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문화, 인재의 80%를 서울이 과독점하고 있는 나라에서 지방의 활로는 무엇인가. 언제부터인지 ‘지역’은 ‘주변’과 유사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모든 것의 중심은 서울이며 그 변두리가 지역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만연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문화의 발전을 위해 애써 온 이상규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오는 9월부터 일본 동경대에서 '퍼스널 컴퓨터를 활용한 한국 방언자료의 분석과 지도제작'을 목적으로 1년간 방일한다. 지난 8월 26일 일본으로 가져갈 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이상규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마침 연구실에서는 이교수와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보존 운동본부’ 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순영 대표가 팜플렛 우송 확인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상화 고택 보존 운동은 민족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상화 시인,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선생,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 등의 고택이 밀집한 중구 계산동 2가 일대를 개발로부터 보전하자는 운동으로, 올해 5월부터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시작해 이미 40만명의 서명작업을 완료했다. 그리고 오는 연말까지 100만인 서명운동과 10억원 모금을 목표로 관련 운동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27일에는 뉴영남호텔에서 ‘민족시인 이상화고택보존운동본부 창립총회’와 이상화 시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출판 기념회를 개최했다.
이상화 고택 보존 운동은 지식인의 책무
지식인의 사회봉사 측면에서 이상화고택보존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이상규 교수는 이 운동의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대구는 기념관이 없는 도시입니다.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수많은 문인들의 고향인 대구는 이상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냉랭할 뿐입니다. 내가 주도하지 않으면 무관심하고 또 다른 사람이 하더라도 도와줄 생각보다는 ‘지가 머 잘났다고 저리 설쳐대느냐’는 비아냥거림 뿐입니다.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고 이번에 시작한 이상화고택보존운동은 꼭 달성할 겁니다” 지역의 정신문화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특히 이상화시인의 고택보존운동에 이 교수가 발벗고 나선 것은 이미 시인으로서 3권의 시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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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재한 바 있는 이교수 개인의 시에 대한 열정도 한몫 하고 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교수는 정신문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누누이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물질문명과 개발의 논리가 정신문화와 자존의 논리를 짓밟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포크레인의 쇠바퀴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뭉개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뿌리와 정신적 유산 또한 매장해야 할 것입니다” 이교수는 21세기는 효율성과 개발의 논리보다 문화적 자산이 더 큰 생산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국 최초의 시민단체가 주체가 된 문화청원운동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운동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은 ‘지방’이라는 화두에 오랫동안 몰두해 온 이 교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언학 연구 저서 두권 문화관광부,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
또한 ‘방언학’ 연구가 주전공인 이교수는 지역의 언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이같은 시민운동을 견인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교수의 지역방언에 대한 애착은 두권의 저서『문학과 방언』과 『경북방언사전』에 집약되어 있는데 앞의 책은 작년 문화관광부선정 우수도서에, 뒤의 책은 올해 대한민국학술원이 발표한 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교수의 전공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와는 상대적으로 기초학문의 육성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방언연구도 일본과학재단의 집중지원을 받아 말뭉치연구를 8년간 실시해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 등 기초학문의 토대강화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
학문으로 치면 주변부로 전락하고 있는 인문·기초과학을 다시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도 주변과 일상사가 다시 우리의 삶에서 중시되고 있는 흐름과 같이 한다고 보고 있다. “소외되었던 것에 대한 관심, 일상으로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야 하고 그것은 인문과학적 상상력이 함께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인문학의 위기막아야 대학사회 전반의 붕괴 막을 것
“이른바 과학주의가 초래한 부작용에 대해서 반성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단순히 인문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사회 전반의 붕괴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이교수가 지난해 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협의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동분서주해 온 것도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이번에 일한문화재단의 초청으로 1년간 일본 동경대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이 교수는 이번 연구가 일본의 방언연구 성과를 우리나라에 적용해 효율적인 DB구축과 언어지도 판독의 길을 제시할 것으로 보았다. 이 연구에는 일본에서 SEAL(System of Exibition and Analsis of Linguistic Data)을 개발한 Fukushima Chisko교수와 Fukui 교수가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또한 올해 동경대학에는 한국어과가 처음 개설되었는데 이 교수의 파견으로 우리대학과 동경대학과의 교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방언에 대한 남다른 애착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로, 지역의 문화운동에 앞장서는 시민운동가로, 그리고 인문학육성을 위해 동분서주해 온 대학교수로 ‘지방’이란 키워드에 애착을 가져온 이교수는 이번 방일기간 동안 지역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연구성과를 가지고 돌아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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