담아 노래한 작품입니다. 충신불사이군 (忠臣不事二君)의 한결 같은 단종에 대한 충절을 다짐하는 의절가로 그의
‘가마긔 눈비 맞아’와 함께 널리 흠모되는 노래입니다.
“저기 홍살문은 대부분 바깥에 서 있는 게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긴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연못의 연잎이 그 집터의 기운을 말해주려는 듯 생각보다 너무 힘차고 싱싱합니다. 마침 틈나는 대로 시든 蓮을 그리던 중이라 더 유심히 살펴봅니다. 이제까지 그린 그림들이 더 형편없이 느껴지고 부끄럽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태고정이 한 사 백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해설사가 오른 쪽은 팔작지붕에 왼 쪽은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서까래의 윗머리를 다른 벽에 지지시켜 달아낸] 천장엔 서까래가 부채살 모양으로 펴져있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유월 햇살이 따갑기도 해서 여기 一是樓[일시루] 정자에 올라 공부 좀하면 안 되겠느냐 물으나 마나 안 된다고 하여 뒤로 돌아가서 조심스레 정자에 오릅니다. 

 ‘올라가지 마세요’는 앞에만 쓰여 있으니 뒤로 오르는 건 괜찮지 않겠느냐 하니 모두 까르르 웃으며 오 탁번 시인의 시 내용 중 조기장수와 아낙네 얘길 들먹입니다. 자연풍광을 벽으로 삼은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면서 각자의 작품으로 간단히 수업 후 뒷산으로 오릅니다. 산은 나지막하면서 꾸지뽕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그 틈으로 모든 근심의 순간들 묵묵히 흘려버리는 낙동강이 내려 다 보입니다.

7. 학은 함부로 울지 못하고
 씨앗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옛날 씨받이에 목매달았던 조상님들 간절한 심정 이해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종의 자식으로라도 핏줄을 살렸기 때문에 순천 박씨 가문이 살고 번창하고 덩달아 혈손이 끊어진 다른 사육신도 제사상을 받아 배고프지 않도록 혼을 달래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밟히기만 하는 여권이 눈 뜨도록 또는 인간의 올바른 길을 위해 그 고난의 시간 속에 종을 치다가, 씨앗을 뿌리다가 세상을 일찍 뜬 白信愛도 고지식하기 만한 사육신도 지금 그 외로움 견디며 제 깃털을 뽑아 하늘울음 깁고 있는 학이 되어 날아다닐 것 입니다.  필자의 졸시 [나팔꽃]이란 시 한 편 올리겠습니다.

 십일월, 때늦어 싹트고 보니 어느새 찬바람이 분다. 이미 식어버린 햇볕의 열정, 줄기 뻗어 그늘 넓힐 욕심보다 볼품없어도 서둘러 꽃잎부터 피운다. 
 그 나팔 소리 하도 가늘어 행여 서릿바람 든 어느 누구의 가슴을 울릴 수 있을 것인가. 
 









석학을 찾아서 9

정 숙      ‘벽오동 심은 뜻은’ -<무령왕과 여성 소설가 장덕조>


1.선화공주님의 맛동방은 누구일까?

 2009년 8월 21일입니다. 금석학의 대가인 경북대 이영호 교수님 운전으로 사학자이신 문경현 박사님 이상번 시인이 공주 박물관 가시는 날 지리와 역사에 문외한인 처용아내도 따라 나섰습니다. 무녕왕릉도 백제 역사도 궁금하여 그 먼 길나서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혹시 귀한 시간 후회는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주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마침 김대중 전대통령이 돌아가신 때인지라 대통령의 원래의 성씨는 제갈이란 것과 몇 분의 아버지와 부인을모신 집안사를 세세히 얘기해 주셔서 놀랍기도 했습니다. 
“출생부터 무척 불행한 분이지만 그 불행이 오히려 그를 더 큰 인물로 일어서는 발판이 된 것 같습니다. 어쨌던 노밸평화상까지 타신 분이니 대단한 인물이지요. 좋은 세상 가시도록 빌어드려야지요. 그러나 민주화를 좌파 우파로 혼동하는 것은 잘못이지요.” 라며 못을 세게 박으십니다.

이상번; 백제 유적이 그래도 무녕왕릉이 남아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문경현; 예 그렇지요. 봉분이 사라지고 없어 흔적을 찾지 못해 도굴되지 않고 남은 것이지          요. 
이영호; 패전국의 비참한 역사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라진 역사가 안타깝습니다.         왕궁리의 빈 궁전터와 선화공주가 지었다는 미륵사지 등 그 찬란한 역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타깝습니다.
처용아내; 선화공주 설화에 나오는 서동이 무왕이 아니라 동성왕이라는 설이 사실인가요?
문경현;  그 문제로 이론이 많지요. 선화공주가 진평왕의 딸이 아니고 사탁적덕의 딸로 동          성왕의 부인입니다. 그 당시 이름이 대부분 4자였어요. 그 동성왕의 형이 무녕왕이          지요. 동생이 먼저 왕이 되었어요. 그 당시 동성왕을 마데모도라고 불렀습니다. ‘맛          동방을 남그즈지 안고 가다’의 그 맛동방과 이름이 거의 같지요. 서동요에서 ‘선화          공주님은 남그즈지 얼어두고 맛동방을 안고 가다’에서 얼어두고는 성교를 맺어두고          라는 뜻으로 얼어두다는 성교하다라는 뜻이지요. 성교를 맺어두고 마동님을 보듬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라고 해석하는 게 옳습니다.  
        무녕왕릉을 발굴하면서 묘지석에서 출생을 밝히고 있는데 무녕왕은 일본 각라도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의 규슈지요. 무녕의 아비 곤지가 일본에서 인질로 잡혀          간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 활약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2.이완용이 미인 며느리를 성폭행하다

 가람 이병도는 이완용의 10촌 쯤 된다는 얘기, 이완용이 미인 며느리를 성폭행한 얘기며 며느리가 ‘아버님 개소리 멍!멍! 짖으며 들어오시면 동침하겠어요.’ 하니 결국 그렇게 개가 되어 들어갔다고 그 아들 자살했다는 얘기까지 그런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거의 두 시간 걸려 웅진에 도착하니 이영호님이 웅진은 공주의 옛 이름이라고 친절히 알려 줍니다.  웅진하니 문인수 시인이 떠오릅니다. 정 숙을 정수기라며 웅진을 호로 써야 한다고 한자로 써주시며 놀리기도 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3. 왕궁리 빈터와 백제인들의 공중화장실

  이윽고 공주 박물관에 도착하니 박물관장님이 나오셔서 문박사님의 휠체어를 손수 밀어주십니다. 사무실에서 잠시 차 한 잔 마시고 식당에서 연잎쌈밥을 근사하게 대접해 주십니다.

 특히 무녕왕이 일본 가가라섬[각라도, 규수]에서 태어난 걸 밝힌 분이 바로 문경현 박사님이라고 그 당시 부여 계루왕의 동생 곤기가 일본 사신으로 가면서 만삭인 형수를 데려가겠다고 해서 배를 타고 가다가 지금의 큐슈에서 낳았다는 얘길 해주십니다. 그 당시는 아우가 형수를 데리고 사는 일이 흉이 되지 않았다는군요. 그 때 태어난 분이 바로 무녕왕이라고 그 무녕왕의 유적이 백제문화를 전달해 주어 조용하고 조그만 도시 부여를 살렸다는데 서로 의견을 모읍니다. 곧 백제 왕궁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 3만 여 평 되는 넓은 궁전 터가 오층 석탑만 달랑 남아 있고 빈터입니다. 패전국의 아픔과 상처를 보여주는 곳이지만 빈터라서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모형으로 된 백제남자와 처용아내가 손을 잡아야한다며 악수를 청해 보았지만 말없이 눈동자 슬픔 가득했습니다. 슬픔의 역사를 복원하는 중이라며 그 당시 백제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던가는 무녕왕릉 전시에서 미리 짐작했지만 그 당시 공중 화장실이 있었다는 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더구나 윷가락 같은 나무 막대기로 화장지를 대신했다는데 엉덩이 내어놓고 용변을 나란히 앉아 보는 모형이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고 또 본다고 이상번 시인이 우습다고 ‘에이 여자가 뭐 남자의 그런데 관심이 많지?’ 놀렸습니다. 그 다음 익산 미륵사지 가는 길 시청 문화관광과에 들러 여러 얘길 나누면서 여직원이

“통일신라시대 때 경주는 이미 농지 정리가 되어 있어 지금 자연스러운데 익산은 지금 너무 반듯하게 되어 답답합니다.” 하면서 서동이 무왕이냐 동성왕이냐 얘길 나누다가 서동과 선화공주 행사를 경주에서 하느냐 익산에서 하느냐 서로 따지지 말고 공조하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문박사의 말씀에 여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옳으신 말씀이라고 고개 끄덕입니다. 
뉘엿뉘엿 해 지는 시간이라 황급히 미륵사지로 갔습니다. 절터는 사라지고 역시 탑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나마 사리호가 남아 있지만 지금 전시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흔적 사라져도 역사는 살아있으니 그 시대 선화공주 마음으로 노을을 바라봅니다. 신라에서 백제라는 이웃나라 시집살이에서 바라본 그 노을에 남모르는 눈물과 한숨이 있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4.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돌아오는 길 피곤하실 텐데 기어이 장덕조 얘길 내어놓으라고 억지를 씁니다.
“아이고 처용아내 고집을 누가 당하리오.”
“한국 문단에서 여성작가로는 드물게 역사소설을 썼지요.”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수사적인 문장을 많이 사용했어요. 배화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중퇴했다고 그해 〈개벽〉 기자로 있으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평화신문〉 기자,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 1973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했어요.”
“박사님 장덕조소설가는 1914. 10. 13 경북 경산 출신이어서 제 친정 쪽이지요. 그래서 아버지가 제 어릴 때부터 넌 장덕조 처럼 되어라 하셔서 멋모르고 불안하고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정 숙씨가 장덕조 장덕조 노래를 불렀군요. 1933년 〈제일선〉에 단편 〈저회 低徊〉를 발표한 뒤, 단편 〈남편〉(신가정, 1933. 10)·〈아내〉(신가정, 1934. 2)·〈여자의 마음〉(조선일보, 1935. 9. 20~10. 10)·〈자장가〉(삼천리, 1936. 4) 등을 발표했지요.” 
“여성을 주제로 한 소설도 많지만 역사 소설이 또 많더군요.”
“예, 처용아내도 이제 공부 많이 하는군요. 역사소설로는 연산군의 왕비인 신씨의 슬픔을 그린 〈정청궁한야월 貞淸宮閒野月〉(야담, 1935)과 김시습을 주인공으로 세조 때의 역사적 비극을 다룬 〈광풍〉(동아일보, 1953. 8~1954. 3) 등을 발표했고. 그 외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 장덕조(張德祚, 1914년 10월 13일 ~ 2003년 2월 17일[1])는 한국의 언론인 겸 작가인데 그밖에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미망인 작곡가의 삼각관계를 다룬 〈누가 죄인이냐〉(연합통신, 1957. 4~10), 양반과 소작인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벽오동 심은 뜻은〉(한국일보, 1963. 8~1964. 9), 방송소설 〈우후청천 雨後晴天〉·〈연화촌 蓮花村〉 등을 썼고 소설집으로 〈훈풍 薰風〉(1951)·〈여자삼십대〉(1954)·〈격랑〉(1959)·〈지하여자대학〉(1969)·〈이조의 여인들 1~8〉(1972) 등이 있습니다. ”

5.줄기가 푸른 벽오동은 봉황이 머무는 곳

“교수님 ‘벽오동 심은 뜻은’ 은 노래로도 유행하고 해서 많이 낯익은 이름인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영화로도 상영되었지요?”
“봉황이 머무는 곳은 오동인데 이 오동은 오동나무가 아니라 벽오동(碧梧桐)을 가리킵니다. 오동나무는 목재가 희기 때문에 백동(白桐)이라 하고, 벽오동은 줄기가 푸르기 때문에 청동(靑桐)이라 합니다. 오동나무는 현삼과(科), 벽오동은 벽오동과(科)로 전혀 다른 나무지요. 굳이 구분하자면 ‘梧’는 벽오동을 뜻하고, ‘桐’은 오동나무를 뜻합니다. 벽오동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줄기가 푸르고 한 해에 한 마디씩 자라기 때문에 마디를 세어 보면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크게 자란 벽오동은 과연 봉황이 찾아가 앉을 만큼 위엄이 있습니다. 이파리도 부채처럼 널찍하여 잎이 무성하면 봉황이 그 속에 앉아 충분히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희고 노란 빛을 띠는 작은 꽃무리가 가지 끝에 달리는데 꽃잎도 없고 꽃받침이 뒤로 젖혀져 꽃술만 쑥 나온 모습이 뭔가 어색해 보이지요. 가을이 되면 다섯 날개를 아래로 오무린 듯한 팔랑개비 모양 안에 완두콩 같은 열매가 오순도순 달립니다. 허허 참”

 
“벽오동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군요. 전 그냥 어느 가수의 와르르르 하는 그 노래만 떠오르는군요. 무식해서 죄송합니다.”
“‘梧’는 벽오동을 뜻하고, ‘桐’은 오동나무를 뜻한다는 그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75세가 되던 1989년에는 〈고려왕조 5백년〉 14권을 출간하기도 했지요. 6·25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휴전협정을 취재한 공로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습니다.”
 “다작 작가로 유명했군요. ”
 “그렇지요. 장덕조는 70대 중반이던 1989년에도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을 출간할 정도로 노년에도 창작 활동에 몰두했습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그래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께서 노래처럼 장덕조 장덕조 하셨군요. 그 어릴 때 들은 이름이 평생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군요.”

6.장덕조의 작품 경향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장덕조의 작품 경향은 인물의 삶을 구동하는 사회적인 기제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며, 주인공은 대개 정직하고 강인하여 본받을 만한 인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작가의 낙관적인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구성 측면에서는 소설의 첫 번째 덕목을 재미로 보고 흥미 위주의 구성을 우선시하여 택했고 문장도 같은 맥락에서 수사적이지요.”
“교수님. 시원한 물 하잔 드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급히 다그치기만 해서 목이 다 쉬어갑니다. 죄송합니다.”
“ 어려서부터 책밖에 읽을 줄 몰랐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심어준 아버지, 사랑방 책장이나 방바닥에 돌아다니는 사상계와 신문지들 구석구석 뒤적이고 있는 딸에게 기대를 거셨던 탓인지 자연스레 평생 소설 한 편 쓰고 말리라는 옛 맹세가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시를 쓰면서 포기했었는데 산문을 쓰다 보니 소설도 쓸 수 있겠구나 반드시 쓰야겠구나 점점 욕심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데 언제쯤 시작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박사님
제게 힘 좀 실어주세요. 게으름을 깨우도록 그 입담 지팡이로 제 정수리 한번 내리쳐주세요.”
“허!허! 처용아내 그 끈질김과 미련스러움이 큰 힘입니다. 꼭 해낼 겁니다.” 

6. ‘단심가’는 정몽주의 작품이 아니다

 돌아오는 밤길 지루한 줄 모르고 얘길 나누었지만 이영호 금석학 박사님은 묵묵히 운전하시느라 눈길 한번 돌리지 않으십니다. 등이라도 두드려드리고 싶지만 아직 젊은 교수님이라 그래도 마음 든든했습니다. 특히 익산 미륵사지 박물관에서 만난 서울 젊은 역사학자들이 문경현 박사님을 만나고 황송해서 얼굴을 잘 들지 못하는 모습에서 새삼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시고 사학자 또는 한문학 대가의 면모를 엿보았습니다. 낮에 따라다니면서도 왜 내가 이렇게 메모를 하며 다녀야하는가 하는 수 없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듯했습니다. 이런 수고나 자료가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을까 자문자답하면서 얼마 전 만난 경주 문인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서영수 시인께 문경현 박사님을 잘 아시느냐고 여쭈니

“자알 알지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사학으로 대가이시고 특히 경주 문화유적 발굴과 해석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성품이 올곧아서 어느 성씨 즉 ‘박씨는 왕족이 아니다’ 라고 발표했다가 부산에 거주하는 경주 박씨들  문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심지어 깡패에게 불려가 빌기도 했답니다.” 
“ 또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시조 단심가가 정몽주의 작품이 아니다, 또는 포은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 앞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가 그 문중이 몽둥이 들고 쫓아와 일본으로 피난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남과 다르게 발표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용기인데 그 당시로선 힘이 많이 들었지요.”
“포은 정몽주라면 제가 그 31대손인데 어쩌지요?”
 당장 문박사님께 전화로 여쭈니 
“포은이 충신은 충신인데 단지 그 장소와 사실이 잘못 전달되었다고 밝혔을 뿐이지요.”
어쩜 영일 정가 문중에서 제가 문박사님을 만나 뵙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안다면 무어라고 말할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하는데 나중 문중 어른들의 말씀도 들어봐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역사가도 역사적 인물들도 소설가 장덕조도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의 시 쓰는 자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제 졸시 한 편 올려봅니다. 

  시인은, 시인은
  가슴에 비바람 내리치는 날이어도, 스스로의 가냘픈 그 더듬이에라도 앉아 전을 펴 
 여린 생명의 흐느끼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시인은’ 전문, 처용아내 정 숙]

석학을 찾아서 10

겨울로 가는 수레바퀴를 타고 [막걸리와 정취암]
 
              -정 숙 [처용아내]

1.뿔 돋아있는 시어들을 잘 비벼 먹으면

 십일월 늦가을 비는 겨울로 가는 수레바퀴 급히 굴리며 막걸리 한잔 드셨는지 추적추적 비틀거리는 어느 날 사학자이시고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신 문경현 박사님을 모시고 가창 어느 보리밥집으로 갔다. 여전히 쌍지팡이 짚은 어깨에 세월과 운명과 싸우며 견디느라 굳은 살 박힌 고독이 곰방대를 물고 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부인과 사별하시고  아직 대학원 공부하는 자녀들과 생활하고 계시니 그 속사정 누가 알아주겠는가. 평소 자주 다니시는 곳인지 주인과 정답게 인사 나누신다.

“처용아내님 ‘바람다비제’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이 네 번 째 시집이지요?”

“예 박사님 고맙습니다. 그 동안 별일 없으셨지요?”

“그럼요. 이번 ‘바람다비제’ 시집은 전체적으로 말을 아끼고 아주 절제된 시들이었습니다. ‘님’ 우수상도 타셨다니 한턱내세요. 거듭 축하합니다. 근데 ‘님’ 상이란 어디서 어떤 뜻으로 제정한 상입니까?”

“부끄럽습니다. 시집은 낼 때마다 가슴이 시려요. 이번 ‘바람다비제’는 바람 불다 연작시로 사회도 제 마음도 구제금융 시기여서 대체로 좀 어둡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닌데 지금 보니 더 어둡군요. 그리고 유행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수필처럼 긴 시들에 대한 반발로 행간에 시어들을 숨기는 연구를 좀 했어요. 너무 줄여서 읽는 맛이 없어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참! ‘님’ 상은 현대시 박물관[관장 김재홍]에서 제정한 상으로 제 1회 시상이었습니다. 현대시 박물관은 개원한지 일 년 여 만에 국가에서 공인을 받았고 ‘만해학술원’을 겸하고 있어 한용운의 님을 기리는 뜻으로 ‘님’ 잡지를 출판하면서 올 해 처음으로 ‘님’ 상을 제정한 것입니다. 본 상은 대 선배님이신 ‘김후란’ 시인이 수상하시고 전 그냥 우수상일 뿐입니다.”

“그래도 대단한 일이지요. 첫 회기 때문에 심사위원들도 수상자 선정에 많이 고심했을 것입니다. 특히 지역이 아니고 중앙문단이니 아무튼 다시 축하드립니다. 심사위원은 어떤 분들이셨지요?”

“예 고맙습니다. 박사님, 김남조 선생님 이가림 김재홍[평론가] 나태주 김종철 대단한 시인 분들이셨어요. 오늘은 파전도 시키고 막걸리도 한잔 드셔야지요. 막걸리 사발도 힘차게 부딪혀 주세요.”

"잘은 모르지만 그 시대 현실 사회성이 반영되었고 또 그것을 참신한 상상력으로 묘사되었다는 점과 뭔가 깨달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시어들의 조합이 햇살 받은 비눗방울처럼 통통했어요. 그 점들이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교수님! 묘사를 아는 멋진 평론가시군요. 박수!!!!! 감사합니다. 시라는 얼음 송곳에 찔려 아픈 마음을 이렇게 위로해주시니"

 창 너머 감나무에선 아직 설익은 홍시들이 가을햇살 묻은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덥히고 있다. 잘 익는다는 건 누구에게 먹히거나 떨어져야 한다는 뜻인데 무엇을 위해 저렇게 안달하고 있을까? 시인들도 저들처럼 무작정 감동적인 시 한편을 위해 밤새 전전긍긍하는 것일까? 이윽고 막걸리 주전자와 파전이 들어온다. 건배를 든 뒤 생나물에 꽁보리밥을 비빈다. 파닥파닥 생기 도는 여러 가지 생나물들을 잘 섞어 비비다 보면 서로 숨죽이면서 어울려 옛 가난했던 시절의 맛을 낸다. 날카로운 뿔 돋아있는 시어들도 이렇게 비비어 서로 자존심 줄이고 잘 어울려 고향의 실개천이나 깨달음의 세상으로 금방 데려다주면 이미 밭고랑 진 주름살도 펴질 텐데...

 
2.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마침 박사님의 수발드느라 힘든 외동 따님과 동석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술 한 잔도 겨우 드시는 박사님 뺨이 뽈또그리 물들여진 뒤 다그치기 시작한다.

“박사님,  이영도 시조 시인에 대한 얘길 듣기 위해 경주 서영수 시인을 찾아가는 일은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이미 박해림 시인이 몇 개월 전에 산문으로 발표했다는군요. ”

“아 그래요? 한 발 늦었군요. 유치환 시인의 수제자였던 서영수 시인이 유치환 시인과 그녀의 집 담장 넘어 들어가 낮잠 자는데 이영도 시인이 장에서 돌아와 ‘도둑이야!’ 했다는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을  텐데 그렇군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유치환 시인이 똑 같은 편지를 써서 여러 여성시인에게 보냈다는 소문들이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합니다. 그냥 순수한 사랑으로 남았으면 좋겠는데”

“ 물론 불륜이긴 하지만 옛날 박주일 시인님이 종종 그런 말씀 하셨어요. 유치환 시인의 부인이  외출하려는 남편의 와이셔츠를 갈갈이 찢어발기기도 했다고. 제가 대구여고 재학시절 유치환시인이 교장선생님으로 계셨어요. 도덕 시간에 자주 들어오셔서 강의를 하셨어요. 아주 인자해 보였지요. 그 후 부산으로 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어요.” 

“정신적일지라도 불륜은 불륜이지요. 그 당시로선 이영도 집안에선 많이 수치스러워했을 겁니다.”

“언젠가 이하석 시인께 이영도 시인 얘기가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할 것이라고 왜냐면 그 쪽 집안에선 여자가 정숙하지 못한 일이니 그 일에 상당히 민감하다고 하시더군요.”

“예 맞습니다. 당연하지요. 이번엔 이 정도로 하고 다음번에 대구에서 삶에 대한 뜨거운 서정과 철학적 사유의 시인 신동집에 대해 얘기하도록 합시다. ”

“예 감사합니다. 갑자기 대학 3학년 그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경북대학교 국문과 여학생 여섯이서 울산 방어진 해수욕장에 갔는데 그날 밤 파도 소리에 가슴이 벅차올라 잠 못 들던 시간, 짝사랑에 빠진 친구가 흐느끼면서 읊던 시가 물결치며 다가섭니다. 울기 등대의 수국 꽃송이가 참 복스럽기도 했었는데요. 그 친구가 짝사랑했던 남학생이 같은 국문과로 나중 시인 신부님이 되었지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의 <그리움> 전문)                  

3.현대불교 문인협회의 회장님 수완스님을 찾아서

“박사님 경남 산청군에 있는 정취암을 가보셨습니까?”

“아뇨, 대성산(일명:둔철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사찰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한다 하여 옛부터 소금강이라 일컫는다는 얘긴 들었어요.”

“어머나, 박사님이 저보다 안 가보신 곳도 있군요. 기분인데 막걸리 한 잔 더 마셔야겠어요.”

“허허 처용아내님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요? 언제 갔던가요? 그 역사적인 절에 날 버리고 젊은 이상번 시인과 갔다 왔군요? 시샘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허허”

“죄송합니다. 갑자기 그렇게 되었어요. 그 절의 주지스님이 현대불교 문인협회의 회장님이시더군요. 가다가 오르막길에서 차가 오르지 못해 도로 복구하는 분들이 밀어주고 했어요. 그만큼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서 맑은 날은 대구시내까지 보일 정도라고 하시더군요. ”

4. 의상조사께서 정취사를 창건하시다

 도착하자마자 도토리 묵 채를 맛있게 먹고 찾아뵌 수완스님은 여승인가 할 정도로 예쁘장하다고 하면 화내실까 저어되기도 하지만 사실 관음보살님을 더 많이 닮으신 것 같았다. 이상번 시인과 스님이 서로 주고받은 말씀을 기록해 본다.

“신라 신문왕 6년(병술, 서기 686년)에 동해에서 장육금신(부처님)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는데
이때 의상조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창건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어요.”

“스님 여기서 가까운 곳에 원효스님께서 창건하신 율곡사가 있지요?”

“예, 정취암에서 북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의상 스님과 원효스님께서는 수시로 왕래하며 수행력을 서로 점검하고 탁마 수행한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취암은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한국유일의 사찰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취암은 여우설화가 유명합니다. 공민왕이 신돈스님을 등용한 후 국가의 자주권 회복과 수구 보수 세력들을 척결하려 할 무렵을 전후하는 시기에 정취암은 개혁파들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지요. 이러한 정황을 간접으로 시사하는 여우설화가 지금까지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5.“오백년 묵은 여우와 문가학이란 선비의 이야기입니다.”

 “고려 공민왕 때 문가학은 섣달그믐날 술을 한말 짊어지고 정취암에 올라가 밤이 깊어지도록 기다렸습니다. 이경이 지나고 삼경도 깊어갈 무렵 한 줄기 스산한 바람과 함께 나타난 여인이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문을 기웃거렸습니다.”

“문가학은 이것이 요괴이구나 마음으로 생각하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그대는 무슨 연유로 이 깊은 밤에 산사를 찾았느냐고 묻고 외간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밖이 추우니 방으로 들어오게 한 후 자리에 앉으라 하였답니다.”
 
“방으로 들어와 불빛에 비친 용모를 보니 아찔할 정도로 미색이 빼어난 미인이어서 
적적한 밤중에 이토록 빼어난 용모를 갖춘 귀인을 만났으니 어찌 술이 없을 수 있겠는가 마침 좋은 술이 있으니 같이 마시자고 하였답니다.” 

“여인이 술에 취하자 잠이 들어서 비스듬히 기대어 옆으로 눕는 것을 보니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의 화신인지라 미리 준비한 끈으로 여우의 손과 발을 묶었답니다. 여우가 깜짝 놀라서 깨어나더니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는데 문가학은 꾸짖어 말하기를 요사스러운 짓으로 많은 작폐를 하였으니 그 죄가 죽어 마땅한지라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

“여우가 애원하며 말하기를 나에게는 온갖 일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둔갑술 비결이 있는데 살려주면 대신 그 책을 주겠다고 하여 마음속으로 기뻐하였으나 여우에게 속을 보이지 아니하고 먼저 그 책을 보고난 후 사실과 다르지 않다면 살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굴로 들어가 둔갑술 비결이 적혀있는 책 한권을 들고 나와서 건네주었는데
문가학은 둔갑술 비결이 적혀있는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지막 한 장이 남아 있을 때까지 독서삼매에 빠져들어 보고 있을 때 여우가 끄나풀을 몰래 풀고 갑자기 책을 낚아채어서 굴속으로 도망쳐 사라져 버렸답니다.”

“문가학은 지금까지 본 둔갑술 비결대로 둔갑술을 부려 몸을 바꾸어 보았지요. 그런데 둔갑이 완전히 되지 못하고 옷고름은 감출 수 없었지요. 그 후 문가학은 과거에 급제하여 내한 벼슬을 하면서 여우에게 배운 둔갑술로 새로 변하여 궁중에 들어가 은자(은으로 만든 돈)를 빼내어 거사 자금으로 쓰다가 발각되어 역모죄로 참수되었고 그 집터도 못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

“여우와 둔갑술은 상징적인 얘기인데 여우는 거사를 위한 어떤 계획이거나 결사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둔갑술로 궁궐에 들어가서 거사 자금인 은자를 빼내왔다는 것은 왕실에서 거사 자금을 비밀리에 주었거나 내통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상징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6.도란도란 여우 꼬리는 자꾸 길어지고

“이 설화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하여 유추해볼 때 정취암은 당시 고려 말 국운이 쇠퇴하여 나라를 새로 일으켜 세우려는 국가 개혁 의지에 대한 모종의 결집체였거나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전하는 설화로 볼 수 있습니다.”

 차분한 스님의 정취암 내력 설명에 ‘이렇게 역사적인 절이었다니!’ 처용아내 입은 자꾸 벌어져 다물 줄 모르고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진주 미인 김 경 시인이 현대불교 경남지부를 발기할 꿈에 부풀어 그 커다란 눈이 반짝거린다. 며칠 숙박하면서 하늘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절 주위를 돌아본 뒤 각자의 길로 헤어지면서 ‘발기 잘 하세요.’ 하니 킥킥 웃으며 승용차의 시동을 건다. 우물 안 개구리인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법당 쪽으로 삼배한다. 

 유치환시인과 이영도 시인의 불륜[?] 아니면 정신적 숭고한 사랑[?]과 시도 그들의 그림자이고 의상대사와 원효스님의 불심의 발로로 창건한 절도 그들의 영원한 빛그림자가 아니겠는가? 그림자는 어둠이기도 하지만 찬란한 빛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필자의 졸시 ‘그림자를 위한 파르마콘*’을 되뇌어 본다.

먹물처럼 속 깊은 
음흉스런 저 그림자
다소곳이 따르는 그늘인 척
제 색깔 절대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만 몰래 주인의 빛깔 다 빨아들이면서

 
  시시로 산란하는 시들, 여름 한 낮 연꽃이 누드로 일어서는 낯 뜨거운 늦바람 그림들, 제 주인의 혼신을 모두 내면으로 받아들이다가 어느 순간 세상을 향해 고자질하기도 하면서

  흡수한 그 인생 제 피로 정제해 단단한 꽃소금덩이로 살리려면, 그 주인은 청산가리 같은 외로움에 떠는 가슴 달래줄 시와 그림을 찾아 흰 소의 울음으로 살려야 하리 그러기 위해 들꽃 폐차 안으로 별들이 빛 굴리는 소리 들으며 그들의 고단함을 달래주어야 하리

어둠 속 달빛과 햇살 머금은 씨알들 다 줘버린 
그 껍질은 끝내 죽어버리지만
생의 흔적인 그림자의 빛그늘
그는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남을 것이므로

-[그림자를 위한 파르마콘* 전문]


*그리스어로 약물이자 독이라는 뜻


처용아내와 손톱  [극본; 처용아내 정 숙]
 술집과 월궁 캬바레 자갈마당 색시집 노래방 간판이 늘어서 있다. 달 밝은 밤 술집에선 동네 처용들이 모여 술판과 화투판이 벌어지고 처용 아내 1 무대 한켠 골목 밴취에선 부부가 얘길 나누고 있다.


처용아내 1 ;;         서방님,누가 뗀지놓고 간 저 쟁반, 와 저리 크고 발심니꺼. 예?
처용 1;;       보름딸인데 지 안발꼬 우짤끼라. 니, 그것도 모리나?

처용아내1;;      서방님,서울 가시믄 빼딱구두 쫌......예?
처용 1 ;;고마 잔죽고 있거래이. 껌덩 고무신도 니한테는 오감태이.

처용아내 1;; 에고! 서방님, 저 단소 소리 안들립니꺼? 예? 나무 애간장 끓이는 소리 말이라                 예.  
처용 1;; 니 머라카노? 얼씨구! 고마 디비저 자라 자! 


처용아내 1:: 서방님 그 홍도화 겉은 뽈때기가 하야이 기운이 없어 비네예. 어젯밤 어데 갔             십디꺼? 
처용 1; 밤드리 해금 연주를 안했나. 그 오묘한 소리!  기똥차데
처용아내 1; 우야꼬 해금 연주는 氣가 마이 상한다 카던 데. 이따구로 펵 퍼지민                    서 말라꼬 고렇게 시랐심니꺼? 
처용 1; 머? 여자가 빠이롱이냐 시루게? 에쿠 실수했네[얼른 바이올린 켜는 흉내낸다 
처용아내 1; 언제예,그기 아이고예 재미는 딴데서 실컨 보시고예 그 뒷감당은 지가 하이꺼         네 기가 안차겠심니꺼. 바까서 생각 쫌 해보이소. 예? 간드러지는 지 향피리 소리가 훨씬 더 좋을낀데예......[간들간들 엉덩이 실룩이며 집으로  같이 들어간다]

[골목 가로등불 아래 다시 시끌벅적하다 처용아내 2 거품을 물고 처용 2와 싸운다]

처용아내 2;; 와 쫓가낼라 캅니꺼. 와예. 칠공주 놓기 그리 숩십니꺼.
          딸을 지 혼차 낳았십니꺼? 딸이 뱅기 태워준단 말 몬 들었십니꺼. 몬난 아들보다 백배 낫지예. 두고 보이소. 서방님예. 우야든동 지가 아들을 놓을 끼까네 걱정 꼭 붙들어 매시이소. 우쨌기나예 하늘만 자주 비이주이소. 자주자주 봐야 별 딸거 아입니꺼?

처용 2;;이놈의 여편네 무신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하노? 콱!!!!!1

처용아내 2;; 예? 언지예, 아이라예. 대드는 기 아이고예
            사실이 그렇다 카는 기지예. 말이야 바린 말 아입니껴? [처용2 처용아내 2를               끌고 집으로 들어간다.]

[처용아내 3집에선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가 난다. 술 취한 남편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건다]
    처용 3; 어 취한다. 아들은 ? 
처용아내 3;;지 방에 자고 있어예.
처용3;; 그래, 자자 .불꺼라   [하품한다]   
  
   처용아내 3;; 술 한 잔 거나해져야 한번 울릴 동 말 동 한밤중, 우리 집 싸나아는
               아무리 동동 발 굴리며 울려도 녹슨 문은 쉬 열리지 않는데 

       흥!, 밤물결에 뽑힌 깃털자리 먼저 보듬어야 상처 지워줄 수 있을텐데 한번 호~~~ 불어주면 모든 상처 다 아무는 입김일 텐데

어쩌랴! 따스한 눈길도 먼저 보내는 이가 즐거운 법이라고, [진분홍 루즈를 바른다.  입술로 덮치면서] '여봉, 오늘밤도 젖무덤 초인종 꼭꼭  누질러 주세용' 

  처용 3;;   '니, 쥐 잡아 문 소리 할래? 고마 불 꺼라 자자!' 

[처용아내 3 잠옷 바람으로 혼자 나와 넋두리 한다]

처용아내 3 ;; 서방님예, 지도예 바람이 흔드믄 간들간들카는 봄버들이라예.
            실버들이라예. 기집이라 카이예. 다 커뿐 아아들 말 없지예,
            새라도 붙잡고 지저귀민서예, 고 넓은 가슴에 기대 어링냥 부리보고 싶다 카이              예, 내에 모린 척 피하시는 잘난 서방님, 정말 무심도 하시어라.
            하 답답해서예, 저 못생긴 疫神이라도 부리고 싶다 카이예.
            참말이라예. 거짓말 아이라 카이꺼네예.

처용 3[벌떡 일어나];;걸레는 빨아도 걸레라 카이! 바가지긁는 소리  시끄러버 잠도 안 온                      다 아이가!

처용아내 3 ;;   뭐라꼬예? 바가지가 시끄럽다 칸다꼬예? 서방님예, 이건 애원입니더예.
               까시없는 장미는 향기도 없고 기운도 없데예. 서방님께서 보드라분 꽃잎 만                 지작거리시미 코쟁이 술에 취할 때 지는예, 알뜰살뜰 살림 꾸리니라꼬
               깔쿠리손 됐어예. 와이카심니꺼. 예?
처용 3;; 그래 그래 일로 와바라 [처용 3 아내의 손잡고 젖은 손이 애처로워 노래 부                 른다]
 처용아내 3 ;;  놓소! 마  퍼뜨카믄 까치리한 손 이뿌다카시미  거짓 노래만 부리시지예.


처용 3;; 에이 시끄러워!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간다. 술집으로 들어간다. 처용아내 3 머리띠 두르고 앉았다가 누웠다가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다시 옷 갈아입고 다른 처용아내들을 전화로 불러 같이 처용을 찾아 나선다. 월궁 캬바레로 들어간다. 춤추는 남자들 속에서 처용3을 찾아다닌다 남자들에 잡혀 춤을 추기도 한다.] 

처용아내 3 ;;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무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처용 아내들 같이;; 물리지 마이세이 [캬바래를 나와서 기운 없는 소리로]

처용아내 4;;
'몬찾겠어예 꾀꼬리' 서방님예, 고마 나오이소.
어데 숨었어예? 고놈의 숨바꼭질도 지칬어예.
인자 지가 숨을 차례라예. 와, 싫다꼬예? 지도
꼭꼭 숨어서 찾아다니는 서방님 꼴 쫌 보고 싶어예.
얼매나 안 꼬시겠어예?
와, 지만 맨날천날 찾아댕기야 되능기예?
[처용아내들 나와서 다시 색시집을 숨어서 기웃거린다]

처용아내 2;; 서방님이 등산 간다 카고,
뒷집이 꽃밭에 물주러간다 카고,
앞집이 경마장 간다카미 나갔다 카는데


처용아내 1;; 집안에도 두리뭉실한 산이 있고
빌로 볼품없어도 꽃밭과 튼튼한 말 안있나?
동네 싸나아들 와, 해필 와, 자갈마당에 가노?
집에서 냄비딱고, 굴뚝 소지하믄 
덧나능가 머?

눈물로 핀 들국화가 더 애처럽고 더 이뿌다꼬?
길섶에 채송화가 더 근지러분데 잘 긁어준다꼬?

처용아내 4;; 싸나아들이 철드자 망령든다 카디
갈수록 태산 아이가.
지 암만 노푸다 케싸도 다 내 손 안에 안있나.
부처님 손바닥 아잉가베. 집에 가자 고마
[각자 집으로 들어와 잠을 청한다. 처용아내 3 다시 일어나 살풀이춤을 춘다. 봄비 내린다. 벚꽃잎 떨어진다.]


처용아내 3;;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인 줄 아시지예?
            이 가심 속엔예 안죽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비랑끝의 꽃이 이뻐 보인다고 지를 꺾을라카는 눈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그래예?


[머리가 아파 머리띠를 묶는다. 잠을 청하며 뒤척인다. 천둥소리 들리며 꽃을 입에 문 역신이 살금살금 들어선다. 처용아내 돌아서며 이리저리 몸을 피한다. 결국 역신이 처용아내 3을 끌어안는다. 같이 춤을 춘다. 같이 눕는다. 그 때 처용3이 들어오다가 신발을 보고 깜짝 놀란다. 신발 세는 시늉을 하다가 방문을 연다. 놀라면서 춤을 추듯 처용가를 부른다.]

처용3;; 셔블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가라이 네히어라
     둘은 내헤다 마는 둘은 뉘헤런고 본디 내헤다 마는 빼앗으니 어쩌리꼬                      
[역신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싹싹 빌다가 도망가고 처용아내 일어나 화를 내면서]

처용아내 3;; 가라히 네히라고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 지혼차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 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든 잠 찔레꽃 꺾어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아, 사철 봄바람인 사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붐에 속 골빙든 예편네 꿈 한분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처용아내 3 보따리 주섬주섬 산다. 처용 붙잡는다. 서로 밀고 당기고]

처용아내 3;;  서방님예, 이제 더 이상 지를 양보 몬하겠심더.
부덕이란 울타리에 지를 꽁꽁 묵까둘라카지 마이소.
숨이 막힙니더.살아 있는 목소리 진짜 그립심더. 나비맨치로
훨훨 날아만댕기는 서방님, 우예 이 맘 아시리꼬! 차라리 무인도라 카믄...

씩씩거리는 역신이 아이라예 진짜 지 이바구 들어 줄 인간이, 사람이 그리버예. 서방님예,
[처용 3 아내를 으르고 빌며 살살 달랜다]
처용 3;; 나가봤자 마카 다 늑대라. 니 모리나?
처용아내 3;; 예? 마카 다 늑대라꼬예? 뭐 그러까이예
처용 3;; 니 그래가 나가믄 등띠에 시퍼런 배추이파리 몇 장 붙여놔도 아무도 안 거들떠 본             데이
처용아내 3;;아 용왕님 아들이믄 뭐 용까능교. 사람이
          가마 이스이까네 가마떼긴 줄 아능교?

       지도 온갖 소리 다 낼 수 있는 악기니더. 아능교?
몸띠 속 가야금 신경들이 팽팽히 줄 땡기고 있니더. 서두르고 있니더.
[토라진 아내를 위해  등 토닥이며 부부간 잠자리 포즈를 취한다. 스탠드 불 꺼지고 대금 연주소리 들린다]
 서방님예 오늘따라 대금을 불고 기시는 그 모습 미치도록 디기 멋집니더. 홀딱 반하겠심더. 애간장 다 타도록 밀칬다가 땡깄다가 땡깄다가 또 밀칬다가 대금소리 뜬구름 우에서 헤매고 있심더. 점입가경의 그 솜씨 지녁마다 어데서 연주해십디꺼.
지도 악기로 훌륭안합니꺼. 그지예?
[ 밤은 깊어가는데 처용 1, 2 자갈마당에서 나오다가 잡힌다. 멱살을 잡고, 귀를 잡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릇 깨지는 소리 싸우는 소리 골목이 왁자하다]

[이튿날 아침 처용아내 1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옷을 차려 입고 나선다.]

처용아내 1;; 쌔련된 기집이 좋다꼬예? 지도 쌕안경 하나 샀어예.
시상이 온통 쌔까맣게 보이네예. 우짜노! 서방님 가심 속조차 씨커멓게 보이네예.
꼴뚜기 심뽀 아입니꺼예? 누굴 믿어까예. 무서버서 몬살겠어예.


처용아내1 ;; [장구쟁이를 찾아간다. 장구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한편 처용아내 3 한복을 벗어던지며 꼬냑 컵을 들고 홀짝 마시며]
처용아내 3;; 꼬냑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장밋빛 살결 세월이 더할수록 톡! 쏘면서 화악! 달아오르는 고 맛깔
긴 시간 내성으로 빚어 단내 나지 않는  향그러움으로 
목석 같은 그 가슴속 불, 찔러버리고 확, 불 찔러버리고
저마저 활활 태우는 한 잔의 꼬냑! 비록 순간일지라도 

[상 위에 책을 펴고 원고지를 든다. 시를 쓰고 읽는다.]

차갑게 닫힌 제 옥문 두드리셔요.
살이 떨리면 두근두근 심장이 깨어나지요
톡, 쏘면서 질 붉고 달착지근한 꽃뱀처럼 
속 파고들어 꽁꽁 언 가슴 녹여드리겠어요
그득히 채워드릴래요 그대, 
어둔 밤 달아오르기 기다리는 향피리여요

[바깥이 떠들썩하다. 처용아내 1과 처용 1 서로 싸운다.]

처용아내 1;; 기집이 사나하고 눈만 마차도 서방질이라꼬?
처용 1;;그래 그기 서방질 아이고 머꼬?
처용아내 1;; 우짜꼬! 아래 화전놀이에서 깔쌈해서
  똑 기생 오라바이겉은 장구쟁이하고 눈마차뿟는데.
가심이 두근반 시근반카데. 길가 나가서 지보고 돌삐 뗀지라 케보이소.
뗀질 사람 누가 있겠심니꺼?
소문 몬들었어예? 인자 남정네들이 다부로 뚜디리맞고
눈티가  반티된다 카는 말 말이라예.[처용1 처용아내 1 허리를 잡고 끌고 들어간다]

[처용아내 4 화투판에서 놀다가 처용4를 만난다 서로 놀란다 ]

처용아내 4;;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처용 4 어쩔줄 몰라하며 술을 마시고]
희안한,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4 쫒기 듯 걸어 나오다가 처용아내 5를 만난다. 밴취에서 손톱칼을 들고 손톱손질을 하고 있다. ]
처용아내 4;; 용이 엄마 여기서 머하능기예? 시상이 와 이리 시끄러분지 원 쯧쯧[곁에 앉는다]


처용아내 5;; 와 이래 씨끄러부냐꼬예? 집집마다 암딱 우는 소리 아인기예.
인자는 암딱 소리가 젤로 큰 집이 잘 사데예 칼 빼내삐린 남정네들이 가마 구경하다가 
떡만 자시믄 되는 기라예.
소리 큰 암딱은 손 크지예, 또 치맛바람은 얼매나 씨다꼬예? 아씨예?
고 치맛자락 펄럭일 때마다 아파아트 한 채가 왔다리 갔다리 안합니꺼.

장딱만 믿고 잠자던 암딱들이 칼 때신에 손톱 끝 길게, 날카롭게 갈민서
마카 꼬꼬댁! 꼬!꼬!거리야 잘 사는 시상이, 시상이 진짜 왔단 말이라예.


[밴치로 처용아내들 하나 둘 모인다  ]

처용아내 4;; 요즘 부산댁이 꼼짝도 않고 들어앉아서 뭐하는지 모리겠네. 몰래 한분 들어가 보입시더 쉿 조용! [살금살금 처용아내 3의 집으로 간다.처용아내 3 시낭송을 하고 있다]]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을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와! 시인 만세! 외치며 모두 손뼉을 친다.]

처용아내 2;; 하이고 부산댁이는 정말 열심히 잘 했대이. 축하하는 뜻으로 이카지 말고 우리 노래방에나 갑시더. 내가 한턱 쏠끼다. 마[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애모와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른다. 탬버린을 치며 춤을 춘다.]


[그 날 밤 처용아내 3의 집. 직장에서 늦게 들어오는 처용3의 가방과 옷을 얼른 받아 걸며]


처용아내 3;; 피곤하시지예.취하셨지만 이밤 유난시리 잘나보입니더.
처용 3;; 여편네가 미쳤나 걸쳤나?
처용아내 3;;노래방 번쩍번쩍카미 발광하는 조밍등 아래서예 실컨 노래 부리미 맥힌 속아지      풀었심더. 춤추민서, 괴성을 지리다가예 "입수부리 뺄가이 바리고"를 부릴 때는예
마 청승시럽기조차 합디더.서방님예, 등 쪼매 쭈무리드리까예?[등 안마를 한다.]
너무 용쓰지 마이소.갑째기 탁 뿌라졌부는 나무가 디기 많십디더.
걱정입니더. 미부나 고부나 서방님이 지울타리 아입니꺼. 시상이 달라졌다 케도예
아이도 냄핀따라 인내를 한 구디에 묻어뿌립디더. 안그러십디꺼예?
처용3;; 그렇지 그래 우리 마누라 오늘 밤 디기 이뻐 보이네. 그래 툭수바리 된장이 더 구        시하제. 그래! 그래!
[서로 어깨 감싸며 포도주 잔 부딪치며 춤을 춘다. 마지막 음악 들린다. 모두 무대로 올라 같이 어울린다.]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서[제목]-----------전체 영상시도 배경으로 깔면 좋을텐데요-?

                                                                       극본 =정 숙 시인


1. 소 울음소리 들린다. 아버지 농사일이든지 농기구를 만지거나 뭔가 열심히 일을 하신다. 땀을 훔치면서
2. 어머니 장독대에 물 한 그릇 떠 올리고 빈다.
3. 아이들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 한다.[오빠 둘 언니 셋]

바람 길을 서서 걷는 남자  [아버지 아니면 큰 오빠가]


 너, 무슨 업業 그리 많으냐 모래사막을 건너려면 모자챙이 넓어야 하는데 그 챙의 넓이에 여러 목숨 달려있는데

 너만 잠시 쉬어갈 세상 의자는 없다 단지 서서 걸어가기만 하리

 가장은, 말이 있어도 끝내 타지는 못 하리 그냥 서서 한 평생을 끌고 가야만 하리

 그 뒤를 줄줄이 어린 낙타 한 마리 씩 타고 바람에 불려오는 가솔들그들 남루를 이끌고 오늘 밤 안으로 

 오아시스를 찾아야만 한다 모래폭풍이 또 다시 휩쓸어오기 전에











밥그릇을 위해 물구나무서다    [큰 언니가]


                            
  제 뿌리 헐벗는 줄 모르고 하늘로 키만 키우는 대나무들 고집 틈에
 거꾸로 매달려 가랑이 찢어지도록 흔들건들거리는 

 어머니
 
 당신 울타리 넘어질까 봐 애면글면, 그 바람 멎어달라며
댓닢 피리로 모내기철 초사흘 달빛기도 드리고 있다

















열네 살 적, 들장미 피어나던 날 [주인공----소녀시절,  초경을 하는 장면]

              

  사월 눈부신 햇살 아래서 비눗방울을 불고 놀았지요 종일 무지개 따라 다니다가 그 비눗방울에 그만 갇히고 말았어요

 해는 어스름해지는데 아랫도리 뜨끈뜨끈 진홍빛 꽃 피어나면서 가시도 같이 돋아나

 난 탱자가시 울타리 밑에 웅크리고 앉아 훌쩍이고만 있었는데

 냇물 건너 노을 진 하늘이 내 그림자를 저보다 더 진하게 물들이고 있었어요


























타조풍으로 [둘째 언니가]


날개가 있다고 다 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날개가 있다는 것은 날아오를 수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끝내 날아갈 수 없다면 

 하루하루 그 슬픔의 무게가 그의 목 점점 더 길게 늘여가고 있는가

 그런다고 하늘이 더 가까워지는가




4  달밤 주인공과 연인  걸어간다. 팔짱을 끼고 애무하며. 파도 소리 들린다


달빛 모래성을 쌓다[동네 아주머니 1]

1.
               
   아닌 밤 해운대 달빛파도 팔짱 끼고 해변을 걷고 있는 저 남녀
미완의 사랑 다시 시작하려고 안개 바다 속 서성이고 있는가

2.

    뜨거이 주고받는 입김이 달빛목금을 연주하는 밤 바람젖가슴 밀었다가 다시 움츠렸다 살며시 당기고 또 놓아주기도 하면서

3.
   어차피 아침이면 해거품 물보라로 모든 것 사그러진다는 것, 그걸 알면서 이 밤 또 바람모래성을 쌓고 있는가






누가 먼저 불붙이느냐       [동네 아주머니2]

        ---성냥불  1




밤새워 온 몸 사른다
한 개비 성냥불 입에 문 초는
제 목숨 다 녹아내리는 줄 모르고

얼어붙은 샛강도 녹일 수 있는
불씨, 사람들마다 가슴에 간직하고 있지만

누가 제 몸에 먼저 불붙이느냐

성냥 한 개비의 몸도 마음도
그 누군가와 
온 전신으로 부딪혀야 불꽃이 피어나나니

남의 가슴에 불붙이려면
저 먼저 타올라야 하는 법











파도처럼------주인공


우뚝히 서서 먼 수평선 바라보고만 
있는 섬 바위,  고집스런 고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때리며 마구 할퀸다 
깨지는 것은 파도 제 몸뚱이 
온몸이, 유리알같이 산산이 부서지고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찬란히 부서져 내린다.
情事의 불꽃!

때론 부드러운 눈길 잔잔하면서도, 
그리움 클수록 가슴 속 불덩어리 이글이글 
끝내는 지 정열 못 감당해 허공에 대고 
散華해도 끄덕도 안하던 섬 바위, 
소리 없이 조금씩 무너지고   
오늘 밤 나는 성난 파도이고 싶다  
그대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아, 흑장미 빛 파도가 되고 싶다.















섬바우는---------[주인공의 연인]


哀憐에 물 안드는 게 아니다!
용암거치 붑끓어오리는 가슴이 내게도 있다는 
거를 , 모르는가? 
처절한 몸부림으로 눈부시게 
니 아련 살점이 마카 부서져 내릴 때,
설레는 내 눈빛 몬 본 채 훌쩍 돌아서는 
파도여! 살며시 다가왔다가 성난 듯 마구 
할퀴면서 금새 돌아서는 매몰찬 그 모습,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하늘, 
쉴 새도 없이 흔들리는 니 가슴, 

아는가? 끝내 파열하는 내 신음소리!
부서져야 하리, 낱그리 부서져서
나를 깡그리 뿌사야만 
니 품에 편히 잠들려는가? 



















5. 드레스 입은 주인공과 연인 결혼한다 [아니면 둘은 잔을 부딪친다 사랑의 행위 흉내낸다, 곧 남자는 바람잡이 흉내를 낸다]



꼬냑여자 --------[주인공]
 

꼬냑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장밋빛 살결
세월이 더할수록 톡! 쏘면서
화악! 달아오르는 고 맛깔
긴 시간 내성으로 빚어
단내나지 않는 
향그러움으로 
목석 같은 그 가슴속
불, 질러버리고
확, 불 질러버리고
저마저 활활 태우는 한 잔의 
꼬냑!
비록 일순간일지라도
 
 

















처용, 어느 33대손-------[어머니 아니면 이웃집 아주머니]



 세상 밝히려면 대들보 하나 튼튼하게 세워 꽃씨를 잡초보다 많이 뿌려야한다더니 그 단단한 청석 뚫으며 아무 땅이나 파대던 그는 제 집 한 채는 고사하고

 달맞이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 어느 바람 센 공터에서 새우잠 달래고 있는가 작업복 빈 바짓가랑이만 억센 바람손아귀에 붙잡혀 빈 하늘에 버둥 버둥대면서


















6. 시장 난전에서 골라골라 옷장사를 하는 주인공






바람 난전에서-------[시장 상인1]------시가 많으면 생략해도 좋습니다.

                     



 큰 장 난전 '골라 골라' 옷가지에 맨얼굴 숨기고서 손바닥 발바닥으로 장단 맞추며 손뼉 치며 새벽시장 이른 바람 타이른다

 막걸리 한잔이 곧 인정이고 의리라고 믿는 백수남편은 또 누군가에게 인생 빚보증이나 서고 있지 않은지









8.  밤. 아버지 돌아가시고 검은 옷 입은 식구들 모여 회상에 젖는다.
멀리서 징소리 들린다.


백지백기를 들다--------[둘째 오빠가]------백지 한 장 들고
         

왜 이리 무거운가
티 없이 맑은 이 한 목숨하늘이 

 잠 못 드는 밤 A포 용지 한 장에 동공 모으면 희디흰 뼈와 뼈 틈이 차츰 열리면서 검은 그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찢기고 짓이겨지는 한 생의 비명이 어둠속에서 어둠을 밟고 서 있다 
저  하얀 눈부심 아래 얼마나 많은 눈빛이 젖어 빛나고 있는가

 젖은 그 무게 때문에 그들 그림자하늘이 저리 어두운가
어둡다 못해 오히려 희게 보이는가 







 참빗-------[ 언니 3]-빗으로 머리 빗으며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같이 지녀야한다며 찔레꽃울타리 둘러놓고
헝클어진 내 생을 정리해주던

아버지, 내 태초의
첫 남자

 당신, 내 눈길 벗어나지 못해 지금껏 기억의 어느 끄트머리에 매달려 
물먹은 별*빛발하고 있는가
 
*정지용의 ‘유리창’에서 눈물을 뜻함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서------[주인공]------징과 징채를 들고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한파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사위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네 징을 칠 것이니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리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속으로 울거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나를 울리는구나



9. 모두 슬픔에 젖는다.  징소리 울린다

아버지!!


「시극」



신 처 용 가


연작시: 정 숙
대본: 정 숙











-시극-
「신처용가」





<신처용가 극본>

(웬생트집)

M : 경음악(봄날은 간다)
시간: 자정을 알리는 큰 시계추 소리
소품: 달,밤,용광로,술상,술병,술잔,호롱불,찔레꽃
등장인물: 처용아내,처용,기생들,역신, 처용의 술 친구들
해설(녹음):자정이 지난 시간. 봄비 추적추적 내리는 밤
벚꽃 꽃잎이 나풀나풀 떨어진다

(연출):처용이 술상에 기생들과 흥청망청 놀고 있다.[웃음소리]
장구와 기생과 한량춤 등. 가야금 거문고 대금소리 등

2차 3차 장소를 옮겨 카바레로 갑니다.(섹스폰연주:댄서의 순정)스포츠댄스 아니면 사교춤판

처용아내 1: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그러시: 글쎄


처용아내 2: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무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M: 봄날은 간다(노래)- 男,女
-암전-

M : 배경음악
-청소하면서-
배경으로 춤추는 장면
=======================================
자갈마당이 어덴공?
-처용아내 80 [태산이 높다하되]

서방님이 등산 간다 카고,
뒷잡이 꽃밭에 물주러간다 카고,
앞집이 경마장 간다카미 나갔다 카는데
자갈마당이 어데 있는공?

집안에도 두리뭉실한 산이 있고
빌로 볼품없어도 꽃밭과 튼튼한 말 안있나?
동네 싸나아들 와, 해필 와, 자갈마당에 가노?
집에서 냄비따고, 굴뚝 소지하믄 
덧나능가 머?

눈물로 핀 들국화가 더 애처럽고 더 이뿌다꼬?
길섶에 채송화가 더 근지러분데 잘 긁어준다꼬?

싸나아들이 철드자 망령든다 카디
갈수록 태산 아이가.
지 암만 노푸다 케싸도 다 내 손 안에 안있나.
부처님 손바닥 아잉가베.

자갈마당:대구에 있는 색시집 동네.
지:제, 저의
===============================

처용아내 3:
종일 지아뿌는 일만 하고 있었심데이!
청소하면서 지 발자죽을, 
설겆이 하미 추억의 얼룩자죽을,
빨래하면서 희망 뿌시레기를
빡빡 지아뿌고 있었심데이.
뭔지 생각없이 부지런히 딲고 씨꺼보이
한숨캉 눈물밖에 안 남십디데이.
참말로 바보거치 살았심데이.



소리(녹음):([살풀이춤이나 대금연주도 좋습니다.]----[아줌마 3]

해설(녹음):자정을 알리는 시계 추 소리 들려온다
처용아내 수틀을 들고 수를 놓거나 바느질을 하다가 
창가를 서성인다. ) 걸레 집어 던지고
한숨을 쉬다가 봄날은 간다 노래한다


처용아내 4: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인 줄 아시지예?
이 가심 속엔예 안죽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비랑끝의 꽃이 이뻐 보인다고
지를 꺾을라카는 눈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그래예?



해설(녹음):여기서 처용아내 꼬냑 한잔을 들이키며 현대판
신식 고냑같은 여인으로 변신한다.막춤과 옷 벗어던지기



<꼬냑 여자>
M : 배경음악


처용아내 1:
      꼬냑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장밋빛 살결
세월이 더할수록 톡! 쏘면서
화악! 달아오르는 고 맛깔
긴 시간 내성으로 빚어
단내나지 않는
향그러움으로
목석 같은 그 가슴속
불,질러버리고
확, 불 질러버리고
저마저 활활 태우는 한 잔의
꼬냑!


M : 배경음악(바뀌며)

男.낭송(녹음):


해설(녹음):잠시 뒤 천둥번개 소리 나며 역신*[열병을 의미]이 
나타난다.[탈춤을 추며] [굵은 귀고리와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고 반지로 처용아내를 유혹한다]
꽃 한 송이 입에 물고 처용아내와 눈을 맞추려고 갖은 교태를 부린다. 드디어
 
    
연출: 처용아내 어쩔 수 없이  역신*[병을 옮기는 신]과 잠자리에 든다.
      다리 넷과 신발을 크게 부각 시킨다.[천으로 표현]
      이 때 처용이 취해서 기분 좋게 나타난다.
      방문을 연다. 깜짝 놀라면서 손가락으로 다리를 세는
시늉을 한다. [누운 두 사람 다리를 들어보인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깜짝 놀란 두 사람 벌떡 일어난다. 처용이 춤을 추면서
처용가를 부른다. 
   
  
M : 배경음악


처용 1(낭송):
      셔블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가라이 네히어라
    둘은 내헤다 마는 둘은 뉘헤런고
      본디 내헤다 마는 빼앗으니 어쩌리꼬


해설(녹음):역신 처용에게 용서를 빈다. 둘이 싸움을 한다. 
      처용아내 열이 펄펄 끓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일어나 손을 잡으려하지만 처용은 뿌리치고 나간다



(웬생트집)


M : 배경음악(녹음)


처용아내 1:                               
가라히 네히라고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 지혼차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 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든 잠 찔레꽃 꺾어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아, 사철 봄바람인 사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붐에 속 골빙든 예편네 
      꿈 한분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해설(녹음):사실 역신한테 병을 옮겨 받아 열이 펄펄 끓었지요.
그런데 웬 사내와 자고 있느냐 하니 열이 날 수 밖에요. 처용아내 너무 억울해서 보따리 싸서 집을 뛰쳐나옵니다.
처용이 후회하며 뒤쫓아간다

M : 배경음악(녹음)
처용 2(낭송):


[장구쟁이와 춤을]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궁디이:엉덩이
지캉:저와


해설(녹음):한편 처용아내는 집을 뛰쳐나와 화투판에서 놀거나
캬바레에서 춤을 추기도 합니다. 화투판 쌌다 !고오다! 소리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5: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귀케: 귀하게
*제비캉: 제비하고

처용  :앞치마 드르고 국자를 들고 뛰어 나오며
                      "여보 여봉 해장국 끓여서 빨리 가서 같이 들어 응?

M : 배경음악(녹음)



※엔딩송 : 봄날은 간다(다같이)-인사(경례)나가서 손님 을 잡고 올라와 춤을 춘다






-End-

「봄날은 간다」

       





이 시 나는 이렇게 썼다

                정 숙 [시인]


첫 남자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함께 지녀야 한다며 찔레꽃울타리 둘러놓고
헝클어진 내 생을 참빗질해주시던

내 태초의 첫 남자 
아버지

 당신, 내 눈길 벗어나지 못해 지금껏 기억의 어느 끄트머리에 매달려 
물먹은 별* 반짝이고 있는가
 
*정지용의 ‘유리창’에서 눈물을 뜻함


 경북 경산군 자인면 계남동 까막새 외딴 과수원 집 1남 4녀 중 셋째 딸,  탱자 울타리 따라 찔레꽃 향기 피어나던 집 앞 갱분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냇물 따라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키 큰 귀리들 서걱대면서 포플러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노래와 화음을 맞추고 홍수 지나간 뒤 노을이 물드는 시간 쯤 피리낚시와 헤엄치기, 여름 밤 솜뭉치에 휘발유 묻혀 불치기하면서 물고기 끌어 매운탕 끓여먹던 시절 그 아름다운 추억의 보석함이 이 시 속엔 숨어 있다.

 아버진 침대 머리맡에 사냥총을 세워놓고 밤을 지켰으며 아침이면 큰 개를 앞세워 사냥을 나서기도 하셨다. 어린 난 따라 가면서 새벽이슬 함초롬히 머금은 들꽃과 얘기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었다. 친구라곤 언니들과 동생뿐이어서 사과나무들 그리고 살구나무와 많은 얘길 나누며 사유라는 꿈의 비눗방울을 마구 불어댔다고 할까?  특히 늦잠 자는 걸 싫어하시는 아버지 무서워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거나 싱가 미싱으로 옷을 만들거나 부채에 예쁜 그림을 붙이거나 책을 읽어야 즉 뭔가 하고 있어야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여자는 예뻐야 한다면서 어린 딸들에게 루즈를 발라주고 고대기 화롯불에 데워 머리카락을 곱슬곱슬 구워주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자상하게 키우셨지만 우린 대학 다니면서도 고집스럽게 화장할 줄을 몰랐고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로 여겨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죄송스러울 뿐이다. 대학 3학년 겨울 아버지와 처음 서울 고모님 댁에 가는 날 눈이 펑펑 쏟아졌었다.
그 때 아버진 여자는 착하기도 해야 하지만 고종사촌 언니처럼 대차고 씩씩한 면도 있어야 한다고 은근히 일러주셨다. 워낙 말이 없고 순한 소처럼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딸 앞날을 걱정하셔서 일러주셨을 텐데 시집살이에 순응하기만 하는 딸이 바보스러워 속도 많이 상하셨을 것이다.  그 말씀 평생 잊어지지 않아 결국 시인이 되고 이런 시를 뱉어내게 되었을 것이다. 

 무섭기는 했지만 아버진 절대 권력자로 전지전능한 분으로 믿고 마구 미워하기도 했었는데 편찮으실 때는 아버지를 나 자신이 살려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무기력한 힘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늘 죄송하고 벌써 이 십 여년이 지났지만 문득 문득 생각나는 분 아버지, 특히 장덕조 같은 소설가가 되라시며 집안일을 시키지 않을 정도로 특히 외국으로 수출하는 사과 상자에 생산자 이름을 필자의 본명인 정 인 숙 으로 보낼 정도로 셋째 딸을 좋아하셔서 자매들이 샘을 낼 정도였으니 난 그것이 부담스러워 더 글을 쓰지 않았고 아이구! 아버지 죄송합니다. 살갑게 대하지 못한 딸이었지만 그래도 자매들 중에서 제일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고 마구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다. 자신이 가족들 화합시키는 분위기 메이커라고 생각했으니. 그 시대 아들만 대학 교육 시키는 풍조였는데 아버진 네 딸을 다 대학교육을 시켰으니 생각할수록 감사하는 마음 때문인지 돌아가신 아버지 늘 허공 위에서 내려다보고 계신다. 이처럼 돌아가시고 나면 평생 그리운 분이 부모님인데 이제 아흔 일곱이 되는 어머니 아직 건강하게 살아계시지만 언제 갑자기 돌아가실지 모르는 형편인데도 만날 바쁘다 핑계만 무성하니 참 불효한 딸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아픔과 그리움이 있어 먼저 집안 가장의 외로움을 이해 못했고 좀 더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했던 한이 남아 아버지가 참빗으로 연상되었고 따지고 들어가니 태초의 첫 남자는 바로 아버지였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화자는 시인 자신이고 시적 완성도는 부끄럽기만 하다. 그 끝없는 그리움과 죄송스러움을 그립다는 말 대신 추억을 되살리고 ‘정지용’의 ‘유리창’ 이란 시에서 물먹은 별빛이란 단어를 차용하여 슬픔으로 앙금으로 남아 있는 한을 풀어보려는 것이다. 어쩌면 오이디컴플랙스의 묘사이지요.

 특히 시의 소재는 멀리서 찾으려 말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만의 내면과 체험세계를 상상력으로 육화시키는 작업이어야 진정성이 있는 시 세계를 열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주변을 살피며 코를 킁킁거리고 있지만 아직도 나의 시세계는 늘 허공에서 헤매는 중이다. 
 
 아버지, 신묘년 새해 새벽 가만히 불러봅니다. 천국에서도 못난 딸 지켜보고 계시는 거지요?  






첫사랑, 그 아련한 그리움


 꿈결인가? 참으로 달콤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 말은 그립고도 그리운 한 소녀시절로 청춘시절로 돌아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일까? 그 통로를 더듬어 가다보면 잊혀 진 얼굴들이 여러 가지 색깔의 비눗방울 속에서 동실동실 떠다닌다. 

 마침 컴퓨터 내 홈에서 존 바에즈의 흘러간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고 있으니 그런데 내 발걸음은 대학 1학년에서 자꾸 머뭇거린다. 66학번 그 당시 경북대학교 입학한다는 것은 서울 유명한 몇 개의 대학과 맞먹는 위치였다. 특히 여학생이 귀한 때 한 과 정원이 15명 그 보다 남녀공학을 간다는 것이 내겐 전쟁터로 나가는 것처럼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참 바보처럼, 절대로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섰으니 사랑이란 말을 믿지 말자고 맹세하고 입학했으니 첫사랑이란 그 연못에 한번 빠져보기는커녕 발을 적셔보기라도 했을까?

 그 무덥던 여름 지나고 어느덧 초가을 밤 눈물이 글썽한다. 어구, 왜 이리 감상적이지? 피겨스케이트의 스핀을 발끝으로 빙그르르 돌아본다. 눈 지그시 감고 손끝을 뻗어본다. 손끝 따라 과거를 불러 모은다. 뽀족히 갓 터져 나오고 있는 연둣빛 양버즘나무 잎 사이로 빙긋이 웃는 얼굴 하나 쑥스러워하며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듯하다. 우선 날 세운 양복에 키가 쭈욱 뻗었다. 재수생인지 풋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의예과 1학년이라며 그 당시 1학년은 대학이나 과 구분 없이 교양학과로 두루 섞어 공부했다. 4반 바로 옆 반이라는데 부끄러워 서로 눈길을 주고받지 못했으니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풋풋하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리라. 흐음, 그 풋내가 그립다.  난 바다 빛 투피스 긴 생머리에 푸른 줄무늬 스카프로 머리띠를 하고 화장하지 않은 생 얼굴로 꽃시계 윗머리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저 파트너 좀 해주실래요?” 
“예?” 
“의예과 가든파티가 며칠 뒤 열리는데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조금 유들유들해 보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를 닮았다. 바람장이면서도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사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신을 차려야지. 조금 쌀쌀하게 속삭이듯
“좀 생각해 보겠어예. 내일 말씀드리면 안될까예?” 

 지금의 박물관 건물 1층은 음악 감상실이었다. 틈만 나면 자욱한 연기 마시며 국문과 여섯 여학생은 날마다 붙어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여학생이 귀했고 모두 청순해 보이고 차갑고 예뻐서 경북대 캠퍼스의 신화적인 존재들이었다. "해변의 길손' '썅하이드 트위스트'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 에 취해 있을 때 그는 다시 찾아와 부탁을 했고 난 당연히 승낙을 했다. 매년 사월 의과대학 가든파티에 초대되어 간다는 것은 그 당시는 몰랐지만 대부분 여학생들이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행사였던 것이다. 

 양장점에서 라일락 꽃빛깔의 투피스를 맞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신기하다. 용돈이 넉넉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당장 옷을 준비했을까? 어쨌거나 그 날 밤은 라일락 향이 포크댄스 하는 이들에게 마약처럼 스며들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 후 클럽활동도 같이 하면서 자전거 하이킹, 우리 과수원에 데려다 사과 줍기도 시켰지만 그들의 바람기를 아는지라 늘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번 엎어지고 자빠져 보기도 했어야하는데 그에 대한 설렘을 속으로 꼭꼭 숨기며 태연한 척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거짓말이라고예? 아이라예. 언지예. 참말이라예”

 유월 언젠가는 대구에서 자인면 계남동 까막새 과수원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는데 과수원 탱자 울타리를 지나며 서로의 떨림을 감추느라 하늘이 맑다느니 쓸데없는 얘기만 큰소리로 나눴던 것 같다. 그 날 집에 도착해서 거울을 보았다. 볼 전체가 발그레해서 자신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스 신화 속 자아도취에 빠진 나르시스가 되어 거울 연못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 때 그 모습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어서 그 추억의 연못 속 파문이라도 지면 헝클어질까봐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 다음 해 여름 소나기 쏟아지는 밤 동신교를 말없이 걸었는데 비에 젖은 바람은 우산을 획! 나꿔채 가고 그래도 우산을 두 개 따로 쓰고 걸었으니 참 낭만은 어디로 소풍갔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게도 기찻길 따라 철로 위를 걷기도 했었지. 그러다가 여름 방학 비 오는 날 정말 뜨거운 그의 연애편지가 무서워 콩닥콩닥 뒤안에서 성냥불로 편지를 태우기도 했었으니.

 그렇게 흐지부지 세월의 책장만 넘겨버리고 그는 멀리 바닷가 병원으로 난 경주 월성중학교 국어 교사로 재임하는 동안 그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젊은 죽음이란 강한 방부제로 영원한 그리움이 되어 내 가슴에 저장이 되었으니 그 뒤 복사꽃 꽃다발 들고 ‘꽃말이 무엇인 줄 아느냐’ 며 찾아온 총각선생님 푸릇누릇 익어가는 보리밭을 그려주던 어느 화가의 애절한 눈빛에도 목석이 되어 무덤덤하게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 

  난 나 자신을 너무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 그 끝의 허무함을 알기에 속으로만 가슴 두근거리고 그 풋풋한 설렘의 꽃봉오리를 바라보는 것만 즐긴 것은 아닌가? 늘 정도만 지키려는 자신에 가끔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시 한편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첫사랑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그리움엔 유통기한이 없다는 김성덕 시인의 [첫사랑] 시 한 구절 생각하면서 삼국유사 연구반 덕에 기억 속에서 잊혀 진 동신교를 몇 십 년 만에 걸어본 기념으로 쓴 필자의 시 한편 올려본다.

 먼 먼 칠석날 눈물 머금고 흘러온 미리내 줄기, 흐르다가 애달븐 연인들의 가슴 소용돌이 풀지 못해 신천 웅덩이에서 맴만 돌고 있다네  땡그랑, 댕그랑,  물결 속 열사흘 달빛기둥 위 은종을 간절하게 치며 기도하면서

 그 흐느끼는 소리 듣고 자란 피라미들 뒤엉킨 은하수 전설을 풀어 무지갯빛 천을 짜고, 그 그리움을 내 청춘의 검고 긴 머릿결에 둘러주던 눈 시리도록 아린 첫사랑의 그림자!  너는 뭇 세월 견디느라 날금해진 푸른 동신교 아래서 누굴 기다리는가 

 그 여름날 천둥 비바람 가려주던 우리들의 청춘, 그 아련한 우산은 세월 따라 멀리 저 하늘 너머 날아가 버리고 없는데  [푸른 동신교 아래서, 전문]


[행복더하기 2012, 봄]


산사 김재홍 정년 기념 문집

혜화동 예인선의 유배지에서
                           시인 정 숙

1. 음모론

벌써?
그래, 박주일 선생님 생전 대구문학 아카데미 행사에서 뵌 지 20년은 족히 넘었으니 아쉽지만 정년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 때 잠깐 뵌 뒤부터 나의 열망은 시작 되었지. 멋모르고 91년도에 등단해버렸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꼭 시와 시학으로 등단해야겠다고. 그 서원을 세운 뒤 시가 이렇게 괴로운 물건이란 걸 처음 알았었지. 그 동안 연애에 빠져 가슴앓이도 못해 본 내가 목표가 생겨 행복하기도 했었지. 시집살이 속 찌지고 볶는 갈등에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지. 다른 길은 없었고 그냥 허기진 듯 쓰는 수밖에 없었어.  그 고통의 길이 쓸데없는, 참말로 어처구니없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달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었지. 드디어 [낡은 테이프]로 자신의 심연에 갇힌 앙금들을 헤집기 시작했고 좋은 인연을 만나고 대구 동아쇼핑에서 시상식이 있었지. 그 당시 감히 이름도 못 부르는 전국 훌륭한 시인 분들이 거의 대부분 대구로 모인 대단한 행사였지. 늦깎이라고 걱정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세상 매운 바람맛을 어느 정도 맛 본 40대였으니 그 恨이 오히려 깊이 있는 시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것도 모자라서 때론 김영임의 ‘아리랑‘을 듣고 또 들으며 시를 쓰기도 했으니. 

그 당시 만난 산사님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벌써 그렇게 온 몸과 마음을 바친 선생님의 세상이 바깥세상으로 유배시킬 음모를 꾸미다니! 그러나 제 씨앗을 깊이 품었다가 땅에 떨어뜨려 자생하도록, 새 삶을 찾도록 놓아주며 길을 내어주는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그 제자분들이 이 처럼 잔치를 베풀어 주시니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2. 프로가 되라

그 당시 잊혀 지지 않는 말씀은 ‘프로가 되라’ ‘문방구 아닌 한 가지 사물에 대한 모든 것을 갖춘 백화점 형태의 시를 써라’ 그 말씀은 시 쓰는 이십년 동안 한 번도 내 뇌리에서 떠난 적 없었지. 그 덕분에 모든 작품들이 연작으로 쓰였고 그렇게 하면서 한 가지 사물을 요모조모 각도를 달리 뜯어보면서 사유력이, 투시력이, 상상력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고은 시인이 ‘시는 만고의 역적이다’ 그 말씀 생각하면 참 지당하신 말씀인 것 같다. 사랑이란 기쁨이다. 명제하고 돌아서면 또 슬픔으로 보이기도 하니. 물론 아직 미숙하긴 하지만 죽을 때까지 매달려 보면 검은 진주알 하나 생겨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있어 내 생이 또 풍요로워지고. 쫒기 듯 십년 넘게 대구 문학 아카데미에서 시창작반을 맡고 청도 도서관 서부 도서관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 시 가르치기 또는 포엠토피아 포엠스쿨에서 현대시 강의를 한 일은 누구를 가르치기보다 시를 좀 더 알기 위해 프로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 것 같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이 먼저 깨닫고 그것을 중생에게 가르치라는 ‘상구보리’ 하화중생‘ 의 길 닦기 인 것을. 물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건방인 줄 알면서도 나의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했으니, 그 와중에도 거의 매일 시 한편 쓰지 않으면 허기가 졌으니. 소설 같은 시집 한 권 엮어보자는 뜻으로 시작한 ’신처용가‘ 첫 시집으로 너무 과감한 소재였었지.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로 하자니 발걸음이 주춤거릴 때 뒤에서 등 두드리며 용기를 주신 산사님을 어이 잊어버린단 말인가?  

마음 같아선 시학 교실에 들락거리고 싶었지만 시집살이에서 벗어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가끔 작품을 보내드리면 격려해주시고 경상도 말의 감칠맛을 살리는 ’안 그래예? 예? ‘ 이런 말의 조언을 주시고 신작시 특집에 실어주시고 지금 생각하면 많은 혜택을 받은 것 같지만 그 보답을 못해드렸지. 처용아내 다섯 편의 신작시 발표 후 반응이 너무 좋았지. 눈치가 없어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고 조 병화 선생님은 뵐 때 마다 어깨 툭, 툭, 치시며 ’정 숙은 계속 사투리로 나가라‘ 하시고 다른 분들은 시어 몇 부분에 대한 조언도 해주시고 오히려 그런 반응 때문에 다음 시를 쓰는데 많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시집 한 권을 경상도 사투리로, 연작시로 쓰는 일 저질러버렸으니. 사실 시집 사는 동안 시학교실에 가시는 분들이 무척 부러웠다. 복도 많은 사람들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했었는데 이제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어 대학원 가기보다 오히려 잘 된 일 같고 행복하다. 그 교실엔 미당도 보들레르도 살아 나타나 내 시의 창조적 상상력의 길 터주기도 하지만 김남조 고은 김후란 김지하 이가림 신달자 유안진 쟁쟁한 선생님들을 친구처럼 가까이서 자주 뵐 수 있으니 이 무슨 늦복에 횡재란 말인가.

3. 유배지

시인 이상은 이해하기 힘든 거울 속으로 금홍의 치맛자락으로 스스로 유배를 가고, 포은 후손 정철은 임금을 그리워하다가 기생 진옥의 골풀무 속으로 유배를 갔다지만 어쩜 산사님은 오래 전부터 자신을 가시 울타리에 위리안치 시킬 꿈을 꾸셨던 게지. 그 증거로 하나 뿐인 집을 현대시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지금 목천 선산에 ‘시의 집’ ‘시인의 집’을 준비하고 계시는 걸 보면. 지금 난 ‘유배시편’ 연작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런 유배지에서 거의 문학이 싹트고 후학을 키워 꽃피우고 했으니 이제 정말로 산사님이 하고 싶었던 일로 여생을 보내시며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셨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종종 내 유배시편에서 ‘지하철’‘ 혜화동 예인선‘ ’콘트라 베이스‘ 등 내 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해서 서로 너무 만만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산사님은 내 시의 정신적 멘토로 앞으로 내 시의 길을 가르쳐 주는 등대이기도 하니 정 숙 그댄 참 복도 많지 않은가?

좀 더 연륜이 흐르고 몸도 마음도 적당히 삭아서 ‘어이, 우리 차 한 잔 하세나!’ 하면 황토방에 모여 시도 나누고 남은 인생도 부담 없이 남자 여자 잊어버리고 그렇게 편한 벗이 되었으면 하는 게 내 건방진 바램이다. 끝으로 내‘유배시편’ 속 ‘혜화동 예인선’ 전문을 올려본다. 

혜화동 예인선
-유배시편 22


누구도 항구에 닿지 못하리 
수십만 톤의 전함도 가랑잎 쪽배도 
그가 없으면 

시학 뜨락 감나무 연푸른 파도 아래 서서 
시인들의 
바다부두로 길 이끌어주려고 

떨어지는 감꽃이 
댓잎 빗방울이 
하늘운판 쳐대는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시의 파도에 갇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그러나 세상이치를 실오리에 꿰어 목걸이 해주는 

그 남자 
어둔 세상 난바다의 예인선 같은 


내 시의 에스프리

 시란 저 괴물은 갈증이란 채찍으로 내 직관의 날갯죽지를 시시로 후려친다. 그 아픔이 고인 심연, 넋두리해가며 아무리 퍼내어도 끝은 보이지 않는데 목이 마르다. 
 유배시편 시집 정리 이후 부서지기 쉬운 세상의 모든 모래 성질들을 조명하여 뒤집어 보고 두드려 보고 있는 중이다. 그 중 가장 잘 변하는 것이 사랑이지만 다행히 그리움은 시간을 따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난 오늘도 그 줄을 잡고 낡은 감성을 날 세우며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즘 자살이란 독버섯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 시대, 사람의 한 생이 파리 목숨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그들의 연약한 꿈을 대신 노래하려고 굽은 등 꼿꼿이 펴본다. 넓은 오지랖 에 잡혀 밤을 꼬박 새기도 하지만 누가 내 시어 사이로 흐르는 얕은 그늘에 잠시 쉬어 가겠는가?
 그러니 갈증은 더욱 목을 조여와 내 시어 논바닥을 쩍쩍 갈라지게 하고 마음만 조급해진다. 어떤 화두를 잡고 늘어져야 하나? 어린 시절 외딴 과수원에서 식구들과 무료함을 달래주던 화투장 엉덩이를 찰싹! 세게 두드려본다. 후드득! 뭔가 떨어지긴 하는데 자세히 검정을 해봐야겠다. 우중 영감을 잡아야할지 힘 있는 쭉정이를 먹어야할지 [시와반시 2012, 5]







시가 흐르는 국토 여행 제 2부 

                          정 숙 

2012년 시와 시학 신춘문예 시상식과 출판기념회 

 봄비라고 하기엔 너무 빗방울이 굵다. 
초여름을 모셔 오느라 흘리는 바람의 땀방울인지 늦게 눈뜬 산벚나무 꽃송이들이 많이 아플 것 같다. 대구에선 이동순 선생님이 필자의 차를 운전하겠다고 자청하시니 반가워서 얼른 핸들을 놓아버린다. 이동순 시인은 시인으로는 선배님이시고 대학에서는 경북대 국문과 3년 후배님이시다. 방수복을 입어라 권유하기에 도로 뛰어 들어가 연두색 두꺼운 잠바를 걸친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꾸꿉하고 싸늘한 날씨다. 

  
 서울 팀은 안산 편운문학관을 둘러 오는 동안 우린 옥천 아우내 장터 순대 국밥집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잠시 편운 선생님 생전의  서울 팀은 안산 편운문학관을 둘러 오는 동안 우린 옥천 아우내 장터 순대 국밥집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돌아가시기 전 사무실에서 ‘통 식사를 할 수 없어요.’ 말씀 뒤 금방 잠이 드시던 마지막 모습과 편운 선생님 생전의 '정 숙 시인 그 휴화산이라예 시도 낭송도 너무 멋져요. 계속 사투리 시를 쓰세요.' 하시던 목소리 회상하는데 현불문 대경지회 자문 위원이신 해인스님은 며칠 전 목천 현대시 박물관 마당 장독대에서 손훈희 시인과 장을 담그던 일 얘기하신다. 대구에서 류영구 김미선 시인과 함께 필자도 같이 거들었던 날을 떠올려본다.

‘시 마을 예술촌 된장 맛이 궁금하군요. 김재홍 교수님이 이젠 차를 즐기며 품위를 지킬 위치인 것 같아 다기세트와 차탁을 준비했어요.’ 
 몽골과 외국을 다니면서 모은 고급 차와 그릇들인 것 같다. 방석까지도 몽골 손자수로 준비하시는 모양이다. 사월 마지막 빗줄기 점점 더 세게 숲의 봄 향기를 뿌리친다. 

 모처럼 참 호사스런 여행이다. 팔자에 없는 기사 노릇을 하시는 이동순 교수님은 한 3시간 걸리는 흐릿한 길 내내 우리나라 옛 가요에 얽힌 이야기와 그 노래를 들려주신다. 황성옛터의 왕평과 이애리수 얘기엔 눈물 글썽이며 같이 따라 부르며, 그러다 보니 빗길의 불안도 잊어버리고 솜사탕 같은 목소리에 점점 중독되어 간다. 오늘의 목적지와 가야하는 목적도 잊어버릴 번할 쯤 옥천 이정표가 보인다. 아우내 장터를 물어 도착하니 김재홍 교수님과 반가운 얼굴들이 우산을 쓰고 시장 구경을 하고 있었다. 

 유관순 언니 기념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찾기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18세에 사망한. 죽음을 무릅쓰고 먼저 깃대를 들고 나설 수 있는 그 용기의 비밀을 만나봐야지. 그리고 언제나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시로 입만 나불거리고 있는 나의 비겁함을 용서 빌어야지. 일본 헌병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유배지인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 이겨내려 이 악물고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돌아가신 그날도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 내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피 흘린 애국심 덕분에 우리가 이처럼 허세부리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깊이 감사드리며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언니를 생각합니다.’ 추억의 노래 부르며 유관순 생가를 둘러보고 목천 현대시 박물관에 드디어 도착한다. 홍살문 같은 솟을 대문에 전체적인 어울림으로 보아 관장님이 그 사이 많은 일을 하신 것 같다. 

비는 계속 내리고 마당은 질척거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시가 흐르는 국토 여행 첫 행사가 아주 성공적인 것 같다. 2012년 시와 시학 신춘문예 당선자 시상식과 문현미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를 겸했으니 이반 화가 방귀희 시인 김광규 시인 그 외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좁은 마당이 소란스럽다. 며칠 전 해인스님이 가져다 놓은 걸레가 제일 쓸모가 있다니! 그리고 고급 차와 다기들이 천안 다도 회원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어 반가웠다. 

빗물 젖은 마당 의자를 모두 닦고 행사를 시작했다. 구이람 시인의 사회로 시작하면서 먼저 이동순 시인의 색소폰 연주가 있었다. 이제 배우는 중이라 아코디온 보다 서툴렀지만 앵콜을 청하고 모두 노래 불러야한다고 박수를 치고 점점 흥겨워지고 있었다. 먼저 사진작가인 이해수씨가 등단한다니 참 다행한 일이다. 시인의 등단시인 하늘 불립문자(不立文字) 전문을 읽어본다. 


이 한밤 누가 늘어뜨려 놓는 검은 화선지냐 
하염없이 송이송이 내려오며 한 땀 한 땀 지상에 
새겨 놓는 저 무수한 하늘의 불립문자들 

끝내 화선지 허공에 새겨 놓지 못한 말씀들은 
땅으로 내려오면 담벼락 넝쿨나무에 
길바닥 발자국에 옥상에, 문지방에는 
촘촘히 희디흰 상형문자들 새겨 놓는구나 

그러고도 차마 하늘에 다 새기지 못한 사연이련가 
새벽에야 마음문 열고 세상을 빼꼼히 내다보니 
아, 저리도 온 천지 얼음 땅 하늘에 
그 누가 있어 희디흰 하늘 말씀 새기고 있는가 

눈부신 백지여, 하늘의 불립문자여 

그동안 긴 고뇌의 시간을 알기에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친다. 상 위에서 춤추며 부르는 그녀의 아파트가 그리워진다. 그 다음 반가운 일은 대구에서 또 한 분의 동지가 생긴다는 일이다. 심사에 참여하신 이동순 교수의 등단 시인의 작품에 대한 선정 이유를 밝히고 시인의 인사말 축축하고 추워서 그런 말들이 잘 들려오지 않지만 축하하는 마음은 한결같은데 아차!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았다. 임기응변으로 필자의 시든 얼굴을 내밀며 축하 꽃이라 너스레를 떠니 이반 화가님이 하, 하 호탕하게, 웃으신다. 시상 내용은 금반지에 현금까지 들어있으니 권순학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는 그 반지를 여러 사람에게 껴보라고 인심을 쓴다. 다음은 그의 시 

이제는 알 것 같다, 
밤이 까만 이유를 
첫새벽부터 달궈진 낮 
저녁엔 빨간 알몸 되었으니 
알몸 품은 밤, 그 몸 
가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이제는 알 것 같다 부분 [권순학]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마지막 순서로 문현미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가 시작된다. 백석대학 부총장님의 위력이 과시되는 순간이 부럽기만 하다. 특히 그 대학이 천안에 있어서 목천 박물관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니 귀하게 모셔야할 시인이라 박수를 더 힘껏 쳐본다. 
미인이고 시도 좋고 직장도 대단하니 앞으로 시인으로서의 확 트인 길에 미리 꽃잎을 뿌려야겠다. 다음은 문현미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 푸른 비밀 전문이다. 

새들은 돌아보지 않는다 

하늘 화폭에 
몸붓으로 묵화 한 점 남길 뿐 

아득하게 빛나는 여운의 은유 너머 
허공 몇 가닥이 힐끗 

끊어질 듯 이어지며 
바람 계단을 오르내리는 

저 내밀한 
무한 고요의 
빈 몸들 

 하늘을 바라보며 깨달음이 있는 시를 읽으며 문시인이 잡은 돼지 한 마리 먹으며 가만히 한숨을 내어쉰다. 아직도 하늘 아래 세속의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한 필자의 시안이 부끄러울 뿐이다. 올해 펴낸 필자의 시집 [유배시편]이 이미 그늘 속으로 숨어버린 것 같아 쓸쓸히 [안개꽃 흰 그늘] 졸시 한편 올리며 신인 두 분이 등단의 기쁨 오래 간직하길 빌며 다시 한 번 더 축하드린다. 

조용히 악보만 
넘기고 있는 그림자 

연주자에게 조명과 찬사를 돌려주기 위해 
있는 듯 없는 듯 

너는 누구를 위한 페이지 터너인가 

저 빛나는 주인공들을 위해 
스스로 흰 그늘이 되어 떨고 있는 너 

제 가슴 쓰다듬으며 
영혼 깊은데서 두드리는 통증 
그 페이지를 
밤마다 남몰래 몰래 넘긴다 

--유배 시편 48 안개꽃 흰 그늘 전문 

 김재홍 교수님의 유배지이기도 하지만 시인들 영혼의 안식처이자 유배지가 될 목천 시마을 예술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동안 이동순 교수님의 가요 사랑은 끝이 없으시다. 차분한 운전 솜씨로 빗길의 어둠과 불안을 떨어버리려는 안간힘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덕분에 무사 도착했으니 ‘감사합니다.’ 서로 정다운 합장 인사를 한다.












백지, 흰 어둠을 받쳐 들다 
         

왜 이리 무거운가
티 없이 맑은 이 한 목숨하늘이 

 잠 못 드는 밤 A4 용지 한 장에 동공 빛을 모으면 희디흰 뼈와 뼈 틈서리가 차츰 열리면서 검은 그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찢기고 짓이겨지는 고단한 한 생의 비명이 어둠속에서 어둠을 밟고 다가온다 저  하얀 눈부심 아래 얼마나 많은 눈빛이 젖어 빛나고 있는가

 젖은 그 무게 때문에 세상 그림자 하늘이 저리도 어두운가
어둡다 못해 오히려 희게 보이는가 

그 흰 그림자의 뼈마디가 저 어둔 눈빛 위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는가



 언제부턴가 인생길에서 떼어낼 수 없는 친구 되어버린 A4용지 한 장 들고 뚫어지게 바라본 적 있는가요? 
 시인은 직관력 훈련을 하다보면 무당처럼 헛것이 보이기도 하지요. 하얀 백지 뒤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생명체들이 보이면서 울고 있는 비명을 지르는 나무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그들이 우는 이유를 아픔을 들어주고 위로로 풀어주어야 그들도 시인도 잠을 편히 들 수 있으니 큰 병이 든 것은 사실이지요. 그래서 징을 치며 소지를 태웠지요.
 그랬더니 시 한 편이 태어났습니다. 어느 정도 만족스러워 혼자서 빙긋이 웃었습니다. 다시 징을 두드리며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시인의 줌렌즈[시안 2003년 봄호 19]  [케리커처 오태환]

마리 끌레르의 족발
           -정 숙           [글쓴이 이기윤시인]

1996년 연망이었던가. 어떤 시낭송회의 뒷풀이 자리에서 였다. 나는 그 때 그런 자리가 처음이었기에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겨우 한 모퉁이를 찾아앉아 슬금슬금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데 예의 사람들 소개가 벌써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별도로 없어 시학사 주지[?]를 겸한 K교수께서 한 사람씩 소개하고 있는 중에 혼자 열심히 족발을 뜯고 있는 여인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정 숙 시인이었다.

 마리 끌레르 상표가 붙은 까만 모자를 쓰고 사정없이 족발을 뜯고 있는 모습이 내가 본 첫 인상이었다. 금방 파리발 비행기에서 내린 듯한 프랑스풍의 모자와 까만 드레스, 그리고 머풀러를 우아한 분위기가, 사정없이 쏟아내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와 입에 물린 족발과는 오히려 묘한 언밸런스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허기였다. 끝없이 돋아나는 허기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원동력이라 했던가.

 드디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족발을 듣던 그 입술에서 축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다 같이 박수로 장단을 맞춰 흥이 오르자 율동이 뒤따랐다. 고개를 약간 들어 천정을 바라보고 몸을 양쪽으로 흔드는데 기울기가 거의 45도 각도에 이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또 다른 그녀의 허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대단한 세모의 한 밤이었다.

 그 후 나는 그녀가 처용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적 화자인 처용의 아내로 변신한 그녀는 밤이면 밤마다 허기를 불태우고 있었는데, 달빛 그득한 밤이면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심한 사투리로 혼자 중얼거리다가 방문을 박차고 나가 마당을 서성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기도 하였다.

 대구로 서울로 종횡무진을 일으키는 그녀의 바람이 사실은 시적허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아한 그 분위기 속에는 검은 상처의 블루스가 흘러넘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이기윤








사막의 낙타같은 시인

   --이기윤     [글쓴이 정 숙]

 현재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대령으로 한국 현대문학을 강의하는 시인 이기윤. 이 글을 쓰기 위해 일주일 이상 오지랖 넓은 처용아내의 그 뜨거운 수밀도 과원에서 요모조모 뜯어도 보고 그리워도 했는데 그의 숯껌정이 눈썹과 크고 검은 눈이 내 주위를 맴돌며 뭔가 말하려다 마는 그 모습이 무척 슬퍼 보인다. [누부야] 하다가 도 한 잔 취하면 [가시나야] 소리도 스스럼없이 하는 같은 경상도 문둥이기도 하다.

 그가 제복을 입은 모습을 본 이라면 한번쯤 가슴 설레지 않은 이 없을 것이다. 일찍 어머님을 여의고 누이가 많다는 자랑을 하면서도 몇 년 전 돌아가신 누이 얘기에 그의 눈빛이 젖어있는 근원을 짐작했지만 제복 속에 감춰진 인간미와 그 속에 갇힌 자유를 향한 갈증 때문인지 웃고 있어도 모래사막의 낙타처럼 눈이 늘 젖어 있는 속눈썹이 긴 시인, 자신의 높은 관과 긴 목을 낮추어 소탈하게 보이려 애쓰는 그에게 나는 종종 동질감을 느낀다. 우린 서로 가곡을 불러야만 속이 후련해진다는 것 외에 젊은 날 중절모에 지팡이와 망토를 걸치고 나서면 동네 아낙들 가슴 설레게 했던 친정 아버지의 이목구비와 닮았다는 착각도 종종  하기 때문이다. 

 첫 시집[자전거와 바퀴벌레]에서 자신이 길 하나 만들지 못하는 쓸모없는 발을 가진 바퀴벌레라고 자책하면서 추억의 빗살무늬에 자신을 가두어 끊임없이 자아의 존재론적 성찰을 거듭하던 시인은 이제 자신이 말라붙은 라면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다면서 얼큰한 우정이 담긴 국물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슬픔이 많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시를 쓸 수밖에. 은근히 가슴앓이 하는 사랑의 씨앗 몇 개 간직하고 있을 멋쟁이, 그는 언젠가 오천 도의 불길에도 녹지 않는 영롱한 사리 몇 알 남길 것을 확신한다. 이제 깊어가는 겨울밤 그의 구수한 입담을 안주 삼아 젓가락 장단에 명륜동 선술집 할머니의 노랫가락을 들을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의 고향 낙동 강변 어느 골짜기에 지금 그리움의 폭설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 정 숙





못 뽑힌 자국을 찾아서

 오월 열하루
 아카시아 향 스민 빗소리 싱그럽다. 오랜 가뭄에 내린 단비라 우산 준비 없이 대구에서 상경했지만 모처럼 삶의 쓴 맛 단맛을 다 맛본 어떤 노신사가 우산을 받쳐주는 꿈꿔본다. 연둣빛 빗물 받아 시학사 감나무가 새순과 꽃망울을 씻기는 시간 오후 여섯시 ‘남산 문학의 집’에서 一村 김종철 시인 시력 40주년 그리고 시학사 출판의 ‘못의 귀향’과 '못과 삶과 꿈‘ 시선집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김남조 선생님 김윤식 김종길 김후란 선생님을 비롯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귀한 시인님들이 빗길 마다않고 참석하신다. 

 이윽고 유자효시인의 사회로 영상을 통하여 김재홍 평론가님이 ‘못에 관한 명상 1’과 ‘등신불’ 등 영상시를 겸하여 김종철 시인의 작품성을 평가하시고 40년이란 긴 시간동안 작품성이 저평가되어 왔음을 지적하신다. 
 ‘문학수첩이란 자신의 출판사가 있고 ‘마법사 해리포터’ 전집 판권으로 돈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분인데 참 대단히 겸손한 분인가 봅니다.’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옆자리 앉아 계시던 서정춘 시인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 사이 김남조 김윤식 선생님의 축하 말씀 뒤 김종철 시인의 형님인 김종해[문학세계] 시인이 ‘새야, 항복캐라,  마 졌다 캐라! 그 시절 얘기를 다시 해주신다. 새야는 형아라는 구시한 경상도 사투리. 그러고 보니 그 당시 김종철시인은 대학 입학 전에 신춘문예 등단을 두 번하셨고 그 당시 이가림 서정춘 이근배 시인 모두 신춘문예 등단 팀들이라 더욱 우정이 돈독해 보인다. 평소에도 남자들의 그런 우정이 부러웠던 필자는 남녀 간에도 저런 끈끈한 우정이 존재할까 의문을 가지는데 신달자 시인의 비아그라 얘기에 나이 상관없이 그 가능성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비아그라가 처음 생겼을 때 미국 갔다 오면서 두 알을 선물했는데 몇 년 동안 간직하면서 여러 시인께 구경만 시켰다고 그래서 다른 분들은 새카맣게 때 끼어 그런 줄  모르고  
‘ 아, 비아그라는 원래 까만 색이구나’ 했다고 합니다.” 좌중은 훈훈한  정겨운 웃음바다 흐른다.
 
 마지막 김종철 시인의 한 마디가 오월의 푸름을 더욱 싱싱하게 일으켜 세운다.
“여러 선배님께 죄송합니다. 그 대신 이 자리에서 약속을 하겠습니다. 앞으로 원고료 많이 드리는 월간 문학지를 창간하여 여러분께 보답하겠습니다. 저의 집 사람 김봉자 여사가 당신 재산으로 하세요! 하는데 저는 김봉자씨가 제 재산입니다.” 와락 웃음보 터뜨린다. 유쾌 상쾌 통쾌 
 “ 사실 이 자리는 그것을 여러분 앞에서 약속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친구 김재홍 교수가 꼬드겨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걸 자랑하라 했는데 그렇게 큰 결심을 한 김종철 시인이 더욱 큰 산으로 보인다. 시인이란 게 자랑스럽기도 하다. 나중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호 一村이란 못을 말한다고

 편찮으시다던 이수익시인과 도종환 노향림 유재영 오세영 유안진 유성호 구명숙 김종회 김영탁 이화은 송문헌 및 전석홍 시와시학 동인회 회장님 윤범모 부회장님 등 여러 시학사 시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성황을 이룬다. 언제 저런 날 올 수 있을까? 꿈이나 꾸면서 시력 겨우 20년 되어 가는 필자는 한숨만 쉬며 또 다시 하행선에 몸을 싣는다. 가로등 불빛이 젖어 밤을 밝힌다.
 ‘그래, 젖어가면서 밤을 밝히는 이가 시인이지’
 ‘그것은 아마도 꿈을 가꾸고 있기 때문일 거야’ 김종철 시인의 ‘고백성사’를 다시 되새겨 본다.

 고백성사
-못에 관한 명사 1

오늘도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성사를 음미하며 필자는 또 오기를 부려본다. 못을 뽑아버리면 집이 무너지는데
그 못을 끌어안고 있어야,  예수처럼 못 박힌 채 견뎌야 푸근한 집이 생기는데 시 한편 구상하다 보니 그럭저럭 오늘 본전은 찾은 것 같아 발걸음 가벼워진다. 그 귀한 시선집 손수 사인해 보내주심에 깊이 감사드린다.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

 겁도 없이 시집 한 권을 경상도 방언으로 감히 ‘처용가’를 패러디한 연작시로 된 제 첫 시집 ‘신처용가’ 중 이 시는 특히 애착이 가고 많은 추억과 사연이 있는 시입니다. 사월, 정말 추적추적 봄비는 내리고 애들은 독서실에서 처용님은 술집에서 자정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시어머님은 편찮아 누워 계시고 그야말로 적막한 봄밤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대구 말씨의 감칠맛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안 그래예?’는 김재홍 평론가님이 ‘월경’ 대신 ‘서답’이란 예쁜 말은 오탁번 시인님이 신작특집으로 발표되고 난 뒤 조언을 주셔서 고마운 마음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명을 달리하신 편운 조병화 시인님이 이 시집을 아주 좋아하셨지요. 그 중에서도 이 시 낭송을 시학 행사에서 하고 돌아온 날 아침 일찍 전화를 주셔서 “ 정 숙씨 그 시도 좋고 낭송도 좋아요. 계속 사투리 시를 쓰세요.” 하시며 용기를 북돋우어 주셨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면서도 안산에서 행사가 있다고 그 행사에 참여하라고 새벽 일찍 전화 주시는데 안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시집 어른들께 허락 받기도 어려워 “선생님예 지는 못 갑니더” 하면서 선생님 살아생전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하고 겨우 올 봄 시학행사에서 처음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쓸쓸히 서 계시는 사진 속 모습에 사과 말씀드리면서 후회를 했지만 이미 지나간 봄날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슬프기도 한 작품입니다.








[시인의 산문]-잃어버린 금싸라기들을 찾아서 
 

                     
사랑하는 처용님
여자가 하필 왜 시를 쓰느냐고요? 글쎄요. 저도 처음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비싼 밥 먹고 왜 하느냐고 빈정대기도 했었지요. 그 죄 값으로 짙푸른 파도 출렁이는 동해 물빛 같은 시간 다 보내고 늦깎이 시인이 되었지만요. 잃어버린 그 금싸라기들을 다시 되돌려 찾기 위해 두 눈 혈안이 되었다고 할까요? 고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 숨어 절 기다리고 있더군요. 옛날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 그 본 모습을 드러내며 조곤조곤 온갖 얘기 꾸러미들을 풀어놓으니 어쩌겠어요. 도리 없이 받아 적어야지요. 그것들은 누렇게 찌든 낙엽, 탱자나무 가시, 오동 꽃과 돌멩이 속에도 깊은 바다가 파도치고 있다며 저를 꼬집고 다그치기도 하면서 무조건 발가벗고 헤엄을 치라고 꼬드기더군요. 전 거름지고 장에 따라가듯이 그냥 따라갔을 뿐이지요. 
그런데 산 넘어 산이고 강 건너 가시밭이고 같은 게들이 서로의 발 물고 늘어지듯이 잡아당기기도 하고 말씀으로 생살에 빗금을 긋기도 하면서 온갖 훼방을 놓긴 했지만 시는 제 밥이고 집이고 애인이었기에 또한 많은 위안을 주기도 했어요.
늦바람은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압력을 넣어 가슴 속 깊이 내재된 용암을 폭발시키고 말았어요. 전 그저 받아 적었을 뿐, 그런데 끝도 없이 밀고 나오더군요. 그것들을 새끼처럼 꼬아서 밧줄을 만들어 우물 속에 빠져 허우적이는 제 모습을 건져 올렸어요. 그것은 썩은 밧줄이 아니었던지 제 생명을 구했지요. 거듭 태어날 용기와 힘을 준 것이지요. 이젠 신기가 들었는지 눈도 귀도 말문도 열려 귀뚜라미들 웃는 소리도 들린다니까요. 
  사실 전 눈과 귀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잠자면서도 기다렸어요. 혹시 언제 찾아오실지 모르지만 그 님이 찾아오실 때 옷자락이라도 붙잡아 그 향기나 흔적 남기려고. 
시에서 겸손을 찾다 보면 긴장이 흩어지거나 내숭을 떠는 것처럼 보인다는 핑계로[사실 시는 행간에 많은 보석을 감추며 내숭떠는 일인데] 너무 시건방을 떨지나 않았는지 걱정이군요. 전나무가 키만 뻣뻣이 키워 거드름 피우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몸 어느 곳 약간만 눌러도 곧 눈물을 쏟아낸다는 얘기 들으셨나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더 긴장해야만 하는 뼈아픔도 우리 서로 다 아는 일 아닌가요?
  처용님, 당신이 아무리 말려도 전 오월의 장미 꽃잎이 하르르 지는 이유와 쓰라림을 그림으로 그릴 겁니다. 그리고 눈을 뜨고자, 말문을 열고자 하는 이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고 깊이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는 일이지요. 길에서 장미 가시에 찔린 바람이, 바람에 뺨맞은 가랑잎이 훌쩍이는 소리 들리는데 의리에 사는 토종 경상도 처용아내가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요. 말도 안 되지예. 그나저나 곧 벚꽃이 바람기 화들짝 피워내는 봄밤일 텐데 우야지예. 예? 서방님!
 
 














<나의 시, 이렇게 쓴다>

                                                                 


       중독은 달콤하다
                                         정 숙

1. 기둥서방을 찾아서


     이미 태어난 내 시들이 참 대견하다. 조용한 시간 곰곰 읽어보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새삼스럽기도 하고 매일 쓰지 않으면 괴롭기도 한 이것이 아무도 즐겨 읽어주지 않는데 왜 이렇게 매달려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일상이 되어 읽고 쓰고 쓸데없이 남의 글 간섭까지 하면서 한 단어를 넣어야 하나 빼버려야 하나  오물딱 조물딱 만지작거리는 것이 중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도 이처럼 정신 쏟아 부을 애인이 있다는 것이 또 행복 아니겠는가. 이제 숨기지도 않고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정신적 기둥서방이라고 할까? 종일 같이 뒹굴어도 질리지 않는, 물고 늘어지면 질수록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나는

2. 흰 소의 울음을 찾아

       그러나 그는 까다롭다. 아무 격식 갖추지 않아도 된다면서 또 어느 양반 댁 자손이라며 체험의 객관화 실감유리 묘사 상상력 등등 법도는 얼마나 찾는지 때론 미워서 버릴 작정도 하지만 죽도록 사랑한다며 울며 매달리기도 해서 모른 척 눈감아 주기도 한다. 아예 관심을 더 쏟아 붓기로 작정하여 가슴에 더욱 뜨겁게 품어 그의 밑바닥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내면 뿌리의 아픔과 슬픔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호~불어주며 다독인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이 보이면서 그의 참 모습을 만나게 된다. 가령 징 전시회를 하고 난 뒤 징을 가만히 두드려 보니 소리를 내는 징도 징을 두드리는 징채도 바로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과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있는 징 울음소리 같은 시 한편 쓰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삶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또 곰곰 생각에 빠져 본다.



흰 소의 울음을 찾아
          
                                -바람 불다 65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을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나를 울리고 있구나

    결국 시, 그는 깨달음의 길 찾기 아니겠는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올라갈 득도를 위한 마음 다스림은 멀고도 험한 길일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진실하게 살갑게 드러내기 위해 묘사가 있는 것인데 묘사에만 빠져 허우적대다가 물만 실컷 먹고 쓰러지는 짧은 사유가 안타깝기도 하다. 앉아서 누워서 찔러보다가 입맞춤하다가 욕도 하면서 가까이서 멀리서 바라보면서 끈적끈적 질기게 씹히는 건더기를 찾아 날마다 그의 고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더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꼬집는 말도 비꼬는 소리도 바람의 회초리에 몸을 맡긴다. 가슴 찢어지도록 실컷 두드려 맞아도 본다. 또한 나의 말도 웃음도 눈길도 상대방 가슴에 부딪는 징채가 될 것이므로 시, 짝사랑에 빠진 이들을 위해 기꺼이 징채가 되어 맑은 시안을 갖도록 아프게 두드린다. 그들의 울음소리 누군가의 심금 울리며 은은히 퍼져나갈 날 기다리며


3.다듬이질 


     그런 사유가 또 늘어지거나 곰팡이에 먹힐 수 있어 걱정이다. 요즘 수필 같은 긴장미 떨어진 작품이 유행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좀 더 많은 독자를 위해  코르셋을 풀어버릴까 고민도 해본다. 그러면서도 다듬이질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생명은 긴장미라면서 밤새 당기고 밟고 물을 뿜어 꼽꼽할 때 잠들지 못하도록 다시 두드린다. 한 낮 하얗게 표백이 되어 빨랫줄에서 주름살 하나 없이 헛기침이라도 하며 펄럭일 그를 위해 일주일 아니 한 달도 마다않고 다듬고 또 다시 다듬는다. 다 되었다고 넣어둔 것들 시집으로 묶을 때 제목도 다시 바꿔보고 사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새로운 시어 찾기에도 골몰하며 한 번 더 다독이며 다듬는다. 그래도 결국 후회만 남는다. 가슴이 아파 또 그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시, 그는 영원한 나의 고통의 바다이자 안식처이므로, 성냥 한 개비에 지나지 않는 날 뜨겁게 불 붙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이므로, 그 성냥 한 개비가 산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훨훨 타올라 허전한 누군가의 가슴 불붙일 수 있는 날 기다린다. 결국 나의 더 잘난 기둥서방 그를 위해 날마다 지치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가?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수박 겉핥기에서 그 뿌리의 속살과 실핏줄을 찾아가는 길

                           정 숙[처용아내]
1. 신기루를 찾아서

 한갓 신기루일 뿐인 시를 만나러 가는 길엔 이정표가 참 많기도 합니다. 처음 철없을 때는 용감하게 돈키호테처럼 칼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나를 따르라’ 호기 부리며 첫눈에 보인 길에서 넋두리 늘어놓으며 묘사의 말 등에 사정없이 채찍질을 했지요. 갇힌 생활 속에서 그런 상상력은 막힌 속 후련하게 틔워주었습니다. 그 용기로 태어난 것이 1996년 상재된 첫 시집 “신처용가”입니다.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 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자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꺾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깊도록 기잡 끼고 노다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웬 생트집? -처용아내 1 전문]

 지금부터 12년 전인데 뜻밖에도 처용아내의 넋두리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영남지방 문학의 특색인 내방가사를 닮아서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많은 박수를 받아 그 길이 정답이라며 만족할 뻔 했습니다. 

 전국 많은 행사에서 시극공연을 올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시 쓰기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겁도 없이 대구문학 아카데미에서 시를 가르치면서 무조건 말의 칼만 휘두를 것이 아니라 인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잘 길들여 요리를 맛깔스레 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려면 날카로운 관찰력과 시안詩眼이 사유가 깊어야한다고 현대시 이론이 속삭이더군요. 

2. 점점 묘사의 늪에 빠져들다 

 두 번 째 시집“위기의 꽃”에서는 시 한편마다 향가나 고려가요 한 구절과 접목시켜 보기도 했습니다.


옥황상제님 처용 색시캉 거시기 황감했던지/간밤에 비 흠뻑 내맀어예/
바람도 없이 봄비가 촉촉히, 아주 촉촉하게/가뭄에 쩍쩍 갈라졌던 논빼미 새로/
논고디가 타는 갈증을 적시디예/3년 과수 꼬장주도 젖어 신나게 쌕쌕카는데/
오래뜰 쓰는 싸리비의 휘파람 소리 흥겨버/추녀 끝 밀고 옆의 옆 홀아버니 댁 /
흙담 밑 홀아비좆을 사알살 간지리데예/ 봄비!/니, 니, 그 칼래?  /

-------정 둔 오날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만뎐춘]
__[봄비 전문]

*오래뜰; 대문앞의 뜰
*홀아비좆; 쟁기의 한마루의 위 멍엣줄이 닿는 곳에 가로 꿰어
           아래덧방을 누르는 작은 나무


 시라는 괴물의 몸을 파헤쳐가면서 묘사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또 들더군요. 묘사는 화려한 옷이라고 할까요? 그 옷 속에 진실된 깨달음의 알맹이가 들어 있어야 그 옷이 빛이 난다는 사실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집을 낸다는 것이 그래서 필요한 가 봅니다.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에 시를 쓴다는 험난한 여정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해 보는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사설이 너무 길었던 것입니다. 

3. 짧은 한 마디로 큰 뜻을 압축할 수는 없을까? 

 모든 사물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인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인 것입니다. 모든 사물이 말없이 법문을 하고 있는데 단지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장님이란 것입니다. 세 번째 시집[불의 눈빛]에 실린 두부라는 시, 저로서는 깨달음의 기쁨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내 업장도/ 자꾸 갈고 익히면 저리 *나스르르해지는가

얼마나 속이 더 문드러져야/ 누구에게나 *숫접은

살보시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가

*부드러워지다 *순박하고 진실한

-[‘두부’ 전문]

시인은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이라 생각한 적 있는데 그만큼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말을 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펄펄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신 난다’‘즐겁다’란 표현만하다가 어느 날  
 ‘저 눈발은 왜 강물로 뛰어 드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모두 올라가려고 그렇게 하늘 쳐다보며 간구하는데 눈송이는 이미 무엇을 깨달았기에 뛰어내리는 것일까요? 그건 시인마다 그 답이 다르겠지요. 돌부처가 천년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깨달음의 길이 힘든 길이라는 걸 표현해 본 것입니다. 

 세계적인 누드 챌리스트 나탈리 망세는 그야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오직 첼로 악기로 앞을 가린 채 연주하는 여자입니다. 허벅지 사이에서 연주당하는 악기가 마치 요즘 여성에게 꼼짝없이 잡혀 또는 잡히기를 좋아해서 연상의 여인을 찾는 세태로 보였습니다.  ‘21세기 유비쿼터스* 남자’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남성상이기도 합니다. 우주라는 소리 행간에 못 하나 박으려 발등의 실핏줄 터지도록 떨고 서 있는 그 남자 ‘콘트라베이스’도 일찍 실직 당하거나 당하지 않기 위해 밤낮 떨어야 하는 고단한 현대 남성을 보여주려 노력한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남녀평등으로 사회적 지위가 강해진 만큼 여성의 고단함도 배가한 것입니다. 안방에서 가정만 지키면 되었는데 이젠 생계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심해진 것이기에 에스컬레이트 뒤 살기 위해 수많은 바퀴를 굴리고 있는 여성 숙명의 모습을 바라본 것입니다.

노를 멈추면 당장 밥그릇이 고픈
나룻배, 
21세기 바람닻줄에 멱살 잡힌 저 여자

--[‘에스컬레이터를 노래함’ 전문]

4. 자연 속에서 법문을 듣다

 모든 사물의 근원을 찾다가 보니 불교적인 깨달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예로 고드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다리를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높음도 낮음도 다 하나로 평등하기에 그 틈을 이어 주려 자신의 욕망을 녹이고 있는 연꽃길 즉 깨달음의 길을 찾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처마 끝 고드름이 하늘과 험한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길 발원하며,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해 산목숨의 죄 값인 三毒독 三捉착의 결정체를 모두 녹여 내린다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의 지혜를 구하고 닦는 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는 일
--[연꽃길 찾아서 전문]
 이상으로 자신의 시에 대한 해설 아니면 변명인지 쓰다 보니 아직 시의 발목을 잡지 못하고 건방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더 말을 아끼면서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지장수 한 모금을 위해 더 시건방지게 달려갈 것입니다. [2008,녹야원]





[특집] 시인을 만나다 - 정숙 시인 편

제목 “흰 소의 울음을 찾아“

‘이 가슴속엔예 아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팔할지 지도 몰라예...
그래도 지는 살랑 살랑 부는 봄바람 이라 예....‘
그 열정과 넘치는 끼를 온몸으로 때론 봄바람처럼 시로 풀어내시는 풍류인 정숙시인님!
“징이 울리는 ‘징한 소리’는 징채가 아니라 징인 나한테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자리를 일어설 때 까지 내담 객들에게 행복을 대바구니 철철 넘치게 담아주고 처용의 아내가 역병을 끌어안고 바람을 피웠듯 자신의 운명에 간 크게 다가왔던 시를 안고 질펀하게 바람피운 이야기들, 천년을 오가며 시간여행을 시켜주었던 시인 정숙시인님과 함께 시간(詩干)열차를 타고 길을 나서보기로 한다. 

서둘러 여름비가 ‘도솔천’을 적시는데 밤불을 훤히 밝힌 주막엔 술상들이 오가는 사이 
초대시인 정숙 시인님이 대구의 정하해, 장혜승 두 시인님과 함께 도솔천으로 들어오셨다. 
첫 대면 상견례라 하지만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흰 베레모에 중년의 멋진 여성시인이었다. 미리 글 소식으로 나눈 마음들이라 함께 참석한 분들 모두가 반갑게 건배주를 돌리며 시작된 정숙시인님과의 만남은 천년고도 경주의 도솔마을이라는 토속음식점에서다.

♦ 선생님께서는 경북 지역에서 태어나셨고, 현재까지 이 지역을 떠나지 않으신 채 활동하고 계신 줄 압니다. 또한, 경북대학 국문학과 출신이신 데다가 직장까지 여기 경주의 월성중학교에서 재직하셨던 경험도 계신데 이러한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살아오신 환경에 대해 어떤 감회가 남아계신지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국문학을 특별히 공부 해야겠다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저는 경산군 자인면에서 과수원집 셋째 딸로 자랐어요. 그 당시 과수원 속 언덕 길, 원두막, 찔레, 장미, 냇물 등 집 주변 환경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특히 내 기억으로 아버지께서는 참 부지런하셨던 것 같아요. 화단이며 과수원들 아버지 손에는 무엇이든 만지면  멋있게 되었던 같았어요. 여름이면 포플러 잎들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들, 키 큰 귀리들, 코스모스, 홍수지면 냇물에서 하는 피리 낚시며, 겨울엔 사냥총을 들고 개를 몰고 나갔던 사냥의 기억, 저녁 무렵 노을 속에 소 풀 뜯어먹는 소리와 새벽길 들국화 꽃잎에 앉았던 이슬들... 이 모든 사실들을 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지요.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서 노래 밖에 부를 수 없었어요. 돼지 뭐하는 소리로 말이죠. 외딴 곳이니까 마음껏 부르기도 했지요. 그런 습관이 남았는지 시집살이를 하는 중에도 슬프거나 기쁘거나 부엌에서 장독간에서 그냥 흥얼거리는 소프라노를 한 곳씩 뽑아내기도 했지요. 
실은 그런 것보다 아마 아버지께서 절 은근히 글 쓰는 사람 쪽으로 부담을 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인 출신 소설가 전숙희 얘길 하시면서 아마도 제가 구석에 숨은 『사상계』나 신문, 책, 있는 대로 끄집어내어 읽는 걸 보고 당신께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를 일이죠. 아무튼 말없이 어딜 가도 전 읽기만 했으니까요. 친구도 없이 자라면서, 마거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은 다음, 평생 소설 딱 한 권만 쓰자고 의지를 굳히지도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기대가 부담스러워 오히려 글을 더 쓰지 않았어요. 
 대학을 전공하고도 묻혀두었던 문학의 꿈은 확실히 배우지 않고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집살이 15년 뒤에서야 대구문학 아카데미에서 박주일 시인을 만나면서 시(詩)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시고 경주에서 월성중학교에 제직하시다가 그만두셨는데 어떤 이유라도 있습니까?

♢요즘 같으면 참 좋은 직장을 누가 그만 두겠습니까만 그 당시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추세였지요. 특히 제 남편은 사대부 유교집안에 삼대독자 아버지에 6남매의 장남이라 더욱 그래야 했지요.

♦선생님은 그런 삼십년 동안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훌륭한 가정을 꾸미시고 수 세월을 묵혀 두었던 문학의 꿈을 내안에서 끄집어내고 귀한 시들을 만나 발표하게 되었는지요? 

♢삼대독자 시아버지에 6남매의 맏며느리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지요. 거기다가 시할머니 층층시부모까지 뫼셨다고 생각하면 참 내 자신도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가장 힘 드는 일이었듯이 저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도 한 때는 화병이 났을 정도로 힘 드는 시기가 있었지요. 그러나 그냥 웃었지요. 제 성격으로 그걸 끌어안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 귀머거리삼년 벙어리삼년을 실천하는 것이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에 대한 책임이라고 알고 뭐든지 수용하고 사랑하고 억지라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그 파장이 참 컸던 것 같아요. 내가 행복해지니 온 집안이 살아나고 결국 내가 건강하게 잘 사는 비결이었지요. 내 시에 등장하는 처용 아내가 화병과 연애하는 묘사가 잠재한 나의 내성에서 나온 건지도 모르지요. 물론 다른 의도도 있지만요. 그런 가운데 아이들도 크고 내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내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나를 그냥두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어릴 때 꿈꿔왔던 소설을 써야겠다고 찾아간 것이 대구문학 아카데미고 소설을 쓰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우연히 신경림  시인의 ‘갈대‘라는 시를 읽고 이리 짧은 시 한편이 소설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의 꿈을 바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셨지만 뒤늦게 시작한 시공부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더욱이 가정주부로서 시 작업 하시면서 첫 시집<신처용가>을 내기까지의 어떤 일들이 있었고 시의 세계는 어떻게 구축하셨는지요?

♢그래요.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지요.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하지만 다시 뒤늦게 시작 한 시 공부라 많은 어려움과 서러움도 있었어요. 어렵게 등단이라는 것을 해보니 더욱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썼지요. 그러다가 시와시학사 주간이신 김재홍 교수님께서 조그만 문방구가 아닌 백화 점 같은 시집을 내려면 연작시를 써야 한다고 깨우쳐 주셨지요. 그러다 보니 한 가지를 깊이,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 습성이 생겼어요.
먼저 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은 일이며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짧은 한 생애,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 이런 화두들이 나를 재창조하고 새롭게 정의내리면서  시인은 모든 창조주가 될 수 있다는 자긍심이 마음에 신풍을 넣었지요.
처음에는 내 안에 어떤 울분이 ‘때밀이의 일기’같은 정치적 연작시를 많이 쓰고 있었는데 어느 잡지에 발표된 시에 처용의 아내를 화냥년이라는 표현을 해놓은 것을 보면서 같은 여자로써 처용의 아내를 내가 살려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처용가>를 쓰기 시작했어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해서 처용아내의 넋두리로 처용가를 패러디하게 되었어요. 기존사고관념에 대한 반발성이나 자신의 눈으로 정의 내려 보려는 자세 같은 것이 끊임없이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려나갔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 처용의 자료를 찾고 서원섭교수의 처용가 해석이 기억에 남았는데 그 처용과 아내의 연관성을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내가 처용의 아내가 되어 요즘 세태를 풍자해 보고자 했던 것이지요.
처용이 열병에 걸려 누워있는 아내를 보면서 역신과 바람피우는 것으로 보는 대단한 시인이라는 생각에 그것이 나의 역상(易想)을 낳게 했고 당시 유행 했던 간 큰 남자 시리즈나 경상도 사람들의 특유의 삶을 풍자하면서 90년대 개구리 소녀. 휴거, 등 우리시대 삶을 내 시 속에다 응축시켰지요.
특히 저의 아버지의 고향이 월성군인데 처용이 태어난 곳과 가깝기도 하지요. 어릴 때 기억으로 고모부님이 두 분 계셨는데 정말 한량이었어요. 아마 그분들의 억양이나 모습들이 내 시에 많은 영향도 주었던 것 같아요.
그 동안 시집살이 하면서 내 안에 응축 되었던 답답한 가슴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 속이 후련했어요. 

♦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은 신이지만 상당히 인격을 갖추고 있는 남성우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에는 여성을 옹호하는 남녀평등의 시각에서 시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신처용가>가 그런 의도에서 시작된 시집들이라면 좀더 구체적인 의도성의 설명을 해 주시고 선생님께서는 신라시대 성(性)에 대한 가치관은 어떻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신처용가>에 무대는 신라 처용의 헌강왕 시절과 90년대 전후를 배경을 오가며 쓴 시들인데 당시 삼국통일이 끝나고 태평성대시절이라 감포 거리(월궁카바레)에 풍악이 넘치면서 여자들 허리춤에서 놀아나며 남자들이 칼을 내려놓은 풍경이 요즘 시대 고개 숙인 남자들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보여 지는 세태가 비슷하게 느껴졌지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칼이 무뎌지면 나라를 침범 당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긴장을 버린 탓에 남성적 권위가 떨어지고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간 큰 남자 시리즈 과정을 작품을 통해 훑어본 거지요. 그리고 시에 악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대부분 성적인 묘사를 이미지화 하고 있어요. 가야금의 12현을 여자의 몸으로 대금의 소리가 갖는 색시함과 아쟁의 소리는 여자의 잔소리로 해금소리는 남자들 바람피우는 내용 등으로 나타냈지요. 
처용아내가 장구 잡이를 찾아가서 춤추는 장면은 바람피우는 장면을 연상하게 되는데 저의생각으로도 당시의 신라시대는 성이 자유로웠을 것이라 봅니다. 
그 당시 처용아내는 바람피웠을 가능성도 많지만 저로선 현대적인 처용 아내를 말하는 겁니다. 바람을 피웠더라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걸 따져본 거지요.
이 시들을 쓰는 동안에 정말 신이 났어요.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내게로 다가왔거든요. 

♦<신처용가>가 한국낭송문학회 창작시극 <신처용가>(부제; ‘봄날은 간다’)를 공연했는데 시극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언젠가 대구문협회장 문무학 선생의 모친 상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시 이병훈 회장은 시극 극본을 찾고 계시던 중이었고, 나도 언제라도 시극을 한 번 근사하게 공연해 보고 싶은 꿈이 있던 참이었습니다. 서로 딱 맞아 떨어진 거지요. 25분간의 창작시극무대였는데 정말 화려하게 연출되었어요. 이병훈 회장님이 사비를 들여 공연한 셈이지요. 아주 반응도 좋았고 연극 무대에까지 올리고 싶어 할 정도였지요. 제 시들이 거의 연작시 라 시극 극본이 된 것이 많습니다.

♦ 선생님의 시를 보면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를 많이 구사하고 있습니다. 사투리를 구사하는 시인들이 많지만 특히 평안도 방언을 많이 썼던 백석 시인의 영향이 보이지 않나 저대론 생각되는데요. 선생님의 시 ‘봄바람을 위한 소네트’에서는 ‘두레밥상’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백석 시의 ‘비’에서 보면 ‘누가 아카시아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디선가 물비린내가 난다.’라는 이와 유사한 표현을 볼 수 있거든요?

♢ 작품을 쓸 때만해도 저는 백석시인에 대해서 알지 못한 때라 백석시를 보지 못했어요. ‘두레밥상’은, ‘두레상’이라고 경상도에서는 많이 쓰는 방언이지요. 그래서 사용했지요. 시의 배경이 신라 시대 지역적으로 경주이기에 지역 방언을 사용했고 사투리는 당시 경주가 나라의 중심인 만큼 표준어라 생각하며 그 당시 삶의 현장성을 더욱 실감나게 나타내려고 의도 했지요. 내 입장엔 소설 같은 연작시를 쓰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영남지방에 내방가사의 맥을 이었다고 가사문학을 연구하시는 김주곤 교수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때 쓰여 진 방언들이 김재홍 평론가님의 시어사전에 많이 들어갔지요. 오탁번 선생님이 ‘휴화산이라예’에 쓰인 ‘기생‘이라는 단어를 보시고 기생은 조선시대에 등장한 단어라며 그 당시는 기생이 아니라 ’기집’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신적도 있을 만큼 방언을 시로 승화시킨 획기적 사건이었지요.
내가 어느 장소에서 시낭송을 했는데 송수권 시인님이 ‘전라도 사투리만 창이 되는 줄 알았는데 경상도 사투리도 창이 되네.’ 하시던 기억도 나네요.

♦ 근래 생물학적인 성(性)으로 인한 모든 차별을 부정하며 남녀평등을 지지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신념에 근거해서 일체의 불평등하게 부여된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여성운동을 흔히 ‘페미니즘’에 포함시키고들 있는 가 봅니다. 이같이 여성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운동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페미니즘’이 1890년대부터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나 관점, 세계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성운동적인 페미니즘의 사고가치를 선생님의 시 속에도 적지 않게 의도하고 있다고도 느껴지는데,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신처용가>에는 등장하는 남성은 명분만 있는 칼이었다면 후반부는 칼을 버린 무능한 남성의 상징으로, 그리고 <향피리>는 남자들의 삶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고 보여 지는데 이런 남성의 세계를 두개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경계인으로서의 느낌은 어떠했고 어떤 의도성을 기자고 쓰셨는지요? 

♢ 저는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릅니다만 유교적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성의 균형을 누구 보다 민감하게 생각하는데 성 차별성을 없애고 인간성 회복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썼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남성이 아니라서 시각의 한계성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시대에 걸 맞는 환경에서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기(氣)가 드세어지고 남자가 칼을 버린 뒤 여성이 ‘손톱칼’을 갈고 있다는 풍자와 해학이지요. 저는 가정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어요. 물론 여성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 연관성이 있지요. 

♦선생님은 신작 시리즈로 ‘향피리’를 연작하셨는데 ‘향피리’에 대한 특별한 창작 동기라도 있습니까?  이어『위기의 꽃』이나 『불의 눈빛』등 시집을 내셨는데, 첫 시집과 연관성을 가지고 계시는지 아니면 각각의 의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요?

 ♢<신처용가>시집 이후에 갑자기 많이 알려졌지만 인기에 연연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향피리’는 2000년 『현대시학』에 ‘신작 소시집’편으로 발표되기도 했는데 <신처용가>는 좀 거친 말투로 꾸짖는 풍이었다면 ‘향피리’는 IMF로 실추된 남성의 권위를 부드럽게 속삭이듯 어루만지는 내용입니다. 
 그 후 좀더 심도 있는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졌어요. 『위기의 꽃』은 현대시적 형식에 향가나 고려가요, 가사문학을 접목시켜 국문학과 출신으로서의 제 특성을 살려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불의 눈빛』은 ‘깨달음’, ‘참여성’, ‘묘사 위주’, ‘나의 가정사’ 등을 주제를 다루고 잇는데 여성 평등이란 명목이 사실 여성에겐 고단한 삶이지요. 가정생활을 돌보는 것은 여자의 몫이고 또한 사회적 지위나 차별을 받으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이중적 잣대가 아직 여성 권리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런 여성의 여러 모습을 『불의 눈빛』에서 다루었습니다. 특히 『불의 눈빛』은 시 공부 하시는 분들을 위해 묘사의 시 또는 깨달음의 시 등등 시의 여러 가지 모습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딱 한 분이 그걸 알아보고 말해 주더군요. 시인이고 소설가로 갓 등단한 정한희라는 분인데 <불의 눈빛>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교본이 되는 시집이라고요. 정말 반가웠어요.


♦ 시집 『위기의 꽃』에서는 고려가요의 후렴구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의 내용과 후렴구와 어떠한 연관성은 있는지요. 실제로 고려가요 후렴구가 가진 형식적 기능만 가지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 ‘봄밤’의 경우는 남녀상열지사라는 시집 전체의 주제와 연관해볼 때 그러한 의미가 잘 드러나는 시이지만, 끝부분에 있는 ‘정과정곡’의 한 부분은 ‘님이 나를 하마 니즈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드르샤 괴오셔서’ 같은 부분의 의미를 지닌 시행을 그래도 인용한 것은 어떤 의도인지 궁금합니다. 

♢ ‘하마 니즈시니잇가’란 뜻이 ‘벌써 잊었느냐’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봄밤’, 그 자체가 벌써 덧없게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아닐 런지요. 그런 의미에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용적으로 ‘봄밤’이란 작품과 인용한 옛 싯구절 사이에는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여, 고전문학에 대한 관심, 특히 잃어버린 옛 단어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이 저에겐 있는데요, 탈고할 때, 같은 뜻을 지닌 말이라고 할지라도, 사장된 옛 우리말 중에서 적절한 것이 없을까 늘 찾곤 합니다.

           
♦ 덧붙여, 선생님의 요즘 시 쓰기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까?

♢ 지금은 ‘바람다비’ ‘아름다운 법문’ ‘성냥불’ 시리즈로 좀 더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내면을 몇 겹 벗겨보고 뿌리를 찾아 그 원형과 본질을 찾아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려 합니다. 좀 더 짧은 시로 (요즘 수필 같은 시에 대한 반발로) 긴장미와 함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벚꽃이 피었을 때 아름답다. 라고 경탄만 하다가 어느 날 그 꽃송이들이 뿌리의 땀방울로 보이기 시작했지요. 고드름이 하늘과 땅의 거리를 좁혀주는 다리 역할을 하려고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보이는 겁니다.  

♦요즘 시들이 묘사로만 머물러 시가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시는 묘사에만 끝이 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는 방법일 수는 있으나 끝내는 어떤 공통점을 찾아 공감을 줄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묘사를 잘하려면 직관력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사물에 대한 추억이나 경험의 재생을 위한 재생력상상과  이미지 묘사 즉 비유적 표현을 찾아내는 생산적 상상인 연상 상상력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자기만의 새로운 체계를 갖춘 창조적 상상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기도 합니다. 2000년 대구 모 신문에  당선작인 ’의자‘라는 시에서 보면 의자는 흉측한 짐승이다‘라는 묘사가 나옵니다. 단순한 의자를 생존의 관계를 위해 자리다툼 하는 짐승으로 본 시각이 신선한 상상력이라 볼 수 있겠지요. 어떻게 보면 시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면서 사고를 많이 해야 된다고 봅니다.
학창시절부터 철학을 좋아했고 소설을 쓰려고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시 쓰는데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 쓰는 일은 자기 감각을 키우는 훈련이 많이 필요한데 다양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건방진 생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깨닫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도자의 자세가 필요하지요.
요즘 발표되는 어떤 시들은 상상력은 기발한데 무언가 메시지가 없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시들이 있어 안타깝지요.   

♦ 선생님께서는 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하신 후, 현재 대구문학아카데미 시 창작반 현대시 강의와 특히 요즘은 인터넷 ‘포엠토피아’에서 ‘포엠스쿨 정숙 반’ 운영도 하고 계시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인터넷 보급으로 인한 시의 확산이 엿보이고, 이런 움직임이 새로운 문학의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인터넷을 통한 문학의 확산이 시의 수준을 낮춘다는 견해도 있고 오히려 다양한 문학 소비가 문학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도 하는데, 거기에 따른 장단점이 있을 텐데 선생님은 어떤 견해를 가지시는지요? 

♢ 일부 인터넷에서 무작정 시인을 늘리려고 사업을 하는 단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정말 시 한편 옳게 쓰고 싶어 밤잠을 설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등불이 될 수 있다면 길잡이가 될 수 있어 즐겁기도 합니다.

♦ 시를 공부하려고 하는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시고, 특히 선생님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 여성시인들을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까?

♢ 시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는 자세가 되어야한다고 봅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야지 정말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 있는 시 한편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늘 “이를 악물어라!”고 얘기합니다. 사실 여성이 자신의 작품을 옳게 평가받기도 어려운 현실이지요. 온갖 구설수가 나돌기 십상입니다. 조금 이름이 나면 온갖 루머가 떠돌기도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작품이 옳지 않으면 아무 것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만의 색깔 있는 시를 찾으려 온갖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도 아직 초보자란 생각으로 늘 노력하는 자세로 시를 쓸 것입니다.영원히 남을 시 한 편을 위해

♦ 미래사회는 정보화·다원화·국제화·인간화되어가는 사회라고 합니다. 특히 'dream society', 즉 인간의 꿈과 감성적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미래사회의 선진국의 척도라 합니다. 이러한 사회에 가장 요청되는 것이 순수 문학적 감성과 예술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생님 같은 인간 근본의 내면과 순수성을 건져내어 사람들의 감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분들이 미래에 가장 대접받고 존경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문학을 선생님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하시고 또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때로 독자를 위한 시를 쓸 것인지, 아니면 더 함축된 깊이 있는 시를 쓸 것인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시는 일반 독자를 위해 더 쉽게 쓰려고 노력하기도 하는데 시안(詩眼), 직관력, 상상력, 묘사력 훈련을 거듭하여 자기 몸속에, 또 마음속에 ‘징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겠지요. 한번은 징 전시회에서 참여했는데 그 징을 하나 집에 사다놓고 밤새 그 징을 두르기며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만져보면서 느꼈던 것이  ‘징’은 자신이기도 하고, 또 ‘바람’이랄 수도 있는 ‘상대방의 말’이 또한 ‘징채’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을 속에서 잘 삭여 떨림이 큰, 울림이 있는 ‘징소리’를 한 번 울려야겠지요. 그러기 위해 계속 쓰고 생각하고 따져 보고 죽음의 소리까지 들을 것입니다. 
저는 보통 일주일에 한 두 편의 시를 쓰려고 애씁니다.
시인은 매일 시 쓰는 감각을 갈아야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무뎌지지 않는다고 봐요. 풀을 베려면 숫돌에 낫을 갈 듯이 말이지요.
다작을 하다보니 아직 발표하지 않은 연작시가 많이 밀려있어요. 
이것저것 정리를 여러분들에게 또 다른 정숙의 시세계로 초대하는 시집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리고 뒤늦게 멋진 로맨스를 만들어 볼까도 생각중인데...(웃음)

♦ 그래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열어주신 선생님의 시세계를 성심껏 정리해서 가을호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내객들 모두가 멋진 로맨스를 만들어 보기로 하고 선생님의 시간(時干)열차의 여행을 마치고 아쉬운 자리를 일어서는데
문밖 처마 밑에서 깨금발 딛고 내내 기웃거리며 우리들 이야기를 듣던 낙숫물도 돌아갔는지 담장에 기댄 능소화가 불그레 웃으며 작별인사를 대신 한다.
반가운 인연에 다시 만나자며 손 한 번씩 꼭꼭 잡으며 어여들 가라며 떠나는 모습은 어머니 모습처럼 아쉬웠다.[주변인의 시 대담]
 



















윤관영의 어쩌다, 내가 예쁜

-----정 숙 [시인]


 청국장 맛 같은 어눌한 시어를 찾아 쓰면서도 그의 묘사력은 세련되어 있으며 시안이 깊다. 시인은 상상력이나 직관력 기르는데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는 첫 시집이지만 이미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것은 자신의 시어를 구수하게 때론 날카롭게 벼리고 발효시키기 위해 많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싹은 들어간 데서/ 몸의 약한 고리에서 터져나온다/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솟는 줄기/ 어떻게 흔적도 없이 구멍에서 솟는가/[‘감자’ 부분] 냇물 소리도 고요에 눌려 납작하다[‘시월의 고요’ 부분] 물고기 배를 때린 바람의 등이 보인다[‘풍경을 보면’ 부분]
 또한 화려한 묘사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유가 깊어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그의 눈길이 머무는 것은 거의 무심히 흘리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다. 고구마, 감자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픔을 감싸 안을 줄 아는 정겨움이 있다. 






2010년 가을 문예 시상식 및 김미숙, 김추인 시인의 출판기념식 

 정 숙 

 그 무덥던 여름 어느새 다 지나간 것인가? 가을 문예란 말 중에서도 가을이란 단어가 가슴 밑바닥 서늘하게 하면서 구월이 가는 소리에 새삼 귀 기울이게 한다. 사십대 신인상으로 등단하던 그 시절, 세상을 품에 안은 듯 두근거리던 떨림을 돌이켜보는데 마산 mbc 방송국 피디 김일태 시인이 혜화동 로터리에서 부른다. 반갑다. 아직도 시골 소년 같은 웃음으로 시학 계간지 20주년 출판 기념행사 장소를 ‘문학의 집’으로 정하기 위해 일찍 올라왔다고 한다. 현대시 박물관 이층에서 몇 분이 모여 20주년기념행사를 어떻게 의미 있게 치를 것인가와 그 날 행사와 시학 동인회 출판기념회를 겸하자는 의논을 하고 내려오니 벌써 김후란 시인이 도착하셔서 전시품을 돌아보고 계셨다. 뵐 때마다 참 단정하시다는 느낌인데 그 연세에도 거의 샤넬라인의 치마를 입으시고 자세가 아주 바르고 꼿꼿하시다. 
“선생님 항상 날씬하시고 건강해 보이시는데 운동은 무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많이 걷고 움직이지요. 체중이야 옛날엔 이보다 정말 가벼웠는데...” 
미소 지으시는 모습이 아직도 소녀의 수줍음을 간직하고 계신다. 고 박주일 시인이 자주 김후란 시인 인물도 시도 대단하다고 하시던 말씀 떠올리며 선생님 연세를 여쭈니 살짝 피하신다. 주책, 주책 또 실례를 범하고 만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 사이 김재홍 관장님을 위시하여 많은 분들이 들어오신다. 행사 때마다 거의 빠짐없으시던 김남조 선생님과 유안진 신달자 선생님이 요즘 참석하시지 않아 섭섭하다. 시집살이 핑계 삼아 필자는 늘 뒷전에서 부러워하며 참석하지도 못하던 시절 정말 열심히 그 먼 전라도에서 오르내리던 시학 동인 복효근 시인, 시와 시학 동인은 아니지만 시학사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친 이화은 시인 등 몇 분은 이미 유명한 시인이 되어 그런지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립다는 감회에 젖는데 김재홍 교수님이 내빈 소개를 시작 하신다. 

 이윽고 “‘시와 법’은 지극히 낯선 주제이면서도, 시가 어떤 한 사물을 향해 명쾌하고 명료한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본질을 향해 정제된 언어로 깊이 파고든다는 것과  어떤 죄된 행위를 향해 엄밀하고 간결하고 정확한 법의 용어로 판단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 둘 사이에는 방법론적인 유사성이 있다.” 는 지론을 펴시는 김진환 시인 변호사님의 인사 말씀에 이어 예쁜 이 제인 시인의 느린듯하면서 또박또박한 말솜씨로 행사가 진행된다. 
 “제 1부 순서로는 이 가을 새로운 시인으로 탄생하신 여자영, 성은경 두 시인의 신인상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집을 출간하신 김추인 시인의‘프렌치키스의 암호’와 ‘김미숙 시인의 ’‘저승, 톨게이트’ 출판기념식이 있겠습니다. ” 

1.가을 문예 신인상 시상식 정경 

 이가림 시인의 심사평이 있었다. 
 “성은경의 작품「확」은 만만치 않다. 오래 시를 붙들고 거친 산을 넘어온 듯한 내성이 붙어 진구렁을 걸어도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을 수 있는 척추의 힘을 시에 온전히 쏟아 부었다. 
  

                  확, 시선을 끌어당겼어 
                  쉬운 선택이 생의 발목을 잡았지 
                  몇 번의 외출이 발가락에 물의 집을 지었어 
                  세상 모든 길들이 욱신거리기 시작했지 
  

                                                                        ㅡ「확」부분 

  

와 같은 축축하면서도 건조한 시상을 토해 놓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은경은 언어 구사가 자연스럽고 힘차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그 힘이 앞으로 시인의 힘겨운 길을 갈 수 있는 의지가 되리라 본다. 「새발뜨기 」「콜라 캔」과 같은 작품들도 같은 느낌이다. 
  <시와시학> 가족이 되는 두 신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결코 쉽지 않는 길을 그러나 기쁘고 성실하게 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 가고 성은경의 당선 시 [확], [콜라 캔] 축하 낭독을 신진순 님과 필자가 하게 되었다. 마산 출신인 시인은 작품에서 벌써 경상도 특유의 화통하면서도 은근한 재미있으면서도 슬픈, 신선하면서도 치열한 묘사력 그리고 맛깔스런 전개력과 직관력 모두 만만하지 않은 실력을 갖춘 든든한 시학 시인 회 후배를 맞이할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그 뒤 김재홍 평론가님의 축하패 전달과 성은경의 온 몸으로 아픔까지 열심히 시를 쓰겠다는 당선소감을 듣고 

 다음은 여자영 당선 시인에 대한 이가림 시인의 심사평이다. 
 “여자영의 「수평선에 기대어 」를 보았다, 별 필요 없이 감정과 수다를 풀어 놓는 결함을 벗어나서 깔끔하게 그러나 조용히 주제의 핵심을 따라간 자세가 돋보인다. 요즘 젊게 쓰겠다고 줄줄이 없어도 좋을 말들을 쏟아 놓는 것 보다 휠씬 전달에 있어서 효과가 있어 보인다. 여자영은 사물에 다가가는 접근성이 뛰어나다.” 

                      

                          아득히 
                          수평선으로 물러나 앉아 
                          실눈 뜨고 
                          평등의 일획을 긋고 있는 
                          저, 수평선 그대 

  
                                              ㅡ「수평선에 기대어 」부분 

“ 마지막 연의 파도 한 줌 베어 물고 꿈으로 사라져 버리는 허상과 허무적 통찰이 실눈으로 평등의 일획을 긋는 절연한 구절을 만들어 낸다. 실눈 하나가 지상의 평등을 긋는 인간의 무한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앞으로 시라는 영원한 미완성의 세계에서 쉽게 주저앉지 않고 꿋꿋하게 걸을 수 있음을 믿어 「소의 눈을 보다 」「은행나무 」와 같은 시들을 주저 없이 시단에 내어 놓는다” 
 여자영 시인은 신인답지 않게 오래 숙달된 직관력과 사고력으로 사물을 관조하면서 쏟아지는 말들을 행간에 숨길 줄 아는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있어 놀라울 정도였다. 그 동안 얼마나 가슴 졸이며 견디며 자신의 묘사력에 채찍질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최부기 님과 만화가 전하리 님의 축하 낭독이 있은 뒤 김후란 시인이 상패 전달을 하셨다. 
여자영시인은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시와 시학 시지를 접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때늦은 출발이지만 서둘지 않고 조심조심 걷겠습니다.” 는 당선소감을 끝내니 딸 아들 남편까지 꽃다발을 들고 축하하신다. 뒤 이어 권오만 평론가님이 
 “20년 긴 세월 시와 시학을 이끌어 오신 김재홍 교수님께 고마움을 표하면서 여자영 시인의 등단을 축하합니다.” 

 17년 전 필자가 등단했을 때 시상식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당시 대구 동아쇼핑에 전국 유명한 시인들이 대부분 대구로 내려오셔서 시상식을 해주셨다. 3시간 정도 행사를 진행한 뒤 팔공산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도 했으니 참 감격스런 그 날이었다. 지금은 상패와 금반지와 상금이 얼마 전달되지만 그 땐 유명한 시인의 축하 친필 액자와 소정의 상금이 있었다. 지금 고인이 되신 박재삼 시인의 친필액자는 금반지 보다 더 귀한 것 같아 현대시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2.시집 출판 기념회 정경 

 김추인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프렌치키스의 암호’ 출판 기념회 순서가 돌아오자 김재홍 교수님께서 빙그시 웃으시며 프렌치키스가 무슨 뜻이냐며 짓궂은 질문을 하셔서 실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잠시 긴장을 푼 뒤 멋진 모자를 쓴 류영환 시인과 하얀 안경테의 멋쟁이 노현숙 시인의 축하 낭독이 있었다. 시학시인회 회장님이신 윤범모 시인의 축하패 전달과 김추인 시인의 소감이 있었다. “내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나를 쓴다” 고 말한 괴테의 말을 인용하면서 “전 언제 쯤 제 시가 언어를 초월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늘 조용한 그녀와 종종 행사에서 만나면서도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 한 번 한 적 없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한데 다음 상상력 풍부한 김추인 시인의 시처럼 우린 서로 바람둥이 그 나쁜 놈, 시와 사귀고 물어뜯고 연애하느라 그럴 틈이 없었던 건 아닐까? 

매양 그렇다 
어떻게 붙들어 둘 수가 있던가 
나쁜 놈! 
쓸쓸한 방백이 전갈의 독보다 푸르다 
-[나의 사내여, 시여] 부분 


바로 김미숙 시인의 4번째 시집 ‘저승, 톨게이트’ 출판 기념회를 이어 나간다. 

 날씬하면서 동안인 이병금 시인과 ‘한 해 두 아이를 출산하고도 몸이 성할지 걱정입니다.’는 조연향 시인의 축하 낭독과 유재영 시인이 축하패 전달하시면서 김 미숙 시인의 

‘올 때는 
내가 울었지만 

갈 때는 
다른 이들이 울어주는 것’ 

-[인생, 전문] 

이란 시를 읽고 많이 놀랐다는 말씀을 하신다. 마지막으로 김미숙 시인의 누군가가 자신을 당당하게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감을 듣는다. 김미숙 시인이 등단하기 전 ‘수국’ 행사에서부터 알아왔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 지금 시인은 물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유치원 운영하는 대단한 파워를 가진 여성이다. 창도 잘하지만 마음이 넉넉하기도 하여 필자가 자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도 하는 잘 익은 여성시인이다. 

3. 닫는 말씀 




푸른 연밭의 그늘 
  
             서정임


한 겨울 연밭
플라스틱 간이 의자처럼 들어앉아
꽃대를 키우던 푸른 연잎들 흔적이 없다
군데군데 남아 나딩굴고 있는 누런 대궁들
잉크 바닥나 내던진 볼펜자루다

연밭둑을 걷는 내가 무겁다
아직도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진흙덩이들
눈앞에 떠오르는 기억의 잔영이 선명하다
나도 언젠가는 저 연밭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으리라
단계 단계 밟아 올라가리라
노트 위에 쓰고 또 쓰던 다짐과 주의해야할 행동지침들,
하지만 오로지
목적을 위한
목적을 향한 맹신은 덫이었다
쉽사리 헤어나올 수 없는 진흙탕 속으로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었다

호주ㅡ머니 속 대출금 상환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만져진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내준 월세보증금과 대학등록금과
친구의 친구까지 불러 모조리 쓸어 넣은 저곳
아, 한동안 내 젊음이 뿌리째 저당잡혀 있던 저 묘지

눈이 내린다
갑자기 들이닥쳤던 그날의 단속처럼 연밭이 온통 하얘진다

[ 시와 소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인상 깊은 작품을 찾느라 잡지들을 뒤적이다가 만난 서정임 시인은 2006 문학 선으로 등단한 아직 시집 한 권 상재하지 않은 시인이다. 그러나 독자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감동을 주는 시인이라는 점에 놀랍고 반가웠다. 겨울 삭막한 연 밭에서 푸른 연 밭의 추억을 볼 수 있는, 얕은 시안에서 삽질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파헤치고 들어가 다단계, 그 여름 꿈을 위해 저당 잡힌 삶의 그늘을 찾아낼 수 있는 끈질긴 상상력과 직관력의 연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못에서 거친 숨소리 하나 없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 현상으로 슬쩍 옮겨가는 체험과 체험의 변용과 비약, 꼬리를 슬쩍 비틀어 삼천포로 빠질 줄 아는 그 노련한 솜씨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겨울 연 밭을 가 본 적 있는가? 한 여름 연꽃 만발했을 때만 나비인양 떼 지어 찾아가지 않았는가 ? 잠시 시인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꽃만 보고 감탄사나 내지르는 난 옳은 시인이 아니지. 참시인은 겨울 찬바람에 까맣게 말라가는 대궁에 매달려 고개 꺾여 진 채 흔들리고 있는 연밥에서 과거 어느 때의 자신의 모습 또는 추위에 떨고 있는 누구인가를 연상하느라 가슴 아파하며 깊이 안타까움에 잠기는 사람일 것이다. 
 또 달리 바라보면 잘 여문 씨앗들을 가득 품고 있어 한 겨울 연못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재생이든 연상이든 깊은 반성과 자비심, 사랑으로 시인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는 길이 있어, 고단한 삶을 연꽃보다 더 귀한 작품으로 가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밤잠 설치고 있을 것인가.  





고래사냥

강상기  



고래는 키우지 마라

청년이라면
고래를 키우지 말고
때려잡아야 한다

고래는
새우 등쳐먹지 않느냐?


[문학청춘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예사롭지 않다. 시의 행간에 많은 수다를 감추는 솜씨, 높은 양반들 은근슬쩍 골탕 먹이는  탈의 표정과 춤사위 아주 능수능란하다. 강상기 시인은 등단 사십년의 시력이 날카로운 통찰력과 풍자 해학의 대선배님이시다. 참여시는 대부분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듯 직정이 난무한다는 무식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라 눈이 번쩍 뜨여지는 즐거움이 있다. 
 다음 시 한편으로 시인의 작품성향과 모습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똥밭에 사는 나를 구더기라고 비웃지 마라 똥밭으로 알고 사는 것은 구더기가 아니다 똥밭을 황금밭으로 알고 사는 구더기들아" - '구더기' 전문
 고래가 어떤 이들에게는 동경과 꿈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강상기 시인에게는 거대한 기관이나 권력의 독재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힘없는 국민들 괴롭히는 그들을 짧은 시 한편으로 통쾌하게 웃어줄 수 있으니 시인은 참 위대하지 않은가? 삶과 현실의 단면을 가슴 밑바닥 예리한 촉각으로 도려낸 압축미와 독자들에게 사색과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하는 신선한 소재와 주제의 선명함에 부러움을 보낸다. 
 시인은 모든 사물을 시시각각 제 마음대로 정의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주란 말 실감할 수 있는 여러 작품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니 평소 해학과 풍자를 즐기는 처용아내의 매서운 눈매에 잡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화무늬 진 필리핀산 수석을 그냥 얻다
이하석

이월 천둥이 흔들어야 속 여는 게 매화라지만,
이건 열대의 끓는 파도가 흔들어 깨운 것
공교롭게도 꽃모양이 거친 제 몸 뚫고 나와 
성근 抽象으로,
꼭, 피어있다.

臘梅 아니라도 雪中에 보는 매화는 어둠 머금은,
전망 밝은 향기를 갖는다고,
나는 돌에 물을 주어서 꽃빛을 키운다.

돌이 오래 걸려 제 몸에 지펴놓은 걸 바닷물이 닦아
드러낸 매화는 돌 기르는 이가 자주 물주고 쓰다듬어 키워야
더욱 밝아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멀리서 온 봄을 제 것으로 기르는 
겨울이 있다.


[ 시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경주 탑곡의 사방불 바위를 본 적 있는가? 남산 한 자락에 세 개의 탑이 있다고 탑곡이란 이름이고 큰 바위 사방에 부처와 무려 43개의 조각이 새겨져 있으니 사방불로 불린다. 별로 가파르지 않은 곳에 거대한 바위가 천년 넘도록 발기한 채 부처와 탑, 승려들을 새겨 온 세상이 불국토 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딱하기도 하면서 그 고집스런 집념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력 근 사십년이 넘는 이하석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뭔 뚱딴지같은 소릴하고 있는지 투덜거리며 다시 읽고 또 읽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무슨 인연인지 이하석 시인은 돌과 사랑에 빠진 시인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뼈만 남은 돌 한 개는 찾고 마는 식성인 그가 그 말없는 돌이 밀어 올린 매화 한 송이에서 향기까지 피워내는 온기를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사 현직에서 물러난 그는 매우 춥고 쓸쓸한 자화상을 보며 봄을 기다리느라 공연히 수석에게 주문을 걸고 있는 건가. 아님 느긋한 마음으로 그런 외로움을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매화는 무조건 설중매로 아는 내 무식한 관념에 쇄기를 박는 시이기도 하다. 매화에도 여러 품종이 있어 설중매, 홍매, 수양매, 납매臘梅로 나눈다고 한다. 그 중 납매臘梅는 엄동 섣달에 피어 노랑 빛으로 꽃장을 오므리고 땅을 향해 머리 숙인 고급 매화종류. 그는 이미 많은 꿈을 이룬 시인인지라 말은 설중매라면서도 실은 납매 한 송이 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고결한 아름다움과 사랑에 푸욱 빠지고 싶어 무뚝뚝한 돌 쓰다듬으며 단디 발기한 채. 
 그의 많은 초기 시들이 문화적 충돌에 대한 비관적 시였지만 요즘의 시들은 그 아픔들을 품어 안겠다는 듯 참 따스하다. 어쩜 처음부터 그 깊은 속마음은 그 모든 슬픈 현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겨울이라며 그들을 위해 미륵불에 기도하는 자세로 향기로운 봄을 꿈꾸며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묵호등대  
이동순


저녁 뱃고동 소리 들려오면
가뜩이나 먹빛 바다 더욱 검어지네

도째비골 아래로 채령이네 집
모퉁이 돌아 논골 쪽으로 내려가면 석구네 집
또 그 옆으로는 자야네 집

어스름 속에서 등대는 슬픈 얼굴을 하고
종일 뱃일하다 돌아온 남편과
종일 오징어 배 따고 돌아온 아내가 싸우는 소리를 듣네

창백한 얼굴로 가슴 앓다
혼자 먼 길 떠나간 지아비 생각하며
이 밤도 등대 앞에 젊은 여인의 한숨 소리를 듣네

오래된 공동묘지 옆에 우뚝 서서
길 잃은 사람들의 앞을 밝혀주던 묵호 등대

[ 시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이동순 시인은 경상도 토박이면서 왜 묵호인가? 시집 전체가 묵호 이야기로 연작시를 쓴 교수님이면서 백석 시인 연구로 유명한 평론가 시인이다. 거의 사십 여 년 전 대학시절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편지 서로 주고받은 첫사랑이 살던 지역이 묵호란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그냥 농담일 수도 있겠지만 묵호를 한국인 모두의 고향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시인의 말과 ‘시로 쓴 풍물화첩(風物畵帖)’ 을 위해 아주 적절한 재생적 상상력으로 표현했다는 점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화려한 묘사를 위해 기교를 부리거나 언어 비틀기를 해서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피난살이 중 태어나 열 달 만에 어머니를 여윈 분이어서 그런지 작고 가냘프고 여리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이 시인의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시인의 시들 중 특히 이 ‘묵호등대’는 이동순 시인이 등대가 되어 그들의 슬픔을 보듬어주고 싶은 따스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 한과 눈물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요사를 연구하고 노래 부르는 것인가?  
 이 시를 읽으면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이동순 시인에 대한 의문점들이 점점 풀리는듯하다. 주위에 친구도 별로 없이 혼자 묵묵히 쓰고 연구하고 색소폰을 연주하는 시인의 모습 떠올리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요즘 너무 휩쓸려 다니느라 며칠 째 시 한편 쓰지 못했으니 이 일을 어이할꼬! 시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시인 자신만의 진정성과 개성을 찾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인 것을. 잘 먹고 잘 살면서 늘 자신의 쓸쓸함만 노래한 나의 시들이 부끄러워진다. 



시인의 침대 
문정희

시인의 침대는 에트나 산에 놓여있다
절벽 끝의 화산!
굳이 고독 끝의 분화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산 아래를 본다
오직 앞을 향하여 두 발로만 걷는 사람들이
모두 죽은 사람들로 보인다

왜 뱀처럼 온 몸으로 기어가지 않을까
왜 허공을 걸어온 저녁의 새처럼
두 발을 깃털 속에 넣고
생을 작고 동그란 돌멩이처럼 만들어 
쩡쩡 내던지지 않을까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안감을 댄 잿빛 수건 같은
심심함*을 선물로 받은
시인의 침대는 에트나 산에 놓여있다
잿빛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 꿈꾼다


 [ 시와시학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시는 몸이며, 몸의 길이며, 생명이라는 문정희 시인, 시인은 늘 자신을 반성하면서 자술서를 쓰다 쓰러지는 죄수라며 자신을 닦달하더니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라고 주장하는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에 흠뻑 젖어 있는듯하다. 
 시인은 에트나 화산 위 침대에 누워 자신이 달달 볶아지는 느낌에도 어쩔 방도가 없어 우울하고 고독한 그러면서 이랴! 이랴! 성과급 채찍질에 엉덩짝 두드려 맞는 모습을 신선한 비유로 절실하게 잘 그려주고 있다. 좋은 시를 쓰지 못하면 금세 낙오자가 되어 버릴까봐 두려운 시인의 사회, 그러면서도 여전히 꿈꾸고 있는 화려하면서도 잿빛 수건 같은 심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진작 시작詩作에 나른함을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무능을 깨우쳐 주는 작품인 것 같다. 시가 밥도 되지 못하지만 만약 시가 없다면 세상이 삭막해서 어쩌나? 쓸모없는 것의 쓸모, 아무 쓸모없는 것이 시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이 가슴 아픈 사람들을 살아 춤추게 하는 힘인 것을.
 한창 시 공부하던 시절 문정희 시인의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를 읽으며 기둥 세우려는 남성들을 참 통쾌하게 웃었다. 이제 가정을 지켜야 하니 ‘기둥을 자르다니요?’ 하며 버릇없이 반박하듯 들이대기도 하지만 남자들 보다 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 다하는 시인이 같은 여성으로서 참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상식에서 김종길 대시인이 우리나라 여성 시인들 가운데 지금 처용아내와 문정희 시인 입담이 제일 거세다고 하셔서 와르르 웃었는데 어쨌거나 존경하는 시인 중 한 분의 작품 속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행운 아니겠는가?  
 









감은사지感恩寺址에서
송수권


쌍탑이 노을에 잠긴다
감실 속 할매부처 수그린 이마에
살짝 저녁노을이 앉는다
자애로운 미소가 바닥에 깔린다
천년 대종이 운다
마음으로 듣는
그렁그렁, 이 맥놀림의 소릿결은
어디까지 가려는가
달빛이 오면 저 감포 바닷가
대왕암
저승 속까지 스미겠다
 [ 2012년 시선 여름호]

시 읽기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시로 독자들을 울린 바 있는 송수권 시인, 토속적인 전라도 사투리가 자신의 표준말이라더니 요즘 곤쟁이 젓갈 맛이 약간 서구화된 느낌을 주는 시 한편 읽는다. 
 소리의 세기가 주기적으로 변하게 되는 현상을 맥놀이라 한다. 노을 지는 감은사지에서 그리움이란 말 한 마디 없이 파장이 크게 여리게 물결치면서 한참 잊어버렸던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 시키는 서정시, 역시 노련한 선배님의 묘사력에 감탄하는 마음으로 젖어든다. 마치 서동이 선화공주를, 또는 백제의 한 역신이 처용아내의 달빛미소를 찾아 감포 바닷가를 헤매는 듯 아련한 형상이 그려지는 것은 감은사지 산자락에 내 아버지와 첫 시집 ‘신처용가’ 속 처용의 모델이 된 고모부 두 분이 잠들어 있기 때문인가? 
 어느 시인이 아름다운 경치는 시가 될 수 없다고 했지만 노을 진 저 쌍탑 속에서 송수권 시인은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천년대종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 그리움이 독자들에게 은은히 멀리 전달되는 것이리라. 약한 감성을 지닌 시인의 눈물 맺힌 눈망울이 오버랩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요즘 대부분의 젊은 작품들이 초현실적인 상상력이나 지나친 묘사 때문에 주제를 찾을 수 없거나 너무 건조하다며 쯧쯧 혀를 차는 것은 단순히 나이 탓인가? 그리움이란 징채에 몸 내어 맡기면서 마음의 징 소리 한 번 징, 하게 울릴 그 날이 오려면 아득한 저 시하늘의 게슴츠레한 눈빛을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가. 



나의 살던 고향은 오월에도 눈이 내리는 곳[경산군 자인면 계남리 까막새]
                정 숙 [시인]

1.아버지의 넋이 살아 있는 계정 숲

 경산시에서 자인면까지 가는 가로수 길, 오월이면 이팝나무 꽃잎들이 하얗게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길 따라 가다보면 그넷줄 길게 늘여져 있는 자인면 계정 숲이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추석날 동네 느티나무에 맨 그네에서 빨강 갑사치마를 입고 친구와 쌍그네를 타다 떨어진 기억 떠올리며 한 장군 말 묘가 있는 새못을 끼고 남으로 내려오면 바로 앞엔 냇물이 흐르는 동네, 그 냇물 건너 술 주전자 들고 막걸리 술심부름 가던 하대를 지나 상대 게르마늄 온천이 있다. 그 당시는 경산 자인 능금을 최고로 여겼었는데 지금은 복숭아밭이 많아졌다. 마당엔 아버지께서 가꾸시던 향나무들을 지금은 오빠가 깔끔하게 손질하고 있고 봄이면 모란과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는 기와집, 무엇보다 더덕향이 좋아 대구시내 거주하는 효자 외동아들 집에도 못 가신다는 아흔 여덟의 친정어머님이 지금 혼자 가끔 삼국지의 ‘우미인가’를 외며 거처하고 계시는 곳이다. 자주 찾아가 상대온천에서 같이 목욕도 하고 상추도 뜯어오기에 더욱 살가운 정을 느낀다. 동네 경로당엔 친구 며느리 뻘 되는 분들이 맛있게 점심도 지어주시고 친절하셔서 어머닌 이 동네를 떠나지 않으려 하신다.

 특히 계정 숲은 초등학교 때 소풍을 자주 갔던 곳이지만 자인조합장을 13년간 하시고 면 의원을 투표로 당선되어 몇 년간, 자인초등학교 육성회 이사로 계시기도 한 아버지의 흔적이 많이 묻어있는 곳이다. 한 장군 무덤 옆 비석과 제실에 아버지 이름 정 우 화가 새겨져 있어 늘 살아계시는 느낌을 받는다. 그 당시에도 면 의원 선거운동이 치열해서 고함과 웅성거리는 소리에 밤에 자다가 깨어 뭔가 불안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대구문학 아카데미 시창작반 제자들과 숲에서 불고기 구워 먹던 그 때도 이팝나무 흐드러지던 오월이었고 박정남 시인과 종일 단오제 굿판을 구경하기도 했던 몇 년 전 추억이 새삼스럽다. 

 자인 단오날은 아침 일찍 창포보다 궁기 삶은 물에 머리 감고 참여하는 큰 행사였는데 그 당시는 무서운 생각이 들곤 했었다. 행사 때 말 타고 다니는 순경들과 사람이 많아 나무에서 떨어져 몇 사람이 다쳤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지만 요즘 단오제는 이팝나무 꽃 만발한 가운데 전국적으로 유명한 축제로 거듭나고 있는 계정 숲엔 오월이 이팝나무 위에서 파도를 일으키고 그 하얀 물거품들 밀려왔다가 부서지며 술렁이는 저 물결 넘어, 닿아야할 미지의 땅 그리던 어린 시절의 내 가슴 아직 콩닥거리고 있었다. 낯선 땅에서 고향의 뿌리 뻗으려 갖은 선 그으시던 아버지의 젊은 맥박이 반짝이는 연초록 잎새들과 올망졸망 꿈을 키우는 제비풀꽃들이 서로 어울려 제철 따라 다른 빛깔의 파도 일으키면서 손에 손 잡고 끝없는 삶의 릴레이를 하고 있었다. 
                                        
2.까막새 과수원 집 샛째 딸

 자인 면사무소 뒤로 조금 둘러 가면 제석사라고 신라 귀족불교를 대중화하고 요석공주가 설총을 태어하게 한 원효대사 탄생지가 있다. 영원한 자유인 원효대사 그 어머님이 밤 숲을 지나다가 진통이 있어 밤나무 사이에 치마를 둘러치고 태아를 받았다고 한다. 그 밤 숲에 지은 절이 제석사라고 한다. 삼국유사에 쓰인 곳이 바로 여기인지는 모르지만 고인이 되신 박주일 시인님과 여러 문우들과 함께 찾아갔다가 그 입구 늙은 포구 나무를 시로 쓰신 박주일 시인의 시가 문득 생각난다. 그 옆으로 조금 걸어가면 자인초등학교가 있다. 계남1리에서 자인초등학교[48회 졸업] 까지 가려면 40여분은 걸려야 했다. 가다가 너무 추워서 논둑에 불 피우던 일, 홍수가 나서 삼정굴 다리 건너다가 떠내려갈 번한 곳, 피난 가려다 주저앉은 한국전쟁 후라 가는 도중에 어디서 비행기 떨어지는 소리, 또는 포탄 터지는 소리, 또는 새못에 누가 자살했다느니 그래서 혼을 건지는 굿을 하는 소리 무척 불안한 시대였다. 그 당시는 마을에서도 외딴 곳 지금의 계하교 너머 까마귀가 많은 소란 뜻인지 까막새라는 과수원에서 자랐다. 돌이켜보면 그 과수원은 작은 성 또는 대단한 별장 같은 곳이었다.

 대문 입구엔 찔레꽃과 살구나무 과수원 안으로 언덕이 있고 그 중간엔 들장미 피는 원두막이 있어 비오는 날 사과 떨어지는 소리 투둑, 툭,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 펄펄 눈 내리는 날 언덕에서 [수수껍질] 시집을 낸 큰언니 [정경자]와 둘째 언니는 연애편지를 읽고 난 한숨이나 푹푹 쉬고, 달 밝은 밤이면 네 자매들끼리 마구간이나 부엌을 돌아다니며 지신 밟는 흉내를 내다가 수박 밭에서 주먹으로 내리쳐서 수박을 깨어먹고 겨울엔 계란에 쌀을 넣어 밭에서 밥을 지어 먹거나 밀림지대 탐험을 하기도 했다. 냇물에서 여름엔 피리낚시를 하고 겨울엔 얼음 위에서 지게를 타고 ‘푸른 다뉴브 강의 왈츠’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잔디 태우느라 불을 지르다가 눈썹을 태워먹기도 했다. 과수원 안에 물을 대기 위한 수영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진 지팡이와 중절모에 망토를 걸친 참 멋쟁이 미남이셨다.

3. 내 태초의 첫 남자와 낙동강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함께 지녀야 한다며 찔레꽃울타리 둘러놓고 헝클어지지 않도록 내 생을 참빗질해주시던 내 태초의 첫 남자, 사냥총을 멘 아버지 따라나선 아침 산책길 들꽃 꽃잎에 앉은 이슬을 보며 생각이 참 많았던 소녀, 과수원 주위에 피난민이 모여들었던 그렇게 어려운 시기였지만 봄이면 화전놀이가 잦았다. 농사철 풍물놀이에 우리 가락이 귀에 익었고 아버지 사과 팔러 서울 갔다 오실 땐 쓰리치기 때문에 온 몸에 돈을 둘둘 감고 내려오셨다. 사과를 일본으로 수출도 하셨는데 그 땐 셋째 딸 정 인 숙 [본명]이란 이름을 붙여 보내곤 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셨고 젊은 시절 쌀 팔아 바이올린을 사들고 들어오시다가 할아버지께 혼쭐이 나기도 한 아버지,  그 그리움을 ‘첫 남자’란 제목의 시로 풀어보기도 했지만 동동주 밀주를 담아 과수원 풀밭에 숨겨두면 다행히 잘 익도록 들키지 않으면 자인 초등학교 선생님들 모셔 대접하기도 했었다. 가끔 선생님들이 나만 보면 또 동동주 없느냐 묻기도 해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종종 서커스 단원이 와서 공연을 하면 그 중 줄타기 하는 소녀가 눈망울이 아주 컸는데 그 소녀와 닮았다고 ‘네가 아니냐’ 묻던 선생님 얼굴이 아직도 기억되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 모든 추억 중 가장 기억을 강하게 붙드는 것은 육이오 동란 그 혼란한 시기에 모두 피난 간다고 농사를 포기했었는데 아버진 누가 먹더라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낼 모레 백수인 어머닌 지금도 글을 쓰고 싶어 하셔서 대신 써 드릴 테니 얘기만 해보시라고 했더니 그래서 받아 적은 시가 [낙동강]이다. 근 한 세기를 살아오신 한 여인이 강물처럼 출렁출렁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는 그 말씀 속엔 그 시대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너거 아부지는 마실에 숨어있고 혼자 아아들 셋 데리고 고 외딴 과수원에서 자는 한 밤중 총칼 든 빨갱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총구 들이밀며 돈을 요구했지. 빨갱이는 아주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까운 동네 아는 사람이었어. 나중엔 총구 내리며 돈을 요구했지. 얼마 전 홍수에 떠내려간 세간 살 돈인데 이것뿐이라며 그 당시 큰돈이었는데 오백 원 내 놓으니 모두 고맙다며 돌아가더군. 그 이튿날 옆집에 그들이 나타났을 때 주인이 엉덩이 밑에 돈 깔고 앉아 주지 않았더니 불을 질러버렸지 하는 수 없이 과수원을 버리고 마실로 이사했는데 그 집지킴이 구렁이들이 따라 들어온 걸 삽으로  대가리 몽창 몽창 다 잘라 불에 태워버리더니 그 집이 폭삭 망해버리더라. 난 나중 경찰한테 당당하게 말했어. 돈을 주지 않으면 내가 내 자식이 죽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후유! 까딱 잘못하면 빨갱이 도왔다고 총살당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운이 좋았지 좋았어.'

 사라호 태풍 등 잦은 홍수로 잠자다가 각중에 머슴 등에 업혀 피란 가던 일, 귀리들이 바람의 귀에 속삭이느라 서걱거리는 저녁 무렵 초록 풀 뜯어 먹는 소와 건너편 노을빛을 보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 곳이 조금 변형은 되었지만 그런대로 유지되어 있다는 것이 무척 고마운 일이다. 갱분엔 가을이면 온통 코스모스 피어있었는데 냇물 건너편 언덕엔 선머슴에 하나 거의 종일 앉아 우리 과수원 쪽을 바라보면서 누굴 기다리고 있었을까?

4.신처용가의 근원지

 다섯 번째 시집 [유배시편]이 나오기 까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내용 중 처용가를 패러디한 대구 경상도 방언으로 쓴 첫 시집 연작시 [신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의 모티브도 여기 과수원에서 비롯했다. 왜냐면 경북 월성군 양북면, 대왕 바위 가까운 곳에 사시는 고모부님 두 분이 자주 놀러오셨는데 그 분들은 고모님이 불쌍할 정도로 최고의 한량이었다. 바람처럼 한 번씩 오시면 사랑채가 온통 들썩거렸다. 양춤을 춘다고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노래하며 온갖 고향 소식을 들고 오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무척 즐거워하셨다. 세분 무덤도 처용의 고향 대왕암 가까운 산골짝이어서 자주 만나고 계실까? 그런 추억을 토대로 처용아내의 입장이 되어 대구 경상도 방언으로 쓴 ‘봄 밤이라예 안 그래예?’ 연작시들[신처용가,1996년]이 낭송으로 시극으로 시어사전에 많이 애용되고 있으니 경산 출신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와 알 수 없는 깊은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시집 나온 지 16년이 지난 지금 새삼 사투리를 모국어라며 보존하려는 목소리 커지고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5. 고맙습니다

 중학교부터 대구에서 자취하느라 가끔 집을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는 버스 정류장까지 내 훌쩍이며 가던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길, 몇 년 간 서로 삐쳤던 친구 옥란이와 화해한 연못 둑길, 외딴 곳 친구도 없어 선생님이라며 사과나무 줄 세우며 집안에 돌아다니는 사상계 읽으며 풀꽃들과 얘기 나누던 그 유년이 내 시의 근원지가 되고 있으니 나의 살던 고향 계남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경주 월성중학교 교사 시절 화재 때문에 계남리 마을로 이사했지만 특히 어머님이 아직 집을 지키고 계시니 ‘고맙습니다. 이 봉 화 님! ‘

 고향이 아무리 역사적이고 훌륭한 고장이라 해도 내 고향, 영원한 안식처는 바로 어머님 아니겠는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 어렵고 험한 세상 근 백년의 역사 속 그 시절 딸 넷을 모두 대학공부 시키기 위해 일꾼을 찾느라 과수원에서 마을로 날마다 종종걸음 치며 다니셨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건강하시기도 하지만 한 가정을 꿋꿋이 지키고 견뎌 그 살림 그대로 외동아들에게 전달해준 여장부, 출렁출렁 흐르고 있는 강물 그 넉넉한 품에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2012년 대구 예술을 결산한다’

2012년 시 관련 행사 빛났다

시인과 시, 이야기가 있는 낭송회

서해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할머니, 방송 화면으로 보면서 불현듯 부러운 생각이 일어난다. “저 바닷가에 가서 살아야하는데, 많은 밑천 들여 전 차릴 필요도 없이 문밖에 호미 한 자루 들고 나가기면 하면 다 돈인데 시는 평생 돼지 국밥 한 그릇 값도 되지 못 하니” 한숨을 푹푹 내쉰다. 얼마 전만 해도 등 굽은 아낙들의 고단한 노동을 안타까워했는데 진흙탕에서의 노동이 되려 즐거워 보이는 것은 입맛이 씁쓸하지만 그 사이 나의 시절이, 세상이 하 수상해진 모양이다. 이른 명퇴와 해고로 일거리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갯벌과 산골이 가장 손쉬운 밥벌이로 보이는 세상이라니!  참 암울했는데 멀리서 깜빡이는 등불처럼 올 해는 시 관련 행사가 참 풍성했다. 특히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종류의 예술보다 시는, 시인은 늘 뒷전이었다. 물론 낭송가들에 의해 가끔 기운을 차렸지만 시인은 제외된 행사였기에 더욱 쓸쓸했던 터라 올 한 해는 대구문화재단 서정시 콘서트, 수성아트피아 시인과 음악친구들, 예술마당 솔의 시 모임 등 이미 유명한 시인 뿐 아니라 소외된 시인들의 생각과 과거사 속 아픔을 눈부신 조명 속으로 이끌어내는데 공헌하였으니 또한 시가 대중과 좀 더 친숙해지도록 춤으로 낭송으로 판소리로 그림으로 온갖 시도를 해보여주는 행사 관계자들께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먼저 대구문화재단 서정시 콘서트에서는 지난해만 해도 낭송가들 위주였는데 올 해부터 시인이 직접 자기 시를 낭독하고 그런 시를 쓰게 된 동기나 환경을 얘기하여 대중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서 참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 가야금 ,색소폰, 장구, 기타 등등 뮤지션들의 연주 실력이 대단해 보여서 퓨전음악에 대한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면서 영상과 함께 현대 무용가들의 시 해석력 그리고 낭송가들의 열정이 어우러져 관객들의 호응도가 아주 높았다. 출연자와 관객 서로에게 인상 깊은 유대 고리를 선사하기 위해 네루다 등 시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여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체험에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서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일일 뿐이라는 걸 전달하려 혼신의 힘을 기우리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행복했었다. 
 거기엔 김정길 이사장님을 비롯하여 김중기, 전성찬 문화기획부 위원 등 대구 문화 재단에 관계하는 분들과 박진형 , 김선괭 시인 등 여러 시인들의 숨은 노고와 부단한 노력이 있어 많은 예술인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또 참여한 시인들의 작품으로 책을 엮어낸다니 그 또한 기대되는 일이다. 한 여름 소나기를 피해 다니며 공연을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센트로펠리스 야외무대, 봉산 문회회관, 북구 문화 예술 회관,  달성보 천년 별빛 광장, 동구 문화 체육 회관, 수성 아트피아, 용학 도서관에서 적극적인 방법으로 관객들을 찾아다니는 열정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특히 필자의 사투리 시 신처용가 중 ‘휴화산이라예’ 가 젊고 예쁜 민정민 명창이 가야금 병창으로 불렀을 때는 탄성이 나도록 감격스러웠다. 이제까지 낭송으로 시극으로 또는 훌륭한 대금연주와 함께 공연도 해 보았지만 웃음으로 끝났는데 이번은 처용아내의 진정한 슬픔이 베어 나와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였다. 봄밤이라예!  봄밤이라예! 를 되풀이하면서 풍자와 해학 속 깊은 슬픔을 끌어내는 힘은 판소리만한 방법이 또 있으랴! 문인수 시인이 탁! 무릎을 칠 정도로 새삼 판소리의 힘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오래 전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평소 존경하던 이진흥 시인과 함께하는 자리였고 팔월 말 한 차례 소나기 지나가도록 기다려서 아슬아슬하게 센트로펠리스 야외공연장에서 권미강 시인의 사회로 시작하여 ‘여러분 옛날에 니가 돛대가 하고 싸워본 적 있습니까? 돛대는 최고 또는 대장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가정마다 그 돛대가 많이 부러졌지요. 슬프고 힘없는 가장들께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했을 때 관객과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시 한편이 잘 소통되어 읽힐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한 여름 밤이 더욱 아름다웠다. 이상화 낭송가의 여는 시와 몇 년 전 “시가 뭔가요? 낭송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하며 찾아왔던 조선경 시인이 의젓한 시인이 되고 낭송가가 되어 필자의 시를 읽어주는 인연 또한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동구 문화예술회관 공연에서는 도광희 선생님의 시를 창으로 지두화로 그려 보인다거나 이태수 문인수 이하석 박정남 이규리 김현옥 시인들 삶의 진솔한 목소리가 관객석으로 묵화처럼 스며들어가는 모습에서 아, 시가 예술이구나, 나도 예술인이구나 를 실감하는 한 해였다. 특히 대구 서정시 콘서트는 전부 대구 지방의 무용가와 음악가, 낭송가 그리고 시인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왜냐면 행사 때마다 거의 서울이나 외지에서 초청하는 경우가 많아 지방 예술인들이 소외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효성병원이 후원하고 이태수 시인이 사회를 보는 수성아트피아 ‘시인과 음악친구들’ 이란 프로그램이 전국 유명 시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지방 시인들의 불만이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선호할 수 있는 대중성도 있어야겠지만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어야 하니 일을 주관하는 분들은 고충이 많을 것이다. 두 공연의 다른 점이 있다면 대구문화재단 서정시 콘서트는 무대의 높이를 없애버리고 평지에서 관객과 같이 호흡한다는 것인데 수성아트피아 ‘시인과 음악친구들’ 이란 프로그램은 수성 아트피아 용지홀에서 무대가 높아서 시인이 더 대접받는 위엄이 느껴지는 장점? 단점?이 있다. 그러나 완전히 시인 한 사람을 집중 조명하여 영상시와 시인의 육성만으로 자신의 삶과 시의 관계를 담담히 풀어내는데 예상 외로 별로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인의 실수가 오히려 훈기를 주고 문인수 시인의 강원도 정선 아리랑을 구수하게 풀어내는 입담의 맛 그리고 이태수 시인의 사회와 이하석 시인의 인텨뷰 형식의 서로 주고받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목소리와 삶에서는 옛날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푸근함이 있었고, 이 동순 시인의 옛 대중가요와 색소폰연주를 겸한 시 읽기에서는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물든 시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동화되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여성 시인으로서는 천양희 시인의 가정사로 자살까지 꿈꾸었다가 무슨 계시처럼 시로 극복하는 과정과 근 26년 오랜 시간 중풍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운 남편과 시어머니를 보살피랴 박사과정 공부하랴 고달팠던 신달자 시인의 고통을 친구 삼아 시로 풀어낼 수밖에 없었던 고독한 시간들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시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모습에서 시와 시인만으로 거의 한 시간 동안의 공연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시는 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체험을 적당한 상상력과 비유로 묘사한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일반 관객을 상대로 할 때는 고급 묘사보다 체험을 직정으로 쉽게 표현해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도 시인들이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유명 시인을 쉽게 만나 그의 인생살이가 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들의 인생 화두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수성 아트피아가 내어주는 큰 선물 일 텐데 겨우 오 육십 명의 관객밖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처럼 관객숫자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정말 조촐하게 삼십 여명 정도 모여 시인의 시집 출판을 축하해주고 서로 격려해주는 조촐한 모임이 예술마당 ‘솔’에서 [이하석의 예술 북카페- 책의 사람들]열렸다. 예술마당 ‘솔’과 대구작가회의 주체이기에 또 다른 분위기를 안겨주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음악도 없이 이하석 시인의 부드러우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로 구수하게 사회를 진행한다. 별로 이름은 없지만 역량 있는 숨은 시인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많은 시인들이 참석해서 따뜻한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방 시인을 중심으로 그 시인의 시와 시세계를 조명하는 시간이다. 자주 만나지만 보통 그 시인의 시를 집중적으로 읽어보지 않기에 평론가 한 사람의 시 해설이 있고 그 시인의 가정사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들어주고 이해하면서 서로 친근하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문인수 시인은 다른 시인들과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시의 소재를 자주 찾는다는 얘기와 정지창 수필가의 수필집 배창환 시인의 전교조 운동 후의 시련과 아픔이 드러난 시들, 김은령 시인의 경제 위기를 넘기면서 쓴 시들, 장하빈 시인의 슬픈 가족사를 듣고 서로 혀를 끌 끌 차면서 슬픔을 쓰다듬는 한 시간 동안 밤은 깊어가고 돼지고기 골목에서 막걸리 뒤풀이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시간으로 발효되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시의 향기와 생김새가 꼭 사람 얼굴처럼 다양하니 그래서 나와는 다른 체험과 개성적인 시를 읽고 씹고 물어뜯으면서 즐기는 맛을 생각하면 시집 산다고 집안에서 짤그락거리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사투리 시도 개성이라 우기면서 열심히 쓰게 되었고 그로인해 이런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 외에도 인터넷 모임이기도 한 시 하늘, 시와 여백 등에서 거의 매달 시낭송회와 출판기념회 그리고 각 단체들의 출판 기념회에서 많은 시낭송 모임이 쏟아지고 있어 일일이 다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시인은 부지런해야 할 정도로 얼굴 내밀어야 할 곳이 많다. 잘못하면 그런 행사 기웃거리느라 옳은 시 한 편 쓸 수 없을 수도 있다. 시인이 시 한 편 잘 쓰는 일이 주된 목표일진데 잠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시는 뉘 집 시앗처럼 언제 보따리 사고 도망갈지 모르는 일이다.  항상 제 생각만 해 주길 바라는 시의 귀여운 앙탈에 끌려 초겨울 바람에게 ‘벌써 왜 이리 쌀쌀하냐?’ 깐죽을 걸어보고 있지만 쉬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기다려야지. 저 못된 것, 매정스레 버려야지!” 하면서도 또 그의 마력에 끌려가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삼류 시인의 아픔,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얼마 전 어느 행사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장이기도 했던 허영자 시인이 ‘시인이 아무리 나빠도 정치가들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러니 국민 모두가 시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말하자 허영자 시인의 스승이기도 한 김남조 시인이 ‘그건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해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었다.
 벌써 십일월 말이 다가오고 있다. 어젯밤엔 진눈깨비가 내렸다. 마지막 달력 한 장 달랑 남아 흔들릴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진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필자의 시는 어느 정도 위치에 와 있는지,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정리해 보아야 한다. 내년엔 더 많은 시와 시인들을 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해지길 기원하면서 이런 행사에 자극을 받아 시인들이 쓰는 시의 내용과 수준이 더 향상되어 세파에 시달리느라 고단한 이들에게 아늑한 정신의 안식처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모쪼록 내년엔 더 많은 시인들이 참여하여 혼자 쓰는 시가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리하여 서로 다양한 방법으로 어우러져 소통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시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인들이 각자 다 다른 소재와 경험을 자기만의 독특한 구성과 묘사를 개발하려 노력하기에 시는 어렵다고 하지만 시인들도 사실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왜냐면 시는 있는 그대로 다 쏟아내듯 표현하지 않고 은유로 감추고, 변용하고, 상징으로 말하려니 한 번 쯤은 자신의 시의 내면을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런 이유 뿐만은 아니겠지만 내년엔 대구문화재단 서정시 콘서트에 더 많은 시인들과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날마다 만찬 





낮을 이별한 저녁은 때론 급히 오게 마련이다 

혁명을 논하던 술잔과 입을, 검문하지 않는 어둠과 
누군가를 소리 나게 부르고 싶은 이 땅에 없는 얼굴들에게 
술잔을 돌린다 

지난 밤 큰 잔치는 가고 
잠시잠깐 벌떼로 만나 새벽이면 흩어지는 구름들처럼
눈을 뜨면 모두는 흔적 없이 실려 간다  
독한 햇볕과 
그 볕을 찬양하던 노동이 

으스름에 몰려든다    
같이 고향을 만들기 위한 장터인 여기서 
애써 만들어 내는 건 죽어도 청춘이다 
죽은 청춘을 두고 마시는 
 
일할 목뼈가 건재하게 만져지는 술이 들어가는 통로, 그 통로 
눈물을 숨기다 보면 
노래는 언제나 끝이 휘어진다 

저녁의 둥근 상에 앉아
억눌린 아가미들이 서로를 음복하며 뼈가 빠진 부분에  
술을 부어주는 


----2014년 웹진 시인광장 3월호 


페이지 터너인가,  안개꽃인가

                   -정 숙 [시인]
 
 피아노 연주자를 위해 악보를 넘기고 있는 페이지 터너인가?  아니면 장미를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인가? 난 누구인가? 끊임없이 존재감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살아온 자신의 나약함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 한편 골라보았다. 

 정하해의 ‘날마다 만찬’에선 늘 변방에서 굵은 팔뚝으로 땀방울 뚝, 뚝 흘리면서 일하는 그러면서 그 노동에 합당한 보상과 대우를 옳게 받지 못하면서, 늦은 저녁엔 깍두기 몇 조각과 막걸리로 눈물 삼키며 만찬을 즐기는 진정한 사나이들의 술자리를 역설적으로 묘사한 솜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현대사회의 아웃사이드인 유배지에서 사회를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높은 탑을 쌓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목구멍 포도청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 무작정 독한 햇볕을 찬양해야 하는 그들을 위해 건배를 올리고 싶은 여름밤이다.

























수건 탑 [박정남]

탈색​된 수건이 빨랫줄에 널렸다 바짝 말라 까칠짜칠하다 수건이
그의 손 뼈마디까지 다 드러냈다
 
  
수건이 갑자기 제 일생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럴 때 수건은
바람이 불어도 펄럭펄럭 소리 내여 울어서는 안 되고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 따라 둥둥 길을 떠나가서도 안 된다
 
 
식탁 위의 벌건 김칫국물은 또 어떻게 하고, 마땅히 닦아주어야 한다
 거기 온몸을 던져야 한다 수건에게는 수건만이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바짝 마른 수건을 개어 차곡차곡 쌓아올리면 수건도 탑이 된다 수건에 찍힌
무수한 손자국과 얼굴 자국들의 탑이 있다
  

 

      ㅡ 시집<꽃을 물었다>/2014​/시인동네














눈이 자꾸 밝아진다
                -정 숙 [시인]

 모든 사물이 불성을 가지고 있어 부처 아닌 것이 없고 탑 아닌 것이 없다더니 시인들이 무섭다. 모두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 신기가 있는 것 같다.

 ‘수건 탑’을 읽으면서 박정남 시인 역시 부처의 경지에 들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까칠까칠한 수건을 개면서 규칙에서 한 발자국도 어긋날 수 없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동일시하면서 참고 살아왔던 날들을 서로 연민으로  쓰다듬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온 여성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여서 한 번 더 읽으면서 그 정서를 나눠보고 싶다.

 복효근 시인은 식당 아주머니의 머리 위에 이고 가는 밥그릇에서 탑을 보고, 이하석 시인은 배추밭에서 푸른 절을 찾아내고, 공광규 시인은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 어머니가 부처로 보이기도 하니 우리 시인들의 눈이, 통찰력이 너무 깊다. 그래서 시 읽는 시간이 더욱 즐겁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1. 파도 속으로 기찻길을 놓다

 아들아!
 자녀의 생사를 몰라 진도 바다 속으로 귀 기울이며 기찻길 놓고 있는 부모와 바깥세상으로 간절히 구원의 소리 모아 기적소리 애타게 울리고 있는 어린 영혼들, 올 사월은 잔인하다 못해 처참했구나. 노래처럼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불러대던 시인들, 그 시절은 이 보다 더 참담했을까? 이제 돌이켜보면 행복에 겨워 헛소리나 한 것처럼 부끄러워진다. 

 아직도 세월호에 갇힌 자녀의 시신을 찾지 못한 부모님들 그 심정을 대신해 마음은 날마다 등을 밝혀 하늘로 띄우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한 점 위로가 되겠는가? 아파트 벽을 치며 봄바람은 밤낮 파도 속 기적소리로 창문을 흔들어대는데,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의 비명은 이명이 되어 귀에 못이 박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시도 때도 없이 ‘공부해라’ ‘나중 대학 가서 재미있게 놀아라!’ 나중나중
그 잔소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돌들을 가슴에 품는 일도 말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선생님이나 어른 말만 믿고 따르라는 말도 거짓이 되어 버렸는데, 생각해 보면 게임이나 놀이, 너희들이 좋아하는 건 거의 다 감시하고 말리는 일이 부모의 할 일이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군 입대하는 너에게 
‘아들아, 어쨌거나 살아 돌아와야 한데이’ 
엄마로서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지만 이제 엄마의 그 심정 당연하다며 머리 끄덕인다. 
‘아이야, 어떻게 하든 살아만 있어다오.’ 
‘우린 아직 못 다한 말들이 너무 많아!’
‘사랑한다, 행복해라, 즐겁게 놀아라!’
이런 사소하면서도 귀한 말들을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닫는지. 진도 팽목항
통곡소리 속 후회의 넋두리가 부모들의 가슴에 징을 치고 있는 것 같구나.

2, 징소리

 파도를 타고, 바람결 타고 온 애원하다 울부짖는 그 기적소리들은 징채가 되어 부모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가슴을 치고 있구나. 그냥 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모 가슴에 꽁꽁 못 박는 소리되어 한 평생 뽑아낼 수 없는 못이 될 것이다.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이 되어 수시로 통한의 덩어리 찔러대겠지. 그 분들의 심정 생각하면 할수록 곁에서 같이 아픔을 나눌 수 없어 미안하기만 하구나.

 아들아,
 엄마가 처용아내라며, 미친바람 발전기라며 온 세상을 허둥대고 다니는 것 같지만 실은 마음 밑바닥에 항시 가족의 평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단다. 누군가 해코지하지 않을까 누구에게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까 건강은, 행복은, 이런 노파심 때문에 옛 어른들은 달, 해, 산, 우물 등 온갖 산천에 기도하러 다니셨다는 걸 이제 이해한단다.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엄마에게 시를 쓰게 하고 처용무를 춤추는 여자들의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같구나. 이제사 느끼지만 내 일신이 편안하게 이 정도까지 온 것은 그런 어른들 기원의 힘 때문 아니겠니? 기도라는 것은 정성과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니 그래서 살아가는 데는 종교가 필요하기도 하단다.

3, 사랑, 해

 아들아,
 엄마는 네가 행복하기를 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늘 돌탑을 쌓고 있단다. 그리고 우리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 자주 나누자.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맙고 같이 살아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하루 종일 몸 기울이고 있는 해처럼 온 마음 몸 기울여 서로 사랑하자꾸나! 그래서 엄마는 ‘사랑, 해’ 시 한편 적어본다.

사랑, 해


범어숲 새들에게 먹이 한 상 차려놓은
해, 더 멀리 살피려 종일 몸 기울이다가 
벌겋게 피로에 취해버린다 
끝내 밤바다로 가라앉는다

삐딱한 지구 자전축 위 나지막이 
몸 기울여  
낙엽 덮고 잠자는 겨울 씨앗들 
밟힌 풀꽃의 상처 깊숙이 온기 넣어주려는 
넉넉한 길, 날마다 바라보면서도 
 
홀린 듯 나는 꼿꼿이
먼 하늘 눈빛만 바라보다 하루를 마감한다
해는, 달은 어둠에 갇힌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온 정성 다 기울이는데

몸마음 깊이 기울이는 것, 그것이 진정 
햇살사랑법이라는데









삼국유사 속에서 시의 씨앗을 찾다


1. 일연스님께
스님은 제 시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신 분 중의 한 분입니다. 천년도 넘어 그 아득한 시대에 어떻게 그런 설화들을 일일이 찾아 그것도 이두문자로 기록하려는 마음을 가지셨던 건지요? 특히 스님의 탄생지는 원효 설총 일연을 삼 성현으로 모시는 삼성산이 있는 경산시 자인면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지요. 저는 시를 공부하는 분들께 삼국유사를 꼭 읽어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 속은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연출가이고 극작가인 이윤택의 ‘내 인생의 책](5)’에서 “나의 시적, 그리고 연극적 상상력은 <삼국유사>에서 나왔다. 내가 만일 소설가였다면, 나의 소설적 상상력은 삼국유사에서 나왔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 <삼국유사>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삼국유사>가 과연 그만큼 대단한 책인가? 역사서로는 오히려 <삼국사기>가 더 역사적 신빙성이 있는 정통서가 아닌가?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삼국사기>에는 단군신화가 없다. 만일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단군왕검의 자손인 줄도 몰랐을 것이고, 호랑이와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으며 동굴 속에서 지낸 내력도 몰랐을 것이고, 단군이 곰의 자손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디서 온 자손인지 어떤 문화적 코드를 지닌 인종인지 그 원형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신화가 수록된 경전이며 시학서이다. 우리 시의 원류가 ‘도솔가’라는 것, 월명사라는 위대한 시인이 존재했다는 것을 <삼국유사>는 증거한다. <삼국유사>는 그 자체 한국공연예술사이기도 하다. ‘헌화가’ ‘처용가’ ‘서동요’ ‘해가’는 그 자체 극적 구조를 지닌 연행시다. 이 연행시에 악가무가 붙고 자연스럽게 극적 행위를 요구하는 스토리텔링이 곁들여진 것이다.<삼국유사>는 제도권적 시각에서 벗어난 한국의 변방 역사서이기도 하다.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제4의 제국 가야는 실종되었을 것이고, ‘구지가’가 없었더라면 거북신을 섬기는 해인족이 한반도 동남쪽 원주민으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삼국유사>가 존재함으로써 고대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건국신화와 문명사를 갖춘 한국인의 삶을 기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대학시절 삼국유사 원본 강의 시간에 고 서원섭 교수님은 칠판에 작대기 네 개 그어 두 개는 처용아내 것, 두 개는 역신의 다리 이처럼 친절하게 설명하시는 모습‘ 참 유치하시다!’ 웃기도 했었지만 결혼하고 시집을 살면서 상실된 자아를 찾으려 결심하던 때 시의 불씨를 먼저 붙여주던 것은 처용가였습니다.

 처용아내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어느 시전문지에 실린 시 가운데 처용아내를 화냥년이라 계속 읊조리는 데서 반발심을 갖게 되었고 처용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는 자유연애 시대라서 바람이 들었다 로 보기보다 좋은 씨를 받아 종자 개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제가 살아온 현대사회는 그렇지 않았지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은장도를 목에 걸어주며 수많은 여성들을 울려 울화병을 앓게 했지요.
처용아내가 바람을 피기보다 열병에 걸리거나 문정희 시인의 시 ‘남자를 위하여’ 처럼 월경, 서답이 있어 처용을 받아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도 못 참아내는 남성 처용의 상상력이 오해는 아닌지 아니면 필자의 ‘신처용가’에서처럼 처용이 한량인지라 열병에 든 아내를 다른 사내와 놀아난다로 노래한 것은 아닌지요. 변변찮은 상상력으로 스토리텔링을 한 것이 제 첫 시집 연작시 ‘신처용가’지요. 그 당시 시로 소설을 쓴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스토리텔링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신라 향가중 처용가는 아내를 빼앗긴 분노가 단순해보이지만
  
동경 밝은 달밤에 밤드리 노닐다가들어가 자리 보니 가라리 네히러라둘은 내해요 둘은 뉘해언고본디 내해다마는 앗아날 어찌할꼬

그러나 악장가사에 실려있는 고려가요 '處容歌'는 처용이 疫神을 몰아내는 일종의 무가로 역신에 대한 처용의 분노가 더욱 절실하게 나타나 있어서 희곡적 분위기가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 처용과 처용아내 누구 편을 들 것인가
이런저긔 處容아비옷 보시면 熱病神이아 膾ㅅ가시로다 千金을 주리여 處容아바 七寶를 주리여 處容아바 千金 七寶도 말오 熱病神을 날자바 주쇼셔 山이여 히여 千里外예 處容아비 어여려거져 아으 熱病大神의 發願이샷다

 
그래서 그런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신처용가’ 로 시극을 한다며, 시를 가지고 놀 줄도 알아야한다면서 만해마을과 여러 무대에서 청소년 시극 지도도 하며 전국행사를 휩쓸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가무와 노래가 질병을 몰아내는 주술적 양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여성을 억눌렀으니 이제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이들이 처용아내를 들먹일 때가 된 것이지요. 여기서 처용아내라 자처하는 필자의 [신처용가]에서 처용아내의 변을 들어보면 94년 그 당시에는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 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자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꺾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 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웬 생트집?--처용아내 1 ]



다시 외로움에 지친 봄밤의 처용아내 넋두리를 들어보면 부부사이엔 ‘봄밤이라예’ 한 마디로 
오늘 밤 아내가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을 원한다는 사인으로 눈치 차려야 할 것입니다.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休火山이라예—처용아내 2]


 1994년 ‘시와 시학’에 처용아내 연작으로 신작특집 5편 발표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것으로 1996년 첫 시집 ‘신처용가’가 발간되었습니다. 다음 시는 문정희 시인이 ‘남자를 위하여’라는 작품에서 처용아내가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 몸[월경]을 하고 있었다고 처용아내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그 며칠을 견디지 못하는 남자의 욕망을 비꼬고 있는 시를 살펴보면 

아직도 저를 간통녀로 알고 계시나요.
[생략]
아시다시피 제 남편 처용랑은 기운찬 사내,
제가 안고 있는 병을 샛서방처럼이나 미워했다오.
그날 밤도 자리 펴고 막 누우려다
아직도 몸을 하는 저를 보고 사립 밖으로 뛰어나가
한바탕 춤을 추더라구요.[생략]

[남자를 위하여]  문정희 | 민음사 | 1996

이처럼 향가를 실은 삼국유사가 시인 뿐 아니라 문학인들에게 시적 상상력의 씨앗을 뿌려주고 있는 것이다.    

3. 삼국유사 연구반 풍경

2년 전부터 대구 시전문지인 ‘시와반시’의 발행인인 강현국 시인과 이하석 시인을 좌장으로 하여 박정남 박이화 황명자 이자규 홍영숙 김영근 박순남 정 숙 등 시인 여러분들이 모여 매주 삼국유사에 대한 연구 발표를 하고 옛 자취를 찾아 경주 쪽으로 종종 답사를 하기도 합니다. 김영근 시인의 연구발표에서 [연오랑과 세오녀]가 같은 까마귀 오가 들어있기에 남매인가? 부부인가? 정 숙은 죽지랑을 사모하여 쓴 득오화랑의 노래가 [모죽지랑가]가 서정시인가? 추모시인가? 박정남 시인은 [박혁거세] 연구에서 행운을 가져다 주는 왕이란 뜻으로 고대 타밀어에서 왔다고 추정하기도 하며 이하석 시인은 [지철로 왕]의 음경이 45센티였다는 등 신라시대 그 때도 남성 심벌의 크기로 남자의 힘을 과시했다는 것과 특히 그에 맞는 왕비를 찾다가 인분이 북 크기 만한 여자를 왕비로 삼았다는 내용에 서로 많이 웃기도 하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또한 황명자 시인의 [김현감호] 에서는 그 당시 호랑이가 등장한 설화들을 조사하여 호랑이가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그 때도 참여시인들 처럼 권력자들을 비판할 줄도 알았다는 내용에 서로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홍영숙 시인은 선화공주와 사랑을 나눈 [서동요]의 서동이 백제 무왕이 아니라 무령왕이라는 설에 대해 발표하고 박순남 시인은 월명의 [도솔가]를 이윤택 연출가의 [도솔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예로 들어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와 신라의 정신을 집약했던 화랑도가 인간 중심주의를 접점으로 삼았다는 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자규 시인은 ‘내물왕과 김제상’이야기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서로 다르다며 신라본기 박제상전을 들며 둘은 같은 인물이며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백결선생으로 유명한 그의 아들 이름이 박문량으로 박씨가 맞다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은 수로부인이 아라비아 상선에 드나들었다는 박이화 시인의 연구발표를 모티브로 하여 시극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든 필자의 ‘신 수로부인 뎐’입니다.    

신 수로부인 뎐 

___가물가물 벼랑 위 꽃을 꺾어달라는 이쁜 아내의 수작
   아뿔싸! 저 강릉태수 눈뜨고 당했구나
   서로 눈 깜박거리며 젊은 상인이 소 한 마리 몰고 노옹처럼 변장

1.'나할 안디 붓하리샤단 곳할 것가 받자보리이다'*

그 절대고수의 수작에 모두 신선이라며 탄복하고 머리 조아린다
이브를 꼬여내는 배암의 눈빛이
수로부인 가슴에 흑장미 꽃송이로 불붙어 화르르 타오르는 것을

2.'고양이같이 고운 입술……스며라! 배암.'*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그 사내, 남몰래 아라비아 상선으로 데려가 그녀의 순네 
같은 꽃을 하마 버얼써 훔치고 팔아버린 것을

3.'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어놓아라
  남의 부녀 약탈한 죄 얼마나 큰가'*

안개 속 상선은 꿈의 궁전, 용궁 같기도 했지
지아비 순정공은 짐작하면서도 모른 척
이미 엎질러진 물, 체면은 거북 앞에서 세울 수밖에
향내 뿌리며 무녀처럼 헛소리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한숨 죽이며

FADE OUT*

*향가 헌화가 중에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미당의 '花蛇' 중에서
*海歌 중에서
*서서히 사라지다

[2012,천년의 시작 봄호 발표]

 정 숙 자신이 처용아내라며 참으로 건방지게 미당의 작품까지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박이화 시인은 헌화가를 ‘철쭉’이란 멋진 산문시로 발표하였지요.

동해 푸른 파도로도 끌 수 없는 정염이 벼랑과 벼랑 사이, 바위와 바위 틈 사이 철쭉처럼 년 놈의 가랑이 사이 활활 타올랐단 거다.[마지막 부분]

이하석 시인은 대가야국 건국 신화를 ‘처음사랑’이란 시로 표현하였고
 
맘 통하면
해가 늘 저 아래서 떠올라선
숲으로 들 듯
정현모주는 항아덤에 풀잎 깔고
이비가 이끌었네
또는 하늘의 구름이 부추겨서
가야산이 끓어올랐지[부분]

이자규 시인은 삼랑진 ‘만어사’를 함께 답사하고 [내 머리 속의 계단]이란 작품을 발표하였고

돌이된 물고기 떼에서 듣다 내 우뇌 속에서 파닥이는 지느러미의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부분]

황명자 시인은 [백탑] 2연에서

그를 마주 대하는 순간
이미 뭇 여자를 호린 경험이 있는 
보름달은 환하고
그의 하얀 이는 유난히 반짝였는데
그 뒤론 필름이 끊긴 영화처럼 혼미했다네


이처럼 설화가 허구적이긴 하지만 그 시대의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으며 문학성이 들어 있으므로 설화를 문학의 끈끈한 관계가 여러 시인들의 작품 속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미당을 들 수 있겠지요. 그의 시집 [신라초(新羅抄)]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얻은 신라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어 신라를 하나의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화해에 의해 인간과 자연, 신화가 융합된 초월적 세계로 보기도 하고 추상적 관념 세계로의 도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나 우리 전통적이면서 신비로운 정서를 잘 전달한 훌륭한 시인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필자 역시 그 세계를 찾아 보존 전달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4.일연스님의 시와 마무리
 향가는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며 사회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는 서정시로 볼 수 있는 향가와   전승 설화를 <삼국유사>속에 채록하면서, 특히 구전 설화로서 기이한 내용에는 유독 관심을 가졌고, 그런 신이한 사건들은 일연이 승려로서의 신분, 나아가서는 이런 종교적 이적이 포교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삼국유사>는 시공을 초월한 불교의 윤회 및 내세관에서 비롯된 내용에 비중을 두고 일연에 의해 철저하게 재편집 구성되었고, 신라 화랑정신을 고려 혼란기 백성에게 고취 선양함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발표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삼국유사 속에서 많은 시적 상상력을 찾아내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일연스님의 시를 인터넷 스크랩으로 그의 인간적인 정서와 풍류를 음미하며  처용아내의 끝없는 갈증과 그리움 달래 봅니다.



삼국유사 속 내 시의 씨앗 찾기 2
                           -정 숙 (시인)


1. 상상력과 긴 다리 소금쟁이

 
 예이츠는 ‘상상력이란 냇물 위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 침묵 위를 미끄러지는 것’이라 표현했는데 어학사전에서 ‘상상력이란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신라 향가 중 ‘처용가’ 한편으로 처용아내 연작시(신처용가) 86편을 써댄 필자는 미련하고 우직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고전으로 현대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꼬집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재생 상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상력의 힘 아니겠는가? 

 시로 소설을 쓴다며 온갖 잔소리, 바가지, 넋두리하면서 카바레를 기웃거리다가 결국 장구장이를 찾아가는 처용아내, 1990년 그 당시 유행처럼 여성들이 장바구니 맡기고 춤을 즐긴다는 뉴스가 종종 나기도 했었다. 뭔가 상상한다는 것은 눈을 뜬다는 것이 아닐까? 문학 뿐 아니라 미술, 경제, 과학 모든 면에서 이 상상의 힘을 원동력으로 하여 발전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3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 시와시학 1994년 신작시발표, 시집 신처용가 1996 시학사]

다 늦은 저녁에 눈을 뜨느라 자아를 찾으려 몸부림친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자책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열병이 든 처용아내 휴화산이라예! 봄밤이라예! 를 쉼 없이 중얼대더니 결국 맞불 작전으로 춤판이나 노름판을 찾아다니면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런 연작시 몇 편으로 시극 ‘봄날은 간다’ 공연에 참여한 많은 시낭송가와 시인들 그리고 여름 켐프에서의 학생들 시극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일들이 이명소리 내며 추억의 필름을 돌린다. 

거짓말 아이라 카이예
-처용아내 4 

어마이 심이 쇠똥가리니 우짜니 카미
추키세우지마 마이소예.
몸뚱이는 커져 부풀었지만서도
서방님예, 지도예
바람이 흔드믄 간들간들카는 봄버들이라예.
실버들이라예.
기집이라 카이예.
다 커뿐 아아들 말 없지예,
새라도 붙잡고
지저귀민서예,
고 넓은 가슴에 기대
어링냥 부리보고 싶다 카이예,
내에 모린 척 피하시는 잘난 서방님,
정말 무심도 하시어라.
하 답답해서예,
저 못생긴 疫神이라도 부리고 싶다 카이예.
참말이라예.
거짓말 아이라 카이꺼네예.

[ 시와시학 1994년 신작발표, 시집 신처용가 1996 시학사]


2.범어 포구 귀신고래 이야기

 ‘시인은 가장 민감한 감각의 촉수로 삶의 본질을 인식하면서, 상상력을 통해 결핍된 세계를 보완해주는 사람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일상 세계에서 느끼는 결핍 요소들을 채워줄 수 있는 위대한 힘이다’

 이 건청 시인의 말씀에 고개 끄덕이면서 상상이 없는 세상은 불 꺼진 창 같은 느낌일 거라 짐작해본다. 그러나 대구 범어동 처용씨는 이래저래 존심 상한다. 처용아내 자신은 미친바람 발전기라며 낮인지 밤인지 구분 없이 싸돌아다니면서 남편을 유배당한 귀신고래 또는 돛대 부러진 늙은 소나무로 비유하며 시답잖은 상상력으로 시건방을 떨고 있으니 한 십년 우울증을 푸욱 덮어쓰고 누워있던 그가 이 악물고 벌떡 일어나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문득 상상력 즉 이미지 훈련이 잘된 시인들 중 한 분인 문 인수 시인이 떠올라 전화 드리니
삼국유사에 관한 시 몇 편을 보내주신다, 읽는 순간 뜨거운 연애편지를 읽는 듯 전율이 온다.
대학시절 뒤란에서 읽은 편지 너무 뜨겁고 무서워서 바로 불태워 버린 기억이 날 정도로 가슴 떨리는 사연, 구구절절한 연정을 꼭꼭 숨기면서 타오르는 불꽃, 두 편의 시에서는 수로부인도 노인도 같이 타오르고 있지만 분명 견우 노옹의 편지 읽은 수로부인은 가슴에 화상을 입어 안절부절 뜬 눈으로 밤의 기둥을 세웠을 것 같다. 

3. 달북 시인과 미당의 헌화가



1. 산철쭉
      -수로부인


  저 벼랑 끝 웬 꽃 저리 붉으냐. 내 마음 문득 파도소리를 딛고, 또 한 파도소리를 딛고 거듭거듭 오르나니, 하초 젖나니. 누가 보느냐, 저토록 내가 붉으냐.


  *시집 ‘동강의 높은 새’ 2000년 세계사 


2.  산철쭉
     -견우노인

          
  눈부신 그대 거기 서 있어서
  그대 꽃 아래 서 있어서
  늙은 몸 활 활 추슬러 입겠네.

  검푸른 소의 잔등, 저 바다 꽉 찬 파도소리의 수평선 콧김 자욱하게 부풀어 오르네. 천 길 벼랑을, 벼랑을 지나 벼랑 끝 철쭉, 철쭉을 지나

  내 능히 그대에게 이를 수 있겠네.


  *시집 ‘동강의 높은 새’ 2000년 세계사

“불이야! 불!”
산철쭉 시가 너무 뜨겁다. 선문답식의 젊잖게 품위 있게 야한 작품이라고 할까?. 저런 연애편지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다.
‘하초 젖나니,   늙은 몸 활 활 추슬러 입겠네. 수평선 콧김 자욱하게 부풀어 오르네’
얼마나 선정적인가? 문 인수 시인만의 기발한 해석이다. 수로부인이 철쭉꽃처럼 활활 몸이 달아올라있어서, 누구에게 꺾이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 같아서, 그것을 눈치 챈 견우노인이 그 꽃을 즉 수로부인의 활짝 핀 몸꽃을 꺾어준다는 그런 내용인 것 같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참 너무 하신다. 천 년 전 수로부인과 노옹의 심정을 현대적 시어와 시적 상상력으로 저렇게 완벽하게 풀어놓을 수 있을까? 뜨거우면서 과하지 않게 절제하는 힘 그러면서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놓는 시, 현대시 묘사 공부를 습관처럼 하시는 선생님의 통찰력과 직관력은 얼마나 깊고 빠른지 
‘그래 이것이 연상상상력이고 멋진 이미지 그림이지’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다가 필자의 변변찮은 상상력을 돌아보며 얼굴이 붉어진다. ‘헌화가’ 한 편으로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더 찾아봐야 하겠지만 우선 견우노옹을 바람의 고수로 인정한 정 숙의 ‘신수로부인뎐’, 박 이화 시인의 ‘철쭉꽃’을 비롯하여 문 인수 시인의 ‘산철쭉’ 붉디붉은 연작시 두 편 그 외의 시편들 이 모든 것은 천 년 전 향가가 시인들의 상상력을 춤추게 하였으니 또 한 번 일연스님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아라비아 상선 속 묘한 향에 취해서 이미 몸을 팔아버리고, 노옹으로 변장한 아라비아 상인에게 꽃을 꺾어달라고 강릉태수 앞에서 수작 부리는 현대적 수로부인으로 해석한 필자의 ‘신 수로부인 뎐’과 비교하면서 그렇구나! 무릎을 탁 칠 수에 밖에 없는 선생님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뜻밖에 정 숙의 대구문학 아카데미 시창작반 제자들과 함께 특강으로 청송 어느 귀농인의 집 평상에 앉아 직접 작가를 모시고 고급 묘사와 상상력이 잘 비벼진 시의 묘미를 느끼고 맛볼 수 있다니! 어디서 초여름 저녁 분꽃 향내가 짙게 나는 것 같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문득 수로부인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쓰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비잉 빙 돌려 형상화시킨 서정주의 ‘수로부인의 얼굴’이란 시를 찾아본다. 전문에 ‘헌화가,‘해가’를 다 동원한 작품이다.

수로부인의 얼굴 (부분)
서정주 
1 암소를 끌고 가던 수염이 흰 할아버지가 그 손의 고삐를 아조 그만 놓아 버리게 할만큼, 소고삐 놓아두고 높은 낭떠러지를 다람쥐 새끼 같이 뽀르르르 기어오르게 할만큼, 기어 올라 가서 진달래 꽃 꺾어다가 노래 한 수 지어 불러 갖다 바치게 할만큼, 2 亭子에서 點心먹고 있는 것 엿 보고 바닷 속에서 龍이란 놈이 나와 가로 채 업고 천길 물속 깊이 들어가 버리게 할만큼, 3 왼 고을안 사내가 모두 몽둥이를 휘두르고 나오게 할만큼, 왼 고을안 사내들의 몽둥이란 몽둥이가 한꺼번에 바닷가 언덕을 아푸게 치게 할만큼,  신규호의 ‘당돌한 실수’에서 처럼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수로부인은 정 숙한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시인들은 주로 남성의 성적자극을 유도하는 여인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아름다움이 본인의 죄는 아닌데 바람피우지 않았다고 처용아내를 살리려는 필자는 또 수로부인이 정숙하지만 바람의 고수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항변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4.돌아가는 길

 군위군 인각사는 일연스님의 어머님이 계시던 곳이어서 스님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기도 하여 스님의 어머니 상이 조각되어 있다. 스님은 경산 자인서 태어나셔서 수련은 여러 곳에서 하셨고 삼국유사 집필은 대구 비술산 아래 유가사 절에서 하셨다고 한다. 어쨌든 거기서 코도 깎여지고 마모된 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돌부처가 이제 돌로 돌아가고 있다고 그러나 아직 미완성이다 라며 문 정희 시인이 ‘돌아가는 길’ 발표하여 현대불교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보다 먼저 발표되었다고 보는 문 인수 시인의 ‘미완이다’라는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돌아가는 길 (부분)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5. 청송 백석탄 물속에서 숨바꼭질하다

“ 선생님, 시 공부가 정말 재미있고 행복하지만 너무 열심히 하면 머리 아파요. 이제 본격적으로 고디 (다슬기) 만나러 가야하지 않을까요?”

 웃음 전도사인 류 경화 씨가 애교를 부린다. 주인 부부가 17세기 어느 선비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방호정’으로 안내한 뒤 안내판에 히말라야 산을 옮겨다 놓은듯하다는 바위가 하얗게 빛나는 백석탄 냇물에서 온몸 젖는 줄 모르고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배승태시인도 수달처럼 머리만 내어놓고 앉아 어린 생명과 얘기 나누면서 언젠가 상상력의 소재가 될 체험을 즐기고 있다. 이 현 시인은 방긋방긋 웃기만하고 있으니 문인수 시인이 참고 될 만한 조언을 챙겨주신다. 그러다가 적벽 아래 바다가 출렁이는 미역돌 하나 주워 돌과 대화를 나누신다. 아주 흡족해 하면서 그 돌을 집 주인에게 선물로 정을 표한다. 안주인 박 월수 수필가에게 당호로 수월제 라는 현판을 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권유하는 면모에서 모처럼 사람 냄새를 맡아본다. 황혼 빛이 선생님의 정수리에 머물러 그의 아우라가 더욱 붉게 뚜렷해진다.

6. 신라불교의 주춧돌 아도

 유월 삼국유사 시간엔 박 순남 시인이 발표할 차례였다. 
“ 신라 16대 눌지왕 때 고구려의 스님인 묵호자가 신라의 일선군 [지금의 경북 선산]에 들어왔다. 그 고을에 사는 모례라는 사람이 자기 집에다 땅굴을 파 묵호자 스님을 모셨다. 그 후 공주님이 사경을 헤맬 때 묵호자 스님이 향을 사루며 기도하자 공주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런지 얼마 안 되어 묵호자 스님이 사라지고 제 21대 소지왕 때 아도라는 스님이 나타났는데 묵호자 스님과 비슷했다. ”

 결국 기도로 병을 낫게 했다는 기복신앙에서 시작한 것은 모든 종교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하는 연구 발표들 듣고 변 학수 평론가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진다. 이 하석 시인은 
“ 모례 집터가 지금의 선산 도리사이고 눌지왕 때 묵호자가 선산으로 들어갔다는 이유는 도리사가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이기 때문이지요. 거기서 포교활동을 도와주고 신라와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친절하게 마무리 정리해주신다. 다음 선산 지역 모례 관련 유적과 신라 절터 흥륜사를 찾아보기로 한다.

 박 순남 시인이 문경에서 딴 검은 오디를 서너 접시 넘치도록 가져와서 필자의 입술이 새카맣게 되어 마주 앉은 홍 영숙, 박 이화, 황 명자, 박 정남 시인은 킥킥 웃으며 열강을 듣는다. 김 영근 시인은 고양이똥으로 발효한 르왁 커피를, 이 자규 시인은 시와 반시 사무실 이전 기념으로 케익까지 준비하여 푸짐하게 즐긴다. 모처럼 변 학수 평론가님도 발행인 김 경옥 여사도 참여하여 강 현국 전 총장님 어깨 들썩들썩 포산 이성[관기 도성] 의 얘기를 토대로 연인의 길, 만남의 길 프로젝트에 대한 미래의 사업구상을 얘기하신다. 

7. 경주의 삼국유사 연구반

 우연히 경주 모량리 목월 생가 복원 기념식에서 만난 황 명강 시인이 경주에서 문 경현 사학자를 모시고 삼국유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선덕여왕에 관한 연작 서사시를 구상 중이라 한다. 목월선생님의 아드님이신 박 동규 시인과 친구였다는 김 종길 시인과 그 당시 제자 분들이 모여 두런두런 추억을 나누시는 모습, 물레방아 방앗간 따라 천천히 돌아가면서 이 또한 먼 먼 날 신화 속 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 ?

 차기 한국 문인협회 회장님으로 출마한다는 김 송배 시인과 그를 지지하는 포항의 장군 수필가 이 희복님, 그리고 대구의 신 표균, 정 하해 시인 그들 역시 언젠가 역사 속 길이 남을 명시를 위해 상상력의 칼을 갈고 갈아야겠다는 의지를 애써 감추려는 눈빛에서 잘 익은 시 한편을 읽는다. 그 시에 취해서 필자는 오방색 물감으로 처용무 그림을 그린다. 



삼국유사 속 내 시의 씨앗 찾기 3
                    -정 숙[시인, 본지 중앙위원]

1.삼국유사 시로 읽기’ 잘 읽고 있습니다

 산문 쓰는 일이 지겹다며 몸을 비틀다가 이 영춘 시인의 시집 ‘노자의 무덤을 가다’ 첫 장을 넘긴다. ‘삼국유사 시로 읽기’ 잘 읽고 있습니다.’선생님의 애교 섞인 문구에 그만 힘을 얻는다. 낙관에 쓰인 榮春은 처용아내의 봄밤이라예! 와 같은 뜻인데? 어얼쑤! 엉뚱한 상상력에 이끌려 들어간다. 품 넉넉한 언니 같은 시인의 모습이 바로 신라 시대 정숙한 처용아내 아니었을까?

 정숙한 처용아내 란 말을 쓰고 보니 문득 근 이 십년 전 사실이 떠오른다.  필자가 ‘신처용가’ 시집을 들고 처용아내라며 나타났을 때 유안진 시인이 ‘정 숙’이란 이름에 ‘안 정숙, 반 정숙, 비 정숙’이란 이름으로 놀려주시던 생각이 난다. 참 기발한 발상이라 재미있어 했는데 몇 년 전 선생님이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내주셔서 오히려 죄송하단 느낌이 들기도 했던 적 있었다.

2.길 위의 인문학
 
 대구 구립 본리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 프로젝트 속 일 년 중 마지막 다섯 번째 행사로 필자의 ‘고전과 현대의 만남 그리고 그 상상력 즐기기’란 주제의 기획이 채택되었다. 울산 처용제에 맞추어 시월 일일은 두 시간 강의를 했다. 고전 향가와 처용 그리고 처용아내에 관한 내용과 시를 김미선 시인의 하모니카 ‘봄날은 간다’ 연주와 함께 필자의 첫 시집 ‘신처용가’ 중 ‘휴화산이라예’와 ‘웬 생트집’으로 간단한 시극을 연출했다. 졸지에 처용 역할을 맡은 분 또 역신 역할을 맡은 분이 너무 여유만만하게 연기해주셔서 놀라웠다. 시 전체가 대구 경북 사투리여서 힘들었을 텐데도 다시 한 번 더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필자의 ‘우포늪에서’ 란 시의 부분이다. 낙동강이 왜 우포늪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따져보는 오래된 작품이다.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는 분들 역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뭔가 깨닫기 위해 오신 분들 아닐까? 하는 내용의 강의를 하고 그 이튿날 신라 제 49대 헌강왕이 용왕을 만난 자리 울산 개운포와 처용암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다.  

 애석하게도 경주 시내에서 처용아내와 처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학자 문경헌 박사님께 문의 드렸지만 어디쯤인지 짐작조차 못한다니 참 입맛 씁쓰레한 일 아닌가. 경주에서 헌강왕 행차가 울산으로 가던 길을 더듬기로 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그 당시 신라가 삼국통일 후 삶이 넉넉해서 행차하는 내내 고을에서 풍악이 울리고 있었다 한다.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용왕을 만난 자리 울산 개운포와 처용암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다. 애석한 일은 경주 시내에서 처용아내와 처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학자 문경헌 박사님께 문의 드렸지만 어디쯤인지 짐작조차 못한다니 참 입맛 씁쓰레한 일 아닌가. 하는 수 없어 경주에서 헌강왕 행차가 울산으로 가던 길을 더듬기로 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그 당시 행차하는 내내 산 고을에서 풍악이 울리고 있었다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 그리고 문무왕 덕분에 통일 신라 후 그만큼 나라 전체가 살기 좋았다는 얘기겠지만 그 당시 용왕은 너무 기강이 흐트러진 것을 경고해주기 위해 나타났다는데 헌강왕은 아주 좋은 징조로 생각하고 용왕의 아들을 아름다운 귀족의 딸, 처용아내와 결혼시킨 것이다.

3.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경주에서 대왕암이 있는 대본 해수욕장 가는 길 친정아버지 묘소와 처용의 모델이 된 두 고모부님 산소를 지나면, 통일 신라를 위해 밤낮 애쓰신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었다는 감은사지 그리고 만파식적 전설이 있는 이견대에서 파도 속에 누워계신 문무대왕 능을 내려다보았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 정신, 감사하는 마음으로 깊이 고개 숙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누워있다는 용암과 바다의 만남으로 생긴 육각기둥, 주상절리에서 회원들이 정성스레 준비해 맛난 점심을 먹고 울산 개운포와 처용암을 찾아 떠났다. 푸른 가을 하늘과 바다를 따라 가는 길은 막힌 속 트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더구나 박정남 정하해 박숙이 장혜승 류경화 시인이 함께 해주어 더욱 즐거웠다.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스스로 징이 되어 같이 한 회원들이 모두 만족해하는 눈빛이어서 징을 치는 필자도 흥겨워 탐방 길 내내 징소리 징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몸도 마음도 다 징이 아니겠는가? 강의하는 필자는 징을 치는 징잡이고 그 강의를 듣고 있는 분들은 어설픈 징채에 맞으면서, 감탄의 소리 흘린다.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졸시‘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속 아버지의 말씀을 상기 시킨다.

4. 처용암 카바레에서

 처용암에서는 울산의 낭송가 최경자 시인이 기다려주었다가 옛날 같이 한 시극 ‘봄날은 간다’ 중 처용아내가 카바레로 처용을 찾아다니는 장면과 장구장이를 찾아 한판 신나게 노는 장면을 연출해주었다. 갑자기 처용암 빈터가 카바레 되어 회원 전체를 춤을 추게 했다는 즉 마당극처럼 모두 함께 시극 한 장면으로 참여하게 했다는 것이 마음 뿌듯하게 느껴진다.

제비캉, 꽃뱀캉
-처용아내 65 [춤바람]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무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때맞춰 우연하게도 진짜 장구장이가 나타나 시극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전국을 다니며 필자의 첫 시집 ‘신처용가’ 속 시를 낭송하는 능수능란한 최경자 낭송가의 그 우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몇 년 전 같이 시극을 한 그 시간을 잊지 않고 우정출연해준 것이다. 첫 시집 한 권으로 이십년 동안 우려먹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고전을 패러디했다는 것과 그것을 즐기기 위해 낭송으로, 시극으로 극본과 연출 등 연구를 거듭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시만 쓸 것이 아니라 그 시를 대중들과 즐기도록 연구하는 시인과 낭송가가 있어 세상이 즐겁고 또 고맙다.

5. 처용의 딸과 미군

 이제 자신의 정서를 설화 속 처용에 투영시킨 현대적 묘사의 작품을 찾아본다.
 
  1  그대는 발을 좀 삐었지만  하이힐의 뒷굽이 비칠하는 순간  그대 순결은  형이 좀 틀어지긴 하였지만,  그러나 그래도  그대는 나의 노래  나의 춤이다
 
  2  6월에 실종한 그대는  7월에 산다화가 피고 눈이 내리고  난로 위에서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다.  서촌 마을의 바람받이 서북쪽 늙은 홰나무,  맨발로 달려간 그날로부터 그대는  내 발가락의 티눈이다.
 
  3  바람이 인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바람은 바다에서 온다.  생선 가게의 납새미 도다리도  시원한 눈을 뜬다.  그대는 나의 지느러미 나의 바다다.  바다에 물구나무선 아침 하늘,  아직은 나의 순결이다.  ─김춘수, 「처용삼장」 전문 26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를 기다리며 돌길에 앉아 제비꽃관을  쓰고 있으면 봄마다 아름다운 슬픈  우리나라. 우리나라 코리아  꽃을꽂아도넌아름답지않아네얼굴은누렇고머리칼은검거든.그래도,엄만,미군보다는나를좋아해,부라운은멋져.그렇지만,우리,아빠는,더,멋졌지,넌엄마도뺏기고동생도없지?넌혼자지?그래,그렇지만,이제,더이상,엄마에게,아기를,낳아달라고는,않을걸.노랑,아기를,낳았을,때,아긴,죽어있었고,죽,어,있었고,엄만,그,아길,물,속에던져,돌로,꼭,꼭눌러버렸다니까,돌로,꼭,꼭,꼭……돌 속으로 돌 속으로 보랏빛 세상의문이 또 잠깐 동안 닫혔다.  그 계집애는 그 후 엄마랑, 엄마의 남자랑  바다를 건너갔다고도 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제비꽃으로 녹아내렸다고도 하고.─이하석, 「처용의 딸」 부분 31
 
 김춘수 시인은 처용을 화자 자신으로 그래도 넌 나의 춤이고 노래라며 남자로서 바람 난 여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표현하고 있고,  이하석 시인은 처용을 미군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미군과 동거하는 엄마의 딸인 ‘처용의 딸’의 심리 상황을 말더듬 형식으로 진술하고 있다. 딸을 통해 진술되는 엄마의 삶은 노랑머리 아기를 낳아 돌로 눌러 죽여야 한다. “이 시인은 어린 시절 전후 황량함 속에서 만난 ‘그 아이’에 대한 경험을 설화를 수용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창작자는 삼국유사의 현장을 찾아다닐 때, 울산의 옛 개운포 지역 바닷가 둔덕에 앉아 처용을 생각하다가, 문득 그 계집애를 떠올리면서, 처용의 딸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그러나 선행 텍스트인 처용설화와는 서사 구조나 의미가 전혀 상관없음을 알 수 있다.”[공광규]

 이처럼 한 편의 설화로 각자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이미지화로 그려진다는 것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일까? 강 현국 시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스토리 텔러가 일연스님이라고 강의하신다.

6. 인각사 돌부처의 돌아가는 길

 몇 년 전 문인수 시인이 대구 모 대학에 강의하러 오신 문 정희 시인과 같이 인각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한다. 코도 깎여지고 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돌부처가 이제 땅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그러나 아직 미완성이다 라는 얘기 나누었다고 한다. 그 해 문인수 시인은 ‘미완이다’를 발표했고 그 다음 문정희 시인이‘돌아가는 길’발표하여 현대불교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는 재미있는 얘기를 생각해본다. 시인들은 같은 시간 같은 사물을 보면서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창조물을 생산하는 능력에 새삼 존경을 보낸다. 인각사는 일연스님의 어머님이 계시던 곳이어서 스님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기도 하여 스님의 어머니 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 낡은 돌부처는 바로 이 어머님 상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스님은 경산 자인서 태어나셔서 수련은 여러 곳에서 하셨고 삼국유사 집필은 대구 비술산 아래 유가사 절에서 하셨다 한다.

 미완이다
                 문인수

어딜 멀리 갔다가 되돌아가는 길인가 보다.
인각사 돌부처 한 분이 천 년 비바람에 많이 닳았다.
거의, 한 덩어리 바위에 가깝다.

그 앞에서 찍은 내 독사진이 있다.
왕복 어디쯤서 만나 잠시 겹친 것일까, 들여다보니
둘 다 미완이다. 지쳐
돌아가는 길이 함께 적적, 막막할 뿐이다.

  *정신과 표현, 2003년 11-12월호
   시집 ‘그립다는 말의 긴 팔’ 2012년 서정시학

7. 사랑은 환상을 먹는다

 그 동안 삼국유사 연구반에서는 [삼국유사 권 2 기이奇異, 제 2 ‘진성여왕 거타지 조’]를 이 하석 시인이 연구 발표하였다. 거타지는 진성여왕의 계자季子아찬 양패가 당에 사신으로 갈 때 호위하던 궁사였다고 한다. 영웅에 의한 괴물퇴치 설화에 해당한다. 서구의 설화 중 어머니를 위해 메두사를 잡는 또 바다괴물의 제물로 바쳐지는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는 페르세우스의 영웅담과 유사한 용녀를 구출하여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심청이 연꽃에 싸여 환생하는 임당수가 지금의 백령도와 공통적인 무대라고 한다. 

 신라 말의 어지러운 기운을 잠재우고 새로운 건국 기운을 부추기기 위해 만들어져 유포된 안심설화라고도 한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쓴 윤후명의 소설 ‘꽃의 변신’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사랑은 환상을 먹고 살며, 그 환상의 근거는 어디엔가 있을 수밖에 없다’ 며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 구절처럼 그 꽃을 찾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고 되뇌이는 내용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거타지가 되어 그 꽃가지를 꺼내게 될 때 우리는 문득 환한 꽃의 말을 듣게 된다는 내용의 발표를 듣고 모두 후~ 한숨을 내쉰다. 시인들은 아직도 사랑이란 말에 그리움과 애잔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거타지와 꽃으로 시 한편 구상하고 있는지 김 영근 시인의 눈동자가 몽롱해지고 있다.



연리지를 위하여


두 그루의 나무가 각기 다른 언덕에서 
서로 다른 하늘을 바라보거나
서로 다른 비바람을 먹고 자라다가
결혼이란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
하나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어라

물론 처음엔 
내 하늘 빛깔은 코발트색이었는데
아니 난 무지갯빛이었는데
다투기도 하겠지, 그러나
각기 다른 두 하늘 색깔을 하나로 섞어
전혀 색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정성으로 엮어나가면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러면서 두 사람의 마음과 시야를 합해 
더 넓고 깊은 하늘마음을 공유하여
한 가정이란 울타리에 사철 꽃 피어나는
봄밤을 이루리니

힘들지만 서로 기대어 맞추어나가는 길 든든하니
젊은 두 그루의 행복을 비는 
부모 마음 또한 축복이어라 
 



늙어가는 시간이 아름다워지려면



     꽃들의 꿈과 생존전략
                              정 숙 시인
 사층 베란다 꽃밭에는 더덕, 마, 나팔꽃 줄기들이 학 쟈스민 줄기를 감고 오르고 있다. 완두콩과 여자 열매까지 싹을 틔워 도라지 잎을 휘감아 창문 틈 유월 바람을 손짓해 부르고 있다. 시집살이 때 이불호청 두드리던 다듬잇돌을 밟고 선 화분엔 토란잎이 초여름 갈증을 견디느라 허리 휘청거린다. 작은 돌절구엔 수련과 창포가 그러고 보니 참 두서없는 묵정밭이다. 어처구니 빠진 맷돌 위짝 구멍엔 분홍 사랑초 꽃들이 흐드러져 어둡던 시절 추억의 보석 상자를 열어 보인다. 오르기를 포기한 나팔이 화분 밑바닥에서 꽃 한 송이 급하게 피워 올려놓고 나팔을 불고 있다. 성공한 인생처럼 보이는지 삐쩍 자라 쓰러지고 있는 도라지가 부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서로 정다워 보이는 저 꽃들의 사회 속에도 분명 치열한 암투가 있을 것이다. 
 그 그늘에서 허리 한번 펴지 못하는 두메달맞이가 신라 시대 처용아내를 대변하는 시 한편 토해내고 있다. 봄비는 추적추적 임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한숨
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봄밤이라예/ 안그래예? 
필자의 졸시 휴화산이라예 (시집 신처용가 중) 한 부분이다. 꽃을 보면서 정서적인 안정을 찾아야 하는데 시인은 왜 쓸데없는 상상과 사유로 말없는 사물들의 입술 달싹이는 게 보이는가. 
 그러나 필자의 인생은 시가 없었으면 적막강산이었을 것이다. 그 어둠의 늪에서 빛이 되어 준 것은 어릴 때 아버지의 소설가가 되라는 말씀이었다.  “그렇지, 내게도 꿈이 있었지” 그 꿈의 실마리를 찾아 시공부도 하고, 인터넷으로 가르치기도 하면서 시극 극본도 연출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꿈의 정원을 가꾸다 보니 원망도 가슴앓이도 사라졌다. 몸도 마음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우울증 등 여러 가지 병이 생긴다. 시를 쓰면서 말문이 열리고 세상 바라보는 눈이 밝아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선생님 그리고 책에서 다른 사람이 느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던 소극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유하면서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앞으로 긴 노후를 위한 생존전략의 한 방법으로 일기라도 좋으니 글 쓰는 적금 통장 하나씩 가지면 훨씬 건강하고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시란 사물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일이라며 아흔의 연세에 시집을 출간한 어느 할머니, 행복해하던 표정이 잊어지지 않는다. 










문화산책] 새벽 웃음소리




2013-07-12 07:34:39  

 


 

          
여명을 기다리던 살구나무가 사람 발자국 소리 반가운가 보다. 노랗게 익은 열매 툭! 떨어뜨린다. 아직 새벽 다섯 시도 되지 않았는데 벚나무에 앉았던 새들이 서로 깨우느라 자지러진다. 먼저 손 내미는 버찌와 살구로 입가심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범어산을 향하는 부지런한 부부의 두런두런 얘기 소리 정겹다. 

언니의 전화 성화에 마지못해 구민운동장에 나오긴 했지만 ‘난 아직 이 운동을 할 나이가 아닌데’ ‘난 골프를 치는데, 쪽팔리는데’ 불쑥 일어서는 자존심을 누르며 게이트볼 룰에 대해 시큰둥하게 듣는다. “야야, 이것도 다 늙어 늦게 하면 괄시받는다. 미리 배워야 선수도 되고 대접받지. 정신 깨워 1게이트부터 통과해 봐라!” 차츰 동료 선수들이 나오니 초보는 얼른 버려두고 하하 호호 유쾌하게 게임을 즐긴다. 혼자 심심하던 차 약간 등 굽은 할머니 한 분이 함께 놀자며 “세 개의 게이트를 통과하려면 열 개의 공을 번호 순서대로 쳐야 하고, 남의 공에 잡아 먹히지 않을 위치에 내 공을 놓아야 하고, 또 남의 공을 잡아 먹을 연구를 해야지” 하신다. 아구! 아침부터 이 잔소리를 다 들어야 하나? 몇 번 공이 몇 게이트 통과했는지 다 기억하는 대단한 어른이시다.

노인들 게임이니 아주 쉬운 줄 알았더니 차라리 골프는 단순한 운동. 게이트볼은 거의 매일 만나 수다도 떨고 머리를 굴려야 하니 외로움은커녕 치매 걱정 없겠고, 햇살과 같이 연습할 수도 있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엔 운동기구에 앉아 요즘 세상을 듣는다. “자식은 결혼해서 내보내면 남이야, 요즘 요양원에 보낼까봐 아프다 소리도 못해! 아주 비싼 요양원에 가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지.” 아직 예쁜 할머닌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참 씁쓸하다. 하모니카로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을 불며 돌아오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작은 리어카를 끌며 자신의 포장마차로 다가간다.

“아들과 손자들 그 목소리와 눈빛이/ 빛나는 별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지만/ 그들은 끝내 별빛 한 번 보여주지 않는다”

필자의 졸시 ‘요양원에서(유배시편)’의 한 부분처럼 하루가 십년 같은 병상, 서로 침묵으로 눈길을 피하며 레테강 너머 세상을 애절히 기다리기 전 새벽부터 친구들끼리 농담도 곁들여가며 딱! 치는 소리로 아침 해 밝히는 이들이 현명해 보인다. 곧 다가올 네 미래라며 초침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야꼬! 저 퍼런 오동낭게 잎사구 벌씨로 노오라이/ 뚝! 뚝! 눈물 흘리고 있네”(필자의 시 ‘천지삐까리 아입니꺼’ 중에서) 

정숙<시인>

    
알바트로스의 날개

새벽 잔디밭에서 희색 빛 깃털 하나 주웠다. 9 센티 정도 가늘고 길쭉하다. 누가 떨어뜨린 것일까? 혹 보름 달밤에 만나자던 그, 혼자 서성이다 떠나느라 섭섭한 그리움의 표시일까? 엉뚱한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둘기 두 마리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어쩜 그의 가슴에 꿈의 깃털이 나 있었는지도 모르지. 보들레르가 시인은 날개 길이 3,5미터나 되는 알바트로스 새라 노래하지 않았는가.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그의 시 알바트로스 중 마지막 연이다. 시인의 날개 거대하지만 지상에 유배되면 날개 때문에 걷지도 못한다거나 또는 애인을 껴안으려다가 그 몸에 해를 입히는 가위손 같은 안타까운 처지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꿈을 가꾸려면 훨훨 상상의 날개를 펼쳐야 한다. 그 날아오르는 힘이 시도 쓰고 창조적인 경제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발명가도 과학자도 이런 상상력이 기본이라고, 장마철 홍수로 난리인 이 때 쓸데없는 얘기나 하는 필자의 부끄러움 챙 넓은 모자 속에 감춘다.
고 스티브 잡스는 창조란 여러 가지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일이라며 직원들에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라고 했다고 한다. 네 살 된 손자가 흰 바둑알을 찹쌀 수제비로 볼 수 있는 것도 순수하기 때문에 부끄럼 없이 생각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라면서 눈치 보느라 그런 묘사력을 점차 감추게 된다. 필자의 시도, 생각도 왜 남들과 다른 가 고민하면서도 별나다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텐데, 그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는데 바람이 손바닥에 놓인 깃털을 휙! 낚아채 달아난다. 
창의적 발상의 전환은 용기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이 사물을 대할 때 마다 깊은 사유와 비유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미래 인재가 되리라. 다음은 신라 향가 중 처용가를 해학적으로 패러디한 필자의 시집 신처용가 중 대구 아리랑의 한 부분이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 케심니꺼?/웃기지 마이소/시절이 하 좋아 해진 곳 잘라뿌고 기부믄/새기 된다카길래/늘 봄꽃으로 향하는/서방님 눈길 쫌 돌리볼라꼬/애써 다리고 기벗는 얼굴이라예/이 십여 년 전 필자는 감히 자신이 처용아내라며 성형을 노래하고 있다. 얼굴을 다리고 깁는 기술이 이렇게 자연스런 시대가 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곧 여성의 세상이 된다는 걸 경고한 시집이었는데 요즘 갈비 집에 참말로 꽃바람만 바글거린다.


   


 

     모무를 그리면서

중부 지방은 물 폭탄 세례를 받고 있다는 뉴스, 외딴 과수원에서 소나기 오는 밤이면 어른 등에 업혀 마을로 피난 가던 시절 떠올리는데 초사흘달이 물끄러미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를 지은 월명대사가 피리를 하도 잘 불어서 달이 가던 길 멈추었다는데 어디서 누가 피리를 불고 있는가? 창 바깥에 귀를 기울여본다. 아직 매미가 울고 있다. 소나기 한 줄기 내려달라고 빈다면 죄짓는 일일까? 
산사태가 폭삭 내려앉힌 집터에서 주인은 어이없어 웃고 있다. 갑자기 무인고도에 유배당했을 때보다 더 참담한 심정이리라. 초등학교 시절 사라호 태풍이 작은 아버지를 오목천 냇물에 휩쓸고 가는 모습 보며 발만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그 냇물에서 혼을 건지느라 밤새 둥둥 굿하는 소리 평생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두려움과 신비감 때문에 지금 무작정 승무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승무는 스님들이 수행의 과정이자 불법 전하는 포교의 도구 또는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추는 천무, 무당춤이란 뜻도 되겠지만 필자에겐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춤사위로 보인다. 몸의 떨림이 현란할수록 그 염원은 더욱 간절해 보이기 때문에 신들린 듯 그 역동이 현대시의 능동적인 묘사와 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 모母무舞라 불러본다.
사물의 근본을 바라보는 시의 직관력을 기르기 위해 관찰력이 기본인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 동안 사물의 겉껍질도 바로 보지 못했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벚 꽃잎이 흰색이 아니라 옅은 살 분홍빛이라는 것도. 
새삼스레 다시 벚꽃을 바라보면서 예쁘다! 꽃이 하얗게 팝콘처럼 피어나네! 하던 상투적인 표현이 ‘저 꽃송이가 뿌리의 땀방울이네’ ‘꽃이 하느님의 똥’이라고 볼 수 있다면 사물의 근본 뿌리를 찾기 위해 상상력의 삽질을 얼마나 깊이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피카소가 있고 일반인들이 어렵다고 보는 현대 시인들의 낯선 시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아침 7시, 시원한 바람을 가둔다며 집안의 모든 창문을 닫다가 ‘그는 아침마다 바람을 가둔다. 아내의 체온이 더 이상 더워지지 않도록 문틈까지 꼭꼭 눌러 점검한다.’라고 쓰다 보니 ‘어라! 이거 재미있는 시 한편 되겠네, 당장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희한한,/참 희한한 제비라 카이예/‘아,  여자가 화투판이나 제비 찾아다닌다고 이따구 시 쓰니 문을 단디 처닫을 수밖에’부부란 이 맛으로 사는 걸까?




  




  얼음벽을 칼날로 밟다

새벽 5시, 열이레 달이 범어산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십년 동안 이 시간이면 에어로빅 준비하러 올라온다는 아주머니가 틀어놓은 사랑의 조건을 듣고 있었는가. 같이 허우적대며 춤을 추었는데 달은 어느새 숨어 버렸다. 하늘의 입인 숲은 짙은 녹색 잎 사이 노란 단풍으로 칠월 막바지 시간을 말해준다.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 마음을 다잡게 하는 숲은 폭염을 예고하며 해를 서서히 밀어 올린다. 문득 빙상장 냉기가 그리워진다.
여러 종류의 운동을 해봤지만 뿌연 안개 속에서 두 팔로 날갯짓하며 네 박자로 쭈욱 쭉 미끄러지면 백조가 부럽지 않았다. 손끝 발끝 긴장시켜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칼날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전화 한번 걸기도 힘들던 약한 마음이 쾅쾅 세상을 마음껏 밟는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를 얻는다. 무슨 스포츠건 화병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산길에서 마주치면 모두 해맑은 웃음으로 인사하는데 왜 세상사람 사이 얼음벽은 녹여버리지 못할까?
남극의 빙산이 다 녹아내리면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그 얼음이 있어 사람도 지구도 긴장시키나 보다. 그래도 처용아내는 그 벽을 없애려고 월궁 카바레에 처용을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도깨비들 꼬시가 요술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물리머, 물리머 우얍니꺼,예?/우야꼬,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이제 세상이 바뀌어서 남편이 아내를 찾아 회관으로 모텔로 헤매야한다니!
칠월 입김이 너무 뜨거워서 또 헛소리, 고개 드는데 황금 네거리 지상철 철로가 하늘을 가로 지르고 있다. 하늘 허리를 뚫는 일은 쉬울까? 오늘도 가족을 위해 직장에서 하루의 청석산을 뚫고 있을 지하철 같은 가장들을 생각한다. 날마다 헛바람 등에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다고 허술한 세상 벽을 관통할 수 있으려는지 무작정 헉헉 달려야 하는 직장인들의 비애. 
어른들도 열심히 살았기에 연금 등 혜택을 받고 있지만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렇다고 고령화를 탓할 수는 없고, 저 출산을 탓하려 해도 아예 독신을 주장하는 젊음이 많으니 후대의 노후가 걱정이다. 올해 백수인 친정어머니 시골에서 혼자 살며 경로당도 나가신다. 많이 움직여야 자식을 괴롭히지 않는다며 손수 담근 된장을 담아 주던 마당엔 사랑초 꽃이 환했는데 지금쯤 모닝커피를 들고 계실까? 젊을 때 과수원을 많이 걸었던 탓인지 지금도 매일 스트레칭을 하신다.   













     
 

  허영만의 만화‘식객’중에서

개보다 못한 사람인가? 한 여름 고뿔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방콕이나 하면서 얼마 전 몇 시인들과 즐긴 동해 푸른 파도를 상기해 본다. 감포 가는 길, 추령제 부터 처용아내의 고향이라며 자유당 시절 이 첩첩산중에서 투표함을 바꿔치기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 주절대다가 문득 시詩라는 괴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것은 절대 자랑이 아니다. 시를 쓰다보면 이런 일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을 뿐. 가끔 자신이 신라 때 처용아내의 환생이라는 믿음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화냥년이라 욕 듣는 처용아내를 살리겠다고 시작한 첫 시집 ‘신처용가’발표 이후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구 경북 사투리 들이 시어사전에 많이 등록되었고 특히 고 조병화시인은 전화로 ‘휴화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좋아요. 계속 사투리 시 쓰세요.’ 격려말씀에 신바람나기도 했다.  낭송가들은‘가라히 네히라고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웬생트집중 부분)으로 만인을 웃기기도 했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시극 신처용가를 극화한 ‘봄날은 간다’ 공연에 열연해준 한국낭송문학회, 초파일 전야제행사로 역신과 사교춤까지, 멀리 강원도 만해축전까지 시극으로 추억의 한 페이지에 동참해준 모든 시인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시집 한 권을 이십년 넘도록 우려먹으니 이것이 시의 대중화일까? 또한 ‘위기의 꽃’이란 시집에 나온 ‘숯’이란 시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 중 숯가마 이야기 부분에 실렸을 뿐 아니라 ‘삼초 삽 삼겹살’ 전국 식당에 만화로도 걸려있다. 
주검이/주검을 지글지글 태우는/둘레에 늘어앉아/사람들은 하루의 허기를 채운다./ 졸시 ‘숯’ 부분
뜻하지 않은 이런 사건들이 시 쓰는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이보다 감동을 주는 시 한편 쓰는 일이 평생 꿈이기에 오늘도 사막과 묵정밭에 유배되어 미끼도 없는 낚시 줄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 한편 잘 쓰면 상금이 일억이다. 그 정도까지 바랄 형편은 되지 않으나 대구문학아카데미에서 또는 전국인터넷으로 시를 가르치다 보니 초 중 고등학교, 도서관 등에서 사람과 정을 나누는 일이 즐거움의 하나였다. 일반인 대부분은 시인이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몇 푼 상금에 눈 어두워 서로 편 가르기 하는 시인사회, 그 보다 멋진 시 한 편 쓰는 일 그 보다 소나기 더 시급하다 중얼거리는데 천둥이 우르르! 비바람을 몰
아친다. 이제 또 벼락이 떨어질까 걱정이다.









    


 만세! 그 시절

현대불교 문인협회 만해축전 행사에 참여했다. 시인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자부심을 느끼고 앞으로 어둔 사회를 위해 어떤 시를 써야하는가 곰곰 생각하게 하는 행사였다. 
님은 갔습니다/아아 사랑하는 나의님은 갔습니다/ ‘님의 침묵’이란 시의 만해 한용운 스님은 일제강점기 독립선언문에 참여한 33인 중 끝까지 친일로 돌아서지 않고 자주독립운동에 헌신 하신 분, 그분을 기리기 위해 전국 시인들이 모여 축제의 불꽃 터트린다. 곧 8,15 광복절이다. 이맘때면 목 놓아 만세 부르던 그 기쁨 잊어버리지 않으려 친구들과 계곡으로 물놀이 가시던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이 난다. 삼대독자로 징용 가셨는데 원자폭탄 떨어질 때 히로시마 가려고 차를 기다리다가 바닷물로 뛰어드셨다. 생전에 원폭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해 NHK방송에서 인터뷰도 하시고 많은 노력을 하셨기에 지금 그 분들 조금이나마 위로금을 받는 것 같아 다행이다. 
대한민국 문화와 역사를 논하려면 불교를 빼놓을 수 있을까? 종교와 상관없이 위급할 땐 신념을 말씀이나 승병으로 목숨을 걸었고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국익을 살리는데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훼손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문인들 중엔 스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특히 불국사 성타스님은 수필로 동화사 성문스님은 신춘문예 시로 등단하셨다고 한다. 또한 반월당에 있는 보현사가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고 문경현 사학자가 밝히고 있어 곧 사적비도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주지 지우 스님은 시도 쓰지만 부처님의 시와 시인들의 시로 법문을 하고 계신다. 시가 곧 깨달음이라며 법당 계단에, 마당에 벚나무나 연못 대신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 회원들의 시화전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팝핀 현준의 무대를 보았다. 볼품없는 자그마한 체구가 작은 의자를 끌고 춤을 추는데 눈시울을 적시면서 ‘아, 저것이 인생이다’ 하고 느낀바 있어 ‘인생’이란 시 한편 써 보았다.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죄인처럼 의자에 끌려 다닌다/어린 엉덩이 하나 걸칠 수 없는/작은 의자/평생토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시는 내면 성찰로 창조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지금 전력난이라는데 글을 쓰거나 어느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에어컨 켜지 않고도 잘 견딜 수 있다.방학 때 자인 장에서 고운 천을 떠다 주던 부모님이 생각난다. 각자 마음대로 옷을 만들었다. 서툴지만 미싱 돌리며 사상계 속 함석헌을 읽으며 땀투성이의 세상을 훔쳐보기도 했다.
     왜?
 
친정 가는 길 자인 계정 숲 앞 새못엔 연꽃들이 한 여름 대낮의 관능경을 펼치고 있다. 실한 연밥을 얻기 위한 연蓮들이 처용무를 추는 한 귀퉁이 한 장군의 말 무덤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침묵한다. 초등시절 옥란이와 화해하던 못 둑엔 수줍은 편지 사연들이 사금파리처럼 빛나고 있다. 
저 아름다운 꽃들을 두고 하필 왜 가시연꽃을 찾는가? 올해도 우포늪은 가시투성이 몸, 류관순 언니 같은 가시연을 잘 꽃피우고 있을까? 시인이 된 뒤 처음 가 본 우포늪엔 대지의 여신인가? 치마폭 한 없이 넓은 여자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잘 흘러가던 낙동강 한 줄기가 왜 늪이 되었을까?
아하!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으니까 꽃 한 송이 피워보자고 넓고 넓은 바다로 가는 꿈을 멈춘 것이다. 무릎을 치면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우포늪에서’란 초고 몇 줄 쓰고는 좋아했던 그 시절 사십대, 모든 감각이 다 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펄펄 뛰고 있으니.
어쨌거나 그 당시 늪에서 바람 따라 흘러 다니기보다 오로지 감동적인 시 한편을 얻기 위해 몸과 마음을 집중하겠다는 시인의 각오와 자세를 보았던 것이다. 사대가, 삼대가 한 집에서 살아야하는 필자의 운명을 변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련한 맏며느리를 시인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신 시어머님께 늘 감사드린다. 딸이 소설가 되길 비는 아버지의 기대가 무거워 현모양처가 되겠다며 시집이란 늪에 안주하려했으니, 아버지 생전에 시인의 모습 보여드리지 못하고 그 생속 많이 썩혀드린 것 날마다 죄송스럽다.
다시 새못을 바라보니 진흙탕 속에서 고운 꽃송이 받쳐 들고 있는 연들이 보살님으로 보인다. 왜? 저렇게 서 있을까? 곧 사라질 목숨 햇살에 한  번 더 빛나게 하려고? 이 세상을 이어가는 힘인 그런 자비와 사랑을 밟히는 풀꽃에서도 찾아내는 일이 시인의 일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순수 서정시인 소월도 ‘밥과 자유’란 시로 사회 어둠을 따지기도 했다. 이육사나 이상화처럼 나라를 위한 지사시인의 길을 생각하는데 그가 잘못된 성형에 우는 뉴스를 얘기한다. ‘예쁜 쌍꺼풀은 물 튀는 변소가 있는 시골과 모기와 며칠 씨름하면 생기는데’ 다시 때밀이 근성이 날을 세운다. 정치도 종북도 아닌 때밀이저울이 돋보기를 든다. 바람이 이슬 안은 연잎을 흔들자 눈이 부셔서 정신을 찾는다. 까막새 늙은 소나무가 이 더위 잘 견디시겠지?











 만세! 그 시절

현대불교 문인협회 만해축전 행사에 참여했다. 시인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자부심을 느끼고 앞으로 어둔 사회를 위해 어떤 시를 써야하는가 곰곰 생각하게 하는 행사였다. 
님은 갔습니다/아아 사랑하는 나의님은 갔습니다/ ‘님의 침묵’이란 시의 만해 한용운 스님은 일제강점기 독립선언문에 참여한 33인 중 끝까지 친일로 돌아서지 않고 자주독립운동에 헌신 하신 분, 그분을 기리기 위해 전국 시인들이 모여 축제의 불꽃 터트린다. 곧 8,15 광복절이다. 이맘때면 목 놓아 만세 부르던 그 기쁨 잊어버리지 않으려 친구들과 계곡으로 물놀이 가시던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이 난다. 삼대독자로 징용 가셨는데 원자폭탄 떨어질 때 히로시마 가려고 차를 기다리다가 바닷물로 뛰어드셨다. 생전에 원폭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해 NHK방송에서 인터뷰도 하시고 많은 노력을 하셨기에 지금 그 분들 조금이나마 위로금을 받는 것 같아 다행이다. 
대한민국 문화와 역사를 논하려면 불교를 빼놓을 수 있을까? 종교와 상관없이 위급할 땐 신념을 말씀이나 승병으로 목숨을 걸었고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국익을 살리는데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훼손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문인들 중엔 스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특히 불국사 성타스님은 수필로 동화사 성문스님은 신춘문예 시로 등단하셨다고 한다. 또한 반월당에 있는 보현사가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고 문경현 사학자가 밝히고 있어 곧 사적비도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주지 지우 스님은 시도 쓰지만 부처님의 시와 시인들의 시로 법문을 하고 계신다. 시가 곧 깨달음이라며 법당 계단에, 마당에 벚나무나 연못 대신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 회원들의 시화전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팝핀 현준의 무대를 보았다. 볼품없는 자그마한 체구가 작은 의자를 끌고 춤을 추는데 눈시울을 적시면서 ‘아, 저것이 인생이다’ 하고 느낀바 있어 ‘인생’이란 시 한편 써 보았다.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죄인처럼 의자에 끌려 다닌다/어린 엉덩이 하나 걸칠 수 없는/작은 의자/평생토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시는 내면 성찰로 창조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지금 전력난이라는데 글을 쓰거나 어느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에어컨 켜지 않고도 잘 견딜 수 있다.방학 때 자인 장에서 고운 천을 떠다 주던 부모님이 생각난다. 각자 마음대로 옷을 만들었다. 서툴지만 미싱 돌리며 사상계 속 함석헌을 읽으며 땀투성이의 세상을 훔쳐보기도 했다.



       징소리 

‘들리능게? 저 시간의 수레바꾸 구불리는 소리’귀뚜라미가 가을을 끌고 오느라 소란스럽다. 계절은 여름바람을 서늘한 온도로 바꾸면서 징을 치고 있다. 사람의 가슴은 징이고 시간을 재촉하는 저 소리는 징채여서 휴우! 한숨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내 몸이 징이고 내 말은 징채가 될 수 있구나 깨달았을 때 참 뿌듯했었다. 시창작반 강의 때 ‘제 강의를 듣는 여러분은 지금 징이고 제 말은 징채입니다. 그 징소리의 떨림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했을 때 ‘선생님 그 말씀 들으니 감동이 소름으로 돋아납니다.’하던 분들이 그리워진다. 그 그리움이 징채가 되어 처용아내의 무딘 가슴을 친다. 가르치는 게 곧 배움의 길 아닐까?
그 당시 쓴 시가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서’이다./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그 날갯죽지엔/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부분] 참고 참다가 터뜨리는 울음, 한이 은은한 떨림의 징한 징소리로 남는다는 아버지 말씀의 거북징채를 그리는 졸시 이다.
지금 강원도 만해마을박물관 2층엔 영주 부석사를 ‘선묘의 섬’으로 묘사한 필자의 시가 새겨진 징이 전시되어 있다. 대단한 시인들의 징 23구 가운데 하나여서 송구스럽기도 하다.
이런 사유를 하기 까지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국문학과 김춘수 시인 그늘에서 시론을 공부하고 국어교사로 재직했지만 글쓰기엔 자신이 없어 늘 부끄러웠다. 시집살이 15년 뒤 친구와 찾은 곳이 20년 전통의 ‘대구문학아카데미’였다. 고 박주일 시인을 만나 수치심 다 버리고 미련스레 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시는 감동을 주거나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며 역량 있는 시인들을 많이 배출하셨다. 선생님 생전에 시창작반을 필자에게 맡겨 주셔서 효성병원 별관에서 시작한 강의가 벌써 십년을 넘었다. 시는 바로 삶이다. 그 체험의 창조적 묘사를 위해 고정관념을 깨고 사물의 밑뿌리를 꿰뚫어 보는 상상력을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시인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직업 학력 없이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다.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다 흙이라 하는구나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옛 시조만 믿고 기다린 세월,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시마을, 포엠토피아, 대구문학아카데미 정 숙 반에서 창조적 삶을 개척한 전국 청향시문학회 회원, 시학교실, 주위의 징과 징채님들께 깊이 머리 조아린다.




삼국유사 속에서 시의 씨앗을 찾다


1. 일연스님께
스님은 제 시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신 분 중의 한 분입니다. 천년도 넘어 그 아득한 시대에 어떻게 그런 설화들을 일일이 찾아 그것도 이두문자로 기록하려는 마음을 가지셨던 건지요? 특히 스님의 탄생지는 원효 설총 일연을 삼 성현으로 모시는 삼성산이 있는 경산시 자인면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지요. 저는 시를 공부하는 분들께 삼국유사를 꼭 읽어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 속은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연출가이고 극작가인 이윤택의 ‘내 인생의 책](5)’에서 “나의 시적, 그리고 연극적 상상력은 <삼국유사>에서 나왔다. 내가 만일 소설가였다면, 나의 소설적 상상력은 삼국유사에서 나왔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 <삼국유사>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삼국유사>가 과연 그만큼 대단한 책인가? 역사서로는 오히려 <삼국사기>가 더 역사적 신빙성이 있는 정통서가 아닌가?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삼국사기>에는 단군신화가 없다. 만일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단군왕검의 자손인 줄도 몰랐을 것이고, 호랑이와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으며 동굴 속에서 지낸 내력도 몰랐을 것이고, 단군이 곰의 자손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디서 온 자손인지 어떤 문화적 코드를 지닌 인종인지 그 원형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신화가 수록된 경전이며 시학서이다. 우리 시의 원류가 ‘도솔가’라는 것, 월명사라는 위대한 시인이 존재했다는 것을 <삼국유사>는 증거한다. <삼국유사>는 그 자체 한국공연예술사이기도 하다. ‘헌화가’ ‘처용가’ ‘서동요’ ‘해가’는 그 자체 극적 구조를 지닌 연행시다. 이 연행시에 악가무가 붙고 자연스럽게 극적 행위를 요구하는 스토리텔링이 곁들여진 것이다.<삼국유사>는 제도권적 시각에서 벗어난 한국의 변방 역사서이기도 하다.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제4의 제국 가야는 실종되었을 것이고, ‘구지가’가 없었더라면 거북신을 섬기는 해인족이 한반도 동남쪽 원주민으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삼국유사>가 존재함으로써 고대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건국신화와 문명사를 갖춘 한국인의 삶을 기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대학시절 삼국유사 원본 강의 시간에 고 서원섭 교수님은 칠판에 작대기 네 개 그어 두 개는 처용아내 것, 두 개는 역신의 다리 이처럼 친절하게 설명하시는 모습‘ 참 유치하시다!’ 웃기도 했었지만 결혼하고 시집을 살면서 상실된 자아를 찾으려 결심하던 때 시의 불씨를 먼저 붙여주던 것은 처용가였습니다.

 처용아내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어느 시전문지에 실린 시 가운데 처용아내를 화냥년이라 계속 읊조리는 데서 반발심을 갖게 되었고 처용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는 자유연애 시대라서 바람이 들었다 로 보기보다 좋은 씨를 받아 종자 개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제가 살아온 현대사회는 그렇지 않았지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은장도를 목에 걸어주며 수많은 여성들을 울려 울화병을 앓게 했지요.
처용아내가 바람을 피기보다 열병에 걸리거나 문정희 시인의 시 ‘남자를 위하여’ 처럼 월경, 서답이 있어 처용을 받아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도 못 참아내는 남성 처용의 상상력이 오해는 아닌지 아니면 필자의 ‘신처용가’에서처럼 처용이 한량인지라 열병에 든 아내를 다른 사내와 놀아난다로 노래한 것은 아닌지요. 변변찮은 상상력으로 스토리텔링을 한 것이 제 첫 시집 연작시 ‘신처용가’지요. 그 당시 시로 소설을 쓴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스토리텔링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신라 향가중 처용가는 아내를 빼앗긴 분노가 단순해보이지만
  
동경 밝은 달밤에 밤드리 노닐다가들어가 자리 보니 가라리 네히러라둘은 내해요 둘은 뉘해언고본디 내해다마는 앗아날 어찌할꼬

그러나 악장가사에 실려있는 고려가요 '處容歌'는 처용이 疫神을 몰아내는 일종의 무가로 역신에 대한 처용의 분노가 더욱 절실하게 나타나 있어서 희곡적 분위기가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 처용과 처용아내 누구 편을 들 것인가
이런저긔 處容아비옷 보시면 熱病神이아 膾ㅅ가시로다 千金을 주리여 處容아바 七寶를 주리여 處容아바 千金 七寶도 말오 熱病神을 날자바 주쇼셔 山이여 히여 千里外예 處容아비 어여려거져 아으 熱病大神의 發願이샷다

 
그래서 그런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신처용가’ 로 시극을 한다며, 시를 가지고 놀 줄도 알아야한다면서 만해마을과 여러 무대에서 청소년 시극 지도도 하며 전국행사를 휩쓸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가무와 노래가 질병을 몰아내는 주술적 양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여성을 억눌렀으니 이제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이들이 처용아내를 들먹일 때가 된 것이지요. 여기서 처용아내라 자처하는 필자의 [신처용가]에서 처용아내의 변을 들어보면 94년 그 당시에는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 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자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꺾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 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웬 생트집?--처용아내 1 ]



다시 외로움에 지친 봄밤의 처용아내 넋두리를 들어보면 부부사이엔 ‘봄밤이라예’ 한 마디로 
오늘 밤 아내가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을 원한다는 사인으로 눈치 차려야 할 것입니다.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休火山이라예—처용아내 2]


 1994년 ‘시와 시학’에 처용아내 연작으로 신작특집 5편 발표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것으로 1996년 첫 시집 ‘신처용가’가 발간되었습니다. 다음 시는 문정희 시인이 ‘남자를 위하여’라는 작품에서 처용아내가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 몸[월경]을 하고 있었다고 처용아내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그 며칠을 견디지 못하는 남자의 욕망을 비꼬고 있는 시를 살펴보면 

아직도 저를 간통녀로 알고 계시나요.
[생략]
아시다시피 제 남편 처용랑은 기운찬 사내,
제가 안고 있는 병을 샛서방처럼이나 미워했다오.
그날 밤도 자리 펴고 막 누우려다
아직도 몸을 하는 저를 보고 사립 밖으로 뛰어나가
한바탕 춤을 추더라구요.[생략]

[남자를 위하여]  문정희 | 민음사 | 1996

이처럼 향가를 실은 삼국유사가 시인 뿐 아니라 문학인들에게 시적 상상력의 씨앗을 뿌려주고 있는 것이다.    

3. 삼국유사 연구반 풍경

2년 전부터 대구 시전문지인 ‘시와반시’의 발행인인 강현국 시인과 이하석 시인을 좌장으로 하여 박정남 박이화 황명자 이자규 홍영숙 김영근 박순남 정 숙 등 시인 여러분들이 모여 매주 삼국유사에 대한 연구 발표를 하고 옛 자취를 찾아 경주 쪽으로 종종 답사를 하기도 합니다. 김영근 시인의 연구발표에서 [연오랑과 세오녀]가 같은 까마귀 오가 들어있기에 남매인가? 부부인가? 정 숙은 죽지랑을 사모하여 쓴 득오화랑의 노래가 [모죽지랑가]가 서정시인가? 추모시인가? 박정남 시인은 [박혁거세] 연구에서 행운을 가져다 주는 왕이란 뜻으로 고대 타밀어에서 왔다고 추정하기도 하며 이하석 시인은 [지철로 왕]의 음경이 45센티였다는 등 신라시대 그 때도 남성 심벌의 크기로 남자의 힘을 과시했다는 것과 특히 그에 맞는 왕비를 찾다가 인분이 북 크기 만한 여자를 왕비로 삼았다는 내용에 서로 많이 웃기도 하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또한 황명자 시인의 [김현감호] 에서는 그 당시 호랑이가 등장한 설화들을 조사하여 호랑이가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그 때도 참여시인들 처럼 권력자들을 비판할 줄도 알았다는 내용에 서로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홍영숙 시인은 선화공주와 사랑을 나눈 [서동요]의 서동이 백제 무왕이 아니라 무령왕이라는 설에 대해 발표하고 박순남 시인은 월명의 [도솔가]를 이윤택 연출가의 [도솔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예로 들어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와 신라의 정신을 집약했던 화랑도가 인간 중심주의를 접점으로 삼았다는 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자규 시인은 ‘내물왕과 김제상’이야기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서로 다르다며 신라본기 박제상전을 들며 둘은 같은 인물이며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백결선생으로 유명한 그의 아들 이름이 박문량으로 박씨가 맞다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은 수로부인이 아라비아 상선에 드나들었다는 박이화 시인의 연구발표를 모티브로 하여 시극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든 필자의 ‘신 수로부인 뎐’입니다.    

신 수로부인 뎐 

___가물가물 벼랑 위 꽃을 꺾어달라는 이쁜 아내의 수작
   아뿔싸! 저 강릉태수 눈뜨고 당했구나
   서로 눈 깜박거리며 젊은 상인이 소 한 마리 몰고 노옹처럼 변장

1.'나할 안디 붓하리샤단 곳할 것가 받자보리이다'*

그 절대고수의 수작에 모두 신선이라며 탄복하고 머리 조아린다
이브를 꼬여내는 배암의 눈빛이
수로부인 가슴에 흑장미 꽃송이로 불붙어 화르르 타오르는 것을

2.'고양이같이 고운 입술……스며라! 배암.'*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그 사내, 남몰래 아라비아 상선으로 데려가 그녀의 순네 
같은 꽃을 하마 버얼써 훔치고 팔아버린 것을

3.'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어놓아라
  남의 부녀 약탈한 죄 얼마나 큰가'*

안개 속 상선은 꿈의 궁전, 용궁 같기도 했지
지아비 순정공은 짐작하면서도 모른 척
이미 엎질러진 물, 체면은 거북 앞에서 세울 수밖에
향내 뿌리며 무녀처럼 헛소리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한숨 죽이며

FADE OUT*

*향가 헌화가 중에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미당의 '花蛇' 중에서
*海歌 중에서
*서서히 사라지다

[2012,천년의 시작 봄호 발표]

 정 숙 자신이 처용아내라며 참으로 건방지게 미당의 작품까지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박이화 시인은 헌화가를 ‘철쭉’이란 멋진 산문시로 발표하였지요.

동해 푸른 파도로도 끌 수 없는 정염이 벼랑과 벼랑 사이, 바위와 바위 틈 사이 철쭉처럼 년 놈의 가랑이 사이 활활 타올랐단 거다.[마지막 부분]

이하석 시인은 대가야국 건국 신화를 ‘처음사랑’이란 시로 표현하였고
 
맘 통하면
해가 늘 저 아래서 떠올라선
숲으로 들 듯
정현모주는 항아덤에 풀잎 깔고
이비가 이끌었네
또는 하늘의 구름이 부추겨서
가야산이 끓어올랐지[부분]

이자규 시인은 삼랑진 ‘만어사’를 함께 답사하고 [내 머리 속의 계단]이란 작품을 발표하였고

돌이된 물고기 떼에서 듣다 내 우뇌 속에서 파닥이는 지느러미의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부분]

황명자 시인은 [백탑] 2연에서

그를 마주 대하는 순간
이미 뭇 여자를 호린 경험이 있는 
보름달은 환하고
그의 하얀 이는 유난히 반짝였는데
그 뒤론 필름이 끊긴 영화처럼 혼미했다네


이처럼 설화가 허구적이긴 하지만 그 시대의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으며 문학성이 들어 있으므로 설화를 문학의 끈끈한 관계가 여러 시인들의 작품 속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미당을 들 수 있겠지요. 그의 시집 [신라초(新羅抄)]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얻은 신라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어 신라를 하나의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화해에 의해 인간과 자연, 신화가 융합된 초월적 세계로 보기도 하고 추상적 관념 세계로의 도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나 우리 전통적이면서 신비로운 정서를 잘 전달한 훌륭한 시인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필자 역시 그 세계를 찾아 보존 전달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4.일연스님의 시와 마무리
 향가는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며 사회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는 서정시로 볼 수 있는 향가와   전승 설화를 <삼국유사>속에 채록하면서, 특히 구전 설화로서 기이한 내용에는 유독 관심을 가졌고, 그런 신이한 사건들은 일연이 승려로서의 신분, 나아가서는 이런 종교적 이적이 포교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삼국유사>는 시공을 초월한 불교의 윤회 및 내세관에서 비롯된 내용에 비중을 두고 일연에 의해 철저하게 재편집 구성되었고, 신라 화랑정신을 고려 혼란기 백성에게 고취 선양함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발표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삼국유사 속에서 많은 시적 상상력을 찾아내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일연스님의 시를 인터넷 스크랩으로 그의 인간적인 정서와 풍류를 음미하며  처용아내의 끝없는 갈증과 그리움 달래 봅니다.






[스크랩] [역사의 순간] 삼국유사 일연 스님|역사통찰과 진실 
삼국유사 속 내 시의 씨앗 찾기 2
                           -정 숙 (시인)


1. 상상력과 긴 다리 소금쟁이

 
 예이츠는 ‘상상력이란 냇물 위 떠 있는 긴 다리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 침묵 위를 미끄러지는 것’이라 표현했는데 어학사전에서 ‘상상력이란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신라 향가 중 ‘처용가’ 한편으로 처용아내 연작시(신처용가) 86편을 써댄 필자는 미련하고 우직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고전으로 현대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꼬집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재생 상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상력의 힘 아니겠는가? 

 시로 소설을 쓴다며 온갖 잔소리, 바가지, 넋두리하면서 카바레를 기웃거리다가 결국 장구장이를 찾아가는 처용아내, 1990년 그 당시 유행처럼 여성들이 장바구니 맡기고 춤을 즐긴다는 뉴스가 종종 나기도 했었다. 뭔가 상상한다는 것은 눈을 뜬다는 것이 아닐까? 문학 뿐 아니라 미술, 경제, 과학 모든 면에서 이 상상의 힘을 원동력으로 하여 발전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3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 시와시학 1994년 신작시발표, 시집 신처용가 1996 시학사]

다 늦은 저녁에 눈을 뜨느라 자아를 찾으려 몸부림친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자책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열병이 든 처용아내 휴화산이라예! 봄밤이라예! 를 쉼 없이 중얼대더니 결국 맞불 작전으로 춤판이나 노름판을 찾아다니면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런 연작시 몇 편으로 시극 ‘봄날은 간다’ 공연에 참여한 많은 시낭송가와 시인들 그리고 여름 켐프에서의 학생들 시극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일들이 이명소리 내며 추억의 필름을 돌린다. 

거짓말 아이라 카이예
-처용아내 4 

어마이 심이 쇠똥가리니 우짜니 카미
추키세우지마 마이소예.
몸뚱이는 커져 부풀었지만서도
서방님예, 지도예
바람이 흔드믄 간들간들카는 봄버들이라예.
실버들이라예.
기집이라 카이예.
다 커뿐 아아들 말 없지예,
새라도 붙잡고
지저귀민서예,
고 넓은 가슴에 기대
어링냥 부리보고 싶다 카이예,
내에 모린 척 피하시는 잘난 서방님,
정말 무심도 하시어라.
하 답답해서예,
저 못생긴 疫神이라도 부리고 싶다 카이예.
참말이라예.
거짓말 아이라 카이꺼네예.

[ 시와시학 1994년 신작발표, 시집 신처용가 1996 시학사]


2.범어 포구 귀신고래 이야기

 ‘시인은 가장 민감한 감각의 촉수로 삶의 본질을 인식하면서, 상상력을 통해 결핍된 세계를 보완해주는 사람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일상 세계에서 느끼는 결핍 요소들을 채워줄 수 있는 위대한 힘이다’

 이 건청 시인의 말씀에 고개 끄덕이면서 상상이 없는 세상은 불 꺼진 창 같은 느낌일 거라 짐작해본다. 그러나 대구 범어동 처용씨는 이래저래 존심 상한다. 처용아내 자신은 미친바람 발전기라며 낮인지 밤인지 구분 없이 싸돌아다니면서 남편을 유배당한 귀신고래 또는 돛대 부러진 늙은 소나무로 비유하며 시답잖은 상상력으로 시건방을 떨고 있으니 한 십년 우울증을 푸욱 덮어쓰고 누워있던 그가 이 악물고 벌떡 일어나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문득 상상력 즉 이미지 훈련이 잘된 시인들 중 한 분인 문 인수 시인이 떠올라 전화 드리니
삼국유사에 관한 시 몇 편을 보내주신다, 읽는 순간 뜨거운 연애편지를 읽는 듯 전율이 온다.
대학시절 뒤란에서 읽은 편지 너무 뜨겁고 무서워서 바로 불태워 버린 기억이 날 정도로 가슴 떨리는 사연, 구구절절한 연정을 꼭꼭 숨기면서 타오르는 불꽃, 두 편의 시에서는 수로부인도 노인도 같이 타오르고 있지만 분명 견우 노옹의 편지 읽은 수로부인은 가슴에 화상을 입어 안절부절 뜬 눈으로 밤의 기둥을 세웠을 것 같다. 

3. 달북 시인과 미당의 헌화가



3. 산철쭉
      -수로부인


  저 벼랑 끝 웬 꽃 저리 붉으냐. 내 마음 문득 파도소리를 딛고, 또 한 파도소리를 딛고 거듭거듭 오르나니, 하초 젖나니. 누가 보느냐, 저토록 내가 붉으냐.


  *시집 ‘동강의 높은 새’ 2000년 세계사 


4.  산철쭉
     -견우노인

          
  눈부신 그대 거기 서 있어서
  그대 꽃 아래 서 있어서
  늙은 몸 활 활 추슬러 입겠네.

  검푸른 소의 잔등, 저 바다 꽉 찬 파도소리의 수평선 콧김 자욱하게 부풀어 오르네. 천 길 벼랑을, 벼랑을 지나 벼랑 끝 철쭉, 철쭉을 지나

  내 능히 그대에게 이를 수 있겠네.


  *시집 ‘동강의 높은 새’ 2000년 세계사

“불이야! 불!”
산철쭉 시가 너무 뜨겁다. 선문답식의 젊잖게 품위 있게 야한 작품이라고 할까?. 저런 연애편지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다.
‘하초 젖나니,   늙은 몸 활 활 추슬러 입겠네. 수평선 콧김 자욱하게 부풀어 오르네’
얼마나 선정적인가? 문 인수 시인만의 기발한 해석이다. 수로부인이 철쭉꽃처럼 활활 몸이 달아올라있어서, 누구에게 꺾이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 같아서, 그것을 눈치 챈 견우노인이 그 꽃을 즉 수로부인의 활짝 핀 몸꽃을 꺾어준다는 그런 내용인 것 같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참 너무 하신다. 천 년 전 수로부인과 노옹의 심정을 현대적 시어와 시적 상상력으로 저렇게 완벽하게 풀어놓을 수 있을까? 뜨거우면서 과하지 않게 절제하는 힘 그러면서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놓는 시, 현대시 묘사 공부를 습관처럼 하시는 선생님의 통찰력과 직관력은 얼마나 깊고 빠른지 
‘그래 이것이 연상상상력이고 멋진 이미지 그림이지’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다가 필자의 변변찮은 상상력을 돌아보며 얼굴이 붉어진다. ‘헌화가’ 한 편으로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더 찾아봐야 하겠지만 우선 견우노옹을 바람의 고수로 인정한 정 숙의 ‘신수로부인뎐’, 박 이화 시인의 ‘철쭉꽃’을 비롯하여 문 인수 시인의 ‘산철쭉’ 붉디붉은 연작시 두 편 그 외의 시편들 이 모든 것은 천 년 전 향가가 시인들의 상상력을 춤추게 하였으니 또 한 번 일연스님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아라비아 상선 속 묘한 향에 취해서 이미 몸을 팔아버리고, 노옹으로 변장한 아라비아 상인에게 꽃을 꺾어달라고 강릉태수 앞에서 수작 부리는 현대적 수로부인으로 해석한 필자의 ‘신 수로부인 뎐’과 비교하면서 그렇구나! 무릎을 탁 칠 수에 밖에 없는 선생님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뜻밖에 정 숙의 대구문학 아카데미 시창작반 제자들과 함께 특강으로 청송 어느 귀농인의 집 평상에 앉아 직접 작가를 모시고 고급 묘사와 상상력이 잘 비벼진 시의 묘미를 느끼고 맛볼 수 있다니! 어디서 초여름 저녁 분꽃 향내가 짙게 나는 것 같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문득 수로부인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쓰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비잉 빙 돌려 형상화시킨 서정주의 ‘수로부인의 얼굴’이란 시를 찾아본다. 전문에 ‘헌화가,‘해가’를 다 동원한 작품이다.

수로부인의 얼굴 (부분)
서정주 
1 암소를 끌고 가던 수염이 흰 할아버지가 그 손의 고삐를 아조 그만 놓아 버리게 할만큼, 소고삐 놓아두고 높은 낭떠러지를 다람쥐 새끼 같이 뽀르르르 기어오르게 할만큼, 기어 올라 가서 진달래 꽃 꺾어다가 노래 한 수 지어 불러 갖다 바치게 할만큼, 2 亭子에서 點心먹고 있는 것 엿 보고 바닷 속에서 龍이란 놈이 나와 가로 채 업고 천길 물속 깊이 들어가 버리게 할만큼, 3 왼 고을안 사내가 모두 몽둥이를 휘두르고 나오게 할만큼, 왼 고을안 사내들의 몽둥이란 몽둥이가 한꺼번에 바닷가 언덕을 아푸게 치게 할만큼,  신규호의 ‘당돌한 실수’에서 처럼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수로부인은 정 숙한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시인들은 주로 남성의 성적자극을 유도하는 여인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아름다움이 본인의 죄는 아닌데 바람피우지 않았다고 처용아내를 살리려는 필자는 또 수로부인이 정숙하지만 바람의 고수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항변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4.돌아가는 길

 군위군 인각사는 일연스님의 어머님이 계시던 곳이어서 스님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기도 하여 스님의 어머니 상이 조각되어 있다. 스님은 경산 자인서 태어나셔서 수련은 여러 곳에서 하셨고 삼국유사 집필은 대구 비술산 아래 유가사 절에서 하셨다고 한다. 어쨌든 거기서 코도 깎여지고 마모된 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돌부처가 이제 돌로 돌아가고 있다고 그러나 아직 미완성이다 라며 문 정희 시인이 ‘돌아가는 길’ 발표하여 현대불교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보다 먼저 발표되었다고 보는 문 인수 시인의 ‘미완이다’라는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돌아가는 길 (부분)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5. 청송 백석탄 물속에서 숨바꼭질하다

“ 선생님, 시 공부가 정말 재미있고 행복하지만 너무 열심히 하면 머리 아파요. 이제 본격적으로 고디 (다슬기) 만나러 가야하지 않을까요?”

 웃음 전도사인 류 경화 씨가 애교를 부린다. 주인 부부가 17세기 어느 선비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방호정’으로 안내한 뒤 안내판에 히말라야 산을 옮겨다 놓은듯하다는 바위가 하얗게 빛나는 백석탄 냇물에서 온몸 젖는 줄 모르고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배승태시인도 수달처럼 머리만 내어놓고 앉아 어린 생명과 얘기 나누면서 언젠가 상상력의 소재가 될 체험을 즐기고 있다. 이 현 시인은 방긋방긋 웃기만하고 있으니 문인수 시인이 참고 될 만한 조언을 챙겨주신다. 그러다가 적벽 아래 바다가 출렁이는 미역돌 하나 주워 돌과 대화를 나누신다. 아주 흡족해 하면서 그 돌을 집 주인에게 선물로 정을 표한다. 안주인 박 월수 수필가에게 당호로 수월제 라는 현판을 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권유하는 면모에서 모처럼 사람 냄새를 맡아본다. 황혼 빛이 선생님의 정수리에 머물러 그의 아우라가 더욱 붉게 뚜렷해진다.

6. 신라불교의 주춧돌 아도

 유월 삼국유사 시간엔 박 순남 시인이 발표할 차례였다. 
“ 신라 16대 눌지왕 때 고구려의 스님인 묵호자가 신라의 일선군 [지금의 경북 선산]에 들어왔다. 그 고을에 사는 모례라는 사람이 자기 집에다 땅굴을 파 묵호자 스님을 모셨다. 그 후 공주님이 사경을 헤맬 때 묵호자 스님이 향을 사루며 기도하자 공주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런지 얼마 안 되어 묵호자 스님이 사라지고 제 21대 소지왕 때 아도라는 스님이 나타났는데 묵호자 스님과 비슷했다. ”

 결국 기도로 병을 낫게 했다는 기복신앙에서 시작한 것은 모든 종교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하는 연구 발표들 듣고 변 학수 평론가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진다. 이 하석 시인은 
“ 모례 집터가 지금의 선산 도리사이고 눌지왕 때 묵호자가 선산으로 들어갔다는 이유는 도리사가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이기 때문이지요. 거기서 포교활동을 도와주고 신라와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친절하게 마무리 정리해주신다. 다음 선산 지역 모례 관련 유적과 신라 절터 흥륜사를 찾아보기로 한다.

 박 순남 시인이 문경에서 딴 검은 오디를 서너 접시 넘치도록 가져와서 필자의 입술이 새카맣게 되어 마주 앉은 홍 영숙, 박 이화, 황 명자, 박 정남 시인은 킥킥 웃으며 열강을 듣는다. 김 영근 시인은 고양이똥으로 발효한 르왁 커피를, 이 자규 시인은 시와 반시 사무실 이전 기념으로 케익까지 준비하여 푸짐하게 즐긴다. 모처럼 변 학수 평론가님도 발행인 김 경옥 여사도 참여하여 강 현국 전 총장님 어깨 들썩들썩 포산 이성[관기 도성] 의 얘기를 토대로 연인의 길, 만남의 길 프로젝트에 대한 미래의 사업구상을 얘기하신다. 

7. 경주의 삼국유사 연구반

 우연히 경주 모량리 목월 생가 복원 기념식에서 만난 황 명강 시인이 경주에서 문 경현 사학자를 모시고 삼국유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선덕여왕에 관한 연작 서사시를 구상 중이라 한다. 목월선생님의 아드님이신 박 동규 시인과 친구였다는 김 종길 시인과 그 당시 제자 분들이 모여 두런두런 추억을 나누시는 모습, 물레방아 방앗간 따라 천천히 돌아가면서 이 또한 먼 먼 날 신화 속 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 ?

 차기 한국 문인협회 회장님으로 출마한다는 김 송배 시인과 그를 지지하는 포항의 장군 수필가 이 희복님, 그리고 대구의 신 표균, 정 하해 시인 그들 역시 언젠가 역사 속 길이 남을 명시를 위해 상상력의 칼을 갈고 갈아야겠다는 의지를 애써 감추려는 눈빛에서 잘 익은 시 한편을 읽는다. 그 시에 취해서 필자는 오방색 물감으로 처용무 그림을 그린다. 


삼국유사 속 내 시의 씨앗 찾기 3
                    -정 숙[시인, 본지 중앙위원]

1.삼국유사 시로 읽기’ 잘 읽고 있습니다

 산문 쓰는 일이 지겹다며 몸을 비틀다가 이 영춘 시인의 시집 ‘노자의 무덤을 가다’ 첫 장을 넘긴다. ‘삼국유사 시로 읽기’ 잘 읽고 있습니다.’선생님의 애교 섞인 문구에 그만 힘을 얻는다. 낙관에 쓰인 榮春은 처용아내의 봄밤이라예! 와 같은 뜻인데? 어얼쑤! 엉뚱한 상상력에 이끌려 들어간다. 품 넉넉한 언니 같은 시인의 모습이 바로 신라 시대 정숙한 처용아내 아니었을까?

 정숙한 처용아내 란 말을 쓰고 보니 문득 근 이 십년 전 사실이 떠오른다.  필자가 ‘신처용가’ 시집을 들고 처용아내라며 나타났을 때 유안진 시인이 ‘정 숙’이란 이름에 ‘안 정숙, 반 정숙, 비 정숙’이란 이름으로 놀려주시던 생각이 난다. 참 기발한 발상이라 재미있어 했는데 몇 년 전 선생님이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내주셔서 오히려 죄송하단 느낌이 들기도 했던 적 있었다.

2.길 위의 인문학
 
 대구 구립 본리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 프로젝트 속 일 년 중 마지막 다섯 번째 행사로 필자의 ‘고전과 현대의 만남 그리고 그 상상력 즐기기’란 주제의 기획이 채택되었다. 울산 처용제에 맞추어 시월 일일은 두 시간 강의를 했다. 고전 향가와 처용 그리고 처용아내에 관한 내용과 시를 김미선 시인의 하모니카 ‘봄날은 간다’ 연주와 함께 필자의 첫 시집 ‘신처용가’ 중 ‘휴화산이라예’와 ‘웬 생트집’으로 간단한 시극을 연출했다. 졸지에 처용 역할을 맡은 분 또 역신 역할을 맡은 분이 너무 여유만만하게 연기해주셔서 놀라웠다. 시 전체가 대구 경북 사투리여서 힘들었을 텐데도 다시 한 번 더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필자의 ‘우포늪에서’ 란 시의 부분이다. 낙동강이 왜 우포늪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따져보는 오래된 작품이다.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는 분들 역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뭔가 깨닫기 위해 오신 분들 아닐까? 하는 내용의 강의를 하고 그 이튿날 신라 제 49대 헌강왕이 용왕을 만난 자리 울산 개운포와 처용암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다.  

 애석하게도 경주 시내에서 처용아내와 처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학자 문경헌 박사님께 문의 드렸지만 어디쯤인지 짐작조차 못한다니 참 입맛 씁쓰레한 일 아닌가. 경주에서 헌강왕 행차가 울산으로 가던 길을 더듬기로 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그 당시 신라가 삼국통일 후 삶이 넉넉해서 행차하는 내내 고을에서 풍악이 울리고 있었다 한다.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용왕을 만난 자리 울산 개운포와 처용암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다. 애석한 일은 경주 시내에서 처용아내와 처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학자 문경헌 박사님께 문의 드렸지만 어디쯤인지 짐작조차 못한다니 참 입맛 씁쓰레한 일 아닌가. 하는 수 없어 경주에서 헌강왕 행차가 울산으로 가던 길을 더듬기로 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그 당시 행차하는 내내 산 고을에서 풍악이 울리고 있었다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 그리고 문무왕 덕분에 통일 신라 후 그만큼 나라 전체가 살기 좋았다는 얘기겠지만 그 당시 용왕은 너무 기강이 흐트러진 것을 경고해주기 위해 나타났다는데 헌강왕은 아주 좋은 징조로 생각하고 용왕의 아들을 아름다운 귀족의 딸, 처용아내와 결혼시킨 것이다.

3.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경주에서 대왕암이 있는 대본 해수욕장 가는 길 친정아버지 묘소와 처용의 모델이 된 두 고모부님 산소를 지나면, 통일 신라를 위해 밤낮 애쓰신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었다는 감은사지 그리고 만파식적 전설이 있는 이견대에서 파도 속에 누워계신 문무대왕 능을 내려다보았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 정신, 감사하는 마음으로 깊이 고개 숙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누워있다는 용암과 바다의 만남으로 생긴 육각기둥, 주상절리에서 회원들이 정성스레 준비해 맛난 점심을 먹고 울산 개운포와 처용암을 찾아 떠났다. 푸른 가을 하늘과 바다를 따라 가는 길은 막힌 속 트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더구나 박정남 정하해 박숙이 장혜승 류경화 시인이 함께 해주어 더욱 즐거웠다.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스스로 징이 되어 같이 한 회원들이 모두 만족해하는 눈빛이어서 징을 치는 필자도 흥겨워 탐방 길 내내 징소리 징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몸도 마음도 다 징이 아니겠는가? 강의하는 필자는 징을 치는 징잡이고 그 강의를 듣고 있는 분들은 어설픈 징채에 맞으면서, 감탄의 소리 흘린다.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졸시‘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속 아버지의 말씀을 상기 시킨다.

4. 처용암 카바레에서

 처용암에서는 울산의 낭송가 최경자 시인이 기다려주었다가 옛날 같이 한 시극 ‘봄날은 간다’ 중 처용아내가 카바레로 처용을 찾아다니는 장면과 장구장이를 찾아 한판 신나게 노는 장면을 연출해주었다. 갑자기 처용암 빈터가 카바레 되어 회원 전체를 춤을 추게 했다는 즉 마당극처럼 모두 함께 시극 한 장면으로 참여하게 했다는 것이 마음 뿌듯하게 느껴진다.

제비캉, 꽃뱀캉
-처용아내 65 [춤바람]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무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때맞춰 우연하게도 진짜 장구장이가 나타나 시극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전국을 다니며 필자의 첫 시집 ‘신처용가’ 속 시를 낭송하는 능수능란한 최경자 낭송가의 그 우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몇 년 전 같이 시극을 한 그 시간을 잊지 않고 우정출연해준 것이다. 첫 시집 한 권으로 이십년 동안 우려먹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고전을 패러디했다는 것과 그것을 즐기기 위해 낭송으로, 시극으로 극본과 연출 등 연구를 거듭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시만 쓸 것이 아니라 그 시를 대중들과 즐기도록 연구하는 시인과 낭송가가 있어 세상이 즐겁고 또 고맙다.

5. 처용의 딸과 미군

 이제 자신의 정서를 설화 속 처용에 투영시킨 현대적 묘사의 작품을 찾아본다.
 
  1  그대는 발을 좀 삐었지만  하이힐의 뒷굽이 비칠하는 순간  그대 순결은  형이 좀 틀어지긴 하였지만,  그러나 그래도  그대는 나의 노래  나의 춤이다
 
  2  6월에 실종한 그대는  7월에 산다화가 피고 눈이 내리고  난로 위에서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다.  서촌 마을의 바람받이 서북쪽 늙은 홰나무,  맨발로 달려간 그날로부터 그대는  내 발가락의 티눈이다.
 
  3  바람이 인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바람은 바다에서 온다.  생선 가게의 납새미 도다리도  시원한 눈을 뜬다.  그대는 나의 지느러미 나의 바다다.  바다에 물구나무선 아침 하늘,  아직은 나의 순결이다.  ─김춘수, 「처용삼장」 전문 26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를 기다리며 돌길에 앉아 제비꽃관을  쓰고 있으면 봄마다 아름다운 슬픈  우리나라. 우리나라 코리아  꽃을꽂아도넌아름답지않아네얼굴은누렇고머리칼은검거든.그래도,엄만,미군보다는나를좋아해,부라운은멋져.그렇지만,우리,아빠는,더,멋졌지,넌엄마도뺏기고동생도없지?넌혼자지?그래,그렇지만,이제,더이상,엄마에게,아기를,낳아달라고는,않을걸.노랑,아기를,낳았을,때,아긴,죽어있었고,죽,어,있었고,엄만,그,아길,물,속에던져,돌로,꼭,꼭눌러버렸다니까,돌로,꼭,꼭,꼭……돌 속으로 돌 속으로 보랏빛 세상의문이 또 잠깐 동안 닫혔다.  그 계집애는 그 후 엄마랑, 엄마의 남자랑  바다를 건너갔다고도 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제비꽃으로 녹아내렸다고도 하고.─이하석, 「처용의 딸」 부분 31
 
 김춘수 시인은 처용을 화자 자신으로 그래도 넌 나의 춤이고 노래라며 남자로서 바람 난 여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표현하고 있고,  이하석 시인은 처용을 미군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미군과 동거하는 엄마의 딸인 ‘처용의 딸’의 심리 상황을 말더듬 형식으로 진술하고 있다. 딸을 통해 진술되는 엄마의 삶은 노랑머리 아기를 낳아 돌로 눌러 죽여야 한다. “이 시인은 어린 시절 전후 황량함 속에서 만난 ‘그 아이’에 대한 경험을 설화를 수용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창작자는 삼국유사의 현장을 찾아다닐 때, 울산의 옛 개운포 지역 바닷가 둔덕에 앉아 처용을 생각하다가, 문득 그 계집애를 떠올리면서, 처용의 딸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그러나 선행 텍스트인 처용설화와는 서사 구조나 의미가 전혀 상관없음을 알 수 있다.”[공광규]

 이처럼 한 편의 설화로 각자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이미지화로 그려진다는 것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일까? 강 현국 시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스토리 텔러가 일연스님이라고 강의하신다.

6. 인각사 돌부처의 돌아가는 길

 몇 년 전 문인수 시인이 대구 모 대학에 강의하러 오신 문 정희 시인과 같이 인각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한다. 코도 깎여지고 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돌부처가 이제 땅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그러나 아직 미완성이다 라는 얘기 나누었다고 한다. 그 해 문인수 시인은 ‘미완이다’를 발표했고 그 다음 문정희 시인이‘돌아가는 길’발표하여 현대불교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는 재미있는 얘기를 생각해본다. 시인들은 같은 시간 같은 사물을 보면서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창조물을 생산하는 능력에 새삼 존경을 보낸다. 인각사는 일연스님의 어머님이 계시던 곳이어서 스님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기도 하여 스님의 어머니 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 낡은 돌부처는 바로 이 어머님 상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스님은 경산 자인서 태어나셔서 수련은 여러 곳에서 하셨고 삼국유사 집필은 대구 비술산 아래 유가사 절에서 하셨다 한다.

 미완이다
                 문인수

어딜 멀리 갔다가 되돌아가는 길인가 보다.
인각사 돌부처 한 분이 천 년 비바람에 많이 닳았다.
거의, 한 덩어리 바위에 가깝다.

그 앞에서 찍은 내 독사진이 있다.
왕복 어디쯤서 만나 잠시 겹친 것일까, 들여다보니
둘 다 미완이다. 지쳐
돌아가는 길이 함께 적적, 막막할 뿐이다.

  *정신과 표현, 2003년 11-12월호
   시집 ‘그립다는 말의 긴 팔’ 2012년 서정시학

7. 사랑은 환상을 먹는다

 그 동안 삼국유사 연구반에서는 [삼국유사 권 2 기이奇異, 제 2 ‘진성여왕 거타지 조’]를 이 하석 시인이 연구 발표하였다. 거타지는 진성여왕의 계자季子아찬 양패가 당에 사신으로 갈 때 호위하던 궁사였다고 한다. 영웅에 의한 괴물퇴치 설화에 해당한다. 서구의 설화 중 어머니를 위해 메두사를 잡는 또 바다괴물의 제물로 바쳐지는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는 페르세우스의 영웅담과 유사한 용녀를 구출하여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심청이 연꽃에 싸여 환생하는 임당수가 지금의 백령도와 공통적인 무대라고 한다. 

 신라 말의 어지러운 기운을 잠재우고 새로운 건국 기운을 부추기기 위해 만들어져 유포된 안심설화라고도 한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쓴 윤후명의 소설 ‘꽃의 변신’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사랑은 환상을 먹고 살며, 그 환상의 근거는 어디엔가 있을 수밖에 없다’ 며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 구절처럼 그 꽃을 찾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고 되뇌이는 내용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거타지가 되어 그 꽃가지를 꺼내게 될 때 우리는 문득 환한 꽃의 말을 듣게 된다는 내용의 발표를 듣고 모두 후~ 한숨을 내쉰다. 시인들은 아직도 사랑이란 말에 그리움과 애잔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거타지와 꽃으로 시 한편 구상하고 있는지 김 영근 시인의 눈동자가 몽롱해지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1. 파도 속으로 기찻길을 놓다

 아들아!
 자녀의 생사를 몰라 진도 바다 속으로 귀 기울이며 기찻길 놓고 있는 부모와 바깥세상으로 간절히 구원의 소리 모아 기적소리 애타게 울리고 있는 어린 영혼들, 올 사월은 잔인하다 못해 처참했구나. 노래처럼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불러대던 시인들, 그 시절은 이 보다 더 참담했을까? 이제 돌이켜보면 행복에 겨워 헛소리나 한 것처럼 부끄러워진다. 

 아직도 세월호에 갇힌 자녀의 시신을 찾지 못한 부모님들 그 심정을 대신해 마음은 날마다 등을 밝혀 하늘로 띄우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한 점 위로가 되겠는가? 아파트 벽을 치며 봄바람은 밤낮 파도 속 기적소리로 창문을 흔들어대는데,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의 비명은 이명이 되어 귀에 못이 박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시도 때도 없이 ‘공부해라’ ‘나중 대학 가서 재미있게 놀아라!’ 나중나중
그 잔소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돌들을 가슴에 품는 일도 말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선생님이나 어른 말만 믿고 따르라는 말도 거짓이 되어 버렸는데, 생각해 보면 게임이나 놀이, 너희들이 좋아하는 건 거의 다 감시하고 말리는 일이 부모의 할 일이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군 입대하는 너에게 
‘아들아, 어쨌거나 살아 돌아와야 한데이’ 
엄마로서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지만 이제 엄마의 그 심정 당연하다며 머리 끄덕인다. 
‘아이야, 어떻게 하든 살아만 있어다오.’ 
‘우린 아직 못 다한 말들이 너무 많아!’
‘사랑한다, 행복해라, 즐겁게 놀아라!’
이런 사소하면서도 귀한 말들을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닫는지. 진도 팽목항
통곡소리 속 후회의 넋두리가 부모들의 가슴에 징을 치고 있는 것 같구나.

2, 징소리

 파도를 타고, 바람결 타고 온 애원하다 울부짖는 그 기적소리들은 징채가 되어 부모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가슴을 치고 있구나. 그냥 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모 가슴에 꽁꽁 못 박는 소리되어 한 평생 뽑아낼 수 없는 못이 될 것이다.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이 되어 수시로 통한의 덩어리 찔러대겠지. 그 분들의 심정 생각하면 할수록 곁에서 같이 아픔을 나눌 수 없어 미안하기만 하구나.

 아들아,
 엄마가 처용아내라며, 미친바람 발전기라며 온 세상을 허둥대고 다니는 것 같지만 실은 마음 밑바닥에 항시 가족의 평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단다. 누군가 해코지하지 않을까 누구에게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까 건강은, 행복은, 이런 노파심 때문에 옛 어른들은 달, 해, 산, 우물 등 온갖 산천에 기도하러 다니셨다는 걸 이제 이해한단다.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엄마에게 시를 쓰게 하고 처용무를 춤추는 여자들의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같구나. 이제사 느끼지만 내 일신이 편안하게 이 정도까지 온 것은 그런 어른들 기원의 힘 때문 아니겠니? 기도라는 것은 정성과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니 그래서 살아가는 데는 종교가 필요하기도 하단다.

3, 사랑, 해

 아들아,
 엄마는 네가 행복하기를 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늘 돌탑을 쌓고 있단다. 그리고 우리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 자주 나누자.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맙고 같이 살아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하루 종일 몸 기울이고 있는 해처럼 온 마음 몸 기울여 서로 사랑하자꾸나! 그래서 엄마는 ‘사랑, 해’ 시 한편 적어본다.

사랑, 해


범어숲 새들에게 먹이 한 상 차려놓은
해, 더 멀리 살피려 종일 몸 기울이다가 
벌겋게 피로에 취해버린다 
끝내 밤바다로 가라앉는다

삐딱한 지구 자전축 위 나지막이 
몸 기울여  
낙엽 덮고 잠자는 겨울 씨앗들 
밟힌 풀꽃의 상처 깊숙이 온기 넣어주려는 
넉넉한 길, 날마다 바라보면서도 
 
홀린 듯 나는 꼿꼿이
먼 하늘 눈빛만 바라보다 하루를 마감한다
해는, 달은 어둠에 갇힌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온 정성 다 기울이는데

몸마음 깊이 기울이는 것, 그것이 진정 
햇살사랑법이라는데



정 숙의 첫 시집 ‘신처용가’를 말하다

                                 -정 숙[시인]


1.처용아내와의 만남

 벌써 이십년 전이었나? 1991년 우리문학이란 곳에 멋모르고 등단했다가 ‘아하, 이게 아니었구나’ 깨닫고 세상이 참 많이 깜깜했었다. 이 악물고 다시 1993년 시 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등단하고 난 뒤 비로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집살이하는 맏며느리가 아침 식사 준비 전부터 아파트 뜨락을 산책하면서 바람과 나무들과 대화 나누며 ‘목하 열애 중’ 이란 연작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경로당 드나드는 할머니들께서 벚나무 아래 멍청히 앉아 있는 필자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 ‘에고 아직 젊은 여자가......’ 하면서 약간 이상한 여자로 오해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 뜨거운 작품을 아직 발표하진 않았지만 거의 한권 마무리 끝날 무렵 어느 시 잡지에서 묘사도 형편없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처용아내를 화냥년이라 되풀이 하는 내용의 작품을 읽었다.

‘이런, 처용아내를 살려야겠구나!’ 갑자기 그런 사명감이 차오르는 것은 한 이십년 시집살이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시어른들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며느리가 어느 날 시인이 되었다더니 자랑스러웠는데 느닷없이 처용아내라며 ‘보이소예’ ‘안그래예?’ 딴지걸며 따지듯 했으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그것도 품위 없이 순 사투리로 
 
웬 생트집?
-처용아내 1 [신처용가]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 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자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꺾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 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이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3 [화투장 공산에서]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거짓말 아이라 카이예
-처용아내 4 [반버버리]

어마이 심이 쇠똥가리니 우짜니 카미
추키세우지마 마이소예.
몸뚱이는 커져 부풀었지만서도
서방님예, 지도예
바람이 흔드믄 간들간들카는 봄버들이라예.
실버들이라예.
기집이라 카이예.
다 커뿐 아아들 말 없지예,
새라도 붙잡고
지저귀민서예,
고 넓은 가슴에 기대
어링냥 부리보고 싶다 카이예,
내에 모린 척 피하시는 잘난 서방님,
정말 무심도 하시어라.
하 답답해서예,
저 못생긴 疫神이라도 부리고 싶다 카이예.
참말이라예.
거짓말 아이라 카이꺼네예.


그 칼 퍼뜩 쫌 빼보이소
-처용아내 5 [疫神]

살짝 곰보에 딸기코데예.
이 힘 쫌 보이소예!
찢어진 눈이 불꽃 이글이글거리민서예.
심장이 놀라
녹아질 듯 그 뜨거붐, 火傷 입으까 두려버예.
금새 내 몸띠 불덩이 되디 숨쉬기 애러버예.
사흘 낮밤이 지치지도 안찮아예.
저 싸나아를,
아! 아! 저 싸나아를 인자 감당할 수 없어예.
힘이 가당치도 않아예!
서방님예, 지 맴이사 내내 서방님 향해
해바라기 아입니꺼. 맞지예?
내 가심 이미 검게 타뿌리고 재만 날리네.
오! 미칠 것 겉은 이
어두붐!
무디진 그 칼 퍼뜩! 퍼뜩! 좀 빼 보이소. 예?

2. 그 당시 ‘신처용가’ 시집에 대한 반응

1994년 ‘시와 시학’ 신작 특집에 이 다섯 편이 실렸을 때 반응이 대단했다. 그 땐 순진해서 별 감흥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해 연말 시와 시학 행사에 정 진규, 오 탁번 시인이 참석하셔서 많은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특히 오 탁번 선생님께서는
“신라시대는 기생이란 단어가 없었어요. 기생보다 기집이란 시어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리고 월경이란 말보다 서답이란 시어로 고쳐보세요.” 하시며 차비로 만원을 보태주시기도 하셨다. 참, 부산 갈매기 차 한수 시인도 만원 보태주셨지. 시와 시학 주간 김 재홍 평론가는
‘안 그래예?’ 말을 넣으면 더 감칠맛이 나겠다고 충고해주셨다. 그런 관심에 힘입어 ‘신처용가’ 연작시 시집 한 권이 신들린 듯 완성되어 가고 정 숙의 첫 시집이 1996년 ‘시와 시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처용아내는 바람피운 게 아니라 열병이 들어 병을 옮기는 귀신, 역신에 붙잡혔을 뿐인데 처용이 가무에 능한 한량인지라, 또는 악귀를 손이라 부르는 옛 풍습에서 손은 잘 달래 보내야 한다며 춤추고 시적으로 노래한 것인데 화냥년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지요. 원래 경상도 남정네들이 생어거지를 잘 쓰는 것 아닌가요? 상상력은 끝이 없어 근데 아내가 열병이 들어 아프다는데 춤이나 추고 있다니요. 칼로 역신을 쫓아주어야지요. 왜 칼을 빼지 않나요? 속상해서 열불터진 여편네 화투판에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지요. 사실 이 시집이 출간될 당시엔 노름이나 춤추다가 증권하다가 집안 망한 여성들 얘기가 종종 뉴스로 나오기도 했었다. 또한 간 큰 남자,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남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었고 여성들이 기를 펴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해 연말 각 출판사 주간들이 모인 자리에서 현대시학의 정진규 주간이 올해 출간된 시집 중에서 어느 시집이 좋았습니까? 물으니 김 종길 선생님이 정 숙의 ‘신 처용가’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며 나중 오 탁번 시인이 귀띔해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2000년 현대시학 신작 소 시집에 ‘향피리’ 연작시를 10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 작고하신 김 양헌 평론가님이 해설을 썼는데 수줍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옳게 전하지 못했으나 돌아가시기 직전 생식을 한 통 전해 드릴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 

 어쨌거나 시집 출간 뒤 시와 시학의 수국 여름 행사에서 ‘경상도 말은 시도 노래도 어렵다’ 말씀하셨던 송수권 시인이 벌떡 일어나 악수를 청하셨고 특히 조 병화 선생님이 신 처용가를 너무 좋아하셨기에 김 재홍 평론가가 그 이유는 김춘수 선생님과 별로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라는 추측까지 할 정도였다.

3. 시를 가지고 놀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내 시는 왜 남들과 다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고민을 하다가 좀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시와 시학 행사에서 직접 낭송을 해보았다. 뜻밖에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구 경상도 말이 저렇게 감칠맛 나는가? 면서 많은 박수를 받게 되고 더욱 용기를 얻어 ‘용광로 부글부글 끓고 있어예’ 에서는 빨간 스카프로 가슴을 열어 보이기도 하여 시 잡지 ‘시안’ 행사에서 시인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웃기도 했다. 

 행사 끝나고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쯤이면 조병화 선생님께서 전화하셔서
“ 정 숙 시인 잘 돌아갔어요? ‘휴화산이라예’ 그 낭송 참 좋았어요. 정 숙시인은 앞으로 계속 사투리로 시를 쓰세요.” 또는 “안성에서 편운 문학상 행사가 있는데 참석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는 시집을 살아서 못 갑니더.” 지금 생각하면 “눈치코치도 없이 에구, 그 때 참석하고 했더라면 편운 문학상이라도 줄려고 하신 건 아닐까?”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엔 안성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고 시할머니와 4대가 한 집에 살기도 했던 시집살이에 어른들 눈치 보느라 여러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옆모습을 그려주기도 하시고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지만 몇 년 뒤 몸이 편찮으시단 얘길 듣고 처음으로 혜화동 사무실에 들러보았다. 시와 시학 사무실이 그 옆에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들른 것이다.  선생님은 가릉가릉 가래 소리를 내며 회전의자에 잠드신 듯 거의 누워계셨다. 인사를 드리니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 밥맛이 없어 밥을 거의 먹을 수 없어요.  ” 
“ 선생님, 그럼 생식을 우유에 태워 마셔 보시지예.”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십 만원을 봉투에 넣어 드리니 집에 가시겠다고 해서 가까이 있는 댁으로 부축해 모셔드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었다.

4. 어불리나? 

 구십년 대 말 그 당시 서울 행사에 모처럼 가면 모자 쓰고 투피스 입은 모습이 불란서에서 온 것 같다고 말하면 필자는 능청스레 “어불리나?” 혀를 굴리며 말하면 불어인 줄 알다가 까르르 웃기도 했는데 그 중 경산 출신 이 화은 시인은 
“서울에서 이십년을 살아도 사투리 쓴다고 웃어서 쪽을 펴지 못했는데 정 숙 씨 덕분에 마음 놓고 사투리 쓰니 신나네요.”
서로 모이면 환하게 웃고 떠들고 시인이 되어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고 대구문학 아카데미 시창작반, 시마을, 포엠토피아 포엠 스쿨에서 인터넷으로 시를 가르치는 일 등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 사느라 찌든 시간들에, 주위 사람들에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살게 되었다. 특히 김남조 선생님께서 같은 대구 출신이라며 가끔 계산동 얘기도 하시며 필자의 시낭송을 사랑해 주셨다. 행사 때나 조정래 소설가 앞이나 아무 장소에서도 정 숙의 시낭송을 자랑삼아 시키기도 하시고 행사 후 대구로 내려갈 일 걱정해주며 역에까지 태워주기도 하시고 저녁도 사주면서 신 달자 유 안진 여러 시인 앞에서 낭송과 노래를 시키기도 하셨다. 식당에서 소리 죽여 속삭이듯 낭송하고 노래 부르고 그 당시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종종 필자는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으로 마음뿐이긴 하지만 대구문학 아카데미 대표셨던 박 주일 선생님, 시와 시학 등단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시고 정 숙이란 예명까지 지어주신 이 태수 시인 등 늘 여러 분들께 감사드린다. 시와 시학 시인 당선 시상식도 유명한 시인들이 거의 대구 동아쇼핑에 모여 세 시간 정도 엄숙하게 거행하였고 ‘신 처용가’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김 재홍의 저서 ‘시어사전’에 정 숙의 경상도 사투리 시어들이 많이 등록되었으니 또한 김재홍의 저서 ‘현대시 백년 한국 명시 감상’ 3권에 시집 신처용가 중 ‘웬생트집’ 이 수록되기도 했다. 그래도 기쁜 줄도 모르고 열심히 시집살기 바빴으니 지금 돌이켜 보면 참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 이란 책에 필자의 시 ‘숯’이 실려 있다는 사실과 그 만화 페이지 그대로 전국 체인점 ‘삼초 삽 삼겹살’ 집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저작료를 조금 받긴 했지만 ‘문 인수 ’ 시인이 미당 상을 수상한 작품 ‘삼초 식당’이 바로 수성못에 있는 ‘삼초 삽 삼겹살’ 집이라고 문 인수 시인과 얘기한 적이 있다.

5. ‘신 처용가’ 시극으로 태어나다

 99년쯤인가. 대구문학 아카데미 회장이 되어 ‘찾아가는 문학’으로 문예 진흥기금을 받게 되었다. 경산여고 대학 입학 모의고사를 끝낸 여학생들을 상대로 학교 강당에서 평론가 김 재홍, 최 동호, 정 호승 시인을 모시고 강연하는 계획이 채택되어 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 기회에 ‘신 처용가’를 시극으로 해보고 싶어서 김태석 연출가를 만나게 되었다. 처용아내 2 ‘휴화산이라예’를 처용아내가 낭송하면 역신은 탈춤을 추며 나타나 처용아내와 놀고 있을 때 술 취한 처용이 
깜짝 놀라 춤추며 ‘처용가’를 부른다는 내용의 시극이 처음으로 공연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처용 역할은 ‘여 한경’ 시인이 맡아 열연을 해주셨기에 늘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이것을 기점으로 수덕사, 만해마을, 강원도 박경리 마을 등 여러 행사에서 또는 서정시학이나 시와 시학 청소년 수련대회 시극대회에서 급히 학생들을 지도하여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법왕사에서는 초파일 전야제로 마당극처럼 꾸며보기도 하고 ‘한국낭송 문학회’ 주최와 시의원들 후원으로 푸른 극장에서 2011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시극 ‘봄날은 간다’ [극본 정 숙]가 무대에 올려 져 마지막 장면에서 문무학 문협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시의원님들이 무대에 올라가 같이 춤을 추기도 하였다. 낭송가 최 경자와 같이 연출하고 처용 역할도 연기한 이 병훈 수필가, 그리고 또 다른 처용 역의 장 사현 수필가와 처용아내 역의 김 미숙 낭송가 외 여러분들의 열연에 깊이 감사드린다.

 공 영구 지금 문협 회장님을 비롯하여 사교춤을 추면서 역신 역을 열연해주신 분들 그리고 박이화, 이자규, 정하해, 서하, 장혜승, 김성춘, 김영근, 황명자 시인 재미동포 박민흠 시인과 시노래 진우님 김소란, 기미숙, 곽도경, 곽홍란 시인 등 많은 시인들이 함께해 주셔서 필자 평생의 영광이었다. 

6.이제 월궁 카바레와 자갈마당으로 가보실까요?

 친정아버진 사투리를 못 쓰게 하시고 품위를 지키는 여성이 되길 원하셨는데 꽤 품위 있어 보이는, 딸 친구 어머니의 사투리가 아주 구수하게 귓가에 맴을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투리와 점점 가까워지고 처용아내 연작시를 자꾸 쓰다 보니 나중엔 필자 자신이 진짜 처용아내의 환생인양 신이 나서 마구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그래, 신라 시대 표준말은 바로 이 경상도 사투리지. 누가 뭐라 하던 한 번 우겨 보는 거야.
이 사투리가 우리의 古語 고어이니 [정 진 규 시인은 모국어라고 함] 국어국문학과 나온 사람이, 시인이 전달하고 가꾸어야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시를 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즐기는 연구도 필요하지 않은가?”
 사투리는 아주 많은 말들을 줄여서 쓴다. 충청도 말이 가장 줄인다고 ‘개를 먹을 줄 아느냐?’를 ‘개 혀?’ 한다고 누가 자랑을 하기에 ‘경상도 대구 사투리도 많이 줄이는데?’ ‘개 무? 하면 다 끝나는데 ’ 해서 서로 웃었지만 자꾸 사라져가는 사투리들이 있어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고백하는 것은 필자가 향가 중 ‘처용가’를 패러디한 이 연작시들을 소설 쓰는 기분으로 신들린 듯 쓰면서 남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이유와 구십년 대 그 당시 시대와 사회상을 그리고 증권과 부동산 매매로 살림을 불리는 여성들에 대한 필자의 부러움을 잘 표현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독자 여러분들이 인정해 주시면 고맙겠다. 처용의 모델이 된 분들은 경주 양남 대왕암 가는 길 쪽이 고향인 아주 미남이셨던 두 고모부님이란 것도 밝힌다. 근 이십년 동안 신 처용가와 처용아내를 사랑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 올린다. 네 번 째 시집 ‘바람다비제’ 로 현대시 박물관에서 제정한 제 1회 ‘만해, 님’ 시인 상을 수상했지만 그 상도 결국 이 ’신 처용가‘ 시집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다음은 ‘신 처용가’ 시집 3, 4부에 수록된 부부가 서로 찾아다니다가 다시 화합한다는 내용의 몇 작품들이다.

제비캉, 꽃뱀캉
-처용아내 65 [춤바람]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물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자갈마당이 어덴공?
-처용아내 80 [태산이 높다하되]

서방님이 등산 간다 카고,
뒷잡이 꽃밭에 물주러간다 카고,
앞집이 경마장 간다카미 나갔다 카는데
자갈마당이 어데 있는공?

집안에도 두리뭉실한 산이 있고
빌로 볼품없어도 꽃밭과 튼튼한 말 안있나?
동네 싸나아들 와, 해필 와, 자갈마당에 가노?
집에서 냄비딲고, 굴뚝 소지하믄 
덧나능가 머?

눈물로 핀 들국화가 더 애처럽고 더 이뿌다꼬?
길섶에 채송화가 더 근지러분데 잘 긁어준다꼬?

싸나아들이 철드자 망령든다 카디
갈수록 태산 아이가.
지 암만 노푸다 케싸도 다 내 손 안에 안있나.
부처님 손바닥 아잉가베.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통시깐에서 웃는다꼬예?
-처용아내 84 [다시 사랑가]

보약이라꼬예?
자민서 지가 헛소리 자꾸한다꼬예?
서방님......
지 달구똥 겉은 눈물 딲아주시이까 디기 더
서러버지네예.
산다카는 기 한바탕 꿈이라꼬예?
빈 하늘이라꼬예?
떫은 감이라꼬예?
꽃이라 카는 거는 마카 꺾어봐도
지 낭게꽃이 젤 좋다꼬예?
툭수바리 딘장 끓는 냄새가 오늘따라
더 구시하다꼬예?
아이 서방님, 와 이카십니꺼. 누가 보믄 우얄라꼬 예.
여핀네 골로가믄 통시깐에서 웃는다 케도
순 거짓말이지예? 맞지예? 맞지예?
"아따, 어징가이 지꺼리라! 짐 마카 샌다고마."
"암딱이 우믄 집구석 망군다 카는 거 니 모리나?"

치맛바람
-처용아내 86 [암딱소리]

와 이래 씨끄러부냐꼬예?
집집마다 암딱 우는 소리 아인기예.
인자는 암딱 소리가 젤로 큰 집이 잘 사데예
칼 빼내삐린 남정네들이 가마 구경하다가 
떡만 자시믄 되는 기라예.
소리 큰 암딱은 손 크지예, 또 치맛바람은 얼매나
씨다꼬예? 아씨예?
고 치맛자락 펄럭일 때마다
아파아트 한 채가 왔다리 갔다리 안합니꺼.

장딱만 믿고 잠자던 암딱들이
칼 때신에 손톱 끝 기게, 날카롭게 갈민서
마카 꼬꼬댁! 꼬!꼬!거리야 잘 사는
시상이, 시상이 진짜 왔단 말이라예.





‘2012년 대구 예술을 결산한다’

2012년 시 관련 행사 빛났다

시인과 시, 이야기가 있는 낭송회

서해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할머니, 방송 화면으로 보면서 불현듯 부러운 생각이 일어난다. “저 바닷가에 가서 살아야하는데, 많은 밑천 들여 전 차릴 필요도 없이 문밖에 호미 한 자루 들고 나가기면 하면 다 돈인데 시는 평생 돼지 국밥 한 그릇 값도 되지 못 하니” 한숨을 푹푹 내쉰다. 얼마 전만 해도 등 굽은 아낙들의 고단한 노동을 안타까워했는데 진흙탕에서의 노동이 되려 즐거워 보이는 것은 입맛이 씁쓸하지만 그 사이 나의 시절이, 세상이 하 수상해진 모양이다. 이른 명퇴와 해고로 일거리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갯벌과 산골이 가장 손쉬운 밥벌이로 보이는 세상이라니!  참 암울했는데 멀리서 깜빡이는 등불처럼 올 해는 시 관련 행사가 참 풍성했다. 특히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종류의 예술보다 시는, 시인은 늘 뒷전이었다. 물론 낭송가들에 의해 가끔 기운을 차렸지만 시인은 제외된 행사였기에 더욱 쓸쓸했던 터라 올 한 해는 대구문화재단 서정시 콘서트, 수성아트피아 시인과 음악친구들, 예술마당 솔의 시 모임 등 이미 유명한 시인 뿐 아니라 소외된 시인들의 생각과 과거사 속 아픔을 눈부신 조명 속으로 이끌어내는데 공헌하였으니 또한 시가 대중과 좀 더 친숙해지도록 춤으로 낭송으로 판소리로 그림으로 온갖 시도를 해보여주는 행사 관계자들께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먼저 대구문화재단 서정시 콘서트에서는 지난해만 해도 낭송가들 위주였는데 올 해부터 시인이 직접 자기 시를 낭독하고 그런 시를 쓰게 된 동기나 환경을 얘기하여 대중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서 참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 가야금 ,색소폰, 장구, 기타 등등 뮤지션들의 연주 실력이 대단해 보여서 퓨전음악에 대한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면서 영상과 함께 현대 무용가들의 시 해석력 그리고 낭송가들의 열정이 어우러져 관객들의 호응도가 아주 높았다. 출연자와 관객 서로에게 인상 깊은 유대 고리를 선사하기 위해 네루다 등 시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여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체험에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서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일일 뿐이라는 걸 전달하려 혼신의 힘을 기우리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행복했었다. 
 거기엔 김정길 이사장님을 비롯하여 김중기, 전성찬 문화기획부 위원 등 대구 문화 재단에 관계하는 분들과 박진형 , 김선괭 시인 등 여러 시인들의 숨은 노고와 부단한 노력이 있어 많은 예술인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또 참여한 시인들의 작품으로 책을 엮어낸다니 그 또한 기대되는 일이다. 한 여름 소나기를 피해 다니며 공연을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센트로펠리스 야외무대, 봉산 문회회관, 북구 문화 예술 회관,  달성보 천년 별빛 광장, 동구 문화 체육 회관, 수성 아트피아, 용학 도서관에서 적극적인 방법으로 관객들을 찾아다니는 열정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특히 필자의 사투리 시 신처용가 중 ‘휴화산이라예’ 가 젊고 예쁜 민정민 명창이 가야금 병창으로 불렀을 때는 탄성이 나도록 감격스러웠다. 이제까지 낭송으로 시극으로 또는 훌륭한 대금연주와 함께 공연도 해 보았지만 웃음으로 끝났는데 이번은 처용아내의 진정한 슬픔이 베어 나와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였다. 봄밤이라예!  봄밤이라예! 를 되풀이하면서 풍자와 해학 속 깊은 슬픔을 끌어내는 힘은 판소리만한 방법이 또 있으랴! 문인수 시인이 탁! 무릎을 칠 정도로 새삼 판소리의 힘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오래 전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평소 존경하던 이진흥 시인과 함께하는 자리였고 팔월 말 한 차례 소나기 지나가도록 기다려서 아슬아슬하게 센트로펠리스 야외공연장에서 권미강 시인의 사회로 시작하여 ‘여러분 옛날에 니가 돛대가 하고 싸워본 적 있습니까? 돛대는 최고 또는 대장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가정마다 그 돛대가 많이 부러졌지요. 슬프고 힘없는 가장들께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했을 때 관객과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시 한편이 잘 소통되어 읽힐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한 여름 밤이 더욱 아름다웠다. 이상화 낭송가의 여는 시와 몇 년 전 “시가 뭔가요? 낭송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하며 찾아왔던 조선경 시인이 의젓한 시인이 되고 낭송가가 되어 필자의 시를 읽어주는 인연 또한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동구 문화예술회관 공연에서는 도광희 선생님의 시를 창으로 지두화로 그려 보인다거나 이태수 문인수 이하석 박정남 이규리 김현옥 시인들 삶의 진솔한 목소리가 관객석으로 묵화처럼 스며들어가는 모습에서 아, 시가 예술이구나, 나도 예술인이구나 를 실감하는 한 해였다. 특히 대구 서정시 콘서트는 전부 대구 지방의 무용가와 음악가, 낭송가 그리고 시인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왜냐면 행사 때마다 거의 서울이나 외지에서 초청하는 경우가 많아 지방 예술인들이 소외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효성병원이 후원하고 이태수 시인이 사회를 보는 수성아트피아 ‘시인과 음악친구들’ 이란 프로그램이 전국 유명 시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지방 시인들의 불만이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선호할 수 있는 대중성도 있어야겠지만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어야 하니 일을 주관하는 분들은 고충이 많을 것이다. 두 공연의 다른 점이 있다면 대구문화재단 서정시 콘서트는 무대의 높이를 없애버리고 평지에서 관객과 같이 호흡한다는 것인데 수성아트피아 ‘시인과 음악친구들’ 이란 프로그램은 수성 아트피아 용지홀에서 무대가 높아서 시인이 더 대접받는 위엄이 느껴지는 장점? 단점?이 있다. 그러나 완전히 시인 한 사람을 집중 조명하여 영상시와 시인의 육성만으로 자신의 삶과 시의 관계를 담담히 풀어내는데 예상 외로 별로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인의 실수가 오히려 훈기를 주고 문인수 시인의 강원도 정선 아리랑을 구수하게 풀어내는 입담의 맛 그리고 이태수 시인의 사회와 이하석 시인의 인텨뷰 형식의 서로 주고받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목소리와 삶에서는 옛날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푸근함이 있었고, 이 동순 시인의 옛 대중가요와 색소폰연주를 겸한 시 읽기에서는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물든 시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동화되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여성 시인으로서는 천양희 시인의 가정사로 자살까지 꿈꾸었다가 무슨 계시처럼 시로 극복하는 과정과 근 26년 오랜 시간 중풍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운 남편과 시어머니를 보살피랴 박사과정 공부하랴 고달팠던 신달자 시인의 고통을 친구 삼아 시로 풀어낼 수밖에 없었던 고독한 시간들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시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모습에서 시와 시인만으로 거의 한 시간 동안의 공연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시는 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체험을 적당한 상상력과 비유로 묘사한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일반 관객을 상대로 할 때는 고급 묘사보다 체험을 직정으로 쉽게 표현해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도 시인들이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유명 시인을 쉽게 만나 그의 인생살이가 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들의 인생 화두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수성 아트피아가 내어주는 큰 선물 일 텐데 겨우 오 육십 명의 관객밖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처럼 관객숫자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정말 조촐하게 삼십 여명 정도 모여 시인의 시집 출판을 축하해주고 서로 격려해주는 조촐한 모임이 예술마당 ‘솔’에서 [이하석의 예술 북카페- 책의 사람들]열렸다. 예술마당 ‘솔’과 대구작가회의 주체이기에 또 다른 분위기를 안겨주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음악도 없이 이하석 시인의 부드러우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로 구수하게 사회를 진행한다. 별로 이름은 없지만 역량 있는 숨은 시인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많은 시인들이 참석해서 따뜻한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방 시인을 중심으로 그 시인의 시와 시세계를 조명하는 시간이다. 자주 만나지만 보통 그 시인의 시를 집중적으로 읽어보지 않기에 평론가 한 사람의 시 해설이 있고 그 시인의 가정사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들어주고 이해하면서 서로 친근하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문인수 시인은 다른 시인들과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시의 소재를 자주 찾는다는 얘기와 정지창 수필가의 수필집 배창환 시인의 전교조 운동 후의 시련과 아픔이 드러난 시들, 김은령 시인의 경제 위기를 넘기면서 쓴 시들, 장하빈 시인의 슬픈 가족사를 듣고 서로 혀를 끌 끌 차면서 슬픔을 쓰다듬는 한 시간 동안 밤은 깊어가고 돼지고기 골목에서 막걸리 뒤풀이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시간으로 발효되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시의 향기와 생김새가 꼭 사람 얼굴처럼 다양하니 그래서 나와는 다른 체험과 개성적인 시를 읽고 씹고 물어뜯으면서 즐기는 맛을 생각하면 시집 산다고 집안에서 짤그락거리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사투리 시도 개성이라 우기면서 열심히 쓰게 되었고 그로인해 이런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 외에도 인터넷 모임이기도 한 시 하늘, 시와 여백 등에서 거의 매달 시낭송회와 출판기념회 그리고 각 단체들의 출판 기념회에서 많은 시낭송 모임이 쏟아지고 있어 일일이 다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시인은 부지런해야 할 정도로 얼굴 내밀어야 할 곳이 많다. 잘못하면 그런 행사 기웃거리느라 옳은 시 한 편 쓸 수 없을 수도 있다. 시인이 시 한 편 잘 쓰는 일이 주된 목표일진데 잠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시는 뉘 집 시앗처럼 언제 보따리 사고 도망갈지 모르는 일이다.  항상 제 생각만 해 주길 바라는 시의 귀여운 앙탈에 끌려 초겨울 바람에게 ‘벌써 왜 이리 쌀쌀하냐?’ 깐죽을 걸어보고 있지만 쉬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기다려야지. 저 못된 것, 매정스레 버려야지!” 하면서도 또 그의 마력에 끌려가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삼류 시인의 아픔,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얼마 전 어느 행사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장이기도 했던 허영자 시인이 ‘시인이 아무리 나빠도 정치가들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러니 국민 모두가 시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말하자 허영자 시인의 스승이기도 한 김남조 시인이 ‘그건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해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었다.
 벌써 십일월 말이 다가오고 있다. 어젯밤엔 진눈깨비가 내렸다. 마지막 달력 한 장 달랑 남아 흔들릴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진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필자의 시는 어느 정도 위치에 와 있는지,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정리해 보아야 한다. 내년엔 더 많은 시와 시인들을 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해지길 기원하면서 이런 행사에 자극을 받아 시인들이 쓰는 시의 내용과 수준이 더 향상되어 세파에 시달리느라 고단한 이들에게 아늑한 정신의 안식처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모쪼록 내년엔 더 많은 시인들이 참여하여 혼자 쓰는 시가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리하여 서로 다양한 방법으로 어우러져 소통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시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인들이 각자 다 다른 소재와 경험을 자기만의 독특한 구성과 묘사를 개발하려 노력하기에 시는 어렵다고 하지만 시인들도 사실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왜냐면 시는 있는 그대로 다 쏟아내듯 표현하지 않고 은유로 감추고, 변용하고, 상징으로 말하려니 한 번 쯤은 자신의 시의 내면을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런 이유 뿐만은 아니겠지만 내년엔 대구문화재단 서정시 콘서트에 더 많은 시인들과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수상소감


  요즘 만해의 깊은 사랑에 점점 빠져드는 것을 어찌 눈치 채셨을까요? 그를 밟고 간 행인을 찾아보고 연꽃에 앉아도 보며 열심히 밭갈이 흉내 내는 걸 언제 보셨을까요? 시집이란 좁은 울타리에서 아웅다웅하다가 세상을 너무 모르는 바보 같은 처용아내를 찾아주시니 심사하시고 결정해주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그 동안 외로이 자신의 시세계를 지켜 오신 김후란 시인님을 축하하는 아랫자리에 작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어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등단한지 거의 이십년이 되어가니 주위에서 왜 그 흔한 상도 하나 못 받느냐 손가락질하는 분도 계셔서 제 시안이 아직 열리지 못한 탓인지라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에게 좀 더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 먹먹했습니다.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참말로 느리게  어릴 때부터 경산 출신인 장덕조 소설가처럼 되길 바라시며 부담을 주시던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곤 아흔 다섯의 어머니 살아계실 때 귀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기쁨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엔 제가 시인이 되도록 무딘 감성을 깨쳐주려고 밤낮 고심하신 시어른과 만약의 경우를 위해 홀로서기를 권유해준 그와 아이들 시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외로운 시간을 준 가족에 감사합니다. 

 특히 네 번째 시집 ‘바람다비제’는 바람불다 연작으로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고비에 쓴 글들입니다. 세상이, 사람이 무서워 죽음까지도 생각할 그 어두운 시간을 더 어려운 처지의 생명과 사람들을 찾아 애기 나누면서 위로를 삼았습니다. 많은 의지가 되었던 시할머니 시어른 두 분 돌아가시고 몸도 마음도 상처 입은 그의 건강 그 와중에서도 아이들 셋 혼사 치르고, 제 울타리에 샛바람이 들지 못하도록 기도하느라 젊은 세월 다 보냈지요. 자칫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그 시간들을 시란 그 기둥서방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눈 뜨고 귀 열리기 위해 허기진 듯 무조건 가르치고 쓰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두터운 껍질 속에 가둔 자신의 속살을 찾아내고 가꾸어 모든 사물을 자신만의 감성과 의지로 재창조하는 그래서 점점 신들린 듯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귀신바람이 나도 단디 난 것이지요. 앞으로 더욱 좋은 시를 쓰라는 사랑의 무서운 채찍으로 알고 처음부터 다시 세상을,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겠습니다. 제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열심히 전달하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이 행복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분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주말에세이]유월, 소리의 터널을 찾아 
  
 
밤꽃 향기에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사람도 새도 나무들도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달입니다. 범어 숲 꿀밤나무들이 제 그늘 넓히느라 서로 허공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손끝마다 불을 켜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경쟁심 부채질하느라 바람은 이 나무 저 나무 쫒아 다니기 바쁩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제 본능과 의무 지키느라 싱싱하고 빛나는 눈빛이 새삼 아름답게 보입니다. 정지용의 '슬픈 汽車 '라는 시의 한 구절에선 '우리들의 汽車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간단다'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유월소는 여름소란 뜻으로 유월이 그만큼 여유 있는 계절이란 뜻이 아닐까요.

사월 보릿고개도 모심기도 대강 끝내고 저 풋풋한 힘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유월항쟁이 일어났으리라 생각하니 이십 년 전 그 당시의 젊음이 그리워집니다. 살아있음의 큰 축복은 무엇보다 소리가 아닐까요. 모든 생물 의사소통의 통로여서 서로의 벽을 없애고 마음이 통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가까운 길일 것입니다.

바다 속에도 소리 터널이 있어 미국이나 뉴질랜드에 있는 암컷고래가 짝이 그립거나 급히 부르짖는 소리가 동해 해안에 있는 수컷고래에 전달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보면 분명 저 숲에도 나무는 나무들끼리 바람은 바람끼리 새들은 저들끼리 주고받는 소리통로가 뚫려 있을 것입니다.

무료한 날 등산길 벤치에 앉아 있으면 소란스런 소리들이 사랑을 찾는 소리인지 다투는 소리인지 햇살이 그 사정 알아보려 기웃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벽 예불의 범종 소리나 징소리처럼 독자를 징하게 울려줄 수 있는 소리를 찾아 길 떠난 구도자가 갖추어야 할 어떤 자세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몸도 마음도 징이고 그 징을 소리 나게 하는 징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뜨겁거나 차가운 수많은 바람의 징채들이 우리 가슴 두드리기도 하지요. 즉 봄눈 이기려는 매화 향기나 눈을 온몸에 이고 선 겨울나무의 목 꺾는 울음소리 또는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가장 가까운 가족 간 주고받는 말이나 욕설이, 슬쩍 혼자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징채가 되어 누군가를 기쁘게 하거나 가슴앓이 하도록 울려줄 수 있지요.

그런 아픔을 내면으로 꾹 참다가 씹고 씹어서 정말 참을 수 없도록 가슴이 미어질 때 그 때 울어야 감동을 주는 울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처럼 유월항쟁이나 4·19 또는 5·18도 개개인의 참았던 그런 소리를 모으고 모아 울린 함성이기에 온 국민의 마음통로를 열고 벽을 허물어뜨려 민주주의의 길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힘센 권력도 무너뜨리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언어로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리듬으로 정치가는 웅변으로 나무들은 바람의 힘을 빌려 온몸으로 춤추며 뭔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울음 대신 슬픔의 표현일 수도 있고 기쁨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통로가 잘 되어 있어도 장벽이 높아 서로 마음의 소리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소리통로는 막혀 버릴 것입니다. 태평양을 건너 그 먼 곳에서도 상대방의 마음 알아들을 수 있는 고래들은 그 뜻을 알아듣기 위해 그만큼 순수하게 온 마음 열어놓고 기다린다는 뜻이겠지요.

유월의 향기로우면서도 따스한 저 바람처럼 가슴 속 박힌 가시들의 말 귀 기울여 듣고 녹여줄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보시이고 사랑의 실천일 것입니다. 알고 보면 별일 아닌 울화들까지 남이 녹여주길 기다리기보다 시각장애인이나 고래들처럼 보이지 않는 구원의 소리 내 스스로 찾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뜻 깊은 일 아닐까요?

우선 자신을 잘 다스려야 이웃의 비명에도 귀 기울일 여유가 있을 것이므로 서로 막힌 말씀의 통로 틔우려면 먼저 마음을 열어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 사이 또 밤꽃 향기 몰려오는군요. 그 향기 징채에 여직 둔탁하기만 한 징일 뿐인 제 마음 맡겨 깊이 취해봅니다.

정 숙(시인)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2007년 06월 23일 - 
 
 
 
 
 
 
*. 매일 신문 매일춘추에 빌표된 칼럼

(1) 바람도 달빛도 아니었다 / 정 숙[시인]

뭐라카노,저 편 강 기슭에서/니 뭐라카노,바람에 불려서/

박목월 시인의‘이별가’ 부분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것 같지만 실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정겨움이 넘치고 있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기에 살갑게 키운 자녀를 출가시킨 부모의 허전함과 더불어 요즘 우울증 남성 환자도 많다고 한다. 필자는 별 이유없이 그런 깊고 어두운 우물에 갇혔을 때 시(詩)라는 줄을 붙잡았지만 다행히 썩은 동아줄은 아니었던 것 같다.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신경림의 ‘갈대’란 시에서 시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꼈었다.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갈대 제 울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내면을 깊이 드려다 봐야 한다. 우울증은 어느날 제 삶을 되돌아보며 남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미워한다. 자살 또는 가족까지 해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결국 절망이나 희망의 동아줄도 다 제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중자애[自重自愛]란 이기심이 아닌 참 자기 사랑이고 또한 사회 사랑이다, 자신을 진정 사랑한다면 남을 해칠 수 없다.그것은 곧 자신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뿐 아니고, 

그릇 깨지는 소리에 세상이 소란스럽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던 깨진 것은/칼이 된다./

오세영의 ‘그릇’이란 시 부분처럼 신용과 믿음,사랑이 깨어져 부모와 자식 사이까지 어렵다. 참을성과 서로 따뜻한 눈인사가 절실한 때에 제 삶을 자주 반성하며 언제라도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할 각오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2) 푸른 기차를 타고 / 정 숙[시인]

뜨락 나뭇잎들이 가을 늦바람이 들어 저마다 붉게 혹은 노랗게 치장하는 동안,한 쪽 귀퉁이에 있는 듯 마는 듯 대나무들이 사색에 잠겨 있다. 대나무는 속을 비우며 곧게 자라다가 죽어서 새로 태어나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
그래서 대나무는 지금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며 영혼을온몸으로 울려줄 피리나 대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얼음 위에 댓닢 자리 보아/님과 나와 얼어죽을 망정/ 정둔 오늘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만전춘]>

고려가요처럼 뜨거운 연인들을 위한 댓닢 자리가 될 것인지를 곰곰 생각하는 중인 것 같다. 무언가 되기 위해서는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룩할 수 없다.
      
<여기서부터, ___멀다./칸칸 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서정춘,竹편 1]
      
꽃이 피기까지 백년이란 긴 시간이 걸리고, 대꽃이 피고 나면 대나무의 한 생애는 끝난다.
정치와 인생의 허무한 말년 등 대숲에서 온갖 상념에 젖다보니 뜨거운 여름 동안 자신이 가랑잎처럼긴장이 풀어졌다는 반성을 해 본다.곧 겨울이 오겠지만 찬바람이 오히려 온 정신과 몸을 긴장시키는 코르셋이 되어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꼭 봄이 오리라 확신한다.
      
<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조정권,산정묘지].>  

역사를 꿋꿋하게 견디며 이겨온 배달의 민족 아닌가? 어려울수록 더욱 뭉치며 헤쳐나가던 신라의 화랑정신을 생각하면 정치나 경제면의 이 겨울이 결코 무섭지 않다.
한 칸씩 속 다 비워낸 뒤 또 한 칸을 딛고 곧게 오르는 대나무가 푸른 기차를 타고, 희망과 인내의 멀고 긴 여행길에 나설 채비를 하는가 보다. 제 속을 비우면서 꿋꿋이 외로움을 견딘 사람만이 죽어서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3) 올빼미도 웃던 날 / 정  숙[시인]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어지겠구나!/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달님도 소리내어 깔깔 거렸네[서정주,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추석 전날의 정겨운 풍경을 노시인의 시 한편이 아주 절실히 잘 묘사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생히 살아나는 것 같아 인용해 보았다. 지금 시절이 하 수상해서 따위는 핑계이고 나이 들면서 명절이란 말에 짜증을 내고 그저 의무적으로 받아 들이는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제사 음식에 송편을 빚고, 가족들 한복까지 손수 지으셨으니 다홍빛 갑사 치마와 노랑 저고리를 박음질하시던 어머니 곁에서 설레던 그 때 그 빛깔과 비단 향기는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걸 지금도 느끼면서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앞만 바라보고 달리며 풍선 터지는 줄 모르고 불어대다가 구조 조정이란 시련 앞에서, 좌절하기 보다 더 어려웠던 그 시절에도 우리 어른들께서는 꿈과 아름다운 추억을 자녀들에게 심어 주셨다는 걸 기억하고 용기를 가져야겠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어귀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귀야
어강도리/아으 다롱디리 [井邑詞,고려가요] 

옛 여인네들의 노래처럼 올 추석 보름달이 높이높이 돋아 멀리멀리 비추어 모든 어려운 이들 가슴 구석구석 희망의 빛 뿌려 주기를 달님께 간절히 기원하리라. 


(4) 오-매,단풍 들겄네 / 정  숙[시인]
                                          
시월의 벼논에는 가을 바람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悲愴’을 연주하면서 벼이삭들이 하얀 알곡을 여물게 하고 있었다 햇살의 손길 고루 닿도록 태풍에 시달린 벼이삭의 등허리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 바람이 땀 흘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벼들은 어깨 맞대어 서로 의지하여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에 도취하면서 점점 고개를 숙일 것이다. 
홍수의 피해 소식이 참담했었는데 바람의 빛깔 무궁무진해서 그나마 누렇게 여물어 가는 들판을 보니 그 동안 애쓰신 농민들께 감사드리고, 죄송스런 마음과 더불어 익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 새삼 느낀다.고통없이 어찌 여물어가겠는가? 익는다는 것은 또 젊음을 잃어간다는 뜻도 되니 쓸쓸한 그 마음 안다는 듯이 건너편 숲이 노을에 물든 어머니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가을 바람이 어느 새 갈참나무 잎에 스며들어 붉게 노랗게 색칠한다.
    
‘오- 매,단풍 들겄네’/장ㅅ광에 골불은 감닢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오-매 단풍 들겄네’/ 추석이 내일인디 기둘니리/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단풍 들겄네’ [김영랑,‘오-매,단풍 들겄네’]
     
초록이 지치도록 기다렸다가 바람이 얼른 초록잎에 몸 섞으면 단풍이 든다. 화려하게 바람든 잎새의 속은 또 얼마나 아플 것인가? 아픔이 곧 성숙이고 아름다움이며 그 끝엔 이별이 분명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사람도 나뭇잎과 같아서 내 마음 마지막 단풍들고 나면 더 이상 잃을 것 없어질테니 이젠 아름다운 이별 연습을 해야겠다. 어디서 툭,툭,다 익은 산열매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진달래꽃]
    
소월의 이별도 아름답지만 우리 한글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과 그것을 갈고 닦으신 선조들께 감사드린다.




<나의 시, 이렇게 쓴다>

                                                                 


       중독은 달콤하다
                                         정 숙

1. 기둥서방을 위해


     이미 태어난 내 시들이 참 대견하다. 조용한 시간 곰곰 읽어보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새삼스럽기도 하고 매일 쓰지 않으면 괴롭기도 한 이것이 아무도 즐겨 읽어주지 않는데 왜 이렇게 매달려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일상이 되어 읽고 쓰고 쓸데없이 남의 글 간섭까지 하면서 한 단어를 넣어야 하나 빼버려야 하나  오물딱 조물딱 만지작거리는 것이 중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도 이처럼 정신 쏟아 부을 애인이 있다는 것이 또 행복 아니겠는가. 이제 숨기지도 않고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정신적 기둥서방이라고 할까? 종일 같이 뒹굴어도 질리지 않는, 물고 늘어지면 질수록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길 떠나야 한다.

2. 흰 소의 울음을 찾아

       그러나 그는 까다롭다. 아무 격식 갖추지 않아도 된다면서 또 어느 양반 댁 자손이라며 체험의 객관화 실감유리 묘사 상상력 등등 법도는 얼마나 찾는지 때론 미워서 버릴 작정도 하지만 죽도록 사랑한다며 울며 매달리기도 해서 모른 척 눈감아 주기도 한다. 아예 관심을 더 쏟아 붓기로 작정하여 가슴에 더욱 뜨겁게 품어 그의 밑바닥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내면 뿌리의 아픔과 슬픔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호~불어주며 다독인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이 보이면서 그의 참 모습을 만나게 된다. 가령 징 전시회를 하고 난 뒤 징을 가만히 두드려 보니 소리를 내는 징도 징을 두드리는 징채도 바로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과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있는 징 울음소리 같은 시 한편 쓰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삶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흰 소의 울음을 찾아
          
                                -바람 불다 65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을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결국 시, 그는 깨달음의 길 찾기 아니겠는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올라갈 득도를 위한 마음 다스림은 멀고도 험한 길일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진실하게 살갑게 드러내기 위해 묘사가 있는 것인데 묘사에만 빠져 허우적대다가 물만 실컷 먹고 쓰러지는 짧은 사유가 안타깝기도 하다. 앉아서 누워서 찔러보다가 입맞춤하다가 욕도 하면서 가까이서 멀리서 바라보면서 끈적끈적 질기게 씹히는 건더기를 찾아 날마다 그의 고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더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꼬집는 말도 비꼬는 소리도 바람의 회초리에 몸을 맡긴다. 가슴 찢어지도록 실컷 두드려 맞아도 본다. 또한 나의 말도 웃음도 눈길도 상대방 가슴에 부딪는 징채가 될 것이므로 시, 짝사랑에 빠진 이들을 위해 기꺼이 징채가 되어 맑은 시안을 갖도록 아프게 두드린다. 그들의 울음소리 누군가의 심금 울리며 은은히 퍼져나갈 날 기다리며


3.다듬이질 


     그런 사유가 또 늘어지거나 곰팡이에 먹힐 수 있어 걱정이다. 요즘 수필 같은 긴장미 떨어진 작품이 유행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좀 더 많은 독자를 위해  코르셋을 풀어버릴까 고민도 해본다. 그러면서도 다듬이질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생명은 긴장미라면서 밤새 당기고 밟고 물을 뿜어 꼽꼽할 때 잠들지 못하도록 다시 두드린다. 한 낮 하얗게 표백이 되어 빨랫줄에서 주름살 하나 없이 헛기침이라도 하며 펄럭일 그를 위해 일주일 아니 한 달도 마다않고 다듬고 또 다시 다듬는다. 다 되었다고 넣어둔 것들 시집으로 묶을 때 제목도 다시 바꿔보고 사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새로운 시어 찾기에도 골몰하며 한 번 더 다독이며 다듬는다. 그래도 결국 후회만 남는다. 가슴이 아파 또 그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시, 그는 영원한 나의 고통의 바다이자 안식처이므로, 성냥 한 개비에 지나지 않는 날 뜨겁게 불 붙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이므로, 그 성냥 한 개비가 산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훨훨 타올라 허전한 누군가의 가슴 불붙일 수 있는 날 기다린다. 결국 나의 더 잘난 기둥서방 그를 위해 날마다 지치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가?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빛, 빛깔의 시인 그 섬세함과 치밀한 상상력을 찾아서



 대구문학 아카데미 대표를 근 20년 지켜 오시면서 150명의 제자들과 60여명의 시인을 배출하시느라 얼마나 고단하셨을까요? 새삼 그 격정의 세월에 대해 짐작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신경림의 ‘갈대’를 낭송하실 때의 그 열정에서 시 한편이 소설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계기가 되어 더욱 인상 깊습니다. 지금 팔순을 넘기느라 가물가물해진 시력 때문에  대구문학아카데미 10주년을 지나면서 16기부터 필자에게 시창작반을 넘겨주셔서 파도 센 바다에서 시의 길 찾느라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전국 60여명의 제자와 인터넷 포엠스쿨 정숙반까지 운영하면서 여러 제자들이 계간지 ‘시안’ ‘시와 시학’ ‘전태일 문학상’ 포엠토피아 신춘문예‘ 등 그 외 여러 문학잡지로 등단하는 많은 성과가 있어 늘 감사드릴 뿐입니다. 감히 스승님의 글을 평하기보다 잊혀져가는  楚民 박주일 시인의 시세계를 재조명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시집[바람아. 문둥아]에서 시에서 상상력의 기능

 시 쓰는 일은 그 자체로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며, 가장 순수한 나로 회귀하는 일이라면서 관습에서의 해방, 자유로운 세계를 위하여 시인은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상상력은 모든 사물의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힘이며,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성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면서 그 일상성을 긍정한다는데 그래서 부정과 긍정의 교차에서 시의 원리가 여러 알레고리로 나타나는 가 봅니다. 
 네 번째 시집[바람아. 문둥아]는 그러한 비실제성의 집약이며, 일상성을 부정함으로써 비로소 해방되는 시적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방이 또 하나의 구속이기에 시인은 외로움의 늪에 다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엔가 우연히
너는 있고 네 그림자가 없는
그림자는 있고 네가 없는
그런 시간에
눈은 있고 눈깔이 없고
잇빨이며 혓바닥이 달아난
그런 시간에......                     -[문둥아.40]에서-

눈은 있고
눈깔은 없다.
눈썹은 바람에 가고
살점은 놀 끝에 묻어있다.               -[문둥아.24]에서-  

시인의 시안에 비친 [눈은 있고 눈깔이 없고/ 잇빨이며 혓바닥이 달아난],[눈썹은 바람에 가고/살점은 놀 끝에 묻어있다.] 문둥이를 통해 버림받거나 소외된 존재에 대한 아픔을 절규로 자학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학으로 자기를 억제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바람’을 역동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습니다. 그 아픔에 순응하지 않고 기계화에 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풍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인의 위기의식을 바람의 빠른 흐름으로 표현하는 젊은 감각이 숨어 있습니다.


2. 죽음에서 삶을 유추하다, “新羅遺物詩抄”


 죽어간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을 밤새/손가락 사이로 기웃거린다/하나의 사람은 살아있지만/살아남은 사람은/ 죽어간 사람의 발치에 깔려/끝내 눈감을 수 없고,  __[動物土偶]
 遺物이라는 소재를 두고 얼른 느껴지는 회고적인 넋두리에서 즉 재생상상력에서 해방되어 있습니다. 즉 신라라는 역사적인 소재의 좁은 세계로부터 독자의 눈을 넓고 구애되지 않는 시야로 이끌어 주고 있는 것은 유물을 유물로 보지 않고 연상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유추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즉 유물과의 사이에 자기 동일시가 이루어지고 있어 시간과 죽음을 노리게 다루듯 하는 어린애처럼 순진해 보이는 시인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십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삶이 생성되는 순환과 흐름의 우주 원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

3. 시집 [잡초기] 연작시에서 본 생명의 끈질김과 긴장미
 
 선생님께서도 가장 아끼는 작품이 연작시  [잡초기]라고 말씀하시는데 잡초는 民草이면서 강한 민중성을 표상하는 쉽게 꺾이거나 좌절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여름날
모질고 모질던 쇠풀의
고 속심을 보라.
불의 땅바닥에 착 배깔고
미련도 아무런 애무도 없이
푸른 몸뚱아리로 사방에 들어선다.
내 핏줄에 잠든 잠을 깨우며
나의 온몸을 덮는다.
나는 조금씩 김이 새는 기분이고
차츰 맥박이 처진다.
깨어나도 쇠풀은 될 수 없고
그냥 이대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갈라진 땅 위에
하루해는 너무 길다.

강인하고 집요하게 생명 활동을 전개하는 쇠풀에 감탄하면서도 그 쇠풀처럼 생명 현상의 무자비한 법칙에 따를 수 없는 자신의 삶의 한계를 물끄러미 방관자로서 바라볼 밖에 없음을 한탄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은 ‘미련도 아무 애증도 없이’자신의 삶을 확장해 나가지만 그럴 수 없기에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 한계를 다음 시에서는 순응하면서 관조하면서 받아들이는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에는 산만큼의
바람과 울음이 있다.
밤이면 산은
소나무와 자작나무들을 데불고
계곡으로 떨어져 내린다.
들판에는 들판의 넓이로
울음과 눈물이 고여 있다가
겨울 들판을 수시로 쓸어 올리고
쉴 새 없이 밀어 붙인다.

그것은 자연과 인생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지요. 예순을 넘긴 시인이 오랜 세월 동안 삶의 각박한 인생살이의 쓰고 떫음을 견디고 마침내 얻어 낼 수 있는 채찍으로 자기 단련의 길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리이겠지요.

  그러면서 세파에 부대끼며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몰고 가는 물]에서, 

내 바람으로 떠날 때/ 그대 갈잎에 기대어/ 흔들리며 날리며 가리라,/ 어쩔 수 없이/ 바람은 바람으로 떠나야 하고/갈잎은 갈잎으로 파도쳐야 한다,/ 후회 없다./

 바람의 흐름과 파도의 출렁임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시인의 정신이 잠시도 멈추어 있지 않음을,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후회 없다.] 한 마디로 끊어 시적 긴장미를 살려주고 있습니다.
  시에서 긴장미란 생명이라고 배웠는데 요즘 이상하게 수필 같은 늘어진 시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독자층을 늘이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그래도 진정한 시인은 고독을 즐겨 끌어안고 사리 한 알로 승화 시킬 줄도 알아야겠지요. 잡초기 연작시 가운데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한편이 있습니다. ‘안윤하’시인의 낭송과 함께 음미해야 맛이 나긴 하지만 수련을 통해 눈길은 늘 바람 부는 쪽으로 돌려져 있어 마음은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떠돌고 있지만 몸은 지친 다릴 묶고 또 걸어가야 하는 시인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숨 가쁘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갈 수 있겠는가/ 뜨거운 숨소릴 밀치고/ 빈 가슴으로 훌쩍/ 떠날 수 있겠는가/ 이글이글 타는 눈 버리고/고독의 벌판을 지나/ 아득한 바람의 늪에서 내/ 눈감을 수 있겠는가/ 너를 버리고/ 젖은 음성 널 버리고/ 깨풀이며 강아지풀이나 죽이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훌훌 한 세월/ 잊을 수 있겠는가/ 살기 위하여/ 잡초같이 살아남기 위하여/ 지친 다릴 함께 묶고/ 초록빛 사이/ 저 시퍼런 하늘 뭉게며/불기의 모래밭 짓밟고/ 박토의 그늘을 마구 자르고/ 억새풀 치를 떠는 그늘을 피의/ 상채기 재우고 재우면서 영원히/영원히 우리는/잠들 수 있겠는가/
-[잡초기 중 -----수련에게 전문]

한줌 뜰귀에서도 짐짓/ 잘려나가는 여름의 그림자,/ 핏줄 또한 안으로 가다듬은/ 풀잎 하나에도/ 벌레 울음은 또한 스민다./ 그 운 오래오래 삭아서/

제스네리아 빛으로,/ 제스네리아 빛으로,/

타고 있는 眉間,/ 때때로 눈 어두워/ 그대 만남이 잔잔한 虛空인/
것을 알리라./

나의 깊은 곳으로/ 아, 풀잎 속살의 제일 아픈/곳으로/다가오는 발자국 소릴/ 이젠 알리라/ 잘린 그림자여./[제스네리아] 전문

       “그는 늘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술맛에 민감하고 안주 맛에 민감하다. 그는 술과 안주를 다루듯 시를 다룰 뿐이다.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시던 김춘수시인의 말씀 속에는 피는 꽃 뿐 아니라 지는 꽃잎에서 낙엽 더미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닌 박주일 선생님의 시세계 특색들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제스네리아’ 라고 하는 사물과는 상관없이 소리의 울림이 빚는 어떤 빛깔이고 정경이겠지요. 한 사물과의 교감과 상응의 세계에서 그 결이 너무도 섬세해서 ‘제스네리아’란 단어를 반복하다가 보면 어느새 아주 낯선 순수감각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시인의 시세계가 모네의 수련 한 폭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김춘수시인처럼 의미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항상 귀를 열어놓고 기다리는 사람이기에 발자국 소리에 민감하지요. 그것은 사물을 그윽이 순수지각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우정을 나누다가 시인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돌담 언저리/ 기웃거리던 하루해도 마지막/ 긴 수염을 자르고 나면/ 풀잎 새 풀잎바람으로 흔들리는/ 저 가녀린 미동을 어쩌나,/

돌밭엔 돌꽃끼리/ 무덤엔 하얀 눈끼리ㅣ 어루만지다가/ 쉬 외로운 빛 거두고 나면/누가 몸으로 울고 있나,/울어선 한량없이/ 어두운 강을 이루고 있나/

[동행]이라는 시의 부분에서는 ‘풀잎 새 풀잎바람’‘돌밭엔 돌꽃 끼리 리듬과 똑같은 비중으로 그 돌꽃과 하얀 눈이 끼리 끼리 편을 갈라 가는 듯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 동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의미가 미묘하게 드러나면서 시의  밀도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들이 모발로 몇 겹이나 엮어놓은 듯이 섬세하면서 질기게 보이는 것은 신선한 상상력과 감각의 섬세함이 문장의 밀도를 통하여 얻게 된 견고성이라고 김춘수 시인이 평하고 있는 이유를 알 듯 합니다. 이미지에만 머무르다 보면 자칫 말장난이나 단어의 나열 밖에 될 수 없는 현대시의 한 형태에서 벗어나려는 그래서 뭔가 진한 감동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보여 더욱 그런 밀도가 느껴지는 것이리라 짐작해 봅니다.

4. 감각의 결 , 그 섬세함 [시집, 피그미 풀꽃]

피그미꽃/ 1밀리의 잎에/ 무성히 여름은 다가온다/ 물론 철은 한철인데/ 무심한 눈들에는 잘 보이지 않는/ 난쟁이 피그미꽃에/ 칠월 햇살은 사정없이 꽂힌다/...중략....
피그미 꽃은 속으로 피 말리지만/ 담배씨만큼의 소망 하나 쯤/ 캄캄하고 아득한 흙에 묻으면/ 살아가는 일이며 밤은/ 여전히 어깨 누른다/ 때론 달빛 한 줄도 무겁다/ 그럴 수밖에 없다./_[칠월, 피그미풀꽃]

 지구상의 가장 왜소한 종족으로 알려져 있는 피그미족에서 차용한 이미지로 피그미풀이란 새로운 단어를 조어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숨은 민족어를 찾아 갈고 닦거나 새로운 시어를 개발하는 그런 사명감이 있어야겠지요. 그 조그마한 사물을 의인화하여 자신을 낮추고 작게 함으로써 생명 사랑의 한 모습을, 그 
속에서 달빛 한 줄도 무거운 자신의 고단한 삶과 그 와중에도 담배씨만한 꿈 하나 쯤 갖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여 아주 구체적이고 때깔 좋은 천을 짜고 있습니다.

5. 시집 [는개 그리고 달빛]에서의 궁합과 관능과 묘사력

 궁합이란 게 있기는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흔히 궁합이 맞다, 안 맞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 세계에서도 그 작품을 이루고 있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이 궁합이 맞는 단어들이 모여 있나, 그렇지 않나에 따라서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는개 그리고 달빛]은 이 낱말 궁합 맞추기에 힘을 써보았다. 궁합이 맞았다면 오래 빛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쉬 시들어질 것이다.___자서 중에서

 어느 봄날 청도 적천사 진달래 꽃길 오르면서 ‘이상번 ’시인이 선생님 ‘는개가 무슨 뜻입니까?’ 하니 선생님은 싱긋이 실눈 미소 지으며
‘는개는 갓 목욕탕에서 나온 여인의 몸을 감싸는 따스운 김이지’
 대답하시던 그 모습 잊혀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5편의 연작시인데 그 중 한편을 예로 들어보면 칠순이 지난 그 연세에도 관능에 가슴 떨며 잠 못 이루는 남성임을 자랑스레 과시하는 예리한 미적 언어의 연금술을 보여줍니다. 그런 정서의 묘사를 위해 동원된 낱말들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동적이면서 궁합이 잘 맞는지 읽으면서 전율이 온 몸으로 물결쳐 오는 느낌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런 자화상을 통해 늘 숨가쁜 가슴으로 사물을 사랑하며 꼭 알맞은 시어 하나로 우주의 원리를 꿰뚫을 수 있는 명사수가 되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정서를 조율하고 계실 것입니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방 하나/ 벌써 방은 는개에 젖어 있었네/ 아무것도 모르는 달빛은/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알몸에 싸늘히 감기고 있었네/ 사방의 벽은 완고하다./ 한강 쪽 유리문 하나가/ 바람의 출입 지키고 있었고/ 시방 한강 물빛이/ 강의 몸둥아리를 끝없이. 이끌어가고 있듯이/ 그대 눈빛이 숨의 방향을/ 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었네/ 눈빛 끝에 타오르는 촛불 가까이/ 사랑은 휘청거렸네/ 잠을 잃은 사랑은 초록빛이다. 밤이 는개에 젖는 동안에/ 내 곁에 네 그림자 있었고/ 그 옆에 숨가쁜 가슴 있었네/-[는개 그리고 달빛 1 전문]

 이 글을 읽다보면 달 밝은 여름밤이 생각납니다. 무논에서는 개구리 울음 소리 요란하고 외진 산길, 옆에 사람은 있지만 소통이 되지 않고 누군가 그리워서 몸 깊은 곳에서 파도치는 그 무엇이, 관능이 걷잡을 수 없는 그런 뜨거운 밤 말입니다. 숨가쁜 가슴이 실제로 옆에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상상력은 시인이 가꿀 수 있는 또 다른 피안의 세계이기도 하지요.


6.시집[물빛, 그 영원]-- 미당 형님과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미당 형님과의 수많은 대화 가운데 지금도 가슴에 선연히 살아있는 게 하나 있다. ‘내 영원은 물빛’이란 말씀이다. 새로 시집을 꾸미면서 시집명으로 [물빛 , 그 영원]이라고 한 것도 미당 형님과의 추억을 더듬는데서 연유한다. 개구리 수영을 익히던 시절은 갔지만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형님의 시의 세계와 인연은 영원할 것이다. -------------[시인의 산문] 중에서

 김은진의 해금 소리 끝없이 풀리고 더러는 내 가슴 속 뚫고 휘돌아 나간다. 지금 네 가버린 소리 더듬거리며 내 귀 따라 나선다. 어쩌면 혼의 세계 돌아오는 그 아슴한 파도 떨리는 파도떼서리 보인다.  -[해금소리와 추억의 귀와]

 절친한 친구 분 중 지휘자였던 이기홍 음대 교수님이 계셨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미샤 마이스키]의 ‘悲歌’ 멜로디에 시를 붙여 제자들께 노래를 시키기도 하셨고 수업 중 [차이코브스키]의 ‘우울한 세레나데’는 가슴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 파는 애절함이 있어 한숨을 쉬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김은진의 해금 연주를 좋아하셔서 취한 듯 흥얼거리면서 강의 시간에 흥을 돋우시던 모습 생생히 살아납니다. 그 소리 떨림에 대한 밝은 시안과 상상력은 또 얼마나 젊은가요? 역동적인 출렁거림이 살아 흐르는 묘사력에 새삼 감탄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시력이나 연세에 만족하거나 머물지 않고  얼마나 외롭게 정진하셨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7.마무리

 시집 [가솔송아 꿈결 같구나] 까지 열 네 권의 시집을 상재하면서 지상에서 차려내는 마지막 모국어의 성찬일지도 모르겠다 셨지만 지금도 원고 정리를 하시다가 잘 풀리지 않는다며 끙끙 앓으시는 모습에 죽어서도 시를 쓰겠다던 각오 아직도 버리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에게 ‘시는 재미가 있든지 감동을 주어야한다’ 던 그 열정 모든 제자들 가슴에 뿌리깊이 심어주시고 신선한 이미지에 깊은 깨달음이 있는 결 고운 시를 살며, 쓰고 또 쓰려고 노력하고 계신 것입니다.

담을 넘어오는 꽃줄
노란빛의
꽃줄이 귀여워보이는데
하루가 더 힘이 있어
안내하는 첫줄이
왕성하다

어서 오시게!
                  --[유도화] 전문-----
 약간 모호하면서도 독자에게 상상력의 길을 열어주는 연상상상력의 이미지 시입니다.  현대시에서는 상상력이 그 시의 수준을 말해 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의 등급이기도 하지요. 상상력이 단지 추억 회상 형식인 재생상상력인가, 아니면 체험을 이미지화한 연상 상상력인가, 거기서 한 단계 더 뛰어 오르려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연상상상이 아닌 아주 낯선 창조적인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상력만으론 일회성에 그치기 쉽습니다. 진한 감동을 주려면 그 속에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생님의 시는 곳곳에 번득이는 기지를 이미지화한 수준 높은 젊은 감각에 촘촘한 견고성과 섬세한 밀도가 있어 새삼 놀라울 뿐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신경림’ 시인이 ‘참여시’도 이제 예술성을 가미한 서정시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시는 만고의 역적이다’  ‘고은’선생님 말씀처럼 그렇게 시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그 얼굴 모습이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자신의 시 한 편을 위해 뼈를 깎는 아픔 견디면서 노력해야 한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자로서 스승의 작품을 알 기회 늦었지만 앞으로 더 세밀히 끌어안고 야무지게 음미해봐야겠습니다. 선생님의 시 가슴속 달큰한 엑기스만 남을 때까지






박명옥님 시집이 출간되었어요.한국문학세상에서 사진과 함께 나왔네요.  축하드립니다.

빨간 립스틱 이 제목입니다. 검은 립스틱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제가 쓴 추천서입니다.



여기 해어화 한 송이 피어나려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눈과 귀 열리도록 수년을 몸 마음 단련 거듭하여 
이제 수줍은 듯 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
달빛으로 뜨개질하며
한 가닥 실바람만 불어도 떨어지는 꿈 서러워 햇살 속 붉은 
피로 피어나기도 하는 넝쿨장미의 시인 박명옥님의
시안은
바람 속 더듬이도 찾아 길 밝힐 수 있으며
냇물 속에서 대낮의 정사까지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모든 지친 사물을 따뜻한 불빛이 켜져 있는 풍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모쪼록 첫 시집 [불이 켜져 있는 풍경] 이 널리 읽히어
그 시심과 상상력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깨우침 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2007년, 팔월 처용아내 정 숙 [시인] 
 
대구 시학회를 찾아서


1. 집 짓는 사람들

    계간 시 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시인들이 이제 백 여 명도 넘는다.  모두 하나같이 인물이나 마음 씀씀이가 미남 미녀라고 한다면 고슴도치 가족이라고 웃겠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 중에서 대구 시학회는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대구 출신으로 모여 있어 문인협회나 시인협회에서 중임을 맡은 분들 그리고 전국 시단에서 뛰어난 시인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상도식 우정 표현인 덤덤하게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있어 벌써 십 여 년도 지났지만 여전히 모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2005년엔 지방 모임에서 처음으로 테마시집 ‘그 집에선 누구나 새가 된다’ [만인사] 동인지를 펴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시를 쓰고 시집으로 묶는 일도 집 한 채 짓는 일이라며 박영호 회장과 그 외 열 명의 회원이 모여 ‘집’이라는 모티프로 다양한 각도에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2.하루에 집을 열두 번도  지었다가 허무는 목수들 

    그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회장 박영호는 외과 의사이며 첫 시집 ‘산길에서 중얼거리다’로 편운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고 지금 총무 박윤배는 고등학교 미술교사이며 198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도 당선된 바 있으며 시집엔 ‘쑥의 비밀’ ‘얼룩’이 있다. 안윤하는 여성이지만 훌륭한 사업가라고 해야 할까? 지금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으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 이승주는 대구 작가회의 이사로 여고 국어교사로 ‘꽃의 마음’나무의 마음‘등 시집이 있다. 이정화는 ‘포도주를 뜨며’란 첫시집이 있으며 이진엽은 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까지 당선된 바 있으며 시집엔‘아직은 불꽃을’ ‘낯선 벌판의 종소리’평론집 ‘존재의 집짓기’가 있다. 현재 효성여고 국어교사이다. 장하빈은 경명여고 국어교사이면서 시집엔 ‘비 혹은 얼룩말’이 있다. 대구 시오리란 동인의 중요 회원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같은 대구 시학회 회원으로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등 별로 볼품없는 집을 지으면서도 대구문학아카데미와 포엠토피아의 포엠스쿨에서 시 강의를하고 있어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현재 대구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조두섭 시인은 매일신춘문예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 어 평론집‘비동일화의 시학’ ‘한국근대시의 이념과 형식’ ‘대구경북문인연구’ 그 외 ‘눈물은 강물보다 깊어 건너지 못하고’ ‘망치로 고요를 펴다’란 시집이 있다. 마지막으로 막내둥이 유인서는 ‘창작과 비평’에서 첫 시집‘그는 늘 오른쪽에 앉는다’를 상재했고 현재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시인인 점들이 마음 든든하게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국어교사이며 ‘시하늘’ 잡지의 편집인이기도한  최동룡 시인의 ‘울릉도’시집이 있다.

3.존재의 집과 영혼의 집 짓기

        모두 장인 정신이 투철해서 집을 짓는 솜씨 역시 야무지다. 주춧돌에서 대들보 사이에 자신의 집의 빛과 소리를 적절히 넣어 아름다운 꽃밭까지 완벽하게 표현하려 적어도 노력하는 시인들이다. 지금부터 ‘집’이란 같은 테마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평론가 이진엽시인의 평을 빌리자면 ‘집’과‘몸’의 유기적 상관성을 통해 삶의 쇄신을 꿈꾼다는 박영호의 ‘낡은 집’을 살펴보기로 한다.
내 몸을 눕힐 집이/너무 낡아 드나들 때마다/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 난다/무너질까 두렵다/내 영혼이 들어가 쉴 몸이/너무 오래 끌고 다녀서/반란을 일으키는지 움직일 때마다/곳곳이 쑤시고 덜거덕거린다/
                                        [부분]
      현대 사회의 병폐를 알레고리를 통해 적절하게 폭로하고 있다는 박윤배의 ‘집, 고슴도치’를 살펴보면 도시는 온통 아스팔트의 벽돌/노숙의 붐비는 절망들이/ 종이상자를 깔고 점령해버려/잠든 한 사내의 튀어나온 발가락/깨물어주고 싶은 분노도 잠시/더 이상 온전한 지하/오래된 나무의 뿌리 아래/집 하나 갖는 꿈이 막연하다/[부분]

    떠남과 미련‘이라는 모순된 심리 상태를 통해 집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안윤하의 ’집‘은 또 다른 감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른/내 눈물의/내 사랑의/감옥/
수인번호; 540721-2691815[부분]

     아름다운 티벳의 자연을 배경으로 집의 종교적 의미를 심도있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이정화의‘ 집’ 부분을 살펴본다.
바람의 손이/ 끊임없이 돌리는/ 저 마니차 경들/

    이진엽의 ‘영혼의 빈집’에서는 언제나 바람이 스치는 곳/ 그 집은 항상 모든 문이 열려있다/튼튼한 자물쇠로 사방을 굳게 잠가도/밤새 바람은 달그락달그락/맑은 열쇠 소리로 잠긴 문을 따버린다/[부분]고 묘사했고

     장하빈의 ‘담배창고에 대한 추억’은 목조계단 밟고 가파른 시간 더듬어 내려가면/ 캉캉캉캉 울리는/ 거미줄에 걸리어 파닥이는 먼지의 기억들/ [부분] 집과 시간을 씨줄 날줄로 하여 삶의 본질적 문제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한다.

      정숙의 ‘폐가‘에서는 시어머님, 팔순 문턱에 서 계신다/ 살아가기 위해/ 가족을 위해 서까래 정렬시키듯 정성스레/ 두레밥상을 차리시던 분/ 이제 무너져 가는 빈집에 갇혀/밤마다 저승길의 어둠, 바라보신다[부분]에서는   팔순에 접어든 시모의 삶과 기울어가는 빈집의 이미지를 병치시키면서 인간의 한 생애에 대한 사색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승주의 ‘바람의 집’ 앵초꽃을 새로 피게 하고/ 목련가지 위에 날아온 어린 새떼들의/ 흰 날개를 펴게 하고는/ 누가 불렀는지/ 순삭간에 사라졌다[부분]에서는 바람과 집이라는 시의 중심화소를 통해 우주 속에 자생자화하는 자연의 이법을 담백한 목소리로 들려준다고 자세하게 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두섭의 ‘둥지’는 상징계의 숲속에 지어진 새집을 바라보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고 세계를 자아 깊숙이 끌어들이는 내면화와 긴장된 상징어로 연쇄되고 있다고 하는 본문을 적어보면 온몸에 퍼지는 울음소리/ 그 벼랑 끝이/ 그들이 가로누운 아늑한 거처이었으니/[부분]

    이상으로 11명의 동인들 가운데서 최동룡 유인서의 작품이 빠지고 존재의 집, 영혼의 집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고 싶어 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4.추녀 끝에 등불을 달고

     대부분의 문화 예술이 중앙으로 집중되어 해바라기 밖에 될 수 없는 현실에서 대구 시학회는 지역의 문화 발전을 위해 감히 등불 높이 내걸어 시의 수준 높은 길을 찾아 닦고  조이며 바람과 햇살을 깔아 소나무 재질의 솔향 가득한 집 한 채 든든하게 짓고 싶은 것이다. 비록 문학기행이나 시낭송회 자주 열어 화려하기보다 조용히 만나 세상과 서로의 체험 나누어 시어를 갈고 닦기에 여념이 없다. 한마디로 시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폼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아와 뭔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자의 자세로 하루하루를 아주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란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물론 대부분 시인들의 사고가 그렇긴 하지만








정 숙(시인)


 

우선 시력도 얼마 되지 않으면서 시에 대해 아는 체한다는 것이 몹시 건방진 듯하여 죄송스럽다. 그러나 그 동안 현장에서 시를 가르치다 보니 나름대로 잣대를 세워두어야 하겠기에 감히 정리 해볼 용기를 가져본다.


시는 내게 생명의 밧줄이다. 옛 설화 가운데 해와 달에 나오는 썩지 않은 그 밧줄인 셈이다. 깊고 어두운 웅덩이에 갇힌 나를 건져 올려준 두레박이기도 하다. 시를 쓰는 유형엔 살다보니 허무하고 뭔가 그립고 고독하다 내숭을 떨며 사치로 쓰는 이들이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 삶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이 미물임을 통감하고 진정 허기져서 쓰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이들의 빛으로 위안으로 무작정 쓰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필자의 경우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가끔 오싹해질 때가 있다.


 

- 우물 속 자신의 모습 바라보다가


 

이처럼 시는 자유, 평등, 자아실현 또는 가난, 좌절, 운명 등을 이기기 위해 또는 나를 반성하고 참회하기 위해 또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것인데 단지 시대 흐름에 따라 그 표현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 좋은 시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은 거의 같으리라고 본다. 즉, 모든 사물을 사유의 깊이와 애정으로 바라보며 서정성과 깨우침으로 사상성의 조화를 이루며 민족어의 승화를 지향하여 숨은 詩語를 찾아내거나 造語로 삶의 모순과 이율배반으로부터 진실을 찾아낸 시라고. 어쨌거나 시는 읽는 이에게 진한 감동을 주든지 아니면 재미라도 있어야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 무당처럼 죽은 것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랑의 표현이 다르듯 현대시는 그 표현방법이 조금 다를 뿐인데 거기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시 공부를 하려는 대다수가 19세기 낭만주의 시를 좋아하거나 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 어렵다거나 이해하기 힘들다 하는 것은 直情 즉, 정서의 직접적 표출이 아닌 비유로 다른 사물로 변용 또는 치환하여 그 글을 자꾸 곱씹어 감춘 뜻을 찾아내야 하는 內包언어이기 때문일 것이고 또 리듬보다 묘사를 중요시하고 모든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의인화를 해서 더 신선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관찰력과 문장력도 있어야겠지만 사물을 그냥 사물로 보지 않고 그 뒤의 보이지 않는 생명력을 찾아내는 視眼. 즉, 직관력도 있어야 하니 사실 시 쓰는 일이 무척 힘든 일이다. 이것은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있어야 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육감을 열어 잠시도 깨어있지 않으면 금새 뾰루퉁 보따리 싸는 애첩의 기질이 있으니 말할 것 있겠는가. 그러다 보면 시인은 무당처럼 죽은 모든 것들의 말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의 두 번째 시집 「위기의 꽃」에 실린 졸시로 성당 어느 결혼예식에서 십자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깨달은 것이다.


 

<참사랑>


 

예수의 거웃 가리려고

바둥바둥

십자가를 진

작은

천 조각, 


 

聖衣!


 

물론 예수가 참사랑이겠지만 그 예수의 치부를 가리고 있는 천 조각 자신이 진정 참사랑이란 걸 보여주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에 무릎을 탁 치며 쓴 글이다. 그런데 이런 시는 애정을 가지고 자꾸 읽어주어야 그 깊은 뜻이 나타나니 그런 독자가 몇 없어 힘없는 무명 시인은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

풍자와 해학으로


 

살다보면 황당한 일도 많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것을 당장 말로 표현하는 이들은 그래도 속이 후련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우리 선조들은 탈춤으로 창으로 해학적인 풍자로 표현하는 지혜를 가졌으니 필자의 첫시집 『신처용가』는 처용설화를 패러디하여 경상도 남정네들의 속성을 흉보고 어루고 달랜 졸시들이다. 그 중 한편을 예로 들어보면,


 

<休火山이라예>

― 처용아내․2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 서답 : 월경 / 시상에 : 세상에 / 카는 : 하는 / 카믄 : 하면


 

솔직히 미친 듯이 연작으로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속이 후련했던지 특히 돌아가실 때까지 편운 선생님께서 많은 격려를 해주시고 박수를 쳐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

중충 묘사와 치열성으로


 

요즘 묘사를 중심으로 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시들도 많이 있지만 뒷끝이 뭔가 섭섭해서 중층 묘사와 치열성으로 묘사를 겸한 철학적 깨달음이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발표된 시 ‘밤을 태우는 힘에 대하여‘ 란 졸시 中 지면상 마지막 부분이다.


 

그 시간만큼은 서로 순대 속처럼 

끈끈한 피로 엉켜 시린 추위를 달래주고 있었다

하찮은 조개 몇 개와 막창들이 그리고 떡볶이까지

아무 힘없어 보이는 것들끼리 어울려

어둠을 몰아내려 불 지피며

세상을 움켜쥐고 끌어당기거나 끌어안는

힘, 그 힘이 부러워 

나는 밤의 깊이도 잊은 채 앉아 있었다


 

특히, 현대시가 언어의 폭력이란 말도 많이 쓰고 있는데 물론 그런 부분을 공감하기도 하지만 젊은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야 하듯이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남이 쓰지 않는 새로운 시어를 개발하기 위한 조금 억지스런 면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할 줄 알아야


 

여기서 더욱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상력이다. 그 시의 성공 여부를 등급으로 메기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수준을 보아야 한다. 단순히 체험을 회상하는 재생상상력의 작품인가 아니면 연상 상상력에서 비유로 이미지화를 잘 했느냐 마지막엔 그 누구도 미쳐 생각해 보지 못한 창조적인 상상력이냐에 따라 작품의 등급이 나누어진다. 거기다 갓 낚아 올린 붕어처럼 펄펄 살아 숨쉬는 신선한 맛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감각적이어야 한다. 요즘 대부분의 신춘문예 시들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작품을 대했을 땐 살이 떨리고 질투심이 불같이 일어나야 적어도 그런 시 가까이 가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죽을 때까지 그런 시 한편 얻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감추는 수밖에 없다.


 

­어린이의 창의력을 위해


 

아무리 떠들어봤자 선배님들이 다 하신 말씀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 좋은 작품일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층에 현대시를 가르치면서 특히 초등학교부터 현대시를 가르치면 문장력이나 치밀한 사고력 뿐 아니라 관찰력과 직관력으로 상상력이 풍부해지니 장래 창의력 있는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예를 들자면 해바라기 꽃에서 엄마의 얼굴을, 또는 꽃핀 개나리를 보고 개나리가 봄을 밀어 올린다고 볼 수 있도록]


 

­아줌마는 시 쓰면 안 돼요!


 

마지막으로 여성이란 입장이 참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아 걱정이다. 어느 문학 강연 에서 아줌마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젊은 남자 시인이 대뜸 ‘아줌마는 시 쓰면 안돼요. 성상납을 해야 돼요.’ 그 말에 납득이 가지 않아 하는 필자에게 남자 시인들은 대부분 당연하다는 듯 무슨 딴 소리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에 새삼 놀란 적이 있다. 물론 그것도 자신의 능력이라고 자랑스러워 할 일이겠지만 몇 사람 때문에 맛은커녕 구경도 못해본 많은 여성 시인들에 대한 시선이 그렇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다른 여성 시인에게도 해명을 좀 하라고 해도 묵묵 부답이니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닌 듯 하다. 여성들이 같이 손잡고 남성들의 시기심 같은 그런 사고와 시선을 근절시킬 수는 없을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며 빈정거리는 그들을 위해 서로 손잡고 해결하는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월간『우이시』제194호)






 날개가 날아오르는 길을 모르니

1.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는 제게 날개입니다. 그러나 그 날개 아직 어디로 날아 올라야할지 길을 모르니 바람그늘을 빌려 제 그늘 깊이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하면 길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 길을 모르기 때문에 무딘 삽으로 뿌리 속 뿌리에 앉은 옹이의 맺힌 한 들으려 파헤치고 있습니다. 이 복잡한 시기에 왜 달빛에 장미 가시에 시비를 걸고넘어지는지 묻겠지만 시를 버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고개를 넘어 버려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자네 전화 목소리는 언제나 통통 튀며 밝은데 뭔 좋은 일이 맨날 그렇게 있는가?” 
“아이고 선생님, 제가 남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건 이 웃음뿐인데요”
  오래전 어느 유명한 노시인님과의 통화 내용입니다. 그렇지요. 적어도 제겐 마주하는 꽃들이 던져주는 미소가 황감해 눈물이 날 지경이어서 보답하는 뜻으로 늘 환하게 웃었습니다. 삶의 전략으로 항상 찡그리며 우는 해바라기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주변이 어둡고 괴로운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면서 그렇게 자주 울어 동정심도 적당히 얻어가며 꺾어지기도 하며 생을 맛있게 조리할 줄 알아야하는데 그런 기술이 제겐 없습니다.

 삼십년 함께 산 시어머님은 그런 요령을 아셨지요. 시아버님과 할머님 사랑을 받는 육남매 맏며느리의 말꼬리를 잡아 울고불고 하느라 아까운 생을 허비하신 분입니다. 휴전선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늘 긴장이 감도는 어두운 집안 분위기 행여 거실 꽃들이 감지할까봐 그저 허허 웃었습니다.  당뇨 지병을 가지신 어머님을 온가족이 유리그릇처럼 떠받들었습니다. 밸 빼놓은 그 웃음 탓인지 미운 오리새끼는 쇠막대기로 되어 부러질 줄 모른다며 따돌리는 형제간의 시샘 눈빛도 웃음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말재주 없는 탓이겠지만 무슨 말 한 마디 하면 발톱 세운 황조롱이라도 발견한 듯 다른 오리들이 꽥꽥거리기 때문에 반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딸 하나 아들 둘 키워 짝을 찾아주고 어른 세 분 임종까지 지켰습니다. 시누이 시동생 오남매 혼사까지 합쳐 결혼 삼십년 동안 거의 삼년마다 큰일 치렀습니다. 그런 파도 잘 견딘 덕분에 육신 아직 건강하고 말문이 트여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견딘 것도 유산 때문이라느니 터무니없는 그 바람의 징채들이 시인이 되지 않으면 몸이 깨어지도록 두드렸지요. 그런 바람가시들이 제 시의 뿌리로 흘러 거름이 된 것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대소변 받아낸 일이며 어른 잔소리들이 이제 시에서 가지를 뻗어가느라 때론 너무 강한 넋두리가 되어 소음공해가 된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2. 징소리 징하게 한번 울리려고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서답:월경
시상에:세상에
카는:하는
카믄:하면[‘신처용가’ 시집 중에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비바람에 제 몸과 가정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해 저문 뒤에야 뿌리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저런 말씀과 눈빛의 징채들이 징인 제 몸을 울리며 ‘신처용가’ 첫 시집으로 게워내게 했습니다. 시집 속 처용은 제 남편이라며 놀리는 분 계시는데 그는 바람을 못 피우는 사람입니다. 그럴 용기가 없지요. 그 부분만은 확신하는데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그 보다 처용의 고향인 경북 월성군 어일 쪽에 사셨던 친정 일가 중 두 분이 모델입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코도 크고 그야말로 한량이셨지요. 그들을 모티브로 결혼해서 산 십년 동안의 사회상과 가부장적 남성을 점검하고 꼬집어 본 것입니다. 점점 남성의 권위가 사라지고 간 큰 남자 시리즈가 나올 지경이 된 이유를 짚어보면서 감히 영남지방의 내방가사 풍을 이어 볼 작정을 한 것입니다. 처용아내가 꼭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할 수도 없지 않을까요?

 어쩜 처용아내가 열병이 들어 누워 있는데 처용이 소위 풍류남아라 시를 읊은 거지요. 아내가 열이 펄펄 끓으니 역신과 사랑을 나눈다고 노래 부르는 처용이 얼마나 상상력이 뛰어난 시인입니까? 처용아내도 바람을 피워보지만 결국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툭수바리 된장이 가장 맛있다는 소설 같은 연작시입니다. 시집 전체에서 용암이 끓어오르듯 폭발하는 힘은 다 그런 가정적 이유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징소리 한번 요란하게 울린 거지요.
 신라시대 표준말이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시집 한 권을 엮으려면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시집식구들 눈치 감당하며 넋두리나 원망들이 서로 스트레스였지요. 처용아내의 還鄕女란 누명을 벗겨주려고 시작한 것이 쓰다가 보니 신명이 나서 특히 여러분들이 용기를 주셔서 출간은 했지만 그 뒤로 사실 집안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나중 언젠가 또 얘기할 시간이 있다면 그 땐 밝히겠습니다. 그런데 ‘신처용가’ 가 처용과 처용아내가 끝내 가정으로 돌아가 화합한다는 것이 상투성이 있지만 그런 바가지 깨지는 속에서도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이 땅엔 아직도 한 가정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잠 잘 때도 눈 감지 못하는 투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웃음 또는 울음이란 전투복으로 무장하고

3.우포늪이 늪의 여자에게 말을 걸더군요.
 
 시골 과수원집 셋째 딸로 어릴 때부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가렛미첼’처럼 소설 한 권을 꼭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글 쓰는 여성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으로 포기하고 현모양처가 되려는 꿈을 가졌습니다. 글을 쓰지 않으려 피해 다녔는데 결국 글을 쓰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미친 듯  누군가 총을 들고 따라오는 것처럼 쫒기 듯 게워 내었습니다. 몇 년 전 시인 모임에서 우포늪을 처음 갔습니다. 집을 한번 빠져 나가려면 가느냐 마느냐 갈림길에서 어른들 눈치 보며 그렇게 가 본 겨울 우포늪은 제 손을 잡고 반갑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제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세월들이, 오바사바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위기의 꽃’ 시집에서]
 길을 몰라 허둥대는 제게 늪은 ‘자신을 가두어 늪이 되라고 그래서 꽃 한 송이 피워보라고’ 살아가는 법과 시를 쓰는 태도까지 많은 말을 해주었지요.  강물처럼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흘러갔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시집살이에 병들고 찌들어 화병만 나지 않았을까요? 초기엔 시어머님 잔소리가 무서워 심장이 벌벌 떨리고 손발이 떨려 접시도 깨곤 했지요. 솔직히 전 전화도 쉽게 걸지 못합니다. 갑자기 상대가 고함이라도 지를까봐 걱정이 되어, 끝내 우울증도 겼었습니다. 그런 소심증을 피겨스케이트를 배우면서 고치게 되었습니다. 얼음 위에서 걷거나 날다가 돌아오면 힘이 나고 눈빛이 반짝입니다. 용기가 나서 전화도 걸고 운전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아를 찾기 위해 생각이 깊어지더군요. 그때부터 자신의 생이 누군가에게 도난당하는 줄 알면서도 방관자가 되어 있다는 것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를 무시하고 사는 게 여자의 길인 줄 알았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또 자신보다 가정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타협하고 안주한 것은 아닙니다. 자아실현을 위해 가정을 뛰쳐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면서 여성과 바람의 벽을 무너뜨리려 끊임없이 그 방법을 찾고 연구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입니다. 그 생활체험이 득도를 위한 여정 아니었을까요?


미루나무와 담쟁이


 도난당하고 있었다/ 미루나무는/ 제 삶을 야금야금 훔쳐 먹는 담쟁이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방관자가 되었다/ 솔직히 처음 그들이 슬쩍 발을 걸쳤을 때는
반가웠고,/ 외롭던 참에 당연히 손잡았다/ 얄궂게도 차츰 밟고 오르면서 /
그의 삶을 조금씩 훔쳐가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를 지어, 수만 개의 손으로
그의 얼굴을 지우면서 /머리끝까지 올라가 생긋이 미소 지으며/ 담쟁이는 
더 밟고 올라갈 곳을 찾느라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향해 손 흔들었다/
여름 이파리들이 하마 노랗게 떨어지는데/ 한 발 양보가 백 발 양보라는 것을/ 
나무는 진작 몰랐던 것이다/ 아마도 늦은 밤 불면의 파도에 시달리며 /
지금쯤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겠지/ 소사스레 담쟁이는 인제 옆 나뭇가지를 향해/
애처로이 손 내민다 /살기 위해서 애써 누군가를 /저리도 막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가?/
어린 왕벚나무와 하늘이 대책 없이 방관자인 것이다, 다만 바람이 
가끔 부르르 떨며 나무를 흔들다가 갈 뿐, 그래도/ 미루나무는 덩굴이 떨어질까/ 
제 발등에 심줄 세우며 떠억 버티고 서 있다/

---[‘위기의 꽃’ 시집에서]

 저 늪처럼 미루나무처럼 사는 방법이 어리석어 보이긴 하지만  진주조개가 어쩌다 뛰어 들어온 모래알을 밀어내려고 안간힘 쓰다가 서로 한 덩어리 되어 진주알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런 아픔들이 삶과 시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시는 제게 ‘해와 달’ 전래동화처럼 썩은 밧줄이 아닌 구원의 밧줄이었습니다.

   4. 불붙이는 방법을 찾아서


 십 년 전부터 박주일 시인님이 하시던 대구문학 아카데미 시창작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떨결에 맡아 단지 시집식구들한테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일념에 짧은 지식으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인 줄 아나’하는 오기로 시작한 것이 인터넷 포엠토피아 포엠스쿨까지 맡으면서 그새 십년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제자들이 시 전문 잡지 시안과 시와 시학, 신춘문예 등으로 등단을 했고 등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란 쓰기 전에 먼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를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물의 밑뿌리를 꿰뚫어보는 시안과 직관력으로 이미지화하는 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상상력이 얼마나 신선하냐에 따라 그 시의 수준을 가르기도 합니다. 거기에 묘사에만 그쳐 말재주가 아닌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감동을 독자에게 전달하겠지요. 긴장미를 위해 가지치기로 진정한 엑기스 한 줄로 남도록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합니다. 여기서 그늘이란 슬프다 아프다를 겉으로 울며 징징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슬픔을 아픔을 가장 냉정하게 객관적인 시각과 비의로 묘사해야 하니 그래서 더 하늘이 멀어 보이나 봅니다. 

  다른 시인들이 필자만 보면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른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왜 그리 추웠을까요? 첫 시집 ‘신처용가’ 내용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그 내면에 울분과 슬픔이 내재되어 있듯 처용아내의 모자에 꽂혀있는 꽃 활짝 핀 겉모습과는 달리 새삼 불붙이는 법을 연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은 모두 가슴에 불씨를 간직하고 있어 그 불꽃의 크기와 붓이나 언어의 연마 기술에 따라 훌륭한 화가도 시인도 되겠지요. 성냥 곽 안에 든 성냥개비들이 어떤 것은 불 한번 피워보지도 못하고 잠들어야 하고 어떤 것은 활활 타올라 급기야 영원히 타오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불붙이려면 내가 먼저 불이 붙어야 하고 내가 불이 붙으려면 그 누군가와 좋던 나쁘던 세게 또는 부드럽게 부딪쳐야하지요.  

누가 먼저 불붙이느냐

        ---성냥불  1




밤새워 온 몸 사른다
한 개비 성냥불 입에 문 초는
제 목숨 다 녹아내리는 줄 모르고

얼어붙은 샛강도 녹일 수 있는
불씨, 사람들마다 가슴에 간직하고 있지만

누가 제 몸에 먼저 불붙이느냐

성냥 한 개비의 몸도 마음도
그 누군가와 
온 전신으로 부딪혀야 불꽃이 피어나나니

남의 가슴에 불붙이려면
저 먼저 타올라야 하는 법

이런 모든 사회생활 체험 속에서 살아 펄떡이는 시들이  힘을 얻기도 하는데 이미 유행 다 지난 낡은 습관을 업고 어른을 모신 마지막 세대고 자식한테 대접 못 받는 처음 세대, 마처족이라고, 그늘이 없는 시라야 잘 날아오를 수 있는 세상이라고 억울하다고 징을 두드려봐야 아무도 눈길 돌리지 않습니다. 묵묵히 그늘진 곳에 있는 그늘진 이들의 그늘 뿌리를 찾으며 부드러운 힘을 맛갖게 표현할 수 있도록 살며 사랑하며 쓰며 제 지식 필요한 분께 전수하며 걸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서 부터 늘 혼자인 것은 분명 저도 모르는 제 모습에 뭔가 잘못이 있겠지요. 그 원인을 찾으려고,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우물 안 드려다 보며 뽀글 파마에 몸빼이[?] 입고 비닐슬리퍼신고 발바닥에 굳은 살 박히도록 뛰었습니다. 젊어서 잠시나마 학생들 가르친 말에 책임을 지려고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속 타도록 몸부림치던 파도숲도 바람이 지나가버리면 아무 증거도 없습니다.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게 고백하시더군요. 제 사주팔자가 그냥 가정만 지킬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걸 막으려 미리 선수 친 거라고. 그러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압박이 오히려 시인이 될 수밖에 없도록 그 심연으로 밀어 넣었으니 또 하나의 아이러니지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전 제 잘못이 무엇인지 찾느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이제 바람이 왜 부는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그 이유나 따지며 걸고 넘어져야겠습니다. 그동안 따뜻한 웃음 보내주신 시인님들과 포엠스쿨을 지켜주시는 분들 그리고 대구문학아카데미 회원 여러분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삼십년 무덤 속 순장으로 쏟아 넣은 젊음과 긴 시간이 詩로 녹아 보리수 한 그루 싹틔워주길 기다리는 것이 헛된 욕망일까요. 앞으로도 계속 물웅덩이로 파고드는 햇살 바라보며 웃을 겁니다. 우물 안에 갇혔던 개구리 늦었지만 마음껏 파닥파닥 날갯짓해봐야겠습니다. 옹이에 숨은 바람솜털까지 샅샅이 뒤져 어느 시린 가슴 보듬어 줄 시의 불 지피면서 길을 찾겠습니다. 시도 삶도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정표]



석학을 찾아서



시인은 시에 순정만 바치면 다 되는가? [1]

                                      --모윤숙과 이승만, 이광수와 미당
1.봄밤이라예!




 오월은 계절을 중모리에서 점점 중중모리장단으로 몰아붙이며 솔향 터트립니다. 우포늪은 자운영 꽃무늬 치맛자락 펼치며 ‘봄밤이라예’ ‘참말로 봄밤이라예’ 중얼중얼 뜨거워지는 몸 감당하지 못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겠지요. 해마다 그 파문이 ‘최남선 주요한’ 등 시인들 가슴에 너울져 이어온 지 어언 1세기, 늙은 느티나무 굵은 가지들이 새삼 우러러 보입니다. 세상 제 것인 냥 팔 흔들어대는 잔가지 틈에 가려 그늘져 보이지만 현대 시문학을 지탱해온 대들보들입니다. 그 분들 중에서도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와중에서 소위 그 시대 신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궁금해지는 걸 보면 필자도 마음의 여유 이제 좀 생긴 것인가요? 의문부호가 책장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훌륭한 학자를 찾아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2.문 경현 박사님을 찾아서

 시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짝사랑 이십년이 필자에게 선물한 것은 많은 시인들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보다 더 시를 알고 아끼는 학자 한 분을 최근 봄밤에 만난 일입니다. 지금 경북대 명예교수 문경현 [文暻鉉] 문학박사님, 한국사학계의 태두로 ‘신라사연구, 고려사 연구’등 수많은 저서와 학술활동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에 평생을 헌신한 대석학이라고 이상번 시인이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일흔 넷의 연세에 교통사고로 쌍지팡이를 짚고 계시면서도 경주 신화와 전설 모음집을 엮고 계시는데 우연히 식사를 같이 하게 되어 그 분의 문학 사학 철학 유교 불교 영문학 한문학 등 넓은 지식에 탄복했을 뿐 아니라 그런 예기를 듣는 사람이 흥겨워 ‘얼시구!! 무릎을 칠 정도로 재담가여서 그 분의 말씀을 토대로 잠시 신여성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특히 한시 두추낭 [杜秋娘] 해석은 그야말로 처용아내가 “봄밤이라예, 안그래예”를 내뱉는 느낌이었습니다.
 
杜秋娘

勸君莫惜金縷衣
勸君惜取少年時
花開勘折直須折
莫持無花空折枝

님에게 권하노니/ 금으로 수놓은 비단옷 아끼지 마소서/
님에게 권하노니/ 청춘을 아끼소서/
꽃 피었을 때 꺾고 싶으면/ 지금 바로 꺾어소서/
꽃 지고 빈가지만 꺾게 될/ 때를 기다리지 마소서/


추적추적 초여름 비 내리는 저녁 제 몸에 핀 꽃 떨어져 빈가지 꺾지 말고 빨리 꺾어달라는 그 말에 공감하면서 이야기는 월북시인 이용악의 시집 ‘오랑캐꽃’으로 넘어갑니다.
그의 ‘소원’이란 시 한편 읊으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나라여 어서 서라/ 우리 큰 놈이 보고픈 아저씨/ 柳呈이도 나와서/ 토장국 마시게 /나라여 어서 서라 /꿈치가 드러난 채 /휘정휘정 다니다가도 /밤마다 잠자리발 /가없는 가난한 시인 山雲이도 맘놓고 좋은 글 쓸 수 있게 /나라여 어서 서라 /그리운 이들 너무 많구나 /옥이랑 껴안고 /한번이나 울어도 보게 /좋은 나라여 어서 서라./”그를 진정한 민족 시인이라며 자연스레  이광수로 넘어갑니다. 친일을 하고 반성 없이 자기합리화 시킨 작가라며 ‘일제 강점기 젊은이들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부추기자 주위에서 못마땅해 하니까 ’어허 이 사람들 이렇게 시국관이 없어 어쩌나?‘ 한 그의 말이 유명하다며 그의 사생활을 소상히 얘기해 주십니다. 

3.“모윤숙처럼 잘 난 여자는 처음 봤어”

 “ 소설가 이광수가 동경유학 시절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던 중 본 부인 백혜순을 두고 나중 의사가 된 제 2부인 허영숙을 만났고 신채호 밑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로 돌아섰지. 휴양 차 간 금강산 장안사  ‘산방약수’에서 모윤숙을 만나 嶺雲이란 호도 지어주었고 안호상 박사를 소개해 아이까지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지. 나중 그 아이 계모[모윤숙]가 구박한다는 얘기도 한다고 했지. 나중 이혼을 했지만. 납북 후 이광수에 대한 사랑을 쓴 일기체의 감상적인 장편 산문시집 《렌의 애가》(1937)가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 되었지, 한국 문단 최초로 시집 '렌의 애가'가(1959) 유네스코 추천작품으로 선정도기도 했지 .사십대의 모윤숙을 직접 만났었는데 태어나고 그렇게 인물 좋은 여자는 처음이었어. 정 숙 시인처럼 한 송이 모란꽃이라 할까? 대단한 미인이었지. 그러나 1950년 후반 청구대학에서 문학의 밤 이어령, 모윤숙, 이무영[농민소설가]가 참여해서 모윤숙이  ‘나보기가 역겨워’ 소월 시 낭송 해설을 할 때 70대 모습에서 많이 실망했어. 품위 있게 늙어가는 사람도 많은데 뚱뚱하기도 하지만 세월에 풍화된 모습이 아주 추하게 느껴졌어. 

4.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가?

 “함경남도 원산 출생에 개성의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와 서울의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피로 색인 당신의 얼골을〉(1931)을 《동광》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뒤 교사, 기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했어. 그런데 아쉬운 것은 태평양 전쟁 중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하여 강연 및 저술 활동으로 전쟁에 협력한 일이지. 조선문인협회에 간사로 가담해 친일 강연을 했고 임전대책협의회(1941), 조선교화단체연합회(1941), 조선임전보국단(1942), 국민의용대(1945)에 가담하여 《매일신보》등에 친일 논설을 기고했다는 사실이지.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권 논리를 형상화한 〈동방의 여인들〉(1942)을 친일 잡지 《신시대》에 기고하고 《매일신보》에는 〈호산나 소남도〉(1942)라는 전쟁 찬양시를 발표하였으며,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시 〈어린 날개 - 히로오카(廣岡) 소년 학도병에게〉(1943), 〈아가야 너는 - 해군 기념일을 맞아〉(1943), 〈내 어머니 한 말씀에〉(1943) 등을 연달아 발표하는 등 강요에 의한 것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했다는 점이지. 따라서 그는 이 시기에 비슷한 주제의 시들을 창작한 노천명과 함께 여류 문인 중 가장 노골적인 친일파로 분류되고 있어 안타까워요. ”

 5.  조선민족의 딸'이기보다 '동방의 딸'이기를 강조

“특히 '조선민족의 딸'이기보다 '동방의 딸'이기를 강조한 친일파였지만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한 몫을 단단히 했어요. 이혼 후 모윤숙은 이승만의 비서로 일하면서 건국 일등공신이 되었어. 이승만이 그녀에게 인도대표인 메놈박사가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도록 잘 녹여보라 부탁하자 그녀는 영문학에 도통한 춘원과 함께 영시 짓기도 하면서 결국 메놈이 사랑하는 미쓰 모를 위해 그렇게 하겠다는 허락을 얻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 '
 “친일한 그녀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비롯한 수많은 전선시를 써내며 한국전쟁을 '숭고한 반공전쟁'으로 미화하는데 크게 공헌했다는 건 아이러니지. 죽음의 공포에 떨며 죽어갔던 어린 병사에게 울림 있는 시로 '조국의 품'을 부여한 것도 그녀였으니. 하지만 정작 그 병사가 목숨 바쳤던 조국을 불명예스럽게 했던 장본인들이 모윤숙을 비롯한 '친일파'들이었다는 사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묻혀 졌으니 정의감에 불타는 어린 병사가 살아남았다면 모윤숙의 헌정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그 변명을 또 무시할 수 없어 혼란스럽기도 하니 쯧쯧... 그 때 죽은 어린 국군들이 늦게 그 사실을 알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겠는가? 그 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유엔대사로 임명받을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프란체스카 여사가 질투할 정도였다는 얘기가 있어요. 또한 이광수와 모윤숙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했던지 친일로 잡혀간 춘원을 위해 반민특위까지 해체 시켰다고 하니 사랑의 힘이라고 해야 할지 권력의 힘이 막강했다고 해야 할지...“

6.예술가는 생애가 빛나야 한다.

 대구시내 파동 약간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교수님의 정원 4백년 묵은 향나무들이 꼿꼿이 고개를 들고 서 있는데 비에 젖어 더욱 짙은 초록빛입니다. 백 여 년 된 백모란이 져버린 꽃잎을 아쉬워하고 있는지 깊은 침묵입니다. 박사님은 반백의 머리카락 슬어 넘기며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세 한 번 흐트러짐 없습니다. 그 시대 친일에 대해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는 필자의 말에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모윤숙이나 노천명 등 몇 명은 시대를 잘 못타고 난 죄이니 그래도 용서한다고 하더라도
이광수와 최린 미당은 절대 용서할 수 없지. 예술가는 생애가 빛나야 한다 는 말이 있는데 그들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기 합리화만 했어. 특히 미당은 각 정권마다 아부해 일신의 영달을 꾀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지... 물론 우리 민족어를 갈고 닦아 주권을 세운 건 인정하지 그러나 그런 것도 정지용이 이미 닦아 놓은 길 아닌가“   ”맞습니다.“ 덩달아 대구 작가회의 이사인 이상번 시인도 맞장구를 칩니다.

7.마무리

 기억력이 어찌 저렇게 좋을 수 있는지 최린과 나혜석 노천명 이미륵과 전혜린 이야기까지 한시와 괴테의 시 한편 원어로 줄줄 읊으시니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제서야 배가 고프다며 밤 8시 넘어 갈치 정식 집으로 나섰습니다. 나중 나혜석과 최린 노천명과 양주동 박사의 얘기도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신 사학자 문경현 박사님께 감사드리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이상번 시인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표 2008,6,7월호]





석학을 찾아서 2

목이 길어야 관이 향기로운가 [노천명과 김광진 ]
---정 숙 [처용아내]

1. 비슬산[包山]가는 길엔 일연스님이 처용가를 옮겨 집필하시고

“박사님, 자귀나무 연분홍 깃털꽃송이들이 물 없는 계곡을 지키고 있군요.”
“예, 많이 가물었어요. 그래도 저 숲은 싱싱하군요.” 
 현풍 비슬산 대견산 정상엔 신라시대 절터가 남아있고 그 때의 삼층석탑이 아직도 먼 발 아래 낙동강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뒷들판엔 봄마다 참꽃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공룡시대부터 긴 역사를 간직한 비슬산이 핏빛으로 물드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흘러가다가 낙동강에 닿지 못하고 서성이는 암괴류  때문에 온 산천이 핏빛 울음바다 아닐까요? ” 필자의 엉뚱한 생각에 모처럼 크게 웃었습니다.
“ 경주의 전설과 신화 그리고 삼국유사 번역 잘못된 곳 박사님의 수정 작업은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는지요?”
“예, 언젠가 처용아내한테는 그 부분도 얘기해드리도록 하지요.”
“정 숙시인, 자신을 처용아내라고 하면 남자들이 오해할 텐데... 아참, 정 시인의 첫 시집 ‘신처용가’가 시극으로 공연되었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신다.
“네 덕분에 호응이 좋았습니다. 풍자와 해학이라 볼거리와 아픔이 있다고...”
 비슬산 오르는 길목 유가사 절에 지난 오월 일연보각국사님과 조오현 선사님의 시비를 세운 이상번 시인이 박재희 시인과 한문학자 이 정 화 박사와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시고 사학자이신 문경현 박사님을 모시고 산봉우리 이름이 잘못 표기된 부분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길입니다. 문 박사님은 쌍지팡이로 삼층석탑이 자리한 산 정상까지 그 더위 무릅쓰고 올라가시면서 조오현 스님의 ‘비슬산 가는 길’과 직접 번역하신 일연스님의 포산 관기觀機와 도성道成 두 도인을 칭송하는 한시를 맛깔스레 낭송하십니다.

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萬)첩첩 두루 적막(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 琵瑟山(비슬산)가는 길,무산 (霧山) 조오현]
                       ,
2. 허난설헌은 巖塊流에 앉아 울고 있고 

 세계 최고로 길이가 길다는 비슬산 [옛날엔 포산이라고 했음] 암괴류, 흘러가는 너럭바위에 앉아 요절한 허난설헌의 남편을 기다리는 시 奇夫江舍讀書  칠언절귀 한 수 외시며 사대부 집안에 갇혀 꼼짝달싹할 수 없었던 여인네의 답답함을 암괴류에 비유해 주십니다. 
 “몇 억년 한 자리에 머물러 있던 저 바위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흘러 내려갈 작정을 했겠어요.  저 바위에 귀를 대 보세요.  물 흐르는 철썩철썩 소리 들리지요.”
燕掠斜첨兩兩飛     제비는 쌍쌍이 처마 끝에 나는데 
落花요亂撲羅衣     떨어지는 꽃잎은 요란하게 비단옷을 때리는데
洞房極目傷春意     동방에서 기다리는 가슴 찢어지는데        
草綠江南人未歸     꽃 피고 잎 피는 호시절 님은 돌아오지 않네 --[-奇夫江舍讀書 ]

 “그 외로움이 주옥같은 한시를 남기게 했으니 역시 시인은 예술가는 고독이 약이지요. 그러나 허난설헌의 한시들이 허균이 옮긴 것들이 대부분인데 표절논란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어서 관이 향기로운 시인을 만나고 싶다는 필자의 재촉에 이 상번 시인이 노천명의 ‘사슴’을 읊어주면서 한숨을 쉽니다. 
 ‘목이 길긴 길었는데 세상을 잘못만나 끝까지 친일파였지요.’ ‘평생 연인을 기다리며 홀로 지낸 시인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관(冠)이 향기로운 너는/무척 높은 족속(族屬)이었다 보다./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鄕愁)에 /슬픈 모가질 하고/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 , 사슴 전문-


3. 그녀의 사랑은 목이 길 수밖에 없었는가

“그렇지요. 남빛 치마와 흰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는 노천명 시인은 한국시사에서 시적 대상을 시적 화자와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동일성 시학을 선보인 최초의 여성 시인이었지요. 황해도 장연 출생으로 1934년 이화여전 졸업. 재학중(1932) 신동아에 "밤의 찬미"를 발표하며 등단. 모윤숙과 함께 당시로서는 몇 안 되는 여류 시인의 한 사람이었고 점차 명 시인으로 부각 받게 되었어요. 첫째, 자기중심적인 정서 특히 고독에 대한 심도 있는 표현. 둘째, 시인 자신의 농촌 생활로부터 그려낸 향토적인 정경의 객관적 묘사. 셋째, 역사적 국가적 인식의 반영이 바로 그것인데”
“노천명과 김광진의 사이는 불륜이었군요?”
 “ 일제 강점기에 보성전문학교 교수인 경제학자 김광진과 연인 사이였지요. 부인 있는 남자와 사귀었지만 나중 이혼을 했으니 불륜은 아니지요. 결혼 날을 두 번이나 잡았는데 그러고 그 사랑 끝까지 지켰으니 그녀의 사랑 숭고하다고 해야겠지요. 노천명과 절친한 작가 최정희가 시인 김동환과 사귄 것과 함께 문단의 화제 중 하나였고, 두 사람의 사랑을 유진오가 소설화하여 묘사한 바 있지요. 김광진은 광복 후 가수 왕수복과 함께 월북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가족을 만나러갔지요. 고향이 평양이었고 돌아와 결혼하려고 했는데 공습이 있어 그 후 김일성에 잡혀 돌아오지 못했다고  알고 있어요. 노천명은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평생 혼자 살았으니 ‘사슴’이란 바로 자신의 고독을 표현한 내용이지요. 시를 쓰려니 남들이 이미 좋은 말 다해버려서 못 쓴다던 양주동박사가 노천명시인에 반해 프로포즈를 몇 번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양주동의 선구자란 시 대단하지요.“
“김광진과 만난 뒤인가요?” 
“아니요, 그 전이지요. 양주동은 영문학자에 국문학자 시인으로 국보라고 했지요.”

4. 철저한 친일 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태평양 전쟁 중에 쓴 작품 중에는 〈군신송〉등 전쟁을 찬양하고 전사자들을 칭송하는 선동적이고 정치적인 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학병〉 〈창공에 빛나는〉 〈흰비둘기를 날려라〉친일 시들이 있습니다. 노천명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25일 시집 〈창변〉을 출판하고 성대한 출판기념회까지 열었는데 이 시집의 말미에는 9편의 친일시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출판한 지 얼마 안 되어 해방이 되자 노천명은 이 시집에서 친일 시 부분만을 뜯어내고 그대로 계속 시판하였지요. ” 사학자이며 한학자 식물과 동물까지 박학하신 문경현 박사님은 다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친일시를 낭송하십니다.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노천명]

5. 노천명이 모윤숙의 위치를 염탐하다
 “그녀는 이화여전 동문이며 기자 출신으로서 같은 친일 시인인 모윤숙과는 달리 광복 후에도 우익 정치 운동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1950년 북조선의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피신하지 않고 임화 등 월북한 좌익 작가들이 주도하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문화인 총궐기대회 등의 행사에 참가했다가,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조경희와 함께 부역 죄로 체포, 투옥되었지요. 모윤숙 등 우익 계열 문인들의 위치를 염탐하여 인민군에 알려주고 대중 집회에서 의용군으로 지원할 것을 부추기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징역 20년형을 언도 받아 복역했으며, 몇 개월 후에 모윤숙이 연판장을 돌려 사면을 받아 풀려났어요. ” 
 “아무리 기자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 얼른 이상번 시인이 “ 다음 이 시도 대단한 친일이지요. 들어보세요” 하며 시 한편 읊는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군복을 지으러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이여/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노천명의 친일 시 [부인 근로대]시낭송에 눈 지그시 감은 문경현 박사님 혀를 차며 다음 말씀을 이어 가신다.

6. 진정한 여성 선각자는 나혜석 화가

“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이끌어가야 하는 문인으로서 노천명의 국가관엔 애국심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안타깝습니다. 나약한 여성으로 시대를 잘 못 타고 났다고 동정은 하지만 그보다 정말 관이 향기로운 신여성은 나혜석 화가지요. 정월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 여성화가, 선각자, 시대를 앞서간 여성 운동가, 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최린과 이광수의 야비함과 그 당시 동경 유학 간 신여성과의 관계 그리고 그녀에 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요.”

7. 삶을 아끼려면
 말을 아끼면 생각을 아끼는 것이고 생각을 아끼는 것은 삶을 아끼는 것이라고 또 그 삶을 아끼는 이가 시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현대시 백주년을 맞아 험난한 시대의 불꽃이었던 신여성들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상을 더듬으면서 시인으로서의 책임감과 빛나는 생애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정 삶을 아끼는 시인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넘어가는 해 아쉬워하며 비슬산계곡에 앉아 하루의 노동을 위로합니다. 유가사 주지스님이 마련하신 저녁상 위 서로 부딪치는 참소주 잔속에 불콰하게 익은 노을이 슬며시 들어와 앉습니다. 참고로 삼국유사에 등장한 포산[비슬산]이 미당의 시엔 소슬산으로 나옵니다. 일연선사의 한시에서 칭송했던 관기와 도성 두 도인의 우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道人 觀機는 소슬山의 남쪽 봉우리 아래 草幕을 엮어 살고, 道人 道成이는 소슬山의 北녘 모롱 밑 洞窟 속에 계시면서, 서로 친한 친구인지라, 十里쯤 되는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지냈읍니다만, 그 만나는 時間 約束은 某年 某月 某日 某時와 같은 우리들이 쓰는 그런 딱딱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멋들어진 딴 標準을 썼읍니다. 

  즉-너무 거세지도 無力하지도 않은 이뿐 바람이 北에서 南으로 불어 山골 나뭇가지의 나뭇잎들이 두루 南을 향해 기울며 나부낄 때면, 北嶺의 道成이는 그걸 따라 南嶺의 觀機를 찾아 나섰고, 그 바람을 맞이해서 觀機는 또 마중을 나왔어요. 

  적당히 좋은 바람이 그와 또 반대로 南에서 北으로 불어 山의 나뭇가지의 나뭇잎들을 모조리 北을 향해 굽히고 있을 때는, 南嶺의 觀機가 北嶺의 道成이를 찾아 나서고, 道成이는 또 그 바람 보고 마중을 나오고……. 어허허허허허허!……. [소슬山 두 道人의 相逢時間,서정주 ]



석학을 찾아서 3
             ---정 숙 [처용아내]

 1.팔공산 자락 경북 칠곡군 송림사에서[나혜석과 최린]

 어젯밤에 누가 해를 먹어버렸나? 팔월 한 낮이 캄캄하고 무덥더니 금세 소나기 쏟아집니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아담한 절 마당이 물바다입니다. 시 낭송 도중 벼락이 쳐서 새카맣게 타 버릴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두어 시간 행사 내내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말짱합니다.
 팔공산 자락 경북 칠곡군 송림사에서 성덕스님 공덕비를 세우는 날입니다. 역시 사학자 문경현 박사님이 비문을 지으시고 이 상번 시인이 추진위원이 되어 행사를 하는 날입니다.
송림사는 신라시대 5층 전탑塼塔과 사리기舍利器로 저명하며 17세기 조성된 대표적인 수작 불상들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특히 1657년 경 나무로 조각된 목 삼존불상이 조선조 조각사에 큰 의의를 차지하고 있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이라고 문 경현 박사님이 친절히 설명해 주십니다. 
 “전탑이란 벽돌로 쌓은 탑으로 현존하는 다섯 전탑 중 하나이며 그 속에서 금제 전각형 사리기와 유리사리병 등 많은 보물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종암 시인 김은령 시인 곽홍란 시조시인[ 사회자] 박재희 시인들과 간단한 저녁 식사 후 잠시 쉴 여가도 드리지 않고 바로 질문 공세로 들어갔습니다.
 ‘나혜석이 근대 최초의 여성서양화가라고만 알았는데 시와 소설을 썼다니 정말 뜻밖입니다. 박사님“
“그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처용아내를 위해 어제 쌍지팡이 짚은 몸으로 급히 경북대 도서관에 가서 찾은 자료입니다. 보세요.”
“ 송구합니다. 제가 버릇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으면 차로 모셔다 드렸어야 하는데”

2.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면서 시인, 소설가

“ 廢墟폐허 제 2호 37쪽에 羅晶月 나정월이란 호로 발표된 시 내물[냇물]이 吳相淳오상순의 종교와 예술 [평론] 卞榮魯변영로의 메털링크와 예잇스[예이츠]의 신비사상[평론] 岸曙안서의 베르렌詩抄 [譯詩] 金億김억의 프로베르론  廉尙燮염상섭의 月評등 그리운 그 당시 시인들의 시와 함께 게제 되어 있지요.“

내물

졸졸 흐르는 저 냇물/흐린 날은 푸르죽죽/
맑은 날은 반짝반짝/캄캄한 밤 흑색가치/
달밤엔 백색가치/비오면 방울방울/
눈 오면 녹여 주고/ 바람 불면 무늬지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
춥든지 더웁든지/ 실튼지 좃흔지/
언제든지 쉬임없이/ 외롭게 흐르는 냇물/
냇물! 냇물! /저러케 흘러서/ 
湖되고 江되고 海되면/ 흐리던 물 맑아지고/
맑던 물 퍼래지고/  퍼렇던 물 짜지고[華虹門樓上화홍문루상에서] 
“정말이군요. 제가 무지해서 죄송합니다. 전 그냥 비운의 화가인 줄만 알았습니다.”
“화홍문루상華虹門樓上에서란 수원성의 문 이름이지요.”

3. 독립 운동가이면서 진정한 자유 연애론자?

“ 그녀는 서울에서 최초의 유화 개인전을 개최하고 작품을 매매 하는 전업화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지요. 비록 나혜석의 유화작품이 30~40점 밖에 되지 않아 연구하기에 어려움은 있지만, 보통 풍경화의 인상주의적 표현에서 그녀의 특징을 찾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섣달 대목>, <무희>, <파리풍경> 등이 있다. 한편, <매일신보>에 실은 그녀의 만평은 평소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여성의 과중한 가사노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
“그야말로 여성 운동가이기도 하군요. 대단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인 것은 나혜석의 자유로운 연애와 파격적인 글쓰기와 마지막 행려병자가 된 사연이겠지요?”
“예 유부남 최승구와의 일본 유학 시절 연애를 했지만 그와 곧 사별하게 된  혜석은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하지요. 그녀는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예술 활동을 보장해주고 시집살이를 하지 않겠다’는 결혼 약속을 받아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후 그녀의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결혼 생활을 보내며, 남편과 함께 과감하게 유럽 여행을 떠난 나혜석. 그녀는 유럽에서 새로운 예술 세계에 대한 눈을 뜨는데, 남편보다 더 예술을 잘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고국에 돌아온 나혜석은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

4. 남자의 말 한마디는 중천금인가?

“프랑스에 도착하여 야수파 화풍을 공부하였어요. 파리에서 최린에게 길 안내하다가 사랑보다 어쩔 수 없이 불륜이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문제는 그것을 최린이 고국 술자리에서 자랑삼아 얘기한 것이 빌미가 되어 파리 한인 사회에 화제가 되어 1930년 이혼당하는 빌미가 되었지요.”
“ 최린은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1918년부터 손병희와 오세창, 권동진 등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독립 운동의 방안을 논의하다가 1919년 3·1 운동을 구상했고 불교계의 한용운, 기독교계의 이승훈을 통해 두 종교 대표들을 참가시키고 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최남선을 추천하는 등 기획 과정을 주도했으며, 독립선언서 낭독 모임 이후 곧바로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친일파로 민족반역자로 돌아선 사람이지요.” 
이상번 시인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열을 올립니다.
“ 그녀가 행려병자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 이광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이광수도 최린도 야비한 사람 아닌가요?”
 “이광수는 그 당시 일본 유학 간 신여성들과 대부분 관계를 맺었다는데 . 김일엽 스님도 이광수를 사랑했나요?”
“김일엽은  일본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 후 끝까지 정신적 사랑을 한 사람이 이광수가 아니라 백성우[소르본느대 출신] 그 당시 동국대 총장이었지요.”

  5.노동자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나혜석(羅蕙錫, 1896년 ~ 1948년 12월 10일)은 한국의 화가로 아호는 정월(晶月). 일제 강점기의 아버지 나기정은 군수였지요. 그 당시 군수라면 종 4품의 아주 높은 벼슬이었어요.‘1913년 경성부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유학을 하고 있던 오빠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 도쿄여자미술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1918년 귀국하여 교사로 근무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매년 수상을 거듭했고, 1931년에는 일본의 제국미술원전람회에도 입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기도 하였는데. 나혜석은 3·1 운동에 가담하고 노동자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는 설정으로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판화 〈조조(早朝)〉를 제작하는 등 사회 참여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 사회 운동을 한 오빠 나경석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1921년 조선미술사에서는 최초의 여성 유화개인전람회를 열었으며, 그해 9월 일본 외무성 안동현(현재 단둥)부영사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만주로 이사하였지요. 당시 나혜석은 여성들을 위해서 야학을 열었고, 1923년 황옥 경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관련자들을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6.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


“나혜석은 이혼을 당한 이후에도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와 제12회 제국 미술원 전람회에서 특선과 입선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어요. 하지만, 미술학원을 차려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김우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3남 1녀와도 남편의 방해로 만나지 못하면서 차츰 폐인이 되어 불행한 생활을 하였어요. 서울 인왕산의 청운양로원에서 행방불명된 1948년 12월 10일 서울의 시립자제원에서 사망하여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된 것이 뒤늦게 알려졌고 그가 태어난 집도 현재는 집터만 남아 있으며, 남아 있는 작품들도 십 여 편에 불과합니다.”
신여성, 여성 최초로 서양화를 공부한 유학생, 독립운동가 정월晶月 나혜석 선생님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 여성화가, 선각자, 시대를 앞서간 여성, 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정월 나혜석 선생님은 “여자도 학교를 다녀야 할 필요가 있나”“여자가 무슨 유학이냐”“여자는 아들이나 잘 낳고 밥만 잘 하면 된다.”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신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충청도 수덕여관에서 잠시 기거하며 스님이 되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는데요.”
“ 예 만공스님이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또 연하의 고암 이응노 화백이 무명시절 같이 기거하면서 그림을 배웠다는 얘기도 있지요. 실제로 수덕여관에 이응노 화백의 그림이 새겨진 바위가 있지요.‘
“일설엔 자유 연애론자이고 실험결혼을 주장하면서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니다‘라고 동생에게 말한 그녀이니 두 남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하기도 했겠군요.”

“18세의 어린 나이에 “여자도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은 최초의 여성해방평론인 <이상적 부인(이상적 여성)>을 발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자도 사람이다.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인류의 여성이다.”라고 단편소설 <경희> 속 주인공을 통해 주장했던 23세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신여성이었습니다. 단편소설 <경희(1918)>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나혜석 선생님이 화가로서 세상에 자신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9년 24세의 나이에 <매일신보>에 9컷의 만평을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결혼 이후 1년 9개월 동안의 세계일주, 조선미술전람회 출품 등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여성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면서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화가로서의 사명감을 불태웠습니다.“

7.우리나라 최초의 위자료 청구 소송

 그러나 이혼고백서 발표,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 등의 사건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사건이었던 만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지탄을 한 몸에 받았고, 그럼으로써 여성으로서의 나혜석 선생님의 삶은 불행으로 치닫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편견과 세상으로부터 잊혀져가는 순간 속에서도 평생을 화가로서 살아가고자 외롭게 또 끊임없이 노력했던 화가 나혜석 선생님의 삶은 많은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박사님, 칠순이 지나셨지만 아직도 미남이시면서 그 남성적인 목소리로 나혜석의 [모래]라는 시 한편 더 읽어 주시겠습니까?‘

野原야원 가온대 깔려있어 갑업는/ 모래가되고보면 줍난사람도업시/
바람불면 몬지되고 비오면 진흙되고/ 人馬인마에게 밟히면서도/
실타고도 못하고 이 세상에 잇셔/ 이따금 저 川邊천변에/
浦公英포공영  野菊花 야국화 메꽃 꽃다지꽃/ 피엿다가 슬어지면 흔적도 업시/
뉘라셔 차져오랴/ 뉘라서 밟아주랴/ 모래가 되면 갑도 업시/[沙, 나정월]

8. 진정한 연꽃 한 송이 피우다.
 
나혜석 기념 사업회 운영이사인 경원대 미술학과 윤범모 교수는 “‘최초’와 ‘여성’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이제는 한국 유화를 정착시킨 최초의 전업 유화가로서 나혜석을 평가해야 한다” 며 지금 여러 나혜석을 재조명하는 연구 서적출판과 많은 사업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신여성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라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인데도
남들보다 빨리 눈을 떴다는 또는 시대를 잘못 만난 이유로 온갖 진흙 밭에서 굴러야했지요.“
 일본 징용 시절 히로시마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중 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가까운 바다로 뛰어들어 원폭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필자의 시아버님이 맏며느리에게 남보다 앞서 가지 말라는 당부를 노래하듯이 하신 말씀이 새삼 이해가 됩니다. 나혜석도 결국 남보다 너무 앞서간 탓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도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여러 사람에게 깨우쳐주려고 한 것은 바로 불가에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한 용기이고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진흙탕에 핀 연꽃송이로 보입니다. 처음 노천명 시인 때문에 신여성시인을 찾다가 정말 관이 향기로운 여성 선각자 한 분을 찾았다는 뿌듯함에 눈의 피로도 싹 가시는 듯해 필자의 [연꽃]이란 시 한편을 중얼거리며 시인의 갈 길을 곰곰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 당시 신여성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라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인데도
남들보다 빨리 눈을 떴다는 또는 시대를 잘못 만난 이유로 온갖 진흙 밭에서 굴러야했지요. "
 일본 징용 시절 히로시마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중 차가 늦어지는 바람에 가까운 바다로 뛰어들어 원폭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필자의 시아버님이 맏며느리에게 남보다 앞서 가지 말라는 당부를 노래하듯이 하신 말씀이 새삼 이해가 됩니다. 나혜석도 결국 남보다 너무 앞서간 탓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도 자신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여러 사람에게 깨우쳐주려고 한 것은 바로 불가에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한 용기이고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진흙탕에 핀 연꽃송이로 보입니다. 처음 노천명 시인 때문에 신여성시인을 찾다가 정말 관이 향기로운 여성 선각자 한 분을 찾았다는 뿌듯함에 눈의 피로도 싹 가시는 듯해 필자의 [연꽃]이란 시 한편을 중얼거리며 시인의 갈 길을 곰곰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바람에 쉴 새 없이 몸 흔들리면서도/ 시린 발 견디며 진흙을 밟고 서서
곧 사라질/ 목숨,/ 이슬방울을/잠시라도 햇살에 한 번 더 빛나도록/
소중히 떠받들고 있다/[정 숙의 연꽃]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의 지혜를 구하고 닦는 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는 일









석학을 찾아서 4



봉이 김선달과 시의 보금자리  [현대시 박물관과 황금찬시인]
                                  -정 숙


1. ‘해파리의 노래’ 에 안식처를 제공하다

 2008년 11월 1일 시의 날 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뜻 깊은 행사로 서울 명륜동 계간시전문지 시학사에서 개관식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 대동 강물을 팔아먹을 줄 알았던 봉이 김선달이 환생한 건 아닐까요? 하여튼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척척 잘도 잘 해내는 김재홍 평론가님이십니다. 미당이 그를 “시인보다 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명륜동 그 좁은 이층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현대시의 모든 자료들이 모여 같이 백년이란 시간을 숨 쉬고 추억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선 감나무 집으로 알려있기도 한데 아직도 뭔 욕심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제 자식 떠나보내기 아쉬워서 인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김남조 고은 시인의 축사를 이어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박목월의 붓글씨, 윤동주의 유고시집 등 제가 평생 모은 흥미로운 시 관련 자료들을 모두 공개합니다. 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모처럼 다시 불붙고 있는 시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평생 시 연구를 하며 수집한 각종 희귀자료를 모아 시 전문 박물관을 개관한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만해학술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10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전시되는 전시품들 중에는 현대시사의 첫 시집으로 기록된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를 비롯해 윤동주의 사후에 동생 윤일주가 보관하던 그의 시 30편에 정지용의 서문을 더해 낸 ‘윤동주 유고시집’[1948], 8.15와 6,25에 대해 당시 시인들이 쓴 작품들을 묶은 ‘해방 기념시집’[1946]과 ‘전시 문학 독본’[1950]등 문학과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희귀본 300여종이 포함돼 있습니다. 개관 기념으로 한국의 대표시인 100명을 골라 윤문영화백이 그린 초상화와 시인들의 대표작을 묶은 ‘한국 현대시 100인 초상 시화 대표작’ 전시도 열었습니다. 유안진 신달자 시인의 젊고 앳된 모습이나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이성선 시인 생전의 모습 그대로 잘 표현되어 있어 반갑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성선 시인의 미 발표작 “이사”라는 시 친필이 좁은 마루에서 손을 내밀고 있어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사

겨울이 지나자 새들은 짐을 싸고
다시 하늘로 떴다
사람 없는 곳으로 더 추운 쪽으로

엄마는 앞에 아빠는 위에
새끼는 가운데

하늘에 뿌려진 악보들

저녁놀이 그 앞에 길을 쓸어준다

 아울러 이성선시인 돌아가시기 전 해 토지 박물관 여름행사에서 이성선 시인과 ‘빤쓰 벗고 그 짓하러 들어간다’ ‘일식[이성선 작품 현대시학 발표]’이란 시를 읋으며 함께 깔깔 웃었던 모습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필자의 첫 시집 ‘신처용가’를 박수 치며 응원해주시던 조병화 시인님, ‘휴화산이라예’ 낭송을 시학 행사에서 한 다음 날 아침이면 일찍 전화해주시며 ‘정 숙시인, 계속 사투리로 시를 쓰세요.’ 하며 응원해주시던 전화음성이, 대구문학아카데미 10주년 행사 원고 청탁으로 박두진 시인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음성이 그 좁은 방 안에서 잔잔히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1993년 시와시학으로 시인 등단한 필자를 축하해 주는 박재삼 시인의 친필이 복도 가장 어두운 곳을 지키고 있어 더욱 친근감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2.만해의 입지立志가 손바닥으로 전달되다

 1981년 한용운 문학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재홍 평론가는 자신이 쓴 ‘만해평전’이 국어교과서에 실릴 만큼 만해 전문가로 인정받아왔습니다. 만해 학술원장을 맡아 해마다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는 만해 축전에도 적극적으로 간여해 왔습니다. 1990년 그가 창간한 ‘시와시학’은 최장수 시 전문 계간지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계간지 운영비를 대기 위해 고향의 전답을 팔아 올리곤 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는 말로 시를 향한 열정을 드러내면서 이번 전시 작품 중 유달리 육필이 많은 것은 계간지에 싣기 위해 받은 원고들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었기 때문인데 컴퓨터가 보편화된 뒤로는 문예지 편집실에서조차 육필을 접하기 어려워진 것이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박물관은 주 3일[화 목 토]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문을 엽니다. 오전 11시와 오후 2.4시에는 해설을 곁들인 관람도 가능합니다. 조정래 소설가의 아버지 즉 김초혜 [사랑굿]시인의 시아버지가 만해의 수제자로 법화종 대처승 조종현님이었다고 합니다. 시조시인이기도 하다는데 김재홍 평론가님이 조정래 소설가의 안내로 만났을 때 교수님 손바닥에 입지立志라는 단어를 써주며 ‘뜻을 세워 일해라’ 는 뜻으로 만해가 그 스님의 손바닥에 그 글자를 써주었다고 말씀하셨다. 고 즉 입지立志라는 단어가 만해는 조종현님의 손바닥에 조종현님은 김재홍님의 손바닥으로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더 만해 연구에 힘을 쏟아 부을 수 있었다고 회상하듯 한 말씀하십니다.

 이 날 행사에 현대시 백년이란 시간의 고리를 연결해 주는 황금찬 시인이 초대되어 더욱 뜻 깊었습니다. 그의 [고향의 소나무] 36번째 시집 출판기념도 겸했습니다. 문화예술 위원회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선생님은 거목처럼 웅크리고 앉아 조용한 음성으로 백년 긴 역사의 연줄을 조율하고 계셨습니다.

3. 현대시 백년을 조율하다

“ 제 나이가 만으로 90이거든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 1등을 했어요. 라디오가 없어 동네 부잣집에서 수십 만 명이 모여 만세 부르며, 울며 ,일본 아나운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 때 내 나이 18세였지요. 만권은 읽어야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있다던 강 인산 스승을 존경했는데 
‘저 올림픽을 한번 보고 죽어야할 텐데’ 하며 한숨을 쉬니 
 ‘왜, 우리나라에서 해야지’
‘ 나라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요?’  
‘그러니까 나라를 찾아야지. 나라를 찾을 때까지 시를 쓰게’
그 땐 꿈같은 얘기였는데 1988년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어요. 그 땐 이미 선생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올림픽 전날 시청에서 축시를 낭독하라는데 참, 시를 쓰면 이렇게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혼자 감탄했어요.
비는 내려 수첩이 젖어 글을 읽는데 혼이 났지만 시는 꿈을 갖게 하고 이루어 주는 수단이고 방법이었어요. 올림픽 끝나는 날 피나래 시까지 읽었어요.
 
  1988년 9월 7일 러시아에서 루프생코 시인을 만나 
‘내가 듣기로 당신은 시를 많이 왼다고 들었는데 몇 편이나 외느냐?’ 
‘ 나는 내 시 120편은 왼다. 러시아엔 시 낭독 직업이 있다. 아주 고상한 직업으로 대우가 좋다.’ 
그 당시 어느 미국시인에게 한국에 자주 오는 이유를 물으니 한국 여인이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온다 는 얘길 했는데 지금 그녀들은 너무 요란하고 시끄럽습니다. 
 한 평생 시 외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시인은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평생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인도에는 22개의 국어가 아프리카엔 무려 60여개의 인사말이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단일어에 단일민족이니 얼마나 복 받은 일이고 행복한 일인지요. 인도는 타지마할이 좋았는데 죽은 왕비를 위해 그 아름다운 궁전을 짓고 난 뒤 비밀을 위해 목수들을 대부분 손을 자르든지 죽임을 당했는데 가장 중심이었던 도목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완전하게 짓지 않고 계속 수리하도록 꾀를 썼기 때문입니다.  어느 세계시인대회에서 미국여성시인이 불문곡직하고 포옹을 하며 
‘ 황시인의 시를 읽고 밤새 울었습니다. ’고 했습니다.  
공납금 달라고 우는 놈 매를 쳐 학교 보내는 가난한 아버지는 종이호랑이 라는 내용의 시였지요. ”

 선생님의 기억력이 대단하십니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외고 계십니다. 그 연세에 저렇게 건강한 몸을 유지해 주신 것이 참 고맙습니다. 그것은 늘 긍정적인 사고로 희망을 노래했기 때문이라며 
 “시는 감동의 예술이 아닙니까? 평생 가난했으므로 가난한 얘기를 썼습니다.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오르간 한 대가 12원이어서 돈이 들어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죽는 날까지 시만 쓸 것입니다.어느 해 내 시집이 안 나오거든 죽은 줄 아세요. 오늘 이 시간을 이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구나! 그것만 기억해 주세요. ” 

 ‘시인은 늙고 병들고 유행이 날아간 언어는 쓰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긴 시인 황금찬시인의 시 한편 이제희 시인이 낭독합니다.

행복을 파는 가게 

                                       황금찬 

사랑받기를 원하는가 

사람아,
받고 싶은 사랑보다
한 3배쯤
남을 사랑하라.
사람아,

세상에는
행복을 파는 가게가 없다네
또 하나의 하늘을
창조하고
꿈의 성문을 열면
열대의 님프가 피워 올리는
이름 없는 꽃 한 송이

보이는 것은
모두 순간적인데
그러나 보이지 않은 것은
영원한 강물

신앙의 배를 띄우고
나 한 마리 백조

등을 밝히고
잃어버린 구를 한 방울
그 속에 눈 뜨는
청자에 그런 새 한 마리. 

4. 갯바위들은 아직 잠 못들고

 한 점으로 웅크린 거목의 모습이 마치 거친 파도 속에 앉아 꿈쩍하지 않는 갯바위처럼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새삼 시의 집에 갇힌 시인들이 또 시를 위해 헌신을 하고 계신 김재홍 평론가님이 모두 갯바위가 되어 한 차원 높은 삶의 질을 위해 시의 경계선을 지키느라 파도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다는/ 산을 갉아먹으려 쉼 없이 몸부림이고/
산은/ 그 바다 밀어내느라 잠 한숨 못 들고/

그 틈새 작은 / 돌부처 하나 가부좌 틀고 앉아 /
산은 산으로서/ 바다는 바다로서/
서로의/ 경계線, 지켜야한다며/

*미세기의 시달림으로/
제 온 몸 찢기고 부서지는 줄 모르고/
세월없이 목탁 두드리며/ *경전파도 뒤적이면서/

*밀물 썰물  * 경전 같은 파도라는 조어

--‘갯바위’ 전문 [정 숙]

이윽고 뒤풀이 시간입니다. 유랑극단이라며 유자효 시인이 이브 몽땅의 ‘고엽’을 불어로 부르면 김재홍 교수님이 다시 국어와 독어로 부드럽게 부르며 넘어갑니다. 뒤이어 이가림 주간님이 배르렌느의 시를 불어로 읊습니다. 이시영시인과 다른 분들의 뽕짝도 겸해서 마지막엔 김종철 시인의 하바나낄라가 흥을 돋웁니다. 발바닥 장단까지 곁들여 감나무 가지가 집시의 춤을 춥니다. 박미옥 토우 작가는 삼천포에서 시인만세! 를 외치는 작품, 소년을 업고 도착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시인들의 육필이 쿵, 쿵 나쁜 귀신을 쫒는 지신을 밟습니다. 현대시의 백년 이백년 길이 환히 밝아옵니다. 최남선의 바다가 물길을 열고 깃발을 흔들며 달려옵니다.

석학을 찾아서 5

그의 압록강은 영원히 흐른다 [이미륵 박사와 석굴암]

 -정 숙 [처용아내]

1.천년의 시간을 찾아가는 길

벌써 2009년 1월 5일
 사학자 문경현 박사님과 신라사 연구와 금석비문의 대가인 경북대 이영호 교수님과 시인 이상번님과 대구대 한문학자인 이정화교수님 이 네 분과 합석하여 경주로 떠나는 날입니다. 일부러 고속도로 아닌 국도를 달립니다. 경산을 지나고 필자의 친정이 있는 자인 쪽을 지나 하양으로 들어서면서 문박사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하양은 하양 허씨가 유명하지요. 세종 때 허주 대감의 본거지기도 하고”
“저기 은혜사는 이지현이라고도 했는데 옛날 銀鑛은광으로 유명합니다. 소설가 현진건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野菜 야채라는 말이 나오자 
“야채는 일본어입니다. 한글로는 채소가 맞지요.”
말 한마디라도 아주 엄격해서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선덕여왕의 초상이라 하니 
“임금의 초상화는 御眞어진이지요. ” 무지가 폭로될 때마다 부끄러운데 이미 습관이 되어 어쩔 수 없으니 죄송합니다. 다 늙은 남편을 신랑이라 한다고 또 몇 번을 면박 주신다. 
“에고 이래저래 시집살이는 팔자로다”
그럭저럭 영천으로 들어서면서
 “옛날엔 영천을 골벌국이라 했는데 이곳은 인재가 많지요.”
 필자의 조상 포은 정몽주의 임고서원이 있고 선조 때 박인로선생, 소설가 백신해 , 지금 복지부 장관 전재희, 경기지사 김문수, 서강대 박홍총장, 문경현박사님 본인, 김법린 옛 문교부장관, 이호[전 내무 법무부 장관], 조선역사를 쓴 김성칠[역사 앞에서]  이 중 김성칠, 이호, 김법린, 문경현박사 네 분을 영천 4재라고 한다며 짓궂게 씨익 웃으십니다. 

 영천은 임문석 황보집등의 [민성일보]라는 신문발행으로 좌익이 강했다고 그래서 철저한 좌익이고 반일이었던 백신해 소설가가 존재했나 봅니다. 지금 영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중기 시인과 모윤숙 보다 훨씬 미인이었다던 이하석 시인의 말을 떠올리는데 이영호 박사 묵묵히 운전하다가 한 말씀 보탭니다. 길목에 파장이 되어 검게 너불대는 겨울연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정화교수 “저 연잎에도 농약을 뿌린다는군요.” 혀를 차다보니 경주로 들어선다. 무열왕[김춘추]릉에 내리면서 왕릉 건너편 김유신 묘를 김인문[무열왕의 2째 아들]의 묘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무열왕릉 들어가서 입구엔 거대한 거북이 발 없는 용 여섯 마리를 업고 있습니다. 그 비가 그 당시 당나라 형이지만  거북 발가락이 다섯인데 뒷발가락은 넷이라며 그것은 걸어갈 때 발가락 하나는 힘을 주느라 접혀져 보이지 않는다고 그 만큼 생동하는 거북으로 최고의 걸작이라 칭찬하십니다.
이 상번“ 무열왕의 첫째 아들이 문무왕이지요?”
이 영호“ 그렇지요. 그 둘째가 김인문입니다.”
문경현“ 김인문은 대학자요 명필입니다. 저 비문을 쓴 분이지요.”
이 정화“ 박사님 옛날 이태백이나 두보 같은 시인들은 인기가 대단했다는데 어느 정도였나           요?”
문경현“ 아 대단했지요. 두목은 두잠이라고 했고 이태백은 이백이라고도 불렀는데 두목이            타고 가는 수레에 여자들이 귤을 던져 수레가 가득차기도 했답니다. 허난설헌이            그 두목을 그리워하는 시를 짓기도 했지요.”
정 숙 “ 그 당시 명문가의 맏며느리로 남편 김성집을 두고 누군가 그리워하는 시를 쓰고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한 걸 보면 허난설헌의 성격이 자유로웠기 때문 아닐까요?”
문경현“ 맞습니다. 허균의 반골사상은 어느 서자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었고       서자를 자녀의 스승으로 모신다는 건 그 당시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개방적인      환경에서 자란 탓이기도 합니다.”
정 숙“이상번 시인님 첫 시집[스탑 더 워]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등단 연도는 아주 빠른데
       시집을 함부로 내지 않으시려는 그 정신 높이 사야겠지요.”

 이윽고 신라문화유산조사단에서 손오익 단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문경현 박사님 [사학자, 문화재 위원] 을 환대하며 궁중요리 수준의 점심을 대접 받았습니다. 다과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이미륵에 대한 얘기 주머닐 풀기 시작합니다.


2.독일 교과서에 실린 한국인의 소설

 “1930년 독일 뮌헨 체류 시절의 이미륵 박사 자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1946)로 전후 독일 문단을 뒤흔들었던 재독 교포 작가 이미륵(李彌勒·1899~1950) 박사의 독립운동 활동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며 이 선생의 종손(從孫)으로 유족 대표인 이영래(李榮來·삼화제작소 대표이사)씨는 최근 국가보훈처에 이 박사에 대한 독립유공자 추서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새로 드러난 행적은 1920년 상하이 임시정부 산하 대한적십자회에서 활동한 사실로, 최근 김종욱 세종대 교수가 논문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을 통해 밝힌 것입니다. 임정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의 1919년 11월 27일자와 일본 경찰이 작성한 ‘고등경찰요사’ 등은 이의경(李儀景·이미륵의 본명)이 ‘대한적십자회 십자대(十字隊) 회원’ ‘청년단 편집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대한적십자회는 1919년 7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립한 보건후생단체였습니다.

3·1운동에 참가한 이미륵 박사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 뒤 상하이를 거쳐 유럽으로 간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상하이에서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요. 이 박사는 유럽으로 간 뒤에도 일본측이 작성한 ‘요시찰 조선인 학생 33명 명단’에 올라 있었으며, 1927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회의’에 김법린·이극로·허헌 등과 함께 참가해 일제의 식민 정책으로 신음하는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려 했습니다.

본명은 이의경  황해도 이감찰 댁 외동아들로 아버지가 한학자였고 서울 의학 전문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11살에 6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해서 딸이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처음 동물학을 하다가 동양학을 강의하였습니다. 거의 매일 고향으로 편지를 부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날 누님 어진이가 보낸 편지를 읽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미륵 박사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 뒤 중국으로 가면서 마지막 본 압록강을 회상하면서 쓴 독일어로 쓰여진 소설로 독일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였다니 대단한 일 아닙니까? 3부까지 구성이 되었는데 2, 3부는 공습으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1부는 자전적인 내용으로 고국 특히 고향 해주에 대한 향수가 가슴 쓰리게 했었다고  2부와 3부는 주로 독일 생활과 느낌을 쓴 글인데 소실되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전시된 사진을 봤는데 이 미륵씨 참 잘났어요. 독일 여성들한테도 그렇게 인기가 있었고 존경을 받았답니다.  51세의 위암으로 타계하기 까지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임종엔 게일러 교수 부인 지그문트와 이미륵의 지도로 동양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에파양 무릎을 베고 러브송을 부르며 돌아가셨어요. 러브송이란 바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말하지요. 특히 그의 불멸의 연인 애파양은 미쓰 민셴으로 뽑힐 정도로 예뻤답니다. 사진으로도 봤어요. 이미륵 박사가 타계하자 에파양은 그 당시 연합군에 의해 봉쇄된 베를린 수녀원으로 지그문트는 지방 교육감으로 숨어버려 그 당시 순애보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훌륭한 신사였고 천재였다는 거지요. 나중 지그문트가 “나는 그렇게 돌봐 드리지 못했어요. 애바양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간호했는지요”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세계 여러나라어로 번역될 만큼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것을 독일에서 공부한 전혜린이 번역을 했지요. 미숙한 부분도 많지만 그 당시 추억의 인물이 또 그녀이지요. 다음엔 전혜린에 대한 얘길 나눠보도록 합시다.”

어느새 짓궂게 웃으시며 작자미상의 시조 한 수 풀어냅니다.
兩脚[양각] 새에 牧丹[모란]이 半開[반개]하여 내 힘줄방망이로
進進[진진]코 退退[퇴퇴]하니  其味[기미]가 如嬨[여자]라 
 
嬨[자]는 사탕이라는 뜻으로 그 맛이 사탕처럼 맛있더라는 뜻이라며 아주 노골적으로 性적인 표현을 하다가도 금세 옷깃을 여밉니다. 시인은 언제라도 그 시대의 선봉이었다며

 “하이네는 감성적인 공산주의자였고 피카소도 철저한 공산주의여서 혁명가 프랑코를 지지했지요. 피카소의 ‘게르니카’란 그림은 스페인 국민학살 내용이고 한국전쟁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바이런은 영국백작이면서 그리스 독립운동을 했던 시인이었습니다. 
4,5십년대는 하이네와 바이런시집을 60년대는 햇세의 데미안과 전혜린 이어령의 수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으야만 지성인라고 할 정도였지요. 이어령의 수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문일평의 글과 일본 야나기 무네요시의 글 많은 부분이 짜깁기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민셴은  뮌헨을 말하는데 그것이 바른 표기지요. 언제 서울 이미륵 기념관에 한번 들러보세요.”

3.불국사에서


 하루 동안 일정이 바빠 모두 서둘러 일어납니다. 신라문화유산 연구원인 조수진 박사의 안내로 불국사로 향합니다. 문박사님의 불편한 다리 때문에 전 전국 불교 청년회 회장이었던 이상번 시인이 주지스님과 통화하시더니 경내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불국사 주지 스님은 성타 스님으로 ‘마음 멈춘 곳에 행복이라’ 생활 명상집을 낸 스님입니다. 최인호 소설 ‘길 없는 길’에 나오는 만공스님 다음 그 다음 제자라고 합니다. 환경운동가이며 ‘금오집’ 등 여러 저서가 있습니다. 다과를 대접해주시며 극락전 복돼지 얘길 해주십니다. 조선 영조 26년[1750]에 조성된 극락전인데 극락전 현판 바로 위에 다산과 민족번영을 기원하여 멧돼지 한 마리 조각해 올려둔 것을 이제까지 몰랐다고 합니다. 황금돼지 해인 2007년에 겨우 알았다는 얘기며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 중 한 분인 [신라 어느 왕의 아들] 김교각 스님이 중국 구화산에서 앉아서 등신불이 된 얘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1300년 뒤 신라로 돌아가겠다는 말씀에 따라 지난 1997년 중국인들이 그 분의 동상을 보내주어 무설전에 모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도 신라를 향해 앉아 고국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4. 석굴암에서

 해질 무렵 산골짜기 잔설을 지나 석굴암으로 향합니다. 원래 목적지는 석굴암이었기에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얼음 산길로 들어섭니다. 특별한 배려로 석실 안까지 들어가 부처님을 뵙습니다. 실내는 푸근했고 입구 금강역사님 두 분이 자성의 시간을 갖도록 강요합니다. 참!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불과 제자들 그리고 십 일면 관음보살님의 그 관능적인 몸매가 살아 움직입니다. 아니 서로 움직이다가 사람 소리에 멈춰 선 느낌입니다.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져 특히 입술이 불그레하게 칠해져 있어 뜨거운 피 흐르는 소리 들리는 듯합니다. 제자들 중 원숭이 같은 분이 있어 물으니 젊고 예쁜 조수진 박사가 유마힐 거사님이라고 대답합니다.

5. 빈바구니

‘삶은 고독과 갈등의 경전이다’ 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우리는 이 세상의 몸을 받을 때부터 첫 울음 울 때부터 고독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고독이 있어 진정으로 참회와 기도를 하게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예술품이 태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린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어 모든 것을 버리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엔 모두 침묵에 잠겨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지 운전하는 이영호 박사님 만 눈빛 초롱합니다. 하루 동안 천년의 역사를 밟았기에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남지나 않을까 은근히 두렵습니다. 참 긴 하루입니다. 자기 성찰의 시간에 시 한편 적어 봅니다.

빈 바구니


아침 산책길에서
높은 벚나무 가지에 앉아 활짝 웃고 계신다
꽃부처님을 뵙느라 엉거주춤 서 있는데
왠지 발밑이 소란스러워 내려다보니
고 작은 냉이꽃들이 소복이 모여
주먹질을 하다가 흐느끼다가 
그 힘의 열기가 내 등산화 밑바닥을 울렸던 모양이다
살아오면서 저도 모르게
이름 없이 숨 쉬는 풀꽃들을 얼마나 많이 밟았을까? 
짓밟히는 자신을 늘 애달아하면서...
경주 남산 마애불들을 왜 바위가 바짝 붙잡고 있는지
왜 땅을 밟지 못하게 엉거주춤 서 있거나 앉아있는지
오늘에사 짐작이 간다
발밑에 밟히는 풀과 개미들의 신음소리가
차마 산을 밟지 못하게 했던 것이지
겨우 눈뜨는 노랑제비꽃잎을 거침없이 짓밟으며 
저만의 발복을 비는 모습 돌아본다
소복소복 채워보겠다고 나선
내 욕망의 빈 바구니 내려놓는다




석학을 찾아서 6

      
     정  숙 처용아내 [시인]

빛깔 입힌 언어와 무덤 마디를 남기고 떠나시다[박주일시인과 부인사]

1.봄밤은 소문만 무성하고

 삼월 초순경, 봄은 자신이 곧 나타나리라는 소문만 무성히 퍼뜨려놓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음지에 선 동백나무 꽃봉오리들은 겨울부터 추위 견디며 기다렸지만 봄을 믿을 수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있는지 입술 꼬옥 깨물어 견디고 있다. 
 “문박사님,  쌍지팡이 짚고 서 계시는 모습이 지난해 보다 훨씬 좋아 보입니다. 건강하시지요? ‘慶州의 神話傳說集成경주의 신화전설집성’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사학자이시고 경북 문화재 위원으로 큰일 하셨어요.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신화 전설 뿐 아니라 민간설화가 들어 아주 노골적으로 성적인 얘기들이 들어 재미있었습니다. 차차 제 글에 소개 좀 해도 괜찮을까요?”
“예, 저보다 제 딸년이 걱정입니다. 아직 미혼인데 혼자된 애비 수발들어주는 녀석인데 고혈압에 당뇨에 지금 감기에 걸려 ‘아빠 나 죽으면 누가 아빠 심부름하지요?’ 자꾸 죽음에 대한 얘길 해서 걱정입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도 계시지 않아 딱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주 찾아뵙거나 도움이 되지 못해서 자원봉사해주는 분이라도 계셔야 할 텐데”
“아이구! 그런 말 마세요. 장성한 삼남매 아직 아무도 혼사를 정하지 못해 걱정입니다.
착한 며느리가 들어와 집안 정리 좀 해주면 고맙겠지만 요즘 누가 그런 일 하겠습니까?”
“변명 같지만 전 아흔 다섯에도 혼자 생활을 즐기는 친정엄마께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나쁜 딸이지요. 젊었을 땐 시어른 섬긴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습관이 지금도 바쁘다는 이유를 대며 서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박사님 또 죄송한 일이 있습니다. 저번 호 석학을 찾아서 5에서 시인 두목인데 두보라고 잘못 표기 되었고 영천 출신 인재로 박인로인데 박인호라고 되어 제 무식이 폭로되었습니다. 교수님 명예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두목의 자가 목지라고도 했다지요?”
“예, 두목은 당나라 말 최고의 미남 시인이어서 지금의 꽃미남이었지요. 그래서 허난설헌이 그리워했고 그가 탄 수레가 지나가면 여성들이 귤을 던져서 귤이 수레 가득 넘쳤다고 했어요.”


2.징잡이 초민 박주일 시인과 미당

  오늘은 봉황의 자태인 팔공산 몸체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인사에 얼마 전 세운 비석의 비문을 자랑하시고 송림사 주지스님의 점심 대접을 받기 위해 거의 동쪽 끝인 파동에서 북쪽의 팔공산으로 행차하시는 날이다.

“박사님, 며칠 전 박주일 시인님이 타계하셨습니다.”
“그래요? 연세가 벌써 여든은 훨씬 넘겼지요?”
“대구문학아카데미 대표이사님이셨고 시를 쓰다 보면 모든 사물이 스승입니다만 특히 박주일 시인은 제겐 시를 쓰고 미치게 한 분이시지요. 평생 교사로 시 지도로 징을 치신 징잡이시지요.”
“대구문학 아카데미 대표를 근 20년 지켜 오시면서 150명의 제자들과 60여명의 시인을 배출하셨지요. 그 중 전국적으로 유명한 여류 시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경림의 ‘갈대’를 낭송하실 때의 그 열정에서 시 한편이 소설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게 하셨지요. 칠순을 넘기느라 가물가물해진 시력 때문에  대구문학아카데미 10주년을 지나면서 16기부터 필자에게 시창작반을 넘겨주셔서 파도 센 바다에서 시의 길 찾느라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전국 60여명의 제자와 인터넷 포엠토피아에서 포엠스쿨 정숙반까지 운영하면서 여러 제자들이 계간지 ‘시안’ ‘시와 시학’ ‘전태일 문학상’ 포엠토피아 신춘문예‘ 등 그 외 여러 문학잡지로 등단하는 많은 성과가 있어 늘 감사드릴 뿐이지요. ”
“박주일 시인은 67년도에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지요?”
“네 시집으로『노적(鷺荻)』(공저),『미간(眉間)』『모양성(牟陽城)』『신라유물시초(新羅遺物詩抄)』『는개 그리고 달빛』[물빛 그 영원][가솔송아, 꿈결 같구나]등이 있습니다.”
“미당선생님과 호형 호재 할 정도로 가까웠다지요?”
“ 예, 선생님의 시집 ”물빛 그 영원“ 속 [시인의 산문] 중에서
‘미당 형님과의 수많은 대화 가운데 지금도 가슴에 선연히 살아있는 게 하나 있다. ‘내 영원은 물빛’이란 말씀이다. 새로 시집을 꾸미면서 시집명으로 [물빛 , 그 영원]이라고 한 것도 미당 형님과의 추억을 더듬는데서 연유한다. 개구리 수영을 익히던 시절은 갔지만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형님의 시 세계와 인연은 영원할 것이다. ’ 라는 산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고 특히 그 댁에서 자주 주무시기도 했다는데 미당선생님의 모자 또는 친필들이 선생님 댁 벽에 몇 편이나 걸려있었지요.”
“처녀 시절 경주 월성중학교 교편 잡고 있을 때 석굴암에서 경주 문인들과 내려오면서 미당선생님 팔을 부축해드린 기억이 납니다. 그 땐 시도 쓰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50대 젊으셨는데 왜 혼자 내려오지 못하셨을까 궁금한 적이 종종 있습니다. 시인들은 엄살이 심한 것인가? 그러고 보니 김춘수 시인님도 그 당시 머리도 손도 떨었지요. 강의 때 몹시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3. 김춘수시인과 비밀무덤

“듣기론 연세도 비슷해서 김춘수시인과도 친했다더군요.”
“예, 한 살 후배라고 들었습니다. 같이 계시는 걸 저도 자주 뵈었지요. 특히 김춘수시인님은 제 경북대학교 국문과 시절 스승님이기도 해서 늘 반가웠지만 대접해드릴 줄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하지요. 지난해 박주일 선생님께 진지하게 미당과 김춘수 시인의 여인들에 대한 얘길 듣고 싶어 하니까 그런 건 많이 알지만 절대 말해줄 수 없다며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가야한다고 하시더군요.”
“허허, 그런 비화는 그 분도 상당히 많다는 소문이던데요.”
“사모님은 몇 년 전 수필로 신라문학 대상을 받은 박 지평님입니다. 남편 뒷바라지에 그 동안 고생도 많이 한 늦깎이지만 글이 아주 신선합니다.”
“박주일시인의 대부분의 시들도 모발로 몇 겹이나 엮어놓은 듯이 섬세하면서 질기게 보이는 것은 신선한 상상력과 감각의 섬세함이 문장의 밀도를 통하여 얻게 된 견고성이라고 김춘수 시인이 [잡초기] 시집 해설에서 말씀하셨지요.”

한줌 뜰귀에서도 짐짓/ 잘려나가는 여름의 그림자,/ 핏줄 또한 안으로 가다듬은/ 풀잎 하나에도/ 벌레 울음은 또한 스민다./ 그 운 오래오래 삭아서/

제스네리아 빛으로,/ 제스네리아 빛으로,/

타고 있는 眉間,/ 때때로 눈 어두워/ 그대 만남이 잔잔한 虛空인/
것을 알리라./

나의 깊은 곳으로/ 아, 풀잎 속살의 제일 아픈/곳으로/다가오는 발자국 소릴/ 이젠 알리라/ 잘린 그림자여./[제스네리아] 전문

       “그는 늘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술맛에 민감하고 안주 맛에 민감하다. 그는 술과 안주를 다루듯 시를 다룰 뿐이다. 라는 김춘수시인의 말씀처럼 시어 선택에도 아주 신중하셨지요.” 
“또한 선생님의 말씀 중엔 ‘궁합이란 게 있기는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흔히 궁합이 맞다, 안 맞다 말을 쓰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 세계에서도 그 작품을 이루고 있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이 궁합이 맞는 단어들이 모여 있나, 그렇지 않나에 따라서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시며 시는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자들에게 강조하셨지요”
“죄송합니더. 오늘은 제가 말이 많아져서 돌아가신 선생님을 욕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처용아내님, 그런 걱정 마시고 명복이나 빌어드립시다.”
" 지난 해 대구 작가회의 특집으로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그 많은 제자 중에서 왜 하필 정 숙에게 시 창작반을 맡꼈느냐 고 제가 여쭤보니 씨익 웃으시며 ‘정 숙은 발이 이뿌지 난 여자 얼굴은 안 봐 손발이 이뻐야 해’ 해서 무안했던 적이 있었지예. 죽으면 썩어질 몸이라고 아끼진 않았는데예. 마구 부려 먹었는데예. 진짜라예. ”
“사실은 늘 가까이서 자가용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며 잘 받들어 모신 여성 시인이 있었지요. 정진규시인과도 친하셔서 하늘이 푸른 날에도 전화로 ‘눈이 펄펄 옵니다’ 하면 두 분만이 아는 어떤 암호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곤 하시더군요. 그러나 시집살이로 늘 바빴던 제겐 아주 무서운 회초리였지요. 우쨌기나 처용아내인 절 믿어주셔서 고맙지예. 박주일 시인님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마디라는 것은 ’입니다.”

4. 산다는 건 마디 만드는 일

마디라는 것은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
쉬었다 간 자리다
혹은 그 흔적이다
달리는 열차의 마디는 역이다
나의 집은 나의 마디다

무덤은 
인간이 남기고 가는 
마지막 마디다

“ 예, 작품 좋습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시집들도 마디가 될 것이고 산다는 것이 마디 만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가르치느라 평생 징을 치시다가 결국 무덤이란 마디를 남기고 떠나셨군요.”
“참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젊은 사모님께서 지극정성으로 모셔서 건강하셨고 그렇게 원하시던 대구문학아카데미 20주년 행사를 1월에 [아르정 탱]에 참석하셔서 ‘제자들을 옛날엔 향기만 맡고도 알았는데 이젠 선생님 누굽니다 라고 해도 잘 못 알아본다’고 하셔서 모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85세를 일기로 돌아가시는 날 아침엔 식사 잘 하시고 ‘봄날은 간다’ 노래까지 정확하게 부르시고 운명하셨다는군요. 선생님을 위해 제가 평생 처음 쓴 조시입니다. 한번 들어 봐 주시렵니까? 교수님 부끄럽습니다.”

弔詩-楚民 박주일 선생님을 애도하며
                                
“갈수 있겠는가
갈수 있겠는가
뜨거운 숨소리 밀치고
뜨거운 가슴으로 훌쩍 떠날 수 있겠는가 ”*

수련이나 겨자씨 보다 작은 피그미 꽃 술 속에서
우주를 찾아내시던
꼿꼿하신 시성(詩聖) 한 분이 뒷짐 진 채
이승을 아주 떠나시려 하나니

잠든 들풀들과 나무들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란 걸 깨우치기 위해 
평생 징을 치시더니
징도 징채도 내려놓으시어
가벼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혼자 길 떠나시려 하나니

남은 이들 신 새벽 벼랑 끝자락에 서서
슬픔 나누며, 안경 너머 형형(炯炯)하신
선생님의 눈빛 그리워합니다

저 정월의 하늘 위로 
흩어지는 푸른 징 소리!
평생 징잡이셨던 초민 박주일 선생님을  
이승에서 종천(終天)코져 하옵니다

선생님 부디 잘 가소서, 열린 하늘 
무지개를 타시고 고이 가소서, 가셔서 
우주 속 징소리의 떨림을 담고 다시 오소서

오셔서, 수성 들판 어디쯤 들꽃으로 오소서
선덕여왕과 지귀(志鬼)가 지나쳤을 
반월성 둔덕 설유화 꽃그늘로 
돌 틈 사이 노루귀 한 쌍으로 오셔서 
어리석은 나무들에게 그 징소리 다시 울려 주소서
*박주일의 수련에게에서


 송림사 도착이 12시 전인데 미리 정갈한 점심상이 차려져 있어 모처럼 사찰 음식으로 공양하고 다과상에 우전차를 주지 스님이 직접 끓여주신다. 송림사 비문에 대한 의논을 하시고 이상번 시인과 함께 곧 부인사로 향한다.

5.선덕여왕과 부인사 초조대장경(初彫大臧徑)
 
 부인사는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해인사 소장 팔만대장경보다 무려 200년 앞서 각조된 초조대장경(初彫大臧徑)이 봉안되었던 절이라는 사실 외, 그래서 팔만대장경을 再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는 말씀과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47)의 원당이 있는 사찰이고 한때는 2,000여 명의 스님과 39동의 당우를 갖춘 대가람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승시(절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를 열었다는 유서가 깊은 절이라고 말씀하신다. 앞으로 2012년이 되면 초조대장경 조판 천년이 되는 해라고 운흥사 법상스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하지요.”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지 못하지만 예로부터 사당인 선덕묘(善德廟)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로 짐작할 뿐입니다. 판각은 몽골의 침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도 일본 교토[京都] 난젠사[南禪寺]에 보관되어 있어요. 몽골 칩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인 승가시가 섰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1930년대 중건된 선덕묘에서는 음력 3월 보름에 선덕제를 지내는데 덕과 미모를 갖춘 여인들을 뽑아 선덕여왕의 어진을 모신 숭모전(崇慕殿)에서 선덕대왕 숭모제를 매년 지내고 있습니다.”
숭모전 문을 삼월 그 행사 때만 공개한다고 묵묵히 닫혀 있다.
“선덕여왕 어진을 유황 화가님이 그리셨다는데 ”
“예, 제 친구이기도 하고 한국화 화가이고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였지요“
“유황교수님이 시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제 졸시 ‘학은 함부로 울지 않는다’ 시화를 그려주신 고마운 분이라 저도 뵌 적이 있습니다.”
“ 선덕여왕은 삼국유사에도 기록이 되어 있지만 예지력이 뛰어나 모란꽃이 향기가 없다는 걸 또는 여근곡에 백제군이 침입한 것도 미리 알았다고 전해 오지요.”
“여왕으로 아주 현명하고 기개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와 백제 연합군에 대항해 羅唐연합군을 결성해 그 침략군을 방어했고 첨성대와 황룡사9층탑을 세우기도 했다지요?”
“예, 천문을 관측하고 호국의 성지를 세우고 여왕을 짝사랑한 지귀 이야기도 전해내려 오지요,”
“10년 전 부부 모임에서 여기를 지나 수태골로 등산을 자주 했었는데 그 새 대웅전이 새로 잘 지어졌군요.”
“많이 소실되기도 했지만 문화재로는 신라시대의 당간지주, 쌍탑(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석등(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석등대석(石燈臺石), 마애여래좌상, 배례석(拜禮石) 등이 있고 이 밖에도 주춧돌, 화려한 문양의 장대석(長臺石)을 볼 수 있습니다. ”
“경주에서 문인들과 달밤에 선덕묘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무덤에 가락지를 묻어주는 의식을 행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추억인데 그 당시 서영수 이근식 시인님들이 같이 동행하기도 했지요.”
 법당에서 박주일 시인님의 명복을 빌고 나오는데 주지 스님이 환히 웃으시며 맞이하신다.
“ 이상번 시인님, 여기 주지 스님이 비구니시군요. 대청소를 하나 봅니다.”
“예, 몸집도 자그마한 분이 큰일을 도맡아 아주 당차면서도 싹싹하십니다. 종교를 떠나 이런 역사적인 곳들이 잘 보존 되어야지요. 그 발자취를 현장을 우리가 밟고 있다는 것이 행복 아닌가요. 후손들에 잘 보존해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새삼 엄숙한 마음으로 옷깃을 바로 잡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작별을 고하고 있다.
짧은 꿈 한 자락일 뿐인 이 세상 얼마나 더 부지런히 살아야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겠는가?

6. 마무리
 이 글을 정리하는 삼월 마지막 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셨다는 나태주 시인님은 저승 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더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고 병원에 입원하셨다던 송명진 주간님 전화 목소리도 밝으니 창 밖 벚꽃들이 환히 피어난다. 봄밤이라예. 참말로 봄밤이라예!
그 놈의 봄밤 시도 때도 없다며 처용님 도끼 들고 쫓아나간다. 벚나무 가지들 바들바들 떤다. 벚꽃 꽃이파리 나풀나풀 떨어지며 한숨짓는다. 휴! 그래도 봄밤은 봄밤인 기라예.



석학을 찾아서 7

다들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혜린田惠麟과 운흥사]

 -정 숙 [처용아내]


1.처용아내보다 더 허기진 활화산 검은 머풀러

 불꽃처럼 짧게 살고 갔으나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 속에 뿌려 놓은 언어와 고독과 사랑의 씨를 뿌린 활화산, 전혜린 
 ‘다들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말 죠르쥬 상드의 말대로 그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생이란 취하게 하는 것, 좋은 것이다. 죽고 싶을 만큼 그렇게 귀중한 것이다.’
 전혜린이 사랑하는 동생 채린에게 보낸 서한 중 일부입니다.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노래와 모닥불 가에서 춤과 사랑과 점치는 일로 보내는 짧은 생활, 짧은 생, 내 혈관 속에서는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있을지도 모른다 고 혼자 공상해보고 웃기도 한다.’   
 그처럼 생을 사랑하면서 불꽃같이 살다가 32세를 일기로 1965년 1월 11일 자살했다고 하는 활화산 그녀가 새삼 왜 이리 그리운가요. 어른 말처럼 그녀 사주엔 역마살이 끼어서인가요? 바하만의 말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던 우리들 청춘시절의 우상이었던 검은 머풀러의 전혜린이 정말 자살했을까요? 자살은 죄악이라고 비겁한 짓이라고 교육을 받았는데 요즘 젊은이들 특히 연예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화랑유적지의 조사연구’ ‘경주의 신화전설집성’을 얼마 전에 발표하신 석학 문경현 박사님과 여러 선생님들을 괴롭혀보기로 작정합니다.

2.아스팔트 킨트

 봄비는 추적추적 님 발자국 소리 내는 봄밤, 청도 가는 길목 가창 봉평 메밀 막국수 집에서 매콤새콤한 국물 다 마시기도 전에 물고 늘어집니다.
“박사님 약속대로 전혜린에 대한 얘기 해주셔야지요.”
“처용아내는 성질도 급하시네. 허허 신라시대 처용아내는 아무나 하고 잠도 잘 잤다는데 손한 번 잡아볼 수 없으니 허허 사람이 이렇게 순진하게 보여 누구에게 사기 당할까 밤낮 걱정이라”
자주 진한 농담을 하시는 지라 슬쩍 웃으며 구렁이 담 넘어 갑니다. 
  “3·1운동에 참가한 이미륵 박사가 일본 경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 뒤 상하이를 거쳐 유럽으로 간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상하이에서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요. 이 박사는 유럽으로 간 뒤에도 일본 측이 작성한 ‘요시찰 조선인 학생 33명 명단’에 올라 있었으며, 1927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회의’에 김법린·이극로·허헌 등과함께 참가해 일제의 식민 정책으로 신음하는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려 했습니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세계 여러 나라어로 번역될 만큼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것을 전혜린이 번역을 했지요. 미숙한 부분도 많지만 그 당시 추억의 인물이 또 그녀이지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번역한 전혜린 아버지 전봉덕은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졸업으로 김구 저격의 배후인물로 친일파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에서 헌병사령관을 했고 김두희를 저격한 안두희가 투옥 되었을 때 찾아가 양주등 사식을 들였다고 전해집니다. 나중 31세로 또는 32세로 자살했다는 소문 듣고 참 안타까웠어요. ” 

 “서울대 법학부에 입학했다가 독일로 유학을 한 뒤 F. 사강의 <어떤 미소>(1956) ,E.슈나벨의 <한 소녀의 걸어간 길>(1958),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1959), E. 캐스트너의 <화비안>(1960), 구드리치, 하케드 공저의 <안테 프랑크의 일기>(1960)(같은해 4월에 {신협}에서 공연) ,L.린저의 <생의 한가운데>(1961), W.게스턴의 <에밀리에>(1963), H.막시모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1964), H.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4), H.노바크의 <태양병>(1965) 등의 번역집이 있고 저서로는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유 작 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가 있습니다.”
“박사님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으로 이화여대 강사 성균관대학 교수로 그 당시 여성으로선 대단한 사회적 지위였군요. ”
“그러나 그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과 대학마다 독문학과가 별로 없었던 때라 강사 자리 얻기도 힘들었을 때고 또  이 대학 저 대학 시간강사를 한다는 건 참 힘들었을 겁니다.” 
“경기여중 고등학교 졸업하고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재학중 독일 유학한 최고의 엘리트였군요. 가정이 아주 부유했던 모양입니다.” 
“그 당시론 아주 대단한 집안이지요. 그녀의 글에서 보면 아버지가 아주 공주처럼 키웠다고”
“자신이 아스팔트 킨트라고 했는데 그것은 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시의 고향 없는 아이들이란 뜻이지요. 초등학교 일학년을 수료하고 서울에서 신의주로 갔다는데 깨끗한 그 곳보다 중국인 촌과 압록강을 더 좋아한다고 했지요.” 
“아버진 맏딸인 그녀를 직접 가르치고 책을 읽혀 책상 버러지와 독서광으로 키워지고 무조건 커트라인 높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난 뒤부터 몹시 혼란하고 흥분된 상태였다고 자전적 글에서 피력하고 있지요.”
“그녀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세이집에서 보면 뮌헨은 한마디로 제복을 입고 장갑을 끼지 않은 도시 와이셔츠 단추를 푼 분위기로 비 인습적이고 사람을 권태롭게 하지 않는 도시라며 뮌헨을 무척 사랑한 것 같습니다. 특히 슈바빙이란 도시를”

3.데미안과 싱클레어,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싯귀절을 떠올리며 그 당시 갑자기 지평선이 무한대로까지 넓어진 느낌이었다는 글을 음미해보면 맏딸로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늘 양친에만 매달려온 자신이 혼자 뭔가 할 수 있다는데 아주 흥미와 생동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슈바빙 구역은 가장 정신이 자유로운 곳이라며 독일 생활을 아주 즐긴 것 같군요.”
“예 목적을 가진 생활, 그 일 때문이라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살아가는 생활, 무엇보다 온갖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생활을 더 사랑한 것 같습니다.”
“60년대 헷세의 ‘데미안’을 번역하여 그 당시 대학생들이 그 책을 멋으로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도 했지요.”
“참 대단한 붐을 일으켰지요. 전혜린이 그 책에 아주 심취했나 봅니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싸스다.’
“ 싱클레어의 자아를 찾아 고뇌하는 과정에서 결국 데미안이 자신의 분신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뜻도 모르면서 열광했던 그 시절 청춘의 뜨거움이 그리워집니다.”
“고독하게 모색하고 지치도록 갈망하고는 죽음에 의해서 자기의 운명을 성취하는 모습이라는 전혜린의 독후감 정리에서 봐도 늘 죽음을 삶의 소중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녀가 번역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의 주인공, 자유를 정신의 자유를 희구하는 본능적인 충동에 지배되어 있는 성격의 니나와 닮으려는 성향이 강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4.전혜린과 손금[이가림 신달자 시인의 말씀과 김남조 시인의 조시 ]

 인하대 불문학과 교수님이시고 지금 시학사 시 계간전문지 주간이신 이가림 시인은 처용아내의 진지한 질문에 푸근한 미소로 한 말씀해주십니다.
 “대학생시절 직접 강의를 들었어요. 수줍음이 많아 강의도 학생들 멋대로 떠들어도 상관없이 혼자 강의하니 학생이 ‘왜 선생님 혼자서 하세요?’ 항의하듯 물으니 ‘저는 여자인데요. 좀 봐 주세요. ' 하며 애교스럽게 말했어요.” 
 “전혜린하면 검은 머풀러가 떠오르는데 그 당시 머풀러 쓰는 게 유행이었어요. 제 대학시절 사진도 머풀러 쓴 게 많아요.”
 “시간강사로 그 당시만 해도 독문과가 별로 없어서 전임강사 자리를 얻지 못했고 강의 때도 검은 머플러를 쓰고 했습니다”
“최불암의 어머니가 경영한 ‘은성’이란 대포 막걸리 집에 문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김수영 시인이 다혈질이어서 늘 고함을 질렀어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가 유행하니 왜 저 노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럴 때도 전혜린이 검은 머플러를 쓰고 나타나곤 했어요.“

 몇 해 전 강진 영랑 문학제에 처음 참가하게 되었는데 행사 뒤 천둥번개가 치는 밤 김남조 선생님 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시인들은 노래방으로 가고 이가림 시인, 김재홍 평론가  오현 스님 외 김용직 교수님 유자효 시인 그리고 대구의 정하해, 장혜승 시인, 이병금 이경 시인 외 여러분이 모여 앉았는데 그 해 영랑 문학상을 수상한 신달자 시인이 
“대학시절 전혜린을 찾아갔는데 손금을 봐주겠다고 하더니 같이 간 친구한테는 곧 자살을 하거나 죽는다고 얘기했고 내게는 아주 고통스런 사랑을 하겠다고 예언을 했어요. 물론 그 친구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을 했고 난 기막힌 사랑에 빠졌고”
 한참 얘기하시는데 번갯불이 번쩍 하면서 천둥이 칩니다. 전깃불이 잠시 천둥을 만나고 오는지 암흑만 남가고 사라집니다.  그 뒤 오현 스님의 너무 웃기는 민담과 ‘언제까지나’ 노래에 얽힌 사연을 이가림 신달자 시인이 번갈아 가며 얘기 하시니 김용직 선생님께서 기록해서 다른 이에게 들려줘야 한다며 자꾸 물으며 되풀이 외고 계십니다. 

그 때의 그 신비스런 분위기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봄밤 어느 날 전화로 김남조 선생님께 문의하니 쾌히 몇 말씀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특이한 재능이 있었지요. 총명해서 마녀라고 부를 정도로 강렬했고 헤르만 헤세의 생일이나 싯귀의 페이지를 외거나 무척 총명했는데 언제 그런 문인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떠나기 일주일 전 신세계백화점 동화방송에서 물건 값을 알아맞히면 선물을 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는데 손에 멍이 들어 있어 물었더니 외출하려면 옷을 찾아 입어야하는데 딸이 케비넷을 잠궈서 그 문을 두드리다가 멍이 들었다고 그래서 참 이상하다 생각했을 정도로 광끼가 있었어요. 그것이 마지막이었어요. 언젠가 충무로 길에서 만났는데 딸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가는데 그 영화는 6세의 딸이 골랐다고 하여튼 상식적이 아니고 이해하기 곤란할 정도로 특이했습니다. 집중력이 좋고 고혹적인 사람인데 손금을 봐주기도 했어요.
임신해서 배부른 자신의 몸을 거울에서 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고
남편과 불화가 있어 별거했는데 그의 하숙집에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서 넘어져 멍이 들기도 했다는 얘길 들었고. 잠이 안와서 늘 독한 수면제를 먹곤 했는데 그녀는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자살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은 아니고 수면제 과다복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안타까워하시는 음성 전하며 김남조 시인의 조시를 음미해봅니다. 살다보면 갑자기 조시를 써야 할 가슴 아픈 일도 많더군요.“ 

흰 눈발 더 희게 희게
-전혜린씨 영전에

그대 꽃다운 나이에/하마 생명의 잔을 비우고 떠나는/허적한 모습이여

간간이 흰 눈발 뿌리고/ 그대 탄생월의

보석 자홍 자류석에도/ 눈물이 괴었어라

총명하여 총명하여/ 불구슬처럼/ 빛나고 아프던 눈망울이여/그대 눈망울이여

아침 날빛에/ 저녁 으스름에 되살아나는/ 영 못잊을 눈망울이여/ 새삼 사람의 무상을/그대로 해 알겠거늘/고단한 어족 떼처럼 지쳐/ 흰 목덜미 더욱 외롭던 이여/ 허지만/ 유한이야 없으리

그대가 받은 시간과/사랑/ 남김없이 다 쓰고/ 첫 새벽 흰 원고지 위에/ 한 자루 촛불 타듯/ 눈 감은 이여

흰 눈발/ 더 희게 나부낄 저승길을/너그러운 마음씨로/ 부디 모든 일 다 잊고 가라.

5.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지고 있는데 [운흥사에서]

 저절로 한숨을 푸욱 내뿜는데 문경현 박사님도 한숨 쉬듯 한 말씀하신다.
 “어쨌거나 자살은 죄악인데 독립운동가가 기밀을 지키거나 동료를 위해 자진한 것도 아니고 요즘 사회적인 추세로 봐도 자살을 미화 시킬 수 없는 일이고 각자 미루어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녀의 일기나 편지에서 보면 딸을 너무 사랑하고 주위 모든 사람과 사물을 자유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로 금방 전달되어 불붙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생을 사랑하면서도 늘 죽음을 그리워한 아까운 인재지요”
 묵묵히 막국수 가락 숫자를 헤아리던 이상번 시인
“젊은 날 아련한 그리움이지만 요즘 참을성을 모르는 것이 걱정이지요. 그런데 아까 들렀던 운흥사 주지 스님이 큰일을 하셨더군요.”
 참, 가창댐 길을 따라 청도 각북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 꼬부랑 길 끝에 운흥사란 절이 있지요. 벚꽃이 피었나 어쩐지 보려고 들렀던 절 운흥사 법상 주지 스님의 얘기입니다. 꽃피는 시기가 늦기 때문에 대구 현대불교 시인협회 봄 소풍 날 꽃이 피지 않을까 걱정했던 이상번 회장입니다. 다행히 벚꽃 봉오리들이 한창 긴장한 채로 조금씩 마음 문을 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반가이 맞이하시면서 커다란 찹쌀 빵과 홍시를 내어놓으시며 그동안 일본에 간 ‘조선왕조실록 의궤’를 환수한 과정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스님들이 그런 큰일을 하셨다는 얘기는 참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이 땅 어디서 숨은 일꾼들이 많다는 안도감이기도 하겠지요.

6.한국 도벌꾼이 일본인이 훔쳐간 초조대장경을 다시 훔쳐오다

“스님 몇이 모여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왕조실록’과 그것을 담은 ‘의궤’를 환수하는 일을 오래도록 했었지요. 우리 민족혼과 정신을 도로 찾고 싶었어요. 결국 책은 서울대 도서관에 기증했어요. 그 일 협상상태로 일본에 가 있을 때 팔만대장경 보다 200년 앞선 [저 번 봄호에서 부인사를 다루었음] 고려시대 만든 대장경을 선덕여왕이 창건한 부인사 호국사찰에서 보관했었던 그  ‘초조대장경’이 일본에 가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것을 어느 한국 도벌꾼이 훔쳐왔다는군요. 두루마리로 된 것인데 어쨌든 장물이라 아직 문화재로 지정 못하고 수년 뒤 지정할 예정입니다.”
“초조대장경이란 팔만대장경 만들기 전의 고려시대 처음 만든 대장경을 말하는데 그 도벌꾼도 애국자로군요.”
이상번 시인 말에 같이 웃으시며 문 박사님
“우리나라 위대한 임금은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였지요. 세종대왕 영조 정조” 등 손가락을 꼽으시는데 법상 스님
“‘조선왕조실록’은 오대산 본으로 옛날엔 여러 권을 한 권으로 묶었는데 27묶음을 한 권으로 즉 27책이 한 권입니다. 1913년 오대산 주문진에서 의궤와 함께 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지요. 사적지에서 발견했는데 150짐을 지워 강탈해 가서 일본 동경대학 도서관에 보관했던 것을 결국 우리가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서울대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섭섭한 것은 그 환수 운동은 스님들이 했는데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바로 서울대 도서관으로 갔다는 점입니다.”
“그 일을 하면서 얻은 교훈은 일본엔 합리적이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이어서 앞으로 다른 문화재도 여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인데 한국은 무조건 땡깡을 부려야 하니... 그리고 동경대학은 국립에서 벗어나 있어서 국가에 허락을 받지 않고 가져올 수 있어서 한층 수월했어요,”
“그것도 동경지진 때 소실되었는 줄 알았는데 마침 대출해 갔던 이가 되돌려줌으로 27책이 돌아왔습니다. 한참 뒤 46책이 또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지요. 일본인들이 선진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법을 철저히 지키려는 그런 고지식한 사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북한 ‘조선 신도 연맹’에도 협조를 요청하니 ‘일본은 철천지 원수’라며 흔쾌히 밀어주겠다고 했는데 ‘일본엔 합리적이어야 한다’ 며 충고를 해주어 고마웠어요. 그러나 한국 외교관은 높은 사람만 상대하지 일반인 특히 중한텐 눈도 깜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일본은 스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는데”  
“3차 이후 변호사를 구하는데 일본 거류민단은 거절해서 조총련계 변호사를 찾았어요. 그들 국적은 북한이 아니고 난민으로 조선이란 국적을 가지고 있어 민족성이 강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서울대에 기증한다는 명목인데 기증은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인데 내 것을 도로 받으면서 감지덕지해야하는 상황이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 얘기 다 기록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어쨌거나 아무 것도 모르고 편히 앉아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숨은 진정한 애국자들을 찾아 조명하고 감사하는 분위기 조성이 서로 핏대 올리며 들떠있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7. 마무리[나비들이 호위하는 흰 수레]

 운흥사는 처용이 개운포에 나타난 신라 헌강왕 때 지어진 절이라는데 저 산 위에 옛 절터가 남아있고 무엇보다 운흥사 대웅전 앞마당 탑 대신 심어진 벚나무 두 그루가 유명해서 대구 문인수 시인을 비롯하여 전국 유명시인들의 시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벚꽃이 질 때 가면 꽃잎을 휘몰아 어디론가 가는 시간을 볼 수 있는 곳 입니다. 그 보다 서투르지만 필자의 시 한편 올려보렵니다. 많이 꾸짖어 주세요. 공양시간이 늦어진 것 같아 서둘러 나오는데 개들이 하필  필자의 구두를 물고 가 어디 숨겼는지 스님들이 개를 혼내면서 찾느라 법석입니다. 그래도 개 두 마리 꼬리만 살랑거리고 있는 걸 보면 그들도 처용아내의 향이 좋은 가 봅니다.착각은 자유니까요.

운흥사

봄이면 법당 앞마당엔
나풀나풀 하얀 나비들이 수없이 호위하는
흰 소 두 마리의 수레가 기다리고 있는데
대웅전 석가모니불이 
도솔천 드나들 때 타고 다니신다
그 때는 회오리바람이 살분홍 눈발 휘날린다는데
난 그 눈발에 갇히거나
몰래 그 수레 한 귀퉁이 잡고 따라가 보려고
절 담장 모퉁이에 숨어 며칠 날밤을 지샌다
뜨고 있어도 소경인 내 눈이 
나비의 하얀 날갯짓만 보긴 했는데
정말 어느새 다녀오시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고
단지 꽃바람 속에 갇혀 눈이 부시도록 
절정을 맛보기는 한다
어쨌든 그 법당 마당에 선 중생들이 
저리 남녀교접의 신음 내지르는 걸 보면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는 믿음이 든다



석학을 찾아서 8

“순이야, 울지 말고 일어서라'[육신사와 백신애]

 -정 숙 [처용아내]


1.혜자[惠慈師] 스님의 보지[宝池]타령에 유월 햇살은 구름 속으로 숨고

“처용아내님 이번 정표 7,8호에서 또 실수를 했군요. 초조대장경이란 팔만대장경 만들기 전의 고려 시대 대장경 [선덕여왕이 창건한  호국사찰 부인사에서 보관] 을 말하는데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 아구, 교수님 죄송합니다. 또 무식이 보초를 섰군요.”
“제가 실수를 했으니 오늘 저녁 막국수라도 사 드려야겠어요. 이상번 시인과 연락해서 만날 시간을 내어주시렵니까?”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시고 사학자 문학박사이신 문경현 박사님 심기를 또 건드렸군요.
그러나 항상 웃으며 너그럽게 받아주시며 흔쾌히 시간을 약속하십니다. 유월 오후 청도쪽 봉평 막국수집으로 가면서 문경현 교수님과 최재영 공저인 ‘경주의 신화 전설 집성 [慶州의 神話 傳說 集成] 중 한 부분을 얘기해 주십니다.

 옛날 남산골 정토사[淨土寺]에 사는 젊은 중 혜자가 열선당[說禪當]에서 열심히 불경을 염송했지요. 그는 그저 열심히 아미타불을 독송했습니다.
“願往生 願往生 願生 極樂見彌陀 獲蒙摩頂受記別”
[원왕생 원왕생 원생극락현미타 획몽마정수기별]
원하옵나다. 극락왕생을 원하옵니다. 극락세계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뵈옵고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사 기별을 받게 되길 원하옵니다. 

願生華臧蓮華界 彌陀九品度衆生 極樂世界宝池中 九品蓮華如車侖
[원생화장연화계 미타구품도중생 극락세계보지중 구품연화여거륜]
“원하옵니다. 화장연화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옵니다.
아미타불 구품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극락세계 보배로운 못 속에 구픔 연꽃이 수레바퀴 같이 크도다.”
하는 대목의 [극락세계보지중]이란 대목을 염송할 때마다 흥분하여 욕정이 끓어올랐다. 중이 염불보다 잿밥에 더 마음이 있었다.
“아! 극락세계에 보지[宝池]가 있어 그 보지 속에 연꽃이 피어난다니 옳아! 요놈의 요상한 보지가 극락세계지. 그 보지 속에 빨간 연꽃이 피어있다지.”
 “중이라 계집도 못 거느리니 그 놈의 보지를 오매불망 앉으나 서나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극락세계 보지 중에 구품연화여거륜[九品蓮華如車侖]을 무수히 독송하며 스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스님 중에서도 보지[宝誌]대사가 제일이지 량[梁] 무제[武弟]가 보지[宝誌]를 늦게 만난 것을 탄식하며 엄청 존경했지. 원효대사도 보지[宝誌]를 시흉냈다지.”
 그때 산 아랫마을 박보지화보살[朴宝池華菩薩]이 땀을 씻으며 올라왔다. 혜자의 얼굴을 보고
“스님 얼굴이 왜 그렇게 달아올라 붉지요? 오늘 명심보감에 있는
爲善者天報之福 爲惡者天報之禍[위선자는 천보지복하고 위악자는 천보지화하느니라. [착한 일 하는 이는 하늘이 복으로 보답하고 모진 짓을 하는 이는 하늘이 화로 보답한다]는 글을 써 왔습니다. 신자들에게 가르치려고요.”
그러나 보지에 기갈 든 젊은 중엔 그 뜻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중이 화가 치밀었다.
“뭐라고? 착한 놈은 천[千]보지의 복을 주고 모진 놈엔 화를 준다고? 내사 화든 복이든 천보지만 주면 좋겠네.” 하니
“스님, 그렇게도 보지[宝池]가 좋은교? 그렇게 기러운 기요?”
“하머! 하머! 암 그렇고말고.”
“어쩐지 스님 독경 속에 그 보지가 수도 없이 나오더라 카이.”
“하머! 하머! 그렇지.”
“그 큼 그럼 수도에 지장이 크지 안 그런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지가 普施하지요. 무슨 보시해도 육[肉]보시가 제일이라 하지 않는 가베! 극락세계 박보지화 속에서 연꽃 한 번 꺾어보소. 염화미소[拈華微少]라 하지 않던가요?” 
이상은 ‘경주의 신화 전설 집성 [慶州의 神話 傳說 集成] 중 ’혜자[惠慈師] 스님의 보지[宝池]타령‘ 중 일부분인데

박보지화[朴宝池華];극락세계의 보배로운 꽃이란 법호
염화미소[拈華微少]:부처님이 영상회상에서 한가지 연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이 그 뜻을 알고                     히죽 웃었다는 고사입니다.
“이 고상한 뜻을 음탕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배불시대 척불유생들 사이에 전해진 민담이지요.”
조껍떼기 술 한 잔 서로 나누며 입담 걸쭉하게 돌아가자 이상번 시인 한 마디 하십니다.
“허허 아까 그 얘기는 한자가 없으면 정말로 거시기 하게 들리겠습니다. 교수님”

“교수님 밤 더 깊어지기 전 백신애 소설가 얘기 해주셔야지요.”
“하이고, 다그치지 마시고 운흥사 절 올라가면서 얘기 나눕시다.”

2.'조선일보' 최초 여성 '신춘문예' 당선

“백신애는 김윤식의 백신애연구를 기점으로 생애와 작품에 새로운 조명이 되고 있습니다.
(1908-1939)년 창구동 68번지에서 태어난 31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여류 소설가이자 
항일 여성 운동가이고 대표작으로 ‘꺼래이,’ ‘적빈,’ ‘나의 어머니’ 등이 있습니다.
그녀는 1929년 1월 민족지 '조선일보'최초 여성 '신춘문예'에 응모한 ‘나의 어머니’ 가 소설부 1등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했지요. 그 다음 해 백석이「그 母와 아들」로 소설이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당선당시는 박계화란 필명으로 발표)
미완성 장편 1편, 중편 2편, 단편 16편 등 도합 22편의 소설과 수필 30여 편을 남겼습니다.”
“그녀는1908년 영천군 영천면 창구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시절 한문을 공부하다가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자인공립보통학교 교사를 했습니다. 
“어머나, 제 모교인데요. 자인은 제 친정으로 제가 태어난 곳이지요.”
“그래요?  워낙 문학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삶을 갈구하였기에 그는 여성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이로 인해 학교에서 권고 사직당합니다. 특히 1934년 개벽지에 발표한 적빈(赤貧)은 당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지요. 결혼 후 이혼하고 1939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합니다. 그녀는 22편의 소설과 기행문과 수필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
“영천이라면 아버지가 똥통지고 라이방 끼고 논둑에서 넘어지는 시를 쓴 이 중기 시인이 떠오르는군요.  ‘백신애기념사업회"의 중심인물인데 전화했더니 현대문학에서 백신애 선집을 발표했으니 참고하라고 전해줍니다.”
“ 예 그런 분의 협조를 구해 참고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녀의 문학작품은 일제하의 소작농과 노동자등 식민지 민중의 삶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성한 창작과 더불어 여성운동을 전개하고 사회주의 활동도 했습니다. 이런 백신애의 문학성과 슬프고 애절한 삶을 영천시민들은 잊지 않았지요. 최근 지방 문학 기념사업으로는 큰 할성화를 보이고 있는 ‘백신애기념사업회" 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영천시 시민들로부터 성금 5천만원을 모아 최근에 ‘백신애문학비’를 세웠답니다. 자칫 일반인들에게 잊혀 질지도 모르는 여류 소설가를 당당하게 선양하는 영천시민들의 문학 사랑이 돋보입니다. 제가 또 영천 출신 아닙니까?”

3. 경북 영천은 포은 정몽주의 고향

 호탕하게 웃으며 포은 정몽주의 고향이기도 하다며 정몽주 선생이 명나라 사신 길에 지은 시 '제성역야우(諸城驛夜雨)'를 읊어주십니다. 

今夜諸城驛          오늘밤 제성역에 머무르면서
胡爲思舊居          조용히 고향을 생각하노라
遠遊春盡後          멀리 타향에 살다가 봄이 다 지난 뒤에 와서
獨臥雨來初           홀로 누워 있노라니 밖에는 비 내리네

永野田宜稻          영천 앞들에는 벼농사 풍년 들고
烏川食有魚          오천 바닷가에 물고기 잡히는데
我能兼二者          내 어찌 이 둘을 다 가지고서도
但未賦歸歟          어찌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 하는고

“참, 정효구 교수의 글에서 ‘갈대들이 거문고 소리를 내는 듯 정몽주의 조양각 옆에는 황성옛터의 작사자인 왕평 이응호 선생의 노래비가 나그네의 심기를 슬프게 만든다. 영천 출신 이응호 작사를 전수린에 의해 작곡되고 서울 단성사에서 가수인 이 애리수를 통해 발표 되었다‘는 글이 있더군요. 그 정효구 교수의 글 속에서도 백신애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 영천엔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 전 전 호에서 이미 발표되어 있지만”

4.작가로서의 개성과 여성운동가로서의 확고한 신념

“백신애의 생애에서 주목되는 것은 가정환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작가로서의 개성과 여성운동가로서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동경 유학생 출신의 사나이를 매도하는 독기서린 남성저주와 남성규탄의 탄원문과 같은 소설을 발표하였습니다. 동경 유학생 출신으로 무슨 운동을 핑계로 여자만 탐하고 다니는 남성을 고발하는 작품을 쓰기도 했지요. 

 아내가 낳은 두 아이를 생후 49일 안에 때려죽이고, 한 아이는 밖으로 나오기 전에 뱃속에 있을 때 발길로 차 죽이고, 품팔이 배추밭에서 낳은 아이를 눌러 죽이는 포악 잔인한 [食困]은 남성에 대한 거부이고 저항이며 끈질긴 피해망상의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곤은 나중 개작되어 [호도]라는 제목이 되었다고 이 중기 시인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親日巨商을 아버지로 가졌으면서도 항일민족운동을 하였고 그 아버지의 많은 설득과 위압 속에서도 그 오빠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끝내 거역하였습니다. 여성운동도 하고, 시베리아와 상해, 일본도 돌아보고, 러시아행에서는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혹독한 취조도 받으면서도 민족주의적이고, 여권해방과 인간회복의 평등주의 소설을 발표하여 당대 문단의 어느 특정인의 배경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당당한 작품 활동을 한 보기 드문 여류작가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성의 사회적 참여는 남녀간의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여성도 남성중심제 질서에 
공동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부인의 해방'을 규약과 강령에 내걸고 한국운동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운동단체로 평가되고 있는 조선여성동우회(1924년 5월 발족)는 새 사회 건설과 여성해방을 그 강령으로 하였습니다.

5.백신애 소설의 주제

“문득 이가림 시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뜬금없는 제 질문에 대해 백신애는 여성의 삶을 남성에게 의존·종속시키기 위하여 남성지배의 사회는 여성을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시켰습니다. 가정은 여성의 영역이며 사회는 남성의 영역'이라는 양분체계는 전통사회의 기본 골격이었는데 이러한 골격에 대한 행동적인 거부권을 행사한 백신애는 1920년대의 제 1기 여류문인인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등이 주장한 여성 해방적 이론을 보다 심화 확대시키면서 그 여성해방적 차원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였습니다. 

 제 1기의 여류문인들이 남녀불평 등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가지고 가부장적 여성억압에 대하여 '법 앞의 평등'과 '기회균등의 원리'라는 원론적인 명제에 머물렀다면 제 2기인 강경
애, 박화성, 백신애에 있어서는 기준체제의 피해자로서 보상을 요구하고 고발하는 차원을 넘어선 작가들이었다 며 친절히 대답해 주시더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백신애 소설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다섯 단계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1. 여권의식과 여성문제
2. 빈궁의 문제와 약자의 고뇌
3. 女性性의 추구와 낭만주의
4. 지식인의 허상과 법률의 허구성
5. 자전적 회고록
특히 그녀의 소설 적빈[赤貧]과 꺼래이(高麗人)를 대표작으로 들어보면

 소설 첫머리의 박진감 넘치는 묘사의 기법은 꺼래이(高麗人)의 고난을 예고합니다. "고국에는 바늘 한 개 꽂을 만한 자기들 소유의 토지라고도 없는 신세라 공으로 넓은 땅을 떼어 농사 하라고 준다"는 그 나라로 찾아온 것이 이유였던 유랑하는 한국인의 참상은 대체로 비극적인 것으로 끝나고 있는 백신애 소설과는 달리 [꺼래이]는 "천군만마 같이 시베리아 넓은 벌판을 제 맘대로 달려온 바람결이 솨 싸리 숲을 흔들며, '순이야, 울지 말고 일어서라'고 명령하듯 소리쳤다.."는 고난 극복의 신념이 결말 부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조국없는 슬픔, 가난이란 이유 때문에 이국에서 인간 이하의 수모를 당하는 진정한 인권, 조국에 대한 사랑, 동포애의 뜨거움이 작가가 의도한 민족문학으로서의 면모인 것입니다. 

 [赤貧]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알몸둥이 그대로의 가난한 매촌댁 일가의 궁핍한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와 같은 비참한 생활상을 통하여 작가는 참혹한 가난을 극복해 나가는 한국적인 위기극복의 자애로운 어머니상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운명을 자기의 분수로 수용하되 인내와 순종의 미덕, 그리고 온갖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서도 인권유린적인 조롱을 참아 나갑니다. 이와 같은 인내와 고통의 극복은 전통적인 한국 어머니의 像입니다. 그러나 가난과 무지, 그리고 사랑이 不在속에서도 아이를 낳고 궁핍 가운데서도 노력하지 않는 무능한 두 아들을 대비시킴으로써 생활력 없는 남성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게으르고 능력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젊은 두 아들과 나이 많은 노파의 고달픈 품삯생활을 비교함으로써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과 아들들의 공허한 삶이 적나라하게 고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고생과 아내의 고통이 부각됨으로써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탄생케 만든 남성들이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지요. 그러나 그 삶에 도전하는 어머니의 삶은 뜨겁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웃으며 곯아 배틀어진 우엉뿌리 같은 그 얼굴에 누비질한 것같이 잘게 깊게 잡힌 주름살이 
피어지며 온 얼굴이 흰 줄로 밭 골진 것'같은 매촌댁 늙은이의 모습은 수치감을 모르는 비
굴한 얼굴이다. "히에-"하고 웃어 보일 수밖에 없는 매촌댁은 멍텅이 큰 아들, 도야지와 노
름 밑천으로 알뜰히 모은 돈을 한꺼번에 날려버려 알탕 노름꾼으로 전락한 작은 아들, 매촌
은 현실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냥 살아가는 인물로 그린 그 묘사력이 상당히 현대적이면서 실감나는 표현력이 뛰어납니다.

 이와 같은 치밀한 묘사와 정확한 장면구성, 세밀한 부분의 예리한 감각 등은 여성작가이며, 자신이 농촌의 노동현장에 자주 접할 수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
“ 박사님 그렇게 치밀하게 연구하시고 기억하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인지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며칠 전 찾아간 육신사에 대해 얘기해 드릴까요?

6.육신사와 묘골 마을

 유월 어느 날 대구문학아카데미 시창작반 강의가 있는 수요일, 사육신의 충절을 깊이 되새기게 하는 육신사에서 야외수업을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대구 근교에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모르는 자신이 한심합니다. 기 미숙 회원은 가까이 있어 혼자 자주 들르는 곳이라며 안내를 합니다. 아이스박스에 수박부터 김밥 복분자 술까지 준비했습니다. 소란님은 포도주에 멜론 온 덩이를 지고 효문님은 또 다른 과일을 준비해 들뜬 기분으로 도착했습니다. 형범님 승현님 재순님과 더불어 모두 미남 미녀들이어서 자랑스러운지 더욱 처용아내의 어깨가 들썩거립니다. 미인 문화해설사가 친절히 설명합니다.

 “여기는 단종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죽임을 당한 여섯 분 중에서 유일하게 혈손(血孫)을 보전한 박팽년(1417~1456)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입니다. 박팽년 선생과 함께 사육신 모두를 모시는 육신사입니다.

 삼족을 멸하는 대역죄로 다스려진 선생이 혈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가  대구 감영의 관비(官婢)로 내려와 아이를 낳을 때, 때 마침 여종이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아 박순의 아내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임을 당하여 박씨 가문의 대가 끊어질 것을 염려한 여종이 다른 사람 몰래 자신이 낳은 딸과 바꾸어 길러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종이라는 뜻으로 비(婢)로 이름이 지어진 그는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자라 17세 때 그의 이모부 이극균(李克均)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처가에 들렀다가 성장한 그를 보고 자수를 권했습니다. 성종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이름을 일산(一珊)으로 바꾸고 아버지의 고향 충청도 회덕에서 이곳으로 정착하니 이른바 순천 박씨의 대구 묘골 입향조가 되었습니다.

 후손들이 절의묘(節義廟)라는 사당을 짓고, 박팽년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의 현손 계창(繼昌)이 어느 날 고조부의 제삿날 꿈에 여섯분의 선생들이 사당 밖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다섯 분의 제물을 차리고 다시 제사를 지냈으며 그 후 오늘 날까지 계속 여섯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사육신은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浮) 등입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의 충신, 효자, 위인들의 유적을 정비할 때에 이곳도 오늘날과 같이 말끔히 정비되었습니다. 입구 현판이 박정희 전 대통의 글씨지요. 이 현판의 특징이라면 앞 뒤 순서가 보통 한문과 다르게 쓰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박팽년 선생의 11세손 이조참판 박성수가 영조 45년(1769)에 지은 아름다운 정자(중요민소자료 104호)  하엽정이 있습니다. 박일산이 지은 집 태고정은 보물554호이기도 합니다. 전 국회의장이기도 한 박준규의 집터에 우물터만 남아 있습니다.

金生麗水(금생여수)라 한들 물마다 金(금)이 나며
玉出崑崗(옥출곤강)이라 한들 뫼마다 玉(옥)이 날쏜야
암으리 思郞(사랑)이 重(중)타 한들 님님마다 좃츨야.

아름다운 물에서 금이 난다고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곤강(옥이 나는 산)에서 옥이난다 
한들 산마다 옥이 나겠는가? 아무리 사랑이 중하다고 한들 임마다 따르랴.

 박팽년이 임금을 섬기되 분별없이 여러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 표현 기교로 노래했고 수양 대군에 의해 쫓겨난 어린 단종에 대한 애끓는 충정을 담아 노래한 작품입니다. 충신불사이군 (忠臣不事二君)의 한결 같은 단종에 대한 충절을 다짐하는 의절가로 그의
‘가마긔 눈비 맞아’와 함께 널리 흠모되는 노래입니다.
“저기 홍살문은 대부분 바깥에 서 있는 게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긴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연못의 연잎이 그 집터의 기운을 말해주려는 듯 생각보다 너무 힘차고 싱싱합니다. 마침 틈나는 대로 시든 蓮을 그리던 중이라 더 유심히 살펴봅니다. 이제까지 그린 그림들이 더 형편없이 느껴지고 부끄럽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태고정이 한 사 백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해설사가 오른 쪽은 팔작지붕에 왼 쪽은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서까래의 윗머리를 다른 벽에 지지시켜 달아낸] 천장엔 서까래가 부채살 모양으로 펴져있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유월 햇살이 따갑기도 해서 여기 一是樓[일시루] 정자에 올라 공부 좀하면 안 되겠느냐 물으나 마나 안 된다고 하여 뒤로 돌아가서 조심스레 정자에 오릅니다. 

 ‘올라가지 마세요’는 앞에만 쓰여 있으니 뒤로 오르는 건 괜찮지 않겠느냐 하니 모두 까르르 웃으며 오 탁번 시인의 시 내용 중 조기장수와 아낙네 얘길 들먹입니다. 자연풍광을 벽으로 삼은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면서 각자의 작품으로 간단히 수업 후 뒷산으로 오릅니다. 산은 나지막하면서 꾸지뽕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그 틈으로 모든 근심의 순간들 묵묵히 흘려버리는 낙동강이 내려 다 보입니다.

7. 학은 함부로 울지 못하고
 씨앗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옛날 씨받이에 목매달았던 조상님들 간절한 심정 이해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종의 자식으로라도 핏줄을 살렸기 때문에 순천 박씨 가문이 살고 번창하고 덩달아 혈손이 끊어진 다른 사육신도 제사상을 받아 배고프지 않도록 혼을 달래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밟히기만 하는 여권이 눈 뜨도록 또는 인간의 올바른 길을 위해 그 고난의 시간 속에 종을 치다가, 씨앗을 뿌리다가 세상을 일찍 뜬 白信愛도 고지식하기 만한 사육신도 지금 그 외로움 견디며 제 깃털을 뽑아 하늘울음 깁고 있는 학이 되어 날아다닐 것 입니다.  필자의 졸시 [나팔꽃]이란 시 한 편 올리겠습니다.

 십일월, 때늦어 싹트고 보니 어느새 찬바람이 분다. 이미 식어버린 햇볕의 열정, 줄기 뻗어 그늘 넓힐 욕심보다 볼품없어도 서둘러 꽃잎부터 피운다. 
 그 나팔 소리 하도 가늘어 행여 서릿바람 든 어느 누구의 가슴을 울릴 수 있을 것인가. 
 









석학을 찾아서 9

정 숙      ‘벽오동 심은 뜻은’ -<무령왕과 여성 소설가 장덕조>


1.선화공주님의 맛동방은 누구일까?

 2009년 8월 21일입니다. 금석학의 대가인 경북대 이영호 교수님 운전으로 사학자이신 문경현 박사님 이상번 시인이 공주 박물관 가시는 날 지리와 역사에 문외한인 처용아내도 따라 나섰습니다. 무녕왕릉도 백제 역사도 궁금하여 그 먼 길나서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혹시 귀한 시간 후회는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주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마침 김대중 전대통령이 돌아가신 때인지라 대통령의 원래의 성씨는 제갈이란 것과 몇 분의 아버지와 부인을모신 집안사를 세세히 얘기해 주셔서 놀랍기도 했습니다. 
“출생부터 무척 불행한 분이지만 그 불행이 오히려 그를 더 큰 인물로 일어서는 발판이 된 것 같습니다. 어쨌던 노밸평화상까지 타신 분이니 대단한 인물이지요. 좋은 세상 가시도록 빌어드려야지요. 그러나 민주화를 좌파 우파로 혼동하는 것은 잘못이지요.” 라며 못을 세게 박으십니다.

이상번; 백제 유적이 그래도 무녕왕릉이 남아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문경현; 예 그렇지요. 봉분이 사라지고 없어 흔적을 찾지 못해 도굴되지 않고 남은 것이지          요. 
이영호; 패전국의 비참한 역사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라진 역사가 안타깝습니다.         왕궁리의 빈 궁전터와 선화공주가 지었다는 미륵사지 등 그 찬란한 역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타깝습니다.
처용아내; 선화공주 설화에 나오는 서동이 무왕이 아니라 동성왕이라는 설이 사실인가요?
문경현;  그 문제로 이론이 많지요. 선화공주가 진평왕의 딸이 아니고 사탁적덕의 딸로 동          성왕의 부인입니다. 그 당시 이름이 대부분 4자였어요. 그 동성왕의 형이 무녕왕이          지요. 동생이 먼저 왕이 되었어요. 그 당시 동성왕을 마데모도라고 불렀습니다. ‘맛          동방을 남그즈지 안고 가다’의 그 맛동방과 이름이 거의 같지요. 서동요에서 ‘선화          공주님은 남그즈지 얼어두고 맛동방을 안고 가다’에서 얼어두고는 성교를 맺어두고          라는 뜻으로 얼어두다는 성교하다라는 뜻이지요. 성교를 맺어두고 마동님을 보듬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라고 해석하는 게 옳습니다.  
        무녕왕릉을 발굴하면서 묘지석에서 출생을 밝히고 있는데 무녕왕은 일본 각라도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의 규슈지요. 무녕의 아비 곤지가 일본에서 인질로 잡혀          간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 활약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2.이완용이 미인 며느리를 성폭행하다

 가람 이병도는 이완용의 10촌 쯤 된다는 얘기, 이완용이 미인 며느리를 성폭행한 얘기며 며느리가 ‘아버님 개소리 멍!멍! 짖으며 들어오시면 동침하겠어요.’ 하니 결국 그렇게 개가 되어 들어갔다고 그 아들 자살했다는 얘기까지 그런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거의 두 시간 걸려 웅진에 도착하니 이영호님이 웅진은 공주의 옛 이름이라고 친절히 알려 줍니다.  웅진하니 문인수 시인이 떠오릅니다. 정 숙을 정수기라며 웅진을 호로 써야 한다고 한자로 써주시며 놀리기도 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3. 왕궁리 빈터와 백제인들의 공중화장실

  이윽고 공주 박물관에 도착하니 박물관장님이 나오셔서 문박사님의 휠체어를 손수 밀어주십니다. 사무실에서 잠시 차 한 잔 마시고 식당에서 연잎쌈밥을 근사하게 대접해 주십니다.

 특히 무녕왕이 일본 가가라섬[각라도, 규수]에서 태어난 걸 밝힌 분이 바로 문경현 박사님이라고 그 당시 부여 계루왕의 동생 곤기가 일본 사신으로 가면서 만삭인 형수를 데려가겠다고 해서 배를 타고 가다가 지금의 큐슈에서 낳았다는 얘길 해주십니다. 그 당시는 아우가 형수를 데리고 사는 일이 흉이 되지 않았다는군요. 그 때 태어난 분이 바로 무녕왕이라고 그 무녕왕의 유적이 백제문화를 전달해 주어 조용하고 조그만 도시 부여를 살렸다는데 서로 의견을 모읍니다. 곧 백제 왕궁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 3만 여 평 되는 넓은 궁전 터가 오층 석탑만 달랑 남아 있고 빈터입니다. 패전국의 아픔과 상처를 보여주는 곳이지만 빈터라서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모형으로 된 백제남자와 처용아내가 손을 잡아야한다며 악수를 청해 보았지만 말없이 눈동자 슬픔 가득했습니다. 슬픔의 역사를 복원하는 중이라며 그 당시 백제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던가는 무녕왕릉 전시에서 미리 짐작했지만 그 당시 공중 화장실이 있었다는 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더구나 윷가락 같은 나무 막대기로 화장지를 대신했다는데 엉덩이 내어놓고 용변을 나란히 앉아 보는 모형이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고 또 본다고 이상번 시인이 우습다고 ‘에이 여자가 뭐 남자의 그런데 관심이 많지?’ 놀렸습니다. 그 다음 익산 미륵사지 가는 길 시청 문화관광과에 들러 여러 얘길 나누면서 여직원이

“통일신라시대 때 경주는 이미 농지 정리가 되어 있어 지금 자연스러운데 익산은 지금 너무 반듯하게 되어 답답합니다.” 하면서 서동이 무왕이냐 동성왕이냐 얘길 나누다가 서동과 선화공주 행사를 경주에서 하느냐 익산에서 하느냐 서로 따지지 말고 공조하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문박사의 말씀에 여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옳으신 말씀이라고 고개 끄덕입니다. 
뉘엿뉘엿 해 지는 시간이라 황급히 미륵사지로 갔습니다. 절터는 사라지고 역시 탑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나마 사리호가 남아 있지만 지금 전시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흔적 사라져도 역사는 살아있으니 그 시대 선화공주 마음으로 노을을 바라봅니다. 신라에서 백제라는 이웃나라 시집살이에서 바라본 그 노을에 남모르는 눈물과 한숨이 있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4.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돌아오는 길 피곤하실 텐데 기어이 장덕조 얘길 내어놓으라고 억지를 씁니다.
“아이고 처용아내 고집을 누가 당하리오.”
“한국 문단에서 여성작가로는 드물게 역사소설을 썼지요.”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수사적인 문장을 많이 사용했어요. 배화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중퇴했다고 그해 〈개벽〉 기자로 있으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평화신문〉 기자,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 1973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했어요.”
“박사님 장덕조소설가는 1914. 10. 13 경북 경산 출신이어서 제 친정 쪽이지요. 그래서 아버지가 제 어릴 때부터 넌 장덕조 처럼 되어라 하셔서 멋모르고 불안하고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정 숙씨가 장덕조 장덕조 노래를 불렀군요. 1933년 〈제일선〉에 단편 〈저회 低徊〉를 발표한 뒤, 단편 〈남편〉(신가정, 1933. 10)·〈아내〉(신가정, 1934. 2)·〈여자의 마음〉(조선일보, 1935. 9. 20~10. 10)·〈자장가〉(삼천리, 1936. 4) 등을 발표했지요.” 
“여성을 주제로 한 소설도 많지만 역사 소설이 또 많더군요.”
“예, 처용아내도 이제 공부 많이 하는군요. 역사소설로는 연산군의 왕비인 신씨의 슬픔을 그린 〈정청궁한야월 貞淸宮閒野月〉(야담, 1935)과 김시습을 주인공으로 세조 때의 역사적 비극을 다룬 〈광풍〉(동아일보, 1953. 8~1954. 3) 등을 발표했고. 그 외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 장덕조(張德祚, 1914년 10월 13일 ~ 2003년 2월 17일[1])는 한국의 언론인 겸 작가인데 그밖에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미망인 작곡가의 삼각관계를 다룬 〈누가 죄인이냐〉(연합통신, 1957. 4~10), 양반과 소작인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벽오동 심은 뜻은〉(한국일보, 1963. 8~1964. 9), 방송소설 〈우후청천 雨後晴天〉·〈연화촌 蓮花村〉 등을 썼고 소설집으로 〈훈풍 薰風〉(1951)·〈여자삼십대〉(1954)·〈격랑〉(1959)·〈지하여자대학〉(1969)·〈이조의 여인들 1~8〉(1972) 등이 있습니다. ”

5.줄기가 푸른 벽오동은 봉황이 머무는 곳

“교수님 ‘벽오동 심은 뜻은’ 은 노래로도 유행하고 해서 많이 낯익은 이름인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영화로도 상영되었지요?”
“봉황이 머무는 곳은 오동인데 이 오동은 오동나무가 아니라 벽오동(碧梧桐)을 가리킵니다. 오동나무는 목재가 희기 때문에 백동(白桐)이라 하고, 벽오동은 줄기가 푸르기 때문에 청동(靑桐)이라 합니다. 오동나무는 현삼과(科), 벽오동은 벽오동과(科)로 전혀 다른 나무지요. 굳이 구분하자면 ‘梧’는 벽오동을 뜻하고, ‘桐’은 오동나무를 뜻합니다. 벽오동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줄기가 푸르고 한 해에 한 마디씩 자라기 때문에 마디를 세어 보면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크게 자란 벽오동은 과연 봉황이 찾아가 앉을 만큼 위엄이 있습니다. 이파리도 부채처럼 널찍하여 잎이 무성하면 봉황이 그 속에 앉아 충분히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희고 노란 빛을 띠는 작은 꽃무리가 가지 끝에 달리는데 꽃잎도 없고 꽃받침이 뒤로 젖혀져 꽃술만 쑥 나온 모습이 뭔가 어색해 보이지요. 가을이 되면 다섯 날개를 아래로 오무린 듯한 팔랑개비 모양 안에 완두콩 같은 열매가 오순도순 달립니다. 허허 참”

 
“벽오동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군요. 전 그냥 어느 가수의 와르르르 하는 그 노래만 떠오르는군요. 무식해서 죄송합니다.”
“‘梧’는 벽오동을 뜻하고, ‘桐’은 오동나무를 뜻한다는 그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75세가 되던 1989년에는 〈고려왕조 5백년〉 14권을 출간하기도 했지요. 6·25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휴전협정을 취재한 공로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습니다.”
 “다작 작가로 유명했군요. ”
 “그렇지요. 장덕조는 70대 중반이던 1989년에도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을 출간할 정도로 노년에도 창작 활동에 몰두했습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그래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께서 노래처럼 장덕조 장덕조 하셨군요. 그 어릴 때 들은 이름이 평생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군요.”

6.장덕조의 작품 경향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장덕조의 작품 경향은 인물의 삶을 구동하는 사회적인 기제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며, 주인공은 대개 정직하고 강인하여 본받을 만한 인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작가의 낙관적인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구성 측면에서는 소설의 첫 번째 덕목을 재미로 보고 흥미 위주의 구성을 우선시하여 택했고 문장도 같은 맥락에서 수사적이지요.”
“교수님. 시원한 물 하잔 드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급히 다그치기만 해서 목이 다 쉬어갑니다. 죄송합니다.”
“ 어려서부터 책밖에 읽을 줄 몰랐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심어준 아버지, 사랑방 책장이나 방바닥에 돌아다니는 사상계와 신문지들 구석구석 뒤적이고 있는 딸에게 기대를 거셨던 탓인지 자연스레 평생 소설 한 편 쓰고 말리라는 옛 맹세가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시를 쓰면서 포기했었는데 산문을 쓰다 보니 소설도 쓸 수 있겠구나 반드시 쓰야겠구나 점점 욕심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데 언제쯤 시작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박사님
제게 힘 좀 실어주세요. 게으름을 깨우도록 그 입담 지팡이로 제 정수리 한번 내리쳐주세요.”
“허!허! 처용아내 그 끈질김과 미련스러움이 큰 힘입니다. 꼭 해낼 겁니다.” 

6. ‘단심가’는 정몽주의 작품이 아니다

 돌아오는 밤길 지루한 줄 모르고 얘길 나누었지만 이영호 금석학 박사님은 묵묵히 운전하시느라 눈길 한번 돌리지 않으십니다. 등이라도 두드려드리고 싶지만 아직 젊은 교수님이라 그래도 마음 든든했습니다. 특히 익산 미륵사지 박물관에서 만난 서울 젊은 역사학자들이 문경현 박사님을 만나고 황송해서 얼굴을 잘 들지 못하는 모습에서 새삼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시고 사학자 또는 한문학 대가의 면모를 엿보았습니다. 낮에 따라다니면서도 왜 내가 이렇게 메모를 하며 다녀야하는가 하는 수 없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듯했습니다. 이런 수고나 자료가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을까 자문자답하면서 얼마 전 만난 경주 문인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서영수 시인께 문경현 박사님을 잘 아시느냐고 여쭈니

“자알 알지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사학으로 대가이시고 특히 경주 문화유적 발굴과 해석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성품이 올곧아서 어느 성씨 즉 ‘박씨는 왕족이 아니다’ 라고 발표했다가 부산에 거주하는 경주 박씨들  문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심지어 깡패에게 불려가 빌기도 했답니다.” 
“ 또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시조 단심가가 정몽주의 작품이 아니다, 또는 포은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 앞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가 그 문중이 몽둥이 들고 쫓아와 일본으로 피난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남과 다르게 발표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용기인데 그 당시로선 힘이 많이 들었지요.”
“포은 정몽주라면 제가 그 31대손인데 어쩌지요?”
 당장 문박사님께 전화로 여쭈니 
“포은이 충신은 충신인데 단지 그 장소와 사실이 잘못 전달되었다고 밝혔을 뿐이지요.”
어쩜 영일 정가 문중에서 제가 문박사님을 만나 뵙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안다면 무어라고 말할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하는데 나중 문중 어른들의 말씀도 들어봐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역사가도 역사적 인물들도 소설가 장덕조도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의 시 쓰는 자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제 졸시 한 편 올려봅니다. 

  시인은, 시인은
  가슴에 비바람 내리치는 날이어도, 스스로의 가냘픈 그 더듬이에라도 앉아 전을 펴 
 여린 생명의 흐느끼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시인은’ 전문, 처용아내 정 숙]

석학을 찾아서 10

겨울로 가는 수레바퀴를 타고 [막걸리와 정취암]
 
              -정 숙 [처용아내]

1.뿔 돋아있는 시어들을 잘 비벼 먹으면

 십일월 늦가을 비는 겨울로 가는 수레바퀴 급히 굴리며 막걸리 한잔 드셨는지 추적추적 비틀거리는 어느 날 사학자이시고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신 문경현 박사님을 모시고 가창 어느 보리밥집으로 갔다. 여전히 쌍지팡이 짚은 어깨에 세월과 운명과 싸우며 견디느라 굳은 살 박힌 고독이 곰방대를 물고 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부인과 사별하시고  아직 대학원 공부하는 자녀들과 생활하고 계시니 그 속사정 누가 알아주겠는가. 평소 자주 다니시는 곳인지 주인과 정답게 인사 나누신다.

“처용아내님 ‘바람다비제’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이 네 번 째 시집이지요?”

“예 박사님 고맙습니다. 그 동안 별일 없으셨지요?”

“그럼요. 이번 ‘바람다비제’ 시집은 전체적으로 말을 아끼고 아주 절제된 시들이었습니다. ‘님’ 우수상도 타셨다니 한턱내세요. 거듭 축하합니다. 근데 ‘님’ 상이란 어디서 어떤 뜻으로 제정한 상입니까?”

“부끄럽습니다. 시집은 낼 때마다 가슴이 시려요. 이번 ‘바람다비제’는 바람 불다 연작시로 사회도 제 마음도 구제금융 시기여서 대체로 좀 어둡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닌데 지금 보니 더 어둡군요. 그리고 유행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수필처럼 긴 시들에 대한 반발로 행간에 시어들을 숨기는 연구를 좀 했어요. 너무 줄여서 읽는 맛이 없어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참! ‘님’ 상은 현대시 박물관[관장 김재홍]에서 제정한 상으로 제 1회 시상이었습니다. 현대시 박물관은 개원한지 일 년 여 만에 국가에서 공인을 받았고 ‘만해학술원’을 겸하고 있어 한용운의 님을 기리는 뜻으로 ‘님’ 잡지를 출판하면서 올 해 처음으로 ‘님’ 상을 제정한 것입니다. 본 상은 대 선배님이신 ‘김후란’ 시인이 수상하시고 전 그냥 우수상일 뿐입니다.”

“그래도 대단한 일이지요. 첫 회기 때문에 심사위원들도 수상자 선정에 많이 고심했을 것입니다. 특히 지역이 아니고 중앙문단이니 아무튼 다시 축하드립니다. 심사위원은 어떤 분들이셨지요?”

“예 고맙습니다. 박사님, 김남조 선생님 이가림 김재홍[평론가] 나태주 김종철 대단한 시인 분들이셨어요. 오늘은 파전도 시키고 막걸리도 한잔 드셔야지요. 막걸리 사발도 힘차게 부딪혀 주세요.”

"잘은 모르지만 그 시대 현실 사회성이 반영되었고 또 그것을 참신한 상상력으로 묘사되었다는 점과 뭔가 깨달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시어들의 조합이 햇살 받은 비눗방울처럼 통통했어요. 그 점들이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교수님! 묘사를 아는 멋진 평론가시군요. 박수!!!!! 감사합니다. 시라는 얼음 송곳에 찔려 아픈 마음을 이렇게 위로해주시니"

 창 너머 감나무에선 아직 설익은 홍시들이 가을햇살 묻은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덥히고 있다. 잘 익는다는 건 누구에게 먹히거나 떨어져야 한다는 뜻인데 무엇을 위해 저렇게 안달하고 있을까? 시인들도 저들처럼 무작정 감동적인 시 한편을 위해 밤새 전전긍긍하는 것일까? 이윽고 막걸리 주전자와 파전이 들어온다. 건배를 든 뒤 생나물에 꽁보리밥을 비빈다. 파닥파닥 생기 도는 여러 가지 생나물들을 잘 섞어 비비다 보면 서로 숨죽이면서 어울려 옛 가난했던 시절의 맛을 낸다. 날카로운 뿔 돋아있는 시어들도 이렇게 비비어 서로 자존심 줄이고 잘 어울려 고향의 실개천이나 깨달음의 세상으로 금방 데려다주면 이미 밭고랑 진 주름살도 펴질 텐데...

 
2.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마침 박사님의 수발드느라 힘든 외동 따님과 동석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술 한 잔도 겨우 드시는 박사님 뺨이 뽈또그리 물들여진 뒤 다그치기 시작한다.

“박사님,  이영도 시조 시인에 대한 얘길 듣기 위해 경주 서영수 시인을 찾아가는 일은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이미 박해림 시인이 몇 개월 전에 산문으로 발표했다는군요. ”

“아 그래요? 한 발 늦었군요. 유치환 시인의 수제자였던 서영수 시인이 유치환 시인과 그녀의 집 담장 넘어 들어가 낮잠 자는데 이영도 시인이 장에서 돌아와 ‘도둑이야!’ 했다는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을  텐데 그렇군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유치환 시인이 똑 같은 편지를 써서 여러 여성시인에게 보냈다는 소문들이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합니다. 그냥 순수한 사랑으로 남았으면 좋겠는데”

“ 물론 불륜이긴 하지만 옛날 박주일 시인님이 종종 그런 말씀 하셨어요. 유치환 시인의 부인이  외출하려는 남편의 와이셔츠를 갈갈이 찢어발기기도 했다고. 제가 대구여고 재학시절 유치환시인이 교장선생님으로 계셨어요. 도덕 시간에 자주 들어오셔서 강의를 하셨어요. 아주 인자해 보였지요. 그 후 부산으로 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어요.” 

“정신적일지라도 불륜은 불륜이지요. 그 당시로선 이영도 집안에선 많이 수치스러워했을 겁니다.”

“언젠가 이하석 시인께 이영도 시인 얘기가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할 것이라고 왜냐면 그 쪽 집안에선 여자가 정숙하지 못한 일이니 그 일에 상당히 민감하다고 하시더군요.”

“예 맞습니다. 당연하지요. 이번엔 이 정도로 하고 다음번에 대구에서 삶에 대한 뜨거운 서정과 철학적 사유의 시인 신동집에 대해 얘기하도록 합시다. ”

“예 감사합니다. 갑자기 대학 3학년 그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경북대학교 국문과 여학생 여섯이서 울산 방어진 해수욕장에 갔는데 그날 밤 파도 소리에 가슴이 벅차올라 잠 못 들던 시간, 짝사랑에 빠진 친구가 흐느끼면서 읊던 시가 물결치며 다가섭니다. 울기 등대의 수국 꽃송이가 참 복스럽기도 했었는데요. 그 친구가 짝사랑했던 남학생이 같은 국문과로 나중 시인 신부님이 되었지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의 <그리움> 전문)                  

3.현대불교 문인협회의 회장님 수완스님을 찾아서

“박사님 경남 산청군에 있는 정취암을 가보셨습니까?”

“아뇨, 대성산(일명:둔철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사찰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한다 하여 옛부터 소금강이라 일컫는다는 얘긴 들었어요.”

“어머나, 박사님이 저보다 안 가보신 곳도 있군요. 기분인데 막걸리 한 잔 더 마셔야겠어요.”

“허허 처용아내님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요? 언제 갔던가요? 그 역사적인 절에 날 버리고 젊은 이상번 시인과 갔다 왔군요? 시샘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허허”

“죄송합니다. 갑자기 그렇게 되었어요. 그 절의 주지스님이 현대불교 문인협회의 회장님이시더군요. 가다가 오르막길에서 차가 오르지 못해 도로 복구하는 분들이 밀어주고 했어요. 그만큼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서 맑은 날은 대구시내까지 보일 정도라고 하시더군요. ”

4. 의상조사께서 정취사를 창건하시다

 도착하자마자 도토리 묵 채를 맛있게 먹고 찾아뵌 수완스님은 여승인가 할 정도로 예쁘장하다고 하면 화내실까 저어되기도 하지만 사실 관음보살님을 더 많이 닮으신 것 같았다. 이상번 시인과 스님이 서로 주고받은 말씀을 기록해 본다.

“신라 신문왕 6년(병술, 서기 686년)에 동해에서 장육금신(부처님)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는데
이때 의상조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창건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어요.”

“스님 여기서 가까운 곳에 원효스님께서 창건하신 율곡사가 있지요?”

“예, 정취암에서 북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의상 스님과 원효스님께서는 수시로 왕래하며 수행력을 서로 점검하고 탁마 수행한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취암은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한국유일의 사찰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취암은 여우설화가 유명합니다. 공민왕이 신돈스님을 등용한 후 국가의 자주권 회복과 수구 보수 세력들을 척결하려 할 무렵을 전후하는 시기에 정취암은 개혁파들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지요. 이러한 정황을 간접으로 시사하는 여우설화가 지금까지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5.“오백년 묵은 여우와 문가학이란 선비의 이야기입니다.”

 “고려 공민왕 때 문가학은 섣달그믐날 술을 한말 짊어지고 정취암에 올라가 밤이 깊어지도록 기다렸습니다. 이경이 지나고 삼경도 깊어갈 무렵 한 줄기 스산한 바람과 함께 나타난 여인이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문을 기웃거렸습니다.”

“문가학은 이것이 요괴이구나 마음으로 생각하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그대는 무슨 연유로 이 깊은 밤에 산사를 찾았느냐고 묻고 외간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밖이 추우니 방으로 들어오게 한 후 자리에 앉으라 하였답니다.”
 
“방으로 들어와 불빛에 비친 용모를 보니 아찔할 정도로 미색이 빼어난 미인이어서 
적적한 밤중에 이토록 빼어난 용모를 갖춘 귀인을 만났으니 어찌 술이 없을 수 있겠는가 마침 좋은 술이 있으니 같이 마시자고 하였답니다.” 

“여인이 술에 취하자 잠이 들어서 비스듬히 기대어 옆으로 눕는 것을 보니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의 화신인지라 미리 준비한 끈으로 여우의 손과 발을 묶었답니다. 여우가 깜짝 놀라서 깨어나더니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는데 문가학은 꾸짖어 말하기를 요사스러운 짓으로 많은 작폐를 하였으니 그 죄가 죽어 마땅한지라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

“여우가 애원하며 말하기를 나에게는 온갖 일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둔갑술 비결이 있는데 살려주면 대신 그 책을 주겠다고 하여 마음속으로 기뻐하였으나 여우에게 속을 보이지 아니하고 먼저 그 책을 보고난 후 사실과 다르지 않다면 살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굴로 들어가 둔갑술 비결이 적혀있는 책 한권을 들고 나와서 건네주었는데
문가학은 둔갑술 비결이 적혀있는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지막 한 장이 남아 있을 때까지 독서삼매에 빠져들어 보고 있을 때 여우가 끄나풀을 몰래 풀고 갑자기 책을 낚아채어서 굴속으로 도망쳐 사라져 버렸답니다.”

“문가학은 지금까지 본 둔갑술 비결대로 둔갑술을 부려 몸을 바꾸어 보았지요. 그런데 둔갑이 완전히 되지 못하고 옷고름은 감출 수 없었지요. 그 후 문가학은 과거에 급제하여 내한 벼슬을 하면서 여우에게 배운 둔갑술로 새로 변하여 궁중에 들어가 은자(은으로 만든 돈)를 빼내어 거사 자금으로 쓰다가 발각되어 역모죄로 참수되었고 그 집터도 못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

“여우와 둔갑술은 상징적인 얘기인데 여우는 거사를 위한 어떤 계획이거나 결사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둔갑술로 궁궐에 들어가서 거사 자금인 은자를 빼내왔다는 것은 왕실에서 거사 자금을 비밀리에 주었거나 내통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상징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6.도란도란 여우 꼬리는 자꾸 길어지고

“이 설화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하여 유추해볼 때 정취암은 당시 고려 말 국운이 쇠퇴하여 나라를 새로 일으켜 세우려는 국가 개혁 의지에 대한 모종의 결집체였거나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전하는 설화로 볼 수 있습니다.”

 차분한 스님의 정취암 내력 설명에 ‘이렇게 역사적인 절이었다니!’ 처용아내 입은 자꾸 벌어져 다물 줄 모르고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진주 미인 김 경 시인이 현대불교 경남지부를 발기할 꿈에 부풀어 그 커다란 눈이 반짝거린다. 며칠 숙박하면서 하늘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절 주위를 돌아본 뒤 각자의 길로 헤어지면서 ‘발기 잘 하세요.’ 하니 킥킥 웃으며 승용차의 시동을 건다. 우물 안 개구리인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법당 쪽으로 삼배한다. 

 유치환시인과 이영도 시인의 불륜[?] 아니면 정신적 숭고한 사랑[?]과 시도 그들의 그림자이고 의상대사와 원효스님의 불심의 발로로 창건한 절도 그들의 영원한 빛그림자가 아니겠는가? 그림자는 어둠이기도 하지만 찬란한 빛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필자의 졸시 ‘그림자를 위한 파르마콘*’을 되뇌어 본다.

먹물처럼 속 깊은 
음흉스런 저 그림자
다소곳이 따르는 그늘인 척
제 색깔 절대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만 몰래 주인의 빛깔 다 빨아들이면서

 
  시시로 산란하는 시들, 여름 한 낮 연꽃이 누드로 일어서는 낯 뜨거운 늦바람 그림들, 제 주인의 혼신을 모두 내면으로 받아들이다가 어느 순간 세상을 향해 고자질하기도 하면서

  흡수한 그 인생 제 피로 정제해 단단한 꽃소금덩이로 살리려면, 그 주인은 청산가리 같은 외로움에 떠는 가슴 달래줄 시와 그림을 찾아 흰 소의 울음으로 살려야 하리 그러기 위해 들꽃 폐차 안으로 별들이 빛 굴리는 소리 들으며 그들의 고단함을 달래주어야 하리

어둠 속 달빛과 햇살 머금은 씨알들 다 줘버린 
그 껍질은 끝내 죽어버리지만
생의 흔적인 그림자의 빛그늘
그는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남을 것이므로

-[그림자를 위한 파르마콘* 전문]


*그리스어로 약물이자 독이라는 뜻


처용아내와 손톱  [극본; 처용아내 정 숙]
 술집과 월궁 캬바레 자갈마당 색시집 노래방 간판이 늘어서 있다. 달 밝은 밤 술집에선 동네 처용들이 모여 술판과 화투판이 벌어지고 처용 아내 1 무대 한켠 골목 밴취에선 부부가 얘길 나누고 있다.


처용아내 1 ;;         서방님,누가 뗀지놓고 간 저 쟁반, 와 저리 크고 발심니꺼. 예?
처용 1;;       보름딸인데 지 안발꼬 우짤끼라. 니, 그것도 모리나?

처용아내1;;      서방님,서울 가시믄 빼딱구두 쫌......예?
처용 1 ;;고마 잔죽고 있거래이. 껌덩 고무신도 니한테는 오감태이.

처용아내 1;; 에고! 서방님, 저 단소 소리 안들립니꺼? 예? 나무 애간장 끓이는 소리 말이라                 예.  
처용 1;; 니 머라카노? 얼씨구! 고마 디비저 자라 자! 


처용아내 1:: 서방님 그 홍도화 겉은 뽈때기가 하야이 기운이 없어 비네예. 어젯밤 어데 갔             십디꺼? 
처용 1; 밤드리 해금 연주를 안했나. 그 오묘한 소리!  기똥차데
처용아내 1; 우야꼬 해금 연주는 氣가 마이 상한다 카던 데. 이따구로 펵 퍼지민                    서 말라꼬 고렇게 시랐심니꺼? 
처용 1; 머? 여자가 빠이롱이냐 시루게? 에쿠 실수했네[얼른 바이올린 켜는 흉내낸다 
처용아내 1; 언제예,그기 아이고예 재미는 딴데서 실컨 보시고예 그 뒷감당은 지가 하이꺼         네 기가 안차겠심니꺼. 바까서 생각 쫌 해보이소. 예? 간드러지는 지 향피리 소리가 훨씬 더 좋을낀데예......[간들간들 엉덩이 실룩이며 

[골목 가로등불 아래 다시 시끌벅적하다 처용아내 2 거품을 물고 처용 2와 싸운다]

처용아내 2;; 와 쫓가낼라 캅니꺼. 와예. 칠공주 놓기 그리 숩십니꺼.
          딸을 지 혼차 낳았십니꺼? 딸이 뱅기 태워준단 말 몬 들었십니꺼. 몬난 아들보다 백배 낫지예. 두고 보이소. 서방님예. 우야든동 지가 아들을 놓을 끼까네 걱정 꼭 붙들어 매시이소. 우쨌기나예 하늘만 자주 비이주이소. 자주자주 봐야 별 딸거 아입니꺼?

처용 2;;이놈의 여편네 무신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하노? 콱!!!!!1

처용아내 2;; 예? 언지예, 아이라예. 대드는 기 아이고예
            사실이 그렇다 카는 기지예. 말이야 바린 말 아입니껴? [처용2 처용아내 2를               끌고 집으로 들어간다.]

[처용아내 3집에선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가 난다. 술 취한 남편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건다]
    처용 3; 어 취한다. 아들은 ? 
처용아내 3;;지 방에 자고 있어예.
처용3;; 그래, 자자 .불꺼라   [하품한다]   
  
   처용아내 3;; 술 한 잔 거나해져야 한번 울릴 동 말 동 한밤중, 우리 집 싸나아는
               아무리 동동 발 굴리며 울려도 녹슨 문은 쉬 열리지 않는데 

       흥!, 밤물결에 뽑힌 깃털자리 먼저 보듬어야 상처 지워줄 수 있을텐데 한번 호~~~ 불어주면 모든 상처 다 아무는 입김일 텐데

어쩌랴! 따스한 눈길도 먼저 보내는 이가 즐거운 법이라고, [진분홍 루즈를 바른다.  입술로 덮치면서] '여봉, 오늘밤도 젖무덤 초인종 꼭꼭  누질러 주세용' 

  처용 3;;   '니, 쥐 잡아 문 소리 할래? 고마 불 꺼라 자자!' 

[처용아내 3 잠옷 바람으로 혼자 나와 넋두리 한다]

처용아내 3 ;; 서방님예, 지도예 바람이 흔드믄 간들간들카는 봄버들이라예.
            실버들이라예. 기집이라 카이예. 다 커뿐 아아들 말 없지예,
            새라도 붙잡고 지저귀민서예, 고 넓은 가슴에 기대 어링냥 부리보고 싶다 카이              예, 내에 모린 척 피하시는 잘난 서방님, 정말 무심도 하시어라.
            하 답답해서예, 저 못생긴 疫神이라도 부리고 싶다 카이예.
            참말이라예. 거짓말 아이라 카이꺼네예.

처용 3[벌떡 일어나];;걸레는 빨아도 걸레라 카이! 바가지긁는 소리  시끄러버 잠도 안 온                      다 아이가!

처용아내 3 ;;   뭐라꼬예? 바가지가 시끄럽다 칸다꼬예? 서방님예, 이건 애원입니더예.
               까시없는 장미는 향기도 없고 기운도 없데예. 서방님께서 보드라분 꽃잎 만                 지작거리시미 코쟁이 술에 취할 때 지는예, 알뜰살뜰 살림 꾸리니라꼬
               깔쿠리손 됐어예. 와이카심니꺼. 예?
처용 3;; 그래 그래 일로 와바라 [처용 3 아내의 손잡고 젖은 손이 애처로워 노래 부                 른다]
 처용아내 3 ;;  놓소! 마  퍼뜨카믄 까치리한 손 이뿌다카시미  거짓 노래만 부리시지예.


처용 3;; 에이 시끄러워!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간다. 술집으로 들어간다. 처용아내 3 머리띠 두르고 앉았다가 누웠다가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다시 옷 갈아입고 다른 처용아내들을 전화로 불러 같이 처용을 찾아 나선다. 월궁 캬바레로 들어간다. 춤추는 남자들 속에서 처용3을 찾아다닌다 남자들에 잡혀 춤을 추기도 한다.] 

처용아내 3 ;;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무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처용 아내들 같이;; 물리지 마이세이 [캬바래를 나와서 기운 없는 소리로]

처용아내 4;;
'몬찾겠어예 꾀꼬리' 서방님예, 고마 나오이소.
어데 숨었어예? 고놈의 숨바꼭질도 지칬어예.
인자 지가 숨을 차례라예. 와, 싫다꼬예? 지도
꼭꼭 숨어서 찾아다니는 서방님 꼴 쫌 보고 싶어예.
얼매나 안 꼬시겠어예?
와, 지만 맨날천날 찾아댕기야 되능기예?
[처용아내들 나와서 다시 색시집을 숨어서 기웃거린다]

처용아내 2;; 서방님이 등산 간다 카고,
뒷집이 꽃밭에 물주러간다 카고,
앞집이 경마장 간다카미 나갔다 카는데


처용아내 1;; 집안에도 두리뭉실한 산이 있고
빌로 볼품없어도 꽃밭과 튼튼한 말 안있나?
동네 싸나아들 와, 해필 와, 자갈마당에 가노?
집에서 냄비딱고, 굴뚝 소지하믄 
덧나능가 머?

눈물로 핀 들국화가 더 애처럽고 더 이뿌다꼬?
길섶에 채송화가 더 근지러분데 잘 긁어준다꼬?

처용아내 4;; 싸나아들이 철드자 망령든다 카디
갈수록 태산 아이가.
지 암만 노푸다 케싸도 다 내 손 안에 안있나.
부처님 손바닥 아잉가베. 집에 가자 고마
[각자 집으로 들어와 잠을 청한다. 처용아내 3 다시 일어나 살풀이춤을 춘다. 봄비 내린다. 벚꽃잎 떨어진다.]


처용아내 3;;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인 줄 아시지예?
            이 가심 속엔예 안죽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비랑끝의 꽃이 이뻐 보인다고 지를 꺾을라카는 눈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그래예?


[머리가 아파 머리띠를 묶는다. 잠을 청하며 뒤척인다. 천둥소리 들리며 꽃을 입에 문 역신이 살금살금 들어선다. 처용아내 돌아서며 이리저리 몸을 피한다. 결국 역신이 처용아내 3을 끌어안는다. 같이 춤을 춘다. 같이 눕는다. 그 때 처용3이 들어오다가 신발을 보고 깜짝 놀란다. 신발 세는 시늉을 하다가 방문을 연다. 놀라면서 춤을 추듯 처용가를 부른다.]

처용3;; 셔블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가라이 네히어라
     둘은 내헤다 마는 둘은 뉘헤런고 본디 내헤다 마는 빼앗으니 어쩌리꼬                      
[역신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싹싹 빌다가 도망가고 처용아내 일어나 화를 내면서]

처용아내 3;; 가라히 네히라고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 지혼차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 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든 잠 찔레꽃 꺾어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아, 사철 봄바람인 사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붐에 속 골빙든 예편네 꿈 한분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처용아내 3 보따리 주섬주섬 산다. 처용 붙잡는다. 서로 밀고 당기고]

처용아내 3;;  서방님예, 이제 더 이상 지를 양보 몬하겠심더.
부덕이란 울타리에 지를 꽁꽁 묵까둘라카지 마이소.
숨이 막힙니더.살아 있는 목소리 진짜 그립심더. 나비맨치로
훨훨 날아만댕기는 서방님, 우예 이 맘 아시리꼬! 차라리 무인도라 카믄...

씩씩거리는 역신이 아이라예 진짜 지 이바구 들어 줄 인간이, 사람이 그리버예. 서방님예,
[처용 3 아내를 으르고 빌며 살살 달랜다]
처용 3;; 나가봤자 마카 다 늑대라. 니 모리나?
처용아내 3;; 예? 마카 다 늑대라꼬예? 뭐 그러까이예
처용 3;; 니 그래가 나가믄 등띠에 시퍼런 배추이파리 몇 장 붙여놔도 아무도 안 거들떠 본             데이
처용아내 3;;아 용왕님 아들이믄 뭐 용까능교. 사람이
          가마 이스이까네 가마떼긴 줄 아능교?

       지도 온갖 소리 다 낼 수 있는 악기니더. 아능교?
몸띠 속 가야금 신경들이 팽팽히 줄 땡기고 있니더. 서두르고 있니더.
[토라진 아내를 위해  등 토닥이며 부부간 잠자리 포즈를 취한다. 스탠드 불 꺼지고 대금 연주소리 들린다]
 서방님예 오늘따라 대금을 불고 기시는 그 모습 미치도록 디기 멋집니더. 홀딱 반하겠심더. 애간장 다 타도록 밀칬다가 땡깄다가 땡깄다가 또 밀칬다가 대금소리 뜬구름 우에서 헤매고 있심더. 점입가경의 그 솜씨 지녁마다 어데서 연주해십디꺼.
지도 악기로 훌륭안합니꺼. 그지예?
[ 밤은 깊어가는데 처용 1, 2 자갈마당에서 나오다가 잡힌다. 멱살을 잡고, 귀를 잡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릇 깨지는 소리 싸우는 소리 골목이 왁자하다]

[이튿날 아침 처용아내 1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옷을 차려 입고 나선다.]

처용아내 1;; 쌔련된 기집이 좋다꼬예? 지도 쌕안경 하나 샀어예.
시상이 온통 쌔까맣게 보이네예. 우짜노! 서방님 가심 속조차 씨커멓게 보이네예.
꼴뚜기 심뽀 아입니꺼예? 누굴 믿어까예. 무서버서 몬살겠어예.


처용아내1 ;; [장구쟁이를 찾아간다. 장구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한편 처용아내 3 한복을 벗어던지며 꼬냑 컵을 들고 홀짝 마시며]
처용아내 3;; 꼬냑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장밋빛 살결 세월이 더할수록 톡! 쏘면서 화악! 달아오르는 고 맛깔
긴 시간 내성으로 빚어 단내 나지 않는  향그러움으로 
목석 같은 그 가슴속 불, 찔러버리고 확, 불 찔러버리고
저마저 활활 태우는 한 잔의 꼬냑! 비록 순간일지라도 

[상 위에 책을 펴고 원고지를 든다. 시를 쓰고 읽는다.]

차갑게 닫힌 제 옥문 두드리셔요.
살이 떨리면 두근두근 심장이 깨어나지요
톡, 쏘면서 질 붉고 달착지근한 꽃뱀처럼 
속 파고들어 꽁꽁 언 가슴 녹여드리겠어요
그득히 채워드릴래요 그대, 
어둔 밤 달아오르기 기다리는 향피리여요

[바깥이 떠들썩하다. 처용아내 1과 처용 1 서로 싸운다.]

처용아내 1;; 기집이 사나하고 눈만 마차도 서방질이라꼬?
처용 1;;그래 그기 서방질 아이고 머꼬?
처용아내 1;; 우짜꼬! 아래 화전놀이에서 깔쌈해서
  똑 기생 오라바이겉은 장구쟁이하고 눈마차뿟는데.
가심이 두근반 시근반카데. 길가 나가서 지보고 돌삐 뗀지라 케보이소.
뗀질 사람 누가 있겠심니꺼?
소문 몬들었어예? 인자 남정네들이 다부로 뚜디리맞고
눈티가  반티된다 카는 말 말이라예.[처용1 처용아내 1 허리를 잡고 끌고 들어간다]

[처용아내 4 화투판에서 놀다가 처용4를 만난다 서로 놀란다 ]

처용아내 4;;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처용 4 어쩔줄 몰라하며 술을 마시고]
희안한,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4 쫒기 듯 걸어 나오다가 처용아내 5를 만난다. 밴취에서 손톱칼을 들고 손톱손질을 하고 있다. ]
처용아내 4;; 용이 엄마 여기서 머하능기예? 시상이 와 이리 시끄러분지 원 쯧쯧[곁에 앉는다]


처용아내 5;; 와 이래 씨끄러부냐꼬예? 집집마다 암딱 우는 소리 아인기예.
인자는 암딱 소리가 젤로 큰 집이 잘 사데예 칼 빼내삐린 남정네들이 가마 구경하다가 
떡만 자시믄 되는 기라예.
소리 큰 암딱은 손 크지예, 또 치맛바람은 얼매나 씨다꼬예? 아씨예?
고 치맛자락 펄럭일 때마다 아파아트 한 채가 왔다리 갔다리 안합니꺼.

장딱만 믿고 잠자던 암딱들이 칼 때신에 손톱 끝 길게, 날카롭게 갈민서
마카 꼬꼬댁! 꼬!꼬!거리야 잘 사는 시상이, 시상이 진짜 왔단 말이라예.


[밴치로 처용아내들 하나 둘 모인다  ]

처용아내 4;; 요즘 부산댁이 꼼짝도 않고 들어앉아서 뭐하는지 모리겠네. 몰래 한분 들어가 보입시더 쉿 조용! [살금살금 처용아내 3의 집으로 간다.처용아내 3 시낭송을 하고 있다]]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을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와! 시인 만세! 외치며 모두 손뼉을 친다.]

처용아내 2;; 하이고 부산댁이는 정말 열심히 잘 했대이. 축하하는 뜻으로 이카지 말고 우리 노래방에나 갑시더. 내가 한턱 쏠끼다. 마[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애모와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른다. 탬버린을 치며 춤을 춘다.]


[그 날 밤 처용아내 3의 집. 직장에서 늦게 들어오는 처용3의 가방과 옷을 얼른 받아 걸며]


처용아내 3;; 피곤하시지예.취하셨지만 이밤 유난시리 잘나보입니더.
처용 3;; 여편네가 미쳤나 걸쳤나?
처용아내 3;;노래방 번쩍번쩍카미 발광하는 조밍등 아래서예 실컨 노래 부리미 맥힌 속아지      풀었심더. 춤추민서, 괴성을 지리다가예 "입수부리 뺄가이 바리고"를 부릴 때는예
마 청승시럽기조차 합디더.서방님예, 등 쪼매 쭈무리드리까예?[등 안마를 한다.]
너무 용쓰지 마이소.갑째기 탁 뿌라졌부는 나무가 디기 많십디더.
걱정입니더. 미부나 고부나 서방님이 지울타리 아입니꺼. 시상이 달라졌다 케도예
아이도 냄핀따라 인내를 한 구디에 묻어뿌립디더. 안그러십디꺼예?
처용3;; 그렇지 그래 우리 마누라 오늘 밤 디기 이뻐 보이네. 그래 툭수바리 된장이 더 구        시하제. 그래! 그래!
[서로 어깨 감싸며 포도주 잔 부딪치며 춤을 춘다. 마지막 음악 들린다. 모두 무대로 올라 같이 어울린다.]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서[제목]-----------전체 영상시도 배경으로 깔면 좋을텐데요-?

                                                                       극본 =정 숙 시인


1. 소 울음소리 들린다. 아버지 농사일이든지 농기구를 만지거나 뭔가 열심히 일을 하신다. 땀을 훔치면서
2. 어머니 장독대에 물 한 그릇 떠 올리고 빈다.
3. 아이들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 한다.[오빠 둘 언니 셋]

바람 길을 서서 걷는 남자  [아버지 아니면 큰 오빠가]


 너, 무슨 업業 그리 많으냐 모래사막을 건너려면 모자챙이 넓어야 하는데 그 챙의 넓이에 여러 목숨 달려있는데

 너만 잠시 쉬어갈 세상 의자는 없다 단지 서서 걸어가기만 하리

 가장은, 말이 있어도 끝내 타지는 못 하리 그냥 서서 한 평생을 끌고 가야만 하리

 그 뒤를 줄줄이 어린 낙타 한 마리 씩 타고 바람에 불려오는 가솔들그들 남루를 이끌고 오늘 밤 안으로 

 오아시스를 찾아야만 한다 모래폭풍이 또 다시 휩쓸어오기 전에











밥그릇을 위해 물구나무서다    [큰 언니가]


                            
  제 뿌리 헐벗는 줄 모르고 하늘로 키만 키우는 대나무들 고집 틈에
 거꾸로 매달려 가랑이 찢어지도록 흔들건들거리는 

 어머니
 
 당신 울타리 넘어질까 봐 애면글면, 그 바람 멎어달라며
댓닢 피리로 모내기철 초사흘 달빛기도 드리고 있다

















열네 살 적, 들장미 피어나던 날 [주인공----소녀시절,  초경을 하는 장면]

              

  사월 눈부신 햇살 아래서 비눗방울을 불고 놀았지요 종일 무지개 따라 다니다가 그 비눗방울에 그만 갇히고 말았어요

 해는 어스름해지는데 아랫도리 뜨끈뜨끈 진홍빛 꽃 피어나면서 가시도 같이 돋아나

 난 탱자가시 울타리 밑에 웅크리고 앉아 훌쩍이고만 있었는데

 냇물 건너 노을 진 하늘이 내 그림자를 저보다 더 진하게 물들이고 있었어요


























타조풍으로 [둘째 언니가]


날개가 있다고 다 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날개가 있다는 것은 날아오를 수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끝내 날아갈 수 없다면 

 하루하루 그 슬픔의 무게가 그의 목 점점 더 길게 늘여가고 있는가

 그런다고 하늘이 더 가까워지는가




4  달밤 주인공과 연인  걸어간다. 팔짱을 끼고 애무하며. 파도 소리 들린다


달빛 모래성을 쌓다[동네 아주머니 1]

1.
               
   아닌 밤 해운대 달빛파도 팔짱 끼고 해변을 걷고 있는 저 남녀
미완의 사랑 다시 시작하려고 안개 바다 속 서성이고 있는가

2.

    뜨거이 주고받는 입김이 달빛목금을 연주하는 밤 바람젖가슴 밀었다가 다시 움츠렸다 살며시 당기고 또 놓아주기도 하면서

3.
   어차피 아침이면 해거품 물보라로 모든 것 사그러진다는 것, 그걸 알면서 이 밤 또 바람모래성을 쌓고 있는가






누가 먼저 불붙이느냐       [동네 아주머니2]

        ---성냥불  1




밤새워 온 몸 사른다
한 개비 성냥불 입에 문 초는
제 목숨 다 녹아내리는 줄 모르고

얼어붙은 샛강도 녹일 수 있는
불씨, 사람들마다 가슴에 간직하고 있지만

누가 제 몸에 먼저 불붙이느냐

성냥 한 개비의 몸도 마음도
그 누군가와 
온 전신으로 부딪혀야 불꽃이 피어나나니

남의 가슴에 불붙이려면
저 먼저 타올라야 하는 법











파도처럼------주인공


우뚝히 서서 먼 수평선 바라보고만 
있는 섬 바위,  고집스런 고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때리며 마구 할퀸다 
깨지는 것은 파도 제 몸뚱이 
온몸이, 유리알같이 산산이 부서지고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찬란히 부서져 내린다.
情事의 불꽃!

때론 부드러운 눈길 잔잔하면서도, 
그리움 클수록 가슴 속 불덩어리 이글이글 
끝내는 지 정열 못 감당해 허공에 대고 
散華해도 끄덕도 안하던 섬 바위, 
소리 없이 조금씩 무너지고   
오늘 밤 나는 성난 파도이고 싶다  
그대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아, 흑장미 빛 파도가 되고 싶다.















섬바우는---------[주인공의 연인]


哀憐에 물 안드는 게 아니다!
용암거치 붑끓어오리는 가슴이 내게도 있다는 
거를 , 모르는가? 
처절한 몸부림으로 눈부시게 
니 아련 살점이 마카 부서져 내릴 때,
설레는 내 눈빛 몬 본 채 훌쩍 돌아서는 
파도여! 살며시 다가왔다가 성난 듯 마구 
할퀴면서 금새 돌아서는 매몰찬 그 모습,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하늘, 
쉴 새도 없이 흔들리는 니 가슴, 

아는가? 끝내 파열하는 내 신음소리!
부서져야 하리, 낱그리 부서져서
나를 깡그리 뿌사야만 
니 품에 편히 잠들려는가? 



















5. 드레스 입은 주인공과 연인 결혼한다 [아니면 둘은 잔을 부딪친다 사랑의 행위 흉내낸다, 곧 남자는 바람잡이 흉내를 낸다]



꼬냑여자 --------[주인공]
 

꼬냑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장밋빛 살결
세월이 더할수록 톡! 쏘면서
화악! 달아오르는 고 맛깔
긴 시간 내성으로 빚어
단내나지 않는 
향그러움으로 
목석 같은 그 가슴속
불, 질러버리고
확, 불 질러버리고
저마저 활활 태우는 한 잔의 
꼬냑!
비록 일순간일지라도
 
 

















처용, 어느 33대손-------[어머니 아니면 이웃집 아주머니]



 세상 밝히려면 대들보 하나 튼튼하게 세워 꽃씨를 잡초보다 많이 뿌려야한다더니 그 단단한 청석 뚫으며 아무 땅이나 파대던 그는 제 집 한 채는 고사하고

 달맞이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 어느 바람 센 공터에서 새우잠 달래고 있는가 작업복 빈 바짓가랑이만 억센 바람손아귀에 붙잡혀 빈 하늘에 버둥 버둥대면서


















6. 시장 난전에서 골라골라 옷장사를 하는 주인공






바람 난전에서-------[시장 상인1]------시가 많으면 생략해도 좋습니다.

                     



 큰 장 난전 '골라 골라' 옷가지에 맨얼굴 숨기고서 손바닥 발바닥으로 장단 맞추며 손뼉 치며 새벽시장 이른 바람 타이른다

 막걸리 한잔이 곧 인정이고 의리라고 믿는 백수남편은 또 누군가에게 인생 빚보증이나 서고 있지 않은지









8.  밤. 아버지 돌아가시고 검은 옷 입은 식구들 모여 회상에 젖는다.
멀리서 징소리 들린다.


백지백기를 들다--------[둘째 오빠가]------백지 한 장 들고
         

왜 이리 무거운가
티 없이 맑은 이 한 목숨하늘이 

 잠 못 드는 밤 A포 용지 한 장에 동공 모으면 희디흰 뼈와 뼈 틈이 차츰 열리면서 검은 그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찢기고 짓이겨지는 한 생의 비명이 어둠속에서 어둠을 밟고 서 있다 
저  하얀 눈부심 아래 얼마나 많은 눈빛이 젖어 빛나고 있는가

 젖은 그 무게 때문에 그들 그림자하늘이 저리 어두운가
어둡다 못해 오히려 희게 보이는가 







 참빗-------[ 언니 3]-빗으로 머리 빗으며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같이 지녀야한다며 찔레꽃울타리 둘러놓고
헝클어진 내 생을 정리해주던

아버지, 내 태초의
첫 남자

 당신, 내 눈길 벗어나지 못해 지금껏 기억의 어느 끄트머리에 매달려 
물먹은 별*빛발하고 있는가
 
*정지용의 ‘유리창’에서 눈물을 뜻함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서------[주인공]------징과 징채를 들고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한파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사위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네 징을 칠 것이니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리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속으로 울거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나를 울리는구나



9. 모두 슬픔에 젖는다.  징소리 울린다

아버지!!


「시극」



신 처 용 가


연작시: 정 숙
대본: 정 숙











-시극-
「신처용가」





<신처용가 극본>

(웬생트집)

M : 경음악(봄날은 간다)
시간: 자정을 알리는 큰 시계추 소리
소품: 달,밤,용광로,술상,술병,술잔,호롱불,찔레꽃
등장인물: 처용아내,처용,기생들,역신, 처용의 술 친구들
해설(녹음):자정이 지난 시간. 봄비 추적추적 내리는 밤
벚꽃 꽃잎이 나풀나풀 떨어진다

(연출):처용이 술상에 기생들과 흥청망청 놀고 있다.[웃음소리]
장구와 기생과 한량춤 등. 가야금 거문고 대금소리 등

2차 3차 장소를 옮겨 카바레로 갑니다.(섹스폰연주:댄서의 순정)스포츠댄스 아니면 사교춤판

처용아내 1: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그러시: 글쎄


처용아내 2: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무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M: 봄날은 간다(노래)- 男,女
-암전-

M : 배경음악
-청소하면서-
배경으로 춤추는 장면
=======================================
자갈마당이 어덴공?
-처용아내 80 [태산이 높다하되]

서방님이 등산 간다 카고,
뒷잡이 꽃밭에 물주러간다 카고,
앞집이 경마장 간다카미 나갔다 카는데
자갈마당이 어데 있는공?

집안에도 두리뭉실한 산이 있고
빌로 볼품없어도 꽃밭과 튼튼한 말 안있나?
동네 싸나아들 와, 해필 와, 자갈마당에 가노?
집에서 냄비따고, 굴뚝 소지하믄 
덧나능가 머?

눈물로 핀 들국화가 더 애처럽고 더 이뿌다꼬?
길섶에 채송화가 더 근지러분데 잘 긁어준다꼬?

싸나아들이 철드자 망령든다 카디
갈수록 태산 아이가.
지 암만 노푸다 케싸도 다 내 손 안에 안있나.
부처님 손바닥 아잉가베.

자갈마당:대구에 있는 색시집 동네.
지:제, 저의
===============================

처용아내 3:
종일 지아뿌는 일만 하고 있었심데이!
청소하면서 지 발자죽을, 
설겆이 하미 추억의 얼룩자죽을,
빨래하면서 희망 뿌시레기를
빡빡 지아뿌고 있었심데이.
뭔지 생각없이 부지런히 딲고 씨꺼보이
한숨캉 눈물밖에 안 남십디데이.
참말로 바보거치 살았심데이.



소리(녹음):([살풀이춤이나 대금연주도 좋습니다.]----[아줌마 3]

해설(녹음):자정을 알리는 시계 추 소리 들려온다
처용아내 수틀을 들고 수를 놓거나 바느질을 하다가 
창가를 서성인다. ) 걸레 집어 던지고
한숨을 쉬다가 봄날은 간다 노래한다


처용아내 4: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인 줄 아시지예?
이 가심 속엔예 안죽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비랑끝의 꽃이 이뻐 보인다고
지를 꺾을라카는 눈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그래예?



해설(녹음):여기서 처용아내 꼬냑 한잔을 들이키며 현대판
신식 고냑같은 여인으로 변신한다.막춤과 옷 벗어던지기



<꼬냑 여자>
M : 배경음악


처용아내 1:
      꼬냑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장밋빛 살결
세월이 더할수록 톡! 쏘면서
화악! 달아오르는 고 맛깔
긴 시간 내성으로 빚어
단내나지 않는
향그러움으로
목석 같은 그 가슴속
불,질러버리고
확, 불 질러버리고
저마저 활활 태우는 한 잔의
꼬냑!


M : 배경음악(바뀌며)

男.낭송(녹음):


해설(녹음):잠시 뒤 천둥번개 소리 나며 역신*[열병을 의미]이 
나타난다.[탈춤을 추며] [굵은 귀고리와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고 반지로 처용아내를 유혹한다]
꽃 한 송이 입에 물고 처용아내와 눈을 맞추려고 갖은 교태를 부린다. 드디어
 
    
연출: 처용아내 어쩔 수 없이  역신*[병을 옮기는 신]과 잠자리에 든다.
      다리 넷과 신발을 크게 부각 시킨다.[천으로 표현]
      이 때 처용이 취해서 기분 좋게 나타난다.
      방문을 연다. 깜짝 놀라면서 손가락으로 다리를 세는
시늉을 한다. [누운 두 사람 다리를 들어보인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깜짝 놀란 두 사람 벌떡 일어난다. 처용이 춤을 추면서
처용가를 부른다. 
   
  
M : 배경음악


처용 1(낭송):
      셔블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가라이 네히어라
    둘은 내헤다 마는 둘은 뉘헤런고
      본디 내헤다 마는 빼앗으니 어쩌리꼬


해설(녹음):역신 처용에게 용서를 빈다. 둘이 싸움을 한다. 
      처용아내 열이 펄펄 끓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일어나 손을 잡으려하지만 처용은 뿌리치고 나간다



(웬생트집)


M : 배경음악(녹음)


처용아내 1:                               
가라히 네히라고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 지혼차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 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든 잠 찔레꽃 꺾어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아, 사철 봄바람인 사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붐에 속 골빙든 예편네 
      꿈 한분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해설(녹음):사실 역신한테 병을 옮겨 받아 열이 펄펄 끓었지요.
그런데 웬 사내와 자고 있느냐 하니 열이 날 수 밖에요. 처용아내 너무 억울해서 보따리 싸서 집을 뛰쳐나옵니다.
처용이 후회하며 뒤쫓아간다

M : 배경음악(녹음)
처용 2(낭송):


[장구쟁이와 춤을]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궁디이:엉덩이
지캉:저와


해설(녹음):한편 처용아내는 집을 뛰쳐나와 화투판에서 놀거나
캬바레에서 춤을 추기도 합니다. 화투판 쌌다 !고오다! 소리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5: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귀케: 귀하게
*제비캉: 제비하고

처용  :앞치마 드르고 국자를 들고 뛰어 나오며
                      "여보 여봉 해장국 끓여서 빨리 가서 같이 들어 응?

M : 배경음악(녹음)



※엔딩송 : 봄날은 간다(다같이)-인사(경례)나가서 손님 을 잡고 올라와 춤을 춘다






-End-

「봄날은 간다」

       





이 시 나는 이렇게 썼다

                정 숙 [시인]


첫 남자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함께 지녀야 한다며 찔레꽃울타리 둘러놓고
헝클어진 내 생을 참빗질해주시던

내 태초의 첫 남자 
아버지

 당신, 내 눈길 벗어나지 못해 지금껏 기억의 어느 끄트머리에 매달려 
물먹은 별* 반짝이고 있는가
 
*정지용의 ‘유리창’에서 눈물을 뜻함


 경북 경산군 자인면 계남동 까막새 외딴 과수원 집 1남 4녀 중 셋째 딸,  탱자 울타리 따라 찔레꽃 향기 피어나던 집 앞 갱분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냇물 따라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키 큰 귀리들 서걱대면서 포플러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노래와 화음을 맞추고 홍수 지나간 뒤 노을이 물드는 시간 쯤 피리낚시와 헤엄치기, 여름 밤 솜뭉치에 휘발유 묻혀 불치기하면서 물고기 끌어 매운탕 끓여먹던 시절 그 아름다운 추억의 보석함이 이 시 속엔 숨어 있다.

 아버진 침대 머리맡에 사냥총을 세워놓고 밤을 지켰으며 아침이면 큰 개를 앞세워 사냥을 나서기도 하셨다. 어린 난 따라 가면서 새벽이슬 함초롬히 머금은 들꽃과 얘기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었다. 친구라곤 언니들과 동생뿐이어서 사과나무들 그리고 살구나무와 많은 얘길 나누며 사유라는 꿈의 비눗방울을 마구 불어댔다고 할까?  특히 늦잠 자는 걸 싫어하시는 아버지 무서워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거나 싱가 미싱으로 옷을 만들거나 부채에 예쁜 그림을 붙이거나 책을 읽어야 즉 뭔가 하고 있어야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여자는 예뻐야 한다면서 어린 딸들에게 루즈를 발라주고 고대기 화롯불에 데워 머리카락을 곱슬곱슬 구워주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자상하게 키우셨지만 우린 대학 다니면서도 고집스럽게 화장할 줄을 몰랐고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로 여겨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죄송스러울 뿐이다. 대학 3학년 겨울 아버지와 처음 서울 고모님 댁에 가는 날 눈이 펑펑 쏟아졌었다.
그 때 아버진 여자는 착하기도 해야 하지만 고종사촌 언니처럼 대차고 씩씩한 면도 있어야 한다고 은근히 일러주셨다. 워낙 말이 없고 순한 소처럼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딸 앞날을 걱정하셔서 일러주셨을 텐데 시집살이에 순응하기만 하는 딸이 바보스러워 속도 많이 상하셨을 것이다.  그 말씀 평생 잊어지지 않아 결국 시인이 되고 이런 시를 뱉어내게 되었을 것이다. 

 무섭기는 했지만 아버진 절대 권력자로 전지전능한 분으로 믿고 마구 미워하기도 했었는데 편찮으실 때는 아버지를 나 자신이 살려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무기력한 힘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늘 죄송하고 벌써 이 십 여년이 지났지만 문득 문득 생각나는 분 아버지, 특히 장덕조 같은 소설가가 되라시며 집안일을 시키지 않을 정도로 특히 외국으로 수출하는 사과 상자에 생산자 이름을 필자의 본명인 정 인 숙 으로 보낼 정도로 셋째 딸을 좋아하셔서 자매들이 샘을 낼 정도였으니 난 그것이 부담스러워 더 글을 쓰지 않았고 아이구! 아버지 죄송합니다. 살갑게 대하지 못한 딸이었지만 그래도 자매들 중에서 제일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고 마구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다. 자신이 가족들 화합시키는 분위기 메이커라고 생각했으니. 그 시대 아들만 대학 교육 시키는 풍조였는데 아버진 네 딸을 다 대학교육을 시켰으니 생각할수록 감사하는 마음 때문인지 돌아가신 아버지 늘 허공 위에서 내려다보고 계신다. 이처럼 돌아가시고 나면 평생 그리운 분이 부모님인데 이제 아흔 일곱이 되는 어머니 아직 건강하게 살아계시지만 언제 갑자기 돌아가실지 모르는 형편인데도 만날 바쁘다 핑계만 무성하니 참 불효한 딸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아픔과 그리움이 있어 먼저 집안 가장의 외로움을 이해 못했고 좀 더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했던 한이 남아 아버지가 참빗으로 연상되었고 따지고 들어가니 태초의 첫 남자는 바로 아버지였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화자는 시인 자신이고 시적 완성도는 부끄럽기만 하다. 그 끝없는 그리움과 죄송스러움을 그립다는 말 대신 추억을 되살리고 ‘정지용’의 ‘유리창’ 이란 시에서 물먹은 별빛이란 단어를 차용하여 슬픔으로 앙금으로 남아 있는 한을 풀어보려는 것이다. 어쩌면 오이디컴플랙스의 묘사이지요.

 특히 시의 소재는 멀리서 찾으려 말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만의 내면과 체험세계를 상상력으로 육화시키는 작업이어야 진정성이 있는 시 세계를 열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주변을 살피며 코를 킁킁거리고 있지만 아직도 나의 시세계는 늘 허공에서 헤매는 중이다. 
 
 아버지, 신묘년 새해 새벽 가만히 불러봅니다. 천국에서도 못난 딸 지켜보고 계시는 거지요?  






첫사랑, 그 아련한 그리움


 꿈결인가? 참으로 달콤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 말은 그립고도 그리운 한 소녀시절로 청춘시절로 돌아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일까? 그 통로를 더듬어 가다보면 잊혀 진 얼굴들이 여러 가지 색깔의 비눗방울 속에서 동실동실 떠다닌다. 

 마침 컴퓨터 내 홈에서 존 바에즈의 흘러간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고 있으니 그런데 내 발걸음은 대학 1학년에서 자꾸 머뭇거린다. 66학번 그 당시 경북대학교 입학한다는 것은 서울 유명한 몇 개의 대학과 맞먹는 위치였다. 특히 여학생이 귀한 때 한 과 정원이 15명 그 보다 남녀공학을 간다는 것이 내겐 전쟁터로 나가는 것처럼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참 바보처럼, 절대로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섰으니 사랑이란 말을 믿지 말자고 맹세하고 입학했으니 첫사랑이란 그 연못에 한번 빠져보기는커녕 발을 적셔보기라도 했을까?

 그 무덥던 여름 지나고 어느덧 초가을 밤 눈물이 글썽한다. 어구, 왜 이리 감상적이지? 피겨스케이트의 스핀을 발끝으로 빙그르르 돌아본다. 눈 지그시 감고 손끝을 뻗어본다. 손끝 따라 과거를 불러 모은다. 뽀족히 갓 터져 나오고 있는 연둣빛 양버즘나무 잎 사이로 빙긋이 웃는 얼굴 하나 쑥스러워하며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듯하다. 우선 날 세운 양복에 키가 쭈욱 뻗었다. 재수생인지 풋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의예과 1학년이라며 그 당시 1학년은 대학이나 과 구분 없이 교양학과로 두루 섞어 공부했다. 4반 바로 옆 반이라는데 부끄러워 서로 눈길을 주고받지 못했으니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풋풋하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리라. 흐음, 그 풋내가 그립다.  난 바다 빛 투피스 긴 생머리에 푸른 줄무늬 스카프로 머리띠를 하고 화장하지 않은 생 얼굴로 꽃시계 윗머리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저 파트너 좀 해주실래요?” 
“예?” 
“의예과 가든파티가 며칠 뒤 열리는데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조금 유들유들해 보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를 닮았다. 바람장이면서도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 사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신을 차려야지. 조금 쌀쌀하게 속삭이듯
“좀 생각해 보겠어예. 내일 말씀드리면 안될까예?” 

 지금의 박물관 건물 1층은 음악 감상실이었다. 틈만 나면 자욱한 연기 마시며 국문과 여섯 여학생은 날마다 붙어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여학생이 귀했고 모두 청순해 보이고 차갑고 예뻐서 경북대 캠퍼스의 신화적인 존재들이었다. "해변의 길손' '썅하이드 트위스트'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 에 취해 있을 때 그는 다시 찾아와 부탁을 했고 난 당연히 승낙을 했다. 매년 사월 의과대학 가든파티에 초대되어 간다는 것은 그 당시는 몰랐지만 대부분 여학생들이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행사였던 것이다. 

 양장점에서 라일락 꽃빛깔의 투피스를 맞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신기하다. 용돈이 넉넉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당장 옷을 준비했을까? 어쨌거나 그 날 밤은 라일락 향이 포크댄스 하는 이들에게 마약처럼 스며들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 후 클럽활동도 같이 하면서 자전거 하이킹, 우리 과수원에 데려다 사과 줍기도 시켰지만 그들의 바람기를 아는지라 늘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번 엎어지고 자빠져 보기도 했어야하는데 그에 대한 설렘을 속으로 꼭꼭 숨기며 태연한 척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거짓말이라고예? 아이라예. 언지예. 참말이라예”

 유월 언젠가는 대구에서 자인면 계남동 까막새 과수원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는데 과수원 탱자 울타리를 지나며 서로의 떨림을 감추느라 하늘이 맑다느니 쓸데없는 얘기만 큰소리로 나눴던 것 같다. 그 날 집에 도착해서 거울을 보았다. 볼 전체가 발그레해서 자신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스 신화 속 자아도취에 빠진 나르시스가 되어 거울 연못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 때 그 모습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어서 그 추억의 연못 속 파문이라도 지면 헝클어질까봐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 다음 해 여름 소나기 쏟아지는 밤 동신교를 말없이 걸었는데 비에 젖은 바람은 우산을 획! 나꿔채 가고 그래도 우산을 두 개 따로 쓰고 걸었으니 참 낭만은 어디로 소풍갔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게도 기찻길 따라 철로 위를 걷기도 했었지. 그러다가 여름 방학 비 오는 날 정말 뜨거운 그의 연애편지가 무서워 콩닥콩닥 뒤안에서 성냥불로 편지를 태우기도 했었으니.

 그렇게 흐지부지 세월의 책장만 넘겨버리고 그는 멀리 바닷가 병원으로 난 경주 월성중학교 국어 교사로 재임하는 동안 그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젊은 죽음이란 강한 방부제로 영원한 그리움이 되어 내 가슴에 저장이 되었으니 그 뒤 복사꽃 꽃다발 들고 ‘꽃말이 무엇인 줄 아느냐’ 며 찾아온 총각선생님 푸릇누릇 익어가는 보리밭을 그려주던 어느 화가의 애절한 눈빛에도 목석이 되어 무덤덤하게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 

  난 나 자신을 너무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 그 끝의 허무함을 알기에 속으로만 가슴 두근거리고 그 풋풋한 설렘의 꽃봉오리를 바라보는 것만 즐긴 것은 아닌가? 늘 정도만 지키려는 자신에 가끔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시 한편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첫사랑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그리움엔 유통기한이 없다는 김성덕 시인의 [첫사랑] 시 한 구절 생각하면서 삼국유사 연구반 덕에 기억 속에서 잊혀 진 동신교를 몇 십 년 만에 걸어본 기념으로 쓴 필자의 시 한편 올려본다.

 먼 먼 칠석날 눈물 머금고 흘러온 미리내 줄기, 흐르다가 애달븐 연인들의 가슴 소용돌이 풀지 못해 신천 웅덩이에서 맴만 돌고 있다네  땡그랑, 댕그랑,  물결 속 열사흘 달빛기둥 위 은종을 간절하게 치며 기도하면서

 그 흐느끼는 소리 듣고 자란 피라미들 뒤엉킨 은하수 전설을 풀어 무지갯빛 천을 짜고, 그 그리움을 내 청춘의 검고 긴 머릿결에 둘러주던 눈 시리도록 아린 첫사랑의 그림자!  너는 뭇 세월 견디느라 날금해진 푸른 동신교 아래서 누굴 기다리는가 

 그 여름날 천둥 비바람 가려주던 우리들의 청춘, 그 아련한 우산은 세월 따라 멀리 저 하늘 너머 날아가 버리고 없는데  [푸른 동신교 아래서, 전문]


[행복더하기 2012, 봄]


산사 김재홍 정년 기념 문집

혜화동 예인선의 유배지에서
                           시인 정 숙

1. 음모론

벌써?
그래, 박주일 선생님 생전 대구문학 아카데미 행사에서 뵌 지 20년은 족히 넘었으니 아쉽지만 정년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 때 잠깐 뵌 뒤부터 나의 열망은 시작 되었지. 멋모르고 91년도에 등단해버렸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꼭 시와 시학으로 등단해야겠다고. 그 서원을 세운 뒤 시가 이렇게 괴로운 물건이란 걸 처음 알았었지. 그 동안 연애에 빠져 가슴앓이도 못해 본 내가 목표가 생겨 행복하기도 했었지. 시집살이 속 찌지고 볶는 갈등에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지. 다른 길은 없었고 그냥 허기진 듯 쓰는 수밖에 없었어.  그 고통의 길이 쓸데없는, 참말로 어처구니없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달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었지. 드디어 [낡은 테이프]로 자신의 심연에 갇힌 앙금들을 헤집기 시작했고 좋은 인연을 만나고 대구 동아쇼핑에서 시상식이 있었지. 그 당시 감히 이름도 못 부르는 전국 훌륭한 시인 분들이 거의 대부분 대구로 모인 대단한 행사였지. 늦깎이라고 걱정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세상 매운 바람맛을 어느 정도 맛 본 40대였으니 그 恨이 오히려 깊이 있는 시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것도 모자라서 때론 김영임의 ‘아리랑‘을 듣고 또 들으며 시를 쓰기도 했으니. 

그 당시 만난 산사님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벌써 그렇게 온 몸과 마음을 바친 선생님의 세상이 바깥세상으로 유배시킬 음모를 꾸미다니! 그러나 제 씨앗을 깊이 품었다가 땅에 떨어뜨려 자생하도록, 새 삶을 찾도록 놓아주며 길을 내어주는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그 제자분들이 이 처럼 잔치를 베풀어 주시니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2. 프로가 되라

그 당시 잊혀 지지 않는 말씀은 ‘프로가 되라’ ‘문방구 아닌 한 가지 사물에 대한 모든 것을 갖춘 백화점 형태의 시를 써라’ 그 말씀은 시 쓰는 이십년 동안 한 번도 내 뇌리에서 떠난 적 없었지. 그 덕분에 모든 작품들이 연작으로 쓰였고 그렇게 하면서 한 가지 사물을 요모조모 각도를 달리 뜯어보면서 사유력이, 투시력이, 상상력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고은 시인이 ‘시는 만고의 역적이다’ 그 말씀 생각하면 참 지당하신 말씀인 것 같다. 사랑이란 기쁨이다. 명제하고 돌아서면 또 슬픔으로 보이기도 하니. 물론 아직 미숙하긴 하지만 죽을 때까지 매달려 보면 검은 진주알 하나 생겨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있어 내 생이 또 풍요로워지고. 쫒기 듯 십년 넘게 대구 문학 아카데미에서 시창작반을 맡고 청도 도서관 서부 도서관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 시 가르치기 또는 포엠토피아 포엠스쿨에서 현대시 강의를 한 일은 누구를 가르치기보다 시를 좀 더 알기 위해 프로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 것 같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이 먼저 깨닫고 그것을 중생에게 가르치라는 ‘상구보리’ 하화중생‘ 의 길 닦기 인 것을. 물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건방인 줄 알면서도 나의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했으니, 그 와중에도 거의 매일 시 한편 쓰지 않으면 허기가 졌으니. 소설 같은 시집 한 권 엮어보자는 뜻으로 시작한 ’신처용가‘ 첫 시집으로 너무 과감한 소재였었지.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로 하자니 발걸음이 주춤거릴 때 뒤에서 등 두드리며 용기를 주신 산사님을 어이 잊어버린단 말인가?  

마음 같아선 시학 교실에 들락거리고 싶었지만 시집살이에서 벗어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가끔 작품을 보내드리면 격려해주시고 경상도 말의 감칠맛을 살리는 ’안 그래예? 예? ‘ 이런 말의 조언을 주시고 신작시 특집에 실어주시고 지금 생각하면 많은 혜택을 받은 것 같지만 그 보답을 못해드렸지. 처용아내 다섯 편의 신작시 발표 후 반응이 너무 좋았지. 눈치가 없어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고 조 병화 선생님은 뵐 때 마다 어깨 툭, 툭, 치시며 ’정 숙은 계속 사투리로 나가라‘ 하시고 다른 분들은 시어 몇 부분에 대한 조언도 해주시고 오히려 그런 반응 때문에 다음 시를 쓰는데 많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시집 한 권을 경상도 사투리로, 연작시로 쓰는 일 저질러버렸으니. 사실 시집 사는 동안 시학교실에 가시는 분들이 무척 부러웠다. 복도 많은 사람들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했었는데 이제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어 대학원 가기보다 오히려 잘 된 일 같고 행복하다. 그 교실엔 미당도 보들레르도 살아 나타나 내 시의 창조적 상상력의 길 터주기도 하지만 김남조 고은 김후란 김지하 이가림 신달자 유안진 쟁쟁한 선생님들을 친구처럼 가까이서 자주 뵐 수 있으니 이 무슨 늦복에 횡재란 말인가.

3. 유배지

시인 이상은 이해하기 힘든 거울 속으로 금홍의 치맛자락으로 스스로 유배를 가고, 포은 후손 정철은 임금을 그리워하다가 기생 진옥의 골풀무 속으로 유배를 갔다지만 어쩜 산사님은 오래 전부터 자신을 가시 울타리에 위리안치 시킬 꿈을 꾸셨던 게지. 그 증거로 하나 뿐인 집을 현대시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지금 목천 선산에 ‘시의 집’ ‘시인의 집’을 준비하고 계시는 걸 보면. 지금 난 ‘유배시편’ 연작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런 유배지에서 거의 문학이 싹트고 후학을 키워 꽃피우고 했으니 이제 정말로 산사님이 하고 싶었던 일로 여생을 보내시며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셨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종종 내 유배시편에서 ‘지하철’‘ 혜화동 예인선‘ ’콘트라 베이스‘ 등 내 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해서 서로 너무 만만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산사님은 내 시의 정신적 멘토로 앞으로 내 시의 길을 가르쳐 주는 등대이기도 하니 정 숙 그댄 참 복도 많지 않은가?

좀 더 연륜이 흐르고 몸도 마음도 적당히 삭아서 ‘어이, 우리 차 한 잔 하세나!’ 하면 황토방에 모여 시도 나누고 남은 인생도 부담 없이 남자 여자 잊어버리고 그렇게 편한 벗이 되었으면 하는 게 내 건방진 바램이다. 끝으로 내‘유배시편’ 속 ‘혜화동 예인선’ 전문을 올려본다. 

혜화동 예인선
-유배시편 22


누구도 항구에 닿지 못하리 
수십만 톤의 전함도 가랑잎 쪽배도 
그가 없으면 

시학 뜨락 감나무 연푸른 파도 아래 서서 
시인들의 
바다부두로 길 이끌어주려고 

떨어지는 감꽃이 
댓잎 빗방울이 
하늘운판 쳐대는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시의 파도에 갇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그러나 세상이치를 실오리에 꿰어 목걸이 해주는 

그 남자 
어둔 세상 난바다의 예인선 같은 


내 시의 에스프리

 시란 저 괴물은 갈증이란 채찍으로 내 직관의 날갯죽지를 시시로 후려친다. 그 아픔이 고인 심연, 넋두리해가며 아무리 퍼내어도 끝은 보이지 않는데 목이 마르다. 
 유배시편 시집 정리 이후 부서지기 쉬운 세상의 모든 모래 성질들을 조명하여 뒤집어 보고 두드려 보고 있는 중이다. 그 중 가장 잘 변하는 것이 사랑이지만 다행히 그리움은 시간을 따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난 오늘도 그 줄을 잡고 낡은 감성을 날 세우며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즘 자살이란 독버섯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 시대, 사람의 한 생이 파리 목숨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그들의 연약한 꿈을 대신 노래하려고 굽은 등 꼿꼿이 펴본다. 넓은 오지랖 에 잡혀 밤을 꼬박 새기도 하지만 누가 내 시어 사이로 흐르는 얕은 그늘에 잠시 쉬어 가겠는가?
 그러니 갈증은 더욱 목을 조여와 내 시어 논바닥을 쩍쩍 갈라지게 하고 마음만 조급해진다. 어떤 화두를 잡고 늘어져야 하나? 어린 시절 외딴 과수원에서 식구들과 무료함을 달래주던 화투장 엉덩이를 찰싹! 세게 두드려본다. 후드득! 뭔가 떨어지긴 하는데 자세히 검정을 해봐야겠다. 우중 영감을 잡아야할지 힘 있는 쭉정이를 먹어야할지 [시와반시 2012, 5]







시가 흐르는 국토 여행 제 2부 

                          정 숙 

2012년 시와 시학 신춘문예 시상식과 출판기념회 

 봄비라고 하기엔 너무 빗방울이 굵다. 
초여름을 모셔 오느라 흘리는 바람의 땀방울인지 늦게 눈뜬 산벚나무 꽃송이들이 많이 아플 것 같다. 대구에선 이동순 선생님이 필자의 차를 운전하겠다고 자청하시니 반가워서 얼른 핸들을 놓아버린다. 이동순 시인은 시인으로는 선배님이시고 대학에서는 경북대 국문과 3년 후배님이시다. 방수복을 입어라 권유하기에 도로 뛰어 들어가 연두색 두꺼운 잠바를 걸친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꾸꿉하고 싸늘한 날씨다. 

  
 서울 팀은 안산 편운문학관을 둘러 오는 동안 우린 옥천 아우내 장터 순대 국밥집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잠시 편운 선생님 생전의  서울 팀은 안산 편운문학관을 둘러 오는 동안 우린 옥천 아우내 장터 순대 국밥집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돌아가시기 전 사무실에서 ‘통 식사를 할 수 없어요.’ 말씀 뒤 금방 잠이 드시던 마지막 모습과 편운 선생님 생전의 '정 숙 시인 그 휴화산이라예 시도 낭송도 너무 멋져요. 계속 사투리 시를 쓰세요.' 하시던 목소리 회상하는데 현불문 대경지회 자문 위원이신 해인스님은 며칠 전 목천 현대시 박물관 마당 장독대에서 손훈희 시인과 장을 담그던 일 얘기하신다. 대구에서 류영구 김미선 시인과 함께 필자도 같이 거들었던 날을 떠올려본다.

‘시 마을 예술촌 된장 맛이 궁금하군요. 김재홍 교수님이 이젠 차를 즐기며 품위를 지킬 위치인 것 같아 다기세트와 차탁을 준비했어요.’ 
 몽골과 외국을 다니면서 모은 고급 차와 그릇들인 것 같다. 방석까지도 몽골 손자수로 준비하시는 모양이다. 사월 마지막 빗줄기 점점 더 세게 숲의 봄 향기를 뿌리친다. 

 모처럼 참 호사스런 여행이다. 팔자에 없는 기사 노릇을 하시는 이동순 교수님은 한 3시간 걸리는 흐릿한 길 내내 우리나라 옛 가요에 얽힌 이야기와 그 노래를 들려주신다. 황성옛터의 왕평과 이애리수 얘기엔 눈물 글썽이며 같이 따라 부르며, 그러다 보니 빗길의 불안도 잊어버리고 솜사탕 같은 목소리에 점점 중독되어 간다. 오늘의 목적지와 가야하는 목적도 잊어버릴 번할 쯤 옥천 이정표가 보인다. 아우내 장터를 물어 도착하니 김재홍 교수님과 반가운 얼굴들이 우산을 쓰고 시장 구경을 하고 있었다. 

 유관순 언니 기념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찾기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18세에 사망한. 죽음을 무릅쓰고 먼저 깃대를 들고 나설 수 있는 그 용기의 비밀을 만나봐야지. 그리고 언제나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시로 입만 나불거리고 있는 나의 비겁함을 용서 빌어야지. 일본 헌병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유배지인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 이겨내려 이 악물고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돌아가신 그날도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 내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피 흘린 애국심 덕분에 우리가 이처럼 허세부리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깊이 감사드리며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언니를 생각합니다.’ 추억의 노래 부르며 유관순 생가를 둘러보고 목천 현대시 박물관에 드디어 도착한다. 홍살문 같은 솟을 대문에 전체적인 어울림으로 보아 관장님이 그 사이 많은 일을 하신 것 같다. 

비는 계속 내리고 마당은 질척거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시가 흐르는 국토 여행 첫 행사가 아주 성공적인 것 같다. 2012년 시와 시학 신춘문예 당선자 시상식과 문현미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를 겸했으니 이반 화가 방귀희 시인 김광규 시인 그 외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좁은 마당이 소란스럽다. 며칠 전 해인스님이 가져다 놓은 걸레가 제일 쓸모가 있다니! 그리고 고급 차와 다기들이 천안 다도 회원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어 반가웠다. 

빗물 젖은 마당 의자를 모두 닦고 행사를 시작했다. 구이람 시인의 사회로 시작하면서 먼저 이동순 시인의 색소폰 연주가 있었다. 이제 배우는 중이라 아코디온 보다 서툴렀지만 앵콜을 청하고 모두 노래 불러야한다고 박수를 치고 점점 흥겨워지고 있었다. 먼저 사진작가인 이해수씨가 등단한다니 참 다행한 일이다. 시인의 등단시인 하늘 불립문자(不立文字) 전문을 읽어본다. 


이 한밤 누가 늘어뜨려 놓는 검은 화선지냐 
하염없이 송이송이 내려오며 한 땀 한 땀 지상에 
새겨 놓는 저 무수한 하늘의 불립문자들 

끝내 화선지 허공에 새겨 놓지 못한 말씀들은 
땅으로 내려오면 담벼락 넝쿨나무에 
길바닥 발자국에 옥상에, 문지방에는 
촘촘히 희디흰 상형문자들 새겨 놓는구나 

그러고도 차마 하늘에 다 새기지 못한 사연이련가 
새벽에야 마음문 열고 세상을 빼꼼히 내다보니 
아, 저리도 온 천지 얼음 땅 하늘에 
그 누가 있어 희디흰 하늘 말씀 새기고 있는가 

눈부신 백지여, 하늘의 불립문자여 

그동안 긴 고뇌의 시간을 알기에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친다. 상 위에서 춤추며 부르는 그녀의 아파트가 그리워진다. 그 다음 반가운 일은 대구에서 또 한 분의 동지가 생긴다는 일이다. 심사에 참여하신 이동순 교수의 등단 시인의 작품에 대한 선정 이유를 밝히고 시인의 인사말 축축하고 추워서 그런 말들이 잘 들려오지 않지만 축하하는 마음은 한결같은데 아차!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았다. 임기응변으로 필자의 시든 얼굴을 내밀며 축하 꽃이라 너스레를 떠니 이반 화가님이 하, 하 호탕하게, 웃으신다. 시상 내용은 금반지에 현금까지 들어있으니 권순학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는 그 반지를 여러 사람에게 껴보라고 인심을 쓴다. 다음은 그의 시 

이제는 알 것 같다, 
밤이 까만 이유를 
첫새벽부터 달궈진 낮 
저녁엔 빨간 알몸 되었으니 
알몸 품은 밤, 그 몸 
가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이제는 알 것 같다 부분 [권순학]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마지막 순서로 문현미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가 시작된다. 백석대학 부총장님의 위력이 과시되는 순간이 부럽기만 하다. 특히 그 대학이 천안에 있어서 목천 박물관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니 귀하게 모셔야할 시인이라 박수를 더 힘껏 쳐본다. 
미인이고 시도 좋고 직장도 대단하니 앞으로 시인으로서의 확 트인 길에 미리 꽃잎을 뿌려야겠다. 다음은 문현미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 푸른 비밀 전문이다. 

새들은 돌아보지 않는다 

하늘 화폭에 
몸붓으로 묵화 한 점 남길 뿐 

아득하게 빛나는 여운의 은유 너머 
허공 몇 가닥이 힐끗 

끊어질 듯 이어지며 
바람 계단을 오르내리는 

저 내밀한 
무한 고요의 
빈 몸들 

 하늘을 바라보며 깨달음이 있는 시를 읽으며 문시인이 잡은 돼지 한 마리 먹으며 가만히 한숨을 내어쉰다. 아직도 하늘 아래 세속의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한 필자의 시안이 부끄러울 뿐이다. 올해 펴낸 필자의 시집 [유배시편]이 이미 그늘 속으로 숨어버린 것 같아 쓸쓸히 [안개꽃 흰 그늘] 졸시 한편 올리며 신인 두 분이 등단의 기쁨 오래 간직하길 빌며 다시 한 번 더 축하드린다. 

조용히 악보만 
넘기고 있는 그림자 

연주자에게 조명과 찬사를 돌려주기 위해 
있는 듯 없는 듯 

너는 누구를 위한 페이지 터너인가 

저 빛나는 주인공들을 위해 
스스로 흰 그늘이 되어 떨고 있는 너 

제 가슴 쓰다듬으며 
영혼 깊은데서 두드리는 통증 
그 페이지를 
밤마다 남몰래 몰래 넘긴다 

--유배 시편 48 안개꽃 흰 그늘 전문 

 김재홍 교수님의 유배지이기도 하지만 시인들 영혼의 안식처이자 유배지가 될 목천 시마을 예술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동안 이동순 교수님의 가요 사랑은 끝이 없으시다. 차분한 운전 솜씨로 빗길의 어둠과 불안을 떨어버리려는 안간힘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덕분에 무사 도착했으니 ‘감사합니다.’ 서로 정다운 합장 인사를 한다.












백지, 흰 어둠을 받쳐 들다 
         

왜 이리 무거운가
티 없이 맑은 이 한 목숨하늘이 

 잠 못 드는 밤 A4 용지 한 장에 동공 빛을 모으면 희디흰 뼈와 뼈 틈서리가 차츰 열리면서 검은 그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찢기고 짓이겨지는 고단한 한 생의 비명이 어둠속에서 어둠을 밟고 다가온다 저  하얀 눈부심 아래 얼마나 많은 눈빛이 젖어 빛나고 있는가

 젖은 그 무게 때문에 세상 그림자 하늘이 저리도 어두운가
어둡다 못해 오히려 희게 보이는가 

그 흰 그림자의 뼈마디가 저 어둔 눈빛 위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는가



 언제부턴가 인생길에서 떼어낼 수 없는 친구 되어버린 A4용지 한 장 들고 뚫어지게 바라본 적 있는가요? 
 시인은 직관력 훈련을 하다보면 무당처럼 헛것이 보이기도 하지요. 하얀 백지 뒤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생명체들이 보이면서 울고 있는 비명을 지르는 나무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그들이 우는 이유를 아픔을 들어주고 위로로 풀어주어야 그들도 시인도 잠을 편히 들 수 있으니 큰 병이 든 것은 사실이지요. 그래서 징을 치며 소지를 태웠지요.
 그랬더니 시 한 편이 태어났습니다. 어느 정도 만족스러워 혼자서 빙긋이 웃었습니다. 다시 징을 두드리며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시인의 줌렌즈[시안 2003년 봄호 19]  [케리커처 오태환]

마리 끌레르의 족발
           -정 숙           [글쓴이 이기윤시인]

1996년 연망이었던가. 어떤 시낭송회의 뒷풀이 자리에서 였다. 나는 그 때 그런 자리가 처음이었기에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겨우 한 모퉁이를 찾아앉아 슬금슬금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데 예의 사람들 소개가 벌써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별도로 없어 시학사 주지[?]를 겸한 K교수께서 한 사람씩 소개하고 있는 중에 혼자 열심히 족발을 뜯고 있는 여인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정 숙 시인이었다.

 마리 끌레르 상표가 붙은 까만 모자를 쓰고 사정없이 족발을 뜯고 있는 모습이 내가 본 첫 인상이었다. 금방 파리발 비행기에서 내린 듯한 프랑스풍의 모자와 까만 드레스, 그리고 머풀러를 우아한 분위기가, 사정없이 쏟아내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와 입에 물린 족발과는 오히려 묘한 언밸런스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허기였다. 끝없이 돋아나는 허기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원동력이라 했던가.

 드디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족발을 듣던 그 입술에서 축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다 같이 박수로 장단을 맞춰 흥이 오르자 율동이 뒤따랐다. 고개를 약간 들어 천정을 바라보고 몸을 양쪽으로 흔드는데 기울기가 거의 45도 각도에 이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또 다른 그녀의 허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대단한 세모의 한 밤이었다.

 그 후 나는 그녀가 처용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적 화자인 처용의 아내로 변신한 그녀는 밤이면 밤마다 허기를 불태우고 있었는데, 달빛 그득한 밤이면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심한 사투리로 혼자 중얼거리다가 방문을 박차고 나가 마당을 서성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기도 하였다.

 대구로 서울로 종횡무진을 일으키는 그녀의 바람이 사실은 시적허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아한 그 분위기 속에는 검은 상처의 블루스가 흘러넘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이기윤








사막의 낙타같은 시인

   --이기윤     [글쓴이 정 숙]

 현재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대령으로 한국 현대문학을 강의하는 시인 이기윤. 이 글을 쓰기 위해 일주일 이상 오지랖 넓은 처용아내의 그 뜨거운 수밀도 과원에서 요모조모 뜯어도 보고 그리워도 했는데 그의 숯껌정이 눈썹과 크고 검은 눈이 내 주위를 맴돌며 뭔가 말하려다 마는 그 모습이 무척 슬퍼 보인다. [누부야] 하다가 도 한 잔 취하면 [가시나야] 소리도 스스럼없이 하는 같은 경상도 문둥이기도 하다.

 그가 제복을 입은 모습을 본 이라면 한번쯤 가슴 설레지 않은 이 없을 것이다. 일찍 어머님을 여의고 누이가 많다는 자랑을 하면서도 몇 년 전 돌아가신 누이 얘기에 그의 눈빛이 젖어있는 근원을 짐작했지만 제복 속에 감춰진 인간미와 그 속에 갇힌 자유를 향한 갈증 때문인지 웃고 있어도 모래사막의 낙타처럼 눈이 늘 젖어 있는 속눈썹이 긴 시인, 자신의 높은 관과 긴 목을 낮추어 소탈하게 보이려 애쓰는 그에게 나는 종종 동질감을 느낀다. 우린 서로 가곡을 불러야만 속이 후련해진다는 것 외에 젊은 날 중절모에 지팡이와 망토를 걸치고 나서면 동네 아낙들 가슴 설레게 했던 친정 아버지의 이목구비와 닮았다는 착각도 종종  하기 때문이다. 

 첫 시집[자전거와 바퀴벌레]에서 자신이 길 하나 만들지 못하는 쓸모없는 발을 가진 바퀴벌레라고 자책하면서 추억의 빗살무늬에 자신을 가두어 끊임없이 자아의 존재론적 성찰을 거듭하던 시인은 이제 자신이 말라붙은 라면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다면서 얼큰한 우정이 담긴 국물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슬픔이 많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시를 쓸 수밖에. 은근히 가슴앓이 하는 사랑의 씨앗 몇 개 간직하고 있을 멋쟁이, 그는 언젠가 오천 도의 불길에도 녹지 않는 영롱한 사리 몇 알 남길 것을 확신한다. 이제 깊어가는 겨울밤 그의 구수한 입담을 안주 삼아 젓가락 장단에 명륜동 선술집 할머니의 노랫가락을 들을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의 고향 낙동 강변 어느 골짜기에 지금 그리움의 폭설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 정 숙





못 뽑힌 자국을 찾아서

 오월 열하루
 아카시아 향 스민 빗소리 싱그럽다. 오랜 가뭄에 내린 단비라 우산 준비 없이 대구에서 상경했지만 모처럼 삶의 쓴 맛 단맛을 다 맛본 어떤 노신사가 우산을 받쳐주는 꿈꿔본다. 연둣빛 빗물 받아 시학사 감나무가 새순과 꽃망울을 씻기는 시간 오후 여섯시 ‘남산 문학의 집’에서 一村 김종철 시인 시력 40주년 그리고 시학사 출판의 ‘못의 귀향’과 '못과 삶과 꿈‘ 시선집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김남조 선생님 김윤식 김종길 김후란 선생님을 비롯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귀한 시인님들이 빗길 마다않고 참석하신다. 

 이윽고 유자효시인의 사회로 영상을 통하여 김재홍 평론가님이 ‘못에 관한 명상 1’과 ‘등신불’ 등 영상시를 겸하여 김종철 시인의 작품성을 평가하시고 40년이란 긴 시간동안 작품성이 저평가되어 왔음을 지적하신다. 
 ‘문학수첩이란 자신의 출판사가 있고 ‘마법사 해리포터’ 전집 판권으로 돈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분인데 참 대단히 겸손한 분인가 봅니다.’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옆자리 앉아 계시던 서정춘 시인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 사이 김남조 김윤식 선생님의 축하 말씀 뒤 김종철 시인의 형님인 김종해[문학세계] 시인이 ‘새야, 항복캐라,  마 졌다 캐라! 그 시절 얘기를 다시 해주신다. 새야는 형아라는 구시한 경상도 사투리. 그러고 보니 그 당시 김종철시인은 대학 입학 전에 신춘문예 등단을 두 번하셨고 그 당시 이가림 서정춘 이근배 시인 모두 신춘문예 등단 팀들이라 더욱 우정이 돈독해 보인다. 평소에도 남자들의 그런 우정이 부러웠던 필자는 남녀 간에도 저런 끈끈한 우정이 존재할까 의문을 가지는데 신달자 시인의 비아그라 얘기에 나이 상관없이 그 가능성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비아그라가 처음 생겼을 때 미국 갔다 오면서 두 알을 선물했는데 몇 년 동안 간직하면서 여러 시인께 구경만 시켰다고 그래서 다른 분들은 새카맣게 때 끼어 그런 줄  모르고  
‘ 아, 비아그라는 원래 까만 색이구나’ 했다고 합니다.” 좌중은 훈훈한  정겨운 웃음바다 흐른다.
 
 마지막 김종철 시인의 한 마디가 오월의 푸름을 더욱 싱싱하게 일으켜 세운다.
“여러 선배님께 죄송합니다. 그 대신 이 자리에서 약속을 하겠습니다. 앞으로 원고료 많이 드리는 월간 문학지를 창간하여 여러분께 보답하겠습니다. 저의 집 사람 김봉자 여사가 당신 재산으로 하세요! 하는데 저는 김봉자씨가 제 재산입니다.” 와락 웃음보 터뜨린다. 유쾌 상쾌 통쾌 
 “ 사실 이 자리는 그것을 여러분 앞에서 약속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친구 김재홍 교수가 꼬드겨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걸 자랑하라 했는데 그렇게 큰 결심을 한 김종철 시인이 더욱 큰 산으로 보인다. 시인이란 게 자랑스럽기도 하다. 나중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호 一村이란 못을 말한다고

 편찮으시다던 이수익시인과 도종환 노향림 유재영 오세영 유안진 유성호 구명숙 김종회 김영탁 이화은 송문헌 및 전석홍 시와시학 동인회 회장님 윤범모 부회장님 등 여러 시학사 시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성황을 이룬다. 언제 저런 날 올 수 있을까? 꿈이나 꾸면서 시력 겨우 20년 되어 가는 필자는 한숨만 쉬며 또 다시 하행선에 몸을 싣는다. 가로등 불빛이 젖어 밤을 밝힌다.
 ‘그래, 젖어가면서 밤을 밝히는 이가 시인이지’
 ‘그것은 아마도 꿈을 가꾸고 있기 때문일 거야’ 김종철 시인의 ‘고백성사’를 다시 되새겨 본다.

 고백성사
-못에 관한 명사 1

오늘도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성사를 음미하며 필자는 또 오기를 부려본다. 못을 뽑아버리면 집이 무너지는데
그 못을 끌어안고 있어야,  예수처럼 못 박힌 채 견뎌야 푸근한 집이 생기는데 시 한편 구상하다 보니 그럭저럭 오늘 본전은 찾은 것 같아 발걸음 가벼워진다. 그 귀한 시선집 손수 사인해 보내주심에 깊이 감사드린다.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

 겁도 없이 시집 한 권을 경상도 방언으로 감히 ‘처용가’를 패러디한 연작시로 된 제 첫 시집 ‘신처용가’ 중 이 시는 특히 애착이 가고 많은 추억과 사연이 있는 시입니다. 사월, 정말 추적추적 봄비는 내리고 애들은 독서실에서 처용님은 술집에서 자정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시어머님은 편찮아 누워 계시고 그야말로 적막한 봄밤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대구 말씨의 감칠맛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안 그래예?’는 김재홍 평론가님이 ‘월경’ 대신 ‘서답’이란 예쁜 말은 오탁번 시인님이 신작특집으로 발표되고 난 뒤 조언을 주셔서 고마운 마음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명을 달리하신 편운 조병화 시인님이 이 시집을 아주 좋아하셨지요. 그 중에서도 이 시 낭송을 시학 행사에서 하고 돌아온 날 아침 일찍 전화를 주셔서 “ 정 숙씨 그 시도 좋고 낭송도 좋아요. 계속 사투리 시를 쓰세요.” 하시며 용기를 북돋우어 주셨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면서도 안산에서 행사가 있다고 그 행사에 참여하라고 새벽 일찍 전화 주시는데 안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시집 어른들께 허락 받기도 어려워 “선생님예 지는 못 갑니더” 하면서 선생님 살아생전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하고 겨우 올 봄 시학행사에서 처음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쓸쓸히 서 계시는 사진 속 모습에 사과 말씀드리면서 후회를 했지만 이미 지나간 봄날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슬프기도 한 작품입니다.








[시인의 산문]-잃어버린 금싸라기들을 찾아서 
 

                     
사랑하는 처용님
여자가 하필 왜 시를 쓰느냐고요? 글쎄요. 저도 처음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비싼 밥 먹고 왜 하느냐고 빈정대기도 했었지요. 그 죄 값으로 짙푸른 파도 출렁이는 동해 물빛 같은 시간 다 보내고 늦깎이 시인이 되었지만요. 잃어버린 그 금싸라기들을 다시 되돌려 찾기 위해 두 눈 혈안이 되었다고 할까요? 고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 숨어 절 기다리고 있더군요. 옛날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 그 본 모습을 드러내며 조곤조곤 온갖 얘기 꾸러미들을 풀어놓으니 어쩌겠어요. 도리 없이 받아 적어야지요. 그것들은 누렇게 찌든 낙엽, 탱자나무 가시, 오동 꽃과 돌멩이 속에도 깊은 바다가 파도치고 있다며 저를 꼬집고 다그치기도 하면서 무조건 발가벗고 헤엄을 치라고 꼬드기더군요. 전 거름지고 장에 따라가듯이 그냥 따라갔을 뿐이지요. 
그런데 산 넘어 산이고 강 건너 가시밭이고 같은 게들이 서로의 발 물고 늘어지듯이 잡아당기기도 하고 말씀으로 생살에 빗금을 긋기도 하면서 온갖 훼방을 놓긴 했지만 시는 제 밥이고 집이고 애인이었기에 또한 많은 위안을 주기도 했어요.
늦바람은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압력을 넣어 가슴 속 깊이 내재된 용암을 폭발시키고 말았어요. 전 그저 받아 적었을 뿐, 그런데 끝도 없이 밀고 나오더군요. 그것들을 새끼처럼 꼬아서 밧줄을 만들어 우물 속에 빠져 허우적이는 제 모습을 건져 올렸어요. 그것은 썩은 밧줄이 아니었던지 제 생명을 구했지요. 거듭 태어날 용기와 힘을 준 것이지요. 이젠 신기가 들었는지 눈도 귀도 말문도 열려 귀뚜라미들 웃는 소리도 들린다니까요. 
  사실 전 눈과 귀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잠자면서도 기다렸어요. 혹시 언제 찾아오실지 모르지만 그 님이 찾아오실 때 옷자락이라도 붙잡아 그 향기나 흔적 남기려고. 
시에서 겸손을 찾다 보면 긴장이 흩어지거나 내숭을 떠는 것처럼 보인다는 핑계로[사실 시는 행간에 많은 보석을 감추며 내숭떠는 일인데] 너무 시건방을 떨지나 않았는지 걱정이군요. 전나무가 키만 뻣뻣이 키워 거드름 피우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몸 어느 곳 약간만 눌러도 곧 눈물을 쏟아낸다는 얘기 들으셨나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더 긴장해야만 하는 뼈아픔도 우리 서로 다 아는 일 아닌가요?
  처용님, 당신이 아무리 말려도 전 오월의 장미 꽃잎이 하르르 지는 이유와 쓰라림을 그림으로 그릴 겁니다. 그리고 눈을 뜨고자, 말문을 열고자 하는 이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고 깊이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는 일이지요. 길에서 장미 가시에 찔린 바람이, 바람에 뺨맞은 가랑잎이 훌쩍이는 소리 들리는데 의리에 사는 토종 경상도 처용아내가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요. 말도 안 되지예. 그나저나 곧 벚꽃이 바람기 화들짝 피워내는 봄밤일 텐데 우야지예. 예? 서방님!
 
 














<나의 시, 이렇게 쓴다>

                                                                 


       중독은 달콤하다
                                         정 숙

1. 기둥서방을 찾아서


     이미 태어난 내 시들이 참 대견하다. 조용한 시간 곰곰 읽어보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새삼스럽기도 하고 매일 쓰지 않으면 괴롭기도 한 이것이 아무도 즐겨 읽어주지 않는데 왜 이렇게 매달려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일상이 되어 읽고 쓰고 쓸데없이 남의 글 간섭까지 하면서 한 단어를 넣어야 하나 빼버려야 하나  오물딱 조물딱 만지작거리는 것이 중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면서도 이처럼 정신 쏟아 부을 애인이 있다는 것이 또 행복 아니겠는가. 이제 숨기지도 않고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정신적 기둥서방이라고 할까? 종일 같이 뒹굴어도 질리지 않는, 물고 늘어지면 질수록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나는

2. 흰 소의 울음을 찾아

       그러나 그는 까다롭다. 아무 격식 갖추지 않아도 된다면서 또 어느 양반 댁 자손이라며 체험의 객관화 실감유리 묘사 상상력 등등 법도는 얼마나 찾는지 때론 미워서 버릴 작정도 하지만 죽도록 사랑한다며 울며 매달리기도 해서 모른 척 눈감아 주기도 한다. 아예 관심을 더 쏟아 붓기로 작정하여 가슴에 더욱 뜨겁게 품어 그의 밑바닥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내면 뿌리의 아픔과 슬픔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호~불어주며 다독인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이 보이면서 그의 참 모습을 만나게 된다. 가령 징 전시회를 하고 난 뒤 징을 가만히 두드려 보니 소리를 내는 징도 징을 두드리는 징채도 바로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것과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있는 징 울음소리 같은 시 한편 쓰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삶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또 곰곰 생각에 빠져 본다.



흰 소의 울음을 찾아
          
                                -바람 불다 65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을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낙엽까지 휩쓸어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단지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나를 울리고 있구나

    결국 시, 그는 깨달음의 길 찾기 아니겠는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올라갈 득도를 위한 마음 다스림은 멀고도 험한 길일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진실하게 살갑게 드러내기 위해 묘사가 있는 것인데 묘사에만 빠져 허우적대다가 물만 실컷 먹고 쓰러지는 짧은 사유가 안타깝기도 하다. 앉아서 누워서 찔러보다가 입맞춤하다가 욕도 하면서 가까이서 멀리서 바라보면서 끈적끈적 질기게 씹히는 건더기를 찾아 날마다 그의 고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더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꼬집는 말도 비꼬는 소리도 바람의 회초리에 몸을 맡긴다. 가슴 찢어지도록 실컷 두드려 맞아도 본다. 또한 나의 말도 웃음도 눈길도 상대방 가슴에 부딪는 징채가 될 것이므로 시, 짝사랑에 빠진 이들을 위해 기꺼이 징채가 되어 맑은 시안을 갖도록 아프게 두드린다. 그들의 울음소리 누군가의 심금 울리며 은은히 퍼져나갈 날 기다리며


3.다듬이질 


     그런 사유가 또 늘어지거나 곰팡이에 먹힐 수 있어 걱정이다. 요즘 수필 같은 긴장미 떨어진 작품이 유행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좀 더 많은 독자를 위해  코르셋을 풀어버릴까 고민도 해본다. 그러면서도 다듬이질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생명은 긴장미라면서 밤새 당기고 밟고 물을 뿜어 꼽꼽할 때 잠들지 못하도록 다시 두드린다. 한 낮 하얗게 표백이 되어 빨랫줄에서 주름살 하나 없이 헛기침이라도 하며 펄럭일 그를 위해 일주일 아니 한 달도 마다않고 다듬고 또 다시 다듬는다. 다 되었다고 넣어둔 것들 시집으로 묶을 때 제목도 다시 바꿔보고 사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새로운 시어 찾기에도 골몰하며 한 번 더 다독이며 다듬는다. 그래도 결국 후회만 남는다. 가슴이 아파 또 그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시, 그는 영원한 나의 고통의 바다이자 안식처이므로, 성냥 한 개비에 지나지 않는 날 뜨겁게 불 붙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이므로, 그 성냥 한 개비가 산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훨훨 타올라 허전한 누군가의 가슴 불붙일 수 있는 날 기다린다. 결국 나의 더 잘난 기둥서방 그를 위해 날마다 지치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가?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수박 겉핥기에서 그 뿌리의 속살과 실핏줄을 찾아가는 길

                           정 숙[처용아내]
1. 신기루를 찾아서

 한갓 신기루일 뿐인 시를 만나러 가는 길엔 이정표가 참 많기도 합니다. 처음 철없을 때는 용감하게 돈키호테처럼 칼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나를 따르라’ 호기 부리며 첫눈에 보인 길에서 넋두리 늘어놓으며 묘사의 말 등에 사정없이 채찍질을 했지요. 갇힌 생활 속에서 그런 상상력은 막힌 속 후련하게 틔워주었습니다. 그 용기로 태어난 것이 1996년 상재된 첫 시집 “신처용가”입니다.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 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자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꺾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깊도록 기잡 끼고 노다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웬 생트집? -처용아내 1 전문]

 지금부터 12년 전인데 뜻밖에도 처용아내의 넋두리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영남지방 문학의 특색인 내방가사를 닮아서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많은 박수를 받아 그 길이 정답이라며 만족할 뻔 했습니다. 

 전국 많은 행사에서 시극공연을 올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시 쓰기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겁도 없이 대구문학 아카데미에서 시를 가르치면서 무조건 말의 칼만 휘두를 것이 아니라 인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잘 길들여 요리를 맛깔스레 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려면 날카로운 관찰력과 시안詩眼이 사유가 깊어야한다고 현대시 이론이 속삭이더군요. 

2. 점점 묘사의 늪에 빠져들다 

 두 번 째 시집“위기의 꽃”에서는 시 한편마다 향가나 고려가요 한 구절과 접목시켜 보기도 했습니다.


옥황상제님 처용 색시캉 거시기 황감했던지/간밤에 비 흠뻑 내맀어예/
바람도 없이 봄비가 촉촉히, 아주 촉촉하게/가뭄에 쩍쩍 갈라졌던 논빼미 새로/
논고디가 타는 갈증을 적시디예/3년 과수 꼬장주도 젖어 신나게 쌕쌕카는데/
오래뜰 쓰는 싸리비의 휘파람 소리 흥겨버/추녀 끝 밀고 옆의 옆 홀아버니 댁 /
흙담 밑 홀아비좆을 사알살 간지리데예/ 봄비!/니, 니, 그 칼래?  /

-------정 둔 오날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만뎐춘]
__[봄비 전문]

*오래뜰; 대문앞의 뜰
*홀아비좆; 쟁기의 한마루의 위 멍엣줄이 닿는 곳에 가로 꿰어
           아래덧방을 누르는 작은 나무


 시라는 괴물의 몸을 파헤쳐가면서 묘사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또 들더군요. 묘사는 화려한 옷이라고 할까요? 그 옷 속에 진실된 깨달음의 알맹이가 들어 있어야 그 옷이 빛이 난다는 사실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집을 낸다는 것이 그래서 필요한 가 봅니다.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에 시를 쓴다는 험난한 여정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해 보는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사설이 너무 길었던 것입니다. 

3. 짧은 한 마디로 큰 뜻을 압축할 수는 없을까? 

 모든 사물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인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인 것입니다. 모든 사물이 말없이 법문을 하고 있는데 단지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장님이란 것입니다. 세 번째 시집[불의 눈빛]에 실린 두부라는 시, 저로서는 깨달음의 기쁨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내 업장도/ 자꾸 갈고 익히면 저리 *나스르르해지는가

얼마나 속이 더 문드러져야/ 누구에게나 *숫접은

살보시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가

*부드러워지다 *순박하고 진실한

-[‘두부’ 전문]

시인은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이라 생각한 적 있는데 그만큼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말을 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펄펄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신 난다’‘즐겁다’란 표현만하다가 어느 날  
 ‘저 눈발은 왜 강물로 뛰어 드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모두 올라가려고 그렇게 하늘 쳐다보며 간구하는데 눈송이는 이미 무엇을 깨달았기에 뛰어내리는 것일까요? 그건 시인마다 그 답이 다르겠지요. 돌부처가 천년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깨달음의 길이 힘든 길이라는 걸 표현해 본 것입니다. 

 세계적인 누드 챌리스트 나탈리 망세는 그야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오직 첼로 악기로 앞을 가린 채 연주하는 여자입니다. 허벅지 사이에서 연주당하는 악기가 마치 요즘 여성에게 꼼짝없이 잡혀 또는 잡히기를 좋아해서 연상의 여인을 찾는 세태로 보였습니다.  ‘21세기 유비쿼터스* 남자’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남성상이기도 합니다. 우주라는 소리 행간에 못 하나 박으려 발등의 실핏줄 터지도록 떨고 서 있는 그 남자 ‘콘트라베이스’도 일찍 실직 당하거나 당하지 않기 위해 밤낮 떨어야 하는 고단한 현대 남성을 보여주려 노력한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남녀평등으로 사회적 지위가 강해진 만큼 여성의 고단함도 배가한 것입니다. 안방에서 가정만 지키면 되었는데 이젠 생계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심해진 것이기에 에스컬레이트 뒤 살기 위해 수많은 바퀴를 굴리고 있는 여성 숙명의 모습을 바라본 것입니다.

노를 멈추면 당장 밥그릇이 고픈
나룻배, 
21세기 바람닻줄에 멱살 잡힌 저 여자

--[‘에스컬레이터를 노래함’ 전문]

4. 자연 속에서 법문을 듣다

 모든 사물의 근원을 찾다가 보니 불교적인 깨달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예로 고드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다리를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높음도 낮음도 다 하나로 평등하기에 그 틈을 이어 주려 자신의 욕망을 녹이고 있는 연꽃길 즉 깨달음의 길을 찾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처마 끝 고드름이 하늘과 험한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길 발원하며,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해 산목숨의 죄 값인 三毒독 三捉착의 결정체를 모두 녹여 내린다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의 지혜를 구하고 닦는 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는 일
--[연꽃길 찾아서 전문]
 이상으로 자신의 시에 대한 해설 아니면 변명인지 쓰다 보니 아직 시의 발목을 잡지 못하고 건방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더 말을 아끼면서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지장수 한 모금을 위해 더 시건방지게 달려갈 것입니다. [2008,녹야원]





[특집] 시인을 만나다 - 정숙 시인 편

제목 “흰 소의 울음을 찾아“

‘이 가슴속엔예 아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팔할지 지도 몰라예...
그래도 지는 살랑 살랑 부는 봄바람 이라 예....‘
그 열정과 넘치는 끼를 온몸으로 때론 봄바람처럼 시로 풀어내시는 풍류인 정숙시인님!
“징이 울리는 ‘징한 소리’는 징채가 아니라 징인 나한테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자리를 일어설 때 까지 내담 객들에게 행복을 대바구니 철철 넘치게 담아주고 처용의 아내가 역병을 끌어안고 바람을 피웠듯 자신의 운명에 간 크게 다가왔던 시를 안고 질펀하게 바람피운 이야기들, 천년을 오가며 시간여행을 시켜주었던 시인 정숙시인님과 함께 시간(詩干)열차를 타고 길을 나서보기로 한다. 

서둘러 여름비가 ‘도솔천’을 적시는데 밤불을 훤히 밝힌 주막엔 술상들이 오가는 사이 
초대시인 정숙 시인님이 대구의 정하해, 장혜승 두 시인님과 함께 도솔천으로 들어오셨다. 
첫 대면 상견례라 하지만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흰 베레모에 중년의 멋진 여성시인이었다. 미리 글 소식으로 나눈 마음들이라 함께 참석한 분들 모두가 반갑게 건배주를 돌리며 시작된 정숙시인님과의 만남은 천년고도 경주의 도솔마을이라는 토속음식점에서다.

♦ 선생님께서는 경북 지역에서 태어나셨고, 현재까지 이 지역을 떠나지 않으신 채 활동하고 계신 줄 압니다. 또한, 경북대학 국문학과 출신이신 데다가 직장까지 여기 경주의 월성중학교에서 재직하셨던 경험도 계신데 이러한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살아오신 환경에 대해 어떤 감회가 남아계신지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국문학을 특별히 공부 해야겠다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저는 경산군 자인면에서 과수원집 셋째 딸로 자랐어요. 그 당시 과수원 속 언덕 길, 원두막, 찔레, 장미, 냇물 등 집 주변 환경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특히 내 기억으로 아버지께서는 참 부지런하셨던 것 같아요. 화단이며 과수원들 아버지 손에는 무엇이든 만지면  멋있게 되었던 같았어요. 여름이면 포플러 잎들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들, 키 큰 귀리들, 코스모스, 홍수지면 냇물에서 하는 피리 낚시며, 겨울엔 사냥총을 들고 개를 몰고 나갔던 사냥의 기억, 저녁 무렵 노을 속에 소 풀 뜯어먹는 소리와 새벽길 들국화 꽃잎에 앉았던 이슬들... 이 모든 사실들을 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지요.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서 노래 밖에 부를 수 없었어요. 돼지 뭐하는 소리로 말이죠. 외딴 곳이니까 마음껏 부르기도 했지요. 그런 습관이 남았는지 시집살이를 하는 중에도 슬프거나 기쁘거나 부엌에서 장독간에서 그냥 흥얼거리는 소프라노를 한 곳씩 뽑아내기도 했지요. 
실은 그런 것보다 아마 아버지께서 절 은근히 글 쓰는 사람 쪽으로 부담을 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인 출신 소설가 전숙희 얘길 하시면서 아마도 제가 구석에 숨은 『사상계』나 신문, 책, 있는 대로 끄집어내어 읽는 걸 보고 당신께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를 일이죠. 아무튼 말없이 어딜 가도 전 읽기만 했으니까요. 친구도 없이 자라면서, 마거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은 다음, 평생 소설 딱 한 권만 쓰자고 의지를 굳히지도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기대가 부담스러워 오히려 글을 더 쓰지 않았어요. 
 대학을 전공하고도 묻혀두었던 문학의 꿈은 확실히 배우지 않고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집살이 15년 뒤에서야 대구문학 아카데미에서 박주일 시인을 만나면서 시(詩)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시고 경주에서 월성중학교에 제직하시다가 그만두셨는데 어떤 이유라도 있습니까?

♢요즘 같으면 참 좋은 직장을 누가 그만 두겠습니까만 그 당시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추세였지요. 특히 제 남편은 사대부 유교집안에 삼대독자 아버지에 6남매의 장남이라 더욱 그래야 했지요.

♦선생님은 그런 삼십년 동안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훌륭한 가정을 꾸미시고 수 세월을 묵혀 두었던 문학의 꿈을 내안에서 끄집어내고 귀한 시들을 만나 발표하게 되었는지요? 

♢삼대독자 시아버지에 6남매의 맏며느리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지요. 거기다가 시할머니 층층시부모까지 뫼셨다고 생각하면 참 내 자신도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가장 힘 드는 일이었듯이 저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도 한 때는 화병이 났을 정도로 힘 드는 시기가 있었지요. 그러나 그냥 웃었지요. 제 성격으로 그걸 끌어안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 귀머거리삼년 벙어리삼년을 실천하는 것이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에 대한 책임이라고 알고 뭐든지 수용하고 사랑하고 억지라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그 파장이 참 컸던 것 같아요. 내가 행복해지니 온 집안이 살아나고 결국 내가 건강하게 잘 사는 비결이었지요. 내 시에 등장하는 처용 아내가 화병과 연애하는 묘사가 잠재한 나의 내성에서 나온 건지도 모르지요. 물론 다른 의도도 있지만요. 그런 가운데 아이들도 크고 내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내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나를 그냥두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어릴 때 꿈꿔왔던 소설을 써야겠다고 찾아간 것이 대구문학 아카데미고 소설을 쓰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우연히 신경림  시인의 ‘갈대‘라는 시를 읽고 이리 짧은 시 한편이 소설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의 꿈을 바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셨지만 뒤늦게 시작한 시공부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더욱이 가정주부로서 시 작업 하시면서 첫 시집<신처용가>을 내기까지의 어떤 일들이 있었고 시의 세계는 어떻게 구축하셨는지요?

♢그래요.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지요.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하지만 다시 뒤늦게 시작 한 시 공부라 많은 어려움과 서러움도 있었어요. 어렵게 등단이라는 것을 해보니 더욱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썼지요. 그러다가 시와시학사 주간이신 김재홍 교수님께서 조그만 문방구가 아닌 백화 점 같은 시집을 내려면 연작시를 써야 한다고 깨우쳐 주셨지요. 그러다 보니 한 가지를 깊이,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 습성이 생겼어요.
먼저 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은 일이며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짧은 한 생애,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 이런 화두들이 나를 재창조하고 새롭게 정의내리면서  시인은 모든 창조주가 될 수 있다는 자긍심이 마음에 신풍을 넣었지요.
처음에는 내 안에 어떤 울분이 ‘때밀이의 일기’같은 정치적 연작시를 많이 쓰고 있었는데 어느 잡지에 발표된 시에 처용의 아내를 화냥년이라는 표현을 해놓은 것을 보면서 같은 여자로써 처용의 아내를 내가 살려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처용가>를 쓰기 시작했어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해서 처용아내의 넋두리로 처용가를 패러디하게 되었어요. 기존사고관념에 대한 반발성이나 자신의 눈으로 정의 내려 보려는 자세 같은 것이 끊임없이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려나갔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 처용의 자료를 찾고 서원섭교수의 처용가 해석이 기억에 남았는데 그 처용과 아내의 연관성을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내가 처용의 아내가 되어 요즘 세태를 풍자해 보고자 했던 것이지요.
처용이 열병에 걸려 누워있는 아내를 보면서 역신과 바람피우는 것으로 보는 대단한 시인이라는 생각에 그것이 나의 역상(易想)을 낳게 했고 당시 유행 했던 간 큰 남자 시리즈나 경상도 사람들의 특유의 삶을 풍자하면서 90년대 개구리 소녀. 휴거, 등 우리시대 삶을 내 시 속에다 응축시켰지요.
특히 저의 아버지의 고향이 월성군인데 처용이 태어난 곳과 가깝기도 하지요. 어릴 때 기억으로 고모부님이 두 분 계셨는데 정말 한량이었어요. 아마 그분들의 억양이나 모습들이 내 시에 많은 영향도 주었던 것 같아요.
그 동안 시집살이 하면서 내 안에 응축 되었던 답답한 가슴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 속이 후련했어요. 

♦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은 신이지만 상당히 인격을 갖추고 있는 남성우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에는 여성을 옹호하는 남녀평등의 시각에서 시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신처용가>가 그런 의도에서 시작된 시집들이라면 좀더 구체적인 의도성의 설명을 해 주시고 선생님께서는 신라시대 성(性)에 대한 가치관은 어떻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신처용가>에 무대는 신라 처용의 헌강왕 시절과 90년대 전후를 배경을 오가며 쓴 시들인데 당시 삼국통일이 끝나고 태평성대시절이라 감포 거리(월궁카바레)에 풍악이 넘치면서 여자들 허리춤에서 놀아나며 남자들이 칼을 내려놓은 풍경이 요즘 시대 고개 숙인 남자들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보여 지는 세태가 비슷하게 느껴졌지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칼이 무뎌지면 나라를 침범 당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긴장을 버린 탓에 남성적 권위가 떨어지고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간 큰 남자 시리즈 과정을 작품을 통해 훑어본 거지요. 그리고 시에 악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대부분 성적인 묘사를 이미지화 하고 있어요. 가야금의 12현을 여자의 몸으로 대금의 소리가 갖는 색시함과 아쟁의 소리는 여자의 잔소리로 해금소리는 남자들 바람피우는 내용 등으로 나타냈지요. 
처용아내가 장구 잡이를 찾아가서 춤추는 장면은 바람피우는 장면을 연상하게 되는데 저의생각으로도 당시의 신라시대는 성이 자유로웠을 것이라 봅니다. 
그 당시 처용아내는 바람피웠을 가능성도 많지만 저로선 현대적인 처용 아내를 말하는 겁니다. 바람을 피웠더라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걸 따져본 거지요.
이 시들을 쓰는 동안에 정말 신이 났어요.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내게로 다가왔거든요. 

♦<신처용가>가 한국낭송문학회 창작시극 <신처용가>(부제; ‘봄날은 간다’)를 공연했는데 시극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언젠가 대구문협회장 문무학 선생의 모친 상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시 이병훈 회장은 시극 극본을 찾고 계시던 중이었고, 나도 언제라도 시극을 한 번 근사하게 공연해 보고 싶은 꿈이 있던 참이었습니다. 서로 딱 맞아 떨어진 거지요. 25분간의 창작시극무대였는데 정말 화려하게 연출되었어요. 이병훈 회장님이 사비를 들여 공연한 셈이지요. 아주 반응도 좋았고 연극 무대에까지 올리고 싶어 할 정도였지요. 제 시들이 거의 연작시 라 시극 극본이 된 것이 많습니다.

♦ 선생님의 시를 보면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를 많이 구사하고 있습니다. 사투리를 구사하는 시인들이 많지만 특히 평안도 방언을 많이 썼던 백석 시인의 영향이 보이지 않나 저대론 생각되는데요. 선생님의 시 ‘봄바람을 위한 소네트’에서는 ‘두레밥상’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백석 시의 ‘비’에서 보면 ‘누가 아카시아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디선가 물비린내가 난다.’라는 이와 유사한 표현을 볼 수 있거든요?

♢ 작품을 쓸 때만해도 저는 백석시인에 대해서 알지 못한 때라 백석시를 보지 못했어요. ‘두레밥상’은, ‘두레상’이라고 경상도에서는 많이 쓰는 방언이지요. 그래서 사용했지요. 시의 배경이 신라 시대 지역적으로 경주이기에 지역 방언을 사용했고 사투리는 당시 경주가 나라의 중심인 만큼 표준어라 생각하며 그 당시 삶의 현장성을 더욱 실감나게 나타내려고 의도 했지요. 내 입장엔 소설 같은 연작시를 쓰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영남지방에 내방가사의 맥을 이었다고 가사문학을 연구하시는 김주곤 교수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때 쓰여 진 방언들이 김재홍 평론가님의 시어사전에 많이 들어갔지요. 오탁번 선생님이 ‘휴화산이라예’에 쓰인 ‘기생‘이라는 단어를 보시고 기생은 조선시대에 등장한 단어라며 그 당시는 기생이 아니라 ’기집’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신적도 있을 만큼 방언을 시로 승화시킨 획기적 사건이었지요.
내가 어느 장소에서 시낭송을 했는데 송수권 시인님이 ‘전라도 사투리만 창이 되는 줄 알았는데 경상도 사투리도 창이 되네.’ 하시던 기억도 나네요.

♦ 근래 생물학적인 성(性)으로 인한 모든 차별을 부정하며 남녀평등을 지지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신념에 근거해서 일체의 불평등하게 부여된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여성운동을 흔히 ‘페미니즘’에 포함시키고들 있는 가 봅니다. 이같이 여성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운동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페미니즘’이 1890년대부터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나 관점, 세계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성운동적인 페미니즘의 사고가치를 선생님의 시 속에도 적지 않게 의도하고 있다고도 느껴지는데,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신처용가>에는 등장하는 남성은 명분만 있는 칼이었다면 후반부는 칼을 버린 무능한 남성의 상징으로, 그리고 <향피리>는 남자들의 삶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고 보여 지는데 이런 남성의 세계를 두개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경계인으로서의 느낌은 어떠했고 어떤 의도성을 기자고 쓰셨는지요? 

♢ 저는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릅니다만 유교적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성의 균형을 누구 보다 민감하게 생각하는데 성 차별성을 없애고 인간성 회복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썼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남성이 아니라서 시각의 한계성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시대에 걸 맞는 환경에서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기(氣)가 드세어지고 남자가 칼을 버린 뒤 여성이 ‘손톱칼’을 갈고 있다는 풍자와 해학이지요. 저는 가정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어요. 물론 여성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 연관성이 있지요. 

♦선생님은 신작 시리즈로 ‘향피리’를 연작하셨는데 ‘향피리’에 대한 특별한 창작 동기라도 있습니까?  이어『위기의 꽃』이나 『불의 눈빛』등 시집을 내셨는데, 첫 시집과 연관성을 가지고 계시는지 아니면 각각의 의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요?

 ♢<신처용가>시집 이후에 갑자기 많이 알려졌지만 인기에 연연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향피리’는 2000년 『현대시학』에 ‘신작 소시집’편으로 발표되기도 했는데 <신처용가>는 좀 거친 말투로 꾸짖는 풍이었다면 ‘향피리’는 IMF로 실추된 남성의 권위를 부드럽게 속삭이듯 어루만지는 내용입니다. 
 그 후 좀더 심도 있는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졌어요. 『위기의 꽃』은 현대시적 형식에 향가나 고려가요, 가사문학을 접목시켜 국문학과 출신으로서의 제 특성을 살려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불의 눈빛』은 ‘깨달음’, ‘참여성’, ‘묘사 위주’, ‘나의 가정사’ 등을 주제를 다루고 잇는데 여성 평등이란 명목이 사실 여성에겐 고단한 삶이지요. 가정생활을 돌보는 것은 여자의 몫이고 또한 사회적 지위나 차별을 받으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이중적 잣대가 아직 여성 권리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런 여성의 여러 모습을 『불의 눈빛』에서 다루었습니다. 특히 『불의 눈빛』은 시 공부 하시는 분들을 위해 묘사의 시 또는 깨달음의 시 등등 시의 여러 가지 모습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딱 한 분이 그걸 알아보고 말해 주더군요. 시인이고 소설가로 갓 등단한 정한희라는 분인데 <불의 눈빛>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교본이 되는 시집이라고요. 정말 반가웠어요.


♦ 시집 『위기의 꽃』에서는 고려가요의 후렴구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의 내용과 후렴구와 어떠한 연관성은 있는지요. 실제로 고려가요 후렴구가 가진 형식적 기능만 가지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 ‘봄밤’의 경우는 남녀상열지사라는 시집 전체의 주제와 연관해볼 때 그러한 의미가 잘 드러나는 시이지만, 끝부분에 있는 ‘정과정곡’의 한 부분은 ‘님이 나를 하마 니즈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드르샤 괴오셔서’ 같은 부분의 의미를 지닌 시행을 그래도 인용한 것은 어떤 의도인지 궁금합니다. 

♢ ‘하마 니즈시니잇가’란 뜻이 ‘벌써 잊었느냐’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봄밤’, 그 자체가 벌써 덧없게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아닐 런지요. 그런 의미에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용적으로 ‘봄밤’이란 작품과 인용한 옛 싯구절 사이에는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여, 고전문학에 대한 관심, 특히 잃어버린 옛 단어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이 저에겐 있는데요, 탈고할 때, 같은 뜻을 지닌 말이라고 할지라도, 사장된 옛 우리말 중에서 적절한 것이 없을까 늘 찾곤 합니다.

           
♦ 덧붙여, 선생님의 요즘 시 쓰기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까?

♢ 지금은 ‘바람다비’ ‘아름다운 법문’ ‘성냥불’ 시리즈로 좀 더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내면을 몇 겹 벗겨보고 뿌리를 찾아 그 원형과 본질을 찾아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려 합니다. 좀 더 짧은 시로 (요즘 수필 같은 시에 대한 반발로) 긴장미와 함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벚꽃이 피었을 때 아름답다. 라고 경탄만 하다가 어느 날 그 꽃송이들이 뿌리의 땀방울로 보이기 시작했지요. 고드름이 하늘과 땅의 거리를 좁혀주는 다리 역할을 하려고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보이는 겁니다.  

♦요즘 시들이 묘사로만 머물러 시가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시는 묘사에만 끝이 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는 방법일 수는 있으나 끝내는 어떤 공통점을 찾아 공감을 줄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묘사를 잘하려면 직관력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사물에 대한 추억이나 경험의 재생을 위한 재생력상상과  이미지 묘사 즉 비유적 표현을 찾아내는 생산적 상상인 연상 상상력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자기만의 새로운 체계를 갖춘 창조적 상상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기도 합니다. 2000년 대구 모 신문에  당선작인 ’의자‘라는 시에서 보면 의자는 흉측한 짐승이다‘라는 묘사가 나옵니다. 단순한 의자를 생존의 관계를 위해 자리다툼 하는 짐승으로 본 시각이 신선한 상상력이라 볼 수 있겠지요. 어떻게 보면 시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면서 사고를 많이 해야 된다고 봅니다.
학창시절부터 철학을 좋아했고 소설을 쓰려고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시 쓰는데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 쓰는 일은 자기 감각을 키우는 훈련이 많이 필요한데 다양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건방진 생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깨닫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도자의 자세가 필요하지요.
요즘 발표되는 어떤 시들은 상상력은 기발한데 무언가 메시지가 없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시들이 있어 안타깝지요.   

♦ 선생님께서는 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하신 후, 현재 대구문학아카데미 시 창작반 현대시 강의와 특히 요즘은 인터넷 ‘포엠토피아’에서 ‘포엠스쿨 정숙 반’ 운영도 하고 계시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인터넷 보급으로 인한 시의 확산이 엿보이고, 이런 움직임이 새로운 문학의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인터넷을 통한 문학의 확산이 시의 수준을 낮춘다는 견해도 있고 오히려 다양한 문학 소비가 문학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도 하는데, 거기에 따른 장단점이 있을 텐데 선생님은 어떤 견해를 가지시는지요? 

♢ 일부 인터넷에서 무작정 시인을 늘리려고 사업을 하는 단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정말 시 한편 옳게 쓰고 싶어 밤잠을 설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등불이 될 수 있다면 길잡이가 될 수 있어 즐겁기도 합니다.

♦ 시를 공부하려고 하는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시고, 특히 선생님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 여성시인들을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까?

♢ 시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는 자세가 되어야한다고 봅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야지 정말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 있는 시 한편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늘 “이를 악물어라!”고 얘기합니다. 사실 여성이 자신의 작품을 옳게 평가받기도 어려운 현실이지요. 온갖 구설수가 나돌기 십상입니다. 조금 이름이 나면 온갖 루머가 떠돌기도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작품이 옳지 않으면 아무 것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만의 색깔 있는 시를 찾으려 온갖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도 아직 초보자란 생각으로 늘 노력하는 자세로 시를 쓸 것입니다.영원히 남을 시 한 편을 위해

♦ 미래사회는 정보화·다원화·국제화·인간화되어가는 사회라고 합니다. 특히 'dream society', 즉 인간의 꿈과 감성적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미래사회의 선진국의 척도라 합니다. 이러한 사회에 가장 요청되는 것이 순수 문학적 감성과 예술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생님 같은 인간 근본의 내면과 순수성을 건져내어 사람들의 감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분들이 미래에 가장 대접받고 존경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문학을 선생님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하시고 또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때로 독자를 위한 시를 쓸 것인지, 아니면 더 함축된 깊이 있는 시를 쓸 것인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시는 일반 독자를 위해 더 쉽게 쓰려고 노력하기도 하는데 시안(詩眼), 직관력, 상상력, 묘사력 훈련을 거듭하여 자기 몸속에, 또 마음속에 ‘징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겠지요. 한번은 징 전시회에서 참여했는데 그 징을 하나 집에 사다놓고 밤새 그 징을 두르기며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만져보면서 느꼈던 것이  ‘징’은 자신이기도 하고, 또 ‘바람’이랄 수도 있는 ‘상대방의 말’이 또한 ‘징채’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을 속에서 잘 삭여 떨림이 큰, 울림이 있는 ‘징소리’를 한 번 울려야겠지요. 그러기 위해 계속 쓰고 생각하고 따져 보고 죽음의 소리까지 들을 것입니다. 
저는 보통 일주일에 한 두 편의 시를 쓰려고 애씁니다.
시인은 매일 시 쓰는 감각을 갈아야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무뎌지지 않는다고 봐요. 풀을 베려면 숫돌에 낫을 갈 듯이 말이지요.
다작을 하다보니 아직 발표하지 않은 연작시가 많이 밀려있어요. 
이것저것 정리를 여러분들에게 또 다른 정숙의 시세계로 초대하는 시집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리고 뒤늦게 멋진 로맨스를 만들어 볼까도 생각중인데...(웃음)

♦ 그래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열어주신 선생님의 시세계를 성심껏 정리해서 가을호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내객들 모두가 멋진 로맨스를 만들어 보기로 하고 선생님의 시간(時干)열차의 여행을 마치고 아쉬운 자리를 일어서는데
문밖 처마 밑에서 깨금발 딛고 내내 기웃거리며 우리들 이야기를 듣던 낙숫물도 돌아갔는지 담장에 기댄 능소화가 불그레 웃으며 작별인사를 대신 한다.
반가운 인연에 다시 만나자며 손 한 번씩 꼭꼭 잡으며 어여들 가라며 떠나는 모습은 어머니 모습처럼 아쉬웠다.[주변인의 시 대담]
 



















윤관영의 어쩌다, 내가 예쁜

-----정 숙 [시인]


 청국장 맛 같은 어눌한 시어를 찾아 쓰면서도 그의 묘사력은 세련되어 있으며 시안이 깊다. 시인은 상상력이나 직관력 기르는데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는 첫 시집이지만 이미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것은 자신의 시어를 구수하게 때론 날카롭게 벼리고 발효시키기 위해 많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싹은 들어간 데서/ 몸의 약한 고리에서 터져나온다/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솟는 줄기/ 어떻게 흔적도 없이 구멍에서 솟는가/[‘감자’ 부분] 냇물 소리도 고요에 눌려 납작하다[‘시월의 고요’ 부분] 물고기 배를 때린 바람의 등이 보인다[‘풍경을 보면’ 부분]
 또한 화려한 묘사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유가 깊어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그의 눈길이 머무는 것은 거의 무심히 흘리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다. 고구마, 감자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픔을 감싸 안을 줄 아는 정겨움이 있다. 






2010년 가을 문예 시상식 및 김미숙, 김추인 시인의 출판기념식 

 정 숙 

 그 무덥던 여름 어느새 다 지나간 것인가? 가을 문예란 말 중에서도 가을이란 단어가 가슴 밑바닥 서늘하게 하면서 구월이 가는 소리에 새삼 귀 기울이게 한다. 사십대 신인상으로 등단하던 그 시절, 세상을 품에 안은 듯 두근거리던 떨림을 돌이켜보는데 마산 mbc 방송국 피디 김일태 시인이 혜화동 로터리에서 부른다. 반갑다. 아직도 시골 소년 같은 웃음으로 시학 계간지 20주년 출판 기념행사 장소를 ‘문학의 집’으로 정하기 위해 일찍 올라왔다고 한다. 현대시 박물관 이층에서 몇 분이 모여 20주년기념행사를 어떻게 의미 있게 치를 것인가와 그 날 행사와 시학 동인회 출판기념회를 겸하자는 의논을 하고 내려오니 벌써 김후란 시인이 도착하셔서 전시품을 돌아보고 계셨다. 뵐 때마다 참 단정하시다는 느낌인데 그 연세에도 거의 샤넬라인의 치마를 입으시고 자세가 아주 바르고 꼿꼿하시다. 
“선생님 항상 날씬하시고 건강해 보이시는데 운동은 무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많이 걷고 움직이지요. 체중이야 옛날엔 이보다 정말 가벼웠는데...” 
미소 지으시는 모습이 아직도 소녀의 수줍음을 간직하고 계신다. 고 박주일 시인이 자주 김후란 시인 인물도 시도 대단하다고 하시던 말씀 떠올리며 선생님 연세를 여쭈니 살짝 피하신다. 주책, 주책 또 실례를 범하고 만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 사이 김재홍 관장님을 위시하여 많은 분들이 들어오신다. 행사 때마다 거의 빠짐없으시던 김남조 선생님과 유안진 신달자 선생님이 요즘 참석하시지 않아 섭섭하다. 시집살이 핑계 삼아 필자는 늘 뒷전에서 부러워하며 참석하지도 못하던 시절 정말 열심히 그 먼 전라도에서 오르내리던 시학 동인 복효근 시인, 시와 시학 동인은 아니지만 시학사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친 이화은 시인 등 몇 분은 이미 유명한 시인이 되어 그런지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립다는 감회에 젖는데 김재홍 교수님이 내빈 소개를 시작 하신다. 

 이윽고 “‘시와 법’은 지극히 낯선 주제이면서도, 시가 어떤 한 사물을 향해 명쾌하고 명료한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본질을 향해 정제된 언어로 깊이 파고든다는 것과  어떤 죄된 행위를 향해 엄밀하고 간결하고 정확한 법의 용어로 판단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 둘 사이에는 방법론적인 유사성이 있다.” 는 지론을 펴시는 김진환 시인 변호사님의 인사 말씀에 이어 예쁜 이 제인 시인의 느린듯하면서 또박또박한 말솜씨로 행사가 진행된다. 
 “제 1부 순서로는 이 가을 새로운 시인으로 탄생하신 여자영, 성은경 두 시인의 신인상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집을 출간하신 김추인 시인의‘프렌치키스의 암호’와 ‘김미숙 시인의 ’‘저승, 톨게이트’ 출판기념식이 있겠습니다. ” 

1.가을 문예 신인상 시상식 정경 

 이가림 시인의 심사평이 있었다. 
 “성은경의 작품「확」은 만만치 않다. 오래 시를 붙들고 거친 산을 넘어온 듯한 내성이 붙어 진구렁을 걸어도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을 수 있는 척추의 힘을 시에 온전히 쏟아 부었다. 
  

                  확, 시선을 끌어당겼어 
                  쉬운 선택이 생의 발목을 잡았지 
                  몇 번의 외출이 발가락에 물의 집을 지었어 
                  세상 모든 길들이 욱신거리기 시작했지 
  

                                                                        ㅡ「확」부분 

  

와 같은 축축하면서도 건조한 시상을 토해 놓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은경은 언어 구사가 자연스럽고 힘차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그 힘이 앞으로 시인의 힘겨운 길을 갈 수 있는 의지가 되리라 본다. 「새발뜨기 」「콜라 캔」과 같은 작품들도 같은 느낌이다. 
  <시와시학> 가족이 되는 두 신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결코 쉽지 않는 길을 그러나 기쁘고 성실하게 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 가고 성은경의 당선 시 [확], [콜라 캔] 축하 낭독을 신진순 님과 필자가 하게 되었다. 마산 출신인 시인은 작품에서 벌써 경상도 특유의 화통하면서도 은근한 재미있으면서도 슬픈, 신선하면서도 치열한 묘사력 그리고 맛깔스런 전개력과 직관력 모두 만만하지 않은 실력을 갖춘 든든한 시학 시인 회 후배를 맞이할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그 뒤 김재홍 평론가님의 축하패 전달과 성은경의 온 몸으로 아픔까지 열심히 시를 쓰겠다는 당선소감을 듣고 

 다음은 여자영 당선 시인에 대한 이가림 시인의 심사평이다. 
 “여자영의 「수평선에 기대어 」를 보았다, 별 필요 없이 감정과 수다를 풀어 놓는 결함을 벗어나서 깔끔하게 그러나 조용히 주제의 핵심을 따라간 자세가 돋보인다. 요즘 젊게 쓰겠다고 줄줄이 없어도 좋을 말들을 쏟아 놓는 것 보다 휠씬 전달에 있어서 효과가 있어 보인다. 여자영은 사물에 다가가는 접근성이 뛰어나다.” 

                      

                          아득히 
                          수평선으로 물러나 앉아 
                          실눈 뜨고 
                          평등의 일획을 긋고 있는 
                          저, 수평선 그대 

  
                                              ㅡ「수평선에 기대어 」부분 

“ 마지막 연의 파도 한 줌 베어 물고 꿈으로 사라져 버리는 허상과 허무적 통찰이 실눈으로 평등의 일획을 긋는 절연한 구절을 만들어 낸다. 실눈 하나가 지상의 평등을 긋는 인간의 무한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앞으로 시라는 영원한 미완성의 세계에서 쉽게 주저앉지 않고 꿋꿋하게 걸을 수 있음을 믿어 「소의 눈을 보다 」「은행나무 」와 같은 시들을 주저 없이 시단에 내어 놓는다” 
 여자영 시인은 신인답지 않게 오래 숙달된 직관력과 사고력으로 사물을 관조하면서 쏟아지는 말들을 행간에 숨길 줄 아는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있어 놀라울 정도였다. 그 동안 얼마나 가슴 졸이며 견디며 자신의 묘사력에 채찍질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최부기 님과 만화가 전하리 님의 축하 낭독이 있은 뒤 김후란 시인이 상패 전달을 하셨다. 
여자영시인은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시와 시학 시지를 접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때늦은 출발이지만 서둘지 않고 조심조심 걷겠습니다.” 는 당선소감을 끝내니 딸 아들 남편까지 꽃다발을 들고 축하하신다. 뒤 이어 권오만 평론가님이 
 “20년 긴 세월 시와 시학을 이끌어 오신 김재홍 교수님께 고마움을 표하면서 여자영 시인의 등단을 축하합니다.” 

 17년 전 필자가 등단했을 때 시상식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당시 대구 동아쇼핑에 전국 유명한 시인들이 대부분 대구로 내려오셔서 시상식을 해주셨다. 3시간 정도 행사를 진행한 뒤 팔공산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도 했으니 참 감격스런 그 날이었다. 지금은 상패와 금반지와 상금이 얼마 전달되지만 그 땐 유명한 시인의 축하 친필 액자와 소정의 상금이 있었다. 지금 고인이 되신 박재삼 시인의 친필액자는 금반지 보다 더 귀한 것 같아 현대시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2.시집 출판 기념회 정경 

 김추인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프렌치키스의 암호’ 출판 기념회 순서가 돌아오자 김재홍 교수님께서 빙그시 웃으시며 프렌치키스가 무슨 뜻이냐며 짓궂은 질문을 하셔서 실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잠시 긴장을 푼 뒤 멋진 모자를 쓴 류영환 시인과 하얀 안경테의 멋쟁이 노현숙 시인의 축하 낭독이 있었다. 시학시인회 회장님이신 윤범모 시인의 축하패 전달과 김추인 시인의 소감이 있었다. “내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나를 쓴다” 고 말한 괴테의 말을 인용하면서 “전 언제 쯤 제 시가 언어를 초월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늘 조용한 그녀와 종종 행사에서 만나면서도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 한 번 한 적 없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한데 다음 상상력 풍부한 김추인 시인의 시처럼 우린 서로 바람둥이 그 나쁜 놈, 시와 사귀고 물어뜯고 연애하느라 그럴 틈이 없었던 건 아닐까? 

매양 그렇다 
어떻게 붙들어 둘 수가 있던가 
나쁜 놈! 
쓸쓸한 방백이 전갈의 독보다 푸르다 
-[나의 사내여, 시여] 부분 


바로 김미숙 시인의 4번째 시집 ‘저승, 톨게이트’ 출판 기념회를 이어 나간다. 

 날씬하면서 동안인 이병금 시인과 ‘한 해 두 아이를 출산하고도 몸이 성할지 걱정입니다.’는 조연향 시인의 축하 낭독과 유재영 시인이 축하패 전달하시면서 김 미숙 시인의 

‘올 때는 
내가 울었지만 

갈 때는 
다른 이들이 울어주는 것’ 

-[인생, 전문] 

이란 시를 읽고 많이 놀랐다는 말씀을 하신다. 마지막으로 김미숙 시인의 누군가가 자신을 당당하게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감을 듣는다. 김미숙 시인이 등단하기 전 ‘수국’ 행사에서부터 알아왔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 지금 시인은 물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유치원 운영하는 대단한 파워를 가진 여성이다. 창도 잘하지만 마음이 넉넉하기도 하여 필자가 자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도 하는 잘 익은 여성시인이다. 

3. 닫는 말씀 

 드디어 김후란 선생님의 축하 말씀 시간이다. 
“ 등단하신 두 분과 시집 출판하신 두 분 축하드립니다. 옛날 제가 현대문학으로 추천 등단할 때는 이런 축하 자리도 없이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서야 알고 황홀했습니다. 축하 전화도 없었던지라 이런 자리가 너무 좋아 보입니다. 여러분 널뛰기 아시지요? 빵! 뛰면서 서로 상대방을 올려주는 격려와 우정이 큰 힘이 됩니다. 같은 가족이 되었다는 건 마음 든든하고 서로 키워주고 끌어주면서 좋은 시 더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김재홍 교수님이 그 동안 피땀 흘린 보람으로 이번 문화훈장을 받으시니 축하 박수 부탁드립니다.” 

2부 순서로 김재홍 교수님의 원각 포럼을 끝으로 윤범모 시인의 닫는 말씀과 저녁 회식자리 안내를 따라 모두 이동한다. 모처럼 만난 강인한 시인이 이번 여름호 ‘시와 정신’에 발표된 필자의 ‘안개꽃, 그 흰 그림자’ 가 정 숙의 대표시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왠일인지 정 숙의 낭송까지 최고라며 치켜 올리시는데 술 한 잔 사드릴 시간도 없이 내려와야 하니 죄송스럽기만 하다. 참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다. 박호영, 홍사성, 윤효 시인 박금출 치아모 회장님 등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조애린 김정초 시인까지 보였지만 서로 인사만 잠시 나눈 뒤 헤어져야 했다. 특히 아름다운 대학원생의 가곡 그 풍부한 성량에 감탄하면서 

 별을 노래하는 사람이 시인이라면 그 자리 모인 분들이 다 별이 아니겠는가. 각자 자녀와 남편의 소중한 별이면서도 자신이 별인지도 모르고 외로워서 별을 찾아 나선 사람들, 필자는 또 그 고독한 별들이 좋아 늦바람 든 것처럼 나타나 한바탕 소란을 떨고, 후다닥 내려오고 나면 다시 아련히 그리워지고 이 무슨 상사화 ,늦바람 등잔불이란 말인가. 내려오는 열차에서 ‘김후란’ 시인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 특히 좋아하신다는 [밤하늘에]란 시 한 부분을 읊조리며 쓸쓸함을 달래 보는데 남은 이들은 2차 뒤풀이 한잔 한다는 김미숙 시인의 보고에 또 다시 겨울 회오리바람이 휘이익! 불어 닥친다. 

그 많은 별 중에 지구상에 태어나 
사랑으로 만난 우리 
이게 어디 예삿일인가 
이게 어디 예사로운 인연인가 
나에겐 그대가 필요하다 
詩가 된 그대 
별들이 눈부시다 

--[김후란의 밤하늘에 부분] 
 


 처용아내      10-10-04 21:16 

 




꽃초롱 하나가 불 밝히는 그 곳으로

                               --정 숙

        
1.가을맞이 해변소 축제에 사랑하는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글쓴이 : poemac     날짜 : 10-08-30 12:04     조회 : 540      

가을맞이 해변소축제에 사랑하는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랜만에 하늘이 파랗습니다. 구름은 여전히 개구쟁이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며 어디 개구짓거리 없나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지만 어디 해볼 테면 한번 해보라지요. 어김없이 가을은 오고 말테니까요. 그리하여 시와 시학, 현대시박물관은 오고 있는 가을의 발걸음에 힘을 팍팍 실어주기 위하여 가을맞이 해변소 축제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우리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대부도 시인 김학수 시인의 농장으로 1일 나들이를 떠납니다. 9월은 말이 살찌고 바다의 해산물도 풍성한 계절. 그러므로 살아있는 왕새우 소금물에 살살 익혀 여름날 빠져나간 뱃살을 두둑이 다시 찌우고 갖은 조개탕 칼국수를 한 그릇 곱배기로 너도나도 흥에 겹고, 다음은 본론으로 김학수 시인 포도농장으로 이동하여 잘 드는 가위를 골라들고 "포도야 내가 왔다. 잘 있었느냐?" 직접 따 담은 내 포도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어둠이 내리는 대부도 길을 달려 다시 나의 정든 집으로 돌아오는 무박 한나절 축제입니다. 시와 시학 교실 회원, 독서회원 및 시와 시학 가족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일시: 2010년 9월 17일(금요일) : 오후 1시 출발                 
장소: 대부도 김학수 시인 포도농장                
 출발장소: 시와 시학 사무실 앞(오후 1시)                 
차편:  개인 승용차 몇 대로 이동    
                     
시와 시학, 현대시박물관 드림 

 현대시 박물관 홈에 올려진 이 제 인 시인의 유혹의 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었다. 추석이 바로 코앞인지도 잊어버리고 약속하긴 했는데 막상 떠나기 전날 밤 맨정신으로 생각해 보니 추석 귀성길이 떠올랐다. 가는 차표만 예약하고 시간을 예상할 수 없어 돌아오는 차표 예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고속도로가 정체된다면? 끔찍하다며 못가겠다고 문자를 날렸다. 그러나 잠시 뒤 지난 해 행사에서 대부도 바닷물이 모두 슬금슬금 어딘가로 빠져나갔다가 살금살금 돌아오는 광경이 또다시 유혹의 눈길 보냈다. 경상도 전형적인 처용처럼 늘 뿔을 세워 철석 철썩 부딪히기만 하는 동해를 보다가 너무 신기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었는데...다시 하행선 열차시간을 살피니 마침 KTX 막차표가 딱 한 자리 남았다고 ‘그럼 가야지’ ‘모험삼아 떠나는 거야, 무작정’
 


2. 초가을 들판이 여름햇살을 붙잡느라 



 대부도는 안산시가 아닌 인천에 있다고 무조건 믿은 필자는 오후 1시에 출발해서 언제 쯤 돌아오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어 막연한 마음으로 오전 10시 5분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역방향에 앉아 옅어지는 여름햇살을 붙잡느라 안간힘 쓰는 초가을 들판에는 한번 나드리 나서려면 온갖 눈치 보느라 떨리던 지난 세월이 옹기종기 앉아 물끄러미 필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학사 앞에서 조 연 향 시인이 먼저 반갑게 맞이한다. 둘이서 근처 꽃집에서 행복나무 가격을 흥정하다가 현대시 박물관으로 돌아오니 이 혜 수 시인이 문 매 자님과 같이 들어선다. 문 매 자님의 표정이 심상찮다. 생글생글 웃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한다. 올 여름 옥포 [향수 시인학교] ‘호수 반’ 반원으로 필자가 잠시 지도했던 분이다. 작품을 많이 쓰시는 것 같아 다시 정리하여 등단하라고 권유했었던 분이라 축하드리면서 더 열심히 써서 자신만의 색깔 뚜렷한 시인으로 거듭나길 기원하는데 드디어 출발이란다. 

 3. 풍차는 제 낡은 유산을 시절 없이 돌리고 

 시와 시학 동인회 회장님 윤 범모 시인의 승용차로 가면서 시학 동인회 시화전과 시와 시학 회 잡지 80회 출판 기념행사로 여는 시화전 계획을 김 재 홍 교수님과 나누는 얘기 들으며 ‘처용아내는 누드를 그려야하지 않겠느냐’ 필자의 농담에 ‘그 행사장에 직접 누드로 서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반문하시는 윤 시인님 그 외에도 필자의 빨간 바지를 보며 작고한 어느 유명한 화가는 빨간색 양말만 신었다는 얘기에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게 도착 지점으로 가는 길을 점검하는데 네비게이션이 영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결국 김 학 수 시인과 통화하면서 안산 시화공단 지나서 풍차 서 있는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이 제 인 시인은 가는 내내 회원들과 연락하면서 부지런을 떨어 거의 3시가 다 되어 김 학 수 시인과  삐거덕 삐거덕 제 낡은 유산을 시절 없이 돌리고 있는 풍차 아래서 합류할 수 있었다. 한 십 여분 정도 늪지대를 지나 도착한 곳이 단원구 라고 한다. 미술 평론가이기도한 윤 범 모 교수님이 단원 김홍도의 출생지라고 설명하신다. 식당 바로 앞엔 낚시터 호수가 태풍 곤파스 타고 날아 들어간 판자 지붕을 품은 채 얌전히 물결무늬를 살랑살랑 일으키고 있었다. 시학 동인인 김명은 시인을 비롯한 안산 빈터 시동인들이 미리 도착하여  반겨주어 소풍 기분은 더욱 고조되었다. 

4. 새우들이 땡그랑, 땡! 종을 치다.

 미리 준비한 찐빵을 맛있게 먹었다. 그 뒤 새우들이 불판 위에서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생의 마지막 종을 치는 모습이 안타까워‘우야노! 우야노!’ 하다가 껍질 볼그스름해지면서 금세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하는 인간의 마음 구조를 서로 웃다가 맥주로 건배한 뒤 사정없이 먹기 시작했다. 김재홍 교수님의 ‘가을 소풍을 같이 할 수 있어 고맙고 반갑습니다.’ 짧은 건배사에 이어 각자 소개하는데 지난 번 안산 시의원이면서 시학 동인인 송진호 시인이 나타났다. 이제부터 더욱 열심히 시를 쓰겠다는 다짐에 모두 박수로 환호하는데 최하리 만화가와 그 여동생이 같이 등장했다. 그럭저럭 한 스무 명은 넘게 참가한 것 같은데 조개를 듬뿍 넣은 칼국수를 다 먹기도 전에 여흥시간이었다. 장경기 선생님의 ‘문패 없는 주막’을 선두로 필자의 ‘그리운 금강산’ ‘동심초’에 이어 이창호 시인의 ‘밀양 아리랑’이 흥겨웠다. 이어서 이혜수 시인의 ‘아파트’와 춤 드디어 김재홍 교수님의 ‘사랑이여 보아라’ 로 시작하는 박정만 시인의 ‘작은 연가’ 시낭송과 ‘작은 연인들’ 노래하시는 모습에 17년 전 등단 후 처음으로 이 노래를 듣고 가슴 설레던 젊은 시절 돌이켜보는데 하루 일과를 끝낸 해가 붉은 기둥을 호수 안 깊숙이 드리운다. 

5.추억의 한 페이지를 간직하다.

 현직 국어 교사로 계시는 두 분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모두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춤추고 노래하고 자작시 낭독[조연향 시인]까지 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간직할 수 있도록 해준 따뜻한 정에 감사하였다. 결국 포도 농원엔 다음에 가기로 하고 중간에서 포도 상자를 싣고 아쉬운 작별의 시간, 오후 7시쯤이었다. 돌아오는 길 ‘살다보니 참, 이런 귀한 시간도 마음 편히 가질 수 있구나’ 생각하니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즐거운 하루였다. ‘주어진 하루 열심히 살았으니 오늘 밤 부은 발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줘야겠다.’ ‘그래도 하행선 열차 안에서 바라본 하늘엔 반달이 홀로 아련한 꽃초롱 하나 불 밝히며 흐르고 있으니 이 얄궂은 사단을 어찌 하리! 사랑아, 저 꽃초롱불 누가 꺼리’ 박정만의 작은 연가 내용이 이제사 조금 이해되는 것 같으니 이 형광등으로 어떻게 시를 쓴다고 쯧쯧...



 가장 오래도록 가슴 찡하게 남는 것은 태풍 곤파스가 이미 지붕을 날려버리고 있는데 이제 태풍이 올라오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늦은 일기예보 방송을 들었다는 김 학 수 시인의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외국노동자들을 위한 세계 여러 술집 형태들이 모여 있는 특별한 구역과 뻘 물들이는 낙조를 볼 기회 다음으로 미룬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꿈을, 숙제를 풀기 위해 앞으로 더욱 열심히 건강 챙기고 정진할 이유가 될 테니까.  그 거센 태풍에도 불구하고 대부도 포도는 새콤달콤  잘 익힌 여름 햇살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ㅂㅂ■작품 해설 

존재를 증명하는 길 찾아 나서다

 정 숙(시인)
 
  팔월도 끝나가는 무렵 자정이 넘었는데 매미들이 울고 있다. 문득 밤잠 설치는 시인들이 떠오른다. 뭔가 답답한 가슴 어떻게 털어내어야만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을지 와글와글 끓기만 하는 머릿속을 대신해서 울고 있는 것 같다. 저토록 편치 않은 글쓰기를 왜 해야 하는지 특히 김복순 시인은 초등학생을 지도하고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면서 어린 자녀들 남편 뒷바라지 주부로서의 할 일들 매일 동동거리면서 왜 시를 써야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시는 밥도 돈도 명예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시공부에 몇 년간 매달리면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우선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점점 지워져 가는 자신을 찾거나 존재감을 재인식하는 과정이리라.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아무 생각 없이 달려온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그것을 돌리고 있는지 분명 자신이 짊어지고 갈 삶인데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누구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렇게 괴로워하는 순간, 그 순간이야 말로 인간의 한 생을 소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포늪이 된 낙동강 한 줄기처럼 가시연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는 이가 언젠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시인의 다음 시를 살펴보면 이처럼 시적화자는 자아에 눈을 뜨고 살아온 생을 반성하는 일이 시 쓰기의 근본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잿빛 물감을 풀어 
푸른 하늘을 덧칠해 버린 구름이
해님을 가둬놓고 바람을 구슬려 
온종일 나뭇잎들 들썩거리게 한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구름의 장난에 놀아나는 나뭇잎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양팔을 흔들어 대는 저 고단함

때론 타인에 의해
속울음을 안고도 춤출 때가 있듯
내 삶의 주인공인 내가
타인이 흔들어대는 방울소리에 
조종당하기도 한다
           -「방울소리」전문

그 틈새에서
미세한 감정의 덫에 휘말리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내 빈 마음과 몸이
간사하고 덧없는 시간의 수레바퀴에 
신음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부분

이제사 낭비한 인생 돌아보며 이끼긴 삶의 
허기를 느끼는지 
저항할 수 없는 생의 정체구역에서
지난날의 영화 더듬고 있다
                -「어느 불시착」부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이 바로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닫는 그 순간부터 무언가 허무하고 모순과 고독이라는 단어에 갇히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관찰하고 쓰는 일에 몰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시인인 것이다. 늘 부모님과 남편 어깨에 기대어 살아온 시인이 갑자기 혼자라는 사실이 두렵고 외로워지는 시간 자기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새삼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가까이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심지어 개미 같은 미물과 잡초 한 포기라도 귀중한 생명이라는 사실에 목숨의 소중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끊임없이 내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모든 사물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갖게 되고 늘 물음표를 들고 다니게 된다. 잡초 여뀌풀이 왜 살아야 하며 왜 꽃을 피워야 하는지 그런 해답을 찾아다니다가 가까이 다가서면 물러서고 마는 모든 인생사가 술래잡기 놀이와 같다는 생각에 머물기도 한다.      


가슴 속에서 
가끔씩 폭발하는 불덩이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수많은 갈등의 고리
계산으로 생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슬픔과 행복이 범벅된 
인연의 끈을 
쉬이 자르지 못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면 

끝없는 삶의 질주 속에 
명예와 권력 잡으려는 
그 비밀 찾을 수 있다면 

                 -「술래잡기 인생」전문

 시적화자는 유난히 정이 많은 사람이다.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아치랍고 시골에 계신 시어른께 감사하고 건강을 걱정하는 얘길 자주 하는 편이어서 그냥 건성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란 걸 그 눈물 글썽이는 표정에서 알 수 있다. 김 시인의 많은 시편들이 가족과 이웃 얘기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대체로 자신과 가족 얘기를 하는 것으로 시 쓰기가 시작된다. 시인의 가족사를 다룬 작품들은 시적 화자가 유별나게 정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 

어버이날 
시댁 갔다 깜빡 잊고 두고 온 핸드폰 탓에 
며칠 동안 꼭 타야할 기차를 놓친 듯 안절부절이다
손가락 하나면 
순식간에 눈과 귀를 열어주고 
시공을 넘게 하는 내 습관의 노예

그 심정 아시는 듯
여든 연세의 아버님 우편으로 폰을 보내시며 
몇 겹을 말아 포장한 봉투 속에도 
마음 놓지 못해 
연필에 침 발라 정성스레 쓴 
꼬물꼬물한 큰 글씨
히. 데. 폰

우체국 건너오다 행여 달아날까
주름진 손으로 힘주어 새겼을
까만 글씨가 하얀 봉투에서 
방긋 미소 짓고 있다

                       -「히.데.폰 우체국을 건너오다」전문

  이런 가족 이야기들은 대부분 단순한 기억이나 추억을 되살리는 재생상상력에 머물기 쉬운데 

한 여름 정오, 개미 한 마리
뙤약볕 무게 덤으로 진 채
제 덩치 제압할 만큼 긴 지네 한 마리 물고 
보도블록 위를 기어가고 있다
콘크리트가 훽훽 뱉어내는 사막의 열기에도
황량한 사람들의 구둣발길 질에도 
잽싸게 피해 달아나면서 

분주한 시간 중에도 닻 잃은 돛단배 마냥 
바람에 몸 맡기고 멍하니 서 있다
그 모습 지켜보다가 
도로의 가장자리로 유인하였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금세 먹잇감 물고 화단으로 몸을 숨긴다

그늘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 가정 짊어진 채
삶의 긴 여정 온갖 바람 맞으며
어깨에 두른 가난한 지게 내려놓을 틈 없이 
고단하게 사셨던 시어머님
한 여름날 흙 묻은 손으로 
남편의 흰 모시적삼 다려 입히시며 
동당가슴 태우시던 시어머님의 한숨이 
잘록한 개미허리에 묶여있다

             -「개미허리가 잘록한 이유」전문

 한 여름 정오, 지네 한 마리 물고 보도블록 위를 기어가고 있는 개미 한 마리를 보고 뙤약볕에서 수고하시는 시어머님을 연상한다. 연상 상상력 수준의 묘사는 단순한 재생 상상력에서 벗어나 한 단계 더 높은 시인으로서의 묘사력을 갖춘 것에 우리는 안도할 수 있다. 또한 자글자글한 검버섯 덮어쓰고 컴컴한 박스 속 눌러앉아 있는 고구마를 보고 암 투병에 야금야금 몸 갉아 먹히는 형부를 생각하며 슬픔을 슬픔이란 단어 쓰지 않고 슬퍼하는 구체적이고 섬세한 감성적 표현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겨우 하나 남은 고구마
자글자글한 검버섯 듬성 덮어쓰고
컴컴한 박스 속 눌러앉아 있다

바깥공기 차단한 채 
시들어 가면서도 혼을 놓지 않아 
몸 속 다 비고 곯았지만 
제 몸 지탱하느라 안간힘 쓰고 있다

저 식물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나는 법 터득하는지
몸 밖으로 새 생명 밀어내는데

쉰을 훌쩍 넘도록 
가족이란 작은 세상에 갇혀
제대로 삶을 피워보지 못한 형부
암 투병에 야금야금 몸 갉아 먹힌다

소리 없이 검게 타들어가는 몸은 다시
새순을 틔울 수는 없는가

       -「어느 촛불」전문

  이처럼 시적화자는 매우 정이 많은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다. 암환자인 형부를 통해서 꺼져가는 생명에 대한 애착과 형부의 반전된 삶을 요원 하는 마지막 연에서는 독자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이 안타까움은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불을 밝히는 촛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시에서는 시어른과 이웃의 사랑을 부러울 정도로 많이 받는 것 같은 시인이 찾아간 곳은 정情을 수리하는 센터이다. 정情은 주어도주어도 모자라고 받아도 받아도 아쉬워지는 존재인가 보다.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사연이 퉁퉁 붓네요
문이라도 열리면 바람이 날아들어 
젖은 사연 말릴 텐데
닫힌 공간 안에서는 
적잖은 세월이 맺어준 정도
얇은 종이칼에 잘리듯 빗금이 가고
애정의 곰팡내를 풍기며 
촉촉이 비에 젖고 마네요

개미허리만큼의 미세한 먼지도 
달라붙어 쌓이면 털고 닦으면서
정도 수리가 필요한가 봐요
마음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유리창인지
환히 보이는 속 만지려고 손 내밀면  
햇빛을 차단시킨 선팅지처럼 
짙은 회색빛으로 막혀있거든요
      -「정情 수리 센터를 찾습니다」전문

  어쩌면 정을 받으려는 욕심보다는 남에게 더 많이 더 아름다운 정을 나눠주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걸까? 선팅지에 가려진 곰팡내 나는 마음을 닦고 수리하는 시인은 이제 사회의 어둔 면으로 눈길을 돌려 나무라기도 하며 정을 나누려한다. 그것은 다음 작품「겨울 담쟁이」에서 엿볼 수 있다. 시인들이 초기엔 시의 소재를 가슴 속 숨겨둔 자기 주변과 가족사를 다 퍼내어 햇볕에 말린다. 그 속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찾고 난 뒤 찾아가는 그 다음 단계는 사회의 어둠과 들꽃들의 한 생의 밑뿌리를 들여다보며 거기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음「겨울 담쟁이」란 작품에서 김 시인이 자기 가족사나 중얼거리는 기초 단계를 넘어선 시인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위로, 위로만 오르더니 
더 오를 곳이 없었는지
널브러져 붙어있는 폐가의 벽지조각들 
공장 담벼락에서 
사느라 푸른빛도 못 내고
앙상한 뼈마디만 남아 겨울잠을 자고 있다

한 발 한 발 내딛기도 힘겨운
낭떠러지 생 
그 치열한 절벽 삶을 오르느라 독한 날을 세운 
손발톱은 여전히 자라고 
마지막 자존심 지키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오기와 고집으로 매달려 있다

계절은 돌아 겨울을 닫고 
입춘의 대문 열어젖히는데
바닥을 헤매는 경기는 
여전히 살얼음 낀 겨울강이다

봄날의 꿈을 깁던 신발공장 푸른 문이 
자물쇠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겨울 담쟁이」전문

 한 가정을 지키려 안간힘쓰는 어머니로, 아내로 시적 화자는 공장 문이 닫히고 명퇴로 일자리를 잃어가는 사회를 그냥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앙상한 뼈마디만 남은 겨울담쟁이에서 푸른 문이 자물쇠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신발공장을 꿰뚫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노랑나비」에서는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근심 걱정이 가득하다. 어린 소녀 소년들의 불장난을 걱정하며 또한 일자리를 잃고 술에 취해 공원 벤치에서 구역질하는 사내를 박 속을 긁어내 듯 속을 비워내고 있다며 애처롭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상 여러 작품에서 본 바와 같이 시적 화자는 어둔 사회로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보듬어주려는 모성애를 나타내고 있다.

풋사랑의 입김에 화상 입는 줄 모르고 
서툰 날갯짓으로 집 담장 밖을 
맴도는 저 소녀, 소년들
압력밥솥 추처럼 터질 듯 
돌도록 조종하는 것은 무엇인지
핵폭탄을 지닌 미혼모의 상처는 
누가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지 
             -「노랑나비」부분

꽉 찬 박속을 박박 긁고 있듯
구역질나는 세상을 지우고 있다
박박 긁어내고 빈 통을 말리면 
더 단단해지는 박처럼 되기 위해
이제 억지로 비운 속 
햇빛에 말리고 있는 중이다 
       -「박 속을 긁어내다」부분

  자신의 단칸방을 아들의 대출 서류뭉치로 바꿔주고도 자식 하나 곁에 두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어느 영세민 할머니를 비둘기와 비유하고 있다. 가을 내내 황금들판 지키고도 곡식 한 줌 얻지 못하고 휑한 들판에 빈손으로 서 있는 허수아비. 자식한테 버림받는 요즘 노인네들의 처지까지 걱정하면서 새벽 종소리가 또 한 끼의 밥그릇을 채우기 위해 핸들을 잡고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예쁜 딸을 키우는 어머니의 모성은 걱정이 끝이 없어 프라이팬에 핀 곰팡이 꽃을 보며 미혼모를 걱정하고 있다. 요즘 현실은 더 참혹하지 않은가. 거의 날마다 초등생 성폭행, 성추행 뉴스를 보며 어머니들의 갈등과 불안한 마음을 어찌 말로 짧은 시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프라이팬이 
먹다 남은 감자와 당근을 부추겨
곰팡이 꽃 피운다

한 때 저지른 

불장난
꺼진지 오래됐지만

어둠속에서 
생명의 끈 놓지 못해 
곰팡이 꽃이라는 따가운 시선과 무관심에도 
모성은 부끄럼 없이 피고 
솜털처럼 부드러운 아가의 배내옷 짓고 있다 
                 -「미혼모」전문

  그러나 이런 불확실하고 어두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만이 여기서 시적화자는 다소나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새를 기다리다」에서와 같이 이렇게 펄펄 뛰는 버려진 세상의 시간 속에 기대어 햇살을 물고 올 새 한 마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한줄기 희망 찬 비상구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고단한 생을 목청을 높이기보다는 부드러운 여성적 목소리로 조곤조곤 얘기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또 다른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방향으로 인간성 회복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상의 경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시의 항해를 떠나는 시작이다. 그녀의 작품은 시적인 완성도를 향한 꿈으로 매우 원대하다. 거칠고 험난한 시의 길에서 자기 존재의 성찰과 번뇌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세계는 진정 아름답지 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눈과 사유로 모든 사물이 재창조되기를 염원하고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희망을 열어놓고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첫 시집『정情, 수리 센터를 찾습니다』를 상재하는 김복순 시인의 앞날에 문운의 길 환하게 트이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바람난 가슴 고쳐드립니다’ 광고 주인을 찾습니다
                                       -정 숙 처용아내 [시인] 

 처용아내께 라는 사인이 그려진 이 승 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위대한 표본 책]을 받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시집 제목과 표지를 쓰다듬어 보고 얼른 내용을 대강 읽고 해설을 읽습니다. 시와 시학 동인이기도 한 그의 시세계가 그 동안 어떻게 변화 되었고 시 전문가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 몹시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다시 꼼꼼히 읽습니다. ‘이 승 주의 시학은 단순한 감각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순수성의 차원을 욕망하는 세계임을 알게 된다.’를 읽고‘역시 평론가는 달라, 어떻게 이렇게 딱 들어맞는 말로 꼭 꼬집어낼 수 있을까?’ 유 성 호 문학 평론가의 해설에 공감하면서 많은 작품 중에서도 [흰 그림자]를 다시 씹어봅니다. 잘근잘근 씹으며 그 달큰짭쪼롬한 맛을 음미합니다.


유리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논다

천장에서 떨어진 빛이
유리구슬에 닿은 흰 그림자

흰 그림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리며 논다

유리구슬처럼
제 알몸을 부끄럽지 않게 온전히 드러내어야지 이룰 수 있는
흰, 의 경지

검은 그림자 뒤에 저를 숨기는 불순함으로는 이룰 수 없는
제보다도 더 빛보다도 더 밝은
빛그림자 그림자빛
흰 그림자
                                  -[흰 그림자] 전문

 아기처럼 순진한 시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 시인은 천진난만한 아가의 눈으로 사물을 봐야하지 그리곤 다시 무릎을 칩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 텐데 흰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그 눈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느새 더 날카로워져 4연에서는 사물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는 직관력이 투시력이 아주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제 알몸을 부끄럽지 않게 온전히 드러내어야지 이룰 수 있는 흰, 의 경지’에서는 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의 진정성을 슬며시 얘기하는 그의 치밀한 사유에 또 한 번 놀랍니다. 그 다음 단계로 5연에서 시인은 자신의, 세상의 순수하지 못하고 늘 남의 그늘에 숨어 빛을 내려는 비겁함을 아주 조곤조곤 꾸짖습니다. 자신의 서정을 잃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리고 시인의 뒤란에 숨겼던 감각을 슬쩍 꺼내 보여준 걸까요?

쭈그러진 냄비도 부푸는 사월

달이 하도 밝아
잠 아니 오시는 하느님

이런저런 하염없는 생각으로
지구를 돌리시다
자기가 빚은 입술,
자기도 모르게 그 붉은 입술 안으로
혀를 밀어 넣고 싶은 밤

치매든 어미가 배고프다고 우는 밤

                       -[봄밤] 전문

 고전적인 서정을 지키려는 시인이 한번 외도를 한다고 봐야 하나요? 하느님도 관능적으로 보이는 그의 묘사력이 무척 감각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에,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 하 웃다가 금세 서글퍼지도록 하는, 능청스레 사람을 울고 웃기는 재주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쭈그러진 냄비도 부푸는 사월이면 내 이마 주름살도 펴지려나?  하고 기대를 하다가 치매든 어미에서 다시 숙연해집니다. 그 뒤 ‘바람난 가슴 고쳐드립니다’에서 또 한 번 빙긋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늘 정답밖에 말할 줄 모르는 샌님 같은 그의 얼굴이 장난스러워 보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입고 있던 두꺼운 옷을 많이 벗고 있다는 그래서 곧 이  시인 시세계의 알몸을 더 많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 즐겁습니다. 필자는 이 성 주 시인이 너무 서정의 본도만 지키려 두꺼운 옷 껴입지 말고 사유의 들판에서 발가벗고 비 맞으며 자신의 숨은 감각을 더 깨워 일으켜 세상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더 이 성 주 시인의 [위대한 표본책]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그의 시들이 쭈그러진 냄비도 부푸는 사월의 힘으로 시의 맛 벙글벙글 부풀리어 많은 독자들의 마른 가슴에 위안이 될 것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해물 탕 사랑 요리사 자격증을 수여하다
                    -정 숙[시인]



 곽미영 시인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십 여 년이 다 되어갑니다. 대구문학아카데미와 포엠스쿨에서 열심히 시라는 거북이 등껍질 보다 더 딱딱한 그 속을 열어보려 애쓰는 모습 진지하면서도 귀여웠습니다. 가정생활에 충실하면서 법무사 사무소 사무장으로 근무 ( 경력/20년)하면서  한화금융네트워크 대한생명 재무컨설팅 및 자산관리 전문 파이넨셜 플레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회인으로 근무하면서 다시 사이버대학에서 꾸준히 문학의 실체를 탐구하고 이제 계간지 [시선]으로 재 등단하면서 바로 시집을 출간하는 믿음직스런 여성시인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품위를 지켜 나갈 줄 아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품위란 좋은 옷을 입고 이름 있는 화장품을 바르고 나선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대강  공부해서 쉽게 등단하고 시인이라는 이름만 달고 다닌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닌 세상이니 끝까지 노력하는 그 모습이 진정 아름답고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태도일 것입니다. 비록 기발한 상상력이나 비유 또는 직관력이 현대적인 이미지화를 위한 표현방법이 조금 미흡하다 하더라도 생활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정성이 독자들 공감을 얻는 힘이 될 것입니다. 

1.엄마 마음이 바로 얼어 터진다

 시인이기 이전에 엄마이고 아줌마이고 아내인 곽 시인의 다음 시에서는 남편과 자녀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쩜 자신보다 더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느낌을 이렇게 시로 육화시키는 일은 또 자아를 찾고 반성하는 일이니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자기 사랑 법을 터득한 현명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훈련소에 입소한 아들의 옷과 신발이
택배로 왔다

단정히 접은 옷 위에
신문지를 깔고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 한 켤레
왈칵, 서럽다

때 묻은 신발을 들고 
흠흠, 냄새를 맡는다
쾌쾌한 아들 냄새
와락, 끌어안고 운다
향기롭다

“어머니, 아버지
 여기는 졸라 춥습니다.
 대박입니다.
 하지만 잘 견디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ㅋㅋ
 충성!“
처음 받아보는 아들의 짧은 편지에
울다가 웃는다

“내일 경기도 연천, 강원도 철원은 
영화 20도의 강추위가 예상됩니다.
동파 될 위험이 있는 수도관 등은 
점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기예보가 흘러나오자
점검 할 시간도 없이 
엄마 마음이 바로 얼어 터진다.
 -동파 (冬破), 전문

 한 겨울에 아들을 군 훈련소로 보내 본 어머니들은 빈 몸으로 돌아온 옷과 신발을 보았을 때 그 눈물과 한파 몰아치는 심정을 수도관이 얼어터지는 아픔에 비유한 동파(冬破)라는 작품에 ‘그래, 맞다!’ 탁!무릎을 칠 것입니다. 

2. 아버지와 눈부처

 또한 세줄얼게비늘 암컷과 수컷의 가사 분담하는 모습에서 곽시인의 단란한 가정을 엿봅니다. 물론 시인은 암컷의 알을 입으로 받아 제 입 속에서 부화시키는 세줄얼게비늘 수컷을 보며 시아버지를 연상하지만 그 이면엔 아들을 가정을 사랑하고 다독이는 부군의 모습과 또한 아내로서 남편에게 바램 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다음 시 ‘해물탕을 먹다가’를 읽으면 시인의 부군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더 뜨끈뜨끈 얼큰하게 전달되어 옵니다.


암컷이 알을 낳자
수컷이 알들을
얼른 입으로 받는다

치어로 부화 할 동안
알을 키우는 수컷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하루 뼈와 살이 가까워진다

팔순의 아버지
늦게 본 아들에게서 얻은 첫 손녀 소식에
김장철 내내
매운 고추방아 찧어 근근이 마련한
비상금 백만 원
며느리 손에 넙죽 건네주고도
주름 가득한 얼굴에 
해바라기 활짝 핀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은 아버지
나뭇가지 같은 야윈 팔목에
애처롭게 매달린 손
뼈와 살이 찰싹 붙어있다. 
-세줄얼게비늘, 전문

 독자는 해물탕을 먹으면서 서로의 눈동자 속 눈부처로 갇혀  보글보글 뜨겁고 매콤하게 끓는 사랑이 충만한 가정 풍경을 떠올리며 빙긋 미소 지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곽 시인의 시 전체 분위기가 어둡지 않습니다. 흔히 어둡고 외롭고 그리움에 가슴 아파야 옳은 시고 시인인 것처럼 일부러 느낌을 과대 포장하고 폼을 잡는 시들이 유행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아주 평범한 일상, 체험을 시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아를 찾고 반성하는 계기를 가지는 시들이 비록 깊은 울림은 주지 못하지만 독자들을 즐겁게 편안하게 하는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습니다. 
 
그와 마주앉아 밥을 먹다가
뽀얗게 서리는 김
손 흔들어 쫓아내며
그 다정한 얼굴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 사람 
까아만 눈동자 속에
조그맣게 갇힌 내가 보여
내 눈 속에도
그가 꼼짝없이 갇혀있겠다 싶어
그만
속눈썹이 젖었다
사랑이란
서로의 눈동자 속에 서로를 가두어도
냄비 속 해물들처럼
그저 뜨겁고 매콤하게 끓는 것
- 해물탕을 먹다가, 전문


 그 푸근함에 젖다가 때론 [아이티 이야기]에서는 새끼를 입에 물고 나르며 생사를 건 탈출을 시도하는 오소리 가족과 아이티 지진 폐허에서 웃고 있는 어린 아이를 교묘하게 합성시키기도 합니다. 또한 바닷가 다방에서 티켓으로 몸을 파는 [용궁다방 미스 민]을 연상하며 그 어려운 생활상을 상상하고 연민을 보내기도 합니다. 점점 자신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주변부로 사회로 눈길 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의 본질을 찾는 한 과정이기도 한데 다음 시들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3.오월 장미, 돌담장에 불 지르다

 시는 이미지이고 체험이긴 하지만 상상력이 없으면 옳은 시가 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상상력이 어느 수준이냐에 따라 시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도 합니다. 다음 시에서 곽 시인의 상상력 수준을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이 몇 편의 시 속엔 그냥 책임감 강한 어머니 주부의 면모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그 속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고 있는 에로틱한 여성으로 돌변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인의 상상력이 단순한 회상인 재생적 상상력이 아니라 맛깔스런 은유를 구사하여 아주 수준 높은 연상 상상력으로 사물을 꿰뚫어보는 직관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 [도의리의 오월],[채석강 해넘이] 그리고 [간통]에서 간 잘 맞춘 해물 탕처럼 뜨거우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에 아! 하는 감탄사를 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정도 작품들만 모은 시집이라면 어디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될 것입니다.

 제 열정 숨기지 못해 동네 어귀 오두막집 돌담장 
기어이 불 지르고 마는 넝쿨장미, 저 바람기
-도의리의 오월, 부분

용광로에 뜨겁게 달구어진

커다란  해 덩어리를 

겁도 없이  삼켜 버린 바다를 만났네 

뜨거워, 너무 뜨거워 붉은 피 토해내는 

처절한 몸부림



내장이 다 타 버리는 고통 

참지 못 한 바다는 

주정뱅이처럼 비틀대며 

파도를 끌고 멀리 달아나네

-채석강 해넘이, 부분

다음 날 아침,
눈 뜬 곳은 
바닷가 어느 허름한 민박 집
쉰 목소리로
삐걱 삐걱 떠들어대는 창문 소리에
땟물에 찌든 커튼을 걷어내자
낡은 창틀에 낀 바다가 퍼덕인다
확, 창을 열자 
밤새 방에 침입하려고 안간힘 쓰느라 
미쳐버린 바다가 철퍼덕 몸을 덮쳤다
거칠어진 그의 숨결을 
끌어 앉고 뒹군다
-간통, 부분

4. 느티나무와 간고등어

 한 여름 땡볕으로 지글지글 달아오른 아스팔트에 소나기라도 내린 것일까요? 어느 새 열정적인 상상에서 벗어나 시인은 차분하게 사물을 바라보며 내면 성찰을 하는 모습입니다. 남 보기엔 아무 근심 걱정 없어 보이지만 사는 일이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지요. 등산로에서 쓰러진 나무를 보며 사회생활에서의 고단한 삶을 은근히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게 누워 있으면서 생을 포기하지 않고 새잎을 틔워내는 나무를 보며 또 희망과 용기를 얻는 긍정적인 사유는 시인의 은근과 끈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도
그렇게 누워 버리고 싶은 날 있었나보다
팔공산,
동봉에서 서봉으로 넘어가는 등산로를
턱 막으며 그가 길게 누워있다

일생 서 있어야만 하는
고단한 삶을 맥없이 던져버리고
부끄럼도 잊은 그가
아랫도리 다 드러내고 누워 있다

차마
넘어갈 수 없는 그 몸
괜찮으니 넘어가라고 
힘없이 내젓는 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파란 하늘 한 자락 끌어다가
그의 몸을 덮어주는 일

느티나무는 누워서도
어린 잎 수없이 키워내고 있다
배낭에 희망 하나 넣고
나도 슬쩍
그의 몸을 넘어서고 있다
- 휴식, 전문

 모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대부분 포용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서로 용서하고 다독이면서 아무리 험난한 세상이라도 정겹고 즐겁게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단점도 감싸 안을 수 있는 이는 세상 파도에 많이 휩쓸려 본 사람들이지요. 작품 [간고등어] 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짭짤하게 간이 잘 밴 사람을 연상하는 곽 시인이 듬직하게 느껴집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이제까지 필자는 곽미영 시인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아침 식탁에 올릴 냉장고 속 간고등어 두 마리 밤새 무슨 일로 토라졌는지 등 돌리고 누운 놈을 다른 한 놈이 가만히 안아주고 있다 쓸개 창자 파내고 굵고 짠 소금에 생살 절이는 쓰라림 경험하지 않고는 등 뒤에서 다 감싸 안아 줄 수 없다며 떨어질 줄 모르는 간 고등어 그 쫀득한 살 뚝뚝, 발라먹는 아침 입 안 가득 출렁이는 짜고 비린 바다 

-간고등어, 전문

5, 애첩기질을 요리하다

여성은 가끔 질투를 매력점으로 잘 요리하여 늘 징징거리거나 약한 척하며 남성들을 꼼짝 못하게 가두는 애첩기질과 강한 아줌마의 표상으로 가정을 자녀를 지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기 보다 때론 남성들 보다 더 의리와 책임감을 중요시하는 그러면서 입이 무거워 여성이기 보다 올바른 인간이 되길 고집하는 본처 기질로 나누기도 하는데 곽시인은 생글생글 자신의 애첩기질을 잘 요리할 줄 아는 본처기질의 당당한 여성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으로서의 매력보다 인간관계의 신의를 중시하는 그래서 서로 믿고 존중하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건강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더불어 곽미영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약속도 분명 잘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라 믿습니다. 열심히 살면서 사랑하면서 인생의, 사랑의, 시의 깊은 맛을 찾아내는 요리사로 독자의 심금을 울려 줄 시 한편을 위해 평생 정진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으리란 것을 기대하면서 다시 한 번 첫 시집 [ 풍금이 있는 풍경 ]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먼저 시마을 운영자 양현근시인과 그 외 여러분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마른 자갈밭에서 서로 빛깔이 다른 꽃을 피워 다시 그 꽃들이 잘 어우러지도록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우면서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려 노력하시는 모습 고맙고 든든합니다. 시 지망생과 애호가들이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목말라 하는 이 사회는 아직도 밝고 희망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모두 열 네 편의 작품을 보내주셨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 반열에 드는 두 분과 함께 작품 심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이 심사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밝힙니다. 대체로 수준이 골라서 한편 찾아내기가 힘이 든다는데 공감했지만 그 중에서도 신선한 발상이면서 집중이 잘되어 주제 전달이 잘 되는 작품을 골랐습니다. 우선 흰 배 [백경]와 초판인쇄[타비오] 침묵을 거부하는 가을 마른 소리[송우달] 낙엽 [팬이아방] 사진 7 [김승택] 등 다섯 작품을 골랐습니다. 

 흰 배 [백경]은 배 한척에서 우체통과 바다가 보낸 편지를 연상하고 거기서 나아가 이국에서의 낯선 밤을 불러올 줄 아는 상상력과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글 구성이 탄탄하다는 평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장 중에서 
/도금된 햇살 속에서 녹빛의 물결과  대비되다가 이내 조화되는/
/너무 멀지 않고 그렇다고 그리 가깝지 않은, 고요한 바다 위에서의 아침 /
이 부분은 버리든지 아니면 묘사를 한 번 더 수정해 볼 필요가 있다는 평이었습니다.

 초판인쇄[타비오]는 바닷가에서의 첫 경험을 초판인쇄로 제목을 붙일 수 있다는 발상에 놀라웠습니다. 그 만큼 시에 대한 열망과 공부를 위해 칼을 얼마나 벼리고 있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젠가 소설가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잇몸을 드러낸 바위/ 는 묘사가 잘 되었는데 다음 문장은 사적인 또는 억지스런 비유나 상징들을 극복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위험한지도 모르고 잘난 체 하던 /갑판에 얼룩진 물고기 눈물을 닦고/달려드는 착란을 일으켰지/

 침묵을 거부하는 가을 마른 소리[송우달]는 무난한 글이지만 제목에서 속이 다 내보이도록 침묵을 거부하는 이란 구절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오히려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낙엽의 귀를 후볐다/에서 묘사도 상상력 신선하면서 전체 내용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그런 이미지를 더 연구해야할 것입니다.

 낙엽 [팬이아방]은 시 한편을 이끌어 가는 데는 문장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사유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겠지요. 낙엽 한 장에서   /낡은 책갈피 속의 암호 없는 난수표 한 장  / 으로 슬쩍 비약하는 힘이 좋습니다. 즉 시에서 집중해서 잘 내려가다가 삼천포로 빠질 줄 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녀 아직 곱디고운 홍잎이네. / 이 부분은 없어도 좋을 것 같다는 평이었습니다.

 사진 7 [김승택]은 낡은 목선을 해고당한 무기력한 한 사람에 비유하는 솜씨 자연스럽게 시안이 열려 있는데 다음 부분은 

바다에 처음 나서던 날의 흥분과 
파도와 싸우던 치열했던 젊음과 
만선의 추억이 체 식기도 전에 
어느 날 날아든 해고 통지서 하나 

묘사가 덜 익었다는데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조금 더 치열한 정신으로 쓰면 곧 묘사력 사유력 뛰어난 시인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으리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그 외 작품들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습니다. 시마을 카페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서 우리나라 시의 밝은 전망에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단지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화하지 말 것 과 문자를 쓰거나 어깨에 힘을 빼고 쓰라는 것과 독자성 없는 애매모호한 표현에 빠지지 말 것 그리고 행갈이와 제목 선택에 유의해야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여러모로 살펴 본 결과 작품의 완성도와 비교적 안정감이 있는 흰 배[백경]을 최우수작품으로 뽑았습니다. 그러나 우수상 작품과 실력에서 뛰어나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시는 누가 더 미련하고 치열한가에 승패는 달려 있습니다. 더 이를 악물고 평생 동안 명 시 한편을 쓸 각오로 전진해 보실까요? 저도 그 깨달음의 길을 찾는 일에 동참할 것입니다.
[시마을 우수작]2010,1,]


커피 향, 그 깊이를 재다

정 숙 ․시인

1. 강한 생의 의지로

정미상 시인은 경남 함양에서 1932년에 태어났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4,19와 5,16혁명 등 현대사의 질곡의 세월을 묵묵히 건너온 세대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여직 멀었던 내 눈 말끔히 씻어/서러운 눈물로 흘려보내고/아직도 버리지 못한/생의 실타래>「세월의 바퀴자국 중에서」를 감으며 강한 생의 의지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미상 시인은 74세에 시 공부를 시작한 용기 있는 늦깎이 여성시인 중 한 분입니다. ????인생이 60부터라면 자신은 지금 14세????라며 소녀처럼 미소를 띠던 처음 그 얼굴 떠올려봅니다. 틈틈이 쓴 노트 한 권 분량의 자서전 같은 시가 작품이 될 수 있는지 두렵고 부끄럽다며 조심스레 보여주던 때도 생각납니다.
정미상 시인은 조선 말엽 문헌공 일두 정여창의 후손입니다. 정여창 선생은 노론 김종직의 문하생으로 무오사화(연산군) 때 유자광의 무고로 김종직, 조광조와 함께 함경도로 유배되었다 사형을 당하고, 거기다 부관참시까지 당했지만 중종 때 대광보국숭로대부로 복위된 분입니다. 그런 명문가의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정시인의 시에는 유년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대적 생활상의 귀한 시어와 시편들이 자연스레 놓여 있습니다.

 이제 열두 살 그 어미 죽고 달일꾼 의붓아비의 버림받고 목동이 된 그 아이 참새 덫 담장에 올려놓고 탁, 닫히는 소리에 달려가 참새껍질 벗겨 소죽 아궁이에 구워먹고 못 먹는 굴뚝새는 노리개감으로 주었다

참새보다 작은 새, 내 작은 손 데우면서 잡혀서 억울한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두려움에 호동그란 눈망울 애처로워 살며시 손을 조금 벌리자 쏜살같이 빠져 날아가버렸다 일곱 살 어린 나는 놀라 꼴머슴 얼굴만 쳐다보았다 또, 잡아준다는 말 철석같이 믿고 싶었던 내 가슴도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 「굴뚝새 가슴」 중에서

그런가 하면 「보릿고개」는 초등학교 시절 아카시아 꽃잎이나 풀뿌리 씹어 먹는 일이 배고픈 탓인 줄 몰랐던 자신을 후회하며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시 한편으로나마 뱉어내고 나야 속이 후련해지면서 다소 마음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옹이진 내면을 치유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가난만 자욱했던 늦은 봄 
초등학교 뒤 언덕배기
하얗게 핀 아카시아꽃 주르르 훑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던 친구
뱃가죽이 등가죽하고 사돈하잔다

주전부리 심한 줄 착각했더니
지금에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만날 수만 있다면 

친구야,
따뜻한 눈물 밥 한 끼 같이 나누고 싶다
― 「보릿고개」 전문


2. 묘사의 묘미에 빠지다

주산지 진흙 속에 깊이 빠져버린 물버드나무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버린다 한껏 팔 뻗어 허우적이지만 온 몸으로 냉기만 밀려와 얼어붙은 손 호호 녹이면서 살아남는 법 곰곰 생각했다 
― 「주산지」에서

  다행히 그렇게 <한껏 팔 뻗어 허우적이지만 온 몸으로 냉기만 밀려와 얼어붙은 손 호호 녹이면서 살아남는 법>으로 외로운 투쟁 속에서 키운 자녀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자랐는지요. 또한 효성이 지극해서 지병으로 자주 쓰러지는 모친을 지극히 간호하며 보살피고 있어 다른 문우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는 재미가 있거나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때로 정시인은 아주 얌전하면서도 시의 묘사는 거침없이 대담하면서 짓궂기도 합니다. 아침부터 머리 휘휘 돌리고 있는 선풍기가 바람쟁이 남자로 보인 것입니다. 읽다가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저 바람둥이!
아침부터 식당 마루에 앉아
몸이 뜨거워지는지
사방 휘휘 둘러보다가
팔랑팔랑 지나가는
미니 치맛자락 속으로 입김 불어넣느라
신바람이 난다
지칠 줄도 모르고
― 「선풍기」 전문

 또한 커피향의 깊이를 잴 수 있는 시인의 투시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커피를 제 몸을 갈아 독특한 향으로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살보시의 실체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직관력 훈련을 얼마나 피나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보기입니다. 그것은 시인 자신의 생활신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죽으면 썩어질 몸 다른 사람을 위해 몸 아끼지 않겠다는 일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제 몸 가루로 만들어
뜨겁디 뜨거움으로 녹여
이웃들 보듬어 안는가

은은한 암갈색의 눈빛으로
사랑하다 지친 이들의 
벽을 허물기도 하다가
그 향긋함이 가시밭을 금세
꽃밭으로 가꾸기도 하면서
여름날 비 내리는 아침
창가에 앉아 검은 듯 화안한
한 잔의 커피 그 속 깊이를
찬찬히 헤아려본다
― 「살보시」 전문

3. 풍경화로 떠오른 세태 변주

점점 묘사의 맛을 알게 된 정시인은 계절별로 「장미」, 「모과」, 「풍매화」, 「고들빼기」, 「능소화」, 「분꽃」, 「백일홍」 등 꽃을 묘사함으로서 여성성의 여러 모습을 조명하고 자신의 처지와 때에 맞춰 꽃피우고 열매 맺을 줄 아는 그 살아가는 방식과 생명력에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은행나무」를 돈 모으는 은행이라며 사회를 사정없이 비꼬기도 하고, 「단풍 곗날」에서는 먹성 좋은 여성들의 곗날 모임 풍경화도 그리며 시 쓰는 즐거움에 푸욱 빠져보기도 합니다.

지폐들이 날아다닌다
파산 선고한 어느 은행인가
간밤 내린 가을비로
물 묻은 황금 지폐를
쥐꼬리만큼 부는 바람 따라
한 소쿠리씩 쏟아 붓는다
워낙 세상이 
억! 억!
그것도 수백억씩
예사로 들고 튀어버리는 통에

가진 것 없는 이도
억! 소리 나는 곳에 귀동냥 보내놓고
처진 어깨 움츠리며
황금더미 밟으며 걸어간다
― 「은행나무」 전문

시를 쓴다는 것은 모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한 한 열망의 표현입니다. 담장에 핀 오월의 넝쿨 장미가 길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헛웃음 흘리고 있는 거리의 여성으로 보이기도 하고 꽃 피우느라 철심이 딱딱한 고들빼기가 종족보존본능에 강한 모성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벗어 버리려 해도
벗어지지 않는
바늘 갑옷을 입고도

피어오르는 제 불꽃에 취해
몸 가누지 못 한다

비스듬히 길가 담장에 기대서서
지나가는 사람 마음 빼앗으며
깔깔거리다가

오월의 고운 햇살 머리에 이고
조는 듯 아닌 듯 아스라이
꿈속을 헤매고
― 「장미」 전문

4. 쾌유를 기원합니다

시 「절정」과 「해넘이」에서는 관광 여행 떠나는 젊은 아낙들과 초경을 부끄러워하는 소녀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지나온 세월의 수레바퀴 자국을 어루만지지만 지금 일흔 아홉의 정미상 시인은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습니다. 간혹 전화로 들려오는 음성이 베란다에서 겨울에 핀 나팔꽃 소리보다 더 가늘어 애처롭습니다. 

문 닫고 병고와 싸우느라
몇 세월이 흘렀는지
앞 베란다 화분들
가지 뻗고 새끼 치고
초점 잃은 내 눈에 이슬이 맺히고
저려오는 가슴을 움켜쥔다
(……)
미안하고나
너희들도 나도 힘을 내어
다시 한 세월 살아보자
헛가지 잘라내고 분갈이하여
새 정 느껴 보리라
벗은 나뭇가지에 
간신히 매달린 마른 잎새 하나
― 「미안하고나」 전문

어미의 마음은 살아온 세월 돌아보면 모든 것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것들 <미안하고나/너희들도 나도 힘을 내어/다시 한 세월> 살아보자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고 <둥주리감이 된서리 맞고서야 잘 익은 감이 된다 그 붉은 볼, 가을볕에 눈웃음 몇 번 보냈을 뿐 끌려내려 와 껍질 벗겨진다//자식 많은 어미 조리전에 한 전을 섰나?/갈고리에 줄줄이 매달렸다 따스한 햇살/손길에 줄 것 없는 마음만 안절부절/서늘한 밤바람에 자존심 죽이며 곰삭인다>「말년이 영화를 보다 1,2연」의 구절처럼 곰삭은 둥주리감처럼 이제 겨우 말년의 영화를 좀 보려는데 기력이 쇠약해진다니 안타깝습니다. 
신문기사엔 빙하기가 돌아와 연일 폭설이 내려 사람이 다치고, 지구 한 쪽에서는 폭염을 걱정하는 암담한 미래입니다. 아이티에 지진의 대재앙이 지구촌을 강타하였습니다. 이런 때 일생을 돌아보며 펴낸 시집 한 권이 위로가 되어 원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5. 첫 시집 '커피 향 , 그 깊이를 재다' 상재를 축하드립니다.

정 미상 시인님, 긴 시간 쌓은 시력이 좀 더 박차를 가하여 그 고통이, 즐거움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 빨리 쾌차하시기를 빕니다. 늘 수동적이었던 수레바퀴를 벗어나 자신이 직접 그 바퀴를 돌려보려는 의지로 일어서서 해맑은 그 미소와 양반집 여인네의 콧대 날카롭게 세운 목소리 들려주시길 대구문학아카데미 회원들과 시창작반 여러분들이 고대합니다. 다시 한 번 첫 시집 '커피 향 , 그 깊이를 재다'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리 터널을 찾아 떠나는 시바치의 짝사랑
-김성덕의 [동산바치의 사랑]

유통기한이 우유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첫사랑에도 있었답니다

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면 
영락없이 배탈 나듯이
첫사랑도
내게 머물 기간이 끝났는지
어느 날,  훌쩍 내 곁을 떠나간 뒤        
불면의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향기는 꽃잎 따라 피고 지던데
그리움은 
첫사랑 따라 오기만 하고
그 사랑이 떠난 후에도
오래 오래 가슴 속 깊이 머뭅니다
------[첫사랑]
  첫사랑엔 유통기한이 있지만 그리움엔 끝이 없다며 첫 시집 ‘첫사랑’으로 특히 어머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애타게 노래하던 시인이 이제 시안을 더 예리하게 갈아 ‘동산바치의 사랑’을 상재하였다,『동산바치』는 정원에 꽃이나 나무를 기르는 원예사를 일컫는 말로 여기서 「바치」는 한 물건의 이름에 붙어 그 물건을 만드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동산바치는 꿈을 가꾸며 살아가는 우리 시인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시를 향한 시인 자신의 각오
이기도 한 것 같아 그의 시사랑이 앞으로 태어날 시작품들이 가슴 설
fp 도록 기대되기도 한다.
  공학박사인 그가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더니 드디어 그 늪에서 헤어 나와 이웃을, 사회의 어둠과 아픔을 꿰뚫어보며 화해하고 소통의 길을 모색하느라 모든 사물을 깊이 통찰하려 골몰하고 있다. 김성덕 시인이 고래들처럼 소리의 터널을 찾으려는 간절한 길 떠나기는 시집에서 황정산시인이 구체적으로 조명했으므로 필자는 그의 묘사력과 상상력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기로 한다.




봄빛 그윽한 각연사 앞뜰
늙은 보리수나무에 굴집을 짓고 있는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 
딱, 딱, 딱 …
젊은 스님의 목탁소리 행간에 몰래 숨어 
능청스레 암컷을 부르다가 
순간, 부리를 세워 숨을 멈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대웅전 추녀에 베여 동강난 고요가 
댓돌 양기를 지그시 밟고 있는 
하얀 고무신 안으로 똑, 똑, 똑 
떨어지고 있다

* 色卽是空 空卽是色 :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로, 형상은 일시적인 모습일 뿐 실체가 없으며 실체를 갖지 않아도 형상이 있다는 의미
-[4월 엽서] 전문
특히 이 시는 몇 년 전 문화공보부가 선정한 좋은 시로 뽑혀 상금을 받은 작품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김 시인의 눈매가 능청스럽거나 짓궂어 보일 정도로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종일 낚시찌만 바라보다가 월척 한 마리 낚아내는 손맛을 아는 강태공처럼 사월 양기 오르는 봄날을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와 젊은 스님과 반야심경 한 구절을 맛나게 비벼 독자를 슬며시 미소 머금게 만드는 재주를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고요가 대웅전 추녀에 베여 동강난다든지 하얀 고무신이 댓돌 양기를 지그시 밟고 있다든지 이런 예사롭지 않은 시안의 눈매를 갈고 닦는 데는 많은 각고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그런 어둠의 시간들이 다음 두 편의 시에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문득 나는 보았지
한때는 큰 산에 바위였을, 하지만 
작다고 걸어온 세월도 짧은 건 아니라는 걸
둥글어도 숱하게 모난 시간이 있었다는 걸,
그날은 왠지
동그마니 쪼그려 앉은 내 앞으로 
밀려오던 파문도 그다지 밉지 않았지 
작은 조약돌 하나 
돌아오며 주머니에 깊숙이 넣어두었지

--[주머니 속의 조약돌] 부분


날 선 면도칼이 
여러 빛깔로 위장된 거죽을 모두 벗겨내고
약한 심(心)을 조심스럽게 
갈고 갈아내야 
비로소 
하얀 종이 위에다 
쓸만한 詩 한 수를 앉힐 수 있다 
-[연필심으로] 부분

조약돌 하나에서도 그의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보라보며 연필을 깎으면서 그 사물의 시적 진실을 찾아내려는 내면 성찰로 직관력을 갈고 닦는 김성덕 시인의 삶과 시작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각오가 그를 성실한 사회인으로 보이게 하는 중요 요소일 것이다. 
또한 시를 쓴다는 것은 자아 찾기의 한 방법이기에 냉정하게 날카롭게
자신을 비판하고 꾸짖기도 한다.


  

가슴 한 복판에는 
언제나 자식이 대못으로 박혀 있었지만
때로는 발끈하여 쑤셔대도 빼내버리지 못한 채
용광로처럼 얼마나 애간장만 끓었던지 
무쇠가 녹아 
자주 빛 응어리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대못에 평생토록 매달려있던 
내가 보였다
-[어머니의 젖꼭지]부분

아직 살아 펄떡이는 햇살의 비늘들 
검버섯 돋아가는 얼굴에 사정없이 꽂힌다 
어디 햇살뿐이랴, 갈잎도 그믐달마저도 
때론 날카로운 비수였으니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일 목을 조르는 일이다

----넥타이를 매며

시를 쓰기 전엔 얼마나 무심히 살았는지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지 않는가? 어머니의 젖꼭지에서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을 넥타이를 매면서 매일 목을 조르듯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 그리고 늦게 철들어 이미 어찌할 수 없이 무기력한 자화상에 애간장 끓여보기도 한다는 것은


들녘은 황금으로 질펀한데
비어 있는 제 배알조차 채우지 못하고
허울만 좋은 하눌타리같이 
실바람에도 비척거리며 온종일 외발로 서서 
수시로 엉겨드는 참새 새끼 한 마리 
쫓아내지도 못하는 
허수아비
-[자화상 2]


자신을 참새 새끼 한 마리도 쫒아내지 못하는 허수아비라고 투덜거리기도 하다가 통닭처럼 가장이란 책임을 벗어던지고 찔락거리며 훨훨 춤추고 싶은 충동을 솔직히 고백하기도 하면서 



별로 쓸모없던 그 똥집 
가장이란 신나지 않는 노숙의 벼슬 
한 뼘도 되지 않는 목울대도 싹둑 잘라 버리고
그래 이제 모두 다 버리고
하늘로 훨훨 날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날아오른다고 착각하고 싶은 것이다 
붉은 조명등 아래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이름 모를 무용수처럼
-[통닭집에서] 부분

자신보다 어느새 이웃으로 눈길을 돌려 지하도 노숙자에서 보리밭을 연상하고 어부에게서 치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삶의 근원을 찾아 탄식하기보다 모시  조개 몇 마리 잡기 위해서 손가락의 피라도 제물로 바쳐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며 더욱 가시를 세워 긴장해야 겠다는 각오를 직정이 아닌 적당한 은유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직도 꽃샘추위 덜 가신 서울  
역 지하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겉보리 닮은 사람들 
지나가는 전동차 쇳소리에 일렁이고 있다 
-[서울 보리밭 ]


개펄에서 모시조개 몇 개라도 얻으려면 
어느 때는 손가락의 붉은 피를 
죽은 조가비에게 제물로 바쳐야 했다
개펄에서 낙지 한 마리라도 잡으려면 
얼굴이 온통 개흙투성이가 되더라도  
펄 속에 머리라도 처박고 있어야 했다
- [어느 어부의 이력서] 부분

이제까지의 시들이 자화상과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다음 시편들은 더욱 사물의 형상화와 이미지의 묘미에 능청능청 빠져들고 있다.

  

늙으신 어머니
요번 가을 들어 옹알이처럼 하시는 입속 말씀 
못난 놈, 겉만 멀쩡해 가지고

내 할 말은 없지만 가끔 억울합디다 
그래 어느 날 달밤인가는 
헛간 뒤로 나가 바지춤을 훌떡 내리고 
홧김에 허공에다 대고 오줌을 갈겼지요
아, 그런데 글쎄 
별똥별 떨어지는 하늘 한가운데 
새파랗게 질린 계집 하나 
쟁반만 한 엉덩이를 돌려 앉는 게 아닙니까 

어머니 걱정과는 달리 
아직 제 속도 괜찮다 이 말입니다
-[노총각의 변명] 부분

이 런 표현을 읽으며 은근한 미소 흘릴 수 있는 독자라면 이미 멋쟁이 시인일 것이다. 오줌 줄기의 세기로 남자들은 어깨 으쓱거린다는데 그 오줌 줄기가 보름달까지 올라갔으니 대단한 힘이 있는 노총각인 듯 썩히기 아깝기도 하지, 그러니 그 어머니 속이 더 끓어오르지 않겠는가?
  
사시사철 푸른 네 바다에는 
봄에도 꽃피지 않더냐
그 무엇이 부러워 
들장미처럼
꽃피우고 가시를 달았는가
네가 세운 가시 때문에 
그물에 걸려
이제 비린내 나는 어시장 한 구석
작은 방에나 갇혀
긴 손톱에 꽃단장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지나는 행인을 유혹하는
너,
봄을 파는 여인
--[꽃게]

꽃게를 들장미로 은유하여 봄을, 몸을 파는 여인까지 유추하여 가는 김 시인의 감각적인 상상력이 얼마나 신선한가? 나이에 상관없이 등단으로 따지면 젊은 시인다워서 겉보기 보다 무척 참신해 보인다. 이런 부분이 그냥 묻혀 버리는 게 안타깝다.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시 한편을 진지하게 읽어주는 풍토가 되어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름 있는 사람만 늘 읽히거나 거론되고 무명은 그늘에서 외롭게 시작활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 그늘과 외로움의 늪에 달빛도 낙엽도 쌓여 푸욱 썩어야 정말 감칠맛 나는 깨달음의 득도를 할 수 있는 길이 생기게 될 것이기에 마음은, 눈길은 늘 황량한 들판의 늑대처럼 굶주려 있어야 한다.
장독항아리 뚜껑 위
소낙비가 만든 작은 연못에 
하얀 나비 한 마리,
몰래 제 얼굴 비춰보다 빠져버린 
나르시스*

소금쟁이 두 마리가 
아까부터 부지런히 물어뜯고 있더니 
속살은 거의 다 파먹고 
이제
날갯죽지 반쪽만 남겨놓았다
-------[낮달]

그런 외로움이 장독 항아리 뚜껑에 나비의 날갯죽지 반쪽을 낮달로 형상화 하고 자목련 꽃봉오리에서 성적이면서 도발적이기도 한 연상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저력이 되는 게 아닐까?
   
아니 저기를 좀 봐 
저것들은 떼거리로 미친 모양이지
어린애들 초등학교 운동장 담벼락에 기대어  
그것도 훤한 이른 아침부터
씨받이 물건들을 홀랑홀랑 까서 
하늘을 슬슬 쑤셔대고 있는 꼴들이라니 
얼쑤, 이미 부끄럼 가리긴 글렀군 
저 가지 위에 뿌려진 우윳빛 구름을 보면
-[자목련 꽃봉오리] 

면도를 하면서 서부 애리조나 가는 길목에서 보았던 나무 선인장에 돋아난 가시들을 연상하고 출퇴근하는 지친 발에서 고니 한 마리를 발견하기도 하니 김성덕 시인은 서서히 신기가 들어 곧 내림굿 잘 받은 무당으로 다시 태어날 지도 모르겠다. 







세파에 수없이 고개가 꺾었을 
아랫도리를 스스럼없이 내보였을 
물새 한 마리,
오늘도 늦은 밤을 끌고 퇴근하는
아파트 현관
벗고 있는 신발 속에서
지친 발보다 먼저 구정물이 쏟아진다 
-[고니가 사는 법] 부분 


몽돌 하나에서 설원 에베레스트의 쪽바위를 찾아 올라가 한때 우리 아버지들도 꿈을 찾아 사탕수수밭, 탄광 막장 그리고 모래사막으로 지구를 몇 바퀴나 돌고 돌아서 고향집으로 돌아오길 한 평생이 걸렸다거나 광어를 부두 위 막노동꾼들과 비유하기도 하여 사물의 전생까지 찾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갈비뼈를 드러낸 채 눈을 부릅뜨고  
하얀 융단 위에서 술 몇 잔 받아먹은 후
기차에 실려 어느 항구에 도착했다
고향 잃은 서러운 자들만 모여 
괭이갈매기 떼처럼 떠들어대는 부두 
날카로운 혓바늘만 둥둥 떠다니는 바다에는 
분노만 활화산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나라고 세상에 할 말이 왜 없었겠는가 
꾹꾹 참고 있었을 뿐이지, 그래
나도 이 기회다 싶어
웃통을 벗고 붉은 바다로 뛰어들어 
하늘로 삿대질해대며 밤새 핏대를 올렸다
내 몸도 어느새 피투성이가 되었다 


--- [광어와 하룻밤을 놀다가] 부분

그러면서도 김시인은 시 쓰기에서나  삶에서 끈질긴 치열성을 노래하기도 한다. 밟히면서도 아니 밟히면서 살아남겠다는 낡은 타이어가 되어 바람 새더라도 끝까지 굴러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 그 부드러운 웃음 뒤 당찬 오기가 더욱 믿음직스럽다.



밟히는 일이 어찌 달가운 것이랴 
어차피 한 세상 살다 보면 
고개 꺾이는 일들 수없이 많을 게고 
때론 마음도 짓이겨져 만신창이가 되는 걸, 
밟혀야 비로소 산다면 
구둣발이든 맨발이든 칼 발이든 똥 묻은 발이든 
그 발이 어떤 발인들 무슨 상관이랴 

기나긴 엄동설한과 함께 노숙했어도 
새벽이면 쑤셔대던 서릿발 칼침에도 쓰러지지 않고 
밟히면 밟힐수록 어금니 악물고 납작 엎드려 
길바닥에서도 살아남은 질경이처럼 
환한 봄날만 맞이할 수 있다면 
그래 밟아라, 아주 꼭꼭 밟아라
------[보리밟기]





수 없이 자갈길, 비포장도로를 가듯 
세상을 살다보면 바람 새는 일이
어찌 헌 타이어뿐이겠는가
하늘 높이 떠돌다 기어이 터져버리고야 마는
고무풍선도 있는데 
---[낡은 타이어를 보며] 부분

그런 오기들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어려운 과정일 텐데 김성덕 시인은 이미 그 지점까지 도달한 듯 보인다.



이왕에 내 생을 태워 피워야할 꽃이라면 
저 지하도 구석에서도 밤새도록 피는
붉은 연꽃이면 더 좋겠다
쉬잇! 지금
생불 두어 사람 
대리석 좌대 위에 앉아 참선에 들고 있다
--[꽃무늬 가로등의 생각] 



요사채 앞뜰에서 본 노스님
미소 지을 듯 말 듯했던 주름진 얼굴을 닮아 
가만히 다가가 들여다보니 
한 줌 붉은 사리만 남기고 열반하였다

-[늙은 호박 열반하다] 

그것은 뇌리에 각인시킨 사물을 씹고 또 씹으며 직관력과 관찰력 사고력으로 잘 소화 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실감 유리로 부단히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시에서 묘사는 묘사를 하기 위한 묘사가 아니라 시적 진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반짝이는 묘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는 뒤 여운이 없다. 그 시 속에는 어떤 깨달음이나 가슴의 전율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도 노숙자를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늙은 호박을 열반에 드신 노스님으로 재창조하면서 자신의 유배지에서 탈출을 꿈꾸는 시인 김성덕은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있지 않은 
자전거 바퀴같이  
폭풍우 속을 함께 가기도 하고 
때론 진흙탕에서도 같이 구르기도 한다 

평생토록 앞만 보고 달려도 
겨우 한 자, 중심축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 때는 넘어져  
제 맘대로 돌기도 하지만 또다시 일어나 
앞뒤에서 끌며 밀며 가야하는 

그리 멀리도 아주 가까이도 아닌 
두 개의 바퀴 
---[부부]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있지 않은 자전거 바퀴 같은 부부처럼  진흙탕을 같이 구르며 인생길 끌며 밀며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조화된 삶을 유지하면서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위한 구도자의 자세로 남은 여정을 가기 위해 서로의 소통을 갈구하고 있다. 뉴질랜드에 있는 암컷고래가 짝이 그립거나 급히 부르짖는 소리가 동해 해안에 있는 수컷고래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물론 바다에 소리 터널이 있다고는 하지만 서로의 간절함이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서로 그 간절함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려는 마음가짐이 바로 소통의 길일 것이다. 다시 김성덕 시인의 [동산바치의 사랑] 출간을 축하드리며 더욱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으로 남을 시를 위한 확실한 시바치가 되길 기원해 본다. 




푸른 연밭의 그늘 
  
             서정임


한 겨울 연밭
플라스틱 간이 의자처럼 들어앉아
꽃대를 키우던 푸른 연잎들 흔적이 없다
군데군데 남아 나딩굴고 있는 누런 대궁들
잉크 바닥나 내던진 볼펜자루다

연밭둑을 걷는 내가 무겁다
아직도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진흙덩이들
눈앞에 떠오르는 기억의 잔영이 선명하다
나도 언젠가는 저 연밭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으리라
단계 단계 밟아 올라가리라
노트 위에 쓰고 또 쓰던 다짐과 주의해야할 행동지침들,
하지만 오로지
목적을 위한
목적을 향한 맹신은 덫이었다
쉽사리 헤어나올 수 없는 진흙탕 속으로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었다

호주ㅡ머니 속 대출금 상환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만져진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내준 월세보증금과 대학등록금과
친구의 친구까지 불러 모조리 쓸어 넣은 저곳
아, 한동안 내 젊음이 뿌리째 저당잡혀 있던 저 묘지

눈이 내린다
갑자기 들이닥쳤던 그날의 단속처럼 연밭이 온통 하얘진다

[ 시와 소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인상 깊은 작품을 찾느라 잡지들을 뒤적이다가 만난 서정임 시인은 2006 문학 선으로 등단한 아직 시집 한 권 상재하지 않은 시인이다. 그러나 독자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감동을 주는 시인이라는 점에 놀랍고 반가웠다. 겨울 삭막한 연 밭에서 푸른 연 밭의 추억을 볼 수 있는, 얕은 시안에서 삽질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파헤치고 들어가 다단계, 그 여름 꿈을 위해 저당 잡힌 삶의 그늘을 찾아낼 수 있는 끈질긴 상상력과 직관력의 연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못에서 거친 숨소리 하나 없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 현상으로 슬쩍 옮겨가는 체험과 체험의 변용과 비약, 꼬리를 슬쩍 비틀어 삼천포로 빠질 줄 아는 그 노련한 솜씨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겨울 연 밭을 가 본 적 있는가? 한 여름 연꽃 만발했을 때만 나비인양 떼 지어 찾아가지 않았는가 ? 잠시 시인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꽃만 보고 감탄사나 내지르는 난 옳은 시인이 아니지. 참시인은 겨울 찬바람에 까맣게 말라가는 대궁에 매달려 고개 꺾여 진 채 흔들리고 있는 연밥에서 과거 어느 때의 자신의 모습 또는 추위에 떨고 있는 누구인가를 연상하느라 가슴 아파하며 깊이 안타까움에 잠기는 사람일 것이다. 
 또 달리 바라보면 잘 여문 씨앗들을 가득 품고 있어 한 겨울 연못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재생이든 연상이든 깊은 반성과 자비심, 사랑으로 시인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는 길이 있어, 고단한 삶을 연꽃보다 더 귀한 작품으로 가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밤잠 설치고 있을 것인가.  





고래사냥

강상기  



고래는 키우지 마라

청년이라면
고래를 키우지 말고
때려잡아야 한다

고래는
새우 등쳐먹지 않느냐?


[문학청춘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예사롭지 않다. 시의 행간에 많은 수다를 감추는 솜씨, 높은 양반들 은근슬쩍 골탕 먹이는  탈의 표정과 춤사위 아주 능수능란하다. 강상기 시인은 등단 사십년의 시력이 날카로운 통찰력과 풍자 해학의 대선배님이시다. 참여시는 대부분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듯 직정이 난무한다는 무식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라 눈이 번쩍 뜨여지는 즐거움이 있다. 
 다음 시 한편으로 시인의 작품성향과 모습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똥밭에 사는 나를 구더기라고 비웃지 마라 똥밭으로 알고 사는 것은 구더기가 아니다 똥밭을 황금밭으로 알고 사는 구더기들아" - '구더기' 전문
 고래가 어떤 이들에게는 동경과 꿈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강상기 시인에게는 거대한 기관이나 권력의 독재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힘없는 국민들 괴롭히는 그들을 짧은 시 한편으로 통쾌하게 웃어줄 수 있으니 시인은 참 위대하지 않은가? 삶과 현실의 단면을 가슴 밑바닥 예리한 촉각으로 도려낸 압축미와 독자들에게 사색과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하는 신선한 소재와 주제의 선명함에 부러움을 보낸다. 
 시인은 모든 사물을 시시각각 제 마음대로 정의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주란 말 실감할 수 있는 여러 작품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니 평소 해학과 풍자를 즐기는 처용아내의 매서운 눈매에 잡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화무늬 진 필리핀산 수석을 그냥 얻다
이하석

이월 천둥이 흔들어야 속 여는 게 매화라지만,
이건 열대의 끓는 파도가 흔들어 깨운 것
공교롭게도 꽃모양이 거친 제 몸 뚫고 나와 
성근 抽象으로,
꼭, 피어있다.

臘梅 아니라도 雪中에 보는 매화는 어둠 머금은,
전망 밝은 향기를 갖는다고,
나는 돌에 물을 주어서 꽃빛을 키운다.

돌이 오래 걸려 제 몸에 지펴놓은 걸 바닷물이 닦아
드러낸 매화는 돌 기르는 이가 자주 물주고 쓰다듬어 키워야
더욱 밝아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멀리서 온 봄을 제 것으로 기르는 
겨울이 있다.


[ 시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경주 탑곡의 사방불 바위를 본 적 있는가? 남산 한 자락에 세 개의 탑이 있다고 탑곡이란 이름이고 큰 바위 사방에 부처와 무려 43개의 조각이 새겨져 있으니 사방불로 불린다. 별로 가파르지 않은 곳에 거대한 바위가 천년 넘도록 발기한 채 부처와 탑, 승려들을 새겨 온 세상이 불국토 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딱하기도 하면서 그 고집스런 집념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력 근 사십년이 넘는 이하석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뭔 뚱딴지같은 소릴하고 있는지 투덜거리며 다시 읽고 또 읽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무슨 인연인지 이하석 시인은 돌과 사랑에 빠진 시인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뼈만 남은 돌 한 개는 찾고 마는 식성인 그가 그 말없는 돌이 밀어 올린 매화 한 송이에서 향기까지 피워내는 온기를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사 현직에서 물러난 그는 매우 춥고 쓸쓸한 자화상을 보며 봄을 기다리느라 공연히 수석에게 주문을 걸고 있는 건가. 아님 느긋한 마음으로 그런 외로움을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매화는 무조건 설중매로 아는 내 무식한 관념에 쇄기를 박는 시이기도 하다. 매화에도 여러 품종이 있어 설중매, 홍매, 수양매, 납매臘梅로 나눈다고 한다. 그 중 납매臘梅는 엄동 섣달에 피어 노랑 빛으로 꽃장을 오므리고 땅을 향해 머리 숙인 고급 매화종류. 그는 이미 많은 꿈을 이룬 시인인지라 말은 설중매라면서도 실은 납매 한 송이 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고결한 아름다움과 사랑에 푸욱 빠지고 싶어 무뚝뚝한 돌 쓰다듬으며 단디 발기한 채. 
 그의 많은 초기 시들이 문화적 충돌에 대한 비관적 시였지만 요즘의 시들은 그 아픔들을 품어 안겠다는 듯 참 따스하다. 어쩜 처음부터 그 깊은 속마음은 그 모든 슬픈 현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겨울이라며 그들을 위해 미륵불에 기도하는 자세로 향기로운 봄을 꿈꾸며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묵호등대  
이동순


저녁 뱃고동 소리 들려오면
가뜩이나 먹빛 바다 더욱 검어지네

도째비골 아래로 채령이네 집
모퉁이 돌아 논골 쪽으로 내려가면 석구네 집
또 그 옆으로는 자야네 집

어스름 속에서 등대는 슬픈 얼굴을 하고
종일 뱃일하다 돌아온 남편과
종일 오징어 배 따고 돌아온 아내가 싸우는 소리를 듣네

창백한 얼굴로 가슴 앓다
혼자 먼 길 떠나간 지아비 생각하며
이 밤도 등대 앞에 젊은 여인의 한숨 소리를 듣네

오래된 공동묘지 옆에 우뚝 서서
길 잃은 사람들의 앞을 밝혀주던 묵호 등대

[ 시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이동순 시인은 경상도 토박이면서 왜 묵호인가? 시집 전체가 묵호 이야기로 연작시를 쓴 교수님이면서 백석 시인 연구로 유명한 평론가 시인이다. 거의 사십 여 년 전 대학시절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편지 서로 주고받은 첫사랑이 살던 지역이 묵호란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그냥 농담일 수도 있겠지만 묵호를 한국인 모두의 고향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시인의 말과 ‘시로 쓴 풍물화첩(風物畵帖)’ 을 위해 아주 적절한 재생적 상상력으로 표현했다는 점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화려한 묘사를 위해 기교를 부리거나 언어 비틀기를 해서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피난살이 중 태어나 열 달 만에 어머니를 여윈 분이어서 그런지 작고 가냘프고 여리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이 시인의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시인의 시들 중 특히 이 ‘묵호등대’는 이동순 시인이 등대가 되어 그들의 슬픔을 보듬어주고 싶은 따스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 한과 눈물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요사를 연구하고 노래 부르는 것인가?  
 이 시를 읽으면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이동순 시인에 대한 의문점들이 점점 풀리는듯하다. 주위에 친구도 별로 없이 혼자 묵묵히 쓰고 연구하고 색소폰을 연주하는 시인의 모습 떠올리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요즘 너무 휩쓸려 다니느라 며칠 째 시 한편 쓰지 못했으니 이 일을 어이할꼬! 시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시인 자신만의 진정성과 개성을 찾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인 것을. 잘 먹고 잘 살면서 늘 자신의 쓸쓸함만 노래한 나의 시들이 부끄러워진다. 



시인의 침대 
문정희

시인의 침대는 에트나 산에 놓여있다
절벽 끝의 화산!
굳이 고독 끝의 분화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산 아래를 본다
오직 앞을 향하여 두 발로만 걷는 사람들이
모두 죽은 사람들로 보인다

왜 뱀처럼 온 몸으로 기어가지 않을까
왜 허공을 걸어온 저녁의 새처럼
두 발을 깃털 속에 넣고
생을 작고 동그란 돌멩이처럼 만들어 
쩡쩡 내던지지 않을까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안감을 댄 잿빛 수건 같은
심심함*을 선물로 받은
시인의 침대는 에트나 산에 놓여있다
잿빛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 꿈꾼다


 [ 시와시학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시는 몸이며, 몸의 길이며, 생명이라는 문정희 시인, 시인은 늘 자신을 반성하면서 자술서를 쓰다 쓰러지는 죄수라며 자신을 닦달하더니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라고 주장하는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에 흠뻑 젖어 있는듯하다. 
 시인은 에트나 화산 위 침대에 누워 자신이 달달 볶아지는 느낌에도 어쩔 방도가 없어 우울하고 고독한 그러면서 이랴! 이랴! 성과급 채찍질에 엉덩짝 두드려 맞는 모습을 신선한 비유로 절실하게 잘 그려주고 있다. 좋은 시를 쓰지 못하면 금세 낙오자가 되어 버릴까봐 두려운 시인의 사회, 그러면서도 여전히 꿈꾸고 있는 화려하면서도 잿빛 수건 같은 심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진작 시작詩作에 나른함을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무능을 깨우쳐 주는 작품인 것 같다. 시가 밥도 되지 못하지만 만약 시가 없다면 세상이 삭막해서 어쩌나? 쓸모없는 것의 쓸모, 아무 쓸모없는 것이 시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이 가슴 아픈 사람들을 살아 춤추게 하는 힘인 것을.
 한창 시 공부하던 시절 문정희 시인의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를 읽으며 기둥 세우려는 남성들을 참 통쾌하게 웃었다. 이제 가정을 지켜야 하니 ‘기둥을 자르다니요?’ 하며 버릇없이 반박하듯 들이대기도 하지만 남자들 보다 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 다하는 시인이 같은 여성으로서 참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상식에서 김종길 대시인이 우리나라 여성 시인들 가운데 지금 처용아내와 문정희 시인 입담이 제일 거세다고 하셔서 와르르 웃었는데 어쨌거나 존경하는 시인 중 한 분의 작품 속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행운 아니겠는가?  
 









감은사지感恩寺址에서
송수권


쌍탑이 노을에 잠긴다
감실 속 할매부처 수그린 이마에
살짝 저녁노을이 앉는다
자애로운 미소가 바닥에 깔린다
천년 대종이 운다
마음으로 듣는
그렁그렁, 이 맥놀림의 소릿결은
어디까지 가려는가
달빛이 오면 저 감포 바닷가
대왕암
저승 속까지 스미겠다
 [ 2012년 시선 여름호]

시 읽기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시로 독자들을 울린 바 있는 송수권 시인, 토속적인 전라도 사투리가 자신의 표준말이라더니 요즘 곤쟁이 젓갈 맛이 약간 서구화된 느낌을 주는 시 한편 읽는다. 
 소리의 세기가 주기적으로 변하게 되는 현상을 맥놀이라 한다. 노을 지는 감은사지에서 그리움이란 말 한 마디 없이 파장이 크게 여리게 물결치면서 한참 잊어버렸던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 시키는 서정시, 역시 노련한 선배님의 묘사력에 감탄하는 마음으로 젖어든다. 마치 서동이 선화공주를, 또는 백제의 한 역신이 처용아내의 달빛미소를 찾아 감포 바닷가를 헤매는 듯 아련한 형상이 그려지는 것은 감은사지 산자락에 내 아버지와 첫 시집 ‘신처용가’ 속 처용의 모델이 된 고모부 두 분이 잠들어 있기 때문인가? 
 어느 시인이 아름다운 경치는 시가 될 수 없다고 했지만 노을 진 저 쌍탑 속에서 송수권 시인은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천년대종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 그리움이 독자들에게 은은히 멀리 전달되는 것이리라. 약한 감성을 지닌 시인의 눈물 맺힌 눈망울이 오버랩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요즘 대부분의 젊은 작품들이 초현실적인 상상력이나 지나친 묘사 때문에 주제를 찾을 수 없거나 너무 건조하다며 쯧쯧 혀를 차는 것은 단순히 나이 탓인가? 그리움이란 징채에 몸 내어 맡기면서 마음의 징 소리 한 번 징, 하게 울릴 그 날이 오려면 아득한 저 시하늘의 게슴츠레한 눈빛을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가. 



현대 여성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시극으로 극화한
「시극」봄날은 간다



신 처 용 가


연작시: 정 숙
대본: 정 숙





-시극-
「신처용가」





<정 숙의 시집 신처용가를 극본으로>  봄날은 간다



M : 경음악(봄날은 간다)
시간: 자정을 알리는 큰 시계추 소리
소품: 달,밤,용광로,술상,술병,술잔,호롱불,찔레꽃
등장인물: 처용아내,처용,기생들,역신, 처용의 술 친구들
해설(녹음):자정이 지난 시간. 봄비 추적추적 내리는 밤
벚꽃 꽃잎이 나풀나풀 떨어진다

(연출):처용이 술상에 기생들과 흥청망청 놀고 있다.[웃음소리]
장구와 기생과 한량춤 등. 가야금 거문고 대금소리 등

2차 3차 장소를 옮겨 카바레로 갑니다.(섹스폰연주:댄서의 순정)스포츠댄스 아니면 사교춤판

처용아내 1: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그러시: 글쎄


처용아내 2: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무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M: 봄날은 간다(노래)- 男,女
-암전-


소리(녹음):[살풀이춤이나 대금연주도 좋습니다.]----[아줌마 3]

해설(녹음):자정을 알리는 시계 추 소리 들려온다
처용아내 수틀을 들고 수를 놓거나 바느질을 하다가 
창가를 서성인다.  
한숨을 쉬다가 봄날은 간다 노래 한 구절 부르다가


처용아내 3: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인 줄 아시지예?
이 가심 속엔예 안죽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비랑끝의 꽃이 이뻐 보인다고
지를 꺾을라카는 눈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그래예?



해설(녹음):여기서 처용아내 꼬냑 한잔을 들이키며 현대판
신식 고냑같은 여인으로 변신한다.



<꼬냑 여자>
M : 배경음악


처용아내 4:
      꼬냑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장밋빛 살결
세월이 더할수록 톡! 쏘면서
화악! 달아오르는 고 맛깔
긴 시간 내성으로 빚어
단내나지 않는
향그러움으로
목석 같은 그 가슴속
불,질러버리고
확, 불 질러버리고
저마저 활활 태우는 한 잔의
꼬냑!


M : 배경음악(바뀌며)

男.낭송(녹음):


해설(녹음):잠시 뒤 천둥번개 소리 나며 역신*[열병을 의미]이 
나타난다.[탈춤을 추며]
꽃 한 송이 입에 물고 처용아내와 눈을 맞추려고 갖은 교태를 부린다. 드디어
 
    
연출: 처용아내 어쩔 수 없이  역신*[병을 옮기는 신]과 잠자리에 든다.
      다리 넷과 신발을 크게 부각 시킨다.[천으로 표현]
      이 때 처용이 취해서 기분 좋게 나타난다.
      방문을 연다. 깜짝 놀라면서 손가락으로 다리를 세는
시늉을 한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깜짝 놀란 두 사람 벌떡 일어난다. 처용이 춤을 추면서
처용가를 부른다. 
   
  
M : 배경음악


처용 1(낭송):
      셔블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가라이 네히어라
    둘은 내헤다 마는 둘은 뉘헤런고
      본디 내헤다 마는 빼앗으니 어쩌리꼬


해설(녹음):역신 처용에게 용서를 빈다.
      처용아내 열이 펄펄 끓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일어나



(웬생트집)


M : 배경음악(녹음)


처용아내 5:                               
가라히 네히라고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 지혼차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 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든 잠 찔레꽃 꺾어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아, 사철 봄바람인 사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붐에 속 골빙든 예편네 
      꿈 한분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해설(녹음):사실 역신한테 병을 옮겨 받아 열이 펄펄 끓었지요.
그런데 웬 사내와 자고 있느냐 하니 열이 날 수 밖에요. 처용아내 너무 억울해서 보따리 싸서 집을 뛰쳐나옵니다.
처용이 후회하며 ( 낭송합니다.

M : 배경음악(녹음)
처용 2(낭송):



해설(녹음):한편 처용아내는 집을 뛰쳐나와 화투판에서 놀거나
캬바레에서 춤을 추기도 합니다.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6: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귀케: 귀하게
*제비캉: 제비하고

처용아내 7-
자갈마당이 어덴공?
-처용아내 80 [태산이 높다하되]

서방님이 등산 간다 카고,
뒷잡이 꽃밭에 물주러간다 카고,
앞집이 경마장 간다카미 나갔다 카는데
자갈마당이 어데 있는공?

집안에도 두리뭉실한 산이 있고
빌로 볼품없어도 꽃밭과 튼튼한 말 안있나?
동네 싸나아들 와, 해필 와, 자갈마당에 가노?
집에서 냄비따고, 굴뚝 소지하믄 
덧나능가 머?

눈물로 핀 들국화가 더 애처럽고 더 이뿌다꼬?
길섶에 채송화가 더 근지러분데 잘 긁어준다꼬?

싸나아들이 철드자 망령든다 카디
갈수록 태산 아이가.
지 암만 노푸다 케싸도 다 내 손 안에 안있나.
부처님 손바닥 아잉가베.



처용아내 8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처용아내 9 봄비  [정 숙]





옥황상제님 처용 색시캉 거시기 황감했던지
간밤에 비 흠뻑 내맀어예

바람도 없이 봄비가 촉촉히, 아주 촉촉하게
가뭄에 쩍쩍 갈라졌던 논빼미 새로
논고디가 타는 갈증을 적시디예

3년 과수 꼬장주도 젖어 신나게 쌕쌕카는데
오래뜰 쓰는 싸리비의 휘파람 소리 흥겨버
추녀 끝 밀고 옆의 옆 홀아버니 댁 
흙담 밑 홀아비좆을 사알살 간지리데예

봄비!
니, 니, 그 칼래?  




처용아내 10-
봄, 설해목   [정 숙]


몸은 무디어져 뻣뻣해지는데
마음 밑뿌리부터 끓어오르는
저 환장하는 원죄,
그리움이 휘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내 그림은 승무를 춘다
하이얀 고깔은  
꽃과 향기를 옥죄는 신들의 말씀
죄 없는 한지 찢어지도록 
욕망의 그늘 색칠한다
연분홍 색깔까지 덧바른다
바람은 창문을 뒤흔들며 
울부짖는다
살빛 꽃 이파리들 흔들어 깨운다
멀리 멀리 날려보낸다
날아가는 꽃잎들 맨발 시리다
내 그림에도, 봄밤에도 때 아닌 
사월 눈발 
그 아득한 눈 무게 
툭, 마음 가지 하나 부러뜨린다


처용아내 11-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퍼뜩 생각났던 것이다일억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 앞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긴긴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기어이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M : 배경음악(녹음)


※엔딩송 : 봄날은 간다(다같이)-인사(경례)춤을 춘다






-End-

「봄날은 간다」

용서 

     장혜승


장미나무가 가시를 솎아내고 있다
꽃다운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
울부짖는 생살을 꾸짖으며 가시를 솎아낸다
떨어져나가서도 가시인 줄 모르는 가시는
뿌리의 근원을 찾아 더 날카롭게 파고든다

분노가 된 가시는 알뜰히 기억한다
수많았던 길들이 기어이 지워졌다 할지라도
시발점은 언제나 명료했던 것

너무 긴 울음은 꽃의 울음이 아니다
울음이 갈수록 꽃은
제 뼈를 갉아대는 가시가 된다
장미나무가 장미다운 꽃을 피우려면 손수
제 몸의 가시를 솎아내야 된다는 것






      묘사의 정석

         정 숙 [시인]


 현대인은 이미지를 모르면 문맹이라는 말 누가 했던가?

 용서라는 관념적인 단어를 장미의 가시라는 사물로 묘사하여 감각화 하고 구체화한 시를 소개하려 한다. 세상이란 험한 바다에 살다보면 물론 좋은 사람이 더 많지만 많은 배신자를 만나게 되고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가시를 곧추세우게 된다.

 어느새 온 몸은 가시투성이, 그 가시들이 제 생살을 찌르고 뼈를 갉아먹고 울다가 결국 스스로 떼어내어야만 한다. 시인은 그 가시들을 떼어내면서 또 다른 아픔으로 시를 쓰고, 좋은 시로 승화시켰을 때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운 것 같은 공감을 얻게 된다.  

 용서란 거룩한 단어를 이처럼 확실하게 그림으로 그려 형상화한 시인의 묘사력을 보며
젊은 우체부 마리오를 생각한다.

“파블로 선생님 시가 무엇인가요?”
“은유가 무엇인가요?”

 고뇌에 찬 그 청년이 베아트리체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 같다 며 겨우 말문이 트이는 기쁨과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떠지는 그 과정들, 시집 몇 권 발표해도 모르고 지나가는 문맹인 필자를 반성한다. 

 자신만의 창조적인 말 한 마디를 뱉어 내려는 검은 눈동자와 그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먹어대는 눈은 뜨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당달봉사인 한 남자가 오버랩 된다.






터럭 한 잎 걸머지고 
-고 최명길 시인에게
                박호영

산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설악 깊은 곳 찾아 정좌하셨는가
그대 말씀대로
터럭 한 잎 걸머지고
우주 속으로 들어가셨는가
오월의 녹음 향그러운데
그대 홀연 자취 없고
그대가 남겨놓은
맑은 그림자의 시들만
청음으로 곳곳에 스미어 있네
그러나 죽음이란 없는 것
다만 다른 삶의 길이 있을 뿐
이제 진정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
풀피리 불고 한바탕 춤이나 추며
훨훨 정토의 길 가소서



아름다운 기도
        정 숙 [시인]


 올 한 해는 가까이 잘 알진 못해도 멀리서 지켜본 시인 두 분이 돌아가셨다. 시인의 시처럼 죽음이 아닌 다른 삶의 길, 천국이나 정토의 길로 바쁘게 가신 것일까? 최명길 시인은 목천 만해 님 시인상 시상식에서 처음 만난 시인이다. 은둔 시인으로 고독과 허무를 탐구한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은 시인이다. 검은 먹물 옷에 검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시인은 그 때 벌써 죽음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있었는지 수상 후 얼마가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콧구멍 없는 소*는 최명길 시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하지만 경허스님의 오도송에 들어 있기도 한 말이다.

“중은 시주 밥만 축낸 관계로 죽어서 소가 된단다.” “그러나 소가 되어도 콧구멍이 없는 소만되면 되지” 하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에서 경허스님이 깨달은 말이라고 한다.

 평생 못을 뽑으면서 ‘못에 관한 명상’ 2집을 출간하고 서둘러 가신 김종철 시인도 필자가 등단 시상식을 대구에서 할 때 ‘못에 관한 명상’ 시집이 나와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그 자리에서 5권까지 못 뽑는 작업을 하겠다고 선언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시인이다.

 그런 사실을 전달하려고 이 시를 좋은 시로 선정한 것은 아니고 선배 시인에 대한 존경과 더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시기를 기원하는 후배 시인의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서이다. 요즘 세상이 하 수상하니 그런 기원이 눈물 나도록 고맙기 때문이다. 나이 들고 보니 죽음이란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길이란 생각이 자주 들기도 한다. 나중 후배들이 그리워할 수 있는 선배시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곰곰 생각해 본다.




정 숙의 첫 시집 ‘신처용가’를 말하다

                                 -정 숙[시인]


1.처용아내와의 만남

 벌써 이십년 전이었나? 1991년 우리문학이란 곳에 멋모르고 등단했다가 ‘아하, 이게 아니었구나’ 깨닫고 세상이 참 많이 깜깜했었다. 이 악물고 다시 1993년 시 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등단하고 난 뒤 비로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집살이하는 맏며느리가 아침 식사 준비 전부터 아파트 뜨락을 산책하면서 바람과 나무들과 대화 나누며 ‘목하 열애 중’ 이란 연작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경로당 드나드는 할머니들께서 벚나무 아래 멍청히 앉아 있는 필자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 ‘에고 아직 젊은 여자가......’ 하면서 약간 이상한 여자로 오해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 뜨거운 작품을 아직 발표하진 않았지만 거의 한권 마무리 끝날 무렵 어느 시 잡지에서 묘사도 형편없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처용아내를 화냥년이라 되풀이 하는 내용의 작품을 읽었다.

‘이런, 처용아내를 살려야겠구나!’ 갑자기 그런 사명감이 차오르는 것은 한 이십년 시집살이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시어른들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며느리가 어느 날 시인이 되었다더니 자랑스러웠는데 느닷없이 처용아내라며 ‘보이소예’ ‘안그래예?’ 딴지걸며 따지듯 했으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그것도 품위 없이 순 사투리로 
 
웬 생트집?
-처용아내 1 [신처용가]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 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자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꺾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 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이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3 [화투장 공산에서]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거짓말 아이라 카이예
-처용아내 4 [반버버리]

어마이 심이 쇠똥가리니 우짜니 카미
추키세우지마 마이소예.
몸뚱이는 커져 부풀었지만서도
서방님예, 지도예
바람이 흔드믄 간들간들카는 봄버들이라예.
실버들이라예.
기집이라 카이예.
다 커뿐 아아들 말 없지예,
새라도 붙잡고
지저귀민서예,
고 넓은 가슴에 기대
어링냥 부리보고 싶다 카이예,
내에 모린 척 피하시는 잘난 서방님,
정말 무심도 하시어라.
하 답답해서예,
저 못생긴 疫神이라도 부리고 싶다 카이예.
참말이라예.
거짓말 아이라 카이꺼네예.


그 칼 퍼뜩 쫌 빼보이소
-처용아내 5 [疫神]

살짝 곰보에 딸기코데예.
이 힘 쫌 보이소예!
찢어진 눈이 불꽃 이글이글거리민서예.
심장이 놀라
녹아질 듯 그 뜨거붐, 火傷 입으까 두려버예.
금새 내 몸띠 불덩이 되디 숨쉬기 애러버예.
사흘 낮밤이 지치지도 안찮아예.
저 싸나아를,
아! 아! 저 싸나아를 인자 감당할 수 없어예.
힘이 가당치도 않아예!
서방님예, 지 맴이사 내내 서방님 향해
해바라기 아입니꺼. 맞지예?
내 가심 이미 검게 타뿌리고 재만 날리네.
오! 미칠 것 겉은 이
어두붐!
무디진 그 칼 퍼뜩! 퍼뜩! 좀 빼 보이소. 예?

2. 그 당시 ‘신처용가’ 시집에 대한 반응

1994년 ‘시와 시학’ 신작 특집에 이 다섯 편이 실렸을 때 반응이 대단했다. 그 땐 순진해서 별 감흥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해 연말 시와 시학 행사에 정 진규, 오 탁번 시인이 참석하셔서 많은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특히 오 탁번 선생님께서는
“신라시대는 기생이란 단어가 없었어요. 기생보다 기집이란 시어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리고 월경이란 말보다 서답이란 시어로 고쳐보세요.” 하시며 차비로 만원을 보태주시기도 하셨다. 참, 부산 갈매기 차 한수 시인도 만원 보태주셨지. 시와 시학 주간 김 재홍 평론가는
‘안 그래예?’ 말을 넣으면 더 감칠맛이 나겠다고 충고해주셨다. 그런 관심에 힘입어 ‘신처용가’ 연작시 시집 한 권이 신들린 듯 완성되어 가고 정 숙의 첫 시집이 1996년 ‘시와 시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처용아내는 바람피운 게 아니라 열병이 들어 병을 옮기는 귀신, 역신에 붙잡혔을 뿐인데 처용이 가무에 능한 한량인지라, 또는 악귀를 손이라 부르는 옛 풍습에서 손은 잘 달래 보내야 한다며 춤추고 시적으로 노래한 것인데 화냥년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지요. 원래 경상도 남정네들이 생어거지를 잘 쓰는 것 아닌가요? 상상력은 끝이 없어 근데 아내가 열병이 들어 아프다는데 춤이나 추고 있다니요. 칼로 역신을 쫓아주어야지요. 왜 칼을 빼지 않나요? 속상해서 열불터진 여편네 화투판에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지요. 사실 이 시집이 출간될 당시엔 노름이나 춤추다가 증권하다가 집안 망한 여성들 얘기가 종종 뉴스로 나오기도 했었다. 또한 간 큰 남자,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남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었고 여성들이 기를 펴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해 연말 각 출판사 주간들이 모인 자리에서 현대시학의 정진규 주간이 올해 출간된 시집 중에서 어느 시집이 좋았습니까? 물으니 김 종길 선생님이 정 숙의 ‘신 처용가’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며 나중 오 탁번 시인이 귀띔해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2000년 현대시학 신작 소 시집에 ‘향피리’ 연작시를 10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 작고하신 김 양헌 평론가님이 해설을 썼는데 수줍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옳게 전하지 못했으나 돌아가시기 직전 생식을 한 통 전해 드릴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 

 어쨌거나 시집 출간 뒤 시와 시학의 수국 여름 행사에서 ‘경상도 말은 시도 노래도 어렵다’ 말씀하셨던 송수권 시인이 벌떡 일어나 악수를 청하셨고 특히 조 병화 선생님이 신 처용가를 너무 좋아하셨기에 김 재홍 평론가가 그 이유는 김춘수 선생님과 별로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라는 추측까지 할 정도였다.

3. 시를 가지고 놀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내 시는 왜 남들과 다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고민을 하다가 좀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시와 시학 행사에서 직접 낭송을 해보았다. 뜻밖에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구 경상도 말이 저렇게 감칠맛 나는가? 면서 많은 박수를 받게 되고 더욱 용기를 얻어 ‘용광로 부글부글 끓고 있어예’ 에서는 빨간 스카프로 가슴을 열어 보이기도 하여 시 잡지 ‘시안’ 행사에서 시인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웃기도 했다. 

 행사 끝나고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쯤이면 조병화 선생님께서 전화하셔서
“ 정 숙 시인 잘 돌아갔어요? ‘휴화산이라예’ 그 낭송 참 좋았어요. 정 숙시인은 앞으로 계속 사투리로 시를 쓰세요.” 또는 “안성에서 편운 문학상 행사가 있는데 참석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는 시집을 살아서 못 갑니더.” 지금 생각하면 “눈치코치도 없이 에구, 그 때 참석하고 했더라면 편운 문학상이라도 줄려고 하신 건 아닐까?”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엔 안성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고 시할머니와 4대가 한 집에 살기도 했던 시집살이에 어른들 눈치 보느라 여러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옆모습을 그려주기도 하시고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지만 몇 년 뒤 몸이 편찮으시단 얘길 듣고 처음으로 혜화동 사무실에 들러보았다. 시와 시학 사무실이 그 옆에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들른 것이다.  선생님은 가릉가릉 가래 소리를 내며 회전의자에 잠드신 듯 거의 누워계셨다. 인사를 드리니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 밥맛이 없어 밥을 거의 먹을 수 없어요.  ” 
“ 선생님, 그럼 생식을 우유에 태워 마셔 보시지예.”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십 만원을 봉투에 넣어 드리니 집에 가시겠다고 해서 가까이 있는 댁으로 부축해 모셔드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었다.

4. 어불리나? 

 구십년 대 말 그 당시 서울 행사에 모처럼 가면 모자 쓰고 투피스 입은 모습이 불란서에서 온 것 같다고 말하면 필자는 능청스레 “어불리나?” 혀를 굴리며 말하면 불어인 줄 알다가 까르르 웃기도 했는데 그 중 경산 출신 이 화은 시인은 
“서울에서 이십년을 살아도 사투리 쓴다고 웃어서 쪽을 펴지 못했는데 정 숙 씨 덕분에 마음 놓고 사투리 쓰니 신나네요.”
서로 모이면 환하게 웃고 떠들고 시인이 되어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고 대구문학 아카데미 시창작반, 시마을, 포엠토피아 포엠 스쿨에서 인터넷으로 시를 가르치는 일 등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 사느라 찌든 시간들에, 주위 사람들에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살게 되었다. 특히 김남조 선생님께서 같은 대구 출신이라며 가끔 계산동 얘기도 하시며 필자의 시낭송을 사랑해 주셨다. 행사 때나 조정래 소설가 앞이나 아무 장소에서도 정 숙의 시낭송을 자랑삼아 시키기도 하시고 행사 후 대구로 내려갈 일 걱정해주며 역에까지 태워주기도 하시고 저녁도 사주면서 신 달자 유 안진 여러 시인 앞에서 낭송과 노래를 시키기도 하셨다. 식당에서 소리 죽여 속삭이듯 낭송하고 노래 부르고 그 당시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종종 필자는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으로 마음뿐이긴 하지만 대구문학 아카데미 대표셨던 박 주일 선생님, 시와 시학 등단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시고 정 숙이란 예명까지 지어주신 이 태수 시인 등 늘 여러 분들께 감사드린다. 시와 시학 시인 당선 시상식도 유명한 시인들이 거의 대구 동아쇼핑에 모여 세 시간 정도 엄숙하게 거행하였고 ‘신 처용가’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김 재홍의 저서 ‘시어사전’에 정 숙의 경상도 사투리 시어들이 많이 등록되었으니 또한 김재홍의 저서 ‘현대시 백년 한국 명시 감상’ 3권에 시집 신처용가 중 ‘웬생트집’ 이 수록되기도 했다. 그래도 기쁜 줄도 모르고 열심히 시집살기 바빴으니 지금 돌이켜 보면 참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 이란 책에 필자의 시 ‘숯’이 실려 있다는 사실과 그 만화 페이지 그대로 전국 체인점 ‘삼초 삽 삼겹살’ 집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저작료를 조금 받긴 했지만 ‘문 인수 ’ 시인이 미당 상을 수상한 작품 ‘삼초 식당’이 바로 수성못에 있는 ‘삼초 삽 삼겹살’ 집이라고 문 인수 시인과 얘기한 적이 있다.

5. ‘신 처용가’ 시극으로 태어나다

 99년쯤인가. 대구문학 아카데미 회장이 되어 ‘찾아가는 문학’으로 문예 진흥기금을 받게 되었다. 경산여고 대학 입학 모의고사를 끝낸 여학생들을 상대로 학교 강당에서 평론가 김 재홍, 최 동호, 정 호승 시인을 모시고 강연하는 계획이 채택되어 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 기회에 ‘신 처용가’를 시극으로 해보고 싶어서 김태석 연출가를 만나게 되었다. 처용아내 2 ‘휴화산이라예’를 처용아내가 낭송하면 역신은 탈춤을 추며 나타나 처용아내와 놀고 있을 때 술 취한 처용이 
깜짝 놀라 춤추며 ‘처용가’를 부른다는 내용의 시극이 처음으로 공연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처용 역할은 ‘여 한경’ 시인이 맡아 열연을 해주셨기에 늘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이것을 기점으로 수덕사, 만해마을, 강원도 박경리 마을 등 여러 행사에서 또는 서정시학이나 시와 시학 청소년 수련대회 시극대회에서 급히 학생들을 지도하여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법왕사에서는 초파일 전야제로 마당극처럼 꾸며보기도 하고 ‘한국낭송 문학회’ 주최와 시의원들 후원으로 푸른 극장에서 2011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시극 ‘봄날은 간다’ [극본 정 숙]가 무대에 올려 져 마지막 장면에서 문무학 문협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시의원님들이 무대에 올라가 같이 춤을 추기도 하였다. 낭송가 최 경자와 같이 연출하고 처용 역할도 연기한 이 병훈 수필가, 그리고 또 다른 처용 역의 장 사현 수필가와 처용아내 역의 김 미숙 낭송가 외 여러분들의 열연에 깊이 감사드린다.

 공 영구 지금 문협 회장님을 비롯하여 사교춤을 추면서 역신 역을 열연해주신 분들 그리고 박이화, 이자규, 정하해, 서하, 장혜승, 김성춘, 김영근, 황명자 시인 재미동포 박민흠 시인과 시노래 진우님 김소란, 기미숙, 곽도경, 곽홍란 시인 등 많은 시인들이 함께해 주셔서 필자 평생의 영광이었다. 

6.이제 월궁 카바레와 자갈마당으로 가보실까요?

 친정아버진 사투리를 못 쓰게 하시고 품위를 지키는 여성이 되길 원하셨는데 꽤 품위 있어 보이는, 딸 친구 어머니의 사투리가 아주 구수하게 귓가에 맴을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투리와 점점 가까워지고 처용아내 연작시를 자꾸 쓰다 보니 나중엔 필자 자신이 진짜 처용아내의 환생인양 신이 나서 마구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그래, 신라 시대 표준말은 바로 이 경상도 사투리지. 누가 뭐라 하던 한 번 우겨 보는 거야.
이 사투리가 우리의 古語 고어이니 [정 진 규 시인은 모국어라고 함] 국어국문학과 나온 사람이, 시인이 전달하고 가꾸어야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시를 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즐기는 연구도 필요하지 않은가?”
 사투리는 아주 많은 말들을 줄여서 쓴다. 충청도 말이 가장 줄인다고 ‘개를 먹을 줄 아느냐?’를 ‘개 혀?’ 한다고 누가 자랑을 하기에 ‘경상도 대구 사투리도 많이 줄이는데?’ ‘개 무? 하면 다 끝나는데 ’ 해서 서로 웃었지만 자꾸 사라져가는 사투리들이 있어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고백하는 것은 필자가 향가 중 ‘처용가’를 패러디한 이 연작시들을 소설 쓰는 기분으로 신들린 듯 쓰면서 남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이유와 구십년 대 그 당시 시대와 사회상을 그리고 증권과 부동산 매매로 살림을 불리는 여성들에 대한 필자의 부러움을 잘 표현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독자 여러분들이 인정해 주시면 고맙겠다. 처용의 모델이 된 분들은 경주 양남 대왕암 가는 길 쪽이 고향인 아주 미남이셨던 두 고모부님이란 것도 밝힌다. 근 이십년 동안 신 처용가와 처용아내를 사랑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 올린다. 네 번 째 시집 ‘바람다비제’ 로 현대시 박물관에서 제정한 제 1회 ‘만해, 님’ 시인 상을 수상했지만 그 상도 결국 이 ’신 처용가‘ 시집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다음은 ‘신 처용가’ 시집 3, 4부에 수록된 부부가 서로 찾아다니다가 다시 화합한다는 내용의 몇 작품들이다.

제비캉, 꽃뱀캉
-처용아내 65 [춤바람]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물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자갈마당이 어덴공?
-처용아내 80 [태산이 높다하되]

서방님이 등산 간다 카고,
뒷잡이 꽃밭에 물주러간다 카고,
앞집이 경마장 간다카미 나갔다 카는데
자갈마당이 어데 있는공?

집안에도 두리뭉실한 산이 있고
빌로 볼품없어도 꽃밭과 튼튼한 말 안있나?
동네 싸나아들 와, 해필 와, 자갈마당에 가노?
집에서 냄비딲고, 굴뚝 소지하믄 
덧나능가 머?

눈물로 핀 들국화가 더 애처럽고 더 이뿌다꼬?
길섶에 채송화가 더 근지러분데 잘 긁어준다꼬?

싸나아들이 철드자 망령든다 카디
갈수록 태산 아이가.
지 암만 노푸다 케싸도 다 내 손 안에 안있나.
부처님 손바닥 아잉가베.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통시깐에서 웃는다꼬예?
-처용아내 84 [다시 사랑가]

보약이라꼬예?
자민서 지가 헛소리 자꾸한다꼬예?
서방님......
지 달구똥 겉은 눈물 딲아주시이까 디기 더
서러버지네예.
산다카는 기 한바탕 꿈이라꼬예?
빈 하늘이라꼬예?
떫은 감이라꼬예?
꽃이라 카는 거는 마카 꺾어봐도
지 낭게꽃이 젤 좋다꼬예?
툭수바리 딘장 끓는 냄새가 오늘따라
더 구시하다꼬예?
아이 서방님, 와 이카십니꺼. 누가 보믄 우얄라꼬 예.
여핀네 골로가믄 통시깐에서 웃는다 케도
순 거짓말이지예? 맞지예? 맞지예?
"아따, 어징가이 지꺼리라! 짐 마카 샌다고마."
"암딱이 우믄 집구석 망군다 카는 거 니 모리나?"

치맛바람
-처용아내 86 [암딱소리]

와 이래 씨끄러부냐꼬예?
집집마다 암딱 우는 소리 아인기예.
인자는 암딱 소리가 젤로 큰 집이 잘 사데예
칼 빼내삐린 남정네들이 가마 구경하다가 
떡만 자시믄 되는 기라예.
소리 큰 암딱은 손 크지예, 또 치맛바람은 얼매나
씨다꼬예? 아씨예?
고 치맛자락 펄럭일 때마다
아파아트 한 채가 왔다리 갔다리 안합니꺼.

장딱만 믿고 잠자던 암딱들이
칼 때신에 손톱 끝 기게, 날카롭게 갈민서
마카 꼬꼬댁! 꼬!꼬!거리야 잘 사는
시상이, 시상이 진짜 왔단 말이라예.



정태일 시인을 애도하며
            
극락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측량하러 떠나시다


 임고면 고향집 마당에 야생화와 작은 연못까지 손수 만들어 달빛이 내려와 놀게 하시고 아침저녁 함께 뒹굴며 텃밭에서 주고받았던 꿈의 퍼즐들 모아 박꽃 하얗게 피어나는 오두막을 꿈꾸던 시인, 정태일 선생님
 
 석등이란 시에서 ‘이 세상 참 아름답다고 환하게 불 켜는 석등이 되고 싶다 시더니, 새가 되어 구름 딛고 설봉으로 날아가고 싶어’* 하시더니,어디로 그리 급하게 떠나셨습니까? 달이 놀다 가는 연못이라며 월유당을, 또 다른 작은 연못은 딴못이란 이름을 문인수 시인이 지어 주셨다며 자랑스레 소개하시던 지난해 여름의 밝은 모습 아직 생생합니다.
 
 뒤 안 큰 은행나무 아래서 모친 살아생전 다친 노루 다리에 약 발라준 얘기며, 잔디밭 잡초를 뽑으며 문학관 조성을 꿈꾸셨지요. 전설 같은 그 얘기 듣고 서투르게 채색화를 그려드렸던 일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선생님, 지금도 어렵게 살리고 있다던 고향 그 소나무 아래서 ‘구부정하고 비탈진 생애를 측량하고’* 계실 것만 같습니다. 같은 포은 선생님의 자손이라며 영천시에 새로 지은 포은 정몽주 기념관과 임고 댐 건너편 영일 정가들의 아늑한 조상 산소에서 노비의 무덤, 시총까지 그리고 포항 제실과 시조의 시제까지 정가 문중 딸로서 처음 참여하도록 권유해 주신 선생님의 배려심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 핏줄의 시작인 정습명 선생님의 옛 시, 석죽화도 찾아 새삼 감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덥던 여름 날 선생님의 안부를 묻는 저희들에게 걱정 말라며 이제 마지막 검사 결과 보러 서울 갔다 오실 계획이라 시더니 초겨울 낙엽 휘날리던 강화도 전등사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하셨습니다.

 선생님,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시는 날개 위 따스한 햇살이 앉아 있겠지요. 이제 부처님의 아름다운 나라에서 연꽃이 피는 꽃밭을 가꾸시며 모든 근심 내려놓으시고 극락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측량하시어 비로, 바람으로, 들꽃으로, 달빛 법문으로 저희들에게 소식 종종 전해 주십시오.
 
 그 맑은 웃음 벌써 그립습니다. 오는 동짓날 법당에서 선생님의 극락왕생을 위해 기도 올리겠습니다.
                                 정 숙 합장
*정 태일의 시 부분


파도 속으로 기찻길을 놓다


                          시인 정 숙

  생사를 몰라 진도 팽목항 속으로 귀 기울이며 기찻길 놓고 있는 부모와 바깥세상으로 간절히 구원의 소리 모아 기적소리 애타게 울리고 있는 어린 영혼들, 올 사월은 잔인하다 못해 처참했구나. 노래처럼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불러대던 시인들, 그 시절은 이 보다 더 참담했을까? 이제 돌이켜보면 행복에 겨워 헛소리나 한 것처럼 부끄러워진다. 

 아직도 세월호에 갇힌 자녀의 시신을 찾지 못한 부모님들 그 심정을 대신해 마음은 날마다 등을 밝혀 하늘로 띄우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한 점 위로가 되겠는가? 아파트 벽을 치며 봄바람은 밤낮 파도 속 기적소리로 창문을 흔들어대는데,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의 비명은 이명이 되어 귀에 못이 박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시도 때도 없이 ‘공부해라’ ‘나중 대학 가서 재미있게 놀아라!’ 나중나중
그 잔소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돌들을 가슴에 품는 일도 말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선생님이나 어른 말만 믿고 따르라는 말도 거짓이 되어 버렸는데, 생각해 보면 게임이나 놀이, 너희들이 좋아하는 건 거의 다 감시하고 말리는 일이 부모의 할 일이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군 입대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어쨌거나 살아 돌아와야 한데이’ 
엄마로서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지만 이제 엄마의 그 심정 당연하다며 머리 끄덕인다. 

‘아이야, 어떻게 하든 살아만 있어다오.’ 
‘우린 아직 못 다한 말들이 너무 많아!’
‘사랑한다, 행복해라, 즐겁게 놀아라!’
이런 사소하면서도 귀한 말들을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닫는지. 진도 팽목항
통곡소리 속 후회의 넋두리가 부모님의 가슴에 징을 치고 있구나.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