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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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336    업데이트: 13-12-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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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시나무를 닮은 시인 황영숙

 

시는 진실과 가장 가까이 있을 때 울림이 크고빛이 난다.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천 명이 시를 읽고, 한 명이라도 감동을 받는다면 시인으로서 행복하다고 했다. 내 주위에 있는 것, 잊혀지고 소외 된 것을 쉽게 풀어내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싶다는 황영숙 시인. 조용하면서도 수줍은 듯한 그녀는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향기로운 인간미가 나는 시인이었다.

문학, 너에게로 가는 길

 


“문학은 제게 가까이 다가오면 사라지는 아지랑이처럼, 문학에 대한 열망은 많았지만 그 꿈을 이루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1990년도에 등단을 했지만 그때는 철모르고 한 거죠. 19년 동안 시 동인<서설시> 창단멤버로 동인지에 시를 많이 보냈죠. 등단 후 시집을 내기까지 저만큼 오래 걸리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첫 시집이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으니까요. 그저 문학이 좋아 시작했고, 몇 백 편씩시를 쓰면서도 시에 대한 제 부족함과 미안함에 시집이 더 늦어진 것 같아요.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시에 대한 죄의식이라고 해야 될까. 완벽한 시는 없는것 같아요.

“하늘밑을 천천히 걸어 보겠습니다. 머뭇거리는 구름 밑에서는 잠시 내 삶을 세워두고 다시 한 번 물끄러미 바라보겠습니다. 떠돌다 떠돌다 맑은 물을 만나면 지칠 줄 모르는 내 열정과 그리움을 이야기하며맑은 숨소리로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황영숙 시인은 등단 후 20년 만에 첫 시집 <은사시나무 숲으로>를 냈다. 쉬운 시, 누구나 읽어도 내 얘기처럼 공감할 수 있는, 시라기 보다는 소곤소곤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을묶어 시집으로 냈다. 첫 시집이 늦은 이유에 대해 그녀는‘시에 대한 죄의식’이라고 했다. 수백 편의 시를 써왔지만, 그녀는 스스로 시에대한 미안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황 시인은 죄의식과 미안함은 시에 대한 그녀의 오랜 그리움, 열정과 맞닿아 있다.
오랜 시간 담아온 그리움과 열정이 그녀의 첫 시집‘은사시나무 숲으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꾸준히‘문학을 사랑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등단 후 20년 만에 낸 시집인터라 황 시인의 시집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황 시인에게는 문학을 사랑하게 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어린 시절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께서 직접 동화를 써서 제게 들려주셨어요. 그것이 문학을 향한 제 첫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16~17살 때 폐결핵을 앓았어요. 그때 은해사 암자에 홀로 격리가 되었죠. 어린 나이에 세상과 격리되어 혼자 지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어머니가일주일에 한 번씩 정성스레 주전자에 담아오던 약을 먹는것도  너무 싫었죠.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보다도 혼자라는 외로움이 더 컸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방안에 개미를보고도 반가웠죠. 그 작은 공간에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어요. 그곳에서 제게 또 하나의위안이 되었던 것이 책이었어요. 당시에‘벙어리 삼룡이’,‘백치 아다다’등의 책들이 있었는데, 무척 감명 깊게 읽었죠.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여기서 살아나가게 된다면 글을쓰는 작가가 되겠노라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삶의 대 동기부여가 됩니다. 어머니께 그 주전자에 담아오시던약재에 대해 몇 번이고 물어도 웃으시곤 말씀해주진 않으시네요.”(웃음)



힘겨워도 놓을 수 없는 시인의 길

문학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고단했던 삶 전반에 걸쳐 이어져왔다. 결혼 후에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직장에 다녀야만 했다. 갈라진 벽지에도 시심(詩心)이 깃들어 있는듯한단칸방에서 두 아들의 엄마로, 수십 편의 시를 쓰며 문학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점에서 책을 사보는 건 엄두도못 내 도서관을 전전하며 책을 읽었다. 간간이 신문에 투고해서 받은 돈 3만원은 꼭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데 썼다.
그렇게 문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언젠가 자신이 꿈꾸는 시인의 모습을 그리며 차곡차곡 세상을 가슴에 담았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세번은 편한 차림에 운동화 질끈 신고,문고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가까이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고칠 수 있는 것들을 잠시나마 되돌아 볼 수 있는, 그런 시를쓰고 싶어요.” 그녀의 첫 시집 <은사시나무 숲으로>는 시인이 지나온 세월동안에 경험했던 자연, 어머니, 추억, 사물, 사람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아름다운 시어(詩語) 곳곳에 스며있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나의 행복 나의 열정은 문학

황영숙 시인은 여행을 자주 다닌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님다음으로 고맙고 미안한 사람이 남편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여행을 가겠다고 가방을 챙길 때 남편은“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가겠어”라며 순순히 보내준다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두 아들의 엄마로서 그녀는 스스로 부족한 것이많다고 인정한다. 황 시인은 이러한 자신을‘철없는 아내’라 말하지만,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세상과 사람들, 자연 안에서 그녀가 건져 올리는 시심과 시어들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인터뷰 며칠 후 다시 네팔로 배낭여행을 간다며 미소 짓는 황 시인의 모습에서 소녀의 수줍은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제게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감각을 깨우고, 그래서 세상에대한 호기심, 마주하는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 늙지 않게 해줘요. 그래서 제 삶에 여행은 필수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는저를 걱정도 하지만 항상 격려해주는 우리 집안의 세 남자가 있어 든든합니다. 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세남자들이 오겠지 생각하면 든든하죠. 제가 참 행복한 편이죠”?(웃음)
황영숙 시인은 지난 2012년 대구예술인총연합회에서 주는‘대구 예술상’을 수상했다. 대구광역시문인협회 부회장으로서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누가 뭐라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그녀는 때로 일들이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거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시에 대한 죄의식, 미안함을 얘기하며 겸손해 하지만, 그녀는 지역문단에서 많은 일들을 했고, 중견 시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충실하게 수행해왔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대구 예술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아요. 앞으로도 여러편의 시를 쓰겠지만, 꿈이 있다면 제 마음에 드는 시 5편 정도를 써서 마음에 품고 죽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독자들이제 시에 공감하고, 독자들이‘아,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데’라며 느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더 열심히 해야겠죠? 요즘 제 스스로 느끼는 감수성이나 생각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서 이번에 네팔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어요. 요즘 엄마들을 보면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것 같지만 수준 높은 문화, 마음속에 진정으로 다가오는 감동, 그런 감동이 없는 세대인 것 같아요. 엄마들이 그런 감동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작은 것에서부터 감동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를 쓴다는 것은 내 영혼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밤새 시와 씨름을 하다 새벽이 다가올 때 쯤 원했던 시가 나왔을 때 가장 행복하죠. 그리고 내가 쓴 시가 아니라도 좋은 시를 읽을 때도 행복해요. 저는 주위에 가까이 있는 것, 버림받은것, 잊힌 것, 그리운 것들에 대한 반성과 용서, 그리고 회상을 통해 일반인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를 꿈꿉니다.
천명이 제 시를 읽고 그 중 한 명이라도 감동을 받는다면 시인으로서 더할 수 없는 행복이겠죠. 요즘 세상은 너무 삭막하고‘빠름’만 추구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세상의 편리함도좋지만, 우리들의 삶 속에서 시가 묻혀간다는 게 안타까워요. 저는 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스피드 시대를 잠시나마 늦추어 볼 수 있었으면 해요.

황영숙 시인의‘시(詩)’에서 모든 사물이 잘 드러나는 이유는 간절한 마음, 따스한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긍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중용과 절제의 깊이를 담은 넉넉함으로 빛나는 그녀는 숨죽이며 조용히 피는 풀꽃 같은 여성이었다.

글 최유진 기자 | 사진 윤군도 기자 우먼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