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영·김진식 부부가 평생 수집 미술작품 200여점 전시
다양한 기획 전시·미디어아트로 관람객에 친숙하게 접근
6인의 작가와 함께하는 혁신적인 도전 ‘아트하우스’ 개관
▲ 사천 우주미술관 허남규 관장(왼쪽)과 박규민 작가.
사천의 푸른 논과 한적한 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면 발길이 닿는 작은 미술관이 있다. 사천강을 앞에 두고 자리 잡은 우주미술관(사천시 정동면 사천강1길 3)이다. 우주미술관이라는 거창하고 화려한 이름과는 다르게 외부는 작고 아담해 보인다. 하지만 그 문을 열고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배치된 수많은 작품들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마치 유명 SF드라마 ‘닥터 후’에서 나오는 명대사 “보이는 것 보다 안이 더 크다”를 떠올리게 한다.
우주미술관은 허기영, 김진식 부부가 20여 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미술작품 200여 점을 모아 2019년 6월 15일에 문을 연 개인미술관이다. 작품을 보존하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의 향유 공간을 만들자는 부모님의 뜻을 잇기 위해 아들 허남규 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9월 전시인 박규민 작가의 ‘Mother’s scent 展’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허남규 관장과 허기영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술관 내부를 소개하던 허남규 관장은 “나 스스로도 미술관 관장이라는 길을 걷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 이면에는 예술에 관심을 쏟으시던 부모님이 계셨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이 수집하는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보는 안목이 생기고, 관심도 덩달아 생겼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왜 굳이 그런 것들을 사는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부모님의 삶의 태도를 본받고 싶게 됐다”고 말했다.
경남지역 문화예술의 창작활동지원 및 문화예술향유기회 확대를 목적으로 설립한 우주미술관은 여러 기획 전시를 통해 미술관을 들리는 지역민과 관광객들이 다양한 예술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지역작가들의 창작활동 기반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
허 관장은 이어 “여러 기획전시 뿐만 아니라 미디어아트 영상을 제작해 단순히 작품을 관람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생애와 작품 속에 녹아있는 가치관, 여러 기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미술관이 딱딱하고 단조로운 공간이 아니라 모두에게 친숙하고 흔히 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각인시키고 싶다”면서 “미디어아트 영상은 스스로 직접 제작하고 있다. 어떻게 만들어야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 고민을 하곤 한다. 앞으로 미술 계통의 박사 과정을 밟아 더 깊고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계획이다”고 이야기 했다.
허기영, 김진식 부부가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를 돌면서 열정적으로 모은 미술작품들은 한국화, 서양화를 가리지 않는다. 그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화와 추상화다. 사천에 소재한 우주미술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주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다수 있다.
허기영 씨는 “여러 나라를 돌며 관람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게 실제적인 미술의 추세가 추상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이 방향의 콜렉션을 더 많이 수집하게 됐다. 하지만 한 쪽에만 치중하지 않으려고 한다. 모든 작품들은 다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소재로 한 작품도 좋아한다. 대한민국에 있어 ‘우주’란 비행기와 인공위성을 만드는 사천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우주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좋아한다. 끝없이 광활한 공간 속에 빛나는 별이 마치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과도 같다”면서 콜렉션한 작품들을 애정 어린 목소리로 소개했다.
사천은 지역 내에 소재하고 있는 미술관, 박물관이 여럿 있으며 거기에 사천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삼천포대교 공원에서 지역의 다양한 축제·공연, 인문학 강연 등 문화 시설 기반이 풍부하다.
우주미술관은 이 환경을 밑거름 삼아 지역민과 인근 지역에 좋은 작품을 알려주고,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거기에 더불어 중견작가, 신인작가 가리지 않고 그들을 위한 전시 공간을 제공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트 페어나 해외 진출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명성을 드높일 예정이다.
사천 우주미술관은 9월부터 지역작가 6인에게 전액 무료로 작품 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아트하우스’를 열었다.
그 목표를 위해 우주미술관은 전국 어디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위대한 첫발을 내딛었다. 9월부터 지역작가 6인에게 전액 무료로 작품 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아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지자체나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오로지 우주미술관 자력으로 진행하는 거대한 도전이다. 허기영 씨가 전 세계의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몸소 느끼고 꿈꿔왔던 소망의 공간이 1여 년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허기영 씨는 “이탈리아 등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 작가들에게 건물을 임대해주는 방식의 전시회를 자주 볼 수 있다. 가정집처럼 꾸며둔 공간에 예술품들을 곳곳에 배치해 친숙하면서도 격식 있는 모양새를 낸다. 그런 것들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도 이런 전시가 대중적으로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됐다. 단기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 아트하우스가 끝나면 다른 작가들을 이어서 섭외하고 전 세계 사람을 초청해 사천의, 대한민국의 대표 기획전으로 이름을 날리는 게 최종 목표다”고 아트하우스를 열게 된 목적을 말했다.
강해중, 강혜인, 김미효, 박동열, 이용우, 황현숙 여섯 명의 걸출한 예술가와 함께하는 아트하우스는 우주미술관 건물 2~4층 전체를 갤러리로 오픈하는 특별기획이다. 각 작가에게 3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30여 평 가량의 아파트를 전액 무료로 제공한다. 작가는 전시하고 싶은 작품들을 입맛대로 배치해 그곳에 거주하며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작품 전시로만 그치지 않고 작가가 직접 상주하며 관람객들에게 직접 작품의 제작 과정과 의도를 설명하는 실시간 소통도 할 수 있다. 만약 관심 있는 작품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구매 할 수 있는 프리마켓도 함께 열린다. 전시장과 작가, 관람객의 상호 교감을 전제로 하는 아트하우스는 시민들에게 색다른 문화예술 경험을 선사하고 작가들에겐 창작활동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처음 방문한 아트하우스에서 강해중, 강혜인, 김미효 세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작가들은 각자 가져온 간식을 먹고, 화병에 꽂힌 안개꽃을 다듬기도 하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창작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아트하우스의 첫 시작을 함께하는 그들은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 기간 창작 활동을 했지만 이만한 지원과 시도를 하는 건 이번 아트하우스가 처음이라며 입 모아 감탄했다.
전시된 프로필 현수막을 손보던 김미효 작가는 “호텔 아트 페어를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건물을 통째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처음 갖는다. 홍콩 샹그릴라 호텔에서 진행한 아트페어의 경우 전시를 한 번만 해도 2000만원 가량의 경비가 필요하다. 그만한 돈을 주지만 전시 조명도 없고 벽에 못을 꽂는 일은 상상도 못 한다. 이렇게까지 작가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주는 건 우주미술관의 아트하우스가 유일무일하다”고 말했다.
강혜인 작가는 “이런 전폭적인 지원은 처음이다.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에어컨을 틀기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창작 활동에 매진하겠다”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강해중 작가 역시 “전시장을 마련한다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 아트하우스라는 기획은 매우 과감한 도전이다. 모든 작가들이 그 뜻을 알고 이 도전에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 준 우주미술관에 감사하고 있다. 아트하우스가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이벤트 형식으로 작가들의 창작 매커니즘을 관람객들에게 손수 보여주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가족끼리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개성 있는 지역 작가들과의 기획전, 선도적인 미디어아트 영상 등으로 은유보다는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자 하는 우주미술관은 오늘도 끊임없이 지역민의 일상을 예술로 채우고 있다. 아트하우스를 시작으로 하는 이 작은 날갯짓이 하늘을 가르고 우주로 솟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
사천 우주미술관은 9월 전시인 박규민 작가의 ‘Mother’s scent 展’을 열고 있다.
현재 우주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시는 다음과 같다.
▲박규민 작가 ‘Mother’s scent 展’ (9월 1일~29일)
기하학적 무늬 파스텔 톤의 바다 속 산호를 주된 모티브로 하는 박규민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그림에서 다이아몬드 마냥 반짝거리는 생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입체적인 형태 해석과 조영적인 변주의 조화, 예술과는 다양한 미적 원천과 원형으로부터 새로운 요소들을 발견하고 인용하며 끌어 들여 박규민 만의 예술영역 지평을 넓힌다.
▲우주 아트하우스 (9월 1일~11월 30일)
강해중, 강혜인, 김미효, 박동열, 이용우, 황현숙 6명의 작가와 함께 원룸 공간 전체를 갤러리로 오픈하는 우주미술관 특별 기획이다. 작가들은 새로운 전시공간을 제공받고 지역민들은 색다른 미술문화를 접하게 된다. 강미영기자
출처 : 경남도민신문(http://www.gndo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