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 戀書
연서 戀書
정 숙 鄭 淑 시 선 집
책머리에
출판도서
정 숙 鄭 淑 시 선 집
연서 戀書
차례
책머리에----5
휴화산이라예
제1시집 [신처용가], 시와시학사, 1996년
7
연서 戀書
휴화산이라예
제1시집 [신처용가]에서, 시와시학사, 1996년
웬 생트집?
-처용아내 1 [신처용가]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 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자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꺾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 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17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18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처용아내 3 [화투장 공산]에서
서방님, 서방님예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삐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볼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19
홀딱 반하겠심더
-처용아내 21 [대금연주]
폭풍이 몰아치는 여름밤, 서방님예
오늘따라 대금을 불고 기시는 그 모습
미치도록 디기 멋집니더. 홀딱 반하겠심더.
애간장 다 타도록
밀칬다가 땡깄다가
땡깄다가 또 밀칬다가
대금소리 뜬구름 우에서 헤매고 있심더.
점입가경의 그 솜씨
지녁마다 어데서 연주해십디꺼.
지도 악기로 훌륭안합니꺼. 그지예?
예? 생각하면 글씨 한숨이 막 나서 몬살게씸더.
무거분 짐 지한테 다 맺기놓고 훨훨 날아댕기지예.
우째 생각하믄 불쌍키도,
우예 생각하믄 밉기도,
정말 괴로버 죽겠심더.
그런기 아이고예, 서방님은 지 맘 다 아시지
모리시지는 안할낍니더.
20
달님이 체조하능기예
-처용아내 57 [신 처용단장]
자다가 봉창이 물구나무서는기예?
달님이 체조하능기예?
서방님예. 보이소 정신 좀 차리이소. 예?
멕시코는 뭐고, 사바타는 또 뭔기예?
무신 암혼기예?
헛소린기예?
간밤에 디기 덥디만 더부 자신거 아인기예?
없는 누부는 와 찾는 기예?
말라꼬예?
21
제비캉, 꽃뱀캉
-처용아내 65 [춤바람]
지가예, 서방님 찾으러 안갔십디꺼.
월궁캬바레예.
불빛이 뻔쩍뻔쩍카디 마카 도깨비춤 춥디더.
막 흔들어싸미 정신없는 기라예. 요상합디더.
안개가 끼디
비누방울이 지를 무지개 우에 태우디예.
그카디예, 아 그러시 금새 또 제비캉, 꽃뱀캉,
삥글삥글삥글 지 눈알이 막 돌아가디예.
뺄가이 실눈 뜬 빛살들이 흐느적 흐느적카데예.
설마 서방님이 제비 아이겠지예?
도깨비들 꼬시가 방망이 얻어볼라꼬 그캅니꺼?
꽃뱀 비늘이 데기 이뿝디더.
물리머, 물리머 우얍니꺼, 예?
우야꼬, 지도 도깨비 아입니꺼?
우야믄 꽃뱀이 되겠심니꺼?
아무나 몬하는 기라꼬예? 알았심더만도
지발 꽃뱀인테 물리지 마이세이.
22
사랑쿠는 거
-처용아내 75 [마처족]
짤다쿠믄 짜린 인생, 와 그리 찡그리가 넘 잘못만
따지고 사니꺼. 답따버래이. 사랑쿠는 거 우옌니꺼.
사랑이 없는 사람은 디기 추접고 불쌍해 비니더.
우야문 그러쿰 지 맘대로 지껄이고, 노고지부믄 노고
우고지부믄 막 떼씨미 우고,
핑생 큰소리 치미 사니꺼?
지는 부러버니더. 시상이 참말 고리잖데이.
서방님, 마처족이라 쿤다는 그 억울함
와 모리겠니꺼?
구쿠더라도예 우린 우리 할 도리를 해야지예.
눈뜨고 보문예 참 아름다분 기 시상이시더.
사랑이 지 나레를 피믄 모두 향그러부니더.
눈 쪼매 크게크게 떠 보시이소.
마음의 눈, 말이시더.
23
자갈마당이 어덴공?
-처용아내 80 [태산이 높다하되]
서방님이 등산 간다 카고,
뒷집이 꽃밭에 물주러간다 카고,
앞집이 경마장 간다카미 나갔다 카는데
자갈마당이 어데 있는공?
집안에도 두리뭉실한 산이 있고
빌로 볼품없어도 꽃밭과 튼튼한 말 안있나?
동네 싸나아들 와, 해필 와, 자갈마당에 가노?
집에서 냄비딱고, 굴뚝 소지하믄
덧나능가 머?
눈물로 핀 들국화가 더 애처럽고 더 이뿌다꼬?
길섶에 채송화가 더 근지러분데 잘 긁어준다꼬?
싸나아들이 철드자 망령든다 카디
갈수록 태산 아이가.
지 암만 노푸다 케싸도 다 내 손 안에 안있나.
부처님 손바닥 아잉가베.
24
절시구! 좋다!
-처용아내 81 [장구춤]
서방님,
자갈마당에서 등산하니라 줄줄 땀 흘리실 때
지는 장구쟁이인테 갔디더.
첨엔 간지리 듯 뚜디리디예
점점 중중모리에서 휘몰이로
소리하미
장단 마추미
몰아치미, 하도 기막히서예
지 궁디이가 지절로 춤을 덩실덩실 추디더.
절씨구! 좋다!
소리가 절로 나디더.
지화자 좋다!
서방님예,
지캉 장구춤을 추시는 기 더 안낫겠능게?
25
손톱 칼을 갈다
-처용아내 86 [암딱소리]
와 이래 씨끄러부냐꼬예?
집집마다 암딱 우는 소리 아인기예.
인자는 암딱 소리가 젤로 큰 집이 잘 사데예
칼 빼내삐린 남정네들이 가마 구경하다가
떡만 자시믄 되는 기라예.
소리 큰 암딱은 손 크지예, 또 치맛바람은 얼매나
씨다꼬예? 아씨예?
고 치맛자락 펄럭일 때마다
아파아트 한 채가 왔다리 갔다리 안합니꺼.
장딱만 믿고 잠자던 암딱들이
칼 때신에 손톱 끝 기게, 날카롭게 갈민서
마카 꼬꼬댁! 꼬!꼬!거리야 잘 사는
시상이, 시상이 진짜 왔단 말이라예.
26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제2시집 [위기의 꽃]에서, 문학수첩, 2002년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일억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조상의, 제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오바사바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29
미루나무와 담쟁이
도난당하고 있었다
미루나무는 지
삶을
야금야금 훔쳐 먹는 담쟁이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방관자가 되었다
솔직히 처음 그들이 슬쩍 발을 걸쳤을 때는
반가웠고, 외롭던 참에 당연히 손 내밀었다
얄궂게도 차츰 밟고 오르면서
그의 삶을 조금씩 훔쳐가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를 지어, 수만 개의 손으로
그의 얼굴을 지우면서 머리끝까지 올라가
생긋이 미소 지으며 담쟁이는
더 밟고 올라갈 곳을 찾느라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향해 손 흔들고 있었다
여름 이파리들이 하마 노랗게 떨어지는데
한 발 양보가 백 발 양보라는 것을 미루나무는
진작 몰랐던 것이다
아매도 늦은 밤 불면의 파도에 시달리며
지금쯤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겠지
소사스레 담쟁이는 인제 옆 나뭇가지를 향해
애처로이 손 내밀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애써
누군가를 저리도 막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가?
어린 왕벚나무와 하늘이 대책 없이
방관자인 것이다, 다만
바람이
가끔 부르르 떨며 나무를 흔들다가 갈 뿐,
그래도 나무는 덩굴이 떨어질까
지 발등에 힘줄 세우며 떠억 버티고 서 있었다
30
참사랑
예수의 거웃 가리려고
바둥바둥
십자가를 진
남루의
작은 천 조각, 성의 聖衣!
그 거룩한 옷
31
압력솥
그래! 그래, 니 속판 내 다 안다
참다못해 터뜨리는 기인 긴 한숨
가슴 치며 헉! 헉! 가쁜 숨 몰아쉬는, 눌리다
눌리다 터지는 울음 안 당해보고는 아무도
모르는 숯띠 속,
감히 내 안다 할 수 있는 건 무너진 콘크리트
벽에 갇혀 싸늘한 맨땅에서 무명소복을 입은
어둠과 쌈해본 때 있었기 때문이다
벽은 시간을 먹고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내리 누르며 압력 가했고, 차운 냉기가 숨통잡고
킬킬 웃고 있었다. 압사는 초침 문제, 끓어오르는
소가지 태우지 못해 매캐하니 연그래기만 피우던
숯검정, 아야라 불붙었다 한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그래도 니는 압력 추 푹! 푹! 호들갑이
한풀이하는구나! 꼬치당초보다 매운 건 참겠다만
시방 난 숨쉴 추, 조차도 없는 압력솥
아소 님하, 지렁이 씹히는 소리가 날 한번만 더
설피 건드렸다간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푹, 푹,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푹, 푹, 푹, 푸우-ㄱ
32
봄비
옥황상제님 처용 색시캉 거시기 황감했던지
간밤에 비 흠뻑 내맀어예
바람도 없이 봄비가 촉촉히, 아주 촉촉하게
가뭄에 쩍쩍 갈라졌던 논빼미 새로
논고디가 타는 갈증을 적시디예
3년 과수 꼬장주도 젖어 신나게 쌕쌕카는데
오래뜰 쓰는 싸리비의 휘파람 소리 흥겨버
추녀 끝 밀고 옆의 옆 홀아버니 댁
흙담 밑 홀아비좆을 사알살 간지리데예
봄비!
니, 니, 그 칼래?
33
꼬냑여자
꼬냑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장밋빛 살결
세월이 더할수록 톡! 쏘면서
화악! 달아오르는 고 맛깔
긴 시간 내성으로 빚어
단내 나지 않는
향그러움으로
목석 같은 그 가슴속
불, 질러버리고
확, 불 질러버리고
저마저 활활 태우는 한 잔의
꼬냑!
비록 순간일지라도
34
그 여자, 흐드러진 제 꽃잎 씻어 내리고 있다
제3시집 [불의 눈빛]에서,시학사, 2006년
월광 소나타
-----달빛 여자 2
물너울이 살 비늘 툭툭 터뜨리며
피아노 건반 몸살 나도록 두드리는데
그 여자
흐드러진 제 꽃잎 씻어 내리고 있다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는
그 고랑 깊은 선율의 되풀이에 휘감기면서
그 사이
까아만 씨앗 하나가 눈을 뜬다
그 시간, 먼 산속에서 곰 한 마리
달을 덥석 문다
끝내는 *붑괴어 어쩔 줄 몰라 컹컹 울부짖으며
37
연꽃
-蓮 1
바람에 쉴 새 없이 몸 흔들리면서도
시린 발 견디며 진흙을 밟고 서서
곧 사라질
목숨,
이슬방울을
잠시라도 햇살에 한 번 더 빛나도록
소중히 떠받들고 있다
38
이슬 염주
---蓮 2
진흙 갈퀴에 발목 잡혀
오직 하늘 우러르고 있을 뿐
밤새 손 벌려 무슨 간절한
발돋움하고 있으면
그 아침 이슬방울 모아
햇살이
백팔 염주를 꿰고 있다
39
눈물이슬
----蓮 3
헐벗겨진 몸, 썩은 냄새나는 뻘에 파묻혀
진종일 흐느끼며 오래 서 있어본 이가
하찮은 이슬방울 안고도
*낮결에 몸 내어줄 줄 안다
시린 발 견디며 별들이 어둠 속 길 내느라
밤새 빛, 굴리는 소리 들어본 이가
다른 이들의 눈물방울
햇살에 빛나도록 떠받들 줄도 안다
40
두부
-불의 여자 1
내 업장도
자꾸 갈고 익히면 저리 *나스르르해지는가
얼마나 속이 더 문드러져야
누구에게나 *숫접은
살보시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가
41
시, 를 위한 광시곡
-불의 여자2
어느덧 끝이 무뎌져버린 남자가 아닌
다른 이의 힘찬 펜촉이 몸속 흔들면서
백지에
빗금, 마구잡이 긋기를 몰래 꿈꿔
앙큼스런
뭇 사내들이 제 펜촉을 밤낮으로
담그고 싶도록 섹시그리한
잉크통
그리하여
함께 친 빗살무늬
거미줄에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어
가슴 진저리치게 하고픈
그런 시 한편 건지고 싶어 *어러이
가슴에 불붙은 저 여자
42
깊은 상처가 때론 빛을 키우는가
진주조개는
어쩌다 뛰어 들어온 모래알, 뱉어버릴 수 없는
그 상처 가슴에 안고 살아가면서
쌓이는 *외쪽생각의 시간과 손잡고
뱉어내려고 몸부림치다 치다가
그냥 끌어안고 같이 되새김질하며 뒹굴며
미운 정 고운 정 서로 자리다툼하다가
사랑이라는 얄궂은 운명 속으로 갇히면서
자신도 모르게 빛을 발한다
흙에 묻힌 항아리가 김치를 익히듯이
캄캄한 지하 창고가 포도주를 익히듯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두고
늪이 되어 제 *다솜을 고이 키운다
* 짝사랑 *애틋한 사랑
43
뿌리에도 땀방울이 있는가
---늪의 여자 2
이제사 눈이 뜨이는지
아침 산책길, 벚나무에 옹기종기 앉아
하늘 우러러 기도하는
하얀 봄들이
꽃이 아니라 새삼 뿌리의 땀방울로 보인다
봄을 꽃피우기 위해
겨우내 어둔 땅 속에서 곡선으로 서로 엉켜
다독이다가, 뾰족한 돌멩이를 끌어안거나
직선으로 무작정 바위를 뚫으면서
온갖 몸부림치며 불을 지폈을 텐데
결코 나서서 생색내지 않는 걸 보면서
이 봄, 캄캄한 내 어둠을 뭉쳐 언젠가
자잘한 풀꽃이라도 피워
속눈썹 밑
불 밝혀보리라 발가락 끝에 힘을 줘본다
이제껏 뿌리 없는 꽃이라도 피우겠다고
마른 나무 가지에 매달려 허둥거리던
내가,
44
구멍論 3
-입술
묘하게도 요 작은 문양이
화사한 *꽃무늬수다 뱉어낼 때 마다 마음 속
봄도 겨울도 엇갈리는
철따라 묘한 향기 뿜어내는
음순으로
나비 부르는 붉은 장미꽃이었다가
금세 깨진 유리그릇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박히는 사금파리였다가
어느새 관음보살이 되어 자근자근
그 상처 쓰다듬다가
대신 아파하며 울어주기도 하다가
45
*초조 [初潮]
------- 석류 1
열다섯 딸아이의 젖망울
부풀어 오르다가
철없이 뜨거운 여름 기운 이기지 못하는가
어느 날 기어이 붉어지는 속 보여 줄까봐
옳게 여물지도 못하고
가슴 긁혔다고 짙붉은 울음보 터트릴까봐
멈출 줄 모르는 시간의 한 가지를 잡고
종일 어미는 살얼음판을 밟고 간다
*초경 初經, 첫 달거리, 첫 개짐
46
수련
--모르스 부호 2
시어른과 쿵쿵 찹쌀떡 찧던 작은
돌 호박에
어른들 돌아가시고 집 정리하면서
층층시하 육남매 맏종부라는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의
그 미궁 속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물을 채우고 수련을 심었다
살벌하도록 문 꼭꼭 닫아건 꽃봉오리
다섯 개 오래도록 맺혀있었는데 그 중 한 송이가
어제 가슴을 먼저 열었다
열고나면 햇살 가득히 품어 안은 속
저리 곱고 붉은데
어둠만 끌어안고 서로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댄 건 아닌지 돌이켜보라는 듯
47
어처구니 사랑
---------모르스 부호 3
아파트 베란다에서 먼지만 덮어쓰고 한 십 오년 살아남은 맷돌 한 짝, 신혼 시절 오래된 적산 가옥에서 4대가 아래 위 손잡고 정답게 또는 눈물 콧물을 섞어 넣으며 두부콩을 갈던 시절 잊지 말라며 눈 흘끔거리더니
언제부터인지 그 손잡이, 어처구니 빠진 자리에 파란 사랑초 싹이 자라고 있다 증손자 업고 다독거리시던 시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간절히 용서를 비시던 시어머님의 적막이 고인 눈동자와 응급실에서 말씀 대신 맏며느리인 내 손바닥에 손가락 끝 꼭 꼭 누르시며 뒤를 부탁하시던 시아버님,
삼십년간 그 분들의 숨 막히던 숨결들이, 새록새록 다시 자라고 있다 머지않아 분홍 꽃송이도 몇 피어나겠지
48
네 바다를 난 알고 있지
-기러기 아빠
넌 밤마다 피 흘리고 있지 바다 밑으로 철길을 놓으려다가 파도에 밀려나고
부딪치면서 온 몸 상처투성이로 피 철철 흘리고 있지 그래도 다음 날 밤이면
또 *비뉘한 바다 품속으로 잠수하며
그러다 *무리무리 괭이갈매기 되어
끼룩끼룩 울며 하늘을 배회하기도 하면서
그런 모습 날마다 바라보는 난 어쩔 수 없어
흔들리고만 있지
해초가 되어 물결에 휩쓸리며
기러기 아빠인 네 울음소리 들어주는 것 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난 또 미치도록 흔들릴 뿐이지
그런 어느 날부터 깊은 바다 멀리서 칙칙 푹푹 기적이 이명처럼 들려오고
해저 터널이 뚫렸다며 밤마다 기차를 타고 손 흔들며 먼 수평선 찾아 어딘가로
떠난다는 걸 난 알고 있지
*비릿한 *가끔 이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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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간 고등어
--간이 밴 여자
맛이 있다는 것은
간이 잘 들었다는 말인가
간이 잘 절여졌다는 것은
간잽이가
소금을 맞갖게 잘 뿌렸다는 말이겠지만
제 고향 바다를 떠나 그 골짜기까지
험하고도 먼 길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보니
그 성깔, 생 속 다 죽이고
저절로 푸욱 절여져 나긋나긋 짭짤한
그 맛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무심히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과 터진 생채기에
덧씌워 뿌리는 사람 사이의 소금 말고는
매정스런 칼바람에다 살과 살 부딪히는 비린내와
뒷골목 썩은 냄새나는
삶의 현장만한
간잽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입맛에 바로 맞게
50
갈대를 위하여
제4시집 [바람다비제]에서,시학, 2009년
갈대를 위하여
질기고도 약한 숨줄 고르느라
지친 날개의 뼛조각들
얼마나 더 잘 말려야
비워 버린 그 몸속 길이
바람이 된 영가의 흐느낌이
숨결 깊은 피리 소리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까
2010년 만해 님 시인상 수상
54
초경, 들장미 피어나던 날
열네 살 적 사월 눈부신 햇살 아래서 비눗방울을 불고 놀았지요 종일 무지개 따라 다니다가 그 비눗방울의 동그라미에 그만 갇히고 말았어요
해는 뉘엿뉘엿하는데 아랫도리 뜨끈뜨끈 진홍빛 꽃잎꽃잎 피어나면서 가시도 삐죽삐죽 돋아나더니
난 탱자가시 울타리 밑에 웅크리고 앉아 훌쩍이고만 있었는데
냇물 건너 노을 지는 하늘이 내 그림자를 저보다 더 진하게 물들이고 있었어요
55
첫 남자
여자는 향기도 가시도 함께 지녀야 한다며 찔레꽃울타리 둘러놓고
헝클어진 내 생을 참빗질해주시던
내 태초의 첫 남자
아버지
당신, 내 눈길 벗어나지 못해 지금껏 기억의 어느 끄트머리에 매달려
물먹은 별* 반짝이고 있는가
*정지용의 ‘유리창’에서 눈물을 뜻함
56
코브라
누가 사람사막을 건너고 있는가
지금 사하라사막에 홀로 걷는 저 목숨고독, 새파랗게 벼린 피리 소리의 절대고독을 홀로 듣고 있는가
세상바람의 적 위협하려 긴 혓바람으로 작고 매서운 눈알이 불꽃 내쏘고 있는데 발 구르고 박수치며 바람의 춤을 춘다고 얼버무려 넘어갈 것인가
57
바람다듬이질 소리
시집살이 삼십 년에 바람구멍 숭숭 다 뚫린 저 여자
허파, 간, 쓸개 몽창 빼내어 주고 온갖 잔소리의
통북어들 한데 모아 쿵닥 쿵다닥,
제 가슴 다듬이방망이질 하고 있는가, 이 한밤중에
58
불의 심판
불.알이란
불의 알, 불의 씨앗
그렇다면 불씨가 된단 말인가
한 집안에서 불씨 꺼뜨리면 여자는 가차 없이 보따리 싸야 했다는데
씨받이 몇씩 들여대기도 했다는데
검은 비닐 봉다리는 여성의 가장 비밀스런 몸꽃입술, 고추 씨앗이 싹 틔워 불씨 살려 이어져 내려갈 남정네들의 고달픈 성지 순례길
이 불두덩이가 자정의 지구 돌리면서
사느냐, 죽느냐 불의 심판을 받고 있다
59
선풍기랩소디
어느 꽃잎살결 보드라이 안고 있을 바람끝은 어디메더뇨 어린 바람의 왕자가 장미가시에 물 뿌리고 있을 그 먼 사막은 또 어디던가
따지며 어르고 보챈다 성내고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날파람 속바람 길들이느라 허덕허덕
바람의 오르가슴을 향해
온몸 허리 엉덩이 돌리고, 달려가고 있다
60
어느 젓가락 장단을 위하여
- 어느 부부 2
밥상에 놓인 깍두기를 집을까 말까 오직 별일 아닌 문젯거리에만 좀팽이처럼 골몰하면서 이승밭고랑을 매고 있는
그러면서도 먼저 떠나보내고 나면 홀로 남아 뼛골의 그림자까지 욱신욱신 시려 올 어느 부부, 아직도 몸집, 몸길이 맞추느라 삐거덕거리는가
61
밥그릇을 위해 물구나무서다
제 뿌리 헐벗는 줄 모르고 하늘하늘 키만 키우는 대나무들 고집 틈에 거꾸로 매달려 가랑이 찢어지도록 흔들건들거리는
어머니, 아버지
당신 울타리 넘어질까 봐 애면글면, 그 비바람 멎어달라며
댓닢 피리로 모내기철 초사흘 달빛치성 드리고 있다
62
백지, 흰 어둠을 받쳐 들다
왜 이리 무거운가
티 없이 맑은 이 한 목숨하늘이
잠 못 드는 밤 A4 용지 한 장에 동공 빛을 모으면 희디흰 뼈와 뼈 틈서리가 차츰 열리면서 검은 그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찢기고 짓이겨지는 고단한 한 생의 비명이 어둠속에서 어둠을 밟고 다가온다 저 하얀 눈부심 아래 얼마나 많은 눈빛이 젖어 빛나고 있는가
젖은 그 무게 때문에 세상 그림자 하늘이 저리도 어두운가
어둡다 못해 오히려 희게 보이는가
그 흰 그림자의 뼈마디가 저 어둔 눈빛 위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는가
63
엘리베이터 사랑
-할아버지와 손자, 상사와 부하 직원, 시어머니와 며느리
누가 빈 허공 바닷물을 되질하고 있는가
스승과 학생
서로 지켜야 할 수직의 위엄
층계 따라 육신의 무게 더 싣거나
욕망의 짐 덜어 내리기도 하면서
적절한 관계 끊어지지 않도록 애정의 수하물 싣고
오늘도 끝없는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 한다
64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 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65
무명 돛에 남은 생의 잎을 천천히 갉아먹다
제5시집 [유배시편]에서, 시학, 2011년
소나무
-유배 시편 1
삶의 전쟁터에서 뒤처져버렸다
디지털 속도 따라잡지 못한
늙은 소나무 하나
겨우 세평짜리 안방에서
허옇게 이파리 떨어뜨린다
한 때 바람 따라
노란 송화 가루 뿌려대던 시절 말아
찢어져 간간이 펄럭이는 무명 돛에 남은
생의 잎을 천천히 갉아먹고 있다
낡은 햇볕과 바람에게 감사 편지 쓰면서
늦가을 세한도 완성해가고 있다
68
지구의 어깨
-유배 시편 67
1.
저 가녀린 어깨에 얼마나 큰 무게 실려 있었던가
초가을 별빛 줍느라 잠은 밤새 돌아오지 않는다
흰 바람벽에 멱살 잡힌 옷걸이 하나
싸늘하게 눈동자 깜박이는
열아흐레 달빛을 입어 더 핼쓱하다
한 쪽 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지구의 어깨
낮엔 왜 보지 못했던 것일까
너덜너덜 껍질마저 벗겨진 채 깡통으로 찌그러져 있다
날마다 허영의 공깃돌 한 주먹씩 쥐었다가 흩어버리는 나의 낚시 바늘들
그 바늘이 물고 있는 그의 시간이, 돈다발이 그 살의 뼈 벗기며 끌고 다녔었지
한 때 내 배꼽열쇠가 그의 비밀금고 빗장을 열고 들어가거나 압력솥의 추
끓어오르다가, 뾰족 손톱이 그의 어깨 피 흐르도록 할퀴어대기도 했었지
2.
그 소리 요란하기 만한 난바다 산 같은 파도 헤치며 몇 사람의 밥통 지키느라 짓눌렸을 저 가장의 무너져 내리는 어깨, 소설 몇 권치 삶을 짊어지고 불면으로 깊어가는 밤을 헤아리며 벽 못에 물려있다
뿌리 없는 내 허망의 귀틀집에 감금당한 저, 뼈 속까지 구멍 난 남자 이제 살집 두툼한 내 어깨에 찢어진 그의 날갯죽지 뼈대가 기대어야 할 때인가 저, 열아흐레 달빛 옷걸이는 은근히 그것을 내게 강요하고 있는데
69
꽁치
-유배지 시편 14
통조림 깡통에 그려진 짧은
한 생
제 지느러미 가시 칼날처럼
곧추세운다
쉽사리 잡히지 않으려 하늘 그림자에
피 말리며 매달린다
간절한 풍경이다
하늘을 깨우다가
유리잔을 깬다
저 한편의 시
맨가슴으로 읽으면 될 것이다
70
바람, 실 꿰지 못한
-유배시편1
살얼음이 칼바람을 물고 달려드는 밤
서울역 지하도에 웅크린 사람들
세상사 뭐든지 꿰매고 깁던 버릇 버리지 못해
긴장된 순간들을 모아 시간 조각보 박음질하네
가슴 속 미싱 바퀴를 돌리고 있지만
끝내 바늘귀를 찾지 못하고
헛바퀴만 몇 바퀴 드르륵 돌리다가
무연히 드러눕는 사람들
허공으로 둥둥 지상의 가족을 내려다보네
미안하다, 사랑한다, 틀바늘은
간간이 제 주인의 꿈 깨우지만
실 꿰지 못한 미싱 박는 소리만
지하도의 밤 울리며 지나가네
속절없이 무너진 가슴 속 세상을 돌리며
길을 묻는 재봉틀 헛바퀴 소리
그 신음 속 밤의 폐부를 가르는 바람소리
71
달맞이꽃
---유배시편 10
1.
가출한 뒤
역전 뒷골목에서 밤마다 불 밝히며
제 병든 꽃가루 한숨 파느라
사람들의 한숨 끌어들이던 길거리
숨은 꽃
그 헐벗은 여자
저녁이면 온 몸 작은 전구 휘감는다
제 몸 한 구석 검게 타는 줄 모르고
불의 눈동자 더 크게 부릅뜬다
2.
몸 속 타오르는 불 끄지 못하는 이들 호객하며 손을 잡아 끌어들이는 저 병든 꽃송이, 해맑고 노란 달빛 빛깔을 발하는 것은 그들 또한 진흙 밭의 연꽃이기 때문인가
72
안개꽃, 흰 그늘
-유배 시편 46
조용히 악보만 넘기고 있는
그림자
연주자에게
조명과 찬사를 돌려주기 위해
있는 듯 없는 듯
너는 누구를 위한 페이지 터너인가
저 빛나는 주인공들을 위해
스스로 흰 그늘이 되어 떨고 있는 너
제 가슴 쓰다듬으며
영혼 깊은데서 두드리는 통증
그 페이지를
밤마다 남몰래 몰래 넘긴다
73
별들에게
—유배 시편 16
그 누군가의 등대가 될 수 있기에 별아, 너는 칠흑 어둠 속을 헤매느냐 세상의 작은 빛이 되고 싶어 해 뜨면 죽었다가 달뜨는 저녁이면 거듭 깨어나고 깨어났다가 다시 죽기를 되풀이하는 너
부싯돌처럼 순간과 순간 사이 삶과 죽음이 부딪히면서 발하는 그 발광의 연속, 별의 진실을 간구한다 그 눈부처엔 캄캄한 어둠을 살라먹는 별아, 새벽하늘의 별아
74
아버지
-유배시편44
그 누구신가요?
끝 모를 그리움을 찾아 나서거나
한 끼 가족의 풀칠을 위해
가파른 팔조령 호랑고갯길 무작정 달려야 하는
눈에 불을 켠 저 배고픈
치타들에게
막힌 생 몸뚱아리 뚫어 지름길 내어주는
당신은
지상의 청정법신이신가요
바삐 가던 길 멈추고 그 어둠 그늘에서
생의 뒤안길 되돌며 머뭇거리는 내게
밥 한 공기 땀방울 눈물방울 소리 없이 씹고 있던
지난 시절 어린 감꽃 꿰어
목덜미에 걸어주던
아버지
그 분이 바로 당신이신가요
75
연꽃들
1.
제 씨알들 다 여물어도 한 여름 뙤약볕 이고 밭고랑 매는 굽은 등허리, 흙발, 흙소 평생 죄수 내 어머니의 연못, 콩밭에서 연꽃은 핀다
2.
시난고난 그 허기와 씨받이 압박, 그리고 전쟁 중에도 은장도 칼날 서슬 하나로 배달의 씨앗 지키고 이어온 이 땅의 어머니들
3.
이 악물면서
당신 곪아터진 상처 돌아볼 겨를 없던
아흔 다섯 고사목 내 어머니
마지막 더 캄캄한 길도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이 땅의 아줌마이길 고집하는
저 산 같은 여자
76
콘트라베이스
-유배시편69
저 몸집 큰 사내
별의 은종소리 내지 않고도
몸 속 어딘가에 숨겨놓은 내 깊은 뿌리 뒤흔든다
생의 줄타기에 이미 무뎌진
제 몸뚱아리 어디서 그 떨림을 찾아내고 있는지
부푼 비눗방울 속에 든 눈알들
문득 지구를 깨뜨리는
일순의 정적
그 소리 행간에 못 하나 박으려
발등의 실핏줄 터지도록 떨고 서 있는가
77
깨진 접시
--유배시편 52
냉엄한 사랑이다
구부러진 등뼈 바로 잡으려는
회초리
그래서 갓 구운 질그릇들을
망치는 거침없이 깨어버리는가
받드는 것은 한번은 가루가 된다던가
서로의 믿음 싸늘히 부서지면서
미소 뒤 숨겨진
아버지의 칼바람
때론 피투성이 되기도 하지만
황토 흙 야무지게 치대어
청자, 한 점
새로 빚는 일
그걸 누가 사랑이라 하던가
78
숟가락 섬
--유배시편 53
사람의
섬과 섬 사이
숟가락엔 어느 노가다의 탄식이 남아있는가
메마른 영혼의 물기 마르지 않게
기꺼이 메아리가 되어주는
범종의 파문처럼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들으면
삶과 죽음
몸과 몸 사이의 생존을 위해
평생 밥을 실어 나르는
하늘님의 고단한 노동이 보인다
새삼 밥 한 알의 무게 달아본다
79
쪽지와 구멍
-----유배 시편 6
'칠레 광부 33인이 700미터 지하 광산에 갇혔다 매몰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그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두려움을 견디고 있다 그 사이 딸아이 에스페란다가
탄생하고 그 가족들은 광산 위에서 힘내세요! 노래 부르고 광부들은 어둠속
에서 조국 칠레! 를 외치며 기적의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
예상하고 있었다 밥줄이
저 밥줄, 언젠가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 가두어
끝내 제 목숨 거두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해야 했던 아득한 나날들
무너진 갱 속에서
오직 희망은 구겨진 쪽지 한 장뿐
‘살아있다’ 그 글귀 하나
애간장 다 태우며 기다리던 이들에게
살아있다! 기쁨을 안겨준 신의 목소리
단 몇 개의 낱말로 이루어진
그것은 바로 시! 시였다
세상 사람들 울리고 가슴 설레게 한
명시 한 편
그런 명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낭떠러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그 유배의 공간에서
우정과 조국애가 꽃피어날 수 있었던 건
실오라기 구멍 하나 트여 있었던 까닭
글귀 한줄
고 작은 숨구멍이
하늘이었다, 시 그것
80
꼽추 난장이
-유배 시편 62
1.
이젠 사하라 사막도 그 어떤 사막도 두렵지 않다
어차피 꼽추 난장이라는 황량한 모래벌판에서
나는 태어났으니
날마다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도 견뎌 낼만하다
미역국 한 숟갈 먹기도 송구스런
어미의 가슴, 캄캄한 지하 갱도에 비하면
전갈들이 비웃으며 득실대는 인간 사막
기껏 일 미터 단신의 발뒤꿈치 깨물어도
까잇거! 하하 웃으리
2.
물어뜯어라
네 서슬 푸른 독기 단봉에 모아
모아서 인생처럼 짊어지고
오늘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 나선다
터덜터덜 땡비 사막을 걸어가는 동안
사람 전갈의 독은
빗장 걸어버린 벽 안에서
나 스스로 나를 만들고 있다는 걸
삼초마다 한 아이가 굶주려 죽어간다는
말의 뼈다귀 씹다 보면
풀 한 포기 버틸 수 없는 모래벌판이 오아시스로
가끔은 신기루로 보이기도 한다
81
밤바다가 날개 펼치면
---유배시편 63
동성로 밤거리를 잠재울 줄 모르는
밤파도아저씨
싸구려 옷자락 펄펄 펼치며 날아오르기 직전
‘자 단돈 만원, 마-----ㄴ원, 배추 한 잎이면
당신이 바로 꽃보살!’
제 몸 어딘가 숨겨져 있다고 믿는
날개 찾느라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다가
밥알 한 숟갈
그 아득절망이 살아야할 질긴 이유이므로
다시 날개 퍼덕거려 본다
그 순간만은 밤하늘 낮게 아주 낮게
별들도 같이 내려앉고 있다
82
달팽이 우화
--유배시편 64
운문 댐 수몰지구 장씨 아저씨
누덕누덕 기운 꿈 보따리 짊어지고 상경하더니
온몸의 뼈와 살 다 짜내어 10여년
달동네 벌집 한 칸 마련하였더니
이제 육신의 힘 허물어지고 있는
등뼈 위에 그 벌집 짊어지고
노을 지는 삶의 비탈길
허덕허덕 오르는 모습 뒤엔
무슨 하늘의 운세인지
서울에서
집 한 채 등에 지고 태어난
달팽이 한 마리
제라늄 이파리에서 보란 듯이 기어가고
83
갯바위
----유배시편 65
바다는
산을 갉아 먹으려 쉼 없이 몸부림이고
산은 그 바다 밀어내느라 잠 한숨 못 들고
그 틈새 작은
돌부처 하나 가부좌 틀고 앉아
산은 산으로서
바다는 바다로서
서로의 경계선, 지켜야 한다며
미세기*의 시달림으로
제 온 몸 찢기고 부서지는 줄 모르고
세월없이 목탁 두드리며
경전파도 뒤적인다
*밀물 썰물
84
지하철
-유배시편 20
날마다 헛바람 등에 지고 살아가는
저 근육질 사내
누구의 묵은 그리움 이어주려 저리
청석산을 뚫고 달려야 하는가
한 주먹꺼리도 안 되는
내 마음
그 허술한 세상 벽조차 관통해 볼
엄두도 못 내면서
85
낙동강
-유배시편 56
1
아흔 여섯 해, 근 한 세기를 순응하다 흔들리며 분노하며 용서하며
살아온 강물 오늘도 삐그덕 삐그덕 자신의 낡은 풍차를 돌리고 있다
'너거 아부지는 마실에 숨어있고 혼자 아아들 셋 데리고 고 외딴 과수원에서 자는 한 밤중 총칼 든 빨갱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총구 들이밀며 돈을 요구했지 빨갱이는 아주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까운 동네 아는 사람이었어 나중엔 총구 내리며 돈을 요구했지 얼마 전 홍수에 떠내려간 세간 살 돈인데 이것뿐이라며 그 당시 큰돈이었는데 오백 원 내 놓으니 모두 고맙다며 돌아가더군
2
그 이튿날 옆집에 그들이 나타났을 때 주인이 엉덩이 밑에 돈 깔고 앉아 주지 않았더니 불을 질러버렸지 하는 수 없이 과수원을 버리고 마실로 이사했는데 그 집지킴이 구렁이들이 따라 들어온 걸 삽으로 대가리 몽창 몽창 다 잘라 불에 태워버리더니 그 집이 폭삭 망해버리더라 난 나중 경찰한테 당당하게 말했어 돈을 주지 않으면 내가 내 자식이 죽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후유! 까딱 잘못하면 빨갱이 도왔다고 총살당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운이 좋았지 좋았어'
한 깊은 강물의 피맺힌 한숨을 오지랖 넓은 오월 바람이 넝쿨장미 가지마다 붉게 핏빛으로 토해 놓는다
86
당신의 추가 무거울 때면
--유배시편 69
허구한 날 되풀이하는 일 뿐이라고
가장의 추가 무겁다고 떼버리지 마세요
그 무게가 당신의 안방을 지키고
하늘과 땅을 받쳐주고
당신을 견디게 하는 힘의 원천이지요
그 연장이
시간의 맥박 재촉해서
내 자궁 속 썩히고 낡아가게 한다지만
그 떨림이 새싹을, 이파리를, 꽃을
화르르 피어나게 하는 힘 대가리지요
시계추는 당신 몸 지구의 중심이지요
87
성냥개비 불꽃보다도 못한 내 사랑
제7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에서, 문학세계, 2015년
인생1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
의자에 끌려 다닌다
어린 엉덩이조차 제대로 걸칠 수 없는
작은 의자
평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내가 끌려가는
한 생애
90
벽난로
내 가슴 뜨겁다고 아무리 우겨도
네가 불붙여주지 않으면
성냥개비 불꽃보다도 못한 내 사랑
꽁꽁 언 속살,
식은 재 폴폴 날리는 철길 연정 틈 사이
‘나, 여기 있어’
초승달 눈빛 공명 마냥 기다릴 수밖에
91
연서戀書
네가 허기진 먹물이라면
나는 목 타는 한지
우리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내야만
붓꽃 몇 송이 피어나리니
하늘 열쇠 간직한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으리니
92
수묵화 한 점
꾹 꾸욱, 거칠게 누르다가
살 사알, 간질이듯 힘을 뺀다
붓은 한지에 짙게,
때로는 옅게 먹물을 뱉어낸다
삶기고 치대어진 닥나무의 한이
벼루에 갈린 먹물의 꿈을
걸신들린 듯이 빨아들인다
한과 꿈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용트림,
숨결이 뜨겁게 끓어오른다
서로의 아픔을 포용하는
붓과 한지의 포옹, 그리고 입맞춤
연기 한 점 없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환해지는 세상,
마침내 햇살 듬뿍 머금고
백련 한 송이 피어오른다
간절한 꿈은 아픔을 함께 나눠야만
화엄향기 품은 연꽃으로 거듭난다는 걸
한지와 붓은 묵언으로 보여주는지,
저 담백하고 우아한 수묵화 한 점
93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청매화 다투어 피는 달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비비꼬다가
젊은 날 그렸던 그림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고작 A4 용지 두 장 크기 한지에
이리도 많은 꿈을 그려 넣었었구나
흰 물감으로 연꽃과 연밥들을 지우다 보면
그때 그 욕심들이 양심에 걸린다
새와 나비들도 먹물로 지워버린다
흉한 상처의 얼룩들만 남는 세월,
그 무게에 짓눌린 나의 한지는
달빛도 스러진 봄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그래도 다 못 지워 슬픈 눈빛으로
입술 달싹거리는 나부상,
노랑나비와 청승맞은 달빛을
바라봐야만 하는 봄밤
94
봄, 설해목
무딘 몸이 뻣뻣해진다
마음 저 밑뿌리에서 끓어오르는
이 환장할 원죄
그리움 휘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승무를 추는 내 그림
하얀 고깔은 꽃과 향기 옥죄는
신들의 말씀
죄 없는 화선지 찢기도록
욕망의 그늘에 채색을 한다
연분홍색까지 덧칠한다
창을 흔들며 울부짖는 바람은
살빛 꽃잎들 흔들어 날려 보낸다
날리는 꽃잎들의 시린 맨발
내 그림에도 때 아닌 사월 눈발
이 아득한 눈의 무게
마음 가지 하나 툭, 부러진다
95
여름비
가뭄의 소나기, 그 빗줄기 속엔
불이 들어있는가
풀뿌리들이 젖은 흙덩이들과
애무하려 허겁지겁이다
나뭇잎들이 입술 내밀며 흐느적거린다
그래, 살다가 저렇게 너 나 없이 스며들어
절정에 몸 부르르 떠는 때가 있어야지
그래야 짧은 삶도 살맛이 나지
거목들과 돌탑 쌓느라 갈증에 시달리는
키 낮은 나무들, 서로 엉켜 꽃대 올려야
어두운 뜨락을 밝힐 수 있지
함께 푸른 하늘 바라볼 수도 있지
물에서 불 찾아 꽃 피우는 그 이치를
풀뿌리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나무들도 깨닫고 있었는데
무궁화 꽃송이들만 스며들 줄 모른다
서로 똑똑한 척, 비가 물이지
불이냐고 싸움질이나 하면서
96
햇살 사랑법
범어 숲의 새들에게
먹이 한 상 잘 차려놓은 해,
종일 더 멀리 살피려 몸 기웃거리다가
피로로 벌겋게 젖고 만다
끝내 밤바다로 가라앉아버린다
삐딱한 지구 자전축, 그 위에
나지막이 몸 기울여
낙엽 덮고 잠자는 겨울 씨앗들,
밟힌 풀꽃들의 상처에
온기 불어넣어주려는 저 넉넉한 길을
날마다 바라보면서도 홀린 듯
나는 꼿꼿이 먼 하늘만 바라보다가
하루를 마감한다
해는 어둠에 갇힌 너와 나를 위해
온 정성 다 기울이는데,
몸과 마음 깊이 기울이는 것이
진정 햇살 사랑법이라는데,
97
줄장미
열사흘 달밤, 입술 새빨갛게 바르고
오월 담장 넘어가는 저 처녀들을 어쩌나!
들키면 머리카락 싹둑 잘린 채
집안에 갇혀버리고 말 텐데
계남동 그 언니, 문고리 잡고
가시 일으키며 울다가 벼락을 맞았다는데
저 피어나는 장미꽃 새빨간 송이들 따라
봄날은 속절없이 가고 있는데
98
다홍치마
어릴 적에는 명절날
다홍빛 치마 입는 게 소원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그 자락에 순결한 처녀의 피가 묻어 있었다니!
혼으로 돌아온 고국의 산야에 숨어
꽃무릇으로 피눈물 피워내는 걸까
꽃술 끝머리에 그리움 싣고, 차마 부끄러워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99
외간에 중독되다
저벅저벅 발소리, 시간의 방울 달고
내 뒤를 따라온다
범어구민운동장의 오월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싶은
장미들의 짓인가, 얼른 뒤돌아본다
돌담에 기대선 찔레들이 제풀에 놀라
창백한 낯빛으로 손사래 친다
다시 발소리!
한가하게 운동하며 웃고 있어도 되는지
네가 웃으며 놀고 있는 사이
바구미들이 네 쌀자루 뚫거나
콩 자루를 터뜨리고 있지나 않은지
다그치며 빨리 뛰어가라 재촉한다
장미꽃잎들이 시든다
다급해진 발소리!
장미 가시는 더 억세게 발톱을 세운다
무작정 쫒기며 시의 바짓가랑이에,
처용무 그림 옷깃에 밤새 매달린다
100
화간
낮엔 새침하더니 요상하다
달빛 끌어당기는 꽃잎의 눈빛,
오월 담장에 기대서서 바깥을 살피는
흔하디흔한 장미꽃인데
어느 품이라도 마구 파고드는 색골
달의 끝없는 곁눈질에 그만 빨려드는지
따지고 보면 네 것 내 것
그 경계선이 어디 있으랴
달빛과 꽃의 은밀한 통정, 그 내연의
부적절한 관계를 엿본다
달빛은 도톰한 꽃입술을 만져본다
몇 겹의 꽃잎 헤집으며
자신을 밀어 넣는다
꽃은 더 진한 향을 내뿜으며
붉어진 눈빛으로 온몸을 부르르 떤다
밤의 내통을 은근히 즐기는 변태의 관음증
달빛도 꽃도 나무도 다 나의 외간들이니
어쩌랴, 거부할 수 없는 이 색정,
강간이 아닌 원죄를 위한 자연이니
내 시의 길이자 천형인 것을
101
온라인으로 부쳐준다고
어느 시인이 손전화로 계좌번호를 알려달란다
날마다 끓어오르는 제 낡은 그림자를
온라인으로 부쳐준다고,
멀리 있어도 늘 두리두리 삼삼 팔팔
가슴에는 두근거림이 발효되고 있다고,
정향 꽃향기 퍼지는 봄밤에는
그리움도 방부제 듬뿍 삼킨 샘물,
도무지 썩지도 마르지도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마구 달려든다고,
죽음 저 편에서도
이 끝은 어디쯤일지 모른다는 그는
무선으로 은밀한 떨림 되어 파고든다
102
그림자를 위한 파르마콘
먹물처럼 속 깊은 저 그림자
다소곳이 따르는 그늘인 척
제 색깔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안으로 몰래 주인 빛깔 다 빨아들이면서
시시로 산란하는 시, 여름 한낮 연꽃이 누드로 일어서는 낯 뜨거운 늦바람 그림들, 제 주인의 혼신을 모두 내면으로 받아들이다가 어느 순간 세상을 향해 고자질도 한다
인생을 제 피로 정제해 꽃소금덩이로 살리려면 청산가리 같은 외로움에 떠는 가슴 달래줄 시와 그림 찾아 흰 소의 눈물로 그려야 하리
들꽃은 폐차 안에서 별들의 빛 굴리는 소리 들으며, 그들의 고단함을 달래주어야 하리
달빛과 햇살 머금은 씨알들을 다 줘버리고
끝내 그 껍질이 죽어버리지만
마지막까지 동행하는 내 그림자
생의 흔적인 그림자의
빛그늘,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남을 것이므로
103
풍등
바람 품어 안는 일이 자유라고
교과서도, 여러 말씀들도 다 버린다
마음껏 속 비운 바람을 머금는다
말이 그렇지 속 비우는 게 쉬운 일이던가
욕심을 열정이라고 미화하며
하늘 오르는 길만 바라보는 내 노구,
‘다 비우니까 그리 속 편하더군요’
싸구려 웃음으로 설레발치며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둥둥 떠돈다
푸른 미소 뿌리며 하늘이 내려온다
욕망의 날개를 단 기도소리
점점 더 파닥거리고 있다
104
얼음을 연주하다
노랑나비 한 마리 칼날로 얼음 긁다가 종내 춤을 추면서 얼음을 연주한다 얼음벽이란 주먹다짐으로 무너뜨리기보다 김연아처럼 사뿐사뿐 그림 그리면서 종달새 울음소리로, 춘란의 향기로 미소 지으면서, 세상의 못 박힌 사람들 가슴을 녹여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듯이,
105
신新남해금산
남해금산 돌 속 그 여자, 내가 잠들었다고 투정이네
해돋이 모르는 그대 미적지근한 가슴 속 차라리 살 떨리도록
캄캄한 바위였어라
금빛 물결 후려치던 짧은 한 생애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던 사나이 중의 사나이, 그의 타오르는 눈빛 아니면
산이 무너져도 난 기꺼이 석녀가 되어, 그분의 포효
살아 춤추는 저 관음포 파도 끌어안는 꿈
미치도록 사랑하겠네
106
소금밭에서
해 뜨기도 전 늦잠 자다 불호령에 벌떡 일어나
아침 이슬 밟으며 삶과 죽음을 사유하거나
철지난 《사상계》읽다가 들꽃들과 얘기 나누거나
여름방학 동안 낮잠 자는 것조차 눈치 보여
헌 부채에 여배우 사진 오려 붙이거나
싱가 미싱 돌려 옷감을 박음질해야 급한 성이 차던
네 딸들의 간잽이, 정우화
부지런 짭짤 간이 잘 절여져야 세상 빛이 된다던
아버지, 생염전이다 너무 짜다 투정만 부렸으니
내 나이 늦가을 되니 이제 철이 드는가
그분의 그때 그런 소금 알갱이 말씀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금빛을 쏜다
이제 내 염전도 잘 가꾸어
멋진 간잽이로 다시 태어나야 할 텐데
너무 늦은 깨달음 같아 마음 조급해진다
107
봄바람과 깔깔춤
뻐덩뻐덩한 나무토막 내 몸을
카바레 물찬제비는 모란 꽃봉오리 쓰다듬는
봄바람처럼 손가락 눈짓으로
제 숨결 가까이 당겼다가 놓는다
가슴과 가슴 사이 불꽃을 태우다가
꺼질듯 길을 잃다가
하루살이 한 생을 잊어버리기 위해
지르박은 더 흐드러지게 피려 안간힘을 쓴다
실은 흐드러지면서 져야 하는 남은 시간
뽕짝 리듬 사타구니 사이로 숨긴다
그런다고 숨소리 들리지 않으랴만
못 들은 척 웃는다 까르르, 깔, 깔
바람손길은 웃음 속 공허를 눈치 챘는지
내 몸을 휘익 연달아 두 바퀴 돌린다
그 공회전 속에 아흔여덟의 한 생이 겹친다
수면제 사 모으는 노모의 어둠 골짜기에 갇힌다
“딸아, 하루가 너무 길구나
민들레 차 한 모금 마시는 사이*
하루가
한 생이 간다고 아까워 마라”
* 필자 시집『유배시편』에서
108
달, 늑대 깨우다
보름달 뜨면 그리움이 깨어난다
은근한 눈빛 그득 차오른 달은
늑대를 깨우고, 늑대는 징을 두드린다
어둠을 잠재우는 저 은근한 눈빛이
늑대의 야성을 왜 깨우는가
우, 우, 우 거친 숨소리가
내 몸 속 신전에 횃불을 밝힌다
그 불빛 따라오는 발소리
세포 안 숨은 파도들이 갈기를 세운다
이성의 손끝이 바람을 태워
잠든 마음거울을 친다
유리조각들이 흐트러진다
그 파장 따라 모무母舞를 그린다
고깔과 옷으로 몸을 숨겼던
여자가 벗는다 책갈피를 찢는다
점잖은 말씀으로 맞기만 하던 징,
징채가 닥치는 대로 두드린다
징소리는 소란스럽게 벚꽃을 피우다가
점점 연꽃 향으로 스러진다
절규들이 제가 만든 철창에 갇힌다
109
처용아내 치맛자락이
-방천 연가 1
아파트 발코니의 천리향과 행운목 꽃향기 보내고 나니 이제 또 학쟈스민이 다 닳아버린 나의 봄을 미치게 흔들어댄다.
견디다 못해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를 거닌다. 여전히 낡고 좁은 장터 골목길, 이 근처 삼덕동, 대봉동에 오래도 살았었다. 꼬꼬댁! 꼬! 꼬! 구원 청하던, 닭 잡던 그 탈모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단발머리 중학생, 머리카락 쫑쫑 땋은 여고생, 긴 머리 출렁이던 대학 시절 첫 가든파티, 라일락 향기 시절에서, 넓고도 낡은 적산가옥에서, 시집살이 십오 년 뒤 범어동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처용아내의 햇살과 어둠의 비빔밥, 그 찬란한 눈물 비비다가 부서진 조각 사금파리들이 방천시장 좁은 길에 버려져 있다.
그 조각들 주워 맞춰보니, 잘 다듬어진 맏며느리의 탑 하나 세워보겠다던 그 오기, 몸빼바지나 월남치마 길게 끌며 장바구니에 끌려가는 청춘, 존심 세워 처용가 부르며 칠칠맞은 손 흔들어대고 있다.
110
푸른 다리 아래서
-방천 연가 5
칠석날 눈물 머금고 멀리 흘러온 미리내, 흐르다가 애달픈 연인들의 가슴 속 소용돌이 풀지 못해 새내 웅덩이에서 맴만 돌았네 땡그랑, 댕그랑, 물결 속 열사흘 달빛기둥 위 작은 은종을 간절하게 치며 기도하면서
그 종소리 듣고 자란 피라미들 뒤엉킨 은하수 전설을 풀어 무지갯빛 천을 짜고, 그 그리움을 내 청춘의 검고 긴 머릿결에 둘러주던, 눈 시리도록 아린 그림자! 너는 뭇 세월 견디느라 날금해진 신천 푸른다리 아래서 누굴 기다리는가
그 여름날 천둥 비바람 가려주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 그 우산은 멀리 저 멀리 날아가고 안 보이지만
111
신천 수달에게
-방천 연가 6
1
이제 돌아온 거니
지문 닳아 없어지도록 바삐 살다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
고픈 웃음에 깊은 주름질 때
동신교 열사흘 달빛 아래서 만나자던
그 약속 지키려 돌아온 거니
어머니 젖가슴 같은 풀밭은 사라지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새내를 흐르는 달빛 속
우리들 젊은 날의
희미한 그림자를 찾고 있는 거니
그 시절 비바람 가려주던 너와 나의 우산은 멀리 날아가버렸다 치더라도 그리움 남아 맴돌던 웅덩이마저 사라졌으니
그러나 조용히 저 물결 소리에 귀 기울여 보려므나 부드러운 흙더미에 기대앉아 보름 달빛을 맞이하던 그 낭만의 밤,
서로 길들여진 몸 향기 푸릇하게, 멀리서 울려오는 징소리처럼 은은하게 느껴지지 않니
네 아슴아슴한 추억의 징채로 바람의 징을 두드리면 그 떨림의 파장 따라 달빛이 흔들리고 세월 따라 굳어진 응어리들 서로 만나 춤을 추리니
세상 벽과 벽 사이의 차가움,
두려움과 한숨으로 여문 옹이들
흐물흐물 녹아내리도록 우리 앞뒤 따지지 말고
힘껏 껴안아보자꾸나
오늘 밤 서로를 깊이 받아들이자꾸나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그리움을 함께 앓고 있는
너, 수달아!
어디서 여태 기다리고 있는 거니
112
2
무작정 믿는 게 아니었어
그 말은 환상이었어
소중할수록 서로 부족할까 불안했었지
네 눈부처에서 돌아선 그 순간부터
지금 네 눈 속에 누가 들어앉아 있는지
나의 손길이 거칠지나 않았는지
그 의심의 미궁에 빠져 점점 멀어졌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서로의 마음 벗어날 수 없어
때로는 그리워하고 환상을 할퀴고 물어뜯으면서
바다 속으로 기찻길 놓으면서
온라인으로 그리움을 부치면서
서로의 눈부처가 되기 위해 일단 만나야 하리
체온을 가까이 느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지
사랑이란 잠깐 돌아서도 의심의 눈덩이가
불어난다는 걸 너도 깨달아 돌아온 거냐
금호강 하구에서 애타게 부르는 네 애절
새내다리 아래서 거친 손마디 만지작거리는
네 커다랗게 슬픈 눈망울
서로 쓰다듬으며 강바람을 끌어안아야
그 사이 정다운 공명이 생기지 않겠니
부드러운 들판, 풀잎들 새파랗게 돋지 않겠니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그리움을 함께 앓는
너, 수달아!
어디서 여태 기다리고 있는 거니
열사흘 달 수줍게 떠오르고
달빛이 다리 밑 물결에 스며들고 있어
달빛체온을 끌어안는 신천의 숨결
차륵, 차르륵, 거칠어지고 있어
3
쉿!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버드나무 아래로' 그 속삭임도 이제 소용없어 하얀 솜털 휘날리던 버드나무들 모두 흔적조차 없으니 사람들 우악스러운 목소리와 발자국소리만 왁자하니 색깔 고운 사금파리 빻아 떡도 찌고 반찬도 만들어 상을 차리며 나는 엄마 , 너는 아빠 소꿉놀이하던 그곳을 찾을 수 없어 그 그늘이 없어 우리는 만나지 못 하는구나 반질반질 검은 자갈돌 사이로 알록달록 채송화 꽃잎들 찧느라 물든 추억들 지금도 가슴에선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는데 너 어디 숨어 떨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니 막상 몸 숨길만한 바위도 하나 없는데
바보다듬이질
-방천 연가 9
시아버지 회사 직원들의 뽀쁘린 이불보 빨아 풀 먹이고 다듬이질해 대느라 단순하면서도 친정 과수원 들장미 가시들을 불러 모으던 그때 그 시절
백서른 평 삼덕동 적산가옥 마당엔 마중물 먹은 펌프소리와 키 큰 리키시다소나무가 바람소리 철퍼덕, 철퍼덕, 우! 우! 양동이에 물 받아 마당 청소하는 소란을 모아 합창했다
그 어울리지 않는 화음 한참 즐기던 참새들이 마당에 내려앉아 마르다가 남은 물에 깃털 다듬는 한낮, 혼자 남은 맏며느리는 절간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바다를 꿈꾸기도 했다
밥 한 끼 먹기 어려웠던 시절, 셋째 넷째 딸까지 대학 공부시킨 아버지 어머니의 자존심에 어떻게 풀 먹여 다듬이질을 할까 그런 골머리 추호도 없이 빛깔 고운 산호초가 분명 이 허허 집안에 있을 거라고 막연한 생각만 하고 살았으니
114
수선하다
-방천 연가 11
플로체 시화전 둘러보고 걷는 시장 골목길
김광석 거리 탓인지 옛집들이 사라진다
술집들 지나 재봉틀집 장미들이
꽃송이들로 낡은 담장 수선하고 있다
삼십년 전 첫사랑과 걷던 시절로,
신혼여행 길로 되돌려 주는
재봉틀소리가 늦은 봄을 밀고 간다
내가 비친 유리창에 대고 혼잣말을 끼얹어본다
“봄날도, 여름도, 가을까지 다 그냥 보내버리고
찬 서리 겨울 늦바람에 몸부림치는
여자의 몸과 골진 마음, 그 겨울을
다시 화사한 봄날로 수선해줄 수는 없나요?”
115
연탄재를 차다
-방천 연가 12
시장 연탄집이 어디였는지 살피다가
옛 삼덕동 집에 갇힌다
대책 없이 가정부 내보내고
하루 스무 장까지 연탄 갈아 넣던 아궁이
밀고 당기며 갈아 넣다가
뜨거운 연탄재가 흰 버선으로 들어가
팔짝팔짝 뛰기도 했었지
제 할 일 다 한 빈 몸뚱이지만
연탄재를 고무신발로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할 일 다 하려 아등바등
새댁을 비웃는 그가 가시였다
연탄에 불 붙여주는 번개탄
연탄은 온몸에 구멍 난 불길 통로지만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위아래
불끼를 나누는 번개탄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었기에
116
비무장지대
그와 내 방 사이 거실엔 온갖 잡초들이 꽃을 피운다. 근 사십년 결혼 생활에도 미처 가꾸지 못한 것들 일일이 찾아 대차게 서로 가슴에 못을 박는다. 다시 뽑으려 용쓰다가 쓰다듬다가, 그 한풀이들이 꽃을 피우지만, 아무도 봐주는 이 없어 홀로 지친다. 경계선 제멋대로 지우고 날아다니는 콩새들의 자유로운 하늘, 멀거니 바라보면서
117
자인장에서 상어 만나다
일연과 원효대사, 설총이 태어나기도 한
경산군 자인의 장은 돔베기가 지킨다
바닷바람도 먼데 웬 상어냐
고향 바다 떠나오면서 소금에 절어
씹을수록 쫄깃하고 간간한 갯벌 냄새
콤콤비릿한 시장바닥 냄새
살면서 간 쓸개 다 태워버린
내 모습, 자화상이라 설레발을 친다
시절 원망하느라 짜고 쓴맛만 남아
아직 씹히는 맛도 없지만
초등학교 시절 장돌뱅이 돌아다니다가
운 좋게 엄마를 만나서
얻은 유리 브로치에 비친 무지개
새파란 바다에 영롱한 햇살
밥그릇 수를 세며 나이 먹는 동안
그 햇살, 그 무지개 다 잃어버렸다
누가 빼앗아갔느냐
굳은살 박히도록 손에 꼭 쥐지 못한
자신을 탓하지 않고 누가 나를
자인장 상어 눈알로 만들었느냐
맘 놓고 화풀이할 수 있는 내 고향
그래서 친정집 뒷마당 소나무가
엄마가 백수 다 되도록 그 자리 지키는가
118
꽃구경
낙동강, 섬진강 따라 돌고 돌아
봄맞이하고 집에 돌아오니
손녀 민서가 “예쁜 할머니!”하며 와락 안긴다
물빛 유치원복에다 함박웃음꽃,
이 꽃송이 두고 꽃을 찾아 해종일 쏘다니다니
어디 그뿐이랴, 우리 집 뜨락엔
장차 큰 그늘 될 동영, 민규, 곤태, 태하,
저 나무들이 넉넉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119
씹히다
매 꼭꼭 씹는다
어금니 맷돌 얼얼하도록
씹어 돌려야 검은 호수 물결 잠잠해진다
육십 평생 아무 생각 없이 씹었는데
한 철 잠깐 피어 사람 가슴 울렁이게 하는
범어산 벚꽃 피는 봄날
문득 내가 씹힌다
말없이 씹히기만 하던 한 생명의 반란인가
쌀 한 톨이 되기 위해 견뎌온
겨우 한 해인 제 생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래, 내 생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목숨들을 씹어야 했던가
목이 메어온다
죄인처럼 세상 바람과 오남매 밑밥으로 씹히다가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이제야 풀려나신
어무이, 이봉화 여사
국화꽃잎과 함께 차가운 어일 땅에
묻어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철이 드는 것만 같다
120
나부상의 눈빛
-전등사 1
고통이란 금세 길들여지는 것
쪼그리고 앉아 절 추녀 받들며 끙끙대는 것도
잠시, 필요할 땐 언제라도 사랑이란 도구를
쓰는 세상의 남정네들 비웃는 벌거벗은 여인
돈 몇 푼에 마음까지 바칠 줄 믿었던 도목수의
어리석음 바람에 흘려보내고. 밤이면 부처님
신심의 높이 눈 맞추려 꿇어앉는다
발등에 입맞춤 한다
나무속에 갇힌 주모는 몸과 마음
아낌없이 천년 불공을 드리는지 그러나
눈빛만은 날마다 싱싱하게 되살아난다
삼존불은 발아래 놓인 불전들 그녀에게 모두
되돌려주지만 그녀는 이미 그녀가 아니다
깊은 바다 무늬 진 푸른 몸 장삼 자락이 감추며
무명삼매의 눈뜬다
석가모니불은 흙탕물 몇 번 가라앉혀야
지장수 된다는 걸 손가락 하나 들어 말없이 보이신다
몸으로는 간대로*1 꽃뱀 비늘의 독기 녹일 수 없다는 듯
121
인연의 감옥
-전등사 2
서까래 밑 주모의 나상에서 살 비린내 밤낮 흐느끼며 법당 안으로 흘러들어 부처님 전에 하소연하다가 돌덩이에서 깨어 제발 눈을 뜨시라고 얼어붙은 온 몸을 입김으로 뜨겁게 불어보다가 제 사특한 불심으로는 어쩔 수 없어 다시 추녀 밑으로 들어가 시지포스의 받침대가 된다
천년을 추녀 밑 배회하며 한 마리 늑대가 된 그 사내, 도목수 산발한 채 바람 되어 흐느끼는 소리에 부처님들 지즈로* 바위 깨트리고 나와 온 몸 돌고 있는 푸른 피톨 내보이신다 그들의 비린 인연 삭히려고 수평선 트여오는 햇살 한 줌 잡으시고 두 가슴 위 말갛게 얹어 미소 지으시며
* 드디어
122
화사등선花蛇登仙
-전등사 3
사랑이란 스쳐가는 바람결 같은 것
천년 시간을 전등사의 서까래 들어 올리도록 발가벗겨 쪼그리고 앉혀진 몸
눈바람이 몰려와 칼끝으로 빗금 그어놓거나 꽃바람이 애무하다가 찰싹 뺨을 때리기도 한다
햇발은 그 분홍빛 살결 얼렸다가 녹였다가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어둠 속에 가둬버린다 법당의 염불소리는 저승처럼 아스라이 들리고 생밤을 깨물며 돌아다니는 도깨비들과 어울리면서 제 몸에 박힌 가시들을 뽑는다
이 갈며, 알록달록 고운 무늬로 문신을 그려 시시로 풍화되는 몸을 길들인다 드디어 몇 천 번의 허물벗기로 거듭난다 나부상의 나무껍질에 갇힌 속 살결 되살아나고 이젠 주모의 솜털 하나하나 눈을 뜬다
추녀 밑 꽃뱀의 전생 모든 인과 벗어두고
지글거리는 지옥의 혀 끊어버리고
한 마리 저승새로 날아오르려 한다
123
비가悲歌
-전등사 4
거문고 가락 눈발에 툭, 끊어진다
그 끈적끈적한 인연의 줄 어쩌지 못해
전등사 처마 밑을 떠나지 못하는
저 사내, 도편수
제 사랑의 깊이 재어보지 못하고 세상의 여자들을 벌레 먹은 장미라며 꽃봉오리까지 마구 짓밟더니
남몰래 새 한 마리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주모보다 자신이 먼저 사랑이란 주는 것이란 걸 깨닫기엔 너무 끈질긴 상처의 깊이와 집착, 달콤한 죽음의 길 찾지 못해 천년 시간은 흐른다
밤마다 꽃잎 질근질근 씹으며 자신이 깎아 만든 나부상의 연옥에 갇혀 너덜너덜 헤진 제 옷자락 쥐어뜯는다 언젠가 세상 한판 뒤집어 볼 바람, 미친바람을 주문으로 외면서
풋울음 잡다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 당하고
수 천 번 두드려 맞는단다
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싸 끌어안고
재 넘어 홀로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 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125
계정 숲
이팝나무 위의 오월이 파도를 일으킨다
물거품들이 밀려왔다 부서진다
술렁이는 저 물결 너머 미지의 땅 그리던
어린 시절 내 가슴이 아직도 콩닥거린다
한 장군 오누이의 피눈물이
고향에 뿌리 뻗으려 갖은 선을 그으시던
아버지의 젊은 맥박
반짝이는 연초록 잎새들과 올망졸망 꿈을 키운다
제비풀꽃들이 한데 어우러진다
짙푸른 개펄 내 물씬 풍기는 여름
가을엔 잘 익은 단풍 빛
제철 따라 다른 빛깔 파도를 일으키면서
손에 손을 잡고 끝없이 릴레이를 한다
126
번개탄, 이봉화뎐
한 세기 봉화 불 켜들고 남편과 자식들, 아래위 이웃에 꺼진 불붙이려 동분서주하던 번개탄, 이봉화 여사
벚나무 환히 불 밝혀놓고 당신의 생애 불 끄느라 숨결 깊이 몰아쉬더니
땅 속에서 하늘로 길 닦아 세상 어둠에 불붙이려면 봉화, 다시 필요하다며
두 손에 불의 씨앗 될 묵주를 꼭 움켜쥐고 떠나가신다
127
하관, 2015년 봄
흙이불 꼭꼭 덮어 누릅니다
백한 살 삶의 비애 쉬 벗어나도록
외아들이 이미 팔순 노인
순서 거스를까 두려움의 무게 내려놓으시도록
딸들아, 삶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너거들 덕분에 재미있게 잘 살다가 간다
엄마도, 여자도 흙덩이 속에 묻어두고
떠날란다, 날 애타게 부르지도 말아라
하얀 국화꽃 이파리 뿌리오니
엄마, 이 꽃 이파리로 날개 엮어 날아오르세요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 참혹한 일도 다 엮어
봉화 꽃밭 잘 가꾸셨잖아요
그 아픔들 오목천에서 금호강으로
잘 흘려보내셨지요
하늘 문 열리며
벚꽃잎들 화르르 날아오르는 날
이십칠 년 동안 기다린 남편, 우화 씨 만나 손잡고
색동 옷자락 휘날리며 처용무 맘껏 추세요!
어얼쑤! 덩, 덩, 덩기덕
128
2014년 겨울
젊은 시절 궂은비 오던 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좋아한다고
커피 한 잔으로 겉멋을 부렸었는데
살다보니 해 저문다고 다 밤은 아니었다
대낮에 갑자기 찾아오는 어둠에는
대책이 없어 기도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어둠 속에 숨어 있는
햇살 찾아 두리번거릴 일밖에
중환자 가족 대기실 햇살은 잘 잡히지 않았다
잡았다 싶으면 손가락 새로 빠져나가버리고
젊은 시절 머릿속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피는 암세포 되어 어미 가슴을 찌르고
암병동에서 창경궁을 엿보다
휴게실이 펼쳐 보여주는 고궁은
마른 잔디 갈증을 적시느라
드문드문 눈을 깔아놓고 있다
그 위로 어둠이 내려앉고
옛 궁인들 투기와 한숨을 꺼내든다
겨울바람에 말리려는지
소나무 가지마다 걸어놓는다
백여 년 동안 말려도 여전한 피비린내
별로 죄 짓지 않고 살아도
한순간에 떠나야만 한다
왜, 그렇게 피를 뿌려야 했을까
몸부림쳐서 행복을 찾았을까
네 것, 내 것 선 긋느라
젊은 머릿속 하나 지키지 못해
그들을 탓할 자격마저 없다
어미는 벌선 자세로 한생의 구원을
하느님, 부처님, 간절히
풀포기에도 기원한다
미니 인터뷰
1.시 쓰는 일 외에 평소 가장 많이 하는 일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쓴 시는 숨겨진 나의 속마음이 익어 태어난 자식 같아서 어떻게든 예쁜 옷을 입히고 가르쳐서 독자들에게 알려지고 인정을 받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첫 시집 [신처용가] 같은 경우는 특히 대구 경상도 사투리로 되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낭송을 하고 시극도 하여 이십년 넘게 ‘봄밤이라예, 휴화산이라예’ ‘처용아내 정 숙’ 등 정 숙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도록 살아 있으니 지금 생각하면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특히 신처용가 중 [웬생트집]은 김 재홍의 [현대시 백년사]에도 수록되고 [시어사전]에도 많은 경상도 사투리가 등록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시극 공연, 시낭송회 등의 행사가 많아지고 드디어 정 숙의 신처용가 시극 [봄날은 간다 1]가 올해 오월 ‘대구 칼라풀 축제’에 초대되어 대구문인협회 대표행사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구 문단에서 정 숙의 시극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물론 이미 극장 무대 공연을 여러 번 했었기 때문에 출연자들도 이미 경험이 많아서 믿음이 간다. 지난 해는 [신나는 예술여행]에 채택되어 거의 매달 전국을 돌며 시극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관객에 따라 [이상화 시극, 봄날은 간다 2] [여자의 일생]등 매달 바꾸어 공연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아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시들도 쓸 때 여러 번 낭독하면서 이왕이면 낭송하기 좋도록 시를 쓰기도 한다. 물론 [인생 1]처럼 아포리즘 같은 짧은 시도 많지만 낭송가들이 좋아하는 시들도 더러 있다. 낭송가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울림이 깊고 감동이 있어야 하므로. 시극 ,낭송 외에 호작질이라며 그림도 자주 그린다.
그냥 공허한 시간을 메꾸기 위해 승무를 변형해서 처용무를 그리고 있다. 사실 처용아내의 간절한 기도 춤인데 문인수 시인이 처용무라고 고집을 부리신다. 천 아트 [패브릭 아트]도 복지관 강의에서 시와 천 아트 강의를 같이 하다 보니 우연히 알게 되어 심심풀이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무신, 손수건, 옷, 모자 어디 틈만 있으면 호작질하고 있다.
삼십년 시집살이 한 사람이라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것이 불안하다. 몇 년 전까지 운동 삼아 하던 피겨스케이트를 그만두었으니 요즘 꽃구경 다니며 사진 촬영하는 것이 또 즐겁다.
2.내 시의 궁극적인 목표
한 이십년 동안 인터넷으로 시마을, 포엠토피아, 포엠스쿨 정 숙반, 대구문학아카데미, 여러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시를 가르치면서 얻은 결론은 시는 체험을 여러 가지 형태로 묘사하면서 뭔가 깨달음을 주어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시들은 체험을 재생적 상상력으로 묘사하여 안정되긴 하지만 시적인 긴장미나 신선감이 없고 어떤 시들은 너무 과다한 상상력으로 서구적인 묘사에만 치중해서 별 맛 없이 마무리 되는 시들이 많다.
이런 시점에서 필자는 신선한 연상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누구와 닮지 않은 정 숙만의 시를 쓰고 싶다. 그래서 늘 직관력 훈련과 이미지, 그리고 사유의 폭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
깨달음이나 감동을 주려면 사유가 깊어야 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이를 갈아라, 삽질을 더 많이 하라’ 이다. 그래야 깊이가 있는 글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삼천포로 빠져라’이다. 비약을 말하는 것이다. 시가 첨부터 결과가 같으면 재미없지요. 첫 구절 읽고 답을 알아버리면 더 읽을 필요도 없으니 마지막 결론은 완전히 다른 핵심이 있어야 한다. 시인도 결국 스토리 텔러 같아서 구성에 반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알맹이 있는 시를 쓰려 노력은 하지만 맘대로 되지는 않고 그래도 낭송가들이 필자의 시로 낭송하는 것을 좋아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졸 시집 신 처용가는 시극과 마당극으로,
졸 시 ‘흰 소의 울음 징채를 찾아’와 ‘풋울음 잡다’로 시극 공연을 하고 ‘우포늪에서’란 시는 많은 낭송가들이 기꺼이 낭송하고 있다는 소식에 우쭐하기보다 내 시가 징 제작에서 풋울음 잡는 참된 징수가 두드리는 재울음, 징한 울림의 징소리가 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내 시는 서구적인 묘사로 언어유희 같은 얕은 시가 아닌 한이 어우러진 한국적인 정서의 징한 울림이 있는 시가 되길 원한다.
3.요즘 시가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본인의 작품은 어떻습니까
그렇다고 내 시가 낭송가들이 즐겨 택하는 쉬운 시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연상 상상력을 아는 수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왜냐면 시어나 상상력이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나만의 새로운 시를 쓰려면 조어, 즉 시어 개발도 해야 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비약도 해야 하므로, 조금 해설이 도와주면 ‘아하!’ 하며 손뼉을 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 시가 어려운 것은 현대시라며 너무 상상력에만 치우치고 묘사에 그쳐 감동을 주지 않기 때문에 뭔가 찝찝하기만 해서 결국 머리가 아파 다 읽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평론가들이나 신춘문예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응모자들이 이 책에서 한 문구 취하고 저 글에서 또 그렇게 하다 보니 서로 비슷한 형태의 글로 표절이니 모방이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시는 무엇보다 진정성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시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은 하지만 독자들이 평가를 해야 하니 모든 시인들의 숙제가 아닌가.
저자 약력
정 숙 연보
*1948년 경북 경산군 자인면 계남동 까막새 과수원에서 정우화 이봉화의
1남 사녀 중 딸로서 셋째 딸로 출생, 사과나무들과 소꿉놀이함
자인초등학교, 신명여자 중학교, 졸업
대구여고 재학중 유치환 시인 교장 선생님으로 근무하셨음
*1966년 경북대학교 문리과 대학 국어국문학과 입학
김춘수 시인 강의 들음
*1970년 졸업과 경주 월성중학교 국어교사 취임
*1973년 결혼을 위해 교사 퇴임 후 10월에 결혼, 시집살이 시작
*1989년 대구문학아카데미에서 시공부 [박주일 시인 강의 들음]
*1991년 계간지 우리문학으로 등단
*1993년 계간 시 전문지 시와시학으로 재등단
*1995년 계간 시와 시학에 신작 특집으로 처용아내 연작시 5편 발표하여 조병화, 정진 규, 오탁번, 많은 시인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음
*1996년 '신처용가 '[시학사] 첫시집 출간. 대구 경상도 방언으로 현대적 처용아내 연작 시
본명 정인숙에서 정 숙으로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숯’이란 시가 들어감
전국 삼초 삽삼겹살 식당에 ‘숯’이란 시가 만화가 걸림
*1997년 많은 사투리 시어들이 ‘김재홍의 시어사전’에 실림
‘웬생트집’ 시가 김재홍의 ‘현대시 백년사’에 실림
*1998년 대구문학 아카데미와 은시문학회 회장 역임
찾아가는 문학으로 지원받아 경산여고에서 신처용가 시극 극본 ‘ 봄날은 간다 1’ 쓰고 김태석 연출 첫 공연
*1999년 대구문학 아카데미[대표 고 박주일시인] 시 창작반 강의
16기부터 36기 까지 이어오고 있음
*2000년 현대시학 신작소시집 ‘향피리’ 연작시 발표
*2002년 대구 동도초등학교 특기적성 교사로 동시 지도
*2002년 두번재 시집 '위기의 꽃'을 문학수첩에서 출간
*2002년 인터넷 시마을과 ‘포엠토피아’에서 ‘포엠스쿨 정 숙반’ 운영
* 2003년 경북 청도 도서관과 대구 서부 도서관 현대시 강의
북부 도서관에서 초등생 시 강의
이곡중학교에서 시 강의
여름 수덕사 전국 시인들 시낭송대회에서 ‘우포늪에서’로 대상 수상
*2006년 세번째 시집 '불의 눈빛'을 시학사에서 출간
대구문학아카데미와 전국 인터넷 제자들이 모여 ‘청향 시문학회’를 결성하고 첫 동인지‘처용, 시 뜨락에 서다’ 발간. 시하늘에 모여 ‘불의 눈빛’과 함께 출판 기념회
강원도 토지 문학관 서정시학 행사에서 청소년 시극 지도 대상 수상
*2007년 시극 극본‘ 봄날은 간다 1’ 최경자 낭송가와 연출 공연지도 발표
처용무 그림 그리기 시작
*2008년 영상시집 출간
*2008년 정신과 표현에 산문 ‘석학을 찾아서’ 2년 동안 연재
정지용 문학관 전국 시낭송대회에서 ‘우포늪에서’로 대상 수상
*2009년 10월 네번째 시집 '바람다비제' 출간 [시학사]
DVD 출간, 만해축전에서 신처용가 시극 공연
청소년 시극 지도 대상
울산 현대 미술관에서 ‘봄날은 간다’ 시극 공연 낭송가 최경자 출연, 지도
*2010년 현대시 박물관에서 제정한 제 1회 만해 님 시인 상 수상
수상 작품 ‘갈대를 위하여’
유니버시아드 육상대회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시극공연 ‘봄날은 간다’
대구시의원들 후원으로 공연 연출 지도 한국낭송문학회 이병훈회장과 공동연 출로 푸른 극장에서 공연
*2010년 현대불교 문인협회 대구 경북지회 회장 역임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역임
초파일 전야제 행사 법왕사에서 ‘봄날은 간다 1’‘ 시극 공연
*2011년 12월 제 5시집 ‘유배시편’ 시학사 출간
그림 승무를 모무라고 하니 문인수 시인이 처용무라고 함
보현사에서 시화 전시회 [직접 그린 시화를 전시함]
김양동 서예가께서 광끼가 있다고 평함
*2012년 현대불교 문인협회 대구 경북지회 회장 연임
자선시집 ‘돛대도 아니 달고’ 시와 반시 사에서 출간
문인수 시인이 정수기 시인이라며 웅진이란 호를 지어줌
*2014년 시와 시학 시인회 회장 역임
시와 소금 중앙위원 역임
‘ 삼국유사 속 내 시의 씨앗‘ 산문 ’시와 소금‘에 연재
대구시인협회 행사로 시인들의 작품 전시회에 부채그림을 전시함
*2014년 본리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으로‘ 처용 아내의 길 찾아서‘ 강의와 탐방
*2014년 본리 도서관에서 ‘좋은 시 읽기와 쓰기’ 강의
*2014년 8월 본리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으로‘신라 여왕과 여인의 향기’ 강의와 탐방 뒤 유튜브에 상재
*2014년 9월 문학청춘 특집으로 대구의 특미를 알리는 행사 ‘유목민’에서
이하석 장옥관 등 대구 시인들과 대구 음식 시 낭독회와
신처용가 시극 공연 [정 숙, 김영탁, 호병탁 출연]
*2015년 제 7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발간 [문학세계사]
제 7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출판기념회 대구문학관에서
*2015년 12월 23일 제 25회 대구 시인협회상 수상
*2016년 1월 대구 문학 아카데미 25회 출판기념과 시창작반 모집
*2016년 4월부터 범물 시니어 복지회관에서 ‘내 인생의 꽃’에 대해 강의
*2016년 5월 이상화 시인을 기리는 시극 극본 [봄날은 간다 2] 완성
*2016년 5월 17일 상화네거리에서 시극 공연, 연출 , 달서구청과 본리 도서관 후원
*2016녀 6월 경화여고에서‘찾아가는 서당’에서 시극과 신라여왕의 향기‘ 강의
*2016년 문학청춘 여름호 집중특집
*2016년 7월 향촌 문학관 내 녹향의 [음악과 예술의 만남]에서 ‘음악이 시와 미술과 영 화를 만나다’에서 ‘시와 다른 예술세계와의 관계’ 강의
*2018년 시와반시의 신나는 예술여행에서 일년간 전국 요양병원 군부대에서 시극공연 과 시낭송
*2019년 대구 컬러풀 축제 문인협회 대표로 참가, 정 숙의 시극 봄날은 간다 1 연출 공 연. 이육사 기념 사업회에서 매달 태마시 낭송회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