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시간 이구락 돌은 사물이 아니라 시간이다 돌을 길러본 이는 한 겹씩 시간을 벗겨내는 인고의 맛 아느니, 돌에 물주고 돌에 햇빛 쪼이고 돌에 바람 쐬이다 보면 어느 순간 돌은 속살을 드러낸다 켜켜이 가슴에 쌓아온 물소리 바람소리도 토해낸다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두 해가 아니고 일이십 년이 아닐 수도 있다 깊은 골짜기 모암에서 떨어져 나와, 수십 억 년 물과 바람에 씻기고 다시 흙속에 묻혀 군살 털어내고 다시 흙 밖으로 나와 물길 따라 뒹굴며 흐르는 동안, 돌은 누가 불러내 해독해줄 때까지 겹겹의 무늬로 온몸 감싼다 그 무늬 속 나이테 따라가다 보면 억 년 전 불의 제단과 만 년 전 얼음궁전과 천 년 전 먼 우레의 들판이 우우우 일어서서 삼년 홍수와 칠년 가뭄까지 불러낸다 오늘 돌 앞에 서서 우러러 경배하는 나의 아침이 아, 천길 물속처럼 고요하다 시집<와선>2010. 詩와 反詩 사진<네이버 포토갤러리>아론(mose5525)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