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들인 만큼 인내와 끈기로 땀 흘려 개간한 우송(雨松) 김석기의 예술 영토는 호활(浩闊)하고 공고하며 비옥하다.
2005년 5월 6일부터 26일까지 대전갤러리에서 개최된 우송(雨松)의 18번째 개인전과 전시 작품을 수록한 그의 도록에서 얻을 수 있었던 나의 소견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인류문명의 변화는 몇 년이라는 단위의 리듬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신의 영역을 잠식하게 된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세상은 확 뒤집어지고 말았다. 인간에 의해 제조된 기기에 의해 인간이 지배되는 디지털라이즈(Digitalize)의 가공시대속의 산업사회는 묵계적 질서(전 생애의 삶과 재산을 바쳐 연구한 특허품이 재벌의 신제품 개발로 휴지가 되어버리는 따위)도 도덕도 생계의 패턴도 파괴되어 실업자가 범람할 수밖에 없는 혼돈의 시대적 물결이 예술계라고 해서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론, 소론, 남인, 북인, 붕당과 파쟁(派爭)으로 날이 새고 해가 지고하던 조선시대에 대두될 수 밖에 없었던 풍진표물(風塵表物)이나 한운야학(閒雲野鶴)의 고고한 선비정신으로 동양화를 전공하는 오늘의 미술인들은 붓을 들어야하는 것일까?
이것이 우송 김석기의 이번 전시에서 제기된 잇슈가 아니었을까?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헨델의 메시아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이것은 두근거리는 가슴의 동계(動悸)와 설레임이라기보다는 충격 그 자체였다.
1993년 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제2회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 작업전’ 전시실 메인 센터에 설치된 임옥상 작품의 흰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38선을 넘어가는 문익환 목사의 인물화 앞에서의 감격과 흡사한 흥분이었다. 그때 나는 문익환 목사로 대변되는 남북협상 평화통일의 상징 작품이기 때문에 취재를 부탁한 잡지사의 청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1993년 미술세계 10월호)
정면 벽 전체에 디스플레이 된 1500×270㎝의 금강산! 스팩타클한 금강산의 외경은 압도적이고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가슴의 동계와 설레임으로 우송 김석기의 금강산 작품에서 내가 헨델의 영광(Glory)을 듣게 된 것은 거기에서 발현되어 번지고 있는 작가의 민족적 주체의식의 투명한 색채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선염(渲染)으로 처리된 금강산의 원경은 단지 공간적 거리만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그것은 이민족의 유구한 역사 친일이 친미로 돌아서 온갖 굿판을 벌려도(6.15 공동선언을 무효화하자는 공공연한 음모) 끄떡없음을 회화 언어로 웅변하고 있는 시간적 거리인 것이다. 그것은 곧 한국화의 재료를 적절히 운용할 줄 아는 작가의 테크닉일 것이다. 발묵과 갈필로 전개시킨 삼라만상의 기기묘묘한 형상과 에니미즘(Animism)에서 우리는 한국현대사(모략과 음모로 점철되었던)와 희망이 담겨있는 미래(흰 눈으로 청정하게 표현한 암반석과 그 멀리 우뚝 솟은 입석)를 읽는다.
우송 김석기는 그의 도록 발간사 「수묵(水墨)의 생명력과 동양예술」의 화두를 다음과 같이 열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40년을 한결같이 고뇌해온 과제다...’
금강산의 뱃길이 열리자마자 금강산에 가서 처음에는 10m 작업을 했고 다시 또 금강산 답사에 나서 수년의 작업 끝에 2003년에야 비로서 15m의 금강산무진도의 작품에 낙관을 할 수 있었다. 김석기의 <금강산 무진도>는 실로 40년간 무엇을 그릴 것인가의 고뇌에 대한 모든 미술인에 대한 선언이요 훌륭한 답일 것이다.
한 가지 재주에 뛰어난 사람일수록 사통팔달의 능력이 번뜩이기 마련이다. 우송 김석기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면서 나는 지금 주눅이 들어있다. 그의 글 솜씨가 글쟁이의 글을 능가하는 논리성과 실제 감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본다. 2004년作 <수락계곡>의 스케치에 붙여진 caption이다.
“우암 송시열의 발자취가 있는 대둔산 선녀를 찾아 하늘로 오르는 나무꾼이 되어 220개의 철 계단을 오른다. 고행의 길을 나서는 수행자의 앞을 막는 층암절벽이 올려다 보인다. 하늘을 향한 암벽이 끝도 보이지 않고 발아래 펼쳐진 계곡의 깊이도 잡히질 않는다. 암벽의 중간에 매달려 약해지기만 하는 인간의 존재 의미를 생각한다.”
진퇴유곡(進退維谷)의 보편적인 인간의 숙명과 고해(苦海)의 양상을 아슬아슬하게 묘사함으로서 김석기는 계곡의 험준함을 스케치 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 놓았다. 그것은 또한 17세기 조선시대의 학자요 노론(老論)의 영수인 송시열의 영고성쇠(榮枯盛衰)와 시사(賜死)에 이르게 한 사색당파의 얼룩진 역사일 수도 있다.
첫머리에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220개의 철계단 등 구체적 단어로 시간과 공간적 내용 다양한 일루전(Illusion)을 은유화한 김석기의 언어구사는 보통이 아니다.
이번 도록에 수록된 10편의 스케치화에는 한 점 한 점에 산문시와 같은 해설이 딸려 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전화로 물으니 대전 예총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7년 간 스케치여행을 연재했고, 중도일보에는 ‘묵향이 있는 산’을 한주에 한번 문화면 전지(全紙)에 내 보냈단다. 그러니 어찌 그의 화필과 문필에 신바람 나는 역동성이 잠잠히 침묵 할 수 있겠는가. 그는 현재 기행문이 첨부된 산행 스케치 70편, 섬 기행 스케치 와 기행문 35편, 외국(세계일주)기행문과 스케치 70편을 “화가와 함께 떠나는 스케치 여행” 단행 본 으로 출간하고자 전 5권을 준비하고 있단다. 동양화 전공의 안목으로서 우리네 자연 환경과 이질적인 유럽이나 미국 등의 지리적 상황에 거부감이 없었느냐는 내 질문에 우송은 자신이 스케치화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이 바로 거기에서 발단된 것이란다. 유럽이나 미국의 풍토 문화 등은 그들 양식의 소재로는 적당하지만 동양화의 먹물로 그리기에는 어색하단다. 그러나 스케치화로는 문제가 없단다.
옛날 이화여고에서는 기숙사가 있었다. 주로 평양에서 온 유학생이 많았지만 어쨌든 타 지방 학생들을 위한 학교의 배려였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기숙사에 있었는데 가끔 그녀의 방에 들리 곤 했다. 그녀는 유별나게 속옷과 서랍 정리에 신경을 썼다. 그 이유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불의의 사고)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6세 무렵이니까 꽤 조숙한 친구였다. 졸업 후 그녀는 의사가 되었고 외교관의 아내가 되었다.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게 되어 귀국할 때면 우리는 반갑게 만나곤 했다.
“넌 참 좋겠다. 세계의 나라를 다 경험할 테니까 말이야.”
“밖에서 보긴 그렇겠지. 난 정말 정착하고 싶어. 자리 좀 잡혔다하면 또 짐을 꾸려야하고.... 대사의 직무가 뭔지 아니? 세일즈맨이다. 자동차를 팔아야 하는.... 나는 매일 파티를 준비해야하는 주방장이고....”
왜 나는 쌩뚱맞게 여학교 동기동창의 이야기를 끄집어냈을까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1980년대 중반이었던가. 공관장회의 차 귀국한 그녀가 나를 만나자마자 “얘 세상이 많이 변했더구나. 공항에 내리니 멋진 남자들이 참 많더라”였다. 당시에는 그녀의 첫마디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광주항쟁의 소식도 듣지 못한 모양이구나! 네게는 멋진 남자들만이 눈에 띠이던?’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김석기의 작품을 접하고는 20여 년 전의 그 친구의 ‘멋진’ 이라는 단어가 자꾸 내 귓전에 맴돈다.
우송의 <산사비경>, <황산 연화봉>, <설악의 운해>, <천자산 기암>, <황산기암>, <기암계곡>, <바람소리> 등에 나타난 용필침웅(用筆沈雄)의 기운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것인가. 정자와 깎아지른 바위의 구부정한 모습이 마치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인간의 숨결을 포용한 대자연의 운종용 풍종호(雲從龍 風從虎)의 모습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천지에 진동하는 폭포의 위력이 경이로울 뿐인 <황산비폭>, <쌍폭> 등의 비경을 무엇이라 표현할 것인가. 기암절벽에 부대껴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아득히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파도소리’ 고깃배가 머무는 ‘차귀도 기암’의 해풍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정정하고 아아한 금강산, 설악산의 준봉 그 여백의 신비로움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발묵과 선염의 구사가 행운유수(行雲流水)요 무위이화(無爲而化)인 김석기의 화필은 단연 동양화의 거봉이요, 조숙한 내 친구 16세 소녀가 원숙한 여인이 되어 토로한 실로 ‘멋진 한국의 사나이’이다.
주도평을 위시한 중국작가들과의 긴밀한 교류전이 한국화단의 활성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도록 우송(雨松)의 활약에 기대를 해본다.
Kim Seok-ki's Majestic Art World
Kim Je-Young, novelist
Novelist and Art Columnist
Kim Seok-ki's art world, cultivated with patience and perseverance, is vast, solid and fertile. This is my impression on his 18th individual exhibition held in Daejeon Gallery from May 6th through 26th, 2005.
Until the mid 20th Century, human civilization had gone through changes by units of several years. However, with the onset of the 21st century, human intellect started invading God's territory. As a result, the regular rhythms of changes broke down. What an ironic era! Humans came to be dominated by the instruments they produced. In the digitalized society, the order of industrial system, morality, and the pattern of living were all destroyed, which led to the era of chaos in which there was an overflow of unemployment. No wonder this strange chaotic phenomena affected the art world. Can Oriental painters today continue to draw pictures with a scholar's spirit in the Chosun Dynasty? Isn't this the issue Kim Seok-ki raised in his exhibition?
The moment I entered the exhibition room, Handel's Messiah overwhelmed me as if it had been a storm. It was a shock itself rather than a slight palpitation.
It was a similar emotion that I felt at 'The 2nd Exhibition of Art and Culture Movement of the DMZ' in the Seoul Municipal Art Museum in 1993. I stood before a portrait of Rev. Moon Ik-whan by Yim Ok-sang. Rev. Moon, in his white topcoat, was crossing 38th parallel. I was deeply impressed by the portrait.
Mt. Keumgang, on a canvas measuring 1500 270cm, was displayed on the entire wall! The spectacular Mt. Keumgang was overwhelming and shocking. With palpitation of my heart, I heard Handel's Messiah. It was because I could see an obvious tone of his sense of national independence revealed in his painting.
A distant view of Mt. Keumgang, colored with gradation, doesn't mean just a spacial distance. Whether the artist intended or not, it is also a distance of time. It is also the artist's great technique to employ the materials of Korean painting effectively. I see modern history of Korea and its hopeful future from his paintings of marvellous figures of all nature and animism. The base rocks covered with white snow and the soaring rocks represent a bright future for Korea.
Kim Seok-ki opened his topic in the preface of his picture book as follows. "What and how to paint? This quest has agonized me over the past forty years..."
From the first moment a waterway toward Mt. Keumgang was available, he took his first step there. He drew a 10-meter long painting at first. After his second visit, he devoted himself to that painting. It was not until 2003 that he finally could sign his signature on the 15-meter-long Mt. Keumgang in For. Kim Seok-ki's Mt. Keumgang in Fog is really an answer to his agony, and it is a declamation toward all artist as well.
The saying "Jack of all trades and master of none" has nothing to do with Kim Seok-ki. He is really a master of everything. Introducing his art world, I've felt a little bit depressed. It's because his writing style is superior to that of any professional writer. His literary art is perfect in the light of logic and reality.
One example proves it. It is a caption on the sketch of Sorak Valley in 2004.
"I climb the 200-step iron stairs of Mt. Daedun, which gas Wooam Song Shi-yeol's footprints, as if I were a woodman looking for a fairy. I look up a rocky cliff which blocks an ascetic. Looking up, I can't see the tip of the cliff, neither can I see the depth of the gorge which is under my foot. Hanging on the middle of the cliff, I'm thinking the meaning of weakening human existence."
Describing a universal human destiny of predicament and aspects of this weary world, he expressed roughness of the gorge more realistically than a sketch. It might also be a bloody history of strife among the Four Factions in the Chosun Dynasty in the 17th century, in which Song Shi-yeol, a great scholar, was left to death.
Using concrete words such as a fairy, a woodman, and 220 iron stairs, he utilized metaphors of time, space, and various illusions freely; he really is a master of language.
10 sketches in this picture book have their own commentaries like prose poems. I came to know that he had serialized 'Diaries for Sketch Travel' for a periods of 7 years in a magazine published by the Daejeon Association of Artist. In addition, he had contributed to Joongdo Ilbo in a column titled, 'Mountains with aroma of Indian-Ink' once a week. So how could his dynamic of painting and literary art be silent?
Currently he is preparing for the publication for Sketch Travel with an Artist, which contains 70 mountains sketches, 35 island sketches and travelling notes, as well as 70 overseas sketched and travelling notes.
I asked Kim Seok-ki if it was comfortable to draw geographical scenes of Europe or the United States as an oriental painting artist. He answered that's why he stressed sketches. It is not appropriate to draw the culture and natural features of Europe and the Unites States in Indian-ink. However, it is fine to simply sketch them.
A long time ago, Ewha Girls' High School had a dormitory for local girls. One of my close friends lived there and I often dropped by to visit her. After graduating from Ewha, she married a diplomat and lived overseas. Whenever she visited Korea, we would meet to talk a lot.
"I envy you because you can experience the culture of many foreign countries."
"Do you really think so? But I'd like to settle down now. I'm sick and tired of packing and unpacking."
Why do I talk about my friend? It might be in the middle of the 1980s. She said, "So many things have changed in Korea. There are so many dandies at the airport!" I felt uncomfortable to hear her saying 'so many dandies.' Maybe she didn't hear about the 'Struggle of Gwangju.'
Kim Seok-ki's paintings remind me of the word 'dandy' which my friend said 20 years ago.
How can I express the majestic spirit in Kim Seok-ki's paintings such as Mysterious Scenery of a Temple, Yeonwha Peak of Mt. Whang, Sea of Cloud of Mt. Sorak, Fantastic Rocks of Mt. Cheonja, Fantastic Rocks of Mt. Whang, Fantastic Rocks of the Gorge, and The Sound of Wind?
An arbor and a slightly bent rock look as if humans were having an intimate dialogue. In Beautiful Falls of Mt. Whang and Twin Falls, the mighty force of falls that shake the earth violently, is just wonderful. The waves shatter against rocks and cliffs. and sea gulls are crying far away in The Sound of the Waves. In Fantastic Rocks in Chagui Island, a fishing boat is anchored peacefully. How can I describe these beautiful scenes?
Imaging lofty and majestic Mt. Keumgang. the steep peaks of Mt. Sorak! How can I express the mystery of the space on the white paper? With his gradation technique and various natural methods of Indian-ink drawing, his paintings are like floating clouds and running water. Kim Seok-ki is not only a master of oriental painting but also 'a real Korean dandy' as my 16-year-old friend said.
I wish Kim Seok-ki's contribution to the exchange exhibition with Chinese painters including Zhou Daoping, will be productive, leading to more widespread recognition of the Korean artists'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