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    업데이트: 26-09-23 14:34

언론 평론 글

이혜인의 회화가 걸어온 길-존재에서 관계로,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아트코리아 | 조회 16
이혜인의 회화가 걸어온 길-존재에서 관계로,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필자가 작가 이혜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이다. 당시 몇 차례의 수채화 개인전을 통해 보여준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과 탄탄한 재현적 묘사력은 필자에게 적잖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그의 작업은 한국 전통 규방문화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조각보의 조형성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사물의 외형을 충실히 재현하던 시선에서 벗어나 형태와 색채의 본질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즐거운 날〉, 〈내 안에〉 연작을 통해 예술이란 단순히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실재(實在)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이라는 인식 아래, 작가는 재현의 경계를 넘어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2017년부터 그의 화풍에서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2016~17년 티베트와 네팔, 인도를 여행하며 마주한 광활한 자연과 낯선 풍경에서 받은 시각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눈앞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그곳에서 체감한 대지의 시간과 자연의 흔적을 추상적 조형언어로 환원하기 시작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두텁게 쌓아 올린 뒤 날카로운 도구로 표면을 긁어 불규칙한 수평선을 반복적으로 새겨 넣는 작업은 마치 오랜 세월 켜켜이 축적된 지층이나 대지의 결을 연상시킨다.

〈길〉이라는 주제로 제작된 작품에서 화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선은 서로 중첩되지만 기계적으로 정확하거나 균질하지 않다. 흔들리고 끊어지며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불완전한 선의 반복은 자연스러운 생명적 리듬을 형성하고, 그 안에 응축된 시간과 삶의 흔적을 담아낸다. 특히 바람에 펄럭이는 오색 타르초(Dar Cho)의 반복적인 선과 색채의 변주는 히말라야의 산길과 고갯마루를 가로질러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 삶의 여정을 연상시킨다. 바람결에 실려 멀리 번져가던 독경의 잔향은 화면 위에서 수많은 선의 반복과 리듬으로 되살아나며, 작가가 체감한 자연의 시간과 삶의 흔적을 하나의 추상적 풍경으로 변주한다. 이후 작가는 행복했던 기억이 남긴 따뜻한 정서를 절제된 색채로 옮기기 시작한다. 화면에서 선의 비중을 점차 덜어내는 대신 색 자체가 지닌 정서적 울림과 감각적 깊이에 더욱 주목하게 된 것이다.
 
〈길〉에서 반복되는 선이 시간과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조형언어였다면, 2020년 이후 〈Thanks〉와 〈There is〉로 이어지는 연작에서는 선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색채가 화면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특히 〈Thanks〉에서 작가는 행복했던 순간과 지나온 삶에 대한 기억을 절제된 색채로 환원하며, 색 자체가 지닌 정서적 울림에 주목한다. 규칙적으로 교차하는 색면과 크고 작은 점들의 반복과 나열을 통해 화면에 새로운 질서와 리듬을 부여한 것이다. 이때 색은 더 이상 형태를 보조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고, 기억과 감정을 환기하며 그 자체로 의미를 생성하는 독립적인 조형기호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변화는 〈There is〉에 이르러 더욱 분명해진다. 〈Thanks〉의 색채가 삶의 기억과 감사의 정서를 담아내는 감성적 언어였다면, 〈There is〉의 색채는 구체적인 대상과 서사를 넘어 존재 자체를 사유하는 조형언어로 확장된다. 화면에서 재현적 요소는 점차 사라지고 색면과 선, 여백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작가의 관심 역시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서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옮겨간다.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연과 마주하는 순간 일어나는 순수한 감정과 내면의 울림을 색과 형태로 환원하며, 가시적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삶의 본질과 실재를 탐구하는 구도자적 태도를 이어온 것이다.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면 단순한 선과 색면의 구성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면은 뜻밖의 깊이를 드러낸다. 화려한 색채나 강렬한 몸짓 대신 불규칙하고 미세한 선, 절제된 색면과 그 미묘한 중첩을 통해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강한 시각적 자극과 화려한 표현이 두드러지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의 화면은 오히려 침묵에 가깝다. 때로는 색면 외에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지만, 그 비움과 절제의 이면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감정의 층위와 섬세한 내면의 결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2024년 〈Dream〉에서 〈Among the Life〉, 〈Among us〉로 이어지는 작업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그동안 ‘작가 자신’의 내면과 존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사유가 점차 타인과의 관계로 이동하면서, 개별적 ‘나’의 존재는 이제 ‘우리’라는 확장된 의미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시선의 대상을 개인에서 집단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문제로 작가의 사유가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작품 속 최소화된 색채 단위들은 더 이상 독립된 조형요소에 머물지 않는다. 서로 만나고 겹치며 때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색면들은 각기 다른 존재를 암시하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의 의미를 생성한다. 따라서 그의 근작은 ‘최소한의 형식으로 최대한의 내면을 드러내는 회화’이자, 개별적 존재에 대한 사유에서 타인과의 관계와 공존으로 나아가는 서정적 추상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형태와 표현을 최소화하고 선과 색면, 반복과 여백이라는 제한된 조형요소로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조형어법과 일정한 접점을 갖는다. 그러나 그의 작업 전체를 미니멀리즘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미니멀리즘이 작가의 주관적 감정과 서사를 최소화하고 사물과 공간의 객관적 관계에 주목했다면, 작가 이혜인의 작품은 오히려 절제된 형식 안에 삶의 기억과 감정, 존재와 관계에 대한 사유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화면에서 형태는 단순해질수록 의미가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으로 깊어진다. 덜어냄은 비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며, 절제는 침묵이 아니라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방식인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미니멀한 조형어법과 서정적 추상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으며, 이를 ‘감성적 미니멀리즘’이라는 비평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혜인의 회화가 걸어온 길은 재현에서 추상으로, 선에서 색으로, 내면에서 존재로, 다시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화면은 점점 단순해졌지만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오히려 깊어진다. 〈Among us〉의 수많은 색채 단위들이 서로 다름을 간직한 채 만나고 겹치며 하나의 화면을 이루듯, 우리의 삶 또한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맺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세계일 것이다. 그의 화면에 남겨진 자그마한 색면들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는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를 묻는 또 다른 사유의 흔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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