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예술인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 잇따라,
예술인 자성 필요하지만 지자체와 시민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편지를 보낸 화가는 대학강사다. 그 화가는 강의를 하는 대학의 교수가 권유해 전시에 참여했다. 이 전시에는 전국에서 400명 가까운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출품료가 10만원이었다. 출품료를 내는 전시는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권유하는 교수의 얼굴을 봐서 참여했다. 그런데 전시가 끝난 뒤 작품을 반출할 때 불쾌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에게 보내온 서류에는 반출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이 시간에 가져가지 않은 작품은 미술품 전문운송업체를 이용해 착불로 보내준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화가는 이 시간에 작품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주최측에 작품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작품 전문운송업체가 아닌 일반 택배업체가 작품을 배달했다. 이것부터 불쾌했는데, 작품의 포장지를 뜯어보니 패널로 된 액자가 부서져 있었다.
작품과 액자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비닐포장지가 있는데도 라면상자로 대충 그림을 포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출품료를 낸 데다, 착불로 작품을 받았는데도 이렇게 작품을 처리하는 주최측의 행동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만약 서울작가였으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업체가 지방에 내려와 행사를 여니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데다 지방작가라서 더욱 홀대한 것 같다”고 푸념했다.
최근 지역 미술계의 큰 고민 중 하나가 작가들의 수도권 이전이다. 젊은 작가, 중견작가 할 것 없이 작업실을 수도권으로 옮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 대구에서 어느 정도 빛을 보다가 수도권으로 옮겨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대구 출신 작가도 많다. 지역의 예술대학은 학생들이 점점 줄어 고민에 빠졌다. 이들 대학의 교수를 만나면 수업보다 학생 모집에 더 신경을 써야 하니 교수로서 회의가 자주 든다는 말을 한다.
대구는 오랫동안 영남문화권의 중심도시였다. 하지만 사회환경이 급변하면서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됐고, 문화예술분야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이인성, 서병오, 이상화, 현진건, 박태준 등 한국 근대문화예술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많은 예술인을 배출했던 대구의 문화예술 기반이 어느 순간부터 약해지고 있다. 지역의 우수한 문화예술인력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지역 문화예술계는 더욱 위축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지역에 남은 예술인의 위상도 더욱 떨어진 듯한 양상이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창작활동을 벌이는데, 예술인에 대한 대우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열린 ‘청년미술프로젝트’에서도 대구시가 작가들에게 주는 제작 지원금을 지역작가와 서울작가를 차등지급하려 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역예술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잇따라 터지는 것에 대해 한 화가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인 스스로도 자성을 해야겠지만, 지자체와 시민도 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일본에는 도쿄작가, 오사카작가 등으로 지역에 따라 작가를 분류합니다. 그만큼 도시마다 특색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은 지방작가와 서울작가로 구분됩니다. 지방작가의 색깔이나 가치를 무시한다는 의미지요. 서울작가보다 더 뛰어나도 지방작가란 이유만으로 푸대접을 받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그도 지역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떠날 수가 없다. 그래도 자신의 고향이 대구이기 때문이다. 아프고 힘들지만, 고향이 대구이기에 그는 지방작가로 남으려는 것이다.
김수영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