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독감
나는 인플루엔자와 열애 중이다.
눈에 뵈는 게 없다. 활활
아예 살림방을 따로 차렸다, 밤새 시달린다.
누가 나를 갉아먹고 있는지, 사각사각사각
배추벌레가 배추잎을 갉아먹듯
녹슨 시간들이 내 耳鳴의 귀 조각을 먹어치우듯
(사각사각사각사각)
이파리들이 햇볕과 광합성을 일으키듯
숙제하다 말고
열에 들든 엄마 걱정하느라
이불깃을 만지작거리며
사각사각사각사각, 사각사각
딸들이 밤늦도록 소근대고 있다.
나를 조금씩 떼어먹던 나의 애벌레들이
이제 곧 껍데기인 나만 남겨두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버릴
고 이쁜 것들이.
배추벌레가 배춧잎을 갉아먹는 소리가 난다. 이파리들이 햇볕과 광합성을 일으키듯이 사각사각 경쾌하다. 내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들이 열에 들뜬 몸뚱이를 들어올리며, 잠시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내 속에서 난 것들을 바라보면 깨물어주고 싶도록 예쁠 터인데, 엄마 걱정한답시고 둘러앉아선 사각사각 귀만 솔게 만든다. 아픈 것이 행복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