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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락시인 정년퇴임 기념문집 중에서 - 정이랑
아트코리아 | 조회 2,798

이구락시인 정년퇴임 기념문집 원고

 

개망초꽃 무덤 속에 숨어서……

 

정이랑 시인

 

  6월, 어느 날 정년퇴임을 하신다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시간의 다리를 참 많이 건너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까마득하다. 내 나이 열일곱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중학교에서 나는 국어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때 당시 국어선생님께서는 시인으로 등단을 하시게 되었는데, 지금의 「대구시인학교」 서지월 지도시인이다. 시 공부를 너무나 하고 싶었던 나는 여기에서 나오는 「시인통신」이라는 교재를 매주 한 부 우편으로 학교에서 받아보게 되었다. 그 교재 속에서 이구락 시인의 시 〈개망초꽃〉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개망초꽃

 

가을 강변 마른 갈대의 흔들림으로

내 앞에 마주앉은 너

사랑한다는 말은 건너가지 못하고

다탁 위 개망초꽃에 숨는다

네 눈웃음도 건너오지 못하고

개망초꽃에 부딪쳐 너에게로 되돌아간다

정답고 정다워도 우리 사이엔 개망초

개망초 개망초 약 오른 개망초만 하얗고

망설이며 부딪치며 뒤엉키며 그러나

언제나 견고한 너의 순결,

밤하늘 쳐다보면

오늘도 별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아 기교만 느는 우리의 사랑아

한 시대의 가장 아픈 곳 외면하며

고개 숙이고 돌아서도

눈앞을 가로막는 개망초꽃

사랑한다는 말만 하얗게 발 아래 깔린다

 

  이 시가 좋아서 나는 노트에 배껴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에 대한 느낌을 편지로 써서 보냈다. 당시 대륜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언젠가는 이런 의미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듯이 고백하기도 했었다. 열심히 시 공부를 하겠다는 나에게 이구락 시인도 친절히 답장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당시 나는 의성군 다인면에서 상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졸업을 하면 대구로 거처를 옮겨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꼭 졸업을 하고 대구로 이사를 하면 이구락 시인을 한 번쯤 만날 것을 다짐했었다.

  아마도 갓 스물이었을 것이다. 어느 찻집에서 이구락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나에게,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남의 좋은 시를 많이 읽고, 느끼고, 써야한다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 당시 나는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남의 좋은 시를 많이 읽기 위해서 서점에 우선 취직을 했다. 그런 가운데 가끔 안부 전화를 주고 받았다. 제12회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하실 때 꽃다발 하나를 들고 찾아뵙기도 했었다. 같은 도시 아래 좋은 시인 한 분을 알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힘이 되었었다. 내 기억 속에는 늘 따뜻하고 베려심 많은 분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구락 시인을 생각하면 나에게는 든든한 마음의 후원자다. 그 어떤 말을 직접적으로 나에게 하신 적은 없지만, 이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처럼 개망초꽃 뒤에서 박수를 보내주시고 계셨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199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을 하고, 2005년도에는 첫시집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를 출판하고, 2011년에는 제2시집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을 펴냈다. 지금까지 시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도록 힘을 보태주신 분 중의 한 분이시기도 하다.

  "정년퇴임을 하면 시에 몰입해서 살아 갈 작정"이라고 하셨다. 남은 시간을 시에만 투자하시겠다는 말씀에, "네에, 이제는 제가 개망초꽃 뒤에 숨어서 박수를 보내드릴께요."라고 마음 속으로 파이팅의 답을 보냈다. 정년퇴임하시는 그 날에도 찾아 뵐 것이고, 좋은 시 한 편을 만나게 되면 그 때의 고교생이 되어 글을 써서 보낼 것이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나 같은 문학도가 시 한 편을 발견하여 좋은 인연으로 맺어진다면, 이구락 시인이 보내주셨던 따뜻함을 그대로 전해 줄 것이다. 그런 날이 올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이구락 시인과 인연을 맺어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개망초꽃 무덤을 사이에 두고, 이 편과 저 편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냥 삶의 힘이 되어 주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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