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풍경
이구락
저녁 식사 후 신문을 펼쳐드는데, 살그머니 다가온 아내가 계면쩍게 웃으며 내 앞에 불쑥 머리를 들이민다 흰 머리칼 하나 뽑는데 백 원씩 쳐 줄 테니 전부 뽑아달란다 아내의 흰머리라니? 한번도 본 적 없는 나는 장난인 줄 알았다 내 앞이마 넓어지는 건 알아도 아내까지 흰머리로 고민했다니? 아들놈이 내 전기면도기를 몰래 가져가 몇 올 난 턱밑 수염 가지고 장난칠 대, 그때 두루 생각해 봤어야 했구나 아내의 흰 머리카락 뽑다가 창 밖 내다보니, 시월의 앞산, 푸름 속에 단풍빛 몇 올 숨겨 놓았구나 앞산 위 흰구름 한 장 가부좌 틀고 앉아 우리 내외 하는 짓거리 들여다보고 있다 베란다의 쪽동백 잎 하나, 삶의 무게 조용히 내려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