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7    업데이트: 24-10-2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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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숙 시인의 시집 연인, 있어요 박한솔 해설
관리자 | 조회 314
삶의 옹이를 어루만지는 깨달음의 미학
 
박현솔(시인, 문학박사)
 
 
 
깨달음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오는지를 생각해본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상 속의 어떤 일들이 우연찮게 깨달음의 요소로 작용되기도 하지만 시인들에게는 삶에 대해, 존재에 대해, 대상에 대해 많은 생각과 경험을 했을 때 그 극점의 결과처럼 깨달음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마치 시심(詩心)이 찾아오는 경로와도 흡사하고 미학적 발견의 과정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대상이나 사물에 대해서 오랫동안 살피고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사물의 본질을 발견하거나 이미 갖고 있는 인식 너머의 것들을 엿본다.
또한 시인으로서의 깨달음은 삶과 언어의 오랜 연마를 거친 후에야 도달하게 되는 道의 경지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사유 외에도 인생의 우여곡절과 같은 여러 경험들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서 저절로 얻어지는 깨달음이란 있을 수 없다.
정숙 시인은 일곱 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지만 문학과 접목되는 장르의 공연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스스로 미학적 삶을 꾸미며 자신의 사유들이 시간의 흐름을 통해 맑게 정제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기를 지향해 온 것 같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시인으로서, 여자로서, 자식으로서 존재론적 자각 또는 관계의 자각을 하게 되었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자각을 포함해서 세상의 허위를 벗어버리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의식은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허망하거나 이상적인 지향점이 아닌 삶의 옹이를 어루만지는 인간적인 지점임을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된다.
 
한때는
달성 공원에 갇힌 공작새가 부러웠다
그 길고 빛깔 화려한 옷자락 끌면서
햇살을 배경으로 한 바퀴 도는 모습이
하도 도도하고 우아했기 때문일까?
겉모습보다 삶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부챗살이나 가끔 펴들며 귀부인 흉내를 내면서
 
오래 살아보니
그것은 내가 입어야 할 옷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곧 터져버릴 풍선 하나 불어대고 있었던 것
별자리에서 내려와 바람과 같이 숨 쉬고
이슬 머금는 들꽃들과 같이 부대끼는
풀, 풀들이 걸친 저 자유로움이
나의 맞춤옷이었던 것을
 
- 「옷 고르기」 전문
 
화자는 한때 “도도하고 우아”한 공작새의 모습을 부러워하며 타자들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자신의 본래 성향과 기질은 “화려한 옷자락” 안에 감춰두고 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만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별자리”에 꿈과 이상을 걸어두고서 고매한 것들에 어울리는 생각만 하느라 자신의 사고가 일정한 틀에 갇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그녀는 공작새의 우아함이나 별의 이상이 아닌 “풀”이 자신의 정체성에 근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친 세상과 부대끼면서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를 내비칠 수 있는 삶이 현실의 삶이고, 풀의 삶이고, 자신이 지향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다른 시 「울산 반구대 암각을 읽다」에서 “자손대대 이어 이어 찬란하게 꽃필 오늘의 해바라기 꽃을 기대하면서 암각화를/ 더 세밀하게 새기기 위해 밤낮 서걱거리며, 파도 바람에 부대”껴온 선사시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화자의 본성이 삶 속에서 자유롭게 사유를 발산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깨달음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를 창작하는 시인으로서의 자각은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하고 많은 일 중에서 시를 짓게 된 일, 시를 짓는 시인은 삶의 매 순간을 시로써 승화시키는 존재임을 알 수가 있다.
 
왜 벽만 보이는 걸까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아 설 때마다
활짝 웃는 장미꽃무늬 벽지를 바른다
간혹 다 떼어내지 못한 가시발톱이
줄을 세우기도 하지만
무작정 그 위에 연꽃 도배지를 눌러 바른다
삶이 뿌리는 저 검은 그림자들
앞을 보나, 뒤돌아보나 벽이 길 막고 서 있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 애증과
꽃과 꽃가시 사이
해맑은 웃음과 눈물 사이
모든 틈새에 벽지를 발라 위장해야 한다며
없는 벽, 쌓기도 하는 난 허술하고도
시시한 시, 도배장이
 
-「도배장이」 전문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흔적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보다 자신만의 깊이 있는 사유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것은 모든 시인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시인은 일상의 모든 것들을 소홀히 대할 수가 없고 시적 대상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의미에서 탈피해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화자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벽”들을 보면서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그 벽을 자신의 시로 도배하고 싶어 한다. 순간마다 닥치는 장애물을 삶의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 시선은 시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벽”으로 상징되는 것들에는 “검은 그림자들”이 있고 “사랑하는 이들 사이 애증”이 있고 “꽃가시” “눈물” 등이 있다. 이것들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화자에게 닥친 커다란 시련이지만 그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가꿔줄 시가 있기에 화자는 삶의 의미를 느낄 수가 있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숱한 벽들을 감당해야 했을까. 그것들에 얼마나 아름다운 도배를 해왔을까.
화자의 대상에 대한 인식은 사물에 대한 자신만의 시선과 발견으로 나아간다. “봉선화”와 “연잎” “수양매화” 등과 같은 본래의 의미 외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영산홍들과 다르게, 너무 어리다 싶은데
봉선화는 무엇이 급한지 낮은 키에서
꽃을 먼저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매일 조금씩 키를 키우면서 
탑을 쌓듯이 꽃송이를 달아 올린다
연보라 기도가 조롱조롱 맺힌다
제일 아래 씨앗을 살며시 건드리니
제 딴엔 힘껏 튕겨버린다
깜짝 놀라는 사이
씨앗들이 옆 화분으로 날아갔는지
빈 손이다
 
- 「봉선화 꽃탑」 부분
 

여름비 종일 내린다
연잎이 빗물을 받아 안는다
갈증에 지친 초록이 더 싱싱해진다
 
그새 향기로운 술을 빚었는지
쪼르르 한 잔 권한다
연못에 거주하는 모두 축배를 든다
<중략>
우산이 흐느적, 흐느적 춤을 춘다
 
비 오는 날 연못엔 맘 놓고 취할 수 있는
술잔과 술친구가 있다
 
- 「술친구」 부분
 

암자 마당에서 하얀 옷고름 입에 물고
그윽한 눈망울엔 눈물이 방울방울 맺힌
 
수양매화
누굴 기다렸는가?
 
햇살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온몸 축축 늘어뜨리면서
 
먼 산 사방불 찾아 올라가니
부처님은 차가운 몸만 남겨두시고, 어디서
 
매향에 취한 솔바람을
쫓아내듯 날려 보내고 계시는구나!
 
- 「윤필암에서」 전문
 
위의 시들은 기존의 인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의미 확장하면서 시적 환기를 꾀하는 작품들이다. 이런 의미 확장을 위해서는 화자의 예리한 관찰이 필요하고, 그러한 모든 과정에서 기존의 인식을 뒤엎는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이 찾아오게 된다. 먼저 ①에서 어린 봉선화가 일찍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과정에서 작은 것에 집착하기보다 자기가 모은 씨앗들을 모두 튕겨버리고 새 탑을 쌓는 것을 시도하는데 이를 발견해내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화자는 그 모든 과정들을 세심하게 지켜보면서 봉선화만의 독특한 특징을 발견한다. 그리고 봉선화가 남다른 강단으로 힘겹게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
②에서 화자는 비 오는 연못가에서 “술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 상상을 한다. 비 오는 연못에서 하늘거리는 넓은 “연잎”은 “술잔”에 해당되고, 연못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화자의 “술친구”가 된다. 이러한 것은 사물의 기능을 한 가지에 고정시키기보다 좀 더 확장하려는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③에서 “수양매화”의 아름다운 자태와 그 “매향에 취”하는 것을 경계하는 부처님의 의지가 대조적으로 나타나면서 아이러니가 유발되고 있다. 모든 것이 경건해야 할 윤필암에서 화자가 본 매우 낯선 풍경은 현상 너머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려는 화자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화자의 의지와 숨길 수 없는 위트는 시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면서 생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
 
1.
석양이 붉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이제 알겠다
강산이 한 일곱 번 바뀌고 나니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하루가 한평생인 해도 지친 것이다
얼마나 지쳤으면 술 몇 모금 닿지 않아도
취해서 말없이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중략>
 
3.
노을 붉게 잔치 벌이면서 꽹과리 치면서
저 붉게 타오르는 석양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떠나는 이의 입에 물려주는  
마지막 사탕 맛 빛깔 아닐까
마약으로, 가는 길 황홀해지기를 원하는 
가족의 마지막 배려 뒤
휘휘한 고독, 그 눈시울 빛
 
- 「석양이 붉은 이유」 부분
 
화자는 자연의 이치에 인간의 시간을 빗대어 죽음에 대해 말한다. 특히 “석양이 붉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해도 지친 것”이고 “말없이 사라지고 싶은 것”이라는 사유로 확장되는데 이는 매우 개성적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기까지 “강산이 한 일곱 번 바뀌”는 시간이 필요했음도 고백한다.
또한 화자는 자신이 죽음을 일찍 준비하게 된 계기가 백세까지 살고 있는 어머니가 한몫 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면서 “석양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떠나는 이의 입에 물려주는/ 마지막 사탕 맛 빛깔”이라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매우 탁월한 비유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것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고 슬픔의 시간을 견딘 자만이 발견해낼 수 있는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시 「소모품」에서도 화자는 어머니와 관계된 객관적 상관물인 “연필”을 통해서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몽땅 연필이 되기 전/ 버린다고 꾸중을 심히 들었을 때// 입술이 삐죽삐죽, 엄마는 구두쇠라며/ 투덜거렸는데// 이제 나이 들어보니 알겠다/ 깎여나가는 연필이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어쩔 수 없이 사람도 소모품이라는 걸/ 곧 버려지듯 사라져야 한다는 걸// 엄마는/ 그때 이미 아셨던 거다” 그리고 화자는 석양을 통해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겹쳐보면서 “적당할 때, 모두가 아쉬워할 때/ 말없이 깨끗하게 꽃잎처럼 아름답게 사라지는 게/ 축복”이라는 존재론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처럼 화자의 마음속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가득한데 특히 어머니와 연관된 시 중에서 이미지가 아름다우면서 깊은 삶의 철학이 묻어나는 시를 한 편 더 살펴보기로 한다.
 
빗물 속 숨은 불끼리 부대끼며 포효하는
여름소나기
바람은 바람끼리 힘을 모아 빗줄기 타고 흐느적인다
그 거친 춤사위에 젖는 맥문동 줄기
기댈 곳 없는 꽃잎들 한을 쌓으며 몸 흔든다
그러고 보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생존을 위해 흔들리면서 뼈를 키우고 있다
<중략>
그래,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들은 이미 그걸 깨달은 거지
저 소나기도 이리저리 빗금 그으며 몸 굽히며
필사적으로 뛰어내리는 거지
자존심 세우기엔 이미 너무 지친 모습
그저 열심히 모무, 처용무를 추는 수밖에
비구니보다 더 절실한 어미의 기도는
무능력한 자신을 감추는 일인 걸
 
- 「어머니의 승무」 부분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여름날 소나기가 오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와 그것에 화답하는 모든 사물들의 모습을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 이 시는 김수영의 「풀」과 같은 계열의 시이지만 사물들끼리 조응하는 모습은 김수영의 “풀”보다 더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 특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생존을 위해 흔들리면서 뼈를 키우고 있다” 같은 표현과 “저 소나기도 이리저리 빗금 그으며 몸 굽히며/ 필사적으로 뛰어내리는 거지”와 같은 표현은 화자 특유의 언어적 감각에 깊이를 더한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흔들림이 “모무, 처용무”와 함께 어머니의 “승무”로 확장되는 지점에선 탄성이 나오게 된다.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음을 “저들은 이미 그걸 깨달은 거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이 갓 등단했을 때에는 그러한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 속의 사물들처럼 시적 화자도 오랜 세월 풍파에 시달리고 때로 세월에 순응하면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표현들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전, 배추 전을 차례로 부치면서
조상님께 투덜거리듯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쯧, 혀를 찬다
 
쪽파들은 콧대를 세우며 일어선다
몸이 뜨거워질수록 지, 지 ,지,
날 욕하는지 더욱 소란스럽다
밀가루 한 국자 끼얹는다
더 새파래지는 자존심 꾹, 누른다
그 순간 탁, 무릎을 친다
 
밀가루와 파 그리고 불과 기름이 어울리는 것처럼
서먹한 동서 간 서로 뜨겁게 스며들면서
정이 깊어지라고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던가
결혼 근 사십 년 지나 이제
맛깔스런 우리네 한 생을 느긋하게 바라본다
 
- 「전을 부치는 이유」 전문
 
제사나 명절 때 동서들끼리 부엌에 마주앉을 일이 많은데 오랜만에 만난 동서가 서먹한 것은 사실이다. 핵가족이 되면서 동서끼리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친자매처럼 허물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어서 서로 눈치만 보게 된다. 그리고 노동의 강도가 더해지고 음식 냄새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할 즈음 명절이나 제사가 못마땅하게 생각된다. 그리고 전을 부치는 과정에서도 숨이 죽지 않은 “쪽파”가 화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데 “밀가루 한 국자 끼얹”으며 “더 새파래지는 자존심 꾹” 누르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밀가루와 파 그리고 불과 기름”이 어울리듯 “서먹한 동서 간”에 “서로 뜨겁게 스며들면서/ 정이 깊어지라고” 명절과 제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사실 제사나 명절을 치르고 나면 동서 지간의 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지고 정이 쌓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문제는 이런 깨달음이 있기까지 “근 사십 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관계의 자각이나 발전이 쉽지가 않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런 과정이 모두 지나고 나서 얻게 된 삶의 여유와 느긋함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화자만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사물과 대상을 통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자각과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삶에 대한 자각과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나와 대상, 세계,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발견을 통해서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를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는 통합적인 안목이 생기게 된다.
 
등뼈가 없어 흐물흐물 흐느적인다
 
힘 빼는 척 살랑거리다가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종내는 숲을 울리며 쓰러뜨리기도 한다
 
결코 척추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
 
마치 바람마구니처럼
 
- 「삶」 전문
 
이 시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형태를 알 수 없는, 예측 불허의 시간 속으로 나아가는 존재의 막막함 같은 것이다. 화자가 생각하는 “삶”은 “등뼈가 없어 흐물흐물”거리다가 자칫 만만하게 보는 듯싶으면 “인정사정”없이 “숲을 울리며 쓰러뜨리기도” 한다. 즉 호의적인 듯하면서도 거친 세계를 그리고 있다. 화자는 이를 “바람마구니”라고 지칭하는데 불교적 의미로는 번뇌나 욕망 같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특징은 “결코 척추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있는 듯하면서 없고 없는 듯하면서 있는 가히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삶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은 어느 한순간에 형성된 것이 아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터득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으로, 열정으로 그 모든 것을 헤쳐 온 것에 더 가치가 있다.
정숙 시인의 시는 쉽게 읽히는 것은 쉽게 읽히는 대로, 모호한 의미를 갖고 있는 시는 모호한 대로 나름의 철학을 부여하며 깨달음의 미학을 투영시키고 있다. 가깝게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아가서는 사물로, 대상으로, 타자로, 세계로 확장되는 자각과 인식, 발견의 미학과 깨달음의 아포리즘이 집대성되어 있다. 어느 정도 삶에 대한 이력이 붙은 후에 얻어지는 빛나는 훈장들을 달고 더 큰 삶, 더 큰 세계가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경북 경산 출생
경북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주 월성중학교 국어 교사(전)
1993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 <영상시집> <바람다비제> <유배시편> 시선집 <돛대도 아니 달고>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전자 시집 <그가 날 흐느끼게 한다> 한국대표 서정시 100인선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연인, 있어요>
[DVD] 출간, 시극 극본 [봄날은 간다1] 연출 공연
[봄날은 간다 2]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시극 극본, 연출. 상화네거리 공연
‘신나는 예술여행’에서 시극 봄날은 간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여자의 일생 등 전국 순회공연 [처용아내와 손톱 칼]
 
2010년 1월 만해 ‘님’ 시인상 수상
2015년 12월 대구시인 협회상 수상
 
2019년 7월 대구 칼라풀 축제 참가 [신처용가 시극 ; 봄날은 간다 극본, 연출, 연기]
대구문학 아카데미와 여러 도서관과 녹향, 복지회관에서 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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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문인협회 대구 경북지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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