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암아동문학교실>이 맛있게 나눠 먹은 동시
―《동시 먹는 달팽이》 25호(봄호), ‘<신작 동시>’읽기
글 / 정순오
대구에 있는 <혜암아동문학교실>은 혜암 최춘해선생님께서 2003년에 만드셔서 운영해온 단체입니다. ‘혜암아동문학교실’은 ‘혜암아동 문학회’소속으로 올해 수업하고 있는 10기 월요반은 모두 15명이며, 매 주 월요일 오전에 만나 아동문학 전반에 관한 이론과 창작 실기를 공부 하는 모임입니다.
<혜암아동문학교실>은 혜암 최춘해 선생님께서 10기생까지 수업 을 하셨고, 11기부터는 혜암 선생님의 제자가 후배들을 위해 지도하고 있는데 어언 21년째 수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업 기간은 1년인데 수료 후엔 <혜암아동문학회>의 회원으로서 매달 월례회를 하고 있습 니다.
그럼, 혜암 달팽이들이 맛본 동시를 함께 나누어 볼까요?
* 이미선 달팽이 - 정지윤 「꽃장화」
디카시 「꽃장화」를 읽으니 꽃에 발이 생겨 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정말 온 동네가 향기로 가득한 느낌이 다.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시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울렁이게 만드니 시는 참 힘이 센 것 같다. 이런 ‘꽃장화 화분’이 외롭고 소외된 곳에 더 많으면 좋겠다.
꽃들에게 발이 생겼어
얼마나 신나게 돌아다니는지
온 동네에 꽃향기 가득
― 정지윤, 「꽃장화」 전문
* 정순오 달팽이 - 강벼리 「박쥐 친구」
학창시절은 공부에 대한 고민도 많지만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도 많은 때이다. 이 작품은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박쥐처럼 이중성이 있 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친구에 대한 주인공(나)의 집요한 추적(?)이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 글을 재미있게 만드는 점은 친구의 본성이 절대 겉으로 드러나 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애의 본성은 검은 망토를 펄럭일 때만 나타난 다. 작가는 박쥐를 상징하는 ‘검은 망토 - 살금살금 - 파닥파닥 - 쪼르르
- 찰싹 -검은 날개’로 변주되는 의성어, 의태어들로 실감나게 글을 이어
간다. 그리고 ‘피구 시합’과 ‘비 오는 날’의 사건을 통해 알게 된 그 애의 진면목(본성)에 대한 묘사에서 피식 웃음 짓게 된다. 독자인 나도 이런 경우를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 시절, 아니 지금도 친구 사귀 기는 정말 크나큰 고민이다.
쉿, / 박쥐같은 친구를 만났다 / 이건 비밀이지만 / 그 애는 모른다 / 그렇다고 / 그 애가 박쥐처럼 생겼거나 / 검은 망토를 휘두르고 있 는 게 아니다 / 살금살금 나만 붙어 다니는 / 그 애 그림자에서 / 우연 히 날개가 숨어 있는 걸 보았다 / 처음엔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 피 구시합하는 날, / 그애는 내가 싫어하는 / 하진이 팀에 가서 파닥파닥 응원을 했다 / 막판에 우리 팀이 이길 것 같으니까 / 검은 날개를 잽 싸게 감추고 / 나한테 쪼르르 달려왔다 / 오늘은 비가 후드득 오는데 / 우산 안 가져 온 / 내 눈치를 얼른 보다가 / 슬그머니 사라졌다 / 나 랑 친한 줄 알았는데 / 하진이 우산 속에 찰싹 붙어가는 / 그 애 뒷모 습에서 검은 날개가 펄럭거렸다
― 강벼리, 「박쥐 친구」 전문
* 장점옥 달팽이 - 강벼리 「박쥐 친구」
작은 사회든 큰 사회든 비슷한 것 같다. 작가는 우리들의 세상살이 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친구의 그림자에서 박쥐 날개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을 기발하게 표현했다. 우 리는 가끔 박쥐같은 사람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믿었던 사람 에게서의 배신감이야 말로 대단히 실망스럽다. 그 상실감은 한동안 깊 은 구렁텅이로 떨어져 허우적거리게 한다. 시간이라는 고마운 햇볕 덕분에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고,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좋은 작품으로 위로 받으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 오현희 달팽이 - 박예분 「시골집 이야기」
우리 시골집 마을은 집성촌이다. 매년 설이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네 집을 순서대로 돌며 세배를 드리고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이 웃끼리 떡국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분주하게 설을 보낸다. 하지 만 지금 그 곳엔 빈집들만 남아있다. 1연과 2연에서 느껴지는 서글픔 과 황량함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다. 자연의 섭리나 순리 같은 말로는 위로되지 않은 무엇이 있다. 3연의 ‘할아버지가 뒷산에 심은 감나무 밤 나무 대추나무’, ‘할머니가 가꾸던 텃밭과 너른 마당의 수선화 철쭉 장 미….’이 구절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재로 인해 남겨진 것들이 더욱 그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 땐 많이 힘들다 생각했는데 지나고나니 좋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다시 오지 못할 것에 대해 깊은 향수를 느끼는 것 같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0.65명이고 점점 노령화 되어가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된다. 현실적 우려는 차 치하고라도 사는 동안 어떤 걸 남겨야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난가을, 할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자 / 시골 식구들 뿔뿔이 흩어졌 다 / 할머니는 우리 집으로 오시고 / 강아지 다롱이는 삼촌네로 / 다 롱이는 이모네로 // 시골집 살림살이는 그대로 있다 / 가끔 삼촌이 둘 러보고 이모가 둘러보며 / 마을 소식을 물어 나른다 / 지난 일 년 동 안 오수댁 할머니 돌아가시고 / 아랫집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 윗동
네 김씨 할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가시고 / 박씨네 마을에 남아있다고 // 나는 속으로 안부를 묻는다 / 할아버지가 뒷산에 심은 감나무 밤나 무 대추나무 / 할머니가 가꾸던 텃밭과 너른 마당에 피고 지는 / 수선 화 철쭉 장미 바늘꽃 족두리꽃 맨드라미꽃 / 봉숭아 꽃씨 톡, 톡, / 할 머니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이름들 / 조용조용 불러본다
― 박예분, 「시골집 이야기」 전문
* 권순우 달팽이 - 유이지 「팽나무를 만나거든」
이 산문시는 작가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 잘 녹아있는 글이라고 감 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물처럼 촘촘한 하루를 사느라 잊고 살아온 나무 와 풀꽃들을 시의 행간에서 만나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리고 키 작 은 풀꽃은 눈을 씻고 보아도 잘 보이지 않기에 작가는 허리 굽혀 눈 맞 춤을 하라고 조곤조곤 일러주네요. 내 마음 또한 봄볕이 꽃망울 터뜨리 는 모습을 본 후라 시너지 효과를 느끼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 리나무’라는 단어에서 나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어릴 적 산딸기를 따 서 물오리나무 잎에 싸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서늘해집 니다. ‘개나리 울타리에 연노랑 보리수나무꽃’두고 하늘나라 주민이 되 신 아버지를 만나 고향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거기서 모퉁이를 지나 계수나무 두 그루를 또 지난 후에 좁다란 골 목길로 들어서세요. 생강나무 두어 그루를 지나 골목 안쪽 옹기종기 이어진 이웃들의 담 밑에 꽃다지, 노루귀. 꽃마리, 양지꽃 아롱다롱 피어 있거든 몸을 낮춰 인사하며 가세요. 가다 보면 유난히 개울물 소 리 다정하게 재잘대는 곳에 오리나무 세 그루가 보일 거예요. 멈춰서서 개나리 울타리에 연노랑 보리수 나무꽃 피어있는 집, 거기가 우 리 할아버지 주소예요.
― 유이지, 「팽나무를 만나거든」 전문
* 김성희 달팽이 - 유이지 「팽나무를 만나거든」
이 시 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할아버지 댁으 로 가는 시골길에서 주인공의 기분을 알 수 있고, 그 풍경이 눈앞에 그 려지는 듯하다. 나무와 꽃의 향기가 느껴지고 걸어가는 마음에서 설렘 이 가득하다. 작가는 시골길 풍경을 자세히 묘사하여 읽는 사람들로 하 여금 주변 상황을 이미지로 상상하게 만든다. 이 글 읽으니 그리운 사 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문득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김도은 달팽이 - 정광덕 「빙하였다면」
신문지 놀이를 해 본 경험이 있다. 신문지에 여러 명이 올라가면 놀 이가 시작된다. 처음 크기에서 접어나가다 보면 신문지가 점점 좁아진 다. 신문지 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업고, 한발로 서고, 안기도 하는 행위가 일어난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위에서 하는 게임은 우리의 사 는 모습이기도 하다. ‘빙하’라는 설정이 신문지 밖의 긴장감을 더해준 다. 인간은 아이러니하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를 쫓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두려움도 크다. 그래서 오히려 누군가와 끊임없이 관계 맺 기에 연연하는지도 모르겠다. 신문지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북극곰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짠하면서도 읽는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 연을 ‘휴우’로 마무리해서 불안했던 마음을 안도감으로 바꾼다. 작품의
설정과 스토리가 재치 있게 이어져 읽는 묘미를 준다.
펼친 신문지 위에 / 북극곰 두 마리가 올라서요. // 반 접은 신문지 위에 / 한 북극곰이 다른 북극곰을 업어요 // 또 반 접은 신문지 위에/ 한 북극곰이 다른 북극곰을 업은 채 한 발로 서요. // 또 반 접은 신문 지 위에 / 한 북극곰이 다른 북극곰을 업은 채 한발로 서서 발꿈치를 / 들고 겨우겨우 버티다가 / 그만 신문지 밖으로 나동그라져요. // 휴 우, 신문지 접기 놀이니까 망정이지/ 빙하였다면 어쩔 뻔 했어요.
― 정광덕, 「빙하였다면」 전문
* 박성희 달팽이 - 정순오 「발명의 발명」
이 작품은 1연을 시작하면서 발명이 어려운지 물어본다. 나도 모르 게 “네”라고 답을 한다. 호기심을 싹트게 하는 1연이다. 2연은 길을 접 어서 계단을 발명하고, 계단을 움직이니 에스컬레이터가 된다. 에스컬 레이터를 세우니 엘리베이터가 된다. 난 한 번도 접어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반짝이는 생각에 “아!” 소리를 지른다. 길이 징검다리가 되 어 계단으로 확장되고,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엘리베이터로 연결하는 모습에 눈이 동그래진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상상력이다. 상상 력의 깊이에 푹 빠진다. 이 작품은 상상력이 빈곤한 아이들에게 감수성 을 꽃피우게 한다. 3연은 사진기, 전화기, 계산기, 컴퓨터가 따로 나와 다 합치니 핸드폰이 된다고 한다. 각각인줄 알았는데 제각각이 아니라 고 한 마지막 행이 특별함을 더해준다. 따로따로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다.
발명이 어렵다고? // 길을 접으니 / 계단이 되고 / 계단을 움직이니 / 에스컬레이터 되고 / 에스컬레이터를 세우니 / 엘리베이터 되었어 // 사진기가 나오니 / 전화기도 나오고 / 계산기가 나오니 / 컴퓨터도 나오고 / 다합치니 / 핸드폰 되었어 // 제각각인 줄 알았는데 / 제각각 이 아니네 // 처음이 중요해 / 생각을 살짝 바꾸면 돼
― 정순오, 「발명의 발명」 전문
* 장영미 달팽이 - 정순오, 「발명의 발명」
일상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발견하는 과정이 잘 드러난 글이다. 발명이 어렵다하지만 생각을 살짝 바꾸어보면 제각각 의 용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서로 다른 기 능의 사물이 합쳐지면 상상하지 못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종합 선 물세트 같은 발명품이 탄생 된다는 것을 속삭이듯 말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고를 전환하여 동시로 이끌어 낸 표현들이 신선 하게 다가온다. ‘처음이 중요해’, ‘생각을 바꾸면 누구나 발명의 발명’을 할 수 있다는 마무리 글이 와 닿는다.
* 전명숙 달팽이 - 조진영 「단추」
짧은 시이지만 가슴에 툭 뛰어 들어온다. 예전에 같은 아파트 위층 에 ‘리아’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이사 간 자리에 택배 트럭이 작 은 옹기와 성모마리아상을 남겨놓았다. 이 시의 3연에 나오는 구절 ‘헤 어지기 싫어서 흘린 민아의 눈물 한 방울’을 읽는 순간 그 친구가 생각 나 가슴이 울컥하고 목이 뜨거워졌다. 밤새 잊지 못해서 이튿날 바로 이사 간 친구 집에 찾아갔다. 헤어지기 싫어서 남기고 간 성모마리아상 을 꼭 안는다.
제주도로 전학 간 / 내 짝꿍, 민아의 빈 자리에 떨어진 / 단추 하나. // 잘 있어! // 헤어지기 싫어서 흘린 / 민아의 눈물 한 방울.
― 조진영, 「단추」 전문
* 강희 달팽이 - 조진영 「단추」
초등학교 시절 전학 가는 나의 모습이 동영상처럼 어른거리는 작품 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정든 학교와 친구를 떠나는 순간, 남은 친구들은 나의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을 무엇으로 달 래었을까? 그때는 나의 슬픔만 생각했지 친구들의 마음을 미처 생각하 지 못했다. 위의 시를 읽고 보니 정든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만 했던 나와 남은 친구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 지은 달팽이- 최영동 「어깨동무」
최영동 작가의 시는 따뜻함과 희망을 안겨준다. 2연의 ‘숲의 울타리 처럼 우리의 마음이 둘러싸이고 있었다.’에서 작가는 아이들이 사이좋 게 어깨동무하고 사는 좋은 세상을 바라며 이 시를 쓴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 위에 팔을 올리고 화합한다면 세상은 동시의 내용처럼 ‘꽃 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너와 내가 둥글게 둥글게’사는 세상이 되지 않 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누군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흐르는 개여 울을 들여다보고 싶다.
너의 팔이 / 어깨 위에 올려졌다 // 숲의 울타리처럼 / 우리의 마음 이 / 둘러싸이고 있었다 // 꽃이 피고 / 새가 지저귀고 / 개여울 졸졸 흐르는 / 그 곳에서 // 너와 내가 / 둥글게/ 둥글게 자라고 있다
― 최영동, 「어깨동무」 전문
<혜암아동문학교실> 달팽이들은 ‘2024년 봄호’의 동시들을 골고루 잘 먹었습니다. 동시 한편에 두 사람이 추천한 작품 네 편과 동시 한편 에 한 사람씩 추천한 작품 네 편을 올렸습니다. 회원마다 생각과 느낌 이 달라 같은 작품이라도 평을 읽는 재미가 솔솔 했습니다. 혜암 선생 님은 평소에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은 글도 글이지만 삶의 태도도 좋아 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선생님의 문학 공부를 하는 자세에 대한 말씀 을 올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정으로 산다. 둘째,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 셋째, 계속하면 열매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