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포토갤러리>아론(mose5525)님
깊고 푸른 길
이구락
사천만 개펄 속엔 먼 가야시대 토기 묻혀 있다 천 년 동안 곰삭아, 저녁노을에 농익어 토기는 짙은 적갈색이다 수석인들이 고기석(古器石)이라 부르는, 사천만 종포리 개펄 속의 돌이다
종포리 늙은 어부의 집, 바다가 멀리 물러서고 개밥그릇에 노을 혼자 남아 오래 저물고 있다 개펄에 몸져누운 목선 한 척 바람 속에 늙어가고 세상 모든 길들이 돌아와 잠자리에 드느라 개펄이 오래 소란스럽다
천 년을 이어온 어부의 노동이 느릿느릿 끌고 오는 개펄의 저 깊고 푸른 길은 늘 마음이 캄캄하다 캄캄한 사람의 길이 천 년 동안 돌 속에 제 몸 구겨 넣고 나니, 돌은 이제 더 이상 야윌 데 없어 그저 환한 적막 속에 새 한 마리 풀어 놓는다
―이구락 시선집, 『와선』(詩와反詩, 201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