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투명한 손님 - 봄비에게
- 강문숙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저 손님은 내방 머리맡 작은 창문을 열어놓은 걸 눈치 챘는지 사뿐히 뒤꿈치 들고
한 음계씩 높아지는 건반소리 자박자박, 여린 나뭇잎을 골라 디디며 오고 있네
흔들리는 건 파랗게 피 돌던 잎들이 아니라 쿵, 느닷없이 떨어지며 파문 이는
어둠의 목덜미 언젠가 당신이 그렇게 왔을 때가 있었지
새벽에 이는 바람 스치기만 했는데 비릿한 공기 소스라치듯 아릿하게 떠오르는 환幻
빗방울은 온전히 투명한 눈동자여서 꽃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가만가만, 별도 없는 이 밤을 건너오지
◇강문숙= 매일신문 신춘문예, 작가세계 신인상 등단. 시집 ‘잠그는 것들의 방향은?’‘탁자 위의 사막’‘따뜻한 종이컵’‘신비한 저녁이 오다’. ‘나비, 참을 수 없이 무거운’등. 오페라 대본 ‘배비장전’‘광염소나타’‘무녀도’‘유랑’‘독도환상곡’ 등. 대구문학상, 대구시인협회상, 금복문화상 수상.
<해설> 환幻의 미학이랄까? “투명한 손님”은 봄비의 빗방울일 테지만 그냥 얼버무릴 그런 빗방울은 아니다. 더 둥글어지고 영롱하기까지는 잎의 인내가 가느다란 비를 어르고 달래고 뭉쳐야 가능한 일, 시인의 청각은 그런 환의 크기와 무게의 차이에서 생기는 음계로 머릿속에 악보를 그리고 있다. 봄비는 결국 투명한 손님인 까닭도 “당신이 그렇게 왔을 때가 있었지” 라는 구절에서 다시 시인만의 의인화된 옷을 걸쳐 입음으로서 지금 시인 자신은 살아있음에 더 절실해 진다. 둥근 빗방울은 결국 저 편의 그리운 눈동자를 보여주는 볼록렌즈 일수도 있겠다. -박윤배(시인)-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