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이어오던 동양화 감성의 첫 탈피 시도”…김봉천 개인전 ‘은현’, 24일까지 달서아트센터
10여 년 만에 같은 시리즈이지만, 한국화 소재 탈피해
흑백 아닌 다채로운 색상, 물감, 캔버스, 시트지 활용
“매너리즘 속 작업 방식 탈피에 대한 갈증 느껴 새로운 시도”
최근 달서아트센터 달서갤러리에서 만난 김봉천 작가가 작품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구아영 기자.
전시장은 두 개의 파티션으로 나뉘어 있다. 왼쪽 공간은 동양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반면 오른쪽 공간은 현대미술의 한 흐름을 차지하는 개념미술인 듯한 서양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두 공간의 작품 모두 한국화를 전공한 김봉천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40여 년간 한국화 작업을 고수해온 작가는 차츰 한국적인 소재를 탈피하며 과감히 서양화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 첫 시도의 출발선에 서 있는 작업을 이번 전시에 내걸었다.
최근 갤러리에서 만난 김봉천 작가는 “작가 역시 세월이 흐르며 관심사는 달라진다. 매너리즘이 생길 찰나 고수하던 작업 방식을 탈피해보고 싶어 재료를 바꿨다”며 “요즘 국악 무대도 전자 악기로 컬래버를 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어 “표면적으로 작업 방식과 재료는 달려졌지만, 반대개념으로 두면서 동양적인 것을 계승하는 방법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이는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답습이 아닌 현대적 재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봉천 개인전 ‘은현’이 오는 24일까지 달서아트센터 달서갤러리에서 개최되고 있다.
40여 년간 한국화로 분류되는 작업을 고수해온 김봉천 작가는 2013년 이후 숨을 ‘은’(隱)과 드러날 ‘현’(現)을 조형 언어로 삼아 10여 년간 은현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은현’은 화면에 등장하는 선으로 인해 형태가 숨김 속에서 드러나고, 드러남 속에서 사물의 고유성이 사라지는 상반된 표현을 의미한다.
같은 은현 시리즈이지만, 한국적인 소재를 탈피한 작품들을 처음 보이는 자리다.
김봉천, 은-현3, 장지위에 먹.
동양화적 감성의 작품들은 김봉천 작가가 흥미를 갖고 끊임없이 고수해오던 작업이다. 작가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보다 칼을 이용해 칼로 종이를 뜯어내는 작업을 취한다. 주로 장지와 먹을 재료로, 스며들면 보이지 않아 숨겨진 것을 뜯어내고 그 잔해와 흔적은 그 이면을 끄집어내는 정신성을 드러낸다.
즉 표면에 보이는 것보다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는 은은한 깊이감을 내보여 세월의 흔적과 세련미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의 초기 작업은 화선지 위에 파라핀을 녹여 판화 기법을 쓰고, 칼로 종이를 뜯어내는 작업이었다. 이어 장지, 하드보드지 등으로 확장했다.
김봉천, 은-현7,캔버스 위 혼합재료.
마찬가지로 신작들도 은현 시리즈의 연속선 상에 있다.
다만 흡수된 것이 아닌 쌓아나간 것을 뜯어내 일차원적인 표면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캔버스와 물감, 시트지를 재료로, 마치 줄무늬를 연상시키는 듯 캔버스 위에서 시트지를 칼로 섬세하게 뜯어낸다. 흑, 백 뿐 아닌 화려한 색도 과감히 녹인다.
작가는 가장 달라진 부분으로 ‘재료의 확대로 인한 다양성’을 언급했다. 동양화 물감, 장지, 먹에 기댈 수밖에 없는 동양화는 한정됐지만, 서양화적인 재료는 풍부해 작업물이 훨씬 다채로워졌다는 것.
김봉천 작가는 “서양화 재료는 정말 많기에 재료에 대해 여러 실험을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됐다”며 “이번 작품에도 계획하지 않던 크랙 효과나 물감이 뜯기는 듯한 테이핑 작업들을 군데군데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러 방법적인 연구를 통해 작업세계를 넓혀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