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24-04-12 10:57

언론

[아뜰리에 in 대구] 연봉상 작가 “흙은 나의 운명…항상 새로움 추구”
관리자 | 조회 335
팔공산 작업실 ‘용진요’, 대구 유일 전통가마
‘토하기법’ 등 독창적 작업…유약 직접 만들어
“한 곳 안주하지 않고 나만의 것 찾으려 노력”
연봉상 작가가 자신이 개발한 '토하기법'으로 만든 달항아리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연봉상 작가가 가마 앞에서 웃어보이고 있다. 가마 작업은 보통 1~2월에 쉬고 3월부터 재개한다. 이연정 기자


광주요, 강진요, 문경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이 도자기 작업장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전통가마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도자기를 품어낸다고 아무 곳에나 요(窯)를 붙일 수 없다. 그래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요'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상당하다.

대구에도 유일한 '요'가 있다. 팔공산 용진마을에 자리한 '용진요(龍津窯)'다. 전통가마는 불을 때면 연기가 많이 나기 때문에 터를 구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연봉상(61) 작가 역시 전통가마를 앉히려 1년 넘게 칠곡 동명부터 영천 은해사까지, 팔공산 일대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34년 전 팔공산에 들어와 작업장을 두 번 옮겼고, 지금의 작업장을 지은 지 18년째. 그는 "연기는 뒷산으로 넘어가버려 신경쓸 것이 없고 마당 앞은 훤히 트여 산자락이 내려다보인다. 볕도 따뜻하게 드는 천혜의 요새. 이만한 데가 없다"고 작업장을 소개했다.

연 작가와 차실 겸 전시실에 마주 앉았다. 그의 뒤로 달 표면을 닮은 항아리부터, 오묘한 빛깔과 특유의 무늬가 돋보이는 다기(茶器)와 연적 등 그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호 토하(土荷)처럼 크고 작은 흙꽃들이 피어난 모습이었다.

"지금은 가마 작업이 없어 그나마 조용한 편입니다. 보통 3월부터 12월까지 가마 작업을 합니다. 추위가 맹렬한 1월에는 작업을 좀 쉬고 국내 배낭여행도 다니죠. 지역 박물관을 다니며 다리 아픈줄도 모르고 몇시간씩 감상하곤 합니다. 사실 그것도 잠시일 뿐, 작업장에서 할 일이 차고 넘칩니다. 재료를 직접 채집해 흙과 유약을 만들고, 장작을 패고 가마도 점검해야합니다. 불 때기 시작하면 더 쉴 시간이 없습니다. 도자기는 한 번 시작하면 최소 3~4개월은 꼼짝 못합니다."
 
연봉상 작가의 용진요 가마. 뒤쪽으로 3개의 봉이 있다. 이연정 기자
연봉상 작가가 가마에 불을 넣고 있다. 연봉상 작가 제공


그는 대학 시절부터 40년 넘게 흙을 만져왔다. 정확하게는 초등학생 때부터니 50년이 넘었다. 공작시간에 찰흙 작품으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이후 그는 직접 흙을 찾으러 다녔다. 흰색, 파란색, 까만색 흙으로 만들어 차별화한 작품들은 단연 대회 1등을 차지했다.

그래서 그는 흙을 '나의 일부', '나의 운명'이라 칭한다. 지금도 산에 가면 여기저기 흙을 캐보고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살펴본다.

그는 "흙뿐만 아니라 유약, 가마의 장작, 불까지 모두 다루다보니 도자기를 통달한 것 같다"며 "흙이라는 한 길을 걸어온 내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달항아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매끈한 순백색 달항아리와 전혀 다르다. 진짜 달의 모양처럼 울퉁불퉁한 크레이터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만의 제작 기법인 '토하기법'이다. 화공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흙, 낙엽, 재 등 자연에서 오는 재료로 직접 만든 유약을 사용하는 것. 그는 토하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2017년 대구미술공예대전 대상을 받기도 했다.

독창적인 모양새만큼이나 전시 방식도 눈에 띈다. 우주 공간처럼 달항아리를 공중에 매달고 접시를 벽에 붙여 은하수를 표현했다. 똑같이 생긴 별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접시도 전부 다르게 생겼다. 우주 작품은 2018년 동구 아양아트센터 전시를 시작으로 2021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 8개월간 전시하며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연봉상 작가의 차실 겸 전시실에 걸린 달항아리 작품들. 이연정 기자
반야심경을 한 자 한 자 양각 도자로 구워내 완성한 연봉상 작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달과 별, 행성 등 우주를 표현하는 것은 그의 반야심경 탐독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중국 서예가 오창석의 석고문(石鼓文)으로 쓰인 반야심경의 글자 한 자 한 자를 양각으로 제작해, 마치 모자이크처럼 하나의 대작품으로 완성한 작업도 선보인 바 있다.

연 작가는 "반야심경이 곧 우주의 얘기다. 작품에 담고자 하는 우주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부처님 말씀이 우주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내 작품은 반야심경과 불교 정신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것도 기도다. 참회와 소망이 깃든 기도,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기도다. 이후 개 산책, 텃밭 가꾸기를 하며 하루를 계획하고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생활 패턴이다.

그는 "작품에는 작가의 삶이 온전히 들어있어야 한다"며 "좋은 작업을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내가 건강해야 건강한 작품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전통가마를 다루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터. 용진요에는 가마 3봉과 단가마 1봉이 있는데, 오전 6시부터 불을 때기 시작하면 다음날 오전 4시까지, 꼬박 18시간을 불 조절에 매달려야 한다. 가마가 식는 것도 겨울엔 3~4일, 여름에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불 때기 전 육송 소나무 장작을 패는 것도 그의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작품을 잉태하는' 전통가마를 애정한다. 그는 "몇날 몇일을 가마 앞에서 온 정신을 쏟다보면 정말 죽겠구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땀 흘리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만큼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굽기 시작하고나면 어떤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날 지 모른다. 실패하기도,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이 나오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뭔가를 바라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연봉상미술관'을 짓는 것이다. 젊은 공예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을 제공해 공예 분야 저변을 넓히고 이 시대의 현대도자에 대한 기록도 남기고 싶어서다.

"나의 작업 모토는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도예를 하는 사람도, 백자를 잘 만드는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것을 찾고자 합니다. 팽이는 빙글빙글 돌지만 중심이 딱 잡혀있죠. 나도 내 중심을 지키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꾸준히 작업세계가 변화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연봉상 작가가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연봉상 작가의 작업장 앞마당. 그의 뒤로 장작에 쓰일 육송 소나무들이 보인다. 이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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