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술집 또는 어둠/ 이구락
포장술집 <두메>에는 해가 지면 연기가 난다 도시의 네온 사이 유언비어처럼 스미는 연기, 살이 타고 연한 뼈가 타고 그대의 눈물까지 타고 남는 것은 우리들의 식욕뿐이다 <두메>의 문 앞에는 새끼줄에 목을 맨 참새떼가 있고, 털 빠진 메추리 산비둘기가 잘 짜여진 조롱 속의 여생을 쪼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일과를 끝내고 초저녁의 어둠과 마주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 뒤를 따라 목을 넘는 잘 요리된 참새의 슬픔, 메추리의 슬픔, 산비둘기의 슬픔, 슬픔은 슬픔끼리 만나 더 큰 슬픔이 되고, 더 큰 슬픔은 우리들의 식욕과 만나 더욱 깊게 가라앉는다 슬픔에 취해 벌건 얼굴을 하고 우리는 마지막 잔에 한 줌의 어둠도 섞어 마신다 어둠 속의 일은 어둠 속에서 더욱 잘 보이니 마침내 어둠은 한 시대의 깊은 속살까지 꽃피우고, 우리는 차고 단단한 바람 앞에 서서 커다란 슬픔의 뒷모습만 보게 된다
- 시선집 <와선> (시와반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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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최근 간행된 시인의 시선집에 포함된 작품이나 처음 발표된 건 1979년 10월호 ‘현대문학’에서였으니 시간상으론 30년도 더 되었고 역사적 시점으로는 10. 26의 총성이 터지기 바로 직전이다. 시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슬픔’이란 시어와 ‘포장술집’이란 단어만으로 나는 곧장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란 소설을 떠올린다.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극명하게 그린 이 소설에서의 중심무대가 포장마차였고, 그곳에서 좌표를 잃은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 무심히 헤어지면서 드리웠던 몰개성과 비탄, 방관과 고통의 그림자가 이 시에서도 스쳐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로서는 꽤 익숙했던 ‘유언비어’라는 단어를 지금 다시 대하니 그 단어자체가 갖는 엄청난 시대적 함의가 오롯이 느껴진다. 그것 하나로 이 시가 다 설명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1964년의 서울이나 1979년의 대구나 2010년의 전국 어디에서나 의미의 큰 편차 없이 재생산되고 유포되는 유언비어가 있다.
급성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고서 한때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누군가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와 1979년 8월 폭염속에 한 육군부대에서 강행된 광복절기념 군장구보 중 13명의 젊은이가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은 사건과 최근 쇳물이 펄펄 끓는 용광로에 빠져죽은 한 청춘의 이야기는 맥없이 우리를 가라앉게 하였지만 술을 마시는 일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권일송 시인도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며 허구한 날의 곤한 날개와 파도에 힘들어하며 ‘차고 단단한 바람 앞에 서서 커다란 슬픔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술이나 마셔야 했다. 그런데 어느 의미에선 더욱 황폐해지고 파편화된 지금 ‘인생은 내게 술 한 잔 사 주지 않았다’며 떼를 쓰고 어깃장도 놓아보지만 별 수 없다. 찬바람에 펄럭거리는 포장을 들치고 들어가 어둠을 배경으로 까닭 없이 소주나 마실 뿐, 그때나 지금이나 달리 무슨 길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