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지(大地), 지평선 너머의 안락함
화가와 회화의 관계는 우주와 나 그 속에서의 존재에 관한 성찰의 여정이라 하겠다. 그 여정들은 개별적인 아득한 과거로의 경험과 보편적인 인간의 축적된 역사들이 조합되고 해체되며 명징하게 드러나고 망각되는 과정들을 거치며 작가만의 화면들로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손호출의 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해 우리는 생물학적 시각을 넘어서는 적어도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조형세계에는 꽃과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과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특정한 일화(episode)들이 드러난다. 그 이야기들은 우화적이며 서정적이며 다정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내면과 관자의 내면의 시선, 심안(心眼)과도 같은 설레이는 만남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의 미술사적인 양식들을 말한다면 대지를 닮은 안정된 풍경과 일화들에서 동일하게 간취되고 있는 안정된 저 멀리의 지평선의 구사라고 할 수 있다. 대지는 기억되고 덮이고 굳혀지는 반복의 시간들이 축척되어 견고한 형상들을 만들어 낸다. 그곳에서 인류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며 생성과 소멸의 질곡을 경험하며 성숙되어 역사를 만들어 왔다. 땅은 그 모든 존재의 근원이었으며 떠돌며 부유하는 존재의 중심이며 또한 돌아가야 할 안락한 집이었다. 수평선 저 너머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리움이 존재하며 유연하게 이완되어 느끼는 편안함이 있다. 그가 그려내는 터치들의 나무 풍경이나 바다, 꽃, 어머니, 일화들을 따라가 보면 깊은 수면 속에서 만나는 조용하지만 뚜렷한 작가의 귀착점을 발견하게 된다. 즉, 그것은 지평선(수평선)과 같은 부드러움이며 대지(大地)가 갖는 유장함속에 내포된 따스함과 안락함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집요하도록 반복되는 터치의 과정 속에서 구현된 절제된 선들에서 완전한 안락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로써 온전하게 몰입한 화면 속에서 작가는 영혼의 휴식을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점점이 찍어내는 행위를 통해 내면의 사고들을 질서화 시키고 구체화 시키고 그리고 심화시키고 있다. 그 화면은 까만 밤 속에 홀로 깨어있는 호수와 같이 고요하다. 그 속에서 작가 손호출은 그리는 자의 존재론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반복된 터치 과정을 거치며 작가는 세계를 자신의 내면으로 끌고 들어가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의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세계와 자신과의 소통인 것처럼 말이다. 즉, 그의 화면은 따뜻함과 안락함이 구조적으로 융합된 하나의 통일된 세계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2. 순수에의 동경에 관하여
손호출의 화면은 작가의 정직한 내면의 풍경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마치 고독한 시인이 한 줄의 시를 써 내려가듯, 희미한 불빛아래 타오르는 심장처럼 그 독백은 너무도 진솔하고 조용하며 간절하다. 그의 화면의 시간은 정지되었으며 빛이 곳곳에 스며들어 체화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색점들의 미묘한 반사들은 작가의 시선을 투과한 내면의 심연에서 번져나오는 색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는 오래도록 숙성되고 기분 좋은 맑고 청신한 공기가 일어나고 있다.
그의 화면에서 간취되는 맑은 기운은 형상과 내용을 간략화 시킨 조형의 단순성에서 풍겨져 나오는 부드럽지만 강력한 환기성의 힘인 것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대지의 안락함 그 이면에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순수함에 관한 동경을 가시화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일관된 크기의 점과 반짝이는 색의 변주들의 집합 속에서 가시적인 자연 그 본질적인 존재들에 숨겨져 있는 소박함과 무한한 순수한 감성들만이 추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의 순수성을 교감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고 그가 이야기 하는 단순성으로 재구조화된 그의 세계로 빠져들어야만 할 것이다. 그 순수의 세계말이다.
장자(莊子)에서 소박(素朴)이란 잡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았음을 말하고, 순수(純粹)란 그 정신이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정신은 사방으로 트이고 흘러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 이 정신을 잘 지켜서 길을 잃지 않으면 자연의 이치와 통해서 합치된다고 한다. 이렇듯 작가의 조형세계에는 장자에서 말하듯이 일그러지지 않은 순도 높은 맑음이 들어 있는 것이며, 반복되는 터치들은 작가 자신과의 깰 수 없는 견고한 약속인 듯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잡아주는 좌표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그가 추구하는 세계의 이치의 본질을 건져 올리는데 있어 동양적인 사고관의 깊이가 심도 있게 탐색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에서 그 독창적인 색과 조형을 구현하는 피어오르는 꽃은 아름다움이며 부드러움이며 맘에 담아둔 이의 아득한 그리움이다. 나무는 하늘의 동경이며 우뚝 선 나의 또 다른 자아이며 늘 푸른 희망인 것이다. 삶의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세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렇지 않은 동화이기도 하고 가슴 한켠에 남겨진 상처이기도 한 것이다. 손호출의 화면에서 우리는 이러한 세계의 본연 자체의 순수한 모습들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겨져 있음을 본다. 그리고 그 세계는 서정적이며 따뜻한 화면으로 환원된다. 이것이 그가 포착하는 세계의 모습들이며 추구하는 삶의 자세이며 점으로 녹여낸 그의 조형인 것이다. 그가 연출한 화면 속에서 따스한 봄빛을 보며 또한 여름과 겨울의 뜨겁고 때로는 서늘한, 마치 시인과도 같은 감정의 궤적들을 느낀다. 손호출의 시선에 포착된 내면의 삶의 풍경들이 앞으로 자연과 인간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다정한 이야기로 변모되어 잠자는 영혼을 일깨워 줄지 두고 볼 일이다. (20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