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간 - 2011.09.16-09.25
전시장소 - 갤러리아트사간
전시제목 - 전회(轉回)
전시작가 - 기 미정, 노 재엽, 박 영숙, 박 중헌, 서 지연,
성 옥혁, 예 병현, 이 금주, 하 정아, 황 용일
전회(轉回)
김 화 자 (미학박사)
공간(空間)을 ‘비어있는 용기’, 사물로서 ‘연장 실체’, 또는 ‘인식을 위한 형식’으로 사유하는 시선은 공간을 주체의 경험적인 실천과는 분리하여 결정론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간에 대한 실체론적인 사유는 공간을 수동적이고 비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근대의 합리적 이성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효율성을 목표로 공간을 관리, 통제하여 왔다.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는 진보 이데올로기, 자본, 기술 유토피아와 연계하여 역사적인 것은 물론 주변의 자연 환경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단절시킨 마구잡이식 도시 개발로 공간을 파편화, 동질화, 위계화 시키면서 착취와 갈등 구조를 은폐시켰다. 그러나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vre)는 공간을 “생산물” 간주하였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자연, 문화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산 자체에 개입하며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총체성(globalité)”이란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공간을 생산물로 이해하는 시선에 의해 공간의 차원은 우주적, 거시적, 기능적 것에서 인간적, 미시적, 구조적 것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비록 공간적인 사유와 실천 사이에 항상 틈이 존재해 왔지만, 공간적인 실천에는 자본(경제, 사회, 문화), 생산양식, 이데올로기, 환상, 기술 등이 매개되어 정신적인 것, 문화적인 것, 사회적인 것, 역사적인 것을 연결하며 재현되어 왔다.
역사를 통해 공간은 생명체처럼 발견, 생산, 창조와 같은 진화 과정을 겪고, 공간에 대한 관점 또한 변화되어 온 것이다. 현대는 수학에서 유래한 공간의 구조적인 위치 관계를 중요시하는 위상학적인 관점에서 공간 그 자체 보다는 공간이 조건 지워지는 공간성을 현상학적, 구조주의적, 정신분석학적, 기호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공간 연구의 핵심이 되었다. 즉 위상학적 이해는 공간을 3차원의 형태적 단위인 컨테이너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면들과의 상관관계에서 공간의 구조를 기술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공간성을 구성하는 계기들을 관찰하는 시선의 전회는 결국 공간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족적 존재에서 자연, 경제, 사회, 문화와의 상호작용적 관계로 보기 때문에 공간적, 지형학적 전회 또한 함축한다.
한성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거나 졸업한 열 명의 신진 작가들은 공간을 더 이상 실체적이지도 우연적이지도 않는 것으로 보는 시선의 전회를 통해 걷거나 응시하는 행위 속에서 공간으로 실현된 장소의 공간성을 구축해 온 맥락들을 목격하게 해준다. 작가 개개인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주거지 혹은 작업 환경을 토대로 자본주의의 합리성이 여전히 강박적으로 작동하는 대도시에 자연, 사회, 문화 환경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상호 기능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의 심리적, 문화적, 사회적, 매체적으로 구조화 된 장소에 주목하고 각자의 시선과 스타일로 재구축 하였다.
기미정은 ‘도시녹화환경조성’이란 기획으로 조성된 인공 공원의 급조된 환경 이데올로기의 불안함과 조야한 취향을 비틀어진 합성과 과도한 컬러로 주시하고, 박영숙은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이상과 꿈을 훈육하는 학교의 억압적인 공간을 파놉티콘적 시선과 어두운 톤으로 들춰내고, 박중헌은 4 대강 사업의 환상적인 정치 이념에 가려진 권력과 자본의 논리를 야경의 초현실적인 분위기 속에 은밀히 노출시키고, 성옥혁은 충격적인 속도로 반복되는 도시 재개발 현장에 폭력적으로 작동하는 개발 강박증을 압축된 공간과 변형된 색으로, 하정아는 폐허의 흔적으로 역사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서울의 기억상실증과 전통, 현재의 기이한 절충을 흑백의 대비로, 예병현은 소비구조의 변화로 번화했던 철제상가가 떠난 황폐한 빈 터가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꿈을 키워내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전환 된 장소를 중립적인 시선으로 다가가고, 황용일은 재개발사업으로 사라질 자신의 생활 구역의 골목을 걷는 행위자의 시선을 통해 소외된 거주자들의 소소한 삶의 서사를 동영상 작업으로, 노재엽은 가는 실처럼 얽혀있는 지도상의 길을 생명체의 실핏줄처럼 보이게 파냄으로써 도시 공간의 유동성을 생태학적 시선으로 보여준다. 공감각적 공간에 대해 작업해 온 서지연은 춤의 제스처와 음악의 리듬을 통해 무대라는 비어 있는 공간이 표현적인 발화의 장(場)이자 소통의 장(場)로 구축되어가는 공간성을 시각화 하고, 이금주는 장소가 환기시킨 비자발적인 기억에 잠재해있던 상실한 것의 불안과 동경을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상상적인 유희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데 작동하는 심적 구조를 심리적인 공간성으로 드러낸다.
전시에 출품된 개개 이미지들의 공간성이 비록 현대 한국 사회와 문화의 구조를 총체적으로 면밀하게 다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이미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구조를 형성하는 맥락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