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길과 삶의 결이 만나다 –
이혜인의 <There is> 연작이 은유하는 ‘있음’의 미학
신원정(미술사가)
빛은 색이다. 뉴턴이 17세기에 프리즘을 통과한 찬란한 무지갯빛을 발견하며 빛의 다채로움을 밝혀낸 이래 우리 시대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천연색으로 가득 차 있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색의 포화는 일상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많은 작가가 뉴미디어로 빛의 속성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인다. 회화는 첨단과는 거리가 먼 전통적인 매체이지만, 그럼에도 여느 장르 못지않게 빛이 색의 동의어임을 잘 입증한다. 색, 즉 빛의 존재를 예리하게 지각하고 섬세한 색채의 선율을 꾸준히 실험해 온 작가 이혜인의 최근작들은 그러한 시도의 절정에 도달한 듯 보인다.
<There is> 연작 <There is 2021-30>과 <There is 2021-31>은 가느다란 띠로 구분되는 빨강, 초록, 흰색에 가까운 색면으로 구성되었다. 다양한 너비의 수직 색면이 병치된 화면은 얼핏 여느 색면추상회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보는 이가 시점을 변경하는 즉시 그 특별함을 드러낸다. 색면의 표면은 기계적인 매끈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손맛을 느끼게 하는 미세한 요철로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거장 도나텔로(Donatello)의 부조에서 훌륭히 구현되었던 스키아차토(schiacciato, 저부조) 기법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말 듯한 색채의 결은 빛이 내리쬐면 그 존재가 더욱 두드러진다. 미술사적으로 색면추상은 모더니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르인데, 이혜인의 회화는 색면 그 자체로 캔버스의 평면성을 표상하고 아크릴 물감이 빚어낸 섬세한 결로 회화성을 강화하며 그린버그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여러 색면이 시각적 알력을 주고받으며 밀고 당기는 긴장감을 창출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율동감은 화면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질서정연하게 기하학적 화면을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너비의 색면들은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을 제시하지 않음에도 다양한 연상을 가능케 한다. 예컨대 카드뮴 레드(Cadmium Red)와 비리디안 그린(Viridian Green)의 조합이 누군가에게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 유명 브랜드 제품 이미지가 떠오르게도 한다. 상상은 자유이며 연상은 또 다른 창작이다. 관객은 제각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을 통해 작가가 멈춘 곳에서 시작해 작품을 완성한다. 최종 작품은 그러니까 작가와 관객의 협업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인 셈이다. 순수한 색채의 서사성은 관람자와의 교감을 중시해온 작가의 예술관이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기하학적 추상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무엇 또는 누가 있다’는 뜻의 제목 <There is>는 단일한 사물이나 사람의 존재를 의미한다. 전시공간에서 작품을 대하는 감상자는 우선 그림을, 그림을 보는 자신을, 그 순간을, 작품과 자신의 조우가 일어나는 공간의 존재를 차례로 혹은 동시에 인식할 터이다. 마치 문장의 빈칸을 채우듯 무엇 또는 누가 있는지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동안에 ‘있음’의 실존적 대상은 점차 증가하고 그와 연관된 공간도 확장되어 간다. 미완의 인상을 풍기는 제목은 이혜인의 색면추상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함을 암시한다. 수직 색면이 구현한 빛의 길 위로 드러나는 색의 요철은 작가의 삶의 여정, 더 나아가 그것을 보며 교감하는 관람자의 삶의 결을 투영하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의 존재를 말한다. ‘함께’의 가치에 관해 줄곧 고민하고 천착해 온 작가 이혜인의 <There is> 연작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나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