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미래시학 여름호 발표
자화상
ㅡ간이역에서2 【 정 숙]
홍매인 줄 알았는데
흑매를 피운 나무 아래서
기어이 뿌리까지 파봐야 한다며
종일 삽질을 하다 지쳐, 퍼질고 앉아
막대사탕의 단맛을 빨고 있던
한 여자
샘물을 길어 한 다라이 덮어써야
정신이 퍼뜩 맑아진다며
두레박을 당겨 올리고 있다
샘이 얼마나 깊고 깊은지
언제쯤 물을 퍼 올릴 수 있는지
반나절 지나도록 물소리 들리지 않아
아득히 공허만 바라보고 있다
실은 올라오지 않기를 은근 바라는 눈빛 아닌가
그래, 잠시 쉴 때는 단맛이지
짭짤 달콤에 젖는 꿈꾸려는데
봄밤, 소소리 바람이 살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